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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글 (2010년)

 

북 못지 않게 광신과 위협 가득찬 남 (레디앙, 2010년 12월 31일 (금) 10:48:26 박노자 / 오슬로대)
반유대주의와 반북주의 닮은 꼴…이성의 마비, 뜨거운 증오
저는 소련 말기에 학교에 다니면서 가끔 가다가 유대민족에 속하는 탓으로 상처를 받곤 했습니다. 물론 큰 것은 아니었으며 예컨대 재일조선인들 - 특히 조선적의 재일조선인들 - 이 겪어야 하는 구조화돼 있는 차별과는 질적으로 달랐습니다. 재일 조선인 같으면 ('빨갱이 조선인들'을 백안시했던 미국의 지지를 받았던) 일본 정부의 독단적 결정으로 국적을 박탈당해 졸지에 난민이 되고 말았고, 거기에다가 '단일민족'임을 내세우는 전후 일본에서는 비(非)가시화되고 주변화돼야만 되는 존재였습니다.
이와 달리 유대인들은 분명히 소련 공민이었으며 특히 학계나 예술계 등에서는 결코 주변적인 존재도 아니었습니다. 단, 유대인이 많았던 구(舊)볼셰비키 그룹에 대한 스탈린파 반감의 유산이 있는데다가 냉전이라는 상황 하에서 적국 미국이나 이스라엘로 이민갈 권리를 가지는 유대인들을 국가적으로 신뢰할 수 없어 어느 정도의 활동 제약(예컨대 군 고위직 진출 제한 등)을 감수해야 했던 것이죠.
거기에다 유대계라면 '잠재적 이민자/배신자'로 보는 인식이 민간 사이에서까지 퍼져, 가끔가다 상처를 받을 일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반유대주의란 도대체 어떤 괴물인지 왜 생기는지 상당히 궁금해왔는데, 마침 저의 고교 시절에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돼 그때까지 불어 해독자만이 국립중앙도서관이나 외국서적도서관에 가서 원본으로 빌릴 수 있었던 사르트르의 <유대인 문제에 대한 단상> (1946)이 드디어 러역돼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됐습니다. 제가 그걸 보고 개안 (開眼)을 경험한 것이죠.
사르트르에 의하면 반유대주의란 유대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유대인을 '혐오집단'으로 지목해 그들에 대한 증오없이 도저히 살 수 없는 반유대주의자들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죠. 그들에게 증오가 필수 되는 이유는?
첫째, 그들이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모든 문제들을 혐오집단의 책임으로 돌리면 세상이 덜 공포스러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예컨대 근대 자본주의의 확창 혹은 근대적 대도시 문화 등을 싫어하는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이, 근대의 모든 불확실성과 문제점들을 '유대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순간, 이 문제들이 아주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유대인만 격리되거나 없어지면 문제도 없어지니까요.
둘째, 유대인들이 혐오집단이 되는 순간, 그들을 혐오하는 비(非)유대인, 즉 '정상인'들은 본인들의 눈에 당장 선하게 보이고, 또 서로서로 계급이나 민족을 초월해서 혐력하는 가능성들까지 생기죠. 유대인들과 달리 그들은 정상적이니까요.
그리고 셋째, '혐오집단'에 대한 증오가 이성을 초월하는 만큼, 그 증오에 매몰되는 이들은 이성을 벗어나도 된다는 것이죠. 자기 자신의 주장의 확실성을 부단히 회의하지 않아도 되고, 본인들이나 상대방의 복합성 등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고, 그 어떤 성찰도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우리는 착하고 저들이 나쁘다", 이는 중세 신학의 신과 악마의 이분법만큼이나 편한 논리죠. 계몽기의 사상가들이 이성을 인류의 해방 도구로 생각했지만, 자본주의 퇴락기의 상당 부분 인류는 오히려 이성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는 셈이지요. 참 슬픈 아이러니네요.
저는, 반유대주의란 결국 다른 방식의 자기확립이 불가능한 이들의 타자 배척을 통한 자기확립 시도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 정말 해방감을 느꼈어요. 소수에 속한다고 해서 더이상 자기혐오나 자기 부정에 빠질 일은 없었기 때문이죠. 지금도 그 일로 사르트르에 대한 고마움을 느낄 정도에요.
제2차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되는 시점에서 그 책을 쓴 사르트르에게야 당연히 유대인의 사례는 눈에 선했지만, 사실 그가 제시한 집단 배척 메카니즘의 논리는 꼭 유대인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전혀 아니지요.
지금 이스라엘의 주류 유대인 집단의 아랍인에 대한 타자화를 봐도 그 내재적 논리는 사르트르가 묘사한 것과 별반 다르지도 않아요. 아랍인들이 후진적이고 호전적으로 인식돼야 이스라엘의 주류 유대인 집단은 선진적이고 "평화와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방어만 하는 평화세력"으로 보이는 것이고, 만악의 근원을 '아랍 테러리즘'에서만 찾으니 이스라엘 사회 내부의 각종 치명적 모순들(예컨대 아랍지역 출신 유대인에 대한 유럽 출산 유대인의 극악무도한 집단 이지메라든가, 극단적 양극화 등등)도 다 호도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한국이나 일본 같으면, 사르트르가 이야기했던 집단혐오의 메카니즘은 요즘은 일차적으로 북한에 대해서 적용되는 것 같아요. 제2차 대전 이전의 유럽 우파들이 유대인을 '우리/세계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봤듯이, 북한은 남한이나 일본에 대한 '무시무시한 위협'으로 묘사돼요.
북한의 총국내생산(미화 약 260억 불)은, 대체로 세계 11위(즉, 브라질이나 인도와 같은 지역 패권 국가 수준)로 알려져 있는 남한 국방비 정도밖에 안되고, 거기에다 '큰형' 미국과 실질적인 동맹국인 일본의 전투력과 국방비까지 가산하면 아예 그 어떤 비교도 불가능해질 터인데, '북한 위협론'은 한-일 양국 보수주의자들의 전가의 보도처럼 계속 애용되고 있지요.
게다가 북한은 꼭 국가 단위로만 위협으로 인식되는 것도 아니죠. 각국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이 하나의 커다란 '세계에 대한 음모'의 일부분들로 인식됐듯이 남한에서는 '친북, 종북 좌파'가, 일본에서는 조선적 재일 조선인, 그 중에서는 특히 조총련 활동가들이 각각 '내부의 적'으로 지목돼 전(全)사회적 이지메 대상이 되고 있어요.
각국의 유대인들이 서로 이해관계부터 완전히 다른데다가 그 사이에서 극우부터 극좌까지 정치의 모든 색깔들이 다 섞여 있듯이, 일본의 조총련계 교포나 한국의 좌파민족주의자들은 사실 대개 북한 지배자들과 처해 있는 입장도 생각도 상당히 다른 것이죠.
그럼에도 자칭 '정상인'들에게 그들 모두 다 하나의 커다란 음모의 구성원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이 단순히 위협으로 인식됐을 뿐만 아니고, 이성을 마비시킬 만큼의 뜨거운 증오를 당해야 됐듯이, 한-일의 반북주의도 '상징적 폭력'의 극치를 달립니다.
유럽 반유대주의자들에게 유대인들이 좋은 점 하나 없는 '사회의 암적 존재', '병균'이었듯이, 북한을 광적으로 증오하는 이들에게 북한도 그저 '순수한 악'일 뿐입니다. 선임자에 의한 폭력이 거의 없는 북한 군 내부의 분위기가 남한보다 어쩌면 인격을 덜 파괴하는 점이라든가, 남한에서 지금쯤에 이루어질까 말까 하는 학교 체벌 폐지는 북한에서는 적어도 원론적 차원에서 일찌감치 이루어졌다는 점 등을 그들에게 이야기해봐야 듣는 척하지도 않죠. '병균'들을 '살균'해야 할 뿐이지, 그들에게 배울 것이라고 하나도 없다는 논리입니다.
제게 "반유대주의는 모든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과 달리 반북주의는 - 적어도 남한에서는 - 원칙상 북한 지배층만을 대상으로 한다"라는 반론이 제기될는지 모르겠습니다. 맞는 이야기에요. 남한에서는 민족이라는 이념을 완전히 버리지 않는 이상 극우주의자들도 제거 대상인 북한 지도층과 흡수통일 이후에 최하급 비정규직 노동자나 비공식 부문 종사자로 전락해 세계로 도약하는 위대한 대한민국을 저임금 노동으로 뒷받침해줄 '일반주민'들을 구분하긴 하죠.
'우리'의 노예가 될 후자에 대해서는, 대개 온정주의적, 시혜주의적 언사들이 많이 쓰이죠. '후진적'이고 '우민화'되고 '세뇌' 당한 이들은, '선진화'되는 대한민국에 의해 '해방'돼야 한다는 것이죠. 60여년 전에 우리를 해방시켜준 은인 나라는 큰 형 미국이었지만, 이제 청출어람 격으로 미국만큼 위대해진 우리는 '불쌍한 북한 동포'에 대해 똑같은 은혜를 베풀어야 할 셈이죠.
그런데 '불쌍한 동포'는 일단 그들이 개별적으로 '우리'의 손에 들어가 그들이 마땅히 들어가야 할 자리, 즉 최하급 도시빈민의 자리에 들어가고 나서, 혹은 그들이 집단적으로 '우리'에게 흡수되고 '착한 원주민'답게 '우리'로부터 개화의 세례를 받고 나서의 이야기죠.
그들이 그 '왕조'를 버리지 않고 남쪽으로부터의 '문명의 십자군'에 감히 저항을 계속 시도하는 한, 그저 멸시와 증오의 대상일 뿐이고 적당한 '응징의 목표물'로 보일 뿐입니다. 남한이 강경 응징할 경우에는 그 선진적인 포탄을 맞아 산산조각으로 부서져나감으로써 무적 아군의 전과가 될 북한 일선 군인들이 다 일반주민의 아들딸들인데도, 남한 보수들은 그들에 대한 하등의 자비를 보이려 하지 않죠. 그들은 인간이기 전에 일차적으로 목표물일 뿐입니다.
'광신적이고 위협적인' 유대인을 짓밟음으로써 '문명적이고 평화로운' 집단으로서의 (허위적) 자의식을 얻으려 했던 유럽 반유대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후진적 북한 광신도'들을 열정적으로 짓밟는 '선진적 우리'는 타자에 대한 배척을 통해 우리 자신들의 치명적인 문제, 갈등들을 잊으려고 할 뿐이죠.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안수기도를 통한 치료를 포함한 온갖 기적들이 가장 정기적으로 잘 일어나는 교회, 세계에서 최장의 노동시간, 그리고 OECD 가입국 중의 가장 규모 작은 복지예산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은, 누가 봐도 이북 못지 않게 내지 이북 이상으로 광신과 각종 위협으로 가득찬 곳입니다. 단, 국가적으로 누굴 위협한다기보다는, 그 관할 영토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모든 빈민, 모든 약자들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것이지요.
반북 히스테리 속에서는 산업화된 나라 중에서 산재와 가정폭력이 제일 많은 나라의 현실은 잊혀지고 '후진적 그들'에 비해 '우리'는 아주 '선진적으로' 보이게 됩니다. 그런데 미국제 최첨단 대포, 미사일과 함께 증오와 망각의 기술로 중무장한다고 해서, 우리는 과연 궁극적으로 행복해질까요? 이성이 마비될 때에 온갖 단꿈들을 다 꿀 수 있지만, 언젠가 깨어나야 할 순간은 결국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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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이여, 적은 인간이 아니다” (한겨레21 2010.12.24 제841호,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박노자의 국가의 살인] 살인을 거부하는 본성을 꺾기 위한 ‘증오 교육’…상대를 악마적 존재로 추상화해 전쟁 부추겨
전쟁을 체험해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전시라 해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람도 동류를 죽이는 데 천부적 거부감을 지녔다. 집단히스테리가 일어나 호전적인 분위기가 전 사회를 휘어잡아도 그렇다.
예컨대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해 처음엔 모든 참전국에서 교회와 정당, 언론이 부추기는 열렬한 반응이 일어났다. 하지만 실제 전투에서는 ‘용감하게 돌진해서 적을 사살하는 데 열정을 보이는 모범 전사’는 전체 군인의 10%에 불과했다고 한다. 연구의 정확성에 대한 의문은 있지만, 미국의 유명한 군사 연구자 새뮤얼 마셜(1900∼77)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때 실제로 방아쇠를 당겨 의식적으로 가시권에 있는 적군 병사를 사살하거나 사살을 시도한 미국 군인은 약 25%에 불과했다.
전쟁 프로파간다에 홀려 전쟁 자체를 긍정하는 것과, 같은 인간을 실제로 죽일 각오가 돼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죽임에 대한 ‘수용 불가’는 꼭 전장에서의 사살 회피로 끝나지 않는다. 전투의 광란 속에서 적병을 사살해야 했던 사람 가운데 많은 경우는 죽음의 장면을 나중에 전혀 떠올리지 못한다. ‘나는 사람을 죽여봤다’는 기억을 안고 산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너무나 힘든 일이기에 우리 뇌는 그 기억을 깨끗하게 지워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격렬한 정동(情動) 상태가 아닌, 감정이 가라앉은 상태에서 조준 사격해서 타인을 사살하게 된다면 그 희생자의 얼굴이 죽을 때까지 악몽 속에서 떠오르는 것이 보통이다. 인간으로서, 타인을 죽이는 것보다는 타인을 위해 죽는 것이 오히려 더 쉬울지 모르겠다.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인데도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는 필연적으로 군인을 ‘냉혈의 살인기계’로 만들어야 한다. 말하자면 본성을 거슬러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을 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 지난한 과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보통의 경우에는 아군이 죽여야 할 상대자들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거나, 인간이더라도 우리를 본질적으로 위협할 수밖에 없거나, 우리보다 크게 열등하거나, 우리로서 ‘합법적으로’ 죽여도 되는 범죄적 인간임을 병사와 주민들에게 반복적으로 교육하는 것을 해결책으로 삼는다. 이런 ‘증오 교육’ 없이는 전쟁다운 전쟁이 펼쳐지지 않는다.
단, 가상의 적과 ‘우리’의 관계 유형에 따라 증오 교육 형태는 달라진다. 예컨대 오늘과 같은 ‘선진적 통상대국 남한’과 ‘후진적 군국 북한’의 대치 상황에서 남한의 증오 교육은 ‘후진적 상대국’의 지도층에 대한 공격으로 일관된다. 민족주의적 이념상 동족으로 인식되는 북한 일반인에 대한 증오심을 유발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북한의 후진성과 군사적 폭력성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되는 북한 지도자들에 대한 증오심 선동은 ‘도덕적 비난’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김일성이 6·25를 일으켰다 해도, 6·25에 이르는 분단과 단독정부 수립, 남한에서의 좌파 학살 등 모든 과정에 대해서도 김일성 혼자서만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가? 북한 소행으로 추정되는 공격의 피해자가 될 뻔한 전두환은, 과연 본인도 광주에서 자국민을 상대로 끔찍한 테러를 벌인 장본인이 아니었던가? KAL858기 폭파 사건과 관련한 모든 의혹은 과연 완벽하게 밝혀진 것인가?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말이 되지 않는, 남북한의 ‘적대적 공생’의 현실을 무시하고 북한만을 일방적으로 문제 삼는 텍스트지만, ‘김일성 왕조 범죄’ 나열은 그 ‘왕조’를 섬기는 군인이나 민간인 역시 죽여도 된다는 인식을 독자가 가질 수 있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전쟁을 준비하는 이들의 고전적 증오 교육이다. 물론 남한 통치자들을 향해서 내뱉는 북한 매체들의 수사(‘역적 도당’ ‘역도’ 등)도 그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인종과 문화, 종교가 같거나 비슷해도 ‘민족’ 내지 ‘국민’으로 엮이지 않는 상대를 향해 전쟁을 준비할 때에는 상대 집단의 민족성 내지 국민성을 공격해 악마화에 열을 올린다. 전형적 사례는 제1차 세계대전 시절의 영국·미국 미디어에 의한 독일 국민의 악마화였다. 독일 프로파간다가 ‘이기적이며 타산적이며 비문화적인 영국인’ 등 상대방의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한편, 징병제 국가인 독일과 달리 1916년까지 징병제도가 없어 입대 지원자들을 계속 모아야 했던 영국으로선 증오 교육이 훨씬 더 절실했다. 그들은 독일인을 ‘무조건적 복종에 익숙한 기계적 인간’ 또는 ‘천부적 전쟁광’으로 규정했다.
1915년 5월에 나온 ‘벨기에에서의 독일군 만행 관련 보고서’는 확인이 불가능한 증언을 무비판적으로 이용하고 적군의 만행만을 골라서 강조하여 결국 영국 정부 돈으로 30개 언어로 번역·출간돼 국제적인 심리전에까지 이용되는 중요한 무기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실제로 독일 군인들과 접전했던 일선 군인들은 독일군을 ‘용감한 사내’이자 ‘우리와 같은 징집의 피해자’로 인식한 반면, 후방의 중산계급 구성원들은 ‘독일 군국주의자’를 추상적 존재로만 인식하며 증오 교육에 더 잘 넘어가곤 했다는 것이다.
영미권이나 프랑스에서의 증오 교육은 문화부터 외모까지 별반 차이가 없는 독일인에 대한 것이었으므로 덜 성공적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문화·외모가 완전히 다른 상대집단에 대한 증오 유발은 대개 ‘대성공’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 정복을 합리화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에게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려 했다. 전시 증오 교육이 인종주의적 편견들과 뒤섞인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선에 있던 미군 병사 중에서 ‘독일인을 멸종시켜야 한다’는 의견에 찬성하는 이들은 25%였지만, 태평양전쟁에서 ‘일본 인종의 멸종’을 꿈꾼 미군 병사는 42%에 달했다. 유럽 전선에 배치된 미군 병사나 미국 본토를 아직 떠나지 않았던 병사들은 일본인을 직접 대면하지 않았음에도 일본인에 대해 훨씬 더 짙은 증오심을 드러내곤 했다. 그들 중 60% 이상이 일본인이 멸종되기를 바랐다. 전후 연합국 쪽에서는 일본군의 ‘백인 포로 학대’를 문제 삼아 수많은 전범 재판을 진행했다. 게다가 이들은 일본군에 생포된 연합군 포로가 14만 명 이상이었던 반면, 연합군 손에 들어간 일본인 포로가 3만 명도 되지 못한 이유를 꼭 물으려 하지 않았다. 생포된 일본인 포로 수가 훨씬 적은 데에는 포로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옥쇄’(玉碎), 즉 ‘명예로운 자살’을 강요하는 일본군의 정신교육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군인이 미군이나 오스트레일리아 군인들에게 항복하려 했을 때 ‘열등한 황인종’ 취급을 받으며 즉각 사살됐던 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일본인을 원숭이처럼 생각한 미국 군인들은 사령부의 엄금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주검에서 머리를 잘라 물에 끓여 모든 살점을 떼어버린 뒤 그 해골을 ‘기념품’으로 가져가거나 애인이나 부모에게 선물로 보내곤 했다. 이런 만행은 일본의 반미 선전에 이용됐고, 그 선전을 접한 일본 병사들은 포로가 되는 것보다 자결을 택하겠다는 결심을 다지곤 했다. 인종주의로 뒷받침되는 증오 교육은 전쟁의 살기를 보통 이상으로 북돋웠다.
한국 현대사 또한 인종주의적 증오 교육과 무관하지 않다. 미군에게 남한은 명목상 ‘우방’이었지만, 북한 사람들을 대하는 미군의 태도는 태평양전쟁 때 일본인에 대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군은 모든 한반도 주민을- 소속 국가나 이념적 성향과 무관하게- ‘구크’(gook·‘아시아 놈’)라고 비칭했으며 ‘구크를 죽이는 것’과 ‘사람을 죽이는 것’을 엄연히 구분했다. 그들에게 구크는 완전한 의미의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착하고 신앙심이 깊은 미국인이었다 해도, 그들은 ‘모든 한반도인은 죽여도 무방한 대상물이다’라고 말하는 이데올로기의 자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예컨대 독실한 가톨릭 신도인데다 일본 여성과 사랑에 빠졌던, 어떻게 말하면 ‘악질적 인종주의자’까지는 아니었던 키리스 새르노 미 해병대 6·25 참전 병사는 “전투에서 나의 사명은 가급적이면 많은 구크를 살해하는 것이었으며, 권총으로 단거리에서 그들을 사살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리하곤 했다”고 회상한다. 이런 분위기는 이북 지역에 대한 융단폭격부터 노근리 학살까지, 온갖 전쟁범죄가 쉽게 감행될 수 있게 했다. 전쟁의 정신적 ‘윤활유’로서 인종적 증오는 인간적 양심과 근대적 이성을 모조리 마비시켰던 것이다.
<조선일보>류의 극우 신문들은 북한 지도층 악마화에 대해 ‘억압적 정권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라고 항변할지 모른다. 북한 정권이, <조선일보>가 유착해온 남한의 역대 독재 정권만큼이나 억압적이라는 점이야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남북한이 군사적 대치를 하는 상황에서 한쪽의 주류 언론기관이 다른 쪽의 지도자를 일관되게 악마화하는 것은 증오 교육, 즉 ‘준전시 분위기 만들기’임이 틀림없다. 남한과 함께 막강한 군사 블록을 이루는 미국·일본도 이 준전시 분위기 만들기에 동참하고 있는데, 이들의 머릿속에는 아시아인 내지 조선인에 대한 인종주의·식민주의적 편견까지 섞여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증오의 도가니는 과연 우리가 살고 싶은 동아시아인가? 
참고 문헌
1. J. Bourke, London: Granta Books, 2000, pp.103∼171, 215∼242
2. J. Dower, NY: Pantheon Books, 1986, pp.64∼66
3. S. L. A. Marshall, Washington: Infantry Journal, 1947, pp.50∼64
4. G. Messinger, Manchester: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92, pp.70∼85
5. www.koreanwar-educator.org/memoirs/sarno/index.html, Chris Sar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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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련 재판, 그들의 노림수 잘 봐야 (레디앙, 2010년 12월 17일 (금) 08:57:17 박노자 / 오슬로대)
공안 일꾼들의 실험?…정권안보 위한 '내부의 적' 만들기 과정 
현대차 투쟁은 그나마 노동계 안에서라도 관심사가 돼서 소극적으로라도 많은 비정규직들에게 영감을 준 바 있었는데, 거기에 비하면 '오세철 교수와 사노련(사회주의노동자연맹) 재판'이라는 아주 우려스러운 희비극은 아예 진보계 안에서도 이렇다 할 만한 관심을 일으키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연세대 오세철 명예교수가 이론가이자 실천적 지도자로 돼 있는 사노련은 급진적 사회주의를 표방했으며, 실제로는 다소 노동자주의적 노선을 간직해 '노동계급조직'에 주력해왔습니다. '계급조직'이라는 말은 아주 거창하게 들리지만, '계급'이라는 단어를 대체로 군에서의 계급쯤으로만 아는, 노조 간부하다가 보수정당의 국회의원 되는 일을 '전향'이나 '배신'으로 여기지도 않을 만큼 계급의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사리사욕을, 체제의 범위 내에서 추구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대한민국에서는 오세철 교수에 의해서 조직화된 노동계급은 - 제가 이해하기로는 - 대략 수십 명에 불과했습니다.
노르웨이 같으면 사노련과 노선이 엇비슷한 '적색당'(일종의 노동자공산당)은 전국적으로 약 2.5%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그게 사민주의적 후진국 노르웨이 이야기죠. 위대하신 선건(先建) 지도자이신 우리 대통령 각하의 현명하신 영도 하에서 일취월장 선진화하여 그 국격이 하늘을 찌르는 대한민국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죠.
강성대국이 돼버리면 모든 국내외의 가상적들도 무조건 아주 강성하게 보이나요? 하도 얌전하게 생기셔서 급진사회주의 조직의 지도자라기보다 차라리 정치경제학을 골방에서 연구하는 '백면서생'처럼 보이시는 오세철 교수는, 약 2년 전에 현대판 특고(特高)들에게 시달리시기 시작했습니다. 혐의는 국가 변란 도모,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대한 위협 등등입니다.
오세철 교수가 국체를 변란시켜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전복시키실 확률은, 아마도 스위스 학교 다녔다가 역시 폭발적 속도로 대장 칭호를 빨리 받은 김정은 '젊은 장군님'이 갑자기 대미 성전을 일으켜 뉴욕을 점령해서 '뉴평양'으로 개칭시킬 확률과 대체로 엇비슷할 것입니다.
그런데 선진화된 대한민국에서는 카프카의 <재판>은 문제없이 현실이 되는 법. 지난 12월3일에 공판이 열려 검사가 "국가 변란 음모 주범" 오세철 교수에게 7년형 등을 구형했답니다. 그의 동지들도 거의 5~7년형 정도 구형된 셈입니다. 노르웨이 같으면 7년형 정도는 정상참작이 가능한 살인범에게 내려지는 형벌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런데 후진적인 사민주의 국가와 질적으로 다른 강성대국 대한민국에서는 형벌들도 좀 강성해야겠지요? 역시 스케일이 크군요.
정말 법조인들에게 오세철 교수가 약간이라도 위협으로 보였다면, 이번처럼 재판을 불구속으로 진행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사노련을 와해시키려는 노력들도 훨씬 더 집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국제적인 창피 등을 무릅쓰고 이 재판 코미디를 무대에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분들이 "진보에 대한 협박"이라고 짐작들 하실 것이고 이는 일면 맞을 것입니다. 오세철 교수가 유죄가 되든 무죄가 되든(후자의 가능성도 꽤 큽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공안꾼들에게 시달리시는 그의 모습을 지켜본 모든 이들은 선진화되는 조국의 품에 안겨 있는 한 '사회주의' 같은 불온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이 위험하다는 교훈 정도는 이미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질식사 될까 말까 하는 정도로 조국이 강하게 포옹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사회주의를 좋아할 만한 '불령 분자'들이라면 대체로 인덕(仁德)스럽기 짝이 없는 우리 조국에 대해서는 별다른 환상이 없는 것이고, 법정에서 사상투쟁을 당할 각오는 이미 돼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류의 '재판질' 가지고서는 협박이 먹히진 않을 걸요. 자신들의 존재의 필요성을 확인해야 하는 공안꾼들의 '일건주의', 즉 한 건을 더 올리고 싶은 '순수한 열정'도 분명히 한 몫을 했겠지만, 그저 그것만 가지고 이 정도의 창피스러운 짓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분명히 이외의 의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 같으면, 이 재판은 일종의 '실험'인 것 같습니다. 약 15년 간 하지 않았던 북한과 무관한 사상범에 대한 사상 재판을 다시 하기 시작한 공안 일꾼들은 일단 이 일을 실험 삼아 해보는 것이고, 사회의 반응을 예의주시하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영향력이 큰 종교 집단들 안에서 그 진보적인 전위(카톨릭의 정의구현사제단 등)라도 반대 성명서를 내는 등 적극적인 반발을 하고, 시민사회에 힘깨나 쓰는 참여연대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오세철 교수와 그 동지들을 방어해준다면 국가는 얼마든지 물러설 수도 있는 것이죠.
이제 곧 레임덕이 될 대통령은, 안그래도 관계가 아주 나쁜 시민사회로부터 추가적 미움을 받아 고학력, 중간 소득의 젊은 직장인 등 시민사회 지도자들의 영향을 받는 중간적 유권자 계층들을 또 떠돌릴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번 실험이 성공해 오세철 교수에 대한 마녀사냥이 시민사회의 별다른 반대 없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공안꾼들이 새로운 날개를 달아 새로운 '불령 분자'들을 찾으러 끝없이 비상할 것입니다. 먼저 영세한 좌파적 단체들부터 표적에 오를 것이고, 그 다음에는 사회당, 민노당, 진보신당 안에서의 약간이라도 급진적 세력들이 졸지에 '국체 변란 음모자'가 될 것입니다. 밖에서 대북 대치가 첨예화되는 상황에서는, 안에서까지 '내부의 적'을 생산해낼 수 있다면 정권으로서는 이중의 효과가 발생됩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해도 아주 큰 반발이 없을 것인지 지금 시민사회의 의향을 '떠보는' 차례인 셈입니다.
결국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손에 있는 것이죠. 우리가 오늘 오세철 선생님을 방어해드릴 수 있다면 내일은 우리들의 표현 자유부터 강화될 것이고, 우리가 오늘 오세철 선생님이 마녀재판에 의해 '이지메'를 당하시는 상황을 방관한다면, 내일은 누구나 (저를 포함해서) 재판 받아야 할 '불령선인'의 대열에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힘이라고는, 연대의 힘 밖에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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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정상인'이 남기고 간 것들 (레디앙, 2010년 12월 10일 (금) 00:56:21 박노자 / 오슬로대)
[리영희 선생을 추도하며] "진실, 평화를 위한 투쟁 필요"
사실, 제가 제 자신에게 바라는 바 중의 하나는, 리영희 선생님 만큼은 입으로뿐만 아니라 마음으로까지도 불교적 생사관을 익혀 生에 대한 욕망도 死에 대한 두려움이 섞인 궁금증도 벗어던진다는 것입니다.
좌우간, 제가 지금 슬픈 것은 또 다른 세계에서 많은 인연들과 다시 조우하시게 된 리영희 선생님에 대한 건 아니죠. 우리 비정상적 세계를 밝게 비추어주셨던 몇 안되는 진정한 '정상인' 한 분이 우리를 떠나셨기에,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집단 정신병들이 더 빠른 속도로, 더 독하게 우리를 잠겨버릴지도 몰라서 슬프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리영희 선생님의 『歷程』이라는 자서전적 에세이 모음은 사실 한반도 현대사의 진실을 알고픈 사람에게 꼭 필독서가 돼야 할 것입니다. 리영희 선생님께서 마르크스주의적인 과학적 사회분석법을 휘두르신 것도 아니고 어떤 특정 '진보적 이념'의 각도에서 이 책을 쓰신 것도 아닌데도,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온갖 개인적, 집단적 환상들을 버리고, '진리, 오로지 진리, 진리만'을 추구하셨던 '깨인 정신'의 소유자이신 리영희 선생님께서 그가 본 현대사의 진리를 이 책에 아낌없이 담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는 때로는 아주 무섭고, 때로는 우리로서 생각하고 싶지 않고 망각하고 싶은 진리죠.
예를 들어서 1941년에 일본인 학교 교장이 조선인에게 대미선전 포고의 천황 칙어를 읽어주는 장면(33면)을 한 번 더 깊이 읽어보세요. 나이 든 조선인들이야 '전쟁'이라는 단어의 섬뜩함에 억눌려 침울한 표정이었지만, '만세'를 불렀던 젊은이들, 그리고 중국 대륙을 석권해 아시아에 그 패권을 굳힐 것 같은 '무적 황군'에 대한 자신을 포함한 다른 소년들의 흠모적 환상 등을, 리영희 선생님께서 잔인하리만큼 정확하게 지적하십니다. 제국의 전쟁을 열렬히 환영하는, 영혼을 빼앗긴 식민지인...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고 지워버리고 싶은 무서운 기억이지만, 이 기억을 반성하지 않고 지워버리면 이 역사가 또 너무나 쉽게 반복될 수 있다는 게 또 하나의 무서운 진리입니다.
지금 미제국과 반쪽짜리 준(準)제국 일본에 보조를 맞추어 반북 히스테리를 부추기는 수많은 '선량한 국민'들을 보십시오. '무적 미군'이 '이북 빨갱이 집단'을 쉽게 박멸하고 중국을 그 위엄으로 굴복시킬 것이라고 순진히 믿는 그들은, "전쟁을 불사한다"는 반북 강경 노선이 결국 동북아 전체를 다시 한 번 폐허로 만들 수 있는 커다란 패권 충돌에 불을 지필 수도 있다는 점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미 鬼畜 박멸을 위한 聖戰" 조칙 반포에 만세를 불렀던 얼간이들과는 도대체 뭐가 다른지도 모르겠어요.
요즘 대한민국의 보수계를 석권하고 있는 또 하나의 - 약간 덜 독한 - 집단정신병은 소위 '건국 열풍'입니다. 노동자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경제성장으로 우쭐해지고 자존심쯤이나 세워보겠다는 남한의 '오야붕'들은, 혁명적/반제국주의적 과거를 내세우는 이북과의 이념경쟁 차원에서 자신들의 뿌리를 약간 다듬어 미화해버려는 셈이죠.
일제 때에 총독부에 붙어 조선 노동자의 고혈을 짜냈던 것도 다 '문명과 나라 발전을 위한' 것으로 둔갑되지만, 특히 "자유진영의 선두자인 미국을 위해서라면 제3세계대전을 일으켜 한국을 다 희생시켜도 된다"고 다짐하곤 했던 그 놀라운 충성심의 소유자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내세우는 게 중점 중의 하나입니다. 다카키 마사오의 '촌스러운' 일어에 비해 '닥터 리'의 '액센트리스 잉글리쉬'(accentless English)는 아무래도 '어륀지' 세상에 더 맞는 부분은 있겠지요.
하여간, 본인이 제대로 읽을 줄 몰랐던 불어와 나전어 문헌들을 다 인용하면서도 조선은 한 마디도 언급하지도 않았던 학위 논문으로 박사님이 된 '건국의 아버지', '민족의 태양', '예수와 석가보다 더 겸손하신 분'(다 실제로 그 때에 사용했던 호칭들임)께서 워싱턴에 가서 남한에서 꽃핀 '다원적인 제페르슨 식 민주주의'를 선전했을 때에 닥터가 될 만한 돈이 없는 중생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해 궁금하시면 『歷程』을 꼭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초기의 대한민국을 몸으로 겪으신 리영희 선생님께서 책에서도, 구두로 그 회상들을 공유하셨을 때에도 늘 지적하셨던 것은 바로 '무한한 국가 폭력'이었습니다. 반대자를 학살해 그 가족을 연좌제로 옭매어 평생 괴롭히고, 약한 자를 군에 징집해 무의미한 동족상잔의 총알받이로 이용하고, 미제국의 원조든 국가 자금이든 다 도둑질 대상으로 만들어 지배층의 개인적 치부의 자원으로 삼게 하는 것은 폭력 정치와 '도둑 정치'(cleptocracy)의 전형인 초기 대한민국이었습니다.
책에서 가장 아픈 대목 중의 하나라면, 1950~51년 '국민방위군' 이야기입니다. 인민군에 밀렸을 때의 '국군'은 후퇴할 때에 지나가는 지역마다 장정들을 모조리 다 징집(사실상, 국가적으로 납치)해버렸는데, 방위군으로 강제평성된 그 장정들에게 지급될 식량 등을 그 잘난 '지도층'이 다 훔쳐가는 바람에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가까운 징집 피해자들이 굶어죽고 만 것입니다. 차라리 강도를 더 방불케 하는 '국군' 장교에 건넬 몸값이라도 있는 집 장정은 살고, 없는 집은 납치형 징집을 당해 고통스럽게 아사 당하고 만 것이죠. 『歷程』에서 징집이라는 이름의 국가적 폭력이 얼마나 약자들을 골라 괴롭혔는가에 대한 자세한 진술들은 대단히 많습니다.
전선에서 군 물자를 횡령, 전용하거나 '빽'을 써서 후방으로 옮겨져 용케 잘 살아남은 장교들은 나중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지도층 또는 부유층이 되고, 국가 폭력을 회피하거나 저항을 하지 못한 그 유일한 죄(?)로 사지로 끌려간 가난뱅이들의 백골을 지금도 다 찾아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건 리영희 선생님께서 너무나 잘 아셨던, 그리나 세상이 자꾸 망각하려 하는 우리 '건국사'의 진실입니다.
리영희 선생님의 육신은 사멸됐지만, 늘 실사구시로 진실, 진리, 참된 것을 구하려는 그 '위대한 정상인'의 깨인 정신은 늘 우리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 정신은 우리와 함께 있기에, 어쩌면 우리가 노력을 해서 진실, 생명을 위한 투쟁으로 리영희 선생님께서 겪으셨던 그 무서운 전쟁들의 반복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선생님께서 유촉하시고 가신 가장 중요한 사항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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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조폭국가다" (레디앙, 2010년 12월 03일 (금) 10:19:13 박노자 / 오슬로대)
"현대판 봉건영주 계급 사유물…노동계급 정치화 긴요"
2년 전에 숙환으로 돌아가신 컬럼비아대학의 찰스 틸리 교수님께서 한 때에 아주 재미난 글을 쓴 바 있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국가 건설'과 조폭의 '보호세 갈취'를 비교하면서 유럽에서의 절대왕권의 기원을 설명해준 논문이었습니다.(https://netfiles.uiuc.edu/rohloff/www/war%20making%20and%20state%20making.pdf)
정확하게 마르크스주의적 접근법도 아니고 다소 이론성이 약하지만, 중세 이후 유럽에서의 국가 기원에 대한 정치학적 설명으로서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는 것 같습니다. 이 설명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중세 후기의 유럽은 크고 작은 봉건 영주들이 싸우고 또 싸웠던 하나의 큰 전장이었는데, 이들 영주들이 농민, 상인으로부터 세금을 뜯어먹을 수 있었던 명분은 결국 '보호'였다는 것이죠. 한데, 화기가 고도화돼서 중세 '골목 짱'들의 요새들을 쓸어버릴 만한 대포들이 등장되니, 마르크스의 '시장 독과점화 경향' 논리대로 보호서비스 시장에서 제일 큰 보호 서비스 제공자만 살아남은 것이죠. 큰 대포들을 살 만한 '업자'들만 살아남은 것인데, 그게 바로 우리가 익히 아는 불란서, 서반아, 포도국(葡萄國) 등등 절대왕권 국가들입니다.
이걸 보고 혹자가 제게 "국가와 조폭의 차이도 모르냐, 국가는 합법적 폭력을 독점하는 공공기관의 총체이며, 조폭은 비합법적 폭력을 행사하는 사익집단일 뿐이다"라고 반문하겠지만, "공공성이 있는 공권력으로서의 국가" 운운은 어디까지 부르주아 혁명을 거쳐 나름대로의 시민권력이 확립된 근대사회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전의 유럽 국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공권력'과 사실 사이가 좀 멀었어요. '공민, 공법'의 논리보다 "우리 천주교파냐, 저 개신교도파냐"의 논리가 우선이었다는 것이죠. "짐은 곧 국가"와 같은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수 있었던 절대왕권 아래에서는, 근대적 공법의 논리는 본질적으로 작동될 수 없었지요.
그 논리가 작동되기 위해서는, 명색상의 공권력을 사실상 사적으로 이용해온 국왕이나 귀족들에게 한 가지 약이 필요했던 것이죠. 단두대(斷頭臺)라는 이름의 명약 말에요. 뭐, 그 약물 투입 과정을 거친 나라라고 해도, 꼭 전근대적 권력 사유화 시대로 퇴보하지 않겠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반동의 시대에는 언제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이번에 위키리크스에서 폭로된 미 국무성의 비밀보고서에서 러시아를 "완전히 부패한 마피아 국가"라고 - 매우 옳게 - 규정했지만, 이는 10월혁명과 그 후속 정권(스탈린주의 정권)의 역사적 패배 및 몰락에 따른 전근대적 국가구조로의 후퇴라고 봐야 할 듯합니다. 미 국무성 관료들의 말대로, 지금의 러시아는 푸틴 휘하의 관벌들의 사유물이고, 저들이 국가적 세금을 횡령할 뿐더러 정기화된 상납제도를 통해 '사설 세무서'들까지 운영한다는 것도 맞습니다.  
러시아는 그렇다 치고, 단두대라는 천하명약의 맛을 제대로 모르시고 계시는 아등(我等) 동방예의지국의 대감님네나 영감님네, 그리고 그 이하의 거상(巨商) 벌족(閥族)들도 아무래도 중세후기에 사병들을 거느리고 평민들을 마음대로 칼로 치곤 했던 구라파주 후작과 남작들의 흉내를 열심히 내고 있는 모양입니다. 예컨대 SK왕국 왕자님의 거동을 한 번 보시지요. 감히 왕자님의 궁궐 앞에서 불평불만을 나타내는 등 그 무서운 불경죄를 저지른 나이 든 백성에게 손수 곤장을 친 왕자님에게는, 16세기의 불란서와 달리 호위하는 사병(私兵)들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조총을 든 사병보다 더 무서운 무기가 있는 것에요. '매값'이라는 표현방식에서 보여지듯이, 그에게는 국가가 제대로 과세하지도 못하는 어마어마한 돈이라는, 그 화력이 그 어떤 조총이나 대포보다 더 센 무기가 주어져 있는 것이죠. 대한민국에서는 이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소(小)왕국이나 그 왕자님들은, 정말이지 못할 게 없습니다. 감히 일회용 소모품이 아닌 당당한 노동자로 인정해달라고 집단행동을 취한 '머슴'들에게는 음식물 반입을 금지해 '하찮은 상것'들을 마음대로 굶겨도 되고, 용역이라는 이름의 '사병이 아닌 사병'을 풀어서 그들의 갈비뼈를 뿌러뜨리게 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면, 재미삼아 말 안듣는 동업자를 포로로 잡아 물고문까지 해도 되는 것이고, 음주운전을 단속하려는 경찰에게 중상을 입혀도 되는 것입니다. 돈이라는 불패의 무기만 보유하면, 양민들을 구타하든 굶기든 짓밟든 하등의 손실을 볼 일이 없단 말이죠.
이 나라 대한민국은 그러한 크고 작은 군주님들의 사유물이고, 이 나라에서 서식하고 있는 소위 글 배운 이들은, 죽거나 다치거나 배고픈 강사생활이나 비주류 삶을 살거나 이민가고 싶지 않는 이상 이를 다 현실적으로 수용하고 사는 것입니다. 조폭들이 다스리는 골목에서 건강히 잘 살자면 앞가림을 조심스럽게, 잘 해야 하는 법이죠.
여러분, 딴 건 몰라도 자기기만이라도 하지 맙시다. 우리가 상식과 공법이 통하고 시민들에게 존엄성이 허용되는 근대적 사회에서 사는 게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복잡한 경쟁/담합 관계에 있는 수많은 영주님, 짱, 보스들이 공동 관리하는 영토에서 살고 있는 것이죠.
똑같은 논리로 운영되는 북조선과의 차이라면, 이 쪽에서는 '수령님'들이 단수가 아닌 복수고, 우리가 그들이 내세우는 대리인들 중에서 몇 사람을 골라 소위 '대통령'으로 만들거나 '국회'로 보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반대자의 목소리를 완전히 죽일 수가 없다는 것, 이 정도입니다.
공정선거가 있다는 게 마침 우리와 북조선의 아주 큰 차이처럼 보는 이들이 있지만, 대학이나 교회부터 주요 신문까지 사회의 모든 기관들이 그 '영주님'들의 손에 쥐어진 상태에서는 선거, 선거직 공무원의 역할이란 영주님들 사이의 교통정리이지 그들의 난폭한 '보호세 뜯어먹기'에 대한 그 어떤 본격적인 억제는 아닙니다.
그런데 영주님들도 문제지만, 매값을 매겨 평민을 거의 죽음으로 몰아간 '나쁜 주인'을 죽으라고 욕해도 총체로서의 '주인들'이 소위 국민경제를 잘 이끌어나가, 우리 모두를 살찌울 성장을 보장할 수 있다고 순진하게 믿고 사는 백성들이야말로 더 큰 문제입니다.
바스티유가 국민의 요새가 아닌 부르봉 왕가의 성곽이었듯이, 대한민국의 경제란 국민과 무관한 이씨 족벌, 정씨 족벌, 최씨 족벌 등등 '소왕국'의 사유물에 불과합니다. 남의 사유물들을 이렇게도 애지중지하고 자기 것처럼 여기는 이 동방예의지국의 백성은 참 착한 백성이죠?
최씨 왕자님에 대한 분노는 지금 하늘 찌르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지배자에 대한 도덕적 분노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 현대판 '봉건 영주계급' 전체를 그 안락한 자리에서 몰아낼 수 있는 노동계급이 어느 정도 정치적으로 조직화돼 있는가, 그리고 어느 정도 계급의식으로 무장돼 있는가 입니다. 적어도 주인네들 만큼이나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뚜렷하게 의식해야 주인네들과 힘겨루기라도 할 수 있단 말에요. 그런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우리 노동자계급은 '봉건 영주님'들에 비해 한참 떨어져 있는 것이죠. 그들은 이미 대자적 계급이지만, 우리의 계급적 각성은 아직 시작 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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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투사와 착한 중산층, 누가 폭력적? (레디앙, 2010년 11월 19일 (금) 11:12:27 박노자 / 오슬로대)
공산주의, 고통스런 세상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이성적 삶의 방식'
나이 차이나 인생경험의 차이가 대단했음에도 저와 류백사(劉白砂) 선생님으로 하여금 매일 저녁마다, 모든 동료들이 다 퇴근하고 나서 같이 만나서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게끔 하는 한 가지 공통분모가 있었습니다. 저도 류선생님도 - 사민주의적 특징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본질상 자본주의적 사회인 - 노르웨이에서는 말 그대로 '유령'이었습니다. 유령이라는 게 딴 게 아니고 어느 곳에서 '물리적으로' 살고 있음에도 그 곳에 속하지 않는 존재를 일컫는 말입니다. 몸은 여기에 있어도 마음은 전혀 딴 곳에 있는, 그런 존재 말이죠. 우리 둘은 그러한 유령이었고, 그러한 의미에서는 우정 이상의 우정을 나누었다 해도 어폐가 없을 것 같습니다.
자본제 사회의 근본부터 수용하기가 너무 어려웠던 것입니다. 인권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것이야 다 좋은데, 석유를 팔아서 번 돈을 저임금 노동력을 쮜어짜는 중국대기업에 투자하면서도 '중국 인권'을 만날 들먹이고 사는 노르웨이 정치인들을 볼 때마다 저나 류선생님은 역겨워했을 뿐입니다.
인권? '나'만 내지 '우리'만 누리는 인권은, '나' 내지 '우리'의 번영을 위해 희생되는 타자가 그 어떤 인권도 향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과연 무슨 뜻이 있는 것인가요? '나/우리'의 인권만큼이나, 누군가에게 그 생존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 때에 그 누군가와 연대해야 하는 의무감은 중요하지 않나요?
한 개인, 내지 한 집단의 고립적 생존이라는 것이 만물이 다 얽히고 설킨 인연으로 연결돼 있는 인드라망과 같은 세계에서 아주 무의미하다는 것, 몸둥이를 타고 나 또 다른 몸둥이들과 부딪치면서 사는 이상 타자에 대한 의무가 권리보다 훨씬 일차적인 것이라는 부분을 우리가 굳게 믿었어요.
그녀가 생각하셨던 타자는, 일차적으로는 중국의 '화평적 굴기'를 위해 심신의 모든 힘을 다 바쳐 폐기처분돼야 할 선전(深玔)의 민공이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고국의 무수한 생명들이 국가와 자본의 이중적 억압과 착취를 받고 있다고 알고 있는 한 그녀는 불행했습니다. 아주 불행하셨습니다.
저도 소련 초기의 혁명가요 한 곡을 듣지 않고서는 작업도 못하고 잠도 못드는 것처럼, 류선생님께서도 40~50년 전의 중국 영화들을 아주 애호하셨고, 그 시대의 노래들을 자주 들으셨습니다. 그 시대의 폭력성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미 시대에 맞지 않은 집단주의적 사고를 흠모하는 것도 아니지만, 저나 류선생님에게 노동계급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로 허름한 군복을 입고, 고장난 총을 잡고 반동 백군과의 싸움터로 나가는 붉은 군대 병사나, 일본 졸병들에게 공산주의를 가르쳐주어서 일본을 자본주의로부터 해방시켜 주겠다는 각오로 항일항쟁에 나섰던 연안시절의 팔로군 영웅들이 형제자매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시대적으로 불가피했던 폭력성이 있었다 해도, 그들에게는 타자가 유의미하게 존재했던 것이고, 그들이 타자와 자기자신을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고, 타자를 위해서 자율적으로 자신을 희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자율적 판단에 따라서 자신이 속하는 계급의 여타 타자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위험에 노출시키면서 불가피한 폭력을 행하는 그 당시의 공산투사보다는, 비록 본인이 총을 잡을 일이 없어도 아프간에 파병되는 살인자들의 살육 행위를 가능케 만드는 세금을 아무런 문제의식없이 내는 미국이나 노르웨이의 '선량한 중산층'은 더 악질적으로 폭력적이지 않은가요?
전자의 경우에는 폭력과 몸으로 부딪치면서 그 문제에 대한 성찰이라도 해볼 수 있었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자신의 경제력이 저지르게 하는 폭력에 대한 관심마저 없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런데 저도 그렇고 류선생님도 그러셨지만 왜 '전체주의적' 공산투사들을 흠모할 수밖에 없는지를 대다수의 우리 노르웨이 제자들에게 설명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걸 시도할 때마다 역사적 경험의 차이에 부딪치곤 하는 것이죠. 그러한 의미에서는 우리는 여기에서 철저하게 타자, '유령'들이었습니다. 뭐, 어디를 가나 그렇지 않겠습니까? 대한민국과 같은, 특유의 반동성이 아주 짙은 나라로 가면 더욱더 그렇겠지요?
공산주의란 사실 다른 게 아니고 바로 사바세계에서의 이성적 삶의 방식, '고통'이라는 일차적 사실에 대한 철저한 앎에 기반되는 삶과 죽음의 태도죠. 공산주의란, 죽음이라는 궁극적 진리를 직시하고, 이해하고, 그 진리의 입장에서 세상의 나머지 부분들을 보고 있는 중생들이 할 운동일 것입니다.
그러면, 네가 죽고 내가 살자는 식의 우승열패적인 자본제 사회적 삶의 방식은 과연 무엇인가요? 무명(無明)과 아집, 집착, 탐진치로 인한 집단적 정신착란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회의 특징이란, 자본제적 정신착란이 심한 사람일수록 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4대강이 파괴되는 것부터 세계대전들이 벌어지는 일까지, 인류의 역사가 의사도 간호사도 없는 정신병동의 역사를 방불케 하는 부분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할 일은 있겠습니까? 그런데 정신병동을 다스리면서 결국 살인방화할 수밖에 없는 가장 태심한 환자를, 그나마 정신이 비교적으로 맑은 사람들이 제압하려고 시도할 때에 세상이 그걸 보고 '과격'이니 뭐니 비난하니 참 한심한 일입니다.
하여간, 슬퍼하기보다는 시공간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서 영원으로 돌아가신 분을 어쩌면 축하드려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슬픈 게 이 정신병동에서 남은 우리들의 가까운 미래입니다. 확언컨대 여기에서 권세를 부리고 있는 가장 태심한 중환자들이 이제 머지 않아 서로간의 텃싸움을 벌이면서 우리까지도 거기에 총동원시키려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 때에 가서 그들을 제압하여 우리 전체에 대한 치료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결국 우리 하기 나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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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는 왜 우월한가? (레디앙, 2010년 11월 12일 (금) 16:36:34 박노자 / 오슬로대)
고등교육계 비정규직 '진보정당' 입당해 '변혁' 외쳐야
제가 '사회주의'를 여전히 유효한 - 어쩌면 지금으로서 유일하게 유효한 - 대안으로 이야기할 때마다 "시대착오적"이라는 반응을 자주 접하곤 합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에게 '진보'란 자본주의에 대한 '수정' 작업으로 국한됐으며,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대안 제시란 거의 이단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나라의 '현실성이 있는 진보주의자'들이 시장의 권력을 인정하는 사민주의까지는 기꺼이 거론해도 시장 권력에 대한 본격적 도전을 이야기하는 걸 아주 아주 꺼립니다.
물론 일면으로는 이해도 할 수 있는 입장이죠. 획기적 내지 본격적 변혁이란 역사적으로 봤을 때에 별로 평화스러울 때도 없는 것이고, 늘 온갖 부작용들을 수반하니까요. 수술에 대개 전신 마취가 필수적으로 따르듯이, 본격적 변혁이란 광기 내지 폭력성을 띨 확률이 높은 밑으로부터의 총동원 분위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또 일반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수술은 아무리 위험하고 어려워도, 수술을 받지 못해 일찍 죽거나 불구가 되는 것보다 일단 낫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사회의 모순의 정도를 생각해보면 정말 아주 본격적이고 대대적인 수술없이는 별 수 없단 생각이 절로 듭니다. 시장을 '수정'한다기보다는 상당 부분 아주 배제해버려야 뭔가를 바로 잡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적 접근이 아니면 정말 별 수 없는 하나의 좋은 사례는 고등교육계 비정규직 노동자(시강강사, '연구교수', '초빙교수', '비정규 트랙 교수' 등등 - 무늬는 아주 아주 다양하지만 궁극적 본질은 같습니다) 문제입니다. 지금 국내의 고등교육계에서는 비정규직 교원의 수(약 7만명)는 정규직 교원의 수(약 6만5천명)를 능가하고 있으며, 교양강의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연구논문의 주된 생산자로 기능하는 그들의 역할은 절대적입니다.
그들이 비정규직으로 남아 있는 이상 과도한 저임금 노동(낮은 수업 단가로 인한 너무나 긴 노동시간)으로 말미암아 강의노동도 즐겁게, 재미있게, 준비를 제대로 많이 해서 하기가 불가능에 가깝고, 불확실성과 불안함 속에서 장기적 계획을 세워 연구노동도 제대로 못합니다. 저임금, 불안, 정규직 관리자들의 횡포, 그리고 대학당국의 무시와 각종 부당노동행위 등으로 고등교육계 비정규직으로 약 4~5년 이상 있어본 사람이라면 가볍게는 고질적 스트레스부터, 무겁게는 신경질환과 자살충동까지 느끼는 것은 일반적 경험입니다.
문제는, 현존의 자본주의적 시스템으로는 이렇게 죽을 고생을 하시고 계시는 이 분들의 입장을 본질적으로 개선시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시장, 즉 고교 졸업자의 수가 점차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정규직을 둘 새로운 대학의 설립도 기대할 수 없고,(오히려 지금 전남, 전북의 사립대학들부터 상당히 많이들 퇴출될 위험이 크다는 건 업계의 상식입니다) 사실상 이윤 극대화를 노리는 자본주의적 경제 주체인 오늘날 대학들이 웬만큼 정규직을 두는 걸 피해 특히 인문학 등 '이차적이고 불필요한 분야'에서 정규직 증설을 극도로 억제시키는 것도 -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이상 - 국가도 어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하에서의 고등교육계 비정규직의 비극의 씨앗은 바로 그 유명한(?) 수급 법칙입니다. 수요, 즉 정규직과 비정규직 티오의 수도, 그리고 공급의 상당 부분, 즉 국내 박사학위 소지자들의 배출량도 똑같은 교육계 업체(소위 '대학', 그러나 실제로 '교육계 기업'으로 부르는 게 더 정확할 듯합니다)들이 좌우한다면 과연 어떻게 됩니까?
티오의 수가 일부러 억제되고 '인건비가 저렴한' 비정규직의 티오부터 늘게 되지만, 동시에 같은 대학이 돈을 받고 팔아주는 석사, 박사학위의 소지자들의 수는 억제할 것없이 마구 늘어납니다. 또 국내 학사 내지 석사 학위 소지자들이 외국 교육계 기업의 장사를 도와주면서 해외 최종 학위까지 대량으로 따오는 것까지 생각하면, 늘 억제되는 수요와 억제될 게 없는 공급이 서로 얼마나 맞지 않을는지 자명합니다.
수급이 이렇게 맞지 않는 데에서는 그러면 누가 이득을 보는 것인가요? 맞아요, 바로 그 불균형의 원흉인 교육계 업체들입니다. 수급이 안맞아 공급초과 현상이 나타날 때에 가격이 내려가게 돼 있는데, 교육계 업체로서 이는 무엇이든 다 감수할 수 있는 '노예후보자'들의 안정된 공급이 보장돼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입니다. 대필하라 하면 입 다물고 대필하고, 논문 생산을 늘리라 하면 시키는 대로 초인적인 논문생산에 몰두하고, 한 학기나 일년 단위 계약으로 일하라 하면 무조건 감지덕지하는 그들이 존재하기에 교육계 업체들이 그 소기의 목표들을 달성합니다.
'인건비 저렴한 인력'을 씀으로써 학교를 등록금과 국고보조금으로만 운영해 재단 이월금을 계속 쌓아두고, 땅을 사들이고, 건물을 새로 지어가면서 건설사들과의 주고 받는 '파트너십'을 발전시키고 논문 생산으로 경쟁자를 눌러 그 '세계적' 랭킹을 높이고... 노예노동을 마구 이용해 (저들의 표현방식대로) '글로벌 브레인 파워'를 구축해보겠단 이야기입니다.
한국 지식시장의 상대적 고립성으로 이 커다란 '지식착취공장'을 빠져나와 도망가기도 힘들고(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하고 있지만, 완벽하게 보편적 해결 방식은 못됩니다), 또 철저하게 원자화돼 있어 노예주들에게 집단적으로 맞서기도 힘들어, 정말 자살이 아니고서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방법이라고 거의 보이지 않는 이 공장 노예들의 참담한 상황에 자본주의적 국가가 몇 차례에 걸쳐 개입을 시도했지만, 모든 경우에는 역효과뿐이었습니다.
개입 능력도 상대적으로 약하고 본래적으로 노예주 계급과 한 무리에 속하는 국가인만큼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예컨대 비정규직 연구자들의 10년 동안의 안정된 연구여건을 보장해주겠다고 <인문한국>(HK)이라는 프로젝트를 3년 전에 시작했지만, 그게 결국 어떻게 됐습니까?
안정된 환경에서 연구해보겠다고 그렇게 취직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길게는 3년, 짧게는 1년 내지 그 이하의 계약으로 연명하면서 '재임용 심사'라는 노예주들의 무기 앞에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국가에서 교육계 업체들에게 '전임 확보율' 등을 따지는 척할 때에, 기업은 그 말을 듣는 척해 '강의전임교수', '연구전임교수' 등 무늬만 전임을 2~3년짜리로 만들었다가 바로 갈아치우곤 하는 것입니다. 교육계 비정규직 노동자를 레몬처럼 짜낼 걸 다 짜내 그저 책임없이 버려버리는 것입니다.
만약 한국은 사회주의화됐다면 과연 이 교육계 비정규직 문제는 어떻게 해결됐을까요? 공급 쪽에서는 박사학위 소지자들의 배출을 그 '지도교수'의 허영심이나 대학 학위 장사 문제가 아닌 계획경제 운영의 문제로 삼아 전국적으로 적절히 조절했을 것입니다. 즉, 박사과정 입학시험을 보다 까다롭게 해서 과정생 수를 줄이더라도 일단 졸업자의 취직을 보장하는 쪽으로 갔을 것입니다. 해외 유학 출발자들도 - 귀국해서 교육계 종사할 의사가 있을 경우에는 - 어떤 국가적 심사를 받아 그 수가 조절됐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수요쪽에서는 - 차후에 어차피 공립화될 운명에 처해 있는 - 사립대학들의 재정은 학생과 교원노조, 국가 등의 합동 운영위원회의 심사를 받아 재단 돈이 우선적으로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 줄이기와 강사들의 처우 개선에 쓰이게 됐을 것이고, 불요불급의 공사나 '국제행사' 등등은 취소됐을 것입니다.
강사들이 당연히 교원의 위치를 얻어, 그 해고는 특별하고 불가피한 상황(해당 강좌의 폐지와 대체 강좌의 설치 불가능함 등등)이라는 사유와 국가적인 대안적 직장 알선 없이 불가능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임교수는 강의와 연구 이외에 행정업무가 있는 만큼 그 업무에 따르는 행정업무 추가사례금을 받았을 것이지만, 근본적으로 강의 및 연구 업무에 따르는 본봉은 일체 교원들에게 동등해지게 됩니다.
시간강사가 논문을 대필해주는 동안에 미국에 가서 골프나 치는 전임관리자가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가고, 강사는 대학의 동등한 구성원이 됩니다... 꿈 같아요? 꿈은 전혀 아닙니다. 민주적 절차 (대학의 운영을 책임지는 학생, 교직원, 국가대표자의 합동운영위원회 등등) 등을 제외하면, 이와 같은 시스템의 상당부분은 이미 동구권 계획경제 국가들에서 실현된 바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술적 발전의 차원에서는 그 결과는 꼭 나쁘지도 않았고요. 그 경험에다가 민주적 요소만을 제대로 결합시키면, 과연 우리가 원하는 '민주적 사회주의' 청사진이 그려지지 않을까요?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고등교육계 비정규직들이 진보신당과 같은 사회주의/사민주의 정당에 대거 입당해 거기에서 가장 왼쪽에서 "사회주의적 변혁"을 외치는 것은 맞았을 것입니다. 사회주의가 아닌 이상, 그들의 위치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방도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하시는 분들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참, 자본주의에 대한 우리들의 통상적 관념은 아무래도 '종교'에 가깝지 않나 싶네요. 믿을 만한 합리적 근거가 전혀 없어도, 그래도 그냥 자본주의를 무조건 믿는 것이죠. 이렇게 믿고 있다가 해방의 가능성들을 다 놓치고 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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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칼럼] “상아탑 노예들”의 해방의 길 (한겨레,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2010-11-07 오후 06:36:46)
며칠 전에 인터넷으로 국내 뉴스를 보다 믿을까 말까 한 적이 있었다. 아무리 봐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던 기사 주제는 “시간강사제도, 33년 만에 사라진다”였다. 사실, 시간강사 없는 대학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 달로 치면 제조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보수로 연명하면서도 전국 대학 교양강좌의 절반 이상, 전공과목의 36% 정도를 그들이 담당하고 있다. 국가로부터의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데도 그 많은 사립대학들의 운영이 가능해지고, 거의 구미권 수준과 비교가 가능한 전임교원의 임금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는, 진지한 “시간강사제도 폐지”라면 고등교육의 “혁명”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물론 뉴스를 자세히 보니 이는 통과된 법이 아니고 통과 과정에서 또 어떤 모습으로 개악될지 모를 대통령 소속 사회통합위원회(사통위)의 “안”일 뿐이었다. 즉, 시간강사제도가 “사라진다”기보다는 수만명의 젊은 지식인들에게 연구를 제대로 할 기회를 빼앗아 그들을 만성적 빈곤, 불안, 우울증, 그리고 극단적 경우에는 자살로 몰아내는 이 제도를 이번 정권이 차후의 “수정 대상”으로 삼았을 뿐이다. 그리고 이 “안”의 내용을 들여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진지한 의미의 “시간강사제도 수정”도 전혀 아니었다. 단, 최악의 조건에 처해진 비정규직인 시간강사들의 처우를 아주 약간 개선시켜주는 표피적 “시혜”와 대학 내 비정규직 고용을 제도화해 앞으로도 계속해서 확대할 뜻이 보였을 뿐이다.
이 “안”에서 세인들의 주목을 받은 대목들은 “시간강사”라는 명칭을 폐지해 대학 비정규직 교원을 “강사”로 통칭하고 그들을 “교원”으로 인정해 그 시급을 현재의 4만여원부터 단계적으로 약 8만원으로 올리는 등 처우 개선을 단행하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교원 지위 부여”와 “시급제 보수 지급”은 서로 충돌하는 데에 있다. “진짜” 교원의 보수는 연봉으로 나오는 것이고, 비정규직 강사들에게는 계속해서 시급제를 적용하겠다는 것은 명칭의 변경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계속 차별하겠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들의 시급 수준을 절대빈곤선에서 상대빈곤선으로 올려준 것은 외형적으로 “시혜”로 보일는지 모르지만, 주당 아홉 시간의 강의담당 시간으로 계산한다면 비정규직 강사는 어차피 전임직 교원의 평균 보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받으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대한 고려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돈보다 어쩌면 더 핵심적인 부분은 “지위”, 즉 신분이다. 사통위의 “안”이 비정규직 교원들에게 “교원지위 부여”를 하는 것처럼 주장되고 있지만, 자세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기존의 학기 단위 계약 관행은 일년 단위 계약 제도로 바꾸겠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계약을 일년으로 한다고 해서, 비정규직 교원으로서 인사권을 쥐고 있는 “실세” 전임 교수의 대필 요구 등을 당당히 거절할 만큼의 지위 안정성이 생긴다고 생각하면 이는 아주 순진한 착각이다. 특별한 상황(불가피한 과목 폐지 등)이 발생하지 않는 한 비정규직 교원이 자동적 근무 지속을 요구할 수 있다는 법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전임직 관리자들의 횡포를 막을 방법은 전혀 없을 것이다. 요구한 대로 대필을 해도 정규직을 얻지 못한 강사들의 자살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상급자가 어떤 사역을 시켜도 이를 묵묵히 받아들여야 하는 “상아탑의 노예들”을, 그 상급자들과 계급적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국가가 진정하게 해방시켜줄 리는 만무하다. 노조 가입과 파업 등 연대투쟁만이 정상적인 연구자 생활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성도 다 빼앗긴 비정규직 교원들에게 좀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비정규직 교원들이 제조업 비정규직 이상으로 분산, 원자화되어 상급자와의 개인적 예속관계에 옭매여 있는 상황에서는 연대투쟁을 하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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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다문화 사회'입니까?" (레디앙, 2010년 10월 31일 (일) 10:02:49 박노자 / 오슬로대)
시대착오적 '단일민족' 주장 중단은 진일보…'통합'보다 '동화' 강요
어제 런던의 SOAS (동방 및 아프리카학 대학)에서 한국의 인종론 및 인종주의에 대한 강연을 했는데, 그 강연의 주제는 주로 개화기 및 일제 초기의 조선에서의 인종론(주로 '황색인종 단합론')이었는데, 청중들과 대화를 하다가 요즘 남한에서 얘기되는 소위 '다문화 관련 정책'의 문제가 화제로 나왔습니다.
청중 중의 한 분은 그래도 단일민족론의 공식적 폐지와 다문화적 인구 구성이라는 현실의 국가적 인정 등을 일종의 진일보로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을 피력하셨는데, 저는 '단일민족'이라는 수사의 국가적 이용의 정지를 환영하면서도 과연 그렇게까지 큰 진일보인가 다소 회의론적으로 대응했습니다. 제 회의론적 입장의 근거를 대략적으로 밝히면 다음과 같습니다.
정치적 수사는 어떻든간에 완벽한 '다문화 사회', 즉 여러 문화들, 또는 그 문화들을 담지하는 종족들이 완벽하게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는 자본주의적 사회란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죠.
모든 소수자들이 다 동등해진다면, 도대체 누구를 3D직종으로 보내고 누구를 착취해서 초과이윤을 짜낼 것인가요? 이윤이 경향적으로 하락해가는 상황에서는, 그러한 초과이윤을 빼낼 수 있는 다소 무권리 내지 피착별 상태에 있는 소수자들의 존재는 매우 귀중하죠. 자본가들에게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오슬로에서 공사장이든 청소 용역회사든 제일 더럽고 어려운 일들을 다 도맡아 하는 폴란드 이민자들을 보세요. 이민자들에 대한 착취를 감시, 적발하고, 국가적으로 처벌도 할 수 있는 사민주의 낙토(?) 노르웨이인데도, 청소 용역회사 같으면, 폴란드계 피고용자 중에서는 정규직들은 18%밖에 되지 못하고 나머지는 각종의 비정규직들입니다. 병원, 유치원, 호텔 등에서 일하는 폴란드 사람 같으면, 정규직들은 절반이 될까 말까 하고요. 그것은 전체적으로 비정규직이 근로인구 중에서 9% 정도만 되는 노르웨이에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민주의 일간지 <다그스블라데트>마저도 폴란드인들이 노르웨이에서 사실상 "B급 노동자"가 됐다고 자인하죠.
아무리 '다문화 정책'을 펴서 폴란드계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민족언어 추가 학습시켜주고 소수의 폴란드계 지식인들을 일간지 고정필자로 기용해주고, 폴란드와의 문화교류를 활성화한다 해도, 결국 차별과 착취의 근본적 현실은 잘 바뀌지는 않죠. 그러나, 노르웨이의 경우에는, 외국노동자들이 착취를 당한다 해도 적어도 '장기적인' 착취가 계획되고, 궁극적으로 '국민'의 신분을 얻어, 그 착취를 어쩌면 면할 수도 있는 '정주'의 가능성은 많이 열려 있습니다.
폴란드 등 유럽연합 가입국 출신들의 정주는 쉽게 가능하고, 이외에도 1년에 2만여 명의 '정주를 전제로 하는 이민'을 받고 있는 것이죠. 정주하고, 영주권 얻고, 7년 뒤에 노르웨이 국적을 얻으면, 그 다음에는 사실상 착취가 거의 정지될 가능성은 큽니다. 노르웨이어 구사능력이 좋고 일단 노르웨이에서 정주해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는 폴란드계 사람이라면, 상당한 이유없이 비정규직으로 고용될 경우에는 얼마든지 고용주의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 위반으로 고발할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특히 이슬람권 출신의 경우에는 차별과 착취는 거의 '세습'될 위험성도 있지만 (이슬람적 이름을 가지고 노르웨이에서 좋은 직업 구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회는 그래도 나름의 대책을 취하고 있기도 하죠. 인종차별방지법도 있고 하니까요. 즉, 소수자에 대한 착취는 여기에서 '새로운 틈입자'에게 집중돼 있고, 그러면서도 그 틈입자에게 '완전한 사회 편입'의 가능성도 어느 정도까지 제시돼 있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본래의 언어나 문화 등을 무조건 이탈하고 망각하라는 노골적 압력까지는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없습니다.
저희 동네 공립도서관에 가도 예컨대 파키스탄의 우르두어나 이란의 파르시어 등의 이민자 언어로 된 책자들이 아주 많아요. 이민자들의 아이를 민족문화의 자장으로 끌어들일 합밥적 방법이 다 있단 이야기죠. 물론 토박이 문화 위주로 돌아가는 노르웨이는 진지한 의미의 '다문화 사회'는 아니지만, 좌우간 사민주의자들이 나름의 포괄적이고 관용적인 사회통합정책을 쓴다고는 볼 수 있죠.
대한민국은 이것마저도 없습니다. 일단 정주를 전제로 하는 노동이민부터 부재하죠.(아주 고급스러운 극소수 업종 제외하고) '고용허가제'라는 3~4년 동안 집중 고도의 착취를 받고 나가라는 식의 단기착취 위주 제도고, 하등의 장기성은 없죠.
고급 인력을 제외하고서 정주가 가능한 것은 결혼이민자들인데, 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통합이 아닌 사실상의 '동화'입니다. 노르웨이처럼 '민족어, 민족문화 보존정책'은 전무하고, 일단(국가로부터의 별다른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아이를 낳아 '한국인'으로 키우고 본인도 한국어부터 한국 '예절', 즉 윗사람 앞에서 무조건 몸을 굽히는 것까지 다 배우라는 압력일 뿐입니다.
다르게 생긴 얼굴들을 관용해주고 '단일민족'에 대한 시대착오적 이야기를 그만둔 것은 진일보라면 진일보지만, 거기까지입니다. '다르게 생긴 사람'으로서의 생존권은 얻어지지만, 베트남인이나 필리핀인으로서 그 언어와 문화를 보존하면서 한국 국민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한민족으로 편입돼야 된다는 것이죠. 즉, 민족과 국민은 여전히 동일합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다문화주의'에요? 차별 받고 살 '다문화 가정' 출신의 저임금 노동자들을 보다 많이 재생산시킬 교묘한 술책일뿐입니다.
그리고 약간 비관적 이야기지만, 정말 국내에서 민중적 성격의 정치세력이 집권하지 않는 한 노르웨이 정도로라도 '다문화적' 환경을 조성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하기에는, 한국 지배자들에게 장기적 사고가 너무 부족하고, 백인이 아닌 모든 타자들에 대한 멸시가 강력하게 박혀 있는 인종주의적 사고가 너무 공고하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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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칼럼] 진보정치 부진의 이유 (한겨레,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2010-10-10 오후 08:54:53)
미국사 연구에서 한 가지 저명한 주제는 “유럽과 달리 왜 미국에서 사회주의 내지 사민주의 정당이 성공하지 못해왔는가”다. 보수주의자들이 미국의 개인주의와 노동운동의 상당부분을 포섭한 민주당의 역할을 칭송하면서 미국에서 사회주의가 전망 없다는 것을 자축하는가 하면, 진보주의자들은 급진좌파에 대한 국가 탄압의 역사나 인종·종족별로 쪼개진 노동계급의 분열을 한탄스럽게 이야기한다. 서로 다른 진단을 내놓지만 사회주의에 대한 친화성의 부족이 미국사의 특징이라는 점에서 의견을 같이한다.
최근 십여년 동안의 경험을 회상해보면 한국에도 비슷한 질문을 던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990년대 후반부터 사민주의적 지향의 진보정당이 합법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만큼 국가 탄압은 완화됐지만, 진보정당의 역사는 주로 쓰라린 패배로 일관했다. 2000년대 초반에 일시적으로 대중적 관심을 일으킨 바 있지만 그 후로는 진보정당들의 지지율이 침체돼 점차 소폭 내림세를 보일 뿐이다. 특히 저소득층이나 젊은층 사이에서 진보정당 지지가 미약하다는 것은 놀랍다. 성장이 둔화하면서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부와 학력의 대물림이 일반화되는 한국에서는 진보정당의 정책비전이야말로 약자들의 이해관계에 안성맞춤이다. 그럼에도 진보정당의 주된 지지자들은 여전히 소수의 고학력자와 대기업 노조 조합원 등이다.
북유럽 복지국가를 선망하는 경향을 보이는 한국인들에게 토종 사민주의자들이 이렇게 호소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진보정치 부진의 사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계급갈등의 심각성을 무시하고 관념적이며 비현실적 민족주의를 내세워온 일부 정파들의 패권주의적 행위도 진보진영의 분열과 진보정치의 부진에 기여했다. 조합화되기 어려운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조직성도 진보정치의 대중적 기반의 구축을 거의 불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회·정치적 이유들과 함께 사회심리적 이유도 지적돼야 한다. 사민주의는 약자들의 상호 신뢰와 연대를 기본 요소로 삼고 있지만, 한국적 풍토에서는 약자들끼리 서로 믿고 손잡아 함께 계급투쟁을 벌이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 이는 한국 사회의 실질적 이데올로기, 즉 한국인들의 “상식”과 맞지 않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실질적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도 자유주의도 아닌 냉소주의와 가족 내지 의사(擬似)가족 단위의 이기주의의 조합이다. 극도로 부패한 관벌·재벌의 지배하에 사는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사회가 거짓과 폭력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보면서 정부나 사회 지도층도, 서로서로도 잘 믿으려 하지 않는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타인을 일단 먼저 믿어볼 수 있다고 답하는 사람은 28%뿐이다. 그러나 늘 타인을 불신·경계해야 하는 폭력적 정글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렇다고 그 폭력에 정면으로 저항하기에는 학교나 군대에서 폭력에 너무나 잘 길들여져 있는 것이다. 저항한다기보다는, 그나마 믿어도 될 것 같은 가족·의사가족(선후배 등)과 튼튼히 뭉쳐서 폭력의 먹이사슬에서 약자가 아닌 강자가 되려고 발버둥친다. 그것이 도덕적 선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대다수는 이 세상에서 정의가 구현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이미 믿지 않는 것 같다.
이처럼 냉소주의가 팽배한, 원자화된 사회에서 신뢰와 연대를 부르짖는 사민주의자들이 민심을 얻으려면, 그 연대 정신의 진지함은 약자들로부터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학교 체벌 등 인권문제부터 철거민 투쟁이나 비정규직 파업까지 약자들이 싸우는 현장마다 당의 명운을 걸고 총력지원하는 것과, 약자들을 평상시 지원할 수 있는 풀뿌리조직을 확충하는 것이 유일한 길일 것이다. 저항의 현장마다 진보정당의 깃발이 휘날리게 되면 결국 언젠간 한국에서도 진보정치가 빛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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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악마화'를 넘어서야 (레디앙, 2010년 10월 01일 (금) 08:28:44 박노자 / 오슬로대)
남북 지배층 본질 유사…한반도 '국제정세 영향력' 결정적
한국에서는 여승무원들이 몇년 파업을 해도 하등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 노르웨이 언론들은, 이 '신기한 왕국' 북한의 소식에 대해 늘 놀라운 궁금증을 보이고 있으며 요즘 당 대표자 대회 관련으로 제게 거의 매일같이 이것 저것 묻습니다. 가끔가다가 그저 웃기는 소리를 들으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며칠 전에 TV-2라는 방송국에서 김정은 차기 CEO의 스위스 학력을 들면서 "독재 국가의 권력자가 왜 하필이면 자기 자녀를 민주국가으로 유학보냈느냐"고 제게 전화로 물었습니다. 저는 어안이 벙벙해 그 자리에서 되물었죠. "이념적 색깔은 어떻든간에 주변부의 과두권력자들 중에서 진심으로 중심부 지향적 성격을 갖지 않는 이들은 과연 많은가요? 북한은 '사회주의'를 간판으로 내걸어 일부 관찰자들을 혼란에 빠뜨리지만, 그 권력 실세들의 실질적인 의식이나 행동양태가 남한의 권력자들과 정말 그렇게까지 다르다고 보시나요?"
이렇게 해서 열변을 토했지만, 기자는 그래도 "독재 국가의 지배자가 자기 왕자를 민주국가에 유학 보내는 게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이고, 왕자가 민주사상을 배워오면 어떻게 될 것이냐"고 계속 우겼어요. 참, 그 '기자님'이 사우디나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북한 정도의 독재국가에서 살면서 그 권력자들의 자녀들의 유학코스를 추적하셨으면 좋았을 뻔했습니다.
오늘은 또 사민주의적 지향의 <닥스아비센>지로부터 전화가 와서 "영어와 독어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진 새로운 3대 최고권력자가 개혁, 개방 노선으로 가지 않겠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부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식민지시대 엘리트들이 그 특권을 계속 누리는, 외세의존성이 절대적인 신생국가에서 독재를 하는 이유는 "영어를 못해 민주주의를 못배워서"가 아니고 그 어떤 다른 방법으로도 다수 '피해대중'(조봉암의 표현)의 정권에 대한 증오심과 해방에의 의지를 억누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극도로 착취적이고 반민주적인 한국 기업 문화도 '영어를 못해서' 만들어졌다기보다는 노동생산성이 미국의 절반이나 될까 말까 하는 등의 기술적 후진성과 해외 시장을 둘러싼 날로 가열해지는 중국 등과의 경쟁에서의 열세 등을 만회하기 위해, 한국기업인들이 손쉬운 '노동불안화, 임금착취'의 길을 택함으로써 형성되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다들 스위스에서 아예 눌러앉아 살아버려도 달라질 것도 하나도 없어요. 그러면, 북한의 귀족층이 왜 꼭 다르다고 봐야 하나요? 한국 기업인들이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양보로 그 단기적 수익률을 위협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듯이, 북한이라는 하나의 커다란 공장/농장의 주인님들도 개혁, 개방을 지나치게 빨리 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려 하지 않죠. 그들의 수장은 중국어와 러시아어 능통자인데다 인터넷광이라고 해서 도대체 뭐가 달라진단 말에요?
제가 남한과 북한을 동렬에 놓고 비교하는 데에 대해서 가끔가다가 학생들은 문제제기를 하죠. 거의 모든 20대들이 매일 인터넷을 즐기는 나라와, 광명망조차도 주로 엘리트들만 이용하는 나라, 다이어트가 사회적 이슈가 되는 나라와 큰 명절 아니면 고기를 제대로 못먹는 나라를 비교해도 되느냐고요.
물론 지금으로서의 양쪽의 소비 수준 등은 이미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달라졌다는 것은 사실이고, 이 정도의 간극을 메꾸려면 적어도 반세기 이상이 걸릴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과연 북쪽의 실패를 무조건 김씨왕족의 탓으로만 돌리고, 남한의 자본주의적 번영(?)을 무조건 재벌가와 독재자들의 '선정' 덕분으로 돌려야 하나요?
사실, 남이든 북이든 한반도 역사 전체에서는 '국제적 계기'란 거의 결정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해온 것을 간과하면 안되는 사실입니다. 물론 저는 일제 관학의 '타율성론' 등을 복원하려 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한반도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그 총인구의 총체적 의지에 의해서 전개되죠.
남한의 민주화도 그랬지만, 어디까지나 대다수 인민들의 유교적 '충성'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북한의 기적과 같은 최근의 생존도 외인이 아닌 내인에 의거한 것이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중국의 한 성만한 한반도에서의 국제적 '계기'들의 중요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적어도 역사 전개의 결정적 시기마다 말씀입니다.
남한이 1980년대 말에 준핵심부로 편입되기 전까지 그 개발의 핵심적 버팀목은 총 약 130억달러에 이른 미국의 원조(1973년까지)와 400억 달러 정도의 아시아개발은행, 일본 정부 및 시중 은행 등의 차관, 미, 일, 서구의 직접 투자와 기술 협력, 그리고 1970년대말 같으면 남한 수출의 70% 이상 사주었던 일본과 미국의 시장 흡수력이었습니다. 냉전적인 미, 일, 서독과의 (다소 종속적)'협력' 틀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은 꿈조차 꿀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기분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신라 통일'에 대한 당나라 천하 통일의 영향과 마찬가지로 그저 역사의 사실일 뿐입니다.
북한의 버팀목은 1980년대 말에 그 무역의 80% 정도를 담당했던 소련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버팀목은 좋았을 때에도 미, 일, 서독이 남한에 퍼주었던 만큼 돈과 기술, 시장 소비력을 북한에 절대 제공해주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소련의 실질적 경제력은 미, 일, 서독의 총체적 경제력의 20% 정도이었어요. 좋았을 때 말이에요. 문제는 그 버팀목인 소련이 20년 전에 망했을 때에 천문학적인 군비의 무게에 허리가 휘었던 북한은 남한과 달리 아직도 '준핵심부'와 아주 사이 멀었다는 것입니다. 유신 말기나 신군부 초기의 남한처럼 그저 종속적인 제3세계 국가이었을 뿐이죠('주체'에 대한 궤변은 현실과 무관한 것이고요).
거기에다 중국과 달리 규모의 경제와 같은 장점도 없고, 1980년대 등소평 식 군축 정책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은 '최전선 국가'이었던 것이고요. 결과는 1990년 이후의 처참한 반(半)몰락이었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에는 남북한 비교를 정말 하기가 어려운 것이죠. 그러나 예컨대 양쪽의 버팀목들이 그나마 팽팽히 맞섰던 30년 전 같았으면 양쪽의 동등한 비교가 가능했다는 점도 기억해주어야 합니다.
국제정세에 따라 한반도 정치, 경제가 당장 춤추는 게 우리들의 비극이지, 버팀목을 잃은 한 쪽을 악마화하거나 무시할 일은 절대 아닙니다. 1990년대의 러시아처럼 미국이 국민총생산의 50% 정도 줄어버리면, 남한 경제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물론 북한의 세습 독재를 - 남한 재벌들의 세습 독재들과 마찬가지로 - 좋아할 일은 절대 없지만, 북한 주민들의 의식주 해결의 어려움을 그들의 실정만으로 돌려 그들을 악마화하는 것은 사학자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실정도 당연히 있었지만 '국제 계기'는 일차적으로 중요한 요인이었을 것 같고, 그 국제계기의 영향으로부터 남한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북한의 지배 체제는 남한보다 훨씬 전근대적이고 억압적이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는 북한의 지배자든 남한의 지배자든 똑같은 민중의 착취자일 뿐이지 북한측이 유독 악질적이고 악마적이라고 볼 수 없을 듯합니다. 마카오에서의 김정남의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안보셨어요? 딱보면 외국에서 비자금 관리하면서 도박이나 일삼는 남한의 부유층과 거의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같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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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2010년대 새로운 화두된다" (레디앙, 2010년 09월 25일 (토) 22:45:04 박노자 / 오슬로대)
[칼럼] 반동의 시대여, 안녕…2008년 세계공황 판 바꿔
'거리'라는 게 사학자에게 아주 귀중합니다. 그런데 제가 한 번 이 관습을 깨고 우리에게 아주 가까운 시대, 즉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사상사적으로 사고해볼까 합니다. 그러한 시도를 또 해봐야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를 보다 정밀하게 분석해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좌우'라는 축을 사용하자면, 지난 20년은 말그대로 하나의 '반동의 시대'였습니다. 해방 직후와 6.25 전쟁 때에 식민지 시대에 자라난 토착적 좌파가 남한에서도 (사실, 곧 북한에서도) 철저하게 학살된 이후로는 한국에서 '좌파'가 1980년대 중반쯤에 재정립될 때까지 약 30년이나 소요됐습니다. 즉, 이념계의 중심은 1953~1985년간 아주 서서히 "왼쪽"으로 옮겨가고 있었던 것이죠.
1950년대의 화두가 주로 '민주주의' 정도였다면, 1960년대는 굴욕 외교 반대 속에서 '식민지 유산 청산' 등 '민족적' 문제들이 첨가됐으며, 1970년의 전태일 의거 이후에 '노동' 문제가 재발견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한국에서 다시 한번 '사회주의'가 말해질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런데 1990년대 초반의 일련의 사태들이 이념계의 중심축을 다시 한번 아주 급진적으로 '오른쪽'으로 이동시켜 놓았습니다. 보통 형해화된 소련, 동구권, 북한의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의 몰락 내지 위기를 주원인으로 거론하지만, 꼭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한국의 세게체제에서의 위치가 급상승됨에 따라 남성, 고숙련,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이 현저히 상승되는 등 노동계급의 일부가 체제내화되어 노조관료의 일각이 보수화된 것도, 1987년 이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치 체제가 구 운동권의 지도층의 상당 부분을 변절시키면서 성공적으로 흡수, 활용한 것도 매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부유해지고 복합화된 남한 사회의 포섭력, 흡수력이 강화돼 반체제적 움직임들이 탄력을 잃은 셈입니다. 그 과정에서는 사상계의 중심축은 우향우를 거듭했습니다.
'우향우'의 구체적인 방식은, 특정 지식인 그룹의 체제 내 포섭 방식에 따라 결정되어졌습니다. 부르주아 정당에 흡수된 구 운동권의 주도층 다수는, 대개 1950~1970년대 식의 '민주주의' 논리를 부활시켜 거기에다 '시민' 등 유행어 몇 개를 첨가시켜 '시민민주주의' 발전을 외쳐대기 시작했습니다.
땅 부자 1%가 전국 부동산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5대 재벌의 총매출액이 이미 1994년에 국민총생산의 약 54%를 차지하는 나라, 즉 극소수가 절대 다수를 경제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초과독점의 나라에서 과연 '민주주의' 자체가 무슨 효력이 있겠느냐는 것은 아주 기초적인 질문일 것입니다. 박물관이나 대학부터 건설사와 이동통신업체까지 모든 것을 다 하나의 세습독재형 '초과 재벌'이 소유, 지배한다면, 청와대가 아무리 시민 운동가들의 완전한 차지가 되어도 결국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 사회 법칙상) 재벌의 의지가 당연히 이길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르주아 정치판에 흡수된 구 운동권의 '작은 수령'은 이런 당연한 질문을 자기 자신들에게 던져본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게, 천문학적 자금이 사회의 판도를 결정하는 곳에서 일개 신화에 불과하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본인들이 '벌거벗은 임금' 신세가 되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시절의 '개혁' 희비극의 씨앗은, 이렇게 1990년대 초반부터 천천히 자라고 있었습니다.
1980년대의 '지도자'급은 그 고귀한 몸둥이들을 주요 정당에 비싸게 팔았지만, 위치가 그리 높지 않았던 '이념가' 등은 대학 교직 진출에 성공하여 재벌 사회의 '지식 관리자'가 되지 못하는 이상 자신의 두뇌의 소출을 대중 교양서 출판 시장에 내놓아야 했습니다. 그들의 장사 방식을 아주 거칠게 이분하자면 '수입상'과 '고물상'으로 나누어 분석해볼 수 있습니다. 구주 언어에 밝거나 약간 '개화파적' 기질의 수입상들은 주로 '포스트모던' 철학과 그 파생물들의 국내 수입 및 판매에 주력했습니다.
'근대성의 내재된 규율성의 비판' 정도면, 한 때에 1980년대의 '독점자본 반대'만큼이나 아찔하게 느껴졌습니다. 깊이 생각해보면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죠. '근대성의 내재된 규율성'을 비판하시는 선각자 분들은 기차를 안타나요? 원시 사회의 코끼리 집단 사냥부터 오늘날 기술사회까지 생산공정은 일정한 정도의 규율성을 늘 요구해왔습니다. 일정 수준의 규율성이 없으면 사회적 생존이 불가능하죠. 물론 한국과 같은 최악의 병영사회에서는 규율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정말 필요했습니다. 한국 지배자들이 필요불가결의 규율성을 넘어 전 사회를 맹종의 피라미드로 만들었으니까요.
그러나 교묘하게도 많은 경우에는 '근대 비판자'들은 한국 자본주의적 근대의 최악의 규율주의적 산물인 군대를 주 타깃으로 삼는 양심적 병영거부운동 등에 다소 무관심했습니다. 군대 같은 재벌 독재의 유지에 긴요한 기관과 맞짱뜨는 것은, 다소 위험한 일이거둔요.
'수입상'들이 자본도, 국가도 빠진 근대 비판에 몰두하는 사이에, '고물상'들은 국가권력의 무한한 강화를 꿈꾸었다가 실패한 정조 같은 반(半)독재자적 국왕들을 '계몽군주'로 만들거나, 외과가 거의 발전되지 않아 간단한 수술도 하지 못했던 전통 한의학을 '근대 의료에 대한 대안'으로 내세우는 등 '전통' 장사에 열을 올렸습니다.
웃겨도 참 웃기는 일은, 지금 남한 인구 사이에 퇴계나 율곡, 다산의 가문들이 소유했던 노비들의 자손들이 그 세 명 사상가의 자손보다 더 많이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퇴계, 율곡, 다산'을 이야기할 때 그 노비들의 참상이 아닌 그 세 명의 양반 노비주의 '위대한 담론'들을 먼저 떠올리는 것입니다. 탈계급화된 의식이, 계급적 존재를 배반하는 장인데, 아무도 신경 안 쓰는 것 같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개혁', '시민사회', '근대성 비판', '전통'의 판매가 성공적으로 잘 이루어져 '사회주의'와 같은 거북스러운 단어들은 한 때에 거의 다수의 기억을 벗어났지만, 2008년에 시작된 세계 공황은 이 판을 이제 곧 바꿀 것입니다.
'개혁'을 백 번 외쳐도 사회주의적 방법으로 부자들의 소득의 상당 부분을 부유세를 통해 몰수해 공공부문 일자리를 만들거나, 대기업들에게 강제적으로 노동시간 단축과 정규직 증원을 명령하지 않는 이상 계속 심해져가는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근대성 비판은 이론적으로 다 재미있지만, 지금대로 간다면, 남미화돼가는 남한의 인구의 상당 부분은 대형병원이나 장거리 비행기와 같은 근대 산물들을 접근하기가 많이 어려워질 것입니다. 근대성 운운과 무관하게 돈이 없어서요. 그리고 아무리 '진경시대'가 이태리 르네상스를 백배 초월했다고 과감하게 주장해도, 가난해지는 20~30대들이 어차피 예전만큼 교양서적을 사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곧 맞이해야 할 시대는 다수의 빈곤화의 시대, 중산층이 소멸돼가는 사회에서의 극적인 갈등들의 심화의 시대, 부동산 버블의 붕괴와 성장 침체의 시대, 그리고 전세계적 자연재해와 자원전쟁, 각종 패권 갈등의 열전화 시대일 것입니다.
이 시대의 근본 문제는, '웰빙'도 '근대성 비판'도 아닌 단순한 다수의 집단 생존일 것이고, 그 생존의 방책은 사회가 전 사회의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이윤 추구가 없는 집산적 체제, 즉 사회주의일 것입니다. 물론 스탈린주의와 다른 민주적 사회주의 말씀입니다. 예상컨대, 바로 자본주의의 종언과 '자본주의 그 다음'의 문제는 2010년대의 새로운 화두로 돌아올 것입니다. 반동의 시대여, 안녕히 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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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적, 객관적 학자는 없다" (레디앙, 2010년 09월 19일 (일) 09:23:57 박노자 / 오슬로대)
러시아 학계의 대한반도 인식 변화, 원인을 따져보면
어제(17일) 거의 죽을 만큼 피곤했는데, 좀 수확이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운좋게 한양대에서 개최됐던 한-러 수교 20주년 학회에서 참석하게 됐는데, 각종의 재미난 발표를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는 제게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저의 옛날 스승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한 상트페테르부르그대 교수 쿠르바노프의 이야기였습니다.
남북한에 대한 러시아 학계의 인식 변화 추이를 추적한 발표문이었는데, 거기에서 주목을 끌었던 부분은 1990~91년간의 소련 몰락, 북한 빈곤화의 시초, 남한과의 수교와 남한으로부터의 원고료나 강의료 등 자금 유입을 계기로 생긴 '180도 인식 변화'였습니다.
이재오 등의 사례가 증명하듯이 그들 중에서도 '대세에 따른 변신'의 천재들은 러시아 학계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북한의 사회주의 경제 연구자이었다가 1991년 이후에 한 때에 '북한몰락론'의 대표자가 된 톨로라야 박사, 북-소 무역사의 권위자로서 북한과의 '친선'을 쌓았다가 1993년에 낸 북-소 무역사 관련 연구서적에서 북한의 경제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오류'로 정의해버린 바자노바 박사 등등의 사례도 있습니다. 선배들의 '소신 변천사'를 담담하게 나열해주는 쿠르바노프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낯짝이 그냥 부끄러움으로 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칼 만하임의 이야기대로 우리는 대개 학자 등의 지식인들을 '자율적인'(free-wheeling) 존재로 인식하려 하고, '학자의 의견'이라면 뭔가가 중립적이고 객관성에 근접하려는 것으로 보려 하지만, 실제 예컨대 세계의 소위 '지역 연구'를 보면 연구 동향과 해당 국가의 대외 학자 지원 능력의 관계를 당장에 눈치챌 수 있습니다. 예컨대는 비록 일부의 용감한 비주류 비평가들이 그 주장을 미국에서도 하긴 하지만 (http://www.counterpunch.org/christison11082003.html), 팔레스타인인 등 비유대계들에게 이스라엘의 국토의 90% 가량 되는 국유지를 절대 팔아주지 않고 이스라엘 국가의 '유대인적 성격'(Jewish character)를 지키려는 시온주의가 사실 인종주의의 일종이라는 점을 자세히 분석하는 학자를 특히 미국의 유대학 (Jewish Studies) 학계에서는 찾아보기가 아주 힘듭니다.
이미 정년 보장을 받아 쫓겨날 위험이 없는 교수라 하더라도 연구비를 주로 시온주의에 친화적인 유대 자본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재단이나 이스라엘쪽으로부터 받는 만큼 비판을 많이들 자제하죠. '부드러운 비판' 정도는 몰라도, 시온주의 그 자체를 부정하려는 학자적 자세를 '스폰서'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캐나다의 한국학 학계는 하도 넓고 또 그 일부가 운동권 등의 경험을 한 한반도 출신들이기에 민중운동 연구나 노동계급운동사 연구, 그렇지 않으면 남한 군사주의 연구나 현재 비정규직 조합화 시도들의 연구를 하는 몇 명의 사람들도 찾으려면 찾을 수 있습니다. 가끔 가다 예컨대 최근 브리티쉬 컬럼비아대의 전지혜 교수님이 내신 '주변부에서의 조직화'처럼 미국과 남한의 비정규직(특히 환경 미화원)의 조합화와 상징 정치를 아주 훌륭하게 비교, 분석하는 역작들도 발견됩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진정으로 아픈 문제들 - 군 폭력부터 비정규직의 차별까지 - 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보면 상당수는 학제 소속은 '한국학'이라기보다는 사회학 등 일반 사회과학입니다. 한국으로부터의 지원금이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한국학의 경우에는 비판하더라도 스폰서들을 지나치게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들 합니다.
그러면 외국인 '주류' 학자들의 스폰서가 될 위치에 있지 않은 북한에 대한 연구 저서의 말투는 보통 어떤가요? '어버이 같은 수령의 사랑스러운 보호하에서: 북한 일상생활'과 같은 연구서적의 주제에서 느끼시겠듯이 북한을 '비꼬는' 것은 '미덕'으로 쳐주고, 북한 이데올로기의 일부분일 뿐인 인종론적 요소를 마치 그 이데올로기의 전체인 것처럼 배치전환시키고 북한인들을 '인종주의자', '파시스트'로 지칭하는 유사 연구서적은 학문의 대우를 받는 것입니다.
비백인에 대한 일상적 차별, 모독, 구타는 외국인의 수가 매우 적은 북한보다 남한에서 백배 심한데도 (요즘의 한 사례), 남한의 태심한 인종주의를 제대로 분석하는 연구 논문을 저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스포서십'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북한에 비해 남한은 많은 면에서 비교 못할 정도로 구미권 외국인에게 '접근성'이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도, 그 '성장의 기적'에 압도감을 느끼는 것도 작용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만약 북한의 노동당이 한국국제교류재단만큼의 재원을 손쉽게 운영할 수 있었다면 과연 국제 '한국학' 학계의 사정은 약간 바뀌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찢어지게 가난하고 국제적으로 고립돼 있는 동북아 최빈국한테는 기본적으로 '해외 연구자'들에게 존중을 받을 자격은 없다는 것이죠.
이 세계에서는 존중을 '받는' 것이 아니거든요. '사는' 것입니다. 북한이 악질 독재국가니 당연히 존중 받을 자격은 없다고 제게 반박하실 분이 계시리라 예상합니다. 네, 악질독재 국가는 맞습니다. 절대 다수의 국내 기업들이 '악질적 부당노동행위자'인 것처럼 그것도 사실상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유형이 비슷한 중국 공산당의 독재에 대한 구미권 연구자들의 태도는 과연 어떤가요? 저도 교수할 때에 많이 이용하는 리벨탈 교수의 역작 『중국 통치하기』를 꼭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중국이 고속 성장을 성취하면서도 예측가능한 미래에 당연히 독재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는, 등소평을 '천재'로 명명하는 리벨탈 교수는, 과연 중국 공산당에 대해 '불경한' 표현을 한 번이라도 썼나요? 답은 뻔하거든요.
악질 독재라 해도 부유해지고 강해지기만 하면 그에 대한 '민주국가' 출신 외국 학자들의 태도는 당장 확 달라집니다. 단, 북한의 '강성대국' 드라이브가 성공될 리가 만무하니 아마도 끝까지 부유한 나라들의 학자들에게 웃음거리, 욕해도 무방한 대상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자율적 학자', '객관적 학자'는 신화입니다. 소수의 양심파들이야 늘 있지만, 사회, 인문과학 분야의 대다수의 학자들의 판단은 본인의 성장과정으로 인한 편견부터 연구비 지원 기관의 묵언의 요구까지 수많은 외부적 요인에 의해 절대적으로 좌우됩니다. 외형적으로 '민주화'된 나라들의 학자들이 꼭 지배계급의 '입'만은 아니지만, 지배계급의 편견이나 요구로부터는 전혀 자유롭지도 않으며, 대다수의 경우에는 자유로워지려 하지도 않습니다. 쿠르바노프 교수가 나열한 소련 한국학자들의 '변천사'는 그 극단성으로서는 다소 돋보이지만, 그 외 다수 학자들도 정도 차이에 불과합니다.
정치인도 성직자도 절대 믿을 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세상이 다 알지만, 학자도 크게 봐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어제 학회에서 얻은 중요한 가르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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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신화다" (레디앙,  2010년 09월 12일 (일) 11:06:21 박노자 / 오슬로대)
[칼럼] 외무부의 귀족성과 특채 소동을 지켜보며
외무부의 '귀족성'이야 오늘 어제의 일도 아니니, 사실 유서가 깊고 잘 바뀌지 않는 분위기이겠지요. 지난 20년 동안은 중산층까지도 출입국이라는 권리를 누려왔지만, 1980년대 말까지는 자유로이 외국에 왕래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귀족 특권'에 가까웠습니다.
귀족이 아닌 몸으로는 대한민국이라는 커다란 병영/군사기지를 빠져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란 공부를 아주 잘해서 관비유학생이 된 소수의 모범생, 외국인과의 결혼으로 한국 사회에서 질시, 모멸 당하는 입장이 된 극소수의 여성, 그리고 월남이나 중동 건설 현장에 집단으로 가는 노동자 정도이었습니다.건설 노동자의 경우에는 사실 대한민국이라는 큰 군사기지에서 사우디 건설 현장과 같은 작은 병영으로 갔다오는 셈이었지만요.
어쨌든 이러한 병영사회에서는 늘 '휴가'를 밖으로 갔다올 수 있는 외무부의 위치는 특별했으며 거기에 운좋게 들어온 상당수 기득권자들이 당연히(?) 그 위치를 세습화하려 애쓰곤 했죠. 단,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보통 일반의 시선이 많이 차단됐을 뿐이지 성골, 진골, 육두품들이 다시 생긴 건 꼭 오늘 어제의 일은 절대 아닙니다. 그저 대한민국의 체질적 특성일 뿐입니다.
그런데 외무부와 같은 '특수' 부서에 대해서는 일반의 시선이 사실상 거의 차단돼 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의미를 가지기도 합니다. 특채의 문제는 그렇다 치고는, 외무 내지 정보 계통의 관계자들이 실제로 어떤 작업을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설정하고 관리하는 세계의 다른 정부들과의 '관계'의 상태는 실제로는 어느 정도인지 웬만하면 내부 관계자나 정부 당로자, 소수 관변 학자 아닌 이상 아무도 제대로 모른다는 것입니다.
'국민'이란 외무부나 국정원을 먹여주는 '세금'을 내지만, 그 세금이 무엇으로 어떻게 쓰이고 그 효과는 어떤지는, 그 아무도 납세자들에게 보고하려 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경우에 해당됩니다. 대외 관게에서 '난리'가 나거나, 미국 외교 문서가 30여년만에 비밀해제돼 일부 공개되거나 이런 경우입니다(대한민국의 외교문서는 그처럼 일정기간 지나서 자동적으로 공람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지난 번에 리비아와의 관계에서 '불'이 나 신성불가침의 한국 기업의 이해관계가 문제됐을 때에 한국 외교, 정보 관계자들이 사실상 이스라엘과 미국을 위해서 행동해왔다는 주장이 발표됐습니다.
계속 가난해지는 자영업자나 비정규직 노동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한국 백성이 내는 세금을 받아 먹는 리비아 주재 공무원들이 타국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느라 자국의 이해관계를 위험에 노출시켰다면 이는 배임행위에 가깝겠지만, 그 때는 제 기억으로는 그 누구도 납세자들에게 그 어떤 납득할 만한 설명도 하지 않았죠. 양민들이 입역(入役)하고 세미(稅米)를 납부하면 그만이지 국정을 논할 자격은 어찌 있겠습니까? 좌우간, 그러한 난리가 나야 우리는 진실의 단편이라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아주, 아주 부분적으로요.
인터넷으로는 만가지 정보가 만인의 공유가 됐다고 하지만, 납세자와 외무의 괴리는 그렇다고 절대 없어지지 않습니다. 알짜의 의미 있는 정보는 인터넷에서 공개될 리는 만무하고, 인터넷에서 공개되는 정보를 다 모아봐야 대한민국 국제 관계의 실질적인 상태의 윤곽만을 아주 희미하게 그려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러시아 관변 매체 (www.vz.ruwww.expert.ru 등 류의 관계, 재계 매체라든가 극동연구소 학술지 등등)를 정독하고 외무 관련자들의 개인 블로그까지 읽어도, 이명박 정권의 장기성에 의문을 품고 근본적으로 이 정권을 불신하면서 '다음'을 기다린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지만, 역시 거기까지뿐입니다.
그 다음 이야기는, 행여나 30~40년 후에 공개되거나, 아예 묻혀질 가능성은 큽니다. 그러니까 외교란 교회나 사찰의 내부 생활만큼이나 '외부'로부터 철저하게 차단돼 있는 것이죠. 교회나 사찰은 좋아하는 사람만 먹여살리지만, 외교 관련자들은 우리 모두가 다 같이 먹여주어야 한다는 점만은 차이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민주 국가'에서 산다고 확신하지만, 실제로는 국가의 대외정책에 대한 영향력은 논할 것도 없고 그 정책에 대한 정보 접근권조차도 완전히 박탈 당하는 것입니다. 북한이나 중국을 '독재'라고 많이들 깔보지만, 사실 외무/외교에 대한 일반인의 정보력 내지 영향력은 대한민국이나 북, 중, 러 등 대륙 국가들이나 그다지 큰 차이는 없습니다. 미국이나 노르웨이라고 해서 실제로 또한 별로 차이 없을 것이고요. 노르웨이 외교 관련자들이 희대의 독재 국가 투르크메니스탄에 석유 및 가스 개발 문제로 최근 접근했을 때에 일반 노르웨이인들의 여론에 관심이라도 기울였나요?
뭐, 노르웨이 외무부가 누구를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일반인들이 그리 잘 아는 것 같지도 않고 알 위치에도 있지는 않죠. 이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엄연한 현실입니다. '민주'라고 하지만, '민'이 '주인'이 된 적도 없고 될 일도 없습니다. 주인들이 실제로 뭘 어떻게 하는지도 알 자격도 없고요. 그 다음 번에 그 어떤 다음의 트로츠키가 혁명의 '외무 인민위원'이 되어서 여태까지의 모든 비밀조약들을 다 모조리 발표할 때까지요. 단, 그러한 일이 세계사에서 너무나 드물게 일어나는 것만은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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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권리도 인권이다! (한겨레 훅,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2010.09.12)
성장 제일주의의 유산이겠지만, 박정희에 비판적인 한국 정치인까지도 박정희만큼이나 외화로 표시되는 “우리들의 성장 통계”를 참 좋아한다. 1990년대에 “국민소득 1만달러”는 주류의 자랑거리였으며, 2000년대의 자유주의 정권은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어간다고 자화자찬했다. 현재 대통령이 “머지않아 3만달러, 4만달러 시대가 온다”는 것을 확약하는 걸 보니, 자유주의 온건 우파든 극우파든 외국돈으로 표시된 숫자에 대한 사랑은 마찬가지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자영업 하거나 중소기업에 다니는 다수 한국인들의 주머니 사정에 그다지 큰 직접적 영향을 주지도 않는 소수 재벌들의 수출 성과에 좌우되는 외화 표시 1인당 국민소득의 통계는 과연 한국 사회의 진일보를 제대로 반영하는가? 필자는, 외형적 성장보다는 사회 상식의 변화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진보의 가장 확실한 표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의미에서도 한국 사회가 지난 수십년 동안 커다란 긍정적 변화를 보였다는 것도 필자가 스스로 목도한 분명한 사실이다.
필자가 한국 사회를 최초로 체험한 19년 전에는, 절대다수의 한국인에게는 동성애는 “변태”였으며, 군에서 살인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감옥에 가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광신도”나 “또라이”에 불과했다. 오늘날에 와서는 동성결혼이 가능해진 것도 아니고 무기를 들지 않을 사람들을 위한 대체 복무 제도가 신설된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시민사회에서는 성소수자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상식적으로 토론의 대상이 돼야 될 “의제”의 일부가 된 것이다. 즉, 국가는 구각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지만, 적어도 사회의 상식이 점차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여학생들을 성희롱하는 저질 교수들을, 그때나 지금이나 “상아탑”이어야 할 대학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1993~1998년간 서울대 우 조교의 법정 투쟁 등 성희롱 관련 사건들을 경험한 오늘날 사회에서 성희롱이 범죄라는 상식이라도 점차 굳어져 가고 있다. 인권 상식이 발전돼 가는 것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진정한 의미의 진보이자 희망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오늘날 우리 인권 상식은 충분한가? 전혀 그렇지 않으며, 우리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 인권이 부단히 유린된다는 것은 필자의 생각이다. 요즘 들어 학교 체벌과 같은 유형의 폭력은 그나마 비판적 시선을 받기에 이르렀지만, 다수가 일상적으로 당하면서도 눈치채지 못하는 가장 무서운 무형의 폭력은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이다. 이를 “우리 경제 사정으로서는 불가피하다”고 강변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그렇다면 한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낮은 폴란드나 헝가리, 멕시코에서마저도 노동자들이 연간 2316시간이나 일하는 한국 노동자보다 400~500시간이나 덜 일한다는 것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보수진영에서 “고비용 저효율 구조”라고 엄살을 떨지만, 국제 통계를 보면 한국 근로자의 소득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63%에 불과하다. 비정규직이 다수를 점하는 한국 노동자들이 살인적인 노동을 견디면서도 보수다운 보수를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보수진영에서 “강성 노조” 타령을 일삼지만, 대다수 노동자들이 이렇게 당하면서 살게 된 이유는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 잔업시간 단축을 요구할 만한 노조가 없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더 정확할 것이다. 저들이 하루마다 파김치가 되는 몸을 쉬게 할 시간마저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최악의 인권 침해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억울한 일이다.
보수진영은 유독 북한을 공격할 때에 인권을 들먹이지만, 평일에 자녀와의 대화라도 나눌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는 한국 노동자에게는 인권이 있는가? 초(超)인간적 희생을 요구하는 장시간 노동이 바로 구타나 폭언만큼의 인권 유린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돼야 좀더 나은 사회로 진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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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 절차 거쳐 살인하는 지옥 사회" (레디앙, 2010년 09월 04일 (토) 16:58:10 박노자 / 오슬로대)
북유럽 화제 영화 '아르마딜로'…덴마크 젊은이들의 '탈레반' 사냥
국내에서는 당연히(?) 별 관심 대상이 안되었겠지만, 여기 북구의 영화계에서 요즘 제일 화제작은 덴마크 기록영화 '아르마딜로'입니다.(http://www.armadillothemovie.com/armadillo/TRAILER.html)
평화적이다 싶은 북구 국가들이 일제히 아프간 침략의 현장에 동원돼 있어서 그런 것이겠지요. 아프간 남부에 있는 덴마크 군대 기지의 이름을 본딴 <아르마딜로>는, 바로 이 아프간 침략을 문제화시킨 것이니까요.
영화의 줄거리는 아주 단순해요. 그저 덴마크 침략군의 일상을 추적하는 것이죠. 활기차고 생명력 넘치고, 또 바보로 보이지 않는, 복지국가에서 좋은 걸 먹고 마시고 많이 놀고 예쁘게 큰 젊은이는, 동물 이하로 생각하는 '탈레반 놈'을 잘 사냥해서 사냥 당한 그 탈레반의 시신 옆에서 기분좋게 떠드는 것입니다. 그에게 탈레반은 인간도 동물도 아닙니다. 그저 이성적 인간들이 벌이고 있는 목적에 적합한 행동, 즉 '저항세력 소탕'의 사물화된 대상물일 뿐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해서 731부대의 대원이나 아우슈비츠 가스실의 보조원, 그리고 아프간에서 탈레반을 사냥하는 침략군의 일원이 되나요? 별 게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시이 시로 장군(731부대 부대장)의 부하들도, 루돌프 호스나 아르투르 리벤헨셀의 부하들도 특별히 '악마'로 큰 것이 아니었죠.
하이쿠를 짓고, 그림을 그리고, 모차르트 음악을 즐기고, 이런 '정상적' 생활을 해온 사람들은, 어느 순간 순량한 국민답게 어버이 같으신 천황님이나 히틀러 수령님의 명령을 받들고 조국과 인류의 공동선, 악에 대한 선의 승리, 그리고 본인들의 지속적 안락한 삶을 위해 본인들에게 '비인간'이라고 설명되어졌던 대상물들을 산 채로 칼로 자르거나 독가스로 질식사시키기 시작했었죠. 파리나 모기를 죽이듯이.
순량한 국민에게 "빨갱이는 파리 이하다", "유대인은 모기보다 더 해롭다"고 권위있게 설명하기만 하면, 그들이 그걸 믿고 아주 아주 이성적으로 '해충 박멸 작전'을 벌이죠. 인간이란 이성적인 동물이잖아요? 집단생활에 길들여지고, 그 집단생활 속에서 권위를 따르고 집단의 이성에 복종하는 데에 익숙해진, 그런 동물이잖아요?
아프간에 간 덴마크 군인들도 마찬가지죠. 어릴 때부터 컴퓨터게임하면서 '살인'도 하나의 재미일 수 있다는 생각에 길들여지고, 우파 신문에서 "이슬람 광신도들이 세계 만악의 근원"이라는 걸 배우면서 '탈레반'이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에 익숙해지고, 교수, 목사, 상사로부터 "탈레반을 살충하면 아프간이 우리 덴마크처럼 평화로운 민주사회가 될 것"이라는 권위있는 말을 들은, 그들은, 바로 '살충작전'에 나서죠. 아주 즐겁고 유쾌하게, 즐기면서 사는 진정한 덴마크 식으로...
옛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본주의를 '잉여가치 착취의 과정'으로 설명했는데, 이 이야기는 진리의 반쪽일 뿐입니다.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잉여가치가 자본가에 의해서 수취되는 것도 맞지만, 컴퓨터게임부터 신문까지 사회의 이미지/정보유통 시스템에 노출돼 있는, 그리고 그 어떤 다른 사회도 상상하지 못하는 노동자가 대개의 경우에는 자본가의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즉, 자본주의는 동시에 피착취자들의 순치과정이기도 하는 것이고, '정상적' 피착취자는 착취자의 세계관을 대체로 공유하고, 언제든지 착취자의 위치를 점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입니다. 노동자 출신의 노무현이나 이명박이 악랄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실행자가 되는 게 대한민국만의 사정인 줄 아세요?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고, 노동자 출신이 아니더라도 중산층 하류의 출신인 레이건 같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를 밀고 나가는 경우를 얼마든지 외국에서도 찾을 수 있죠. 특히 신흥자본주의 국가들의, 푸틴과 같은 보스들을 보면 하층 노동자 출신이라는 게 당장에 표시가 나죠. 쓰는 언어나 제스처 때문에.
그렇다고 그 정책은 노동계급에 유리하나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자본주의의 힘이라는 게 있다면, 이처럼 전 사회를 그 이데올로기로 '무장'시키고 각자의 마음에 그 이데올로기를 각인시키는 게 바로 그 힘입니다. 그러니까 '정상적' 덴마크 젊은이가 아프간에 가서 '인간 사냥꾼'이 되는 게 '정상'일 뿐이죠.
그러면, 근대적 인간이 '정상적' 절차를 거쳐 살인을 기반으로 삼는 이 지옥적 사회의 '정상적' 구성원이 되지 않는 방법이란 있나요? 진부한 답일 수는 있지만 집단적 대(對)사회적 투쟁, 즉 계급 투쟁과 관련된 경험이 아니라면 아주 어려울 수 있는 것입니다. 투쟁 과정에서는 이 사회의 실체를 확인하고, 인간적인 연대를 경험하고, 선한 목적을 위해서 개인적 희생을 감내해본, 그런 사람이라면, 적어도 생각없이 국가와 자본을 위한 '사냥꾼'이 될 확률이 적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일시적 투쟁 참여도 '사냥꾼'으로서의 거듭나기(?)를 완전히 예방하지도 못해요. 1968년의 신화, 학생 혁명의 화신인 다니엘 콘벤디트가 유고 공습을 열성적으로 환영하고 아프간 침략을 주저없이 긍정하는 녹색당의 보수적 정치꾼이 된 걸 못보셨나요?(http://en.wikipedia.org/wiki/Daniel_Cohn-Bendit)
단순히 일시적 참여를 했을 뿐만 아니고, 이론적, 알음알이의 차원에서도 자본주의가 왜 아우슈비츠와 아프간 침략을 낳을 수밖에 없는지, 자본주의의 '정상적' 시민이 왜 잠재적으로 살인자일 수밖에 없는지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 즉 사회과학을 제대로 익힌 사람이라면 학생 시절 단지 한 때에 재미 삼아 운동해 본 사람에 비해 자본주의의 각종 유혹들을 경계할 만한 힘을 더 가질 걸요.
그리고 알음알이 차원뿐만 아니고 감성적 차원에서까지도 돈을 벌고 쓰는 영혼없는 생산/소비의 순환에 대해 매우 강력한 반감을 가지는 사람이 아니라면, 역시 '정상적 국민'의 원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은 큽니다. 투쟁 경험, 이론 습득, 감성적 반자본주의적 성향, 이 '삼위일체'라면 이 마왕의 예토에서도 자신의 영혼을 헐값에 팔지 않고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죠. 사실,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옛날에 <강철이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라는 공상주의적 성장 소설이 구동구권에서 아주 유행했는데, 공산주의자의 인격 형성 과정, 공부 과정, 투쟁 과정을 그리는 이 소설을, 제가 최근에 다시 읽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자기 자신을 스스로 인간으로 만든 사람들이 한 사회의 중심축이 될 수 있다면, 우리들의 '지옥 탈출'이 가능할는지도 모르죠.
그런데 그 소설의 주인공 코르차긴 정도의 집념과 오기, 이론과 실천의 결합이 아니라면, 인간으로서의 諸惡莫作, 諸善奉行(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라. 법구경 구절-편집자)의 삶을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이 나락에서 결국 자기도 모르게 한 명의 야차나 아수라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차원에서는, 20세기 마지막의 진정한 종교, 공산주의의 경험을 좀 긍정적으로 재평가해야 할 필요성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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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의 종교성 & 최종적 낙관 (레디앙, 2010년 08월 06일 (금) 09:11:30 박노자 / 오슬로대)
[칼럼] 사회주의자와 종교인의 공통 소망 '목적의 왕국'
사회주의자들이 성서에서 이야기되는 '신'을 믿든 말든 일단 아무런 정당한 이유도 없이 국가의 명령대로 사람 죽이기를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죠. 진정한 의미의 종교인들처럼. 그러기에 1920년대부터 미국의 진보적 카톨릭이나 개신교도의 일부가 상당부분 사회당 운동과 겹치는 운동을 하게 된 것이고, 1933년부터 Catholic Worker Movement 같은 사회주의적 색깔의 종교 운동 단체들도 생겼어요.
한국의 경우, 이와 같은 세계적 추세는 아주, 아주 뒤늦게 1970년대의 민중신학이라는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일반적' 교회나 사찰,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사회주의자들을 마치 종교의 반대편에 서는 사람들로 오해하고 있는데, 이게 아주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어요.
국가가 "적군을 살해하라"하면 전장에서 그렇게 해서 나중에 훈장이나 받아 가슴에 달아야 되고, 회사에서는 '회장님의 어록 공부, 사가 제창, 집단 극기 훈련', 그리고 동료를 짓밟으면서 무한한 '충성 경쟁'하는 것을 명령해도 이것도 '사회적 도리'라며 그대로 해야 하는 것에요. 가족의 경우도 역시 남편이 부인에게 정조를 지키면서 아이를 '영재'로 키우는 걸 바라고, 부인이 남편에게 크게 출세하여 '돈 벼락' 맞을 것을 바라는 것도 세속의 당연지사에요.
그런데 진정 하나님을 면전에서 보거나 붓다의 가르침을 따를 줄 아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 국가, 사회, 회사, 가정 등등은 마몬의 미혹 내지 악마 파순(惡魔 波旬)의 시달림에 불과해요. 신을 볼 줄 알고, '나' 안에 내재돼 있는 불성을 감지할 줄 아는 이에게는 국가, 회사, 가정 따위의 사회적 창작물들은 방해이거나 쓰레기에 불과할 뿐이죠. 사유는 약간 다르지만, 사회주의자의 입장도 마찬가지죠. 계급사회의 파생물로서의 국가, 기업, 가정의 생리를 체계적으로 알기에, 이들에 대한 '충성'을 바칠 일은 없어요. 서로 사유는 조금 달라도 결론은 같아요.
그런데 사유는 정말 그렇게까지 다를까요? 종교인은 마몬 숭배가 만연한 '지상의 도시'가 파산하여 결국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바라거나, 예토가 정화돼 탐진치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정토가 지상에서 건설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고, 사회주의자는 물화된 노동으로서의 자본이 더 이상 지배하지 않는, 노동이 해방됨으로써 지배와 복종, 탐욕과 타율적 규율, 경쟁과 적대심이 사라질 신사회를 원하는 사람들에요. 마르크스의 뛰어난 설명대로, 사람이 도구가 아닌 목적이 되는, 그러한 사회가 만들어지기를, 종교인도 사회주의자도 공히 염원해요.
지금 사회에서는 사람이란 도구일 뿐에요. 자본 축적의 도구, 국가적 살인의 도구, 인구 재생산의 도구 등일 뿐입니다. 종교인의 입장에서도, 사회주의자의 입장에서도 이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옥에 불과하죠. 그리고 한국에서는 교회나 성당, 절에 다니는 대다수의 자칭 '신도'들이 이 지옥을 마치 '정상적 사회'로 받아들이는 걸로 봐서는, 진정한 의미의 종교인의 수가 이 땅에서 아주 적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노동자들이 착취자들에 대한 충성을 거의 자발적으로 키우다시피 하고, 아이들이 서울대 가겠다고 앞을 다투어 스스로 공부의 지옥에 뛰어들어 서로 밟으려 하고, 다수의 학자들이 비판이고 뭐고 다 집어치운 채 순량한 '등재지 게재 논문' 생산자가 된, 대한민국이라는 이 세계의 모범적 지옥을 임하면서도 '목적의 왕국'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바보로만 보일 걸요.
앞으로 이 사회가 수많은 치명적 위기를 통과할 것이고, 그 위기 속에서 오늘날 그 구조의 도착성과 부조리함이 다 노출될 것이고, 그 시련 속에서 질적으로 다른 이상을 결국 대중적으로 모색하게 될 것이라는 걸 믿어요. 다수를 오랫동안 속일 수 있어도 모두들을 영원히 속일 수 없다는 말을, 언제 누가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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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금칙어가 되다 (레디앙, 2010년 07월 24일 (토) 11:56:22 박노자 / 오슬로대)
한국 지식인의 노예성 & 자본 '기둥서방' 된 중국공산당
이번 주 초에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한 번 했습니다. 일본에서 학계의 주목을 두루 받은 학술서를 내고, 국내에서도 책 몇 권이 번역돼 나온 적이 있는, 꽤나 유명세를 타는 한 중국 인문학자 한 분을 모셔 강연을 들은 바 있었습니다.
제가 상당한 기대를 갖고 그 강연장에 갔는데, 역시 기대대로 아주 예리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중국의 학생이란 시험의 노예, 무엇에 부딪치든 정답만 찾는, 창조성이 없는 시험 기계다", "중국 학자는 기술자가 되어 논문 생산 노동에 동원돼 그 논문들의 품질이 내용도 아닌 게재지의 급으로 일률적으로 평가되는 등 대학은 영혼이 없는 논문 제조 업체로 전락된다", "중국 교수들의 관심사는 신분상승에 집중되며, 황금 만능주의가 팽배해 심지어 논문 심사 시에도 돈으로 심사자들을 매수해 게재 판정을 얻어내곤 한다".... 수많은 고발성 발언이 나오기에 제가 이와 같은 예리함에 용기를 얻어 강의가 끝난 뒤에 손을 들어 질문했습니다:
"자본주의가 꼭 공간적으로만 확산되는 게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의 삶에도 계속, 보다 깊이 파고들어 그 삶을 식민화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이미 관련 학계의 주지의 사실인데, 혹시 '학자의 기술자화'를 '학자의 무산계급화', 즉 비교적으로 독립적 신분의 계층이었던 학자를 자본주의적 생산의 논리에 복속시키는 일로 봐야 하지 않는지, 그리고 대학의 '공장화'도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논리에 따른 '학술 자본'의 형성 과정으로 볼 여지가 없는지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점에 대한 해답도 단순히 인문학적 논리에서 찾는 것보다는 반자본주의적 사회 개입의 논리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시지 않으십니까?"
그 이야기가 통역되자 연사의 얼굴이 왠지 굳어져 종전의 외교적(?) 미소도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답변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자본화 과정과 상기한 학자의 창조성, 독립성 상실 과정의 연관 관계가 분명하지만, 자본주의적 전구화(세계화)가 본 강연의 취지가 아닌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고 자르듯이 답하시고 만 것이었습니다.
연사의 강연노트 텍스트를 나중에 쭉 읽어봤지만, 실제로 거기에서 '자본'과 '자본주의'는 언급된 바 없었습니다. 약 3시간 동안 중국 학계 자본화에 따른 각종 부작용과 그 대응 방법을 열심히 이야기하신 분은, '자본주의'라는 말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걸 보니 정말 고도의 묘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참, 1979년 이전의 중국에서는 '계급 투쟁' 등의 단어들이 아주 남용, 악용됐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이제는 그 반대로 '자본'에 대한 비판은 그리 쉽지 않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었습니다. 전지전능한 유일 집권당이 자본화의 주체이자 자본가들의 '기둥서방'이 된다면 정말 '자본'을 대놓고 논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겠죠?
중국의 문제야 남의 일이라고 치더라도 대한민국 지식인들에게도 최근에 보면 '자본/자본주의'라는 말이 요즘 점차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 도저히 입에 올리기가 어려운 '금칙어'가 돼가는 것 같습니다. 이미 '마르크스주의자'로 찍혀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극소수의 '학계 공룡'들이나, 극소수 활동가들이야 <진보평론> 등에서 아직도 자본주의의 본질적 문제들을 비교적으로 자유롭게 논하지만, 이 학술적 '게토' 밖으로 나오면 자본주의에 대한 본격적 문제 제기는 정말 '철의 노동자' 같은 과거의 민중 가요만큼이나 아주 드물게 들립니다.
MB 욕하거나 反한나라당 언설을 사용하면 문제도 없고 아주 흔한 일이지만 자연파괴적 '4대강 죽이기'가 건설경기 부양의 단기적 효과를 잘 내는 것임으로 단기적 이윤 제고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전형적 발상이라는 말을 들어보기가 훨씬 더 힘듭니다.
마찬가지로, 지난 정권과 이번 정권은 서로 바통을 이어받으면서 정교수 이하 교수의 경쟁적 재임용 심사를 제도화하는 등 고등교육 종사자들의 '철밥통'을 거의 없애고 'HK연구교수' 등등 여러 미명 하에서 맹목적 논문 생산에 옭매여 그 어떤 장기적, 주체적 연구나 대중화 프로젝트를 해내기가 매우 힘든 광범위한 'academic proletariat'(학계 무산계급)을 형성시켰다는 것을 "학교의 자본화와 대다수 학자의 노동자화"로 본 사람들을 제가 많이 못봤어요. 
주류 신문에 '칼럼질'하는 게 대개 아직도 귀족성이 남아 있어 '사회과학적 분석'보다 뜻이 다소 불분명한 에세이적 '아름다운 말'을 더 선호하는 정규직 교수들의 신분적 특권으로 돼 있어서 이렇게 무관심한 것인지도 모르죠. 
삼년 후에 실업자가 되지 않게 위해 '무방'하거나 위에서 주어진 주제에 대해, 주어진 형식의, 주어진 편 수의 논문을 생산해, 주어진 명단에 등재돼 있는 학술지에 무조건 기고해야 하는, 생산 계획 목표치에 미달하면 관리자에게 '찍혀' 고용예비군으로 밀려나는 학계 무산자에게 발언권이 충분히 주어졌다면 좀 더 험한 이야가 조금 더 많이 나올 법도 했을 터인데... 그런데 '선건(先建) 사상'의 위대한 가르침에 입각하여 선진화돼가는 세계 일류 국가인 스파클링 코리아는, 당연히 험한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역시 일류의 고품격이란...
노예가 해방을 꿈이라도 꾸기 위해서 일단 먼저 자신의 노예성부터 깨닫는 게 순서일 것입니다. 20년 동안 월급 전체를 저축해도 집 한 채 살 수 없는 월급쟁이가 비정상적 부동산 가격이 단순히 '투기 세력'의 문제가 아닌, 토건 자본과 소수의 '부동산 부자', 그리고 그들의 최고 조절기관으로서의 국가의 문제라는 점부터 깨닫는다면, 적어도 다음 선거 때에 엉뚱한 데에 표를 던질 일이라도 생길 확률이 낮아지지 않습니까?
학자를 무조건적 논문 생산 기술공으로 만든 게 행정 오류도, 단순히 오도된 정책도 아니고 국가와 학교 자본의 주도면밀한, 일관성이 있는 정책이고, 앞으로는 최소한의 독립성이 보장된 인문학자 등이 이 나라에서 (자본과 국가의) 원칙상 공룡처럼 멸종돼야 된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일단 누구를 상대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 보다 분명한 인식을 가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곳 노예들이 대체로 자기 노예성을 부정하는 경향은 심하죠. 주인님이 마름이라도 시켜줄 것을 많이들 기대들 하시고요. 시켜주면 본인에게 축하를 드릴 일이고 가문의 영광이지만, 노예 농장의 마름도 결국 노예일 뿐이라는 사실을 부디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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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김상봉 선생님을 존경하는 이유 (레디앙, 2010년 07월 28일 (수) 11:27:46 박노자 / 오슬로대)
금민 지원유세는 '구체적 정의'…사회주의자에게 던지는 한 표의 의미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정치 참여란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인문학의 여러 갈래 중에서도 철학이라는 학문은 너무나 보편화, 추상화되는 원칙들을 탐구하는 영역이다 보니 그 추상, 보편의 상공에서 특수성이라는 이름의 땅으로 뛰어내리다가는 다리 다칠 수도 있는 것이죠.
정의라는 게 무엇인가요? 여러 차원에서는 여러 가지 정의 (定義)들이 가능하지만, 사회적 정의란 결국 만인들에게 사회적 자원들을 균등하게 분배하는 것일 겝니다. 사회적 자원이란, 사회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육아, 교육, 의료, 환경, 취업기회와 같은 부문들인데, 이를 균등하게 나누는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인 셈이죠.
우연의 일치인 출신배경이 무엇이든간에 본인에게 필요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고, 본인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실업자들이 없는 완전교용이 이루어지도록 국가가 적어도 노력이라도 하는, 그런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에 가깝죠. 그리고 사회의 상당수 구성원들이 가난하거나 중상층 하부 부분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는, "사회 정의"는 결국 육아, 교육, 의료 등의 부문의 점차적 무상화를 의미할 수밖에 없죠. 그렇지 않고서는 "만인에게의 균등한 분배"란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전통시대에는 "재분배적 정의"는 없었지만 ("구휼"이라는 최소한의 형태로는 있긴 있었죠), 국가는 민중의 생활에 개입하지도 않았던 것이죠. 심지어 세곡을 거둘 때도 동네에 들어가서 가가호호 거두지 않고 그냥 동네 전체의 몫을 동임을 통해 전달 받곤 했죠. 세금을 내고 부역을 다하고, 흉악범죄만 저지르지 않는 이상 다수의 백성은 대체로 국가를 그냥 몰라도 됐던 거죠.
그러나 지금 우리 모두들은 국가와 자본에 의해서 늘 "동원"된 상태에 있습니다. 지배자들이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은 시사적 내용을 "텔레비전 뉴스"라는 이름으로 맨날 듣고, 그리고 우리의 노동력을 시장에 내놓아 팔고 이를 사줄 자본가가 없으면 결국 실의 상태에 빠지기도 하죠.
우리는 국가와 자본에 의해서 촘촘히 조직된 사회에서 사는 것이고, 매일씩 자본가들의 잉여가치를 생산해내면서 국가의 통제를 받죠. 늘 동원되고 상품으로 거래되고 잉여수취에 이용되는 "조직 사회" 구성원들에게 최소한의 재분배적 정의라도 없다면, 이게 정상적 사회의 그림자도 안보이는 곳이죠. 이는 그냥 하나의 커다란 착취공장일 뿐이죠.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이 지옥에다가 최소한의 사회적 정의의 요소를 도입하는 현실적인 길이란 실제 두 가지입니다. 1987년과 같은 대투쟁이 있을 경우에는, 비록 착취자들의 정부라 하더라도 결국 양보를 해서 일부의 복지주의적 요소를 도입하죠. 1988~89년에 비록 초보적 형태긴 하지만, 의료보험이 일단 전국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건 과연 우연입니까? 그런데 대투쟁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복지주의적 요소의 도입은 의회 안팎에서의 아주 오래되고 질긴 지구전의 결과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긴 싸움이 가능해지려면, 복지주의적 지향의 민중 정치인들이 일단 의회에 들어가서 복지확충의 구체적인 안이라도 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복지주의자들의 국회 입성은 착취공장형 국가가 약간이라도 다수의 권익이 지켜지고 사회적 정의가 가능해지는 방향으로 변모되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 비록 정치 그 자체는 인문학자의 체질과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 복지주의적 진보 세력의 후보를 위해 지원유세하는 철학자는 진정한 철학자일 것입니다. "구체적 정의"라는 이름의 땅이 없다면 "보편", "추상"이라는 이름의 하늘도 결국 없기 때문이죠.
철학자가 지지한다고 해서 진보 세력의 후보가 이길 보장이 있느냐, 결국 그에게 표를 던져봐야 사표가 아닐 것이냐 물어볼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거기에 대한 답 역시 간단합니다. 지금의 "승리"가 문제가 아니고 복지 국가 쟁취를 위한 한 걸음으로서 사회주의자가 민초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그게 미래 "승리"의 씨앗이죠.
내일이 아니고 모레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언젠가 이 착취공장의 노동시간을 단축시키고 십장들의 폭력과 폭언을 없애고 작업의 강도를 낮추고 노동자끼리의 충성경쟁을 그만두고 자유시간에 음악이라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가는 기나긴 과정의 일부분이라고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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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에 의한 정치 & 망각을 위한 장치 (레디앙, 2010년 07월 17일 (토) 09:29:06 박노자)
[칼럼] "화학적 거세, 국가가 개인 신체 조절하는 전체주의"
여러 개인들이 하나의 집단이 되자면 아주 간단한 방법 하나 있습니다. 누군가를 같이 희생시키거나(희생양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파생됩니다), 누군가를 상대로 다함께 '도덕적으로 올바른' 분노, 즉 '의분' 내지 '공분'을 내면 되는 것입니다.
몇 사람끼리, 즉 '대면 공동체'(face-to-face community)라면 술이라도 같이 마셔서 한 번 같이 크게 떠들고 주정을 같이 부리면 되지만, '상상의 공동체', 즉 서로의 생물적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다수의 공동체는 어떤 매체를 매개로 하여 같이 '악한'을 상대로 해서 화를 버럭 내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의 '집단'이 탄생되죠. 그리고 기존의 집단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라도 적당한 수준의 '의분'은 필수적입니다.
몇 가지 상징성이 강한 부문(대북 정책, 4대강 죽이기 사업 등등)을 제외하면, 과연 자유주의 정권에 비해 지금 달라진 게 무엇입니까? 경찰 등 보안기관들이 아주 대담해진 부분 등은 있긴 하지만, 대체로는 신자유주의 시대 대한민국의 일상은 그냥 그대로 이어집니다. '나라를 살리는 국내의 가장 위대한 기업'의 노동자들이 여전히 백혈병으로 죽아가면서도 노조를 만들 헌법적 권리조차 행사 못하고, 산재사망률은 여전히 멕시코의 두 배, 미국의 다섯 배인 10만명 당 21명 정도고, 아버지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하는 딸들은 여전히 몸을 사창가에 팔고...
정권이 '참여' 간판을 내걸든 '실용' 간판을 내걸든 민중들이 죽고 터지고, 팔리고 밟히는 대한민국의 일반적 일상은 그냥 계속 이어집니다. 책임을 따져본다면 이에 대해 지배계급의 이익만을 대표해온 모든 주류 정치들은 다 책임이 있죠.
그럼에도 '노빠'나 '유빠'들은 유독 "맹박이 때문"이라는 걸 강조하는 모양을 보니 확실히 한 집단을 정서적으로 유지시키려면 공동의 적을 상대로 같이 화를 내야 하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뭐, 극우주의자들의 김대중관(觀)이나 노무현관과 대동소이하니 그쪽이나 저쪽이나 크게 다를 일도 없다고 봐야죠. 니체가 다시 살아났다면 '노예 심리'라고 비웃었을 것이지만, 니체적 의미에서 '노예'가 아닌 사람을 찾기도 어려운 요즘 세상에서 그런 말을 해봐야 뭔 소용입니까?
그런데 호남 지벌과 영남 지벌, '친이, 친박, 친유' 등 세밀한 구분을 넘어서는 '공분'도 있습니다. 일본 등 적당한 외부적 대상을 상대로 하는 공분도 그 종류에 속하지만, 특히 '흉악범죄자', 예컨대 아동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든가 10대 흉악범(무서운 10대) 등을 대상으로 하는 분노는 그렇습니다. (언론들이 또 적당히 부추기는)그 분노는 하도 대단해서 아동성범죄자들을 "화학적으로 거세하겠다"는 법이 나와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잘 안보이는 것입니다. 물론 아이들에게 몹쓸짓을 한 어른이나, 급우를 고문해서 살해한 어린이 범죄자를, 제가 두둔할 생각은 없습니다.
당연히 오랜 기간 동안 사회로부터 격리돼 교화돼야 할 사람이고, 흉악 범죄 재발 방지를 위해 사회가 조치를 취할 의무는 있죠. 그런데 그렇다 하더라도 국가가 과학적인 방법으로 개인의 신체를 조절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이게 아주 무서운, 전체주의적 세계는 아닐까요?
과거 미국이나 북구 등지에서 우생학적으로 '열등하다'고 판정된 유전병 소유자 등을 의무적으로 불임수술하고, 일제말기에 일본에서도 '단종법'을 만들어 개인 신체에 대한 과학적인 국가적 조절을 법제화해버렸는데, 이제 우리에게는 이게 '끔찍한 과거 기억'입니다.
과연 그 기억을 다시 되살려 국가가 개인의 행복추구권, 신체적 온전성 등을 모조리 빼앗아도 되는 쪽으로 나가야 하는가요? 범죄자가 아이의 인권을 짓밟았다면 사회가 그 범죄자의 인권을 짓밟아야 하나요? 그러면, 사회도 범죄자와 같은 수준이 돼야 한다는 것인가요?
성범죄 유발에 아주 복합적인 요인(유전적 요인부터 유아기 부모로부터의 학대까지)이 작용되고, '무서운 10대'들의 상당 부분은 가난하고 폭력적 가정 출신으로 가정과 학교에서 폭력과 풋대접, 차별을 받아온 이 학력피라미드 사회의 희생자들입니다.
그들이 저지른 끔찍한 짓에는 사회도 일말의 책임은 있을 터인데, 이게 다 '공분' 속에서 묻혀버립니다. 그리고 '무서운 10대' 이야기 속에서 노동자들을 죽이는 작업환경을 만들어도 사과 한 마디 하지 않는 무서운 재벌들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집니다. 그게 처음부터 '공분, 의분' 정치의 목적은 아니었을까요? 이 사회를 지배하는 이들은, 우리들의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기에 우리를 지금처럼 효율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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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사회주의는 어디로 갔을까? (레디앙, 2010년 07월 04일 (일) 10:58:48 박노자 / 오슬로대)
주류 지식인과 지배 헤게모니의 힘…"개조 대신 폐기된 체제"
어제 밤을, 제가 자랐던 부모님의 댁에서 보냈는데, 거기에는 지금도 페레스트로이카, 즉 1987~91년간의 잡지들이 듬뿍 쌓여 있습니다. 제가 고교에 다닐 때에 계속 애독했던 그 잡지들을 보면, 약 1990년까지는 주된 기조는 '사회주의 폐기'라기보다는 '사회주의 개조'였습니다. 필자마다 성향이 조금씩 달라 어떤 이들이 '레닌주의 원칙'을 다시 세우자 했고, 어떤 이들이 차라리 사민주의적 색깔의 '민주적 사회주의'가 좋다고 하여, 일당 독재를 용인한 레닌을 힐책하고 사회주의적 다당제를 원했던 멘세비키 마르토프를 옹호했는데, 어쨌든 '사회주의'는 공통된 코드이었습니다.
잡지 필진 뿐만 아니고 제가 기억한 대로는 다수의 '일반' 노동자들은 약간의 민주성과 제한적 시장경제적 요소의 도입을 통한 물자 부족 해소를 원했으면 원했지, 사회주의를 아주 버리자고 한 사람들은 아주 드물었어요. 그리고 사회주의 자체를 의문시하는 사람도 병원에 갈 때에 돈내고 가는 사회를 실제로 상상조차 못했지요. 즉, '자본주의'를 이야기해도 그게 뭔지를 거의 실감 못했죠.
분수령은 1989~90년이었던 것 같아요. 동독을 위시한 동유럽의 몰락과 소련 안에서의 각종 민족 독립 주장들의 고조에 힘입은 엘친 등 구 공산 관료계급의 상당 부분은, 아예 소련 해체, 사회주의 폐기, 급진적 자본화의 길을 택했어요. 1991년 소련의 해체와 함께 이 선택은 '기정사실화' 돼버렸습니다. 놀라운 게 무엇입니까? 그 때까지만 해도 대체로 - 레닌적 사회주의든 사민주의든 - '사회주의적' 사회를 지지한 듯한 다수는 새로운 주인들의 선택을 그냥 따랐습니다.
자본주의 도입의 초기 9~10년은 아예 지옥적 혼란기였고, 그 다음은 경제가 나아져도 소득 격차가 거의 남미 이상으로 벌어져 일부 계층(연금 생활자, 상당수 막노동자, 하급 공무원 노동자 등)은 고질적인 구조적 빈곤에 허덕이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원칙적 반대'는 놀라울 만큼 약했어요.
일부 고령층 및 장년층, 특히 연금생활자와 대기업 노동자 등이 스탈린주의 시절에 대한 상당한 향수를 계속 간직해왔지만, 그게 꼭 '사회주의'에 대한 향수라기보다는 스탈린이 달성한 '부국강병'과 그 당시 대기업 노동자들의 상대적으로 나았던 처지에 대한 향수지, 혁명의 원칙이나 사회주의적 국제주의 등에 대한 향수는 절대 아닙니다. 예컨대 스탈린주의적 러시아연방 공산당의 지지자 중에서도 소련이 월남의 호지명 선생과 그의 항미독립, 통일운동에 부었던 원조에 대해 "공연한 퍼붓기"라고 욕하고 "이민족을 돕는 게 손해"라고 보는 사람들은 아두 많더라고요.
소련이 꼭 호지명이 좋아서만 지원한 것도 아니고, 북월의 승리로 얻을 수 있는 지정학적 이득을 보고 한 것임에도, 그럼에도 "이민족에의 퍼붓기"에 회의적 사람들이 그토록 많다는 것이죠. 그러면, 늦어도 1990년대까지 '일반인' 사이와 잡지들의 필자들에게 계속 영감이 됐던 '사회주의'는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요?
마르크스가 발명한 진리들 중에서는 가장 탁월한 진리 하나는, "시대마다 지배계급의 생각이 전 사회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배계급이라고 하죠.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를 뒷받침하는 계층은 바로 '주류적 지식인'이라는, 저들의 지배에 핵심적으로 중요한 계층입니다. 예컨대 소련의 사례를 끝까지 보자면 소련의 몰락과 자본화가 거의 확실시되자 절대 다수의 지식인들은 갑자기 자유주의자 아니면 민족주의자, 아니면 자유주의형 민족주의자로 돌변했어요. 갑자기 텔레비전 화면부터 신문, 잡지 지면까지 '보이지 않는 시장의 손'에 대한 예찬과 '신을 믿지 않았던 범죄적 공산주의자들이 감히 시해한 우리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와 그 천진무구한 공주님, 황자님'에 대한 장송곡으로 채워졌습니다.
지배계급은, 그들의 피해자들까지도 그들의 생각을 자발적으로 따르게끔 유도할 만한 무서운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직시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저들이 전지전능한 것도 아니고, 저들의 헤게모니는 꼭 영원치도 않죠. 어떤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는, 지식인 계층 사이에서는 지배자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비주류는 거의 주류만큼의 권위를 갖게 될 수 있죠. 러시아에서 변혁적 내지 혁명적 지식인들이 1917년 이전에 이미 언청난 권위를 갖고 있었다는 것은, 적어도 초기에 성공한 (하지만 결국 보수화돼 자기부정하게 된) 혁명의 비결이 되기도 했죠.
그러나 지식인 계층 안에서의 혁명적 전통의 역량은, 거의 한 세기 동안 부단히 축적돼온 것이었죠. 한국의 변혁적 인텔리겐차는 이와 같은 아주 지루하고 긴 역사적 과정을 과연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할 수 있을까요? 제정 러시아의 가시적 후진성과 대비되는 한국의 표면적 '선진성', 한국 자본의 세계적 및 지역적 위치 등을 생각하면 성공은 전혀 보장돼 있지 않은 것 같기도 해요. 어려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되는 것이지만, 자본주의적 성공은 꼭 비판적 정신의 요람이 되기가 쉽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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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이 세상을 사는가? (레디앙, 2010년 06월 27일 (일) 11:33:33 박노자 / 오슬로대)
고깃덩어리, 본능적 선택 '사회주의' & 비관주의자의 삶
불교를 일종의 염세적 성향으로 해석하는 건, 살려는 의욕을 잠재워야 하고 궁극적으로 인육을 필요로 하지 않는 완전한 '무'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던 쇼펜하우어를 '불자의 모범'으로 보는 서양인의 편견인지 모르지만, 그 의사의 말은 자주 생각이 납니다. 사실, 저로서도 '산다'는 과정이라는 게 '낙'보다 '부담'으로 많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박노자'라는 이름이 붙여진 고깃덩어리는 각종의 요구가 하도 많아서 그런 것이죠.
고깃덩이리를 먹여주기조차 어려운, 내지 그 무슨 인간 모습을 띤 나찰, 아수라들이 '나의' 고깃덩어리를 어디엔가 가두어놓고 죄를 덮어씌우는 딱한 상황이라면 '생존 투쟁'의 열기 속에서 삶이라는 업보의 괴로움을 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교적으로 편한 상황에 놓인 고깃덩어리라면 그걸 끌고 산다는 게 그저 괴로울 뿐이죠.
이걸 뼈저리게 느낀 사르트르와 같은 다소 예민한 서방의 중생들은, 일찌감치 고깃덩어리를 끌고 산다는 걸 '선택',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질 용기'라고 결론내렸습니다. 좋은 선택 - 예컨대 파쇼들과 싸우겠다는 선택 -을 했다고 해서 "잘 했어" 하고 은총을 베풀 신도 없고, 꼭 그 선택을 하게끔 만드는 불변의 도덕률도 없는데, 일단 그러한 선택을 함으로써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드는데에 일조한다는 건 공산당 지지자(동반자) 사르트르의 논리였죠.
지금 유럽에서 보이는 자본주의의 야만화 정도 - 그 좋은 실례는 영국 복지 국가의 거의 반쪽의 해체입니다 - 로 봐서는 저나 제 아이가 자연사할 수 있다는 데에 대한 확신도 전혀 없습니다. 자본주의가 공황과 같은 극단적 상황에서 야만화하다가 어떤 일이 일어나게 돼 있는지 책에서 하도 많이 읽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냉정하게 따져볼 때에 인류 전체의 차원에서 사회주의보다 야만이 선택될 확률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자본과 국가가 부추기는 반이성, 비이성에 비해 개인의 이성도 아주 약하고 집단, 전체의 이성은 아예 보잘것도없습니다. 지금 4대강으로 생태가 망해가고 젊은 '백수'들이 취직자리가 전혀 안보여 절망에 빠지는 나라에서의 월드컵 열기를 한 번 보시고서, 이게 거짓이라고, 집단 이성이 정말 제대로 작동될 수 있다고 말씀해보시지요.
그러면, 망해가면서 언젠가 인류를 멸망시킬는지도 모를 정신병적 체제 하에서 이 고깃덩어리를 끌고 살면서 미륵보살의 하생도, 야소기독의 재림도, 후천개벽도, 심지어 무산계급 혁명의 필수적 성공도 믿지 않는 중생은, 왜 하필이면 진보정당 지지하고 정치색이 있는 글쓰고 난리칩니까?
제가 진보정당을 믿고 따르고 사회주의를 외치는 이유는, 아주 쉽습니다. 미래가 어떻게 되든(저는 낙관보다 비관에 더 기울입니다), 무산계급이 어떤 본질적 변혁을 할 수 있든 없든(지금의 체제 포섭 정도로 봐서는 매우 어려우리라 봅니다), 사회주의적 전망이 인류에 있든 없든(저는 꼭 있다고 자신과 남을 기만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냥 제 본능에 충실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 본능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인터넷에서(집에 바보상자가 없어서 세상을 접하는 루트가 인터넷뿐에요) 미제 군대가 아프간에서 또 몇 명의 마을 사람을 "테러리스트"라고 하여 무인비행기로 죽였다는 이야기를 볼 때마다 그냥 속이 뒤집어져요. 악마 파순(波旬)을 제 얼굴 앞에서 보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꼭 불교를 믿어서도 그런 게 아니고 믿지 않았다 해도 똑같았을 거에요. 저는 제국의 폭력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그저 살고 싶지 않은 것이고 그게 제 본능입니다. 이 폭력의 근원이 자본체제의 이윤추구라는 걸 아니까, 이 본능상으로 사회주의 할 수밖에 없어요. 고귀한 '선택'도 아니고 그저 본능대로 사는 것뿐이죠. 그래서 고깃덩어리라는 업보를 계속 지고 있는 한, 이 사회주의라는 말을 계속 화두로 삼아 사는 겁니다.
그래도 고깃덩어리가 여기에서 서식하고 있는 이상, 고깃덩어리에 붓고 있는 식음에 대한 감사의 뜻에서라도 초보적 차원이라 해도 '치료행위'를 계속 시도하는 게 '교환논리'상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영원불변의 도덕론을 별로 믿지 않아요. '나'의 고깃덩어리로서 필요하고 또 다른 고깃덩어리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복수의 상대자들과 성관계를 맺는 것도, 배고픈 사람으로서 빵을 훔치는 것도, 아프간에서 미군 폭격으로 모든 가족을 잃어 고아가 되는 사람이 무기를 들고 빨치산이 되는 것도, 저는 꼭 '죄악'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상황적, 역사적 도덕논리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영원불변의 원칙이 있다면 그게 '호혜성'의 원칙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받는 만큼 세상에 베풀라는 건 바로 이 원칙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하는 것이죠. 옛날 스님네들이 이야기했던 '재시(法施)와 법시(財施)의 교환논리'이기도 하죠.
그런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어쩌면 법화경을 강독하는 것보다, 만델 선생의 <후기 자본주의> 강독은 요익중생(饒益衆生)의 차원에서 더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불교는 전쟁과 같은 현상들을 개인적 심성의 차원에서 설명하지만, 마르크스주의는 이를 보충하여 집단의 차원에서 현대적 살육의 기원과 살육을 종식시키는 방법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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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칼럼] 대한민국, “저강도 민주주의” (한겨레,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2010-06-20 오후 07:02:47)
몇년 전에 한 국내 진보 정치인이 오슬로를 방문했을 때 그를 동행한 일이 있다. 노르웨이 정치인을 만난 자리에서 그가 받은 첫 질문은 “한국이 민주국가냐”였다. 국내 노조 탄압 소식이 노르웨이 좌파 정계에 잘 알려지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예상되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국내 정치인의 답은 대단히 현명했다: “한국은, 보다 많은 민주주의를 향해 발전되고 있는 중이다.” 이는 왜 현명한 답이었는가? 진보 정치인이 국내외에서 합법적 활동을 한다는 것은 제도적 민주주의의 존재를 의미한다. 진보가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긴 싸움을 한다는 것은 한국 정치의 지속적 “발전”을 뜻한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오늘날 한국을 명실상부한 “민주국가”라고 부르기에는, 민(民)이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뚫어야 할 벽들이 아직도 너무 많다.
민주의 기반은 정치참여다. 정치참여의 가장 기본적 방법은 투표인데, 국내 투표연령은 세계 평균인 18세에 비해 한 살 높은 19세다. 오스트리아 같은 일부 선구적인 국가들은 투표연령을 아예 16세로 낮추어버렸지만, 국내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국내의 보수적 “주류”에게 10대 후반의 시민들은 아직도 훈육 대상인 “아이”지 정치의 주체는 아니다.
투표는 정치참여의 시작이지만, 본격적 정치참여는 대개 정당활동을 의미한다. 정당활동은 모든 시민들의 고유 권리이지만, 국내에서 교사를 포함한 공무원들은 이 권리를 박탈당했다.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이는 변명일 뿐이다. 프랑스나 캐나다 등 정통 민주국가들도 공무원의 정치중립을 보장하기 위해 업무수행에서는 공무원 개인의 정치적 의견 반영을 금지하지만, 공무원의 정당활동을 금지한 적은 없다. 공무원은 “공무원”이기 전에 남들과 똑같은 정치적 권리를 가진 시민이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 등 “민주국가”라고 부르기 어려운 일부 나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공무원 정치활동 금지”를 시행하는 한국은, 공무원을 무력화시켜 기득권층의 수족으로 만들려 한다는 의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면 공무원들이 가입하고 싶어도 가입이 불허되는 진보정당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는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시행된다는 증거가 아닌가? 그건 그렇지만, 한 가지 단서를 달아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정치판도 하나의 “시장”인데, 경제가 몇 개 안 되는 거대 재벌에 독점돼 있는 한국에서는 정계도 “재벌”급 강력한 극우, 온건보수 정당에 사실상 거의 독점돼 있는 상태다. 중소기업이 늘 재벌의 횡포에 노출돼 있듯이, 비정규직, 청년, 저소득층 등 소외계층들의 이해를 표방하는 진보정당은 언론으로부터 외면만 받고 온건 보수 정당으로부터 공직 선거의 결정적 순간에 “우리를 위해 후보사퇴 해달라”는 압력을 받곤 한다. 사회의 다수를 이루는 약자들을 위한 정당이 늘 스스로 약자로 전락하게 돼 있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다.
과거의 망령이 산 자를 괴롭힌다고나 할까? 30년 전에 신군부가 제정하고 그동안 역대 온건 보수 정권들이 뜯어고치지 못한 공무원 정당 가입 금지 사항을, 지금 극우정권이 이용해 자신의 시민권을 살리겠다는 “죄”밖에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교사·공무원들을 무더기로 파면시키는 곳은 “민주국가” 대한민국이다. 
1990년대 초반 학계에서 유행했던 말대로 이 “민주주의”는 일종의 “저(低)강도 민주주의”, 즉 실질적으로 기득권층을 위해 다수의 피지배자들을 포섭·동원시키는 외형적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저강도 민주주의”가 진정한 민주주의로 거듭나려면, 우선 장시간·고강도의 살인적 노동에 건강을 잃어가면서 살만한 집 한 채 얻지 못하는 소외대중의 목소리는 정계를 제대로 강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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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위기의 본질을 들여다보기 (레디앙, 2010년 06월 12일 (토) 11:27:42 박노자 / 오슬로대)
진보 시대에 꽃피고, 신자유주의서 질식…'사회주의 정치' 필수
노르웨이 같으면 인문학의 위기란 크게 세 가지 뜻이죠. 하나는 인문학에 투자가 비교적으로 없단 이야기입니다. 노르웨이 학술진흥재단의 지원금의 3%만이 인문학에 투입되고, 저희 교내에서도 교수 증원이 이루어진다 해도 아주 어렵게 이루어지고 연구지원이 매우 취약한 편입니다.
또 하나는, 학생들의 취직은 비교적으로 잘 된다 해도 전공과 대개 무관하다는 점이죠. 전형적으로 철학 전공자이었던 학생이 노동복지공단(http://www.nav.no/English ) 사무원으로 취직하는 것인데, 결국 3년 동안(여기는 학사과정은 이제 3년으로 축소됐습니다) 칸트와 헤겔을 읽은 것은 일종의 '직장 생활 이전의 교양 쌓기' 정도 되는 것입니다. 교양으로 충전되고 그 다음에 다소 재미없는 공공부문 사무직으로 가도 나중에 틈틈이 철학이나 읽을 수 있다면 그게 인생의 낙이라는 건 이 쪽의 일종의 통념이 된 셈에요.
그리고 가장 심층적 차원에서는 인문학 안에서는 '역학관계'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저희 학교 같으면 노르웨이/스칸디나비아 역사 쪽에서 그 유명한(?) 바이킹 시대나 중세보다, 근대사도 아닌 현대사 경우 교원이 증원되고 각광을 받지만 전근대사는 '찬밥' 신세에서 벗어날 희망도 안보입니다.
대체로 '실용성'으로 이해(내지 오해)되는 ‘현재성'이 폭력적으로 강요되는 가운데에서 한 과목의 '기초'를 이루는 부분들이 뒷전으로 밀립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인문학 전체가 어려운 가운데 그 안에서는 '시의적' 내지 ‘현재적'이라는 판정을 받을 가망이 있는 일부가 자구지책으로 “고리타분한”, “실용성이 없는” 동료들을 주변화시키면서 얼마 되지도 않는 지원을 독점하려는 겁니다. 크게 봐서는 '주류' 사회 시각에서는 우리 모두가 다 '주변 분자'이지만, 그 중에서 일부는 '주변 중의 주류'가 되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것이죠.
노르웨이에서 위기의 주된 특징이 '주변화'라면 보다 야만적 신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아예 '멸종 위기'가 다가오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국내에서 전혀 보도가 안돼 모르시는 분들이 많지만, 최근 영국 미들섹스대에서 철학과 폐과, 교수 전원 해고 계획이 문제가 돼 그 철학과를 살리자는 국제 연대 운동도 일어났습니다.(http://savemdxphil.com/ ) 그쪽 철학과는 학계에서 원래부터 하도 이름이 많이 났기에 결국 해고 당한 교수들이 런던의 킹스턴대에 옮길 수 있었지만, 학생, 동료들에게 최고 점수를 받아온 한 인문학 기관이 이렇게 쉽게 하루밤에 날라 갈 수 있다는 걸 보니 공포감을 느끼죠. 그 과는 하도 인기가 높아 통상적으로 적자가 아니었음에도 경영측이 “같은 돈으로 보다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과를 지원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해 철학을 죽여버렸대요. 즉, 존속시켜도 손해는 안보지만 없앰으로써 이득을 보자는 주의이었어요.
이게 요즘 영국에서 인문학이 당하는 '이지메'의 정도를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서섹스대, 켄트대, 킹스칼리즈 등에서 학생들이 용감히 막아서 철학과 등 '위험도 높은' 전공 교수들의 강제 해고들을 겨우겨우 모면할 수 있었지만, 광적인 긴축 분위기에서는 철학과, 문학과, 언어과, 문헌학 등의 교수들은 거의 그 앞날을 내다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기성 교수들 밑에서 '의자가 흔들리는' 상황이지만 신입자들의 고생이란 이루 말할 수도 없는 것이죠. 노르웨이에서는 주변화 정도 당하고 있지만 영국에서는 '무용지물' 취급 당하고, 늘 '멸절의 위기감'을 느끼면서 살아야 되는 정도입니다. 물론 옥스퍼드, 캠브리즈 등 '지체 높은' 학교들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말씀에요.
이 사태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결국 인문학의 사회적, 담론적 '존립 기반'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이전의 강단 인문학이란 소수 사회귀족들에게 최고급 '교양'을 공급해주고 그들의 문화자본 축적을 지원해주는 '귀족의 스승' 지위였습니다. 물론 소수의 인문학자는 급진파적 성향은 있었지만, 발터 벤야민처럼 대개 대학에서 임시직 이상으로 올라가기가 힘들었어요. 강단 인문학의 핵심어 중 하나가 '귀족성'이었다면, 또 하나는 '민족' 내지 '국민'이었습니다. 역사, 언어, 문학 등의 '민족화' 내지 '국민화'는 별로 어렵지도 않았지만 철학처럼 보편성이 강한 학문이라 해도 대개 '본국 철학 전통 계승'식으로 해서 '민족적' 색채를 띠곤 했어요.
상황을 많이 바꾼 건 제2차대전 이후의 대학의 대대적 확장과 진보의 대세화이었습니다. 주로 중산층이나 중산층 이하 학생들의 새로운 스승들은, 마르쿠제나 알튀세 같은 진보적 인문, 사회학자이었습니다. '민족 문화'의 대의는 그대로 유효했지만, 동시에 인문학이 ‘소외를 극복하는' 하나의 사회적 힘으로 작동되기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인문학의 황금시대를 뒷받침하는 것은 첫째 완전고용을 보장해주었던 1945~1974년간 복지 자본주의 황금기이었고 둘째 '미래, 진보'에 대한 대중적 열의이었어요. 자본주의도 자연스럽게 성장돼갔지만 이를 극복하려고 서로 연대하는 젊은이들의 열기도 자연스러웠어요.
이 분위기가 결정적으로 바뀐 건 1980~90년대에요. 성장은 둔화됐고 완전고용은 깨졌고 연대 대신에 원자화된 사회에서의 '개인 경쟁'이 왕성해지고, 사회적 미래보다 개인적 미래에 대한 각자의 불안은 우선시되기 시작됐어요. 그리고 범사회적, 연대적 미래 프로젝트가 없는 이상 어디까지나 '개인'뿐만 아니라 '전체'까지 다루는 철학이나 '전체'의 시공적 변이를 탐색하는 사학 등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죠. 대신에 오는 것은 개인의 끝이 없는 불안과 소외를 잠재울 수 있는 각종 '마취제'들입니다.
잘되면 요가 정도고, 못되면 옴진리교 정도지만, 결국 그렇다고 해서 불안은 절대 없어지지도 않아요. 원자화된 개인은 매일 절에 가서 명상하든 웰빙으로 백세 살든 파도가 높은 바다에 던져진 지푸라기일 뿐이기 때문에요.
결국 인문학의 위기란 사회성의 위기죠. 승자독식의 '공부의 신'의 사회에서는 인문학은 없어요. 그리고 사회의 재건은 정치적인 진보, 즉 사회주의적 정치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제가  정치 자체에 대해서 별로 재미를 안느끼면서도  진보신당을 변함없이 지지하는 이유는 결국 이거에요. 서로 경쟁하느라 바쁜 개인들의 사회에서는 저 같은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갈 구석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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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나만이라도 살아남자는 ‘생존’이 한국사회 키워드” (경향, 오슬로(노르웨이)|김종목 기자, 2010-05-14 23:28:45)
ㆍ노르웨이 오슬로대서 만난 ‘한국 전문가’ 박노자
-불교도 주된 관심 영역이신데요.
“개인적 목적을 불교적으로 보면, 번뇌에 덜 시달리고, 유쾌한 생활, 이타적인 삶을 살았으면 하는 거죠. 자본주의 사회는 불교적으로 보면 지옥입니다. 번뇌가 첨예화되고, 시달림이 악화되죠. 자기도 남도 해롭게 합니다. 불교에선 경쟁이란 있을 수 없어요. 불교는 남을 살리는 보살도가 기본이죠.”
-노르웨이에서 교수로 살아가는 건 어떻습니까.
“공무원 신분이어서 법적으로 위협받을 건 없어요. 연구도 자유롭고요. 학교가 간섭하지 않죠. 하지만 고립감 같은 건 느껴요. 스칸디나비아 반도 전체에서 박사학위를 갖고 고용된 한국학 선생이 6명밖에 없어요. 현지인들은 한국학을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일본학은 학생을 모집하면 150명가량 오는데, 지난번에 한국학은 2명밖에 안 왔어요.”
- 한국 지식사회와 많이 비교될 듯한데요.
“한국은 대학이 너무 기업화, 관료화된 것 같아요. 괜찮은 대학은 영어로 좋은 논문을 생산하는 기관이 된 거죠. 교수들한테 엄청난 압력이 가해지죠. 국내외 영어 잡지에 영어 논문 내랴, 연구비 따오랴, 교수는 논문 생산 노동자가 된 거죠. 자연과학이나 이공계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데, 인문학을 죽이는 방법밖에 안되어요. 학술 논문은 학자간의 소통 도구이지 대중과의 소통 도구는 아니거든요. 한국 교수들은 논문 생산 구조에 복속됐어요. 그것도 4대강 공사처럼 날림으로 써야 해요.”
- 인문학의 위기는 심화되는 듯합니다. 아울러 인문학자의 역할을 말씀해주신다면요.
“인문학자는 자본주의로부터의 점차적 극복을 담당해야 하는 사람들이죠. 사회가 인도주의적으로 더 나은 길로 가게끔 필요한 담론을 제공하고, 부조리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사회를 치유하는 데 앞장 서는 의사들이 인문학자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의 화두는 기업화, 탈인간화, 인간상품화, 기계화, 인간의 원자화, 기업의 사회 지배 같은 것들인데, 인문학자 대다수는 자본주의적 맹목적 생산에서 소외된 노동에 종사하고 있을 뿐이죠. 한국에서 철학이나 사회학 같은 보편적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웬만하면 한국을 떠나라는 권고를 하고 싶죠. 한국에도 좋은 거 있지만, 대학에 갇혀 있으면 해야 할 게 너무 많죠. 헤겔이나 칸트가 논문생산 노동자였다면 지금의 헤겔이나 칸트가 될 수 없죠. 학자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달려야지, 타인이 준 목표를 위해 달리면 안돼요.”
- 한국 대학생들은 취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요.
“학생들은 자기 상품화 압력을 받아요. 한국사회가 학생한테 요구하는 건 완벽한 상품, 명품인재가 되라는 겁니다. 모든 대학의 공개적 목표가 만능기계를 많이 만들어 높은 지위의 기업들한테 판다는 거죠. 만능기계가 되는 과정은 인간성을 말살하는 과정입니다. 사람들한테 숨쉴 공간을 주지 않아요. 북한도 미국·중국·러시아 같은 거인들과 보조를 맞추느라 민생을 다 희생시키며 핵무기를 만드는데, 남한 자본은 미국·일본 자본을 따라잡기 위해 과도한 착취를 하면서 명품인재를 강요해요. 민족적 비극 같아요.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가 강대국같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달리다 보니 나온 비극이죠.”
- 20대의 보수화, 우편향 논쟁도 있었는데요.
“대학생 1000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니까, 좋아하는 정치인으로 유시민-박근혜-노회찬 순으로 뽑았어요. 온건보수, 극우, 진보 스펙트럼이 있는 거 같아요. 보수화됐다기보다는 명품인재 압력을 받으면서 정치를 생각하고, 정치의식을 개발할 여유가 없어졌죠. 어학연수 안 하면 인간도 아니죠. 명문대 출신이 아니면 다른 특별한 노력을 해야죠. 젊은 사람에게 여유를 안 줘요.”
- 4대강 사업은 어떻게 보십니까. 노르웨이도 비슷한 개발 이슈가 있는지요.
“최근 노르웨이 국내 문제 중 제일 큰 건 로포텐 제도의 유전 개발 문제예요. 노동당 같이 대형 노조에 기반을 둔 온건 좌파도 로포텐 개발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죠. 보수주의자들은 찬반이 반반 정도고, 좌파와 급진파가 환경·관광자원 보전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죠. 그런데 토론·논쟁이 5~6년 되었어요. 아직도 결론 안났고요. 노동당이 집권 여당인데, 좌파(단체)를 무시하면서 개발을 밀어붙이지 못해요. 이 논쟁은 지속될 것 같아요. 유전개발이냐 환경보전과 어업 발전이냐를 두고 쉽게 판단 못해요. 그런데 한국에서 4대강 토론도 없었어요. 청계천 개발도 토론이 없었죠. 여기는 큰 공사의 토론 과정이 적어도 5~10년 걸려요. 낙동강을 왜 파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일자리를 만든다고 하지만 90%가 비정규직이고, 상당수는 무리해 노동하고 안전사고도 나고 있잖아요. 4대강 사업을 안 하면 망하나요.”
-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같은 복지 이슈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 후보 중에도 무상급식을 하겠다는 이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조금씩 진보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노후 불안을 느끼는데요. 한국인의 노후 대비는 절반 이상이 부동산이잖아요. 문제는 부동산 가격이 조금씩 내려가고, 버블을 너무 키워서 더이상 오를 거 같지도 않아요. 부동산으로는 노후 준비는 못할 거 같아요. 국민연금만 믿고 살 수도 없고요. 몇년 전 웰빙 바람이 불었는데, 그때는 돈 주고 몸에 좋은 걸 사는 소비주의적 웰빙이었는데, (지금의 복지 이슈는) 웰빙에 대한 심화 과정에서 나오는 거 같아요.”
- 노르웨이에는 신자유주의 같은 문제는 없습니까.
“외국인 노동자가 주로 3D 업종에 종사하고, 노르웨이 토박이보다 빈곤율, 실업률이 높죠. 극우정당이 이슬람에 대한 공포를 이용해 득표하려는 문제도 있고요. 하지만 신자유주의라 부를 만한 문제는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복지 국가 형태를 유지하고 있죠.”
- 노르웨이는 한국보다 부유한 나라고 산유국입니다. 같은 수준의 복지를 바로 하기는 힘들 듯한데요.
“구매력 기준으로 보면 한국이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과 비슷합니다. 그리스는 최근 경제가 망가져 가지만, 거기만 해도 원칙상 의료, 교육이 무상이에요. 포르투갈, 스페인도 그렇고요. 한국도 노르웨이 정도는 안 되어도, 이들 국가처럼 무상 의료, 무상 교육으로 점차적으로 갈 수 있어요. 문제는 예산인데, 지금 돈 펑펑 쓰는 데가 국방부예요. 한국의 무기 구입이 중국 인도 다음으로 3위예요. 미국 무기를 가장 많이 사는 나라가 또 한국이예요. 무기 구입만 몇년 멈춰도 상당한 진보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노르웨이와 한국, 러시아를 특징하는 키워드를 꼽으신다면요.
“노르웨이의 키워드는 즐거움이에요. 나쁜 감정을 안 쌓고, 다들 즐겁게 살려고 해요. 사회 구조도 그렇게 짜여져 있습니다. 한국의 키워드는 하나밖에 없어요. 생존뿐예요. 나만이라도 살아남는 거죠. 정도 차이는 있지만 러시아도 결국 생존인 거 같아요.”
- 귀국할 계획은 없습니까.
“한국에서는 공정하게 채용하지도 않죠. 지난 3년간 제안도 없었고요. 제가 한국에서 시장적 가치가 없어요. 몇개 외국어를 하지만, 한국에서 잘 팔리는 것도 아니고, 영어를 하지만 한국에서 원하는 게 삼성 휴대폰처럼 깔끔한 본토 발음이고요. 외국인 교수를 채용할 때 백인 우월주의가 심한데, 제가 수혜자가 될 마음도 없고, 그마저 미국인 우선이고요. 논문은 자율적으로는 써도 타율적으로 쓰기는 싫습니다. 지금 한국 학교 구조에서는 제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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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본주의자들, 유쾌한 연대 필요하다 (레디앙, 2010년 05월 02일 (일) 21:58:58 박노자 / 오슬로대)
사회주의자들이 고립되기 쉬운 이유…"이론-지도자보다 중요한 것"
영국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결과로 정상적인 산업이 쇠퇴하거니 국외로 이동하고 금융업이라는 기생성이 강한 부문만이 기형적으로 발전된 그 나라는 지금 세계 공황을 제일 아프게 맞고 있는 국가 중의 하나가 됐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국내총생산 대비 공공 부문 총부채가 30%였는데, 계속 눈덩이처럼 늘어나 이제 60%나 된 것입니다.
예산 적자가 국가 증권(국채)의 신뢰도를 위협할 정도가 되니 세율을 높일 만한 정치력이 없는 보수당과 노동당 등 극우와 중간 우파 정당들이 다 하나같이 공공부문 지출 감소를 외치는데, 아주 최소한으로 잡아도 다음 3년간 공공부문 지출의 실제 감소의 폭은 약 11% 정도로 봐야 할 듯합니다.
내년 국가 고등교육 예산이 약 5%나 깎이니까 대학가에서 벌써 감원 바람이 세차게 불어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의 교수, 전임강사, 행정 직원들이 사랑하는 일터를 강제로 떠나야 할 것도 분명합니다.
초유의 자본주의 위기인데 놀라운 게 급진 좌파가 전혀 득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에요. 특히 젊은이 중에서는 자본주의에 절망한 사람들이 가시적으로 늘긴 하는데, 이 사람들은 '구좌파'라는 동네를 그렇게 잘 찾아가지 않아요. 물론 영국보다 탈산업화와 신자유주의화를 훨씬 덜한 독일에서나 프랑스에서는 급진좌파는 소폭의 세력 강화를 보이고 있는데, 역시 지금 위기의 규모에 비해서는 놀라울 만큼 느리고 소폭적인 상승세입니다.
또 그리스 같으면 요즘 '구좌파'를 중심으로 해서 거의 '혁명 준비 태세'가 갖추어지기 시작하는데, 그건 영-불-독과 확연히 다른 세상이죠. 준주변부 젊은 노동자들이 영-불-독의 젊은이에 비해서 잃을 게 없어요. 800유로 월급을 잃어봐야 뭐 아쉬울 게 있습니까? 뭐, 청년 실업률이 약 22%에서 30%까지 추산되는 그 나라에서는 800유로 짜리 일자리 얻는 것도 별따기인데 말입니다.
그러한 '절망의 땅'에서는 급진적 경향의 '구좌파'는 예상대로 잘 늘지만, 아직도 번영의 과실이 좀 남은 서구에서나, 수많은 비정규직의 희생과 대다수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 그리고 아직까지는 집값 폭락의 지연으로, 그나마 지금까지 본격적 위기를 면해온 한국에서는 급진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비교적으로 저조해요. 뭐, 한국과 같은 '초자본주의적' 사회에서 별다른 급진성이 보이지도 않는 진보신당이나 민노당도 거의 '주류 진출'을 못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물론 보수적 언론의 역할부터 소비사회의 '달콤한 족쇄'까지 온갖 사회적 원인들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자성, 즉 '자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의미에서는 급진파들이 자기 자신의 모습과 행동에서도 고립을 자초할 수 있는 일부의 원인들을 찾아봐야 할 의무가 있는 것 같아요.
20세기 벽두에 형성된 활동의 형태, 방법, 표현 방식, 조직 문화를 갖고 21세기 벽두의 자본주의에 절망한 젊은이들에게 어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죠.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좌파'의 고전적 형태들이 만들어진 제1차 세계 대전 전후의 유럽을 상기해보세요. 볼셰비키와 같은 전위당 하나 제대로 만들고, 절대 빈곤에 허덕이는 다수를 잘 결합하고 세계대전과 같은 계기만 잘 타면 '제2 10월혁명'이 곧 다가올 것으로 봤어요. 그러한 풍토에서는 '당'은 모든 활동의 중심이 돼야 됐고, 당에 대한 높은 충성이 요구됨과 동시에 당에 대한 기대도 거의 절대적이었어요. '당의 이론'에 이의를 제기한 친구와 절연하는 것은 90년 전 급진파적 유럽인에게 거의 당연시되는 일이었죠. 그리고 전체적으로 권위주의적인 - 거기에다 전쟁 영향으로 많이 군사화된 - 그 당시 유럽 문화 풍토에서는 당에서 '지도자'(장군)와 '이론가'(참모본부)를 받드는 것도 당연시됐어요.
그런데 지금 과연 어떤 시대적 배경인가요? 서구는 물론 한국과 같은 '비교적으로 부유한 준주변부'만 해도 절대 빈곤은 50~60%에서 10~15%로 줄어들었고, 제3세계에 대한 침략들은 계속 지속돼도 주요 열강 사이의 경쟁은 아직도 열전 수준으로까지 비화되지 않고 있어요. 열전으로 가도 이스라엘-이란전과 같은 대리전으로 갈 확률이 높지 중-러와 미-일이 직접 붙을 가능성은 (최소한 아직까지) 좀 적습니다. 러시아와 중국은 '혁명의 본고장'에서 가장 보기 안 좋은 초기 자본주의의 모습을 다 보이는 나라들이 되고, 세계화된 자본주의는 수많은 새로운 '완충 장치'들을 개발해놓았어요.
이러한 세상에서는 전위당과 '무오류의 이론'을 내세우면서 천지개벽의 '그날'을 무작정 기다리는 것보다는, 유연한 '화이부동'의 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어요. '심판의 날'이 오든 말든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에 체질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유쾌하게 뭉쳐 의미 있는 일을 같이 할 수 있는 게 아닌가요? 그래서 정치적으로 '당'은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반자본주의적 급진 분자들이 사회 각분야에서 벌이고 있는 부문 운동들일 것입니다.
이 운동들은 굉장히 다양할 수 있습니다. 학술적으로 '수유연구실'과 같은 비영리, 탈권위, 무형식 '배움터'일 수도 있지만, 예를 들어 국방부와 같은 한국사회의 성역을 겨냥하는 운동일 수 있어요. 저도 한국에서 원고료를 받을 때에 세금을 떼이지만, 제 세금으로 그 필요성이 아주 의심될 때 많은 미국산 흉기가 무더기로 사재기 되어진다는 생각에 아주, 아주 화가 납니다. 이 문제를 겨냥하는 운동이 아직까지 왜 없는지도 모르겠어요.
이것도 그렇고 학교와 가정 체벌 폐지 운동부터 대다수가 부당노동행위의 피해자가 되는 청년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지원 운동까지, 자본주의에 반대하려는 사람이 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대단히 많습니다.
궁극적으로 '탈자본주의'를 도모하는 그러한 운동들이 하나의 사회적 '문화'를 이루게 된다면, 한국에서도 프랑스나 독일처럼 정치적인 급진파가 어떤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도 중요하지만, 정치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인프라'가 없으면 그 정치에 생명이 부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섹트적 기질, '지도자' 중심주의나 '이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극복되지 않는다면 '그날'을 향해서 힘차게 나아갈 만한 생기가 생기지도 않을 듯합니다. '이론'이란 결국 어떤 '위대한 지도자'의 완벽한 머리 속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다수의 투쟁과 그 투쟁에 대한 성찰 과정 속에서 얻어지는 집단적 지혜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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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눈 앞의 혁명과 노동자정당 (레디앙, 2010년 04월 11일 (일) 00:59:42 박노자 / 오슬로대)
키르기스스탄 민중반란…동북아 최빈국 '북한' 주목해야
국내에서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지만, 지난 주 중앙아시아에서 한 가지 역사적인 사건이 터졌습니다. 키르기스스탄이라는 작고 가난한 나라에서 계속 권위화돼온 바키예브 정권이 일종의 민중반란에 의해서 유혈적으로 타도되고 사민당 등 야권 세력이 그 여세를 몰아 '과도기적 내각'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2005년의 또 하나의 민중 반란의 과정에서 집권한 바키예브 문중이 거의 전형적인 '도둑 정치'(cleptocracy) 모양으로, 해당 국가의 거의 모든 가용 자원들을 사유화하여 일종의 가산적인 '일가 집권하의 국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원 나누어먹기에 소외를 당한 북부지역의 관벌과 기업인, 유력한 범죄조직 보스 등이 야권으로 합류했으며, 야권과 바키예브 독재의 대립은 결국 민중반란을 통해 해결되고 말았습니다. 정권에 의해 사병화된 경찰들이 민중들에게 조준사격을 가했던 관계로 사망자들이 65명에 이르렀답니다. (http://www.vz.ru/politics/2010/4/8/390961.html) 그런데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일념에 불타는 민중들이 죽을 각오로 대통령궁을 포위, 공격해 결국 값비싼 승리를 얻은 셈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난하고 차별받는 주변부에서 가장 급진적인 변혁이 일어나는 법이죠. 30년 전의 '광주'도 잘 나가는 신흥공업국 대한민국의 가장 살기 어렵고, 가장 소외를 많이 당해온 동네에서 일어났지만, 지금 유럽에서 저항의 선두를 달리는 희랍도 사실 포르투갈과 함께 유럽연합의 가장 주변적 지대에 속합니다. 유럽이라고 하지만, 구매력기준(PPP)로 본 1인당 국민소득은 약 2만9천 달러, 즉 정확하게 대한민국의 수준입니다. 키르기스스탄도 그렇죠. 타지키스탄과 함께 중앙아시아의 최빈국에 속하며, 1인당 국민소득은 인접국 카자흐스탄의 5분의 1 정도밖에 안됩니다.(구매력 기준, 액면대로라면 9배 정도 차이)
키르기스스탄의 국제적 위치를 정확하게 규정하자면 자원수출도 상품수출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주로 '사람 수출', 즉 이주 노동자 수출을 한다는 것이죠. 세계체제 안에서는 사람 수출을 전문으로 하는 주변부 국가들은 키르기스스탄 이외에도 필리핀, 몰도바 등 몇 군데 있습니다.
키르기스스탄의 경우에는 그 5백만 명의 총인구 중에서는 약 10% 정도는 이주노동자가 되어 러시아나 카자흐스탄에서 상상 이상의 착취를 당하는 것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아예 목숨을 걸고 미 제국 점령 하의 아프간에까지 가서 미 기지에서라도 일하는 지경이지요.(http://www.centrasia.ru/newsA.php?st=1199526420). 그런데 굳이 아프간까지 안 가도 가족을 먹여살리느라 자기 목숨을 버릴 확률은 높지요. 러시아에서만 해도 범죄조직들에 의해서 인신매매 대상이 돼 명실상부한 노예가 되는 키르기스스탄 출신은 1년에 약 1천 명 정도이지요. 노예로 잡히기도 하지만, 스킨헤드로부터 단순 살인부터 생화장까지 당한 사람들도 많게는 수백명이 되고요.(http://www.ferghana.ru/article.php?id=4047)
이러한 지옥을 타파하려고 민중들이 경찰의 조준사격을 무시하고 대통령궁을 향해 달려갔던 건 십분 이해되죠. 역시 혁명이란 사상으로 한다기보다는 절망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이 궁지에 몰려 하는 게 혁명이죠. 사실, 이와 같은 차원에서는 우리 운동권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그래도 나름의 '중간적 착취자'가 이미 된 대한민국보다 차라리 키르기스스탄과 같은 모양으로 동북아의 최빈국이 된 북한을 주목할 필요가 좀 있어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그 쪽에서의 부정부패의 만연과 '밑으로부터의' 시장화는 언젠가 어떤 우발적인 민중 폭동을 충분히 촉발시킬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죠. 단, 합법적 야권이 있을 수 없는 체제 특성상 이 폭동이 체제의 전면적 파멸로 이어지지 않는 한 결국 국지화돼 진압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의미있는 부분은, 중국과 러시아 등지로 수십만 명의 이산인구가 합법, 비합법적으로 보내진 북한도 이제 키르기스스탄을 닮아가면서 '사람 수출'을 전문으로 하는 또 하나의 주변부 국가로서의 면모를 점차 띠는 것 같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북한 체제 붕괴' 등등의 이야기를 믿으려 하지 않지만, "못살겠다"는 함성이 터져나오고 백성들이 몽둥이를 들고 죽기 살기로 권력에 덤벼드는 나라들은 대체로 오늘날의 북한과 유형적으로 흡사한 모습들이죠. 단, 북한에서는 대미, 대남 대립이 훨씬 더 강한 대민 규율화를 가능하게끔 만드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런데, 역사에서 - 러시아 10월 혁명 등의 소수 예외를 제하면 - 늘 그렇듯이 조준사격을 무시하고 몸으로 때웠던 사람들은 권력을 잡지 못하죠. 지금 과도기적 내각의 수반 오툰바예바 여사 같으면 주미 대사를 역임하는 등 경력이 화려한 관벌 출신이고, 나머지 각료들도 거의 다 기득권층의 소수파 정도밖에 안돼요.
민중은 몸을 버리면서 공의와 최소한의 항산을 구하려 하지만, 권력 게임은 정당의 명망가 등이 하는 것이죠. 민중 정당이 없는 이상 그렇다는 것이죠. 물론 민중/노동자 정당이 있다 하더라도 1917년 이후의 러시아처럼 결국 독점적으로 집권하여 신흥 지배계급의 요람이 될 수 있지만, 그래도 그 과정에서 근대화가 도약적으로 촉진되고 노동계급의 위치가 비교적으로 승격되는 등 긍정적 효과들도 발생되긴 하죠.
그러나 노동자들을 위주로 건설된 당이 없다면, 내포적인 근대화라든가 노동계급의 보다 안정적 위치 획득, 복지 증강 등을 꿈꿀 것도 없어요. 결국 이 상태에서 대퉁령궁을 백번 공격하든, 수백수천 명의 희생자를 내든, 다음날 아침부터 '사람 수출'을 위주로 하는 현실이 이어질 뿐입니다. '탈출구'는 없을 거에요.
제가 - 정치 자체를 개인적으로 꽤나 혐오하면서 - 진보신당의 당세 확장과 민노당 등 노동계급 본위의 제세력과의 전략적 연합을 간절히 바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어요. 머지 않아 대한민국에서도 부동산 거품이 빠지는 등 꽤나 심각한 '동요'들이 예상되는데, 민중 정당이 이미 준비된 채 사태를 주도하지 않(못)으면 결국 영남지벌과 호남지벌 교체 이상의 효과는 없을 걸요. '쿨'하게 들리지 않는 단어지만, '노동자 정당'은 여전히 필요하단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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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자유방임의 천국? (박노자 글방, 2010/03/27 04:19)
며칠전에, 러시아쪽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했다가 좀 의아하다 싶은 이야기를 본 일이 있었어요. 핀란드에 시집가서 가정을 이룬 한 러시아 여성의 아들 (7세)이 학교에서 "엄마가 나를 러시아로 데려갈지도 모른다"는 발언을 친구에게 했다가 이 이야기가 아동보호기구에 알려져 아이는 강제로 가정으로부터 "분리"돼 아동보호원에 맡겨졌다는 이야기이었습니다 (http://www.mk.ru/social/article/2010/02/19/434226-rebenka-arestovali-za-frazu-o-rossii.html). 핀란드의 인권단체에서 인권침해라고 반대를 하고 법정대응을 했지만, 아동보호기관의 논리는 아주 단순하고도 명쾌했습니다. 이 아동은 비록 이중국적자지만 지금 핀란드에서 영주중이니 보호대상이다, - 러시아와 같은 위험지역에 가게 될 경우에는 보호는 불가능하고 위험에 노출된다, - 이와 같은 모험을 계획하는 부모응 친권을 계속 향유할 근거가 없으니 이제 그들로부터 아동을 보호해야 한다 - 이러한 논리이었습니다. 이 경우에는 상당한 "오버"라고 보여지지만, 사실 이와 같은 아동보호기구의 "적극적 개입의 자세"는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공통점입니다. 예컨대 노르웨이에서는 비서구 계통의 이민자들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실수란, 노르웨이 사람 앞에서 자신의 아이를 약간이라도 체벌한다는 것입니다 ("토박이" 노르웨이 가정에서는 체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곧 아동보호기관에 신고가 들어가 두세번 정도 걸리면 일단 아이와 작별해야 할 것입니다. 이쪽에서는 아동에 대한 일차적 책임을 부모라기보다는 사회 전체가 진다는 관념이 아주 강하기에 이쪽 사람들 보기에는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뭐, 옛 소련만 해도 부모들이 남들 앞에서 아이 학대했다가 친권 박탈 당하는 건 꽤나 자주 있는 일이었기에, 저로서는 별로 새롭진 않습니다. 
아동 교육도 그렇지만, 사실 여기에서는 (사회의 대변자로서의)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일은 이외에도 한 두 가지는 아닙니다. 일단 문제가 생기면 진보언론이든 보수언론이든 그 해결을 - 너무나 당연하게도 - 국가에 촉구하죠. 예컨대 며칠전에 몇 명의 유대계 아동에 대해서 학교에서 이슬람계 아동들이 인종적 모욕을 가하고 때리는 등 반유대주의적 태도를 몇 번 보였다는 사실이 적발돼 아예 전국적 난리가 났습니다 (http://www.dagsavisen.no/innenriks/article476243.ece). 교육부 장관이 유대인 공동체 대변자와의 긴급 회동을 가져 그 대응책을 논하고, 홀로코스트교육 강화방침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며칠간 신문에서 거의 이 일에 대한 기사들이 줄줄 나갔습니다. 교육이야 그렇다 치고, 오슬로에서 최근 몇년 간 자가용 대수가 늘어났다는 통계가 발표되자 국가의 종합적 대중교통 대책이 미흡하다고 커다란 정치적 문제로 점화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몇년 전에 이민자 계통의 가정 중에서는 약 20%의 가정에서 아동들이 상대적 가난에 시달린다 ("토박이" 노르웨이인 가정 중의 빈민은 5%도 안되는데...)는 보고서 (http://www.reddbarna.no/default.asp?V_ITEM_ID=13311)가 발표되자 역시 정치적 폭풍이 일어났습니다. 이민자들의 빈곤율이 이리 높고 아이들까지 빈곤한 환경에서 자라 결국 빈곤을 "대물림" 받을 확률이 높은데, "좌파 정부"라는 사람들이 뭘 하면서 사냐는 아우성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회/국가의 전반적 개입의 자세를 일부 극우들이 "formynderstat" ("훈육자로서의 국가")이라고 비웃지만, 대다수 노르웨이인들에게 "사회적 성격의 문제라면 공론화해 지자체 내지 국가의 개입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아주 작은 문제라 해도 국가는 책임져야 한다"는 건 거의 "상식"에 가깝습니다. 소련은 노르웨이보다 훨씬 덜 민주적이고 덜 부유한 사회이었지만, 이와 같은 인식을 갖고 살았던 것까지는 큰 차이는 없었어요. 
이렇게 여기에서 살다가 대한민국을 생각해보면, 정말 다른 세상 같지요. 물론 "감히" 대드는 서민이나 노동자들을 때려주고 잡아주어야 할 때에는, 국가 대표자들이 무기를 들고 몇분만에 그 현장에 나타나지만, 이러한 "부자들의 해결사" 역할이나 각종 "좌파 때려잡기" (최근 명진스님의 건을 보면 그 대표적 사례가 될 것입니다) 이외에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안보/북한과 건설경기 부양, 재벌들의 감세와 해외판촉, 그리고 국제자본과의 각종 "소통" 정도일 것입니다. 이외에는 물론 아주 기본적인 민심 수습 정도 해주지요. 뭐, 등록금 인하 요구를 죽여주기 위해 등록금 후불제를 도입해 대학기업들의 장사를 돕는 정도라든가요. 물론 최근 20년간 생활보호대상자에게의 약간의 생활보조금 지급, 아주 기초적 의료보험 등 일부 "대민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그것만 믿고 인생을 사는 사람은 대한민국에는 없을 것입니다. 국가의 복지서비스만 믿게 된다면 이개 대한민국의 기준으로는 "실패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파키스탄 이민자의 자녀가 학교에서 인종적 모욕을 당하고 맞았다고 해서 우리 교육부 장관이 대책회의를 열았다는 걸 상상해보면, 아무래도 SF 소설로만 느껴지지요. 그리고 차 대수가 늘어났다는 건, 재벌언론도 재벌 정부도 꼭 "환경 문제"라기보다는 "현대자동차의 판매 실적" 차원에서 볼 확률이 큽니다. 우리 국가란, 우리의 상전네와 그 장사를 보호해주고, 우리에게야 아주 완벽한 자유를 부여합니다. 맞고 살 자유부터 백수가 돼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남대문에 불이나 지필 자유까지입니다. 자유주의의 천국인 셈이지요? 
지금 우리 좌파, 사회주의자 앞에서는 엄청난 과제가 놓여져 있지요. 약탈자와 착취자를 보호해온 국가를 "길들여" 복지사무소 역할이나 좀 제대로 할 "인간의 얼굴을 가진 국가"로 거듭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형식적 민주화보다 몇 배 어려운 과제지요. 그런데 지금의 재벌 국가가 몇년 사이에 불가피한 경제적 파국에 이르게 되면 바로 이와 같은 거시적 비전으로 좌파가 정치무대에서 일종의 "주류화"에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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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 고가 구매? (레디앙, 2010년 03월 08일 (월) 08:54:46 박노자 / 오슬로대)
대한민국 주요 대학 '권위 구매 프로젝트' 문제점
기내에서 "공짜"로 주는데다 제 서가 속의 원자료도 없고 시간이 좀 남기에 대개 <조선>, <중앙> 등을 정독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늘 놀라운 발견들은 잇따릅니다. 예컨대 이 번에, 약 2주전에 국내에 갔을 때에 포항공대 (요즘 이름은 포스텍인가 그렇답니다. 영어 공용화한다고 해서 이렇게 과감하게 내지어로 개명했습니다...)의 새로은 희소식을 <조선>에선가 접하게 됐습니다. 노벨상 등 주요 상들을 받은 "해외 석학" 10명을 초빙하는데 500억을 쾌척하여 유관업계에서 화제에 올랐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500억이 아이들의 등록금을 더 인상시켜서 얻을 것인지 중앙정부의 또 무슨 "세계화" 프로젝트 일환으로 납세자의 주머니에 가져가 "석학" 분들께 공손히 바칠 계획인지 그 기사에서 밝혀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뭐, 그것까지 밝혀주지 않아도 계획의 윤곽은 좀 보입니다. 500억에 사올 "석학"들의 "권위"에 힘을 얻어 "세계 50위 대학 진입"을 하는 등 대학가의 삼성이나 LG가 되어보자는 것인 셈입니다. 그 "50위 최고대학", "100위 최고 대학" 등 랭킹을 정하는 고약한 양놈들이 우리의 권위를 알아주지 않고 있기에 일단 비싼 돈에 가장 권위 많은 그 중의 몇 마리를 사와 그 난공불락의 "세계적 권위"의 성곽을 함락시키자, 이런 계획인 셈. 참, 제강량과 원나라 태조 성길사한이 따로 없습니다.
"권위 구매" 프로젝트는, 꼭 이공계 내지 자연과학에 국한되는 것도 아닙니다. 국내의 해외 한국학 지원 기관들이 "해외석학"이 (그 본래 전공이 중국학이든 일본학이든) 한국학 프로젝트를 해줄 경우에 커다란 연구비를 지급하겠다고 유혹하고 있으며, 서울대 국사, 국문/국어 계열부터 비롯하여 "외국인" (물론 이 경우에는 "외국"과 "영미권"은 동의어입니다) 교수 모시기에 역시 바쁜 것입니다. 몇 군데의 주요 대학은 인문학 분야 등까지 포함하여 본 학교의 교수와 "협력 연구"를 해줄 "해외 석학"에게 또 커다른 장려금을 지급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한 마디로, 요즘에 들어 "권위"를 매개로 하는 국제거래들이 대한민국에서는 대단히 활발하게 이울어지는 셈입니다. 옛날에는 단순한 "노벨상 대망론", 또는 "노벨상 따기 ...년 계획" 정도의, 다소 단순하고 일차원적 프로젝트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본격적인 "시장"이 형성돼갑니다.
사실, 우리의 신성한 권위를 저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건 꼭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일도 아닙니다. 이 세계는 국민 국가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국민국가 내지 국민국가의 조합 (유럽 연합 등)마다 자기 나름의 독특한 권위 체계가 다 잡혀 있는 실정입니다. 패권 국가의 조합, 즉 영미권의 권위는 - 극우의 헌팅턴부터 극좌의 캘리니코스까지 이데올로기와 관계없이 - 일단 나머지 국가의 교양인 사이에 적어도 "인식"돼 있지만, 나머지 국민국가 사이의 상호적 권위 체계 인식은 다소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문제의 권위 체제에 전통적 지적 패권의 무게가 실려 있을수록, 그리고 문제의 국가들이 서로간에 문화적으로 가까울 수록 권위 체제에 대한 이웃에서의 인식은 강할 수 있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일반적 경우에는 국내적 명성은 국외에서 다소의 할인을 받아 거래됩니다. 예컨대 전통적 지적 패권을 쥐고 있는 독일의 하버마스는 프랑스에서도 한국에서도 교양인 사이에 "역시 그 하버마스"지만, 독일에서는 일본의 마루야마 마사오는 과연 누구입니까? 일본에서는 (일정 수준까지 한국이나 대만에서도) "사상의 왕"인 그는, 독일에서는 "영문으로 저서 두 개를 낸" 일개 지식인으로 거래될 것이니 그 "할인"의 폭은 알 만합니다. 동아시아학이나 파시즘 연구 분야에서는 알만 한 사람들이 알겠지만, 일반 독일 교양인들이 마루야마를 알 리가 없다는 것인데, 독일 바깥에서의 하버마스의 위치와 대조됩니다. 마루야마뿐만입니까? 왕휘 선생의 경우나 백낙청 선생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를 게 없습니다. 약간의 정도 차이만 있을 분이지요. 대신에 백낙청에 대한 일본 교양인 일부의 인식, 내지 왕휘에 대한 한국 교양인 일부의 인식 등을 위안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패권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의 경우에는, 지식인의 명성은 대체로 이웃나라끼리 가장 잘 거래된다는 법. 지식인들이 맞딱드리는 상황들이 서로 일정수준까지 비슷하니 서로에 대한 관심이 일단 높다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선진화"의 과업을 이끌겠다는 우리들의 위대하신 국가적 CEO님께서 한-중-일 지식인들의 자연스러운 "서로 알기"에 전혀 만족하려 하지 않으십니다. 삼성 휴대폰들이 미국 시장까지 "막 치고 들어가는" 것처럼 한국 대학과 대학 교수의 "권위"도 이제 패권국가의 지식 시장을 쥐고 흔들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위대하신 지도자의 3년(남은 임기)지계. "빨리빨리"해야 되고 시간이 없고 돈은 (아직까지) 많으니까 일단 "치고 올라간다"는 것은 "돈을 갖고 치고 올라간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모범적인 기업국가 건설을 향하여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고 있는 "스파클링 코리아"의 국가 브랜딩 (branding)에 약간이라도 도움 줄 양놈마다 아낌없이 퍼줄 터이니 올 사람이 빨리 오라는 것입니다.
글쎄, 응용과학 분야의 경우에는 "파격적 투자"가 어쩌면 (제대로 관라할 경우에는) 어느 정도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명의 "석학"만을 집중적으로 양성하다가는 제2, 제3의 황우석이 생길 가능성도 높지만, 비싼 설비가 필요한 이공계/응용과학에 한해서 금전적 투자의 효과는 분명하긴 합니다. 그런데 문학이나 인문학의 "권위" 문제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을 경영하고 있는 건설사 출신 분들이 조금 잘 모르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들이 알아야 할 게 대체로 세 가지 정도입니다:
1) "파격적 연구비"를 보고 스파클링 코리아의 품에 안기려는 사람은 - 그가 비록 하버드에 속한다 해도 - 꼭 좋은 인문학자는 아닙니다. 세상의 월러스타인들에게는 돈보다 말이 잘 통하고 같이 연구하기가 좋은 "동료"들이 더 중요한데, 영문 학술지 논문 편수로 학자의 질을 재는 국내 대학에서는 "깊은" 학자가 구조적으로 버티기가 힘듭니다.
2) 인문학이나 문학 등에서는 "빨리빨리"는 절대 통하지도 않습니다. 일본 문학의 세계화는 최초 영문 "일본 문학 통사" 출판과 함께 이미 명치 시대 말기에 시작됐기에 오늘날 (일본적 맥락을 거의 떠나버린, 후기 자본주의의 모범적 작가라고 할)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렇게 세계적 "권위의 사다리"에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해외 한국학의 경우에는 아직은 기초적 작업 (예컨대 제대로 된 영문 '한국근현대 문학통사')마저도 해놓지 않은 상태니까 몇년간의 "역량 축적 시기"는 어차피 필요할 것입니다.
3) 지역주의라는 것은 미국 패권이 쇠약해지는 탈냉전 시기의 특징이기도 하니 아무리 하얀 낯짝들을 사오는 데에 납세자들의 혈세를 많이 바쳐도 함석한이나 김우창을 가장 제대로 이해할 곳은 당분간 일본이나 중국일 것입니다. 그것을 "천하게" 여기는 것보다는 동아시아적 지식인들의 상호 연대를 위한 기본적 조건부터 만들어주는 것은 더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슨 말을 해도 피와도 같은 아이들의 동록금은 아마도 계속해서 "석학 모시기"에 이용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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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스탠더드와 타이타닉 침몰 (레디앙, 2010년 02월 07일 (일) 10:50:52 박노자 / 오슬로대)
"한국 주류들, 국제표준 앞세워 기득권 재생산 합리화"
글로벌 스탠더드 말고는, 이 사회의 주인들이 그 기득권을 확대, 공고화, 재생산하는 과정을 더 잘 합리화할 표현도 없을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한반도 엘리트들이 주어진 대외적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으로 이름나기도 하고, 외부적 모델들을 이용하여 국내적 조건에 맞는 그 '국내판'을 만들어서 외부적 원칙과 토착적 유산이 잘 결합되는 시스템들을 만드는 걸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박정희식 개발 모델도 1950~60년대에 세계적으로 유행한 국가 주도의 개발(관치 금융, 중공업 위주의 공업화 주도 등)과 당대 일본식 외향적인 수출 주도형 성장, 그리고 국내적 요소(일제말기식 병영국가 체제, 군벌과 재벌의 '지배 블록' 등)의 매우 재미있는 복합물이었습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만으로 설명이 되지 않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의 국내화에 성공한 엘리트들이 꽤나 지구성이 강한 지배체제를 만드는 데에 능숙하다, 이 정도면 중립적 평가가 될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고 놀다가는 학교 종이 땡땡땡 하는 소리를 못들을 때가 있습니다. 즉, 글로벌 스탠더드 그 자체가 갑자기 낡아빠진 시대착오적 것이 돼버린다면, 거기에다 명운을 건 한반도 주인네들이 약간 불편한 입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죠.
일제 말기 대일본제국 판도 안에서의 글로벌 스탠더드인 천황폐하 만세, 황군무운장구 기원, 귀축영미 박멸, 정신 총동원 등을 갖다가 신나게 병정놀이하고 상것들을 총알받이 만들기에 정신이 다 나간 한반도의 '엘리트'들은, 과연 1945년 8월 15일에 어떤 감상을 했을까요? 공든 탑이 무너지고, 본인들이 졸지에 제일 순량한 황국신민에서 '친일파'로 전락돼 만인의 노골적 증오의 대상이 됐죠. 반대로, 도조 히데키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완고하게 거부해 감옥과 벽돌공장을 오가고 있었던 박헌영이나 은둔생활과 물밑 '건국' 조직 작업을 택한 여운형 등은 장안의 인기를 한 몸에 모았지요.
지금 주인님들이 '글로벌'로 상정하는 나라들, 즉 미국과 일본이 겪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 저들의 스탠더드를 계속 신주단지로 모시고 만동묘 제사 지내 듯하는 것은 1945년 5월에 녹기연맹 시국 강연을 댕기는 것과 거의 같은 수준의 오판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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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상식-양심 문제로 단순화해야" (레디앙, 2010년 01월 31일 (일) 23:42:46 박노자 / 오슬로대)
레닌과 카우츠키를 넘어서…'거리 정치' 통해 정치 영역 확장을
일부 카우츠키의 말이 아예 예언처럼 들려서 그런 것인가요? 예컨대 "계급독재를 빙자한 당 독재는 결국 폭력 기구들의 독재, 그리고 일인 독재로 변질되게 돼 있다"는 카우츠키의 말을 레닌이 호되게 반박했지만, 레닌의 서거 이후의 러시아의 역사를 약간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얼마나 적중했는지 알 것입니다. 폭력자 자신들을 변질시킬 폭력이라는 수단의 위험성에 대해 예고하고 있었던 카우츠키의 이야기를, 대형 폭력을 하도 많이 겪어온 20세기 후반의 소련에서는 어디까지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하여간, 이 책을 읽은 뒤로는 제가 레닌보다 어쩌면 '부드러운 사회주의자' 카우츠키에 대해 더 관심을 갖는 사람이 됐는데, 소련이 곧 무너져 새로운 세대에게는 레닌도 카우츠키도 조롱거리이자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1990년대에는 당대의 세계적인 특징인, 우파들이 벌이는 '승리자들의 향연'과 (강온의 차이 없이)사회주의를 위시한 모든 '거대 담론'에 대한 공격이 개시됐습니다. 돈벌이와 소비의 담론을 제외하고요. 물론 벌이와 소비는 '담론'이라기보다는 이미 다수의 고질적 중독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다시 읽기 하는 지금 저는 과거와 달리 차라리 레닌의 입장에 더 많은 공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카우츠키의 '민주적 절차 그 자체'의 가치에 대한 변론에 레닌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란 결국 유산계급독재에 대한 가식이며 노동자들을 속이는 기만 전술"이라면서 '민주적' 열강들이 벌이는 식민지 반란의 유혈 진압 등을 예로 든 것이었습니다. 물론 좌파가 나름의 정치력을 가진다면 부르주아 민주주의도 '가식'이라기보다는 적어도 좌파적 의제 알리기의 도구이자, 좌파의 위력화, 대중화의 도구가 될 수 있긴 하지만, "민주 열강들도 식민지 노예들의 피를 그 손에 마구 묻힌다"는 레닌의 말도 어쩌면 정확한 예언이라 할 수도 있지요.
카우츠키의 정치 무대였던 '민주국' 독일이 아프간에 보낸 군대가, 또 하나의 '민주 열강'인 미국의 폭격기에 탈레반이 도취했다는 연료 적재 차량의 폭격을 주문했다가 결국 100여명의 아프간의 어린이와 여인 등 민간인들을 참살케 한 최근의 사건을 보시기를. 독일이 '민주국'이라고 해서 독일 장교가 주문한 폭탄을 맞게 된 아프간 어린이가 덜 아프게 죽게 되는 것인가요? 거기에다 더 치욕스러운 것은, 아프간 파병을 적극 추진한 독일의 주요 정치 세력 중의 하나는 바로 카우츠키가 몸을 담았던 사민당이라는 것입니다.
레닌과 트로츠키의 '잔혹성'을 (상당 부분 사실적 근거 있게) 비난한 이들의 후예들이 이제 아프간 아이들의 피를 손에 묻히는 걸 보니 어떤 슬픈 아이러니를 느낍니다. 참, 유일하게 아프간 파병을 반대해온 좌파당은 카우츠키보다 차라리 레닌의 후예라고 봐야 할 터인데, 그것까지 생각한다면 거의 100년 전의 카우츠키와 레닌의 격한 논쟁을 단순하게 '민주주의자 카우츠키 대 독재자 레닌'이라고 처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럽 중심주의적인, 너무나 유럽 중심주의적인 '민주주의자' 카우츠키와 달리 '독재자' 레닌은 식민지 노예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진 점, 레닌의 혁명론이야말로 식민지 노예들에게 훨씬 더 설득력이 강했던 점 등도 망각하면 안 될 것입니다.
하여간, 카우츠키와 레닌, 즉 사민주의와 혁명적 공산주의 두 원조를 생각하면, 둘 다 결국 역사의 무대에서 패배자가 됐다는 생각도 듭니다. 카우츠키가 그토록 좋아했던 '민주적 절차'대로 히틀러가 집권하여 카우츠키가 노년을 보냈던 오스트리아를 합병시키자 카우츠키가 거의 죽기 직전에 고통스러운 망명길에 올라야 했던 것이고, 레닌이 그토록 믿었던 '혁명적 전위정당'은 결국 보수적 관료단체가 돼, 끝에 가서 아예 자기 파괴와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자본주의의 복귀로 진행한 것입니다.
카우츠키가 그토록 헌신했던 독일 사민당이 사실상 '수정신자유주의' 길로 가버렸으며, 소련 공산당을 계승했다는 러시아연방공산당은 스탈린주의와 종교적 민족주의의 범벅이가 돼 보기 역겨운 꼴만 계속 보여줍니다. 고전적 의미의 카우츠키 노선도 레닌의 노선도 1990년대 신자유주의적 폭풍을 견디지 못한 것인 셈이죠.
단, 레닌의 후예라고 할 급진적인 사회주의자들이 그나마 신식민지 침략전쟁이나 복지국가 체제 해체에 대한 반대를 훨씬 더 강력하고 원칙주의적으로 한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 카우츠키의 후예들과 달리 - 권력과 관계가 멀어서 그런 부분도 있죠. 신자유주의적 사회에서 일단 집권에 성공한 이상 '혁명 정신'은 말할 것도 없고, 단순한 인간적 윤리라도 그대로 간직하기가 힘든 건 사실입니다.
그러면, 카우츠키도 레닌도 궁극적인 이상으로 공통적으로 삼았던 노동자들에 의한, 노동자들을 위한 '민주적 사회주의', 각자가 제 일터의 주인이 되어서 신나게, 자신의 자아실현을 이루어내면서 일할 수 있는 '즐겁고 평등한 사회'를 향해서 나아가자면, 카우츠키나 레닌에 대한 집단적 기억들이 이제 가물가물하게 된 이 무서운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여기에서 한 가지 간단하게 지적하자면 진보정당의 전통적인 '정치 투쟁'(비혁명적 상황에서는 당연히 선거 형태의 투쟁)도 중요하지만, '정당'의 의미 자체가 점차 쇠퇴해가는 관료/자본 주도의 이 시대에는 무엇보다 구체적 문제들을 중심으로 하는 광범위의 '연합'들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국회에 10명의 민중 의원들을 보내든, 극적으로 30~40명을 보내는 데에 성공하든,(이거는 거의 '기적' 이야기죠) 어차피 신자유주의의 질주를 막기가 역부족일 수는 있지만, 신자유주의의 주요 병폐들을 여타의 사회세력들과 연대해서 막을 수 있다면 이건 벌써 모두들의 사기를 진작시킬 '승리'일 것입니다.
문제별 연합이라면, 예를 들어서 '파병 저지를 위한 연합', '일체 체벌의 무조건적 철폐를 위한 연합', '대학 평준화를 위한 연합' 등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만약 진보정당이 한국 군인들이 아프간인들의 피를 손에 묻히는 꼴을 보고 싶지 않은 모든 상식인들을 하나의 운동으로 단결시켜 파병과 같은 망국적 망동을 정말 정지시킬 수 있게 된다면 이는 국치를 면하게 하는 대경사일 것입니다. '거리의 정치'를 통해 '정치'의 영역을 넓혀 일상을 정치화시키는 동시에 정치를 일상화시키는 길, 그리고 사회주의를 무엇보다 '상식과 양심의 단순한 문제'로 만드는 길은 제가 보기에는 장기적으로 카우츠키와 레닌의 한계를 동시에 뛰어넘을 길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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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그 반동성을 말한다 (레디앙, 2010년 01월 24일 (일) 10:50:54 박노자)
[민족주의와 상황론적 변증법] 객관적 실체 & 부정적 함의
민족주의(nationalism)란 '근대'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근대 세계의 주된 이데올로기죠. 근대성의 이념적 좌표에서는 '민족주의'와 거의 비중이 비슷한 개념들은 '규율'이나 '위생' 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면 '규율'을 추상적으로 비판하는 건 의미가 있을까요? 특히 억압성이 짙은 자본 중심의 규율주의는 비판 대상이 돼도, 우리가 아예 대도시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규율, 시간표라는 근대적 의미축을 비판해봐야 별로 얻어지는 바 없습니다.
'한국인'이라는 유일한 이유로 김연아가 일본 계통의 경쟁자를 눌러 이겨야 한다고 응원하는 것은, 제가 보기에는 생산적 기능이 없는, 즉, 역기능만 발휘하는 '민족주의'의 한 교과서적 사례입니다. 도대체 이 젊고 기술이 대단한 '규수'들이 서로 나라 이름을 내세워 '경쟁'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저로서 이해가 안가기 때문이죠. 뭐, 그냥 본인도 즐기면서 남들을 예쁜 빙판 위의 춤으로 즐겁게 해주면 그만이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런 식의 '민족주의'는 백해무익이라 해도 근대 국민국가가 만들어낸 민족의 객관적 실체를 당연히 무시 못하죠.
어릴 때부터 표준화된 국어를 '모국어'로 익힌 근대인은 사투리들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 민초 문화도 외국 문화도 어디까지 '타자'로 취급할 수 밖에 없는 한편, '우리'(국민 국가의 표준적 언어, 이념 등을 담은) 신문, 영화, 소설 등을 섭취하면서 자랍니다. 즉, (대한민국 테두리 안에서 국가화된) 민족(국민)의 일원으로 자라게 되는데, 이는 무시 못할 객관적 사실이죠. 좌파의 입장에서는, 이 사실을 긍정시만 못합니다.
표준화된 국어부터 참 무서운 무기입니다. 그런데 일면으로는 국문학을 섭취하는 과정에서 조세희 선생의 『난쏘공』을 한 번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뉴타운' 같은 단어를 듣기만 하면 벌써 그 실체를 파악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근대 민족/국민 문화가 형성되는 것은, 일면으로 좌파 사상의 대중적 착근의 길일 수도 있죠. 민족/국민 문화의 공간은 늘 이념적 투쟁의 공간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근대 국민국가들의 세계에서 민족이란 비판만으로 상대할 수 없는 객관적 실체라면, '민족주의'의 정치적 함의는 국제 자본주의 체제의 당면 상황, 그 체제 속에서의 해당 국가의 위치와 역할, 그 체제 핵심부와 해당 국가의 관계 유형, 그리고 해당 국민국가의 지배형태 및 계급투쟁의 현 상황 등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즉, 민족의식/민족주의란 그 자체로서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고 각종 국내외적 투쟁 상황에서 그 관계적(상대적) 의미를 득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게 바로 사물의 변화무쌍함, 불변하는 현실이 존재하지 않다는 걸 직시하는 마르크스주의적인 변증법적 접근입니다.
예를 들어서 100년 전에 세계체제 핵심부의 영미의 대리자로서의 일본에 의해서 잠식되어가는 세계체제 낙오자 조선에서는 신생 민족주의는 당연히 일정한 진보성을 담지했죠. 안중근의 머리 속에서 '황인종과 백인종의 영원한 싸움' 등등 온갖 반동적 이데올로기들의 편린들이 다 뒤섞여 있었지만 이토를 쏜 권총은 객관적으로는 이토를 열렬히 응원했던 영미권의 '주류'도 쏘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조선에 대한 가해는 일본만의 가해가 아니고 세계 자본주의 체제 전체의 가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가장 뛰어난 민족주의자들은 나중에 이동휘, 김철수, 김명식처럼 다 공산주의로 전환하죠. 공산/사회주의가 보급된 1920년대 이후의 조선 민족주의는 대체로 보수화되고, 신채호처럼 가장 격렬하고 비타협적 사람들이 아나키즘으로 전환하고, 김원봉처럼 가장 머리가 잘 돌아가는 아나키스트들이 또 공산주의에 근접하지만, 그래도 일부 민족주의자들의 구상에는 진보적 함의는 좀 남긴 하죠.
민세(안재홍)의 민족국가 구상(초계급적인 통합민족국가를 건설을 주장함-편집자) 같으면, 공산주의자들도 충분히 그 투쟁을 펼 수 있는, 그런 '새 나라'였다는 것이죠. 문제는, 민세나 만해 같은 '착한 민족주의자'들이 민족진영의 실세가 아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라 없는 시절이라 해도 구체적인 시기, 민족주의의 분파마다 그 정치적 함의는 많이 달라집니다. 대체적 추세는 민족주의의 보수화, 그리고 온건 민족세력의 친일화임에도 말씀입니다.
그러면, 지금 같으면 과연 어떨까요? 오늘날에는 대한민국에서는 '민족주의'란 세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1. 혈통적 민족주의 - 모든 혈통적 조선인(남북한인, 각종 교포 포함)에 대한 소속/충성 의식을 가지며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 형태. 이와 같은 분들은 교포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 단체에서 가끔 만나볼 수 있는데, 전체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소수에 속합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묵시적 국시'상 가난한 교포(재러, 재중 교포)들은 저임금 노동력과 해당 국가로의 자본 침윤의 도구 이상의 의미는 없으며, 부유한 교포(재미, 재일)의 '주류' 사회에의 진출과 이에 따르는 '주류화', 즉 탈민족화를 거의 비판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분들도 소수자이긴 하지만, 대한민국에서의 외국인 노동자의 다수가 혈통적 조선인이 아닌 오늘날 현실에서 혈통적 조선인을 특권화시키려는 이런 분들은 과연 '진보'인가요? 저는 전혀 아니라고 봅니다.
2. 북한을 중심으로 하는 '자주주의적' 내지 '통일지상주의적' 민족주의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주사파'뿐만 아니고 '반미 자주통일'을 외치는 보다 광범위한 '좌파적 민족주의자'들도 여기에 속할 것입니다.
세계체제의 핵심부를 상대로 하는 이 분들의 일부 요구사항 - 미군 철수나 북한에 대한 미-일-한의 공격적 태도의 철퇴 등 - 은 객관적 의미에서 일정한 진보성을 담지한다고도 볼 여지가 없지 않지만, 문제는 이 분들이 세계체제 속에서의 갈등의 축을 '계급'이 아닌 '국가/민족'으로 잡는 데에 있습니다. 즉, 이 분들이 북한이라는 국가에 친근한 입장에 서며, 미국/일본이라는 국가들을 반대하지만, 이 입장 속에서는 북한의 민중도 미/일의 민중도 그 어떤 독립적 변수가 안 되죠.
개별적 요구는 외형상 '진보적'일 수는 있지만, 이러한 입장의 골자는 어디까지나 자국 일본을 '무산계급성의 국가'로 보고 세계적 투쟁의 축을 '일본/일본을 맹주로 하는 아시아 대 백인들의 부유한 나라'로 설정한 기타 이키(北 一輝) 류의 전전의 일본 극우파와 크게 다를 게 없습니다. 즉, 이 그룹 자체는 '진보적'이긴커녕 어찌보면 일반적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보다 더 위험한, 파쇼적 성질의 사람들이라고 봐야겠습니다.
3. 남한을 중심으로 하는 '국민주의적' 민족주의. 이는 극우/보수파는 물론이고, '시민'을 내세우는 노빠류의 자유주의자나 "대한민국을 인정하자"는 국산 사민주의자들의 공동분모입니다. 물론 미국의 군사적 보호령이자 준주변부의 비교적으로 작은 국가인 대한민국이 세계체제의 핵심부에 의해 '침탈'을 당하는 상황에서는 이와 같은 민족주의도 외피적 차원에서는 약간의 '진보성'을 띨 수 있긴 하죠. 예컨대 지난 번에 미국산 쇠고기를 둘러싼 난리를 상기해보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아랍에미레이트에 어쩌면 재앙이 될 원전이나 팔고, 인도 오리사주에서 토착민들을 추방시키는 제철소나 짓는 오늘날 대한민국은 종합적으로 봤을 때에 '피해자'라기보다는 '중간 사이즈의 가해자'에 더 가깝다는 데에 있죠.
한국 자본이 미 제국의 보호막 하에서 전세계에서 노동력 착취, 자원 갈취, 시장 침투 등을 감행하는 오늘날 상황에서는 이 형태의 민족주의는 불가피하게 '제국주의적' 특색을 띠게 돼 있습니다. 뭐, 유시민씨와 같은 대표적인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객의 이라크 파병 관련 입장의 변천사를 고찰해보시면 대체로 뭔 말인지 아실 거에요. 아주 재미있는 연구대상입니다.
위에서 고찰한 바대로, 실체로서의 '민족'은 상당한 양가성을 지닌다 해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3 가지 류의 민족주의 중에서는 - 비록 특정 요구가 정당할 수도 있지만 - '진보적' 민족주의란 전무합니다. 그러니까 민족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이상 민족주의가 어떤 형태로든 노동계급의 운동에 영향을 미칠 사실을 인정할 수는 있지만, 민족주의의 부정적 함의에 대해 대중적 관심을 촉구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사회주의자의 임무입니다.
이는 추상적인 '민족주의 비판'과 다른 입장이고, 어디까지나 '지금, 여기에서의' 민족주의의 의미를 중심에 두는 입장이죠. 민족주의는 꼭 '반역'만은 아니지만, 오늘 여기에서는 그렇게 볼 여지는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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