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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글 (2012년)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8092151125&code=940100
박노자 교수 “용역폭력은 노동자에 잔혹한 한국 기업·사회 구조의 반영” (경향, 이서화 기자, 2012-08-09 21:51:12)
ㆍ좌파 논객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대표적 좌파 논객인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39)는 SJM과 만도의 직장폐쇄 사태로 불거진 용역폭력 문제를 두고 “노동자들을 머슴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한국 기업의 적나라한 본질”이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지난 6일 경향신문과 한 온라인 화상 인터뷰에서 “한국 기업은 비폭력일지라도 노동자가 약간의 ‘반항’이라도 시도하면 스스로 유사 경찰이 돼 사유화된 폭력을 행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 공화국이 지속되는 한 이런 일들은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라며 “노동자들에 대한 살인 직전의 폭력이 더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가 기업 공화국을 압박하지 않는 이상 개별 기업들이 노동자들을 아주 강력하게 압박해 나갈 것”이라며 “이것이 바로 좌파가 필요한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지난달 연구차 한국을 찾아 며칠간 머물렀다. 그는 그때 “우리가 걱정할 부분은 제대로 걱정 안 하고 걱정 안 할 부분을 걱정하는 듯해 의아했다”고 밝혔다. 다들 ‘대선, 대선’ 하는데 정작 목전에 닥친 경제침체 문제에 대해선 아무런 대책도, 논의도 없다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대책은 분배를 골고루 하는 것이지만 현재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분배나 복지 담론은 수사적 차원에만 머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대선이야 4개월 후에 끝날 거고 대통령이 누가 된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체제가 바뀌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표피적이고 시기적인 현상보다는 우리 사회의 기본 구조가 무엇인지, 생산모델이 무엇이고 지배구조가 무엇이고 기본 모순이 무엇인지, 기본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용역폭력 등) 노동자들에 대한 잔혹성도 여태까지 변함없는 한국 사회 기본 구조의 반영”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겨냥하고 있는 것은 ‘재벌’이다. 박 교수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재벌그룹들의 지배·통제 기술이 최근 훨씬 더 강화됐다”고 밝혔다. 한국 경제의 거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재벌의 운영구조를 ‘세습제’가 아니라 ‘사회화’하자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박 교수는 “한국 경제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고 하도급 기업들한테 상당한 영향을 주는 주요 대기업들은 개개인이 소유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소비자와 노동자, 지역주민, 국가·사회 대표자들이 이사회를 구성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는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한진중공업, 삼성전자, LG전자 등 핵심 기업들을 사회가 운영함으로써 거기서 나오는 이윤을 사회가 재분배해 복지정책에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렇게 해야 비정규직 양산도 막을 수 있고 하도급 기업에 대한 단가 내리기 압력 같은 것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근혜·안철수·문재인 등의 대선 후보군에 대해서도 그는 “재벌 국가에 충실하게 복무하는 재벌 정치인들”이라고 잘라 말했다. 박 교수는 “공안탄압 차원에서 덜 위험하다고 이야기할 순 있어도 문재인이나 안철수 또한 재벌들을 옹호하고 재벌 공화국의 지속을 원하는 면에선 박근혜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재미있는 건 그들이 앞다퉈 복지 공약을 내놓고 복지 공약으로 승부를 겨루는 그 광경 자체”라고 말했다. 이어 “정확히 얘기하면 그들은 다수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하는 거고, 이제 다수가 성장보다는 분배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벌 정치인인 그들로선 그 복지 공약들을 99% 실천 못할 게 뻔하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박 교수는 “박근혜 후보가 저임금 가정 출신의 대학생들에게 무상교육을 시켜준다고 했는데 저임금 가정 대학생들이 30~40% 정도 되는 걸 감안하면 부자들이 내는 세금을 지금보다 적어도 2~3배는 높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4분의 1 수준인 종합부동산세도 영국 수준으로 올리고 기업세도 유럽연합(EU) 평균 정도로 높여야 그 공약을 실현할 수 있는데 박 후보가 그렇게 할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그는 “진짜 복지를 하자면 재원 마련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재원 마련을 위해 부유층을 얼마나 강력하게 압박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4·11 총선에서 진보신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섰다. 박 교수는 진보정당의 역할에 대해 “노동계급의 힘을 키워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88만원 세대’ 등 노동계급의 하부에 편입될 수밖에 없는 젊은 비정규직, 비정규직마저 될 수 없는 젊은 백수, 백수가 될까 말까 한 대학생, 대학생이 될까 말까 한 고등학생 이 모두에게 그들의 상황이 왜 비참할 수밖에 없는지 설명하고 대안적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 좌파와 진보정당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인간 뇌에서 ‘양심’을 본 적은 없다” (레디앙,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 2012년 7월 11일, 10:12 AM)
인간의 뇌 속에서 지난 세기의 가장 위대했던 한 외과의사가 보지 못했다는 그 ‘양심’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요? 저는, 맹자의 설대로 양심의 뿌리는 선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삶을 좋아하게 돼 있고 아픔과 죽음을 두려워하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 누구나 자신과 다른 사람 사이의 일체감을 어느 정도 느끼니까 자신의 아픔과 죽음 뿐만 아니라 남의 아픔과 죽음도 절대 바라지 않을 만큼의 “착한 뿌리”(善根)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파쇼들의 수용소에서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들을 대량학살해놓고 안락하게 모차르트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셨던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그건 너무나 극단적인 사례지만, ‘양심’의 완전한 파괴의 경우들을 우리가 가까이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병이 많고 운동하기 어려운 직장인 아저씨를 “실적이 나쁘다”고 하여 해병캠프에 억지로 보낸 상사들 은 과연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들인가요 (참, “실적이 나쁘다”고 해서 자기 개선하라고 군부대로 보낸다는 그 군국주의적 발상은 끔찍하지 않는가요? 이건 정말 나치 독일의 수준이 아닌가요?)? 아이들이 “공부”를 못한다 싶으면 그들을 때리고 “노예”, “천민” 등으로 분류해 끔찍한 자기비하 의식을 주입시킨  선생님과 그런 행위를 두둔해주고 방치해온 학교는 도대체 어떻게 된것인가요?
과거의 섬뜩한 시절로 가지 않아도, 우리 주위에서도 ‘양심’이 완전히 상실되어지는 경우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양심’의 빈 자리를 “군대에서 며칠 지내보면 명령을 정확하게 실행하는 진정한 사나이가 되겠다”는 군사주의적 신념과, “인간은 그 교환가치일 뿐이다. 교환가치를 ‘업적’, ‘실적’이 만든다’는 법칙을 초교생들에게까지 적용해 그들을 업적주의적 규율에 순치시키는 끔찍한 성공주의와 훈육주의의 결합이 그대로 점하게 됩니다.
‘양심’은, “도망친” 일은 없습니다. ‘양심’의 뿌리야 태생적이지만, ‘양심’ 형성의 과정은 후천적이고 사회결정적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양심’은, 그 뿌리는 어떻든간에, 궁극적으로 사회적 현상입니다.
남한 아이들이 사회화 과정에서는 “노력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된다. 낙오자는 불쌍하지만, 자업자득일 뿐이다”라는 시장적 업적주의의 금과옥조를 완벽하게 익히잖아요. 그런 그들은, 나중에 노숙자를 보더라도, 노숙자들을 양산하는 사회가 범죄적인 사회라는 생각을 하는 것보다는, “노력을 안한 사람인가 보다”라고 하여 무심히 지나갑니다.
태생적인 측은지심, 남의 아픔에 대한 공감의 능력이 밟혀 죽고, 그 대신에 예컨대 국민국가의/자본주의적 “기회균등”에 대한 시비지심은 ‘양심’의 자리를 점거하게 됩니다. 평균적인 남한인은 용산참사보다 권력층 자녀들의 병역비리에 훨씬 더 분노합니다. “성공”을 다투는 “출세”의 시장바닥에서 누군가가 자신이나 자신의 자녀보다 군대에 다녀오지 않아 더 유력한 출발선에서 시작했다는 것은 승자독식 우승열패의 정글에서의 심각한 ‘반칙’입니다.
그런데 민중들을 억압, 탄압하는 전,의경으로 차출 될 수도 있고, 잘못하면 미 제국의 대북, 대중 침략에서 총알받이로 이용될 수도 있는 “군대”에 도대체 왜 가야 하는가 라는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은 거의 원천적으로 밟혀 죽어버린 듯합니다. 나치들이 공산주의자나 유대인, 슬라브인들을 죽이는 일을 “비양심적”이라고 보지 않았듯이, 우리가 “우리 나라”와 그 기둥서방 격인 미 제국을 위한 살인 내지 살인준비를 죄악시하지 않습니다.
남한 대학에 진학하는 탈북자들이 가장 경악하는 대목은 뭔지 아십니까? 북조선이나 중국, 쏘련 학생들과 달리 남한 학생들이 죽어도 자기 노트를 빌려주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서입니다. 정상적인, 즉 자본주의적인 경쟁의식 내면화 과정이 아직 남한처럼 이루어지지 않은 사회의 출신으로서, 조직생활의 제일 원칙이 상사에 대한 경쟁적인 아부와 비교적 약한 구성원의 따돌리기, 괴롭히기가 되는 남한 사회는 실은 “사회”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건 “사회”라기보다는 야수화된 개인들의 기계적 조합에 더 가깝습니다. 한데 우리에게는 이건 정상, 우리가 유일하게 아는 현실입니다.
나치 독일의 “정상적” 독일인 시민이 쏘련이나 폴란드에서 징용 당해 끌려온 Ostarbeiter (“동쪽으로부터의 노동자”)에게 “일이 어렵지 않냐”고 걱정해주고 묻지 않았듯이, 서울의 여느 식당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고생하는 연변 아주머니에게 우리가 “삶이 힘들지 않냐”고 보통 묻지 않죠. 수십만의 외국으로부터의 “유사 노예”들이 우리 삶을 더 풍족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우리에게 당연지사입니다.
업적주의적이다 싶은 세계질서에서 저들의 출신국들이 우리에 비해 낙오자로 인식되니까요. 아, 우리들의 진실된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은, 이미 사회화 과정에서 그냥 멀게 되는 것입니다. 또, 양심의 눈이 멀어야 이 지옥에서 남부럽지 않게 잘 버틸 수 있는 것입니다. 남의 시체들을 밟아 올라가서요.

 

터부들의 사회, 배제당한 언어 (레디앙,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 2012년 7월 13일, 11:48 AM)
우리가 북조선과 같은 사회를 비판할 때에 늘 그 사회의 성역들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입니다. 세습적인 통치자들을 바꿀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비판마저도 할 수 없는 게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은 아마도 가장 일반적일 것입니다. “언어의 단속”이라는 북조선 지배자들의 전략이 해방적 의미의 근대성의 근본적인 원칙들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야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전략이 남한 통치자들의 전략에 비해서 별로 효과적이지도 않다는 것도 사실인 듯합니다. 통치자들을 신주단지처럼 모셔온 사람들이, 그 통치자들이 전혀 신성시되지 않는 새로운 환경 속에 들어가게 되면, “숭배”의 태도는 너무나 쉽게 “환멸”과 “증오”로 바뀔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남한에 와서는 오히려 “강경 반북주의자”가 되는 일각의 탈북자들을 보시면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실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는, 이쪽 전략은 훨씬 효율적입니다. 바로 “반대자들의 주변화” 전략입니다. 일부의 테마들이 이쪽에서도 사실상 공식/비공식 검열에 걸려서 공석에서 논의될 수 없지만 - 북조선 문제라든가, 김구 등 한국 극우파 민족주의 아이콘들의 진면목, “대한민국 정통성”의 허구성 등등입니다 - 나머지에 대한 “말”은 직접 단속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류언론이나 공식 서술 (교과서, 박물관 전시 등등)에서 배제된 소수자들의 발언들이 게토화되어, 소수자 차별과 배제에 익숙해진 다수에게는 단지 “또라이들의 이야기”로 비추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수에게는 어떤 새로운 환경에 가도 전혀 잘 동요되어지지 않는 사상적 “확신”이 생깁니다. “언어의 단속”이 만들어낼 수 있는 “믿음”에 비해서 훨씬 더 강한 “확신”이죠.
요즘 박근혜 공주님까지도 열심히 거론하는 “경제민주화” 문제를 보시지요. 신규 순환출자 규제부터 오너 (창업주 가문 - 사실상의 세습적 통치자)의 지배권 제한 내지 철폐를 위한 보다 포괄적인 규제까지는 다수가 접할 수 있는 언론에서는 쉽게 등장될 수 있는 언설입니다. 장하준 류의 재벌옹호론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김상봉 교수의 “노동자 경영권 획득” 이야기만 해도, 이미 “주류”가 완벽하게 묵살하고 있는 수준입니다. 이 정도의 “위험한 말”이면 남한의 공론장 구조상 게토화/주변화의 대상이죠. 김상봉 교수보다 더 “왼쪽”에 속하는 이야기는? 공론장에서는 그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예컨대 삼성전자의 경영에 노동자들이 참여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기업이 주식회사로 남자면 그 주식의 대부분은 국유화되고 나머지는 노동자들에게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보통의 남한 사람이 평생동안 접할 확률은 몇 % 정도일까요? 아마도, 보통의 북조선 사람이 고 김정일 위원장이 백두산이 아닌 하바롭스크 근처의 한 병원에서 “유리 김”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접할 확률과 대략 비슷할 것입니다.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가 “북조선은 악한 독재, 우리는 선한 민주국가”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요?
지금 컴퓨터를 오래 쓸 수가 없어서, 한 가지 사례만 더 들겠습니다. 북조선의 세습적 통치자들의 공식적 역사가 상당부분 가공, 윤색, 과장, 허구로 짜여져 있듯이, 남한에서 가르쳐지는 공식적인 역사서술은 기본적으로 근대지상주의적인 목적론적 도식에 불과하고 광의의 “신화”에 가깝습니다. 한영우씨 등 관악학파 거두들이 애써 조선왕조 건국의 “진보적 의미”, “신진사대부”들의 “합리성”, “근세사”로서의 조선왕조사 성격 등을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많은 의미들에서는 성리학적인 지주-관료들의 등장과 집권은 조선사회 약자들의 삶의 조건을 악화시켰습니다.
노비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남과 동시에 그 신분 해방의 길이 막히고 말았고, 특히 여성들의 지위가 빠른 속도로 하락되기 시작했습니다. 세종대 이후로는 여성들의 “풍기 바로 잡기” 차원에서 그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까지 처벌되어지지 않았던 “간통사건”들에 대한 철저하고 잔혹한 수사, 처벌이 시작됐습니다. 유감동 (兪甘同)과 같은 재능 많은 여성 시인이 (실제로 기녀 생활했다 해도 양반 신문이라는 이유로) “40여 명의 남성들과 관계했다”고 해서 관비가 돼 곤장 맞고 머나먼 지방으로 쫓겨나야 됐는가 하면 관료 이귀산의 아내 유씨가 자신이 옛날부터 사랑해온 남자와 간통했다고 해서 사형까지 당하고 말았습니다.
세종이라는 임금은 “지나치게 자유로운” 여성들을 “모범 케이스” 삼아 성리학적인 도덕주의의 독재를 확립시킨 사람입니다. 그런데 세종시 이름을 맨날 듣고 광화문에서의 세종동상을 봐야 하는 우리들은, 이와 같은 이야기를 소수의 페미니즘 서적에서 아니면 쉽게 접할 수 있을까요? 북조선에서는 그쪽 나름의 민족주의적 신화들이 존재하는가 하면, 이쪽에서도 이쪽 나름의 민족주의적 신화들이 그대로 존재합니다. 형식상의 “말의 자유”가 있다 해도, 이 신화들을 그 누구도 제대로 흔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제도적인 “표현의 자유”가 있는 만큼 우리 사회의 무수한 터부들이 공고합니다. 소수자들이 철저하게 주변화된 “표현의 자유” 사회에서는 그들의 이야기에 대해 다수가 강력한 “면역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우리에게 사회화 과정에서 아주 잘 내면화됩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가 “주류” 서술을 당연지사, “사실”로 알게끔 길들여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가 주어져도, 우리가 특별히 다수의 의견과 다른 “표현”을 어차피 할 줄 모릅니다. 우리를 구속하는 족쇄들이 보이지 않는 족쇄입니다. 그러나, 이 족쇄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날, 이 족쇄들이 풀리기 시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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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redian.org/archive/6290
주체사상보다 더 사교같은 ‘선진성 신앙’ (레디앙,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 2012년 6월 15일, 10:25 AM)
'경쟁''선진성'의 유일신을 숭배하는 사교집단
“邪敎집단”이라는 말은 학자의 입에서는 아주 이상하게 들리지만, 북조선식 “유일사상”, 지도자 숭배 등의 문제성은 가시적입니다. 계급성이 결여된 그 사상만을 가지고, 계급의 논리로 움직이는 세계를 올바르게 인식하여 실천한다는 거야 불가능하죠. 예컨대 절대화된 “반외세”, 본질화된 “미제”의 像 속에서는 지금 “점거하라” 운동을 전개하는 가난하고 화난 젊은이들과 연대할 만한 그 어떤 단서도 보이지 않아서 문제입니다.
식민지 트라우마의 결과겠지만, 계급적으로 복잡하게 분화된 미국이나 일본 사회를 획일화된 “적”의 이미지로 그리기만 하면 큰 문제죠. 북조선을 몽땅그려 획일적인 “전체주의적 악마”로 그리는 미제 보수 언론의 수준, 즉 바로 “적”의 수준 이상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북조선 사상의 문제성이야 한 눈에 당장 쉽게 들어오지만, 남한의 실질적인 “국시”의 문제는 오히려 교묘하게 시선을 피하고 있어서 문제점이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북 측의 “유일사상”과 달리 그 “국시”는 꼭 그렇게까지 명시적이지 않죠. 그러나 남한의 거의 모든 사회, 정치 세력들의 거의 모든 움직임 속에 그 “국시”가 녹아져 있어서 그 독으로 무수한 타자들에게 씻겨지지 않는 상처를 입히는 것입니다. 그 “국시”, 숨겨져 있는 남한의 진짜 이데올로기의 이름은? “선진성 신앙”이라고 합니다. 이 신앙에 비해서는 정말이지 통일교나 “옴진리교”는 아희들의 장난에 불과하죠.
개화기의 “문명개화” 열정, 식민지 시기의 “실력양성” 논리, 이승만 시기의 “미국의 우방 자유대한 건국” 이야기, 박정희의 “조국근대화”, 그리고 1990년대의 “국제화” 등의 계보를 이은 “선진성 신앙”은, 우파 쪽에서는 완전히 “숨겨진” 것도 아닙니다. 대놓고 “선진화”를 들먹이죠.
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선진화”는 “기업하기 좋은 국가”, “복지 사회”, “다문화 사회”, “세계로 뻗어가는 대한민국” 등등을 의미하는데, 그 모델은 대체로 영국이나 일본 등 복지주의 요소가 약간 있어도 발빠르게 신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선진국”들입니다. 문제는 “선진”의 구호 뒤에 숨겨져 있는 현실이라는 거죠. 구호야 비까번쩍, 비까후가하지만,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실질적 “내용”은 주체사상 이상으로 살인적입니다.
“기업하기 좋은 국가”는 기업이 모든 법들을 통째로 무시하면서 비정규직 착취 등 극단적인 이윤극대화를 무조건 밀어붙여도 아무 문제 없는 “기업국가”를 의미합니다. 예컨대 불법 사내 파견이 법에 걸려도 파견노동자들을 “직고용 계약직”으로 바꾸는 등 정규화 요구를 교묘하게, 그러나 끈질기게 피하는 지금의 현대자동차처럼 말입니다.
“복지 사회”는 착취를 당하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에게 던져지는 작은 “당근”들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의료업자들의 소득을 보장해주기도 하는 의료보험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러나 “기업하기 좋은 나라”와 달리 “복지” 관련의 정부, “주류” 정당들의 모든 약속들은 예외없이 다 깨집니다. “반값등록금”을 기억하시나요? 실제 작년 이후에 등록금이 평균적으로 4,5%로 내렸을 뿐이고 곧 추가적인 인상으로 이것도 무의미해지고 말 것입니다.
“다문화 사회”는 주로 가난한 나라 출신의 결혼이민자들에 대한 한글배우기 등 “동화” 추진을 의미합니다. 물론 아무리 동화돼도 “노예”에 가까운 “신분”은 크게 나아지지도 않습니다. “다문화 사회” 속에서 이주여성의 약 20%는 가정에서 물리적 폭력을 당하고 절대 다수는 폭언, 모욕, 정서적 폭력을 당합니다. 정주 가능성이 차단된 절대 다수 이주노동자들은 “다문화 사회”와 아예 무관하고요. 그리고 “세계로 뻗어가는 대한민국”은 위와 같은 약탈, 착취, 폭력을 해외로 “수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월마트 등 세계적 수준의 야수들로부터 제품조달 계약을 따내 미국인 “대행”으로 아세아, 아프리카 노동자들을 야만적으로 착취하는 것은 “우리식 세계화”의 진짜 얼굴입니다.
위에서 보다시피, 보수/”주류”의 “선진성 신앙”은 영국이나 일본보다 더 야만적인, 즉 그만큼 자본의 이윤최대화에 더 적합한 사회의 건설에 대한 굳은 신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자국의 노동자/빈민들도, 외국의 노동자/빈민들도 평생 살인적인 “경쟁”의 늪을 벗어날 수 없는, 그 대신 자본의 이윤마진이 그대로 잘 유지되는, 그런 사회를 당연시하고 긍정시하는 것은 바로 “선진성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비주류, “진보”라 해도 “선진성 신앙”의 磁場을 완전히 떠나지 못합니다. “선진성 신앙”의 중요한 요소는 (신자유주의 도입의 사례에서 보인 것처럼) “선진 외국의 경험”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맹종하는 것인데, 이건 보수뿐만 아니라 “진보”의 고질이기도 합니다. 1990년대 초중반, 동구권 몰락의 영향으로 “사회주의”, “계급투쟁”, “반자본주의”가 미국 학계에서 일시적으로 금칙어가 됐을 때에 (지금 이 부분에 대한 비공식적 “금지”는 서서히 풀리는 중입니다) 그 영향을 가장 빨리, 가장 많이 받은 곳은 바로 한국의 “진보”학계였습니다. 자본이 노동자로부터 이윤을 짜내는 것은 그대로인데, 한 때에 학계에서 자본의 “상징 생산”, “상징 교환”, ‘담론 생산”만이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진보” 학계에서 말입니다. 보수학계로서는 지금 초미의 관심사는 “선진적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에 가장 공로를 들였다 싶은 “건국의 대통령”, “미국인보다 더 미국적인” 이승만이나 일제시기의 전향자, 나아가서 총독부와 친했던 기업인이나 총독부 안에서 일했던 관료들의 “명예 복원”입니다. “선진적인 대한민국 만들기에 초석을 놓은 선진적인 총복부 만세!” , 이것입니다. 이 정도 “선진화”되면 숨이 너무 차서 더 이상 뭘 바라기도 어려운 거죠.
그 폐쇄성이 너무나 가시적인 주체사상보다는, 망해가는 “선진권” 신자유주의나 “포스트” 등을 무뇌적으로 따라가는 우리들의 “선진성 신앙”의 타율성과 무비판성, 그리고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 “후진적” 타자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야말로 “邪敎”에 더 가깝습니다.
우리가 “제2 미국”, “제2 일본”을 만들려다가 결국 평민이 마음 놓고 그가 좋아하는 것을 공부할 수도 없고, 연애할 수도 없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수도 없고, 한 순간이라도 “경쟁”의 압박을 벗어날 수도 없는 지옥같은 사회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 약육강식, 승자독식 정글의 먹이사슬의 맨 밑에서 마음과 몸을 망가뜨리면서 아무 의미도 없는 “공부”에 매달리고 각종 폭력에 멍드는 우리 아이들은, 과연 “경쟁”과 “선진성”을 유일신으로 모시는 邪敎에 집단으로 빠지고 만 우리들을 용서라도 할까요? 우리들이 과연 그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려고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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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redian.org/archive/3602
통합진보당 ‘사태’와 불편한 진실 (레디앙,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 2012년 5월 17일, 12:58 PM)
"진보는 외계인이 아니다…지금, 여기 현실에 구속받아"
저야 일찌감치 “통합진보당”의 결성 과정 그 자체를 계급적 입장으로부터의 이탈의 과정으로 봤기 때문에 현금의 “통진당 사태”를 봐도 그다지 감정 동요는 없지만, 수많은 분들에게 “주먹질하는 진보”는 아주 불편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셈입니다.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을 우리가 직시해야 합니다. 통합진보당은 이미 진보와 한참 멀어졌지만, 진보라 하더라도 화성에서 오는 외계인들은 아니라는 것이죠.
진보는 비록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만, 동시에 “지금 여기”의 한계를 다 안고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고 자라고, 학교 다니고, 군대 다녀오고, “위아래” 구조 안에서 “제자리”를 찾고 이런저런 타협을 해가면서 밥벌이하는 사람은, 아무리 생각은 “이 곳”, 이 시대의 한계를 넘어선다 해도, 몸은 “여기, 지금”에 속합니다.
그래서 그만큼은 “우리”의 일반적인 수준을 뛰어넘기가 힘들다는 것이죠. 통합진보당 같은 경우에는, 계급적 입장을 버리고 고학력 중산계층에 자기 자신들을 “파는” 과정에서 특히 기존의 도덕 수준마저도 급격 하락돼 남한의 일반 부르주아 정치 이하의 레벨을 만천하에 과시했지만, 이와 같은 “타락”의 극단적인 케이스가 아니더라도 진보에는 분명 시대적 한계가 있게 마련이죠. 우리가 진보에 스스로 속한다고 생각하는 만큼 그 한계를 직시해야 합니다.
오늘날 대중적인 진보의 모태는 제1차 대전 이전의 독일 사민당이라고 하겠습니다. 유럽에서 “사회주의”를 최초로 한 계급의 이데올로기로 만든 만큼 공훈이 많은 당이었습니다. 전쟁 이전에는 약 백만 명의 당원을 확보하고 있었던 독일사민당은 예컨대 주요 공업의 사회화를 요구하고 있었던 만큼 그때만 해도 분명 “사회주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사업해온 당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독일노동자들이 받는 복지혜택 (초보적 형태의 실업수당 등등)만 늘어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면 갈수록 관료화돼가는 당은, 그 투쟁 대상인 “국가”를 닮아갔습니다.
카우츠키 등 “지도자님”들에 대한 숭배에 가까운 태도는, 독일 소시민이 보통 “국가”에 대해서 느끼는 “존숭의 염(念)”과 그다지 다르지도 않았습니다. 사회주의적 원리원칙과 달리 국가의 민감한 부분 ? 예컨대 국민개병제나 대러시아 전쟁 준비, 그리고 식민지 약탈 등 ? 을 더 이상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던 당은,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한 반면, 1918~1919 독일혁명의 급진화만큼 너무나 잘 막아 유산층 지배의 보루 역할을 맡게 된 것입니다.
시대적인 한계를 벗고 싶어도 벗지 못하는 “합법적 사회주의 운동”에서 결국 그 시대적 한계를 대표한다 싶은 기존 체제의 “지킴이”가 된 것이죠. 역시 국가나 군대만큼 늘 우러러보는 조합, 당 관료의 보수성은 “사회주의적 신념”을 이기고 말았습니다.
가장 급진적인 혁명가에게도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기가 너무나 힘듭니다. 레닌의 급진성을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지만, 말년의 레닌도 테일러주의(“과학적 경영” ? 주로 노동시간 관리 합리화와 지속적인 노동생산성의 제고를 도모하는 것임)를 “사회주의의 기초”로 생각하고 “소비에트와 테일러주의의 결합”을 “사회주의”로 착각할 만큼 기슬-과학만능주의적인 환상에 빠진 적은 있었습니다.
그 망상 그 자체야 그 당시 일반 서구 지식인의 보편적인 “통념”에 가까웠지만, 그 통념이 혁명가의 의식 속으로 흘러 들어가면 이는 참 위험한 일입니다. 과연 레닌만 20세기 초의 보편적인 기술만능주의에 감염돼 있었던가요?
중산층 지식인 출신의 대부분 “올드 볼셰비키”들은 그랬고, (멘셰비키들은 실은 오히려 더 하면 더 했죠) 또 노동자 출신의 당원이라 해도 생활수준 향상 등에 대한 기대로 이에 부합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스딸린의 반동화 이후에는 “스타카노프주의”라는 미명하에 쏘련에서도 노동자에 대한 과잉 착취, 실적 경쟁 유도의 분위기가 되살아나고 말았습니다. 진보가 이렇게 보수적으로 되면 너무나 슬픈 일이 아닌가요?
확언컨대, 우리가 목전에 관찰하고 있는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한계는 카우츠키나 레닌보다 심하면 아주 심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또 최근의 자유주의자들과의 무원칙한 타협으로는 과연 한계밖에 무엇이 남았는가, 라고 자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 한계를 분석해보면 문화적 한계와 사회-정치적 의식의 한계로 분리해서 분석해볼 수도 있습니다.
폭력 사용에 대한 “너그러운 태도”(?) 같은 경우에는 분명 한국 사회의 군사주의적 분위기, 군사 문화와 유관합니다. 권인숙 선생 등 페미니스트 학자들이 많이 지적했듯이 남성우월주의적 군사 문화는 80년대 운동권 안으로 흘러들어갔고, 운동권을 모태로 하여 조직을 꾸려나가고 군대를 방불케 하는 “조직사회”에서 살아온 좌파민족주의자들에게는 폭력적 습관이 많이 체질화된 건 사실인 듯합니다.
“문화적 한계”라고 하는 건 바로 이와 같은 체질화된 아비투스들을 두고 하는 이야기죠. 그런데 여성주의자 등 여러 “새로운 진보 세력”들의 성찰과 개선 요구로 그나마 나아질 수 있는 “문화적 한계”보다 훨씬 더 위험한 한계는 바로 “사회-정치적 한계”입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전혀 볼 줄 모르는, 기껏해 봐야 장하준 식의 “박정희 시대와 같은 자본에 대한 국가통제” 정도를 이야기하는 한국 사회의 “일반”과 마찬가지로 통합진보당 등 자유주의화된 과거 운동권 멤버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 제시를 포기한 채 자본주의에 대한 “수정”의 판타지에 그대로 매달리고 있습니다.
이미 4년이나 걸려온 세계공황은 그 어떤 자본주의적 방식으로도 ? 예산 삭감 위주의 신자유주의적 방식으로도, 국가 위주의 시설, 공업 투자 식의 신케인스주의적 방식으로도 ? 제대로 극복되지 못한 채 악화일로 진행돼가고, 인제 어쩌면 세계 자본주의의 하나의 핵심 지역이자 수정 자본주의의 쇼 윈도우인 유럽연합이 붕괴될 수 있음에도, 한국의 “진보”는 무계획한 이윤추구 식의, 개인 투자자 소유의 재벌경제야말로 청산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무의식적으로 한국 자본주의 “성공 스토리”를 믿어 이 “성공”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고 사유하는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적 미몽에 옭매여 있다는 것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유럽의 가장 급진적인 대중들도 아직은 “자본주의 문제”를 본격적인 화두로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고, 단지 “1%의 탐욕”이니 “강도 같은 금융자본”이니 하는 비과학적이고 도덕주의적인 수사의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최근 선거 결과를 봐도 그리스의 총선에서 유일한 진정한 반자본주의적 세력인 공산당은 8,5% 정도만 얻었고, 프랑스의 대선에서 급진적인/자본주의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색채의 좌파연합/신반자본주의당/노동자 투쟁당 후보들은 다 합쳐도 13% 정도만 얻었습니다.
사민주의적인, 수정자본주의에 대한 각종 환상으로부터의 해방에 시간이 걸립니다. 문제는, 위기 진행의 속도로 봐서는 우리에게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아직 약물치료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상황이 더욱더 나빠지면 수술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악화될 수 있단 말씀이죠. 그러니까 진보로서 “자본주의 긍정”이라는 시대적 한계를 스스로 깨닫는 것은 정말 급선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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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의 “사람 잡아먹는 인권 논리” (레디앙, 박노자 / 2012년 5월 4일, 4:49 PM)
박노자 "진짜 인권과 사회주의는 불가분"… 북한 인민과 탈북자 인권
친척 중에 당 간부로 경력이 있는 어르신들에게 가끔 제 의심들을 털어놓기도 했는데, 그들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자네는 아직 삶을 모르네. 지식인들에게 우리가 해준 무상 교육을 갖고 자유로이 나가도 된다 그러면 상당수가 노동자들을 배반하고 서방으로 바로 가지 왜 우리에게 붙어 있겠어? 노동자는 갈 데도 별로 없는데, 지식인은 출세가능성부터 계산하잖아. 우리가 우리보다 몇 배 더 강한 적과 대치하는 상황에서는, 탈영자들을 쉽게 품을 수 없지. 소수 개인들의 의사만 생각하지 말고 전체적으로 사고해보라”.
일면 그들의 논리가 이해되기도 했는데, 또 일면으로 그들이 과연 “자유의 맛”을 아느냐, 라는 의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좌우간, 이렇게 해서 결국 1991년에 구쏘련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출국에 대한 제한과 검열제, 그리고 중앙계획적 경제의 사망은 새로운 “인권 천지”의 탄생을 알렸는가요? 부디 이렇다고 속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망국과 급속한 자본화가 촉발시킨 경제의 와해 속에서는 “출국”은 인제 “인권/자유”가 아니라 수백만 명의 인민들에게 “생계”의 문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나마 서방에서 “중산층”으로서의 위치를 득할 가능성이라도 보였던 고학력자들은 앞장섰습니다. 특히 학자, 그 중에서도 20~40대의 자연과학도와 이공계 전문가들이 거의 실종되다시피 했습니다.
1990년대 말에는 러시아 고등학위 보유자인 학계 구성원의 약 50만 명 중에서는 대체로 10만 명 정도는 이미 (주로 서방에서) 해외 취직하거나 적어도 단기 계약으로 해외체류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부 학문 분야에서는 그저 “기동성”이 있는 “모두”들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만 것이었습니다. 수학 같은 부문에서는 전체 학자들의 약 40%, 즉 50대 이하의 다수의 학위 보유자들이 썰물이 밀려나오듯이 증발되고 만 것이죠.
물론 황폐화된 나라를 벗어나고 싶은 그들을 비난할 수도 없고, 그들의 출국이 “인권”임에도 틀림없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들이 제기됩니다: 중앙계획적 경제의 와해와 다수 고학력 인력의 출국으로 인해 교육 질의 저하를 감당해야 하는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지 않았던가요? 오랫동안 희생을 해서 첨단과학 발달의 가능성을 만들어주었다가 인제는 두뇌 유출로 더이상 자주적 학술 발전이 불가능해진, 황폐해진 곳에서 여생을 살아야 하는 다수의 노동자들이 피해자가 된 것이 아닌가요? 전체로서의 사회가 엄청난 피해를 본 것이 아닌가요? “인권”으로서의 개인의 출국 보장보다는, 궁극적으로 주변부적 상황에서 중앙계획적 경제만이 보장할 수 있는 공공교육에의 충실한 투자는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이미 망국된 이상 이런 질문을 제기해봐야 소용도 없습니다. 늦었습니다.
“검열제 폐지”와 “개인 소유의 언론 허용”은 자유주의적인 “인권 투사”들의 또 하나의 요구이었습니다. 국가적 검열은 1991년 이후에 대체로 사라진 듯했지만, 사유화된 매체들은 쏘련 시대에 그나마 있었던 기층 민중에 대한 관심을 바로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제 아버지가 다녔던 연구소가 문을 닫아 (물론 “서비스 질 좋은” 그 뭔가로 거듭나지도 않고, 그저 그 건물이 부동산 시장에 나와 어느 은행에 팔리고 말았을 뿐입니다) 그와 그 동료들이 다 실업자가 돼 생계가 막막해졌을 때에 그 어느 “민주화된” 언론도 이걸 단신으로라도 언급한 적은 없었습니다.
1990년대에 구쏘련에서 문닫아 폐허가 된 공장과 연구소들은 약 7만 개 정도 됐는데, 거기에 다녔다가 본의아니게 타율적으로 백수가 되어 인제 “인간쓰레기” 취급을 받게 된 그 모든 민중들에 대해서 그 어느 언론이라도 신경썼습니까? 자본이 소유하게 된 언론들도, 한 때에 “인권운동”으로 이름을 날린 적이 있었던 거물 자유주의자들도 1993년 10월에 옐친 정권이 불법적 기업 사유화를 중지하라고 요구한 국회에 탱크로 발포했을 때에 그저 박수를 쳤을 뿐입니다. “공산주의 박멸이 우선”이라고 하면서요. 자본의 검열이 국가 검열보다 백배 무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저는 실은 바로 그 때에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결국 “인권”은 서방 열강들의 “동구권 흔들기”의 한 낱의 도구로 이용됐다가 그 이용가치가 다 됐을 때에 폐기처분된 셈이었습니다. 탱크로 국회에 발포하는 것도 수백만 명의 실업자들을 만들어 기아선 밑으로 떨어뜨리는 것도 인권과 아무 관계 없었지만, 1991년 이후에 러시아에서 집권한 백색강도와 도둑들의 이 범죄행각들에 대해서는 서방언론과 자유주의적 “인권 활동가”들은 철저하게 침묵했습니다.
“빨갱이”가 아닌 “우리 편”이 한 사회를 황폐화시킬 때에는 이는 “인권 유린”이 아니고 그저 “필요한 개혁의 부산물” 정도입니다. 그리고 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는 “인권” 타령을 하는 자유주의자 무리에게는 주변부의 사회로서 자주적인 발전을 영유할 권리라든가,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직장을 가질 권리, 적어도 굶지 않을 권리, 즉 사회적/개인적 생존권은 “인권”의 반열에 오르지도 못합니다.
서방에서 쓸만한 “인력”이 될 수 있는 지식인의 “출국 권리”는 “인권”이 돼도, 그 지식인으로부터 수업들어야 할 주변부 국가 학생의 학습권은 분명 “인권”이 아니라는 논리죠. 결국 서방 열강들의 유산층에 유리하거나, 적어도 그들을 위협하지 않는 권리들이 “인권”으로서 신성화돼도 그들에게 약간이라도 불편할 것 같은 주변주 사회의 생존권은 아예 생각밖에 나 있는 것입니다. 주변부에서 태어나게 되고 살아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핵심부 열강들이 이렇게 해석한 “인권”은 정말 “사람 잡아먹는 인권”일 것입니다.
저는 “인권”에 대한 제 개인적 환멸에 관한 이 이야기를 여기에서 왜 씁니까? 요즘 북조선 “인권”이 남한 보수들의 거의 “전가의 보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내놓고 있는 “인권”의 해석을 보면 그저 기가 찰 뿐입니다. 그들이 북조선의 장기적 생존권, 그리고 자주적 발전권의 영유에 기여할 로켓, 우주공학 프로그램을 비난할 때에 그들이 과연 생존권이 인권의 기반이라는 부분을 모르는 건가요? 아니면 일부러, 계획적으로 망각하나요?
자꾸 “시장 개혁”을 거의 “인권 신장”의 동의어로 쓰는 것인데, 오히려 모두들에게 적어도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배급제야말로 빈곤한 사회에서 인권의 기초가 돼야 하지 않을까요? 북조선 인구의 대다수는, 오히려 (1990년대의 참사들 이후에 지방에서 거의 유명무실해진) 배급제의 내실화를 바라고 있지 않는가요? 탈북자들의 권리는 당연히 보장돼야 되지만, 과연 대다수 북조선 주민들의 문제들은 소수의 “출국”, “월경”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을까요?
또 “월경”을 감행한 이들이 중국이나 (특히) 남한에서 당해야 할 무시와 착취, “주류”로부터의 고립, 여기에서 발생되어지는 온갖 심신상의 곤란들을 생각해보셨습니까? 과연 악질적인 자본주의 착취 체제 속에서 2등, 3등 시민이나 “불법적인” 타자로 산다는 것은 인권의 실현일까요? 제발 오해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당연히 이미 탈북하신 분들의 권리들도 귀중하지만, 이와 동시에 북조선 주민 다수의 생존권, 공공의료 이용의 권리, 공공교육을 받을 권리 등을 더 많이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부분이 제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입니다.
진정한 인권의 시발점은 집단적 및 개인적 생존권, 자주적 발전의 권리, 그리고 공공부문을 평등하게,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당연히 표현의 자유나, (국외 이동을 포함한) 이동권도 중요하지만, 생존권/평등권/공공부문 이용권의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는 이 개인적인 자유권들은 무의미화되기가 쉽습니다.
가난에 이기지 못해 노르웨이에 가서 은밀히 성매매하는 라트비아 여성 같으면, “이동권”을 영위한다기보다는 그저 황폐화된 사회에서 살 길을 도모하다가 국내외의 착취자들에게 이용 대상이 되는 케이스일 뿐이죠. 살인적 빈곤으로부터의 자유, 계획경제만이 모두들에게 보장할 수 있는 기본적인 생활의 안정부터 인권의 시초가 아닐까요? 제게는 이런 측면에서 (진짜) 인권과 사회주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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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유럽, 자본주의와 함께 몰락" (레디앙, 2012년 04월 27일 (금) 01:28:55 박노자 / 오슬로대)
"중산층 2차대전 이전 수준…사회구조 남미와 닮아가"
요즘은 솔직히 신문 펴기가 무서워졌습니다. 제가 구독하는 <계급투쟁>지 같은 신문은 물론, 온건 부르주아 자유주의 일간지 <아프텐보스텐>지마저도 보기가 무서워졌습니다. 지상에 보이는 해외 소식마다 상상하기도 끔찍한 인간들의 고통과 전운이 감도는 미래만 보여줘, 보다보면 하도 심장이 아파지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최근의 대표적인 신문 해외 새소식은 이런 것들입니다.
- 그리스 청년실업률은 이제 51%에 달했습니다. 즉, 젊은 사람 두 명 중의 한 명은 일거리도, 미래도 다 빼앗긴 상태입니다. 신자유주의적 "구제책"으로 희랍의 경제 규모는 지난 4년간 이미 5분의 1은 줄어들었고, 앞으로도 일자리 창출의 희망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 그리스 빈곤율은 40%를 향해 치닫고 있는 중입니다. 더이상 식량을 살 돈이 떨어진 과거의 중산층들은 이제 자선단체들이 나누어주는 약간의 음식에 기대어 하루하루 어렵게 연명합니다.
- 한 때에 유럽 복지주의의 전형이었던 바로 "그" 스웨덴에서의 청년실업률은 25%나 돼, 불란서와 호형호제의 수준입니다. 한국과 다를 게 없이 절망에 빠진 스웨덴 청년들은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사는 것이고, 상당수는 미래에 대한 꿈이 거의 빼앗긴 상태입니다. 일부 부르주아 정객들은 절망에 빠진 청년들을 끝까지 잘 착취해보려고 특별한 "청년형 최저 임금"을 정상적인 최저임금의 75% 정도로 책정해 청년들에 대한 초과착취를 획책하려 하지만, 노조들은 결사 저항을 하고 있습니다.
- 한 때에 구쏘련에서 가장 잘 살았던 공화국이었던, 그러나 이제 유럽연합의 주변부로 편입된 라트비아에서 빈민의 한 자녀가 영양실조로 죽을 뻔했다가 극적으로 구출됐습니다. 라트비아의 빈곤율은 약 26%, 근로인구의 4분의 1은 유럽연합 핵심부의 국가에서 가장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해가면서 어렵게 연명하는 것이고, 가난과 전망의 절대적 부재 속에서 점차 기근의 유령은 다시 돌아옵니다.
위의 소식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부에 속하는 "유럽"으로부터의 소식들입니다. 제3세계에서 일어난 각종 참사들에 대한 소식은 원래부터 흔히 보였지만,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최악의 위기가 핵심부로까지 번진 지금에 와서는, 제3세계라고는 따로 없습니다.
유럽연합 전체에서는 약 17%의 인구는 빈민들이지만, 남유럽 청년의 경우에는 안정된 정규직을 갖는 "장차의 중산층"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빈곤, 준기아, 절망 등이 바다의 물처럼 퍼져가는 것입니다. 그나마 약간 남아 있는 복지제도 덕분에 기근의 만연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는 것이지, 정규직 고용이 청년들에게 불가능에 가까워지고 안정된 직장없이 주택구입을 위한 융자를 받는 일 등이 불가능해지자 "노동하는 중산층" 위주의 전통적인 복지국가의 사회구성은 몰락해가고 있는 중입니다.
중산층은 점차 다시 한번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수준으로, 즉 고임금 전문가군이나 중소부르주아군 정도로 줄어드는 추세고, 그 중산층 밑에서 사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버리는 것은 빈민과 준빈민("워킹푸어")들입니다. 비공식부문의 고용의 규모가 조금 더 작고 대지주와 토지없는 농민과 같은 요소들이 없어서 그렇지, 많은 면에서 유럽의 사회구조는 점차 남미와 비슷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케인스주의, 복지주의의 절명의 위기와 점차적 몰락 속에서 당연히 자본주의 황금기(1945-1973)와 같은 "대형 온건 우파, 대형 사민주의 정당" 중심의 정치판의 균형도 깨져갑니다. 희랍처럼 반제, 반독재 무장 투쟁의 전통이 깊은 사회에서 급진(사민당보다 왼쪽에 있는) 좌파 정당들의 전체적 지지율은 42% 정도지만,(관련 내용) 불란서 같은 경우에는 "유럽 연합 탈퇴, 유로존 탈퇴, 보호주의 정책 재개, 재공업화 추진"이라는, 실업자와 비정규직들에게 가장 친근하게 들리는 구호들을 극우파가 전유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장차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이 "실력 대결"로 가버리면 그 대결에서 꼭 좌파가 이기리라고 보장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사회주의가 선택되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최악의 야만이 선택되어질 것은 불문가지의 일입니다.
국내에서 아직도 "사민주의"나 "유럽모델"을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지금 제가 목전에 보는 유럽은 폭발되기 직전의 화산에 가까운 것입니다. "좋은 자본주의", "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 등에 대한 꿈들은 그저 미몽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이제 직시해야 합니다.
이윤추구의 논리에 기반하는 시스템은 안정될 수도, 지속가능할 수도, 좋을 수도 없습니다. 이윤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이 시스템은 결국 파멸로 가게 돼 있는데, 사회 전체가 이 잘못된 시스템과 함께 파멸로 가게 돼 있는 것은 문제입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타이타닉>을 지금 우리가 "구제"하려 한다는 것은 그 침몰의 시점을 연기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침몰 그 자체를 방지할 리는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단 침몰할 배를 탔다는 것을 이해하고, 빨리빨리 모두들이 탈 수 있는 구명보트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 구명보트란 무엇인가요? 민주적 국가를 통해서 사회가 공공화된 주요 공업시설과 은행 등을 관리하고, 사회임금 등을 통해서 모무들의 생존, 기아 방지부터 보장해주는 "생명, 생존 위주의 시스템"입니다. 그 시스템에서는 은행은 수익사업에서 정책적으로 운영되는 "편의 시설"로 바뀌어야 하고, 주식과 배당금의 개념이 점차 사멸되어 잉여를 사회가 민주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발전" 대신에 탈핵, 탈원전, 환경파괴 방지, 모두들의 생존과 의료 등 생활혜택이 사회적인 경제 관리의 주된 원칙이 돼야 됩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비이윤적"시스템으로 바꾸지 못하면 이 <타이타닉>과 함께 야만의 바다 속으로 침몰될 것만은 뻔한 일입니다. 그리고 구명작전할 수 있는 시간도 인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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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42845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박노자 글방, 2012/03/23 02:15)
제가 살았던 말기의 쏘련을 회상해보면 한 가지 아주 한심한 부분은 있었습니다. 러시아라는 주변부적 국가의 아주 오랜 어떤 "서구 콤플렉스"의 발로인지도 모르지만, 늘 제기되는 표어는 "미국 따라잡기"이었습니다. 말기 쏘련의 평균적 노동 생산성은 미국의 약 60%에 불과했고, 이 사실은 적어도 지식인층 안에서는 널리 인식돼 있었는데, 지도자들이 늘 이걸 의식해서 "미국의 노동생산성을 따라잡고 능가해야 우리 체제의 승리가 가능하다"고 못박곤 했습니다. 대중적으로 팔리는 통계집마다 쏘-미의 강철 생산, 트래크토르 (경운기) 대수 생산, 곡물 생산 등이 비교, 대조되고, 혹여나 쏘련이 생산 통계에서 미국을 앞지르는 일이 생길 때마다 이게 당장 중앙방송에서 나오는 뉴스가 되곤 했습니다. 또 그러한 비교가 나올 때마다 미국은 "선진적 자본주의 국가"로 지칭되곤 했습니다. 레닌주의적 사회주의에 좋은 점들은 대단히 많지만, 우리 입장에서 문제되는 부분이라면 사회주의 건설의 기본이 될 것이라고 인식되는 "선진권"의 그 높은 노동생산성, 생산능력에 대한 지나치다 싶은, 근대 지상주의적이다 싶은  선망입니다. 원래부터 그런 근대지상주의적, 공업지상주의적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거기에다가 쏘련 말기의 간부층의 은근한 (혹은 가끔가다 은근하지도 않은) 자본주의적 성향의 문제까지 첨가됐습니다. 그들은 공석에서야 "미국 수준 초과"를 들먹이곤 했지만, 사석에서는 바로 그 "적 미제"에서 한 번이라도 살아보고 싶은 욕망들을 마구 드러내곤 했습니다. 러시아의 고질적인 "서양 콤플렉스", 레닌주의의 "생산의 선진성"에 대한 강력한 강조, 그리고 간부층의 자본주의적 타락 - 이 요인들은 점차 망국의 비극이 일어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원리원칙으로 따져보면 과연 "미국만큼 많이 생산, 소비하기"가 정말 사회주의인가 싶습니다. 당연히 미제로부터 늘 방어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나친 기술적 후진성은 치명타가 될 수도 있었지만, 자본주의적 세계 체제 전체의 자본력과 지식력, 정보력이 집중된 미국에 비해서 전통적으로 유럽의 주변부에 속해온 러시아 같은 나라가 갑자기 생산, 소비의 모든 면에서 더 앞서나갈 것이라고 처음부터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러시아도 그렇지만, 러시아보다 근대적 자본주의가 애당초부터 훨씬 덜 발전됐던 중국, 북조선의 경우에는 더더욱더 애당초부터 "생산 경쟁"만을 강조하는 것은 무리수이었습니다. 즉 모택동이 대약진 운동 벽두인 1958년의 한 연설에서 "20년 후에 미국을 따라잡겠다"던 흐루쇼브를 따라잡을 심산으로 강철 생산의 부문에서 "15年后,我?可能?上或者超?英國"이라고 큰 소리치고 마치 "영국보다 강철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을 "사회주의"의 대명사처럼 만들어버린 것은 태심한 오류이었습니다. 모택동 주석의 신중국 건국 주도나 토개 (토지개혁)의 쾌거, 비록 폭력적이고 많은 면에서 비생산적이며 철저하지 못했지만 당 내 관료화와의 투쟁의 시도나 전인민을 위한 의료, 기초 교육 공급 등의 업적은 대단히 존경스럽지만, "영국을 따라잡겠다"는 이야기로 결국 오도되고 재앙을 낳을 대형 켐페인인 대약진운동을 주도하려 했던 모택동은 사회주의자라기보다는 차라리 "초고속 근대화"만 갈망하는 후진국 민족주의적 지도자에 더 가까웠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주의 사회로서는 강철을 얼마나 생산했느냐보다는, 이 강철을 생산한 "인간"들이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적 삶은, 자본주의적 생활보다 더 윤택나는 것은 절대 아닐 것입니다. 지구의 자원이 어차피 제한돼 있는 것이고, 사회주의자들의 과제는 이 자원을 빨리 써버리면서 우리 세대의 소비를 무제한으로 늘리는 것이라기보다는 제한된 자원들을 되도록 골고루, 평등하게 분배하고, 그 제한된 자원을 이용하는 공동체 안에서의 민주주의와 상호 배려, 그리고 삶의 기쁨이 가득 차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미제와 자동차 대수 생산을 비교해가면서 "우리가 더 많이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것보다는 사회주의 국가는 자동차를 최소한으로 필요로 하는, 대중교통 위주의 사회를 도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농민 등 자동차를 정말 일상적으로 필요로 하는 일부를 예외로 하되 도시에서는 대중교통망, 특히 환경친화적인 지하철, 전차 등의 확충에 초점을 두고 출퇴근 관계로 불가피하게 자동차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10-15개 가구의 자동차 공동 사용 등을 적극 권장하는 것은 가장 사회주의적이지 않겠습니까? 자본주의 체제의 목적은 자동차 생산으로 인한 자본의 이윤 극대화이지만, 우리의 목적은 환경 보존과 교통 사고률 최소화, 석유 등의 자원 보존, 그리고 개인이 언제나 사회에 의존할 수 있는 안정되고 상호 배려심이 많은 사회적 환경의 조성은 아닙니까? 목적이 서로 완전히 다른 만큼, 사회주의적 사회를 자본주의적 사고틀로 상상해봐야 소용이 없고, 쏘련이나 중국 지도자들이 자본주의적 "생산지상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은 역사의 비극임에 틀림없습니다.
미제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쏘련이나 1970년대 이전의 중국으로서 당연히 노동생산성 제고 등에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었지만, 사실 사회주의 체제로서 "노동자"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전인적 인간의 발전이 중요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보다는, 노동환경이 얼마나 쾌적한가, 휴식시간이 얼마나 많은가, 휴식시간에 음악이나 무용, 독서 등을 즐기면서 얼마나 자기계발하고 남을 위해서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직장 단위 안에서의 인간관계가 얼마나 평등하고 서로 배려해주는가, 이게 사회주의 사회로서 핵심적인 문제들입니다. 사실, 이와 같은 차원에서는 구쏘련이나 동구권 사회는 자본주의 국가에 비해서는 훨씬 진보된 사회이었습니다. 전체 총인구 중에서 1년 내에 약 2천5백만 명이 정신신경과에 가서 도움을 요청해야 하고, 게다가 약 6백80만 명이 목사나 신부 등에게 신경병이나 고질적 불안, 심리적 질환 등의 문제로 도움을 호소해야 할 만큼 "효율성 높이기" 압력이 살인적이고 왕따 현상이 고질적이고 늘 해고 위험이 도사리는 미국의 직장에 비해서는, 쏘련에서의 직장은 아주 쾌활한 곳이었습니다. 제 부모님부터 시작해서 제가 알았던 그 어떤 기존 세대의 쏘련사람도 직장에서의 지나친 피로, 부당한 압력, 왕따 등에 대해서 불평한다는 것을, 제가 한 번도 들은 적은 없었습니다. 제 부모님만 해도 늘 출근할 때에 웃으면서, 기쁘게 갔습니다. 즉, 노동생산성이 미국에 비해 훨씬 낮아도, 노동자의 삶은 많은 면에서는 훨씬 즐거웠던 것입니다. 문제는, 구미권 자본가들을 벤치마킹하여 궁극적으로 자본가가 되려는 구쏘련의 간부들에게는, "행복한 노동자"가 필요했던 게 아니고, "빨리빨리" 보다 많은 물건을 생산하는 로봇과 같은 노동자들이 필요했다는 거죠. 그러니까 실제로 노동자의 삶이 미국에 비해 훨씬 "사회주의적"이었다 해도 지도층의 "미국 따라잡기" 타령은 끊어지지 않았고, 결국 미국을 따라잡을 일도 없이 지금 같은 구미권의 경제적, 문화적 식민지로 추락하고 만것입니다.
저는 북조선 지도자들의 "강성대국"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쉬움을 강하게 느낍니다. 사회주의자라면 "강성대국"을 바랄 일없이, 배려와 사랑이 많고 행복감이 넘치는 사회를 바라는 것입니다. 개개인이 존중 받고 서로 챙겨주고 사랑해주고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체제는 바로 사회주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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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반동의 시대, 우경화된 지구 (레디앙, 2012년 03월 17일 (토) 12:55:44 박노자)
세계적 좌파의 위기…민주적 계획경제, 침략반대 기치를
격리된 공간에 있다 보니 절로 “기억” 속으로 시간여행 가기가 쉬워집니다. 1980년대 초반, 가면 갈수록 위기를 향해 치닫고 있었던 소련의 지식인 사회를 부모의 친척과 친지 등을 통해서 알게 됐던 시절. 그 때 같으면 제 할머니와 같은 노인들은 강력한 공산주의적 신념을 계속 보유했지만, 제 부모 세대, 즉 1960년대에 청년기를 맞이했던 장년층의 “믿음”은 많은 균열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 실질적인 원인들이야 매우 복합적이었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 그 “신념 위기”의 중심에 섰던 것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구소련(과 몇 개 다른 동구권 국가들)의 무장간섭, 그리고 아프간 침공,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소련 파견군이 카르말과 나지브 등 아프간 혁명 정부의 편에 아프간 내전에 무장 간섭했다는 사실입니다.
일종의 개방형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어떤 면에서는 현실 사회주의와 서구식 사민주의의 장점들을 같이 접목시켜보려는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내 개혁세력들의 과감한 시도를 소련이 무장간섭으로 좌절시킨 것은, 어쩌면 역사적 범죄에 해당된다고 봐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류의 시도야말로 현실 사회주의의 1970년대 이후의 위기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역사에 대한 죄임에 분명하지만, 체코슬로바키아 군이 저항하지 않은 관계로 그 간섭의 직접적 희생자는 약 200명 안팎이었습니다. 아프간에 대한 무장 간섭은 훨씬 더 많은 희생을 낳았지만, 소련 군의 파병이야 잘못이라 하더라도 아마도 최근 반세기 동안의 역대 아프간 정부들 중에서는 카르말과 나지브의 혁명 정권은 그나마 가장 진보적이었을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희생의 규모나 소련의 “무장 지원”의 대상이 된 정권의 성격과 무관하게, 국외 침략을 방불케 하는 국가의 모든 행동들에 대해서 좋게 보는 지식인이라고는 1980년대의 소련에서 참으로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국외 파병들에 대한 비판은, 브레즈네브 정권에 대한 혐오를 넘어 “사회주의” 이념 자체에 대한 회의를 강화시키고, 어떻게 보면 1980년대 말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과 그 후의 망국을 “이념적으로 준비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브레즈네브의 정권은 “사회주의”라기보다는 경직된 관료들의 보수화된, 지정학적인 기반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치관을 대변했으며, 같은 기간 동안의 미국의 대외 침략들은 수십 배 더 많은 희생과 비교될 수도 없을 정도의 파괴를 낳았지만, “아, 사회주의 조국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싶어 실망한 이들에게 이걸 설명하기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소련뿐만 아니었습니다. 1960~70년대의 세계에서는 어딜 가나 대외 침략들은 체제를 위협하거나 적어도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줄 만큼의 저항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물론 월남 파병에 대한 반대가 거의 없었던 우리 대한민국을 빼고 말씀입니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비록 극소수이긴 하지만 신좌파는 자국을 월남 침략의 병참기지로 만든 지배층에 대해 명실상부한 선전포고를 하지 않았습니까? 베트남 투사들을 돕겠다고 독일에서 적군파의 ? 비록 방법은 한참 잘못됐고 성공가능성이 없었지만 그 의도만큼 참 고귀했던 ? 무장행동이 개시됐으며, 미국과 불란서에서는 호지명과 모택동의 사진을 들고 행진했던 데모들이 거의 체제를 위협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월남 투사들의 이데올로기(유교화되고 민족주의화된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서방 민주주의와는 물론이고 신좌파가 꿈꾸었던 민주적인, 참여 위주의 사회주의와도 꼭 일치 하지 않았으며, 저항자들의 일부 행동 (현지 사회에서의 친미 부역자 처단 등등)은 불가피했다 해도 잔혹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에 대한 동감은 절대적이었습니다. “대외 침략은 절대 죄악, 저항은 무죄”라는 것은 1960~70년대 “의식 있는” 사람들의 통념이었기 때문입니다.
서방이든 동구권이든 1980년대 레이건과 대처의 반동적 정책과 영미권 사회의 보수화, 그리고 1980년대 동구권에서의 사회주의 이념 포기와 보수화, 반동화 이전에는 대외 침략은 “당연히” 죄악으로 인식됐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무의미한 살육과 히틀러의 만행이 인류에 가르친 교훈이라면 군사주의와 침략 이상의 죄가 없다는 것이지 않습니까? 아주 값비싼 레슨이었죠.
그런데 한 번 오늘날 세계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종신집권에 준하는 장기독재를 꿈꾸는 푸틴을 “구국의 영웅”으로 만든 1999년 이후의 체첸 침략과 체첸 독립운동의 말살, 괴뢰정권 수립 등에 대해, 러시아 좌파는 과연 투쟁을 차치하더라도 “비판”이라도 했던가요?
국내에도 소개된 카갈리츠키와 타라소프 등 일부 좌파 논객들은 글로 체첸 독립운동에 대한 말살에 저항했지만 러시아연방 공산당(KPRF)을 위시한 사민주의나 그 왼쪽에 있는 제도적 좌파세력들은 푸틴을 두둔해주거나 입장 표명을 기피했습니다.
결국 체첸 말살로 민심을 얻은 푸틴이라는 세계적 규모의 도둑이자 깡패는 지금까지도 망한 소련의 유산과 그 영토 안의 지하자원을 훔쳐가면서 권력을 누리고 있습니다. 체첸에서 비명에 돌아가신 분들의 수는 1968년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의 200명보다 약 1천 배 더 많은 걸로 추산되지만, 체첸 침략에 대한 러시아 내부에서의 비판은 체코슬로바키아 무장간섭에 대한 실망에 비해 너무나 미약했습니다.
결국 이건 희생의 규모 문제도 아닌 셈이죠. “프라하의 봄”에 대한 무장탄압에 실망했던 소련 지식인들은 그때만 해도 “침략은 죄악”이라는 좌파적인 집단의식을 공유했다는 거죠. 그 의식은 지금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거에요?
서방이라고 해서 보다 나은 상황은 전혀 아닙니다. 이라크 침략에 대한 반대 운동은 꽤 규모가 컸지만, 결국 이라크에서의 미제의 침략을 패배시킨 것은 그 반전 운동이라기보다는 이라크에서의 영웅적인 항미 무장투쟁이었지요.
지금 아프간에서는 고용살인자 수준으로 전락된 미국 군인들이 하는 짓거리들은 만천하에 알려져 있습니다. “재미”로 민간인을 살해하고 그 참수된 머리를 든 채 기념촬영하기, “적”의 시체에다 오줌 싸기, 코란과 같이 현지에서 신성시되는 책 소각, 16명의 민간인 목숨을 빼앗은 총난사….
아프간 침략 그 자체도 범죄이고, 그 큰 범죄의 틀 안에서는 온갖 기괴한 범죄들이 다 저질러지고 있지만, 이 범죄투성이에 대한 “위력적인 반전 운동”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습니다. 침략의 부진과 가열찬 저항의 성공적 전개에 따라 “자국 군대” 희생에 쇼크를 받게 된 구미인들의 대부분은 아프간 침략의 중지를 원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여론조사상 그렇게 원하고들 있는데, 1960년대 말의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과 비교될 만한 “행동”은 없어요. 주된 저항세력인 탈레반의 광신과 잔혹성이 마음에 안들어서 그런 것인가요? 그런데 베트남에서의 항미 저항 주도세력들은 탈레반에 비해 훨씬 근대적이었지만, 역시 서방인들이 생각하는 정치적 이상과는 사이가 멀긴 했습니다.
그래도 미제와의 항쟁에서 그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한 이유는, 현지 정치 세력들의 성격이야 어떻든 간에 제국주의 침략이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한말의 의병들이 성리학적 보수주의자이었다고 해서, 유림계통의 그 일부 지도자들이 노비 해방을 반대하고 여자교육을 반대했다고 해서(의암 유인석선생은 대표적으로 그랬습니다), 그들에 대한 일군의 토벌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문제는 탈레반의 광신이나 보수성은 아니고, 서방 사회에서 지난 30여 년 동안 일어난 변화들입니다. 구 동구권과 마찬가지로, 구미권도 1980년대의 반동 시대 이후로는 우경화됐으며, “침략은 죄악”이라는 좌파적인 통념을 많이 벗어났습니다.
그 결과는 아주 비극적입니다. 약 2만 명 이상의 현지인들을 죽인 것으로 추산되는 리비아에서의 영국, 불란서, 덴마크, 노르웨이 등의 침략에서 봤듯이, 요즘 서방세력의 “외부”에서의 몇 개월간 폭격 정도면 구미인의 대부분은 아예 거의 거들떠보지도 않고 인식하지도 않습니다. 명분만 좋으면 말씀입니다.
세계의 좌파는 이제 피닉스처럼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종전의 대기업 고숙련 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배타적 의존성을 벗어나서 이민자, 청년층, 미조직 서비스업 노동자 등 모든 소외된 주변 분자들을 조직적으로 규합해야 하고, 당 관료 독재의 방식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참여로 운영되는 민주적인 계획경제와 비관료적 사회주의에 대한 이론부터 정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탈군사화, 침략 반대의 기치를 다시 한 번 높이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오늘날 아프간 침략과 같은 악몽들은 계속 반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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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의 의미 (박노자 글방, 2012/02/24 01:22)
"이 노르웨이는 도대체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이런 자유에 충만한 사회가 됐느냐"고. 생각해보면 답은 아주 분명하죠. 대체로 1968년 전세계적 혁명 사태가 노르웨이 사회에서 특히 청년층 사이에서의 "권위주의 퇴치 운동"을 촉발시켰으며, 그 운동 전개의 과정에서 대학에서의 의무적 출석부터 체벌까지 차차 폐지, 금지되고 말았던 것이죠. 68년 혁명은 자본주의를 없애지 않았지만, 유럽인의 삶을 뿌리채 바꾸어놓았습니다. 실은 제가 지금 넥타이를 맺지도 않은 채 감기약 등으로 얼룩진 와이트셔츠를 입고 대학 연구실에 앉아 작업할 수 있는 것도, 제게 이것저것 묻고 싶은 학생들이 언제나 제 문을 두드려 "야, 블라디미르..."라고 시작해서 뭘 물어볼 수 있는 것도, 제가 아침마다 맨먼저 14개월이 된 딸애미를 보육원에 데려다놓고 직장에 가는 것도 다 68년 혁명의 "결과"에 해당됩니다. 68년 이전의 유럽 대학 교수는 늘상 정장을 하고 학생들을 쉽게 만나주지 않고 더더욱도 first name (개인 이름)으로 불러지지 않고 육아노동을 하지 않는, 훨씬 더 권위주의적이고 고답적인 존재들이었습니다. 뭐, 그런 교수를 구경하자면 68년 혁명을 거치지 않은 남한으로 가서 어느 대학에 가도 실컷 구경할 수도 있죠. 68년이 만든 "차이"를 실감하게요.
68년이 문화나 일상 등 우리 현실의 "소프트한" 부분들을 싹 바꾸어놓았죠. 성의 해방이나 동성연애 등의 긍정적 재인식, 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동등한 시각, 인종적 소수자들과의 연대뿐만 아니라 예컨대 전통적 교회 등 종래 종교의 점차적인 퇴출도 1968년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서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노르웨이에서는 전체 "토박이" 인구의 약 4%만이 정기적으로 교회 출석을 하는 것이고, 대학 안에서는 교회의 교리와 의례에 옭매여 있는 사람을 아예 찾아보기가 아주 어려울 지경입니다. 그렇다고 종교성이 없는 것도 결코 아닌 거죠. 단, 국가와 제도적으로 유착돼 아프간 침략 반대 하나 제대로 못하는 "공식" 교회가 예수님보다 예수님이 소리높여 비판했던 율법학자들과 훨씬 더 가깝다는 점 만큼 인제 보편적으로 인지되는 것뿐입니다. 이러한 모든 면에서는 우리는 파리의 "적색 5월"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는 거죠. 1789년의 "인간과 시민의 인권선언", "자유, 평등, 우애"가 19세기를 사상적으로 좌우했듯이,  1968년의 "Ni Dieu ni maître!" ("하나님도 주인도 필요없다!" - 1968년5월의 한 낙서, 오규스트 블랑퀴 Auguste Blanqui 의 1880년의 아나키스트적 잡지의 제목에서 따온 듯함)는 지금까지 인류의 하나의 해방 기제로 기능해온 것입니다.
그런데 "소프트한" 부분들은 많이 변혁돼도, "혁명"으로서의 1968년은 패배 당했으며, 그 패배는 1968년을 조직적으로 주도한 "올드레프트"의 한계를 그대로 노출시켰습니다. 노조를 통해서 수백만 명의 프랑스 노동자들의 파업을 주도한 공산당은, 아무리 "혁명"을 들먹여도 현실적으로 원했던 것은 임금 인상 등 자본과 국가의 양보와, 긍극적으로 사회당 등 다른 좌파 정당들과의 공동 집권 정도이었습니다. 결국에 1981-1984년간 사회당 주도의 연립내각에서 프랑스 공산당이 1947년 이후 최초로 입각해서 "정부"가 될 수 있었는데도, 그 어떤 "혁명"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그후에 공산당의 인기만 여지없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혁명" 수사로 포장된 개혁주의 노선은 결국 그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아무리 투표를 통해서 집권한다 한들, "탈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위압적인 대중운동을 이끌지 않는 이상 좌파정당은 결국 그 어떤 급진적인 조치도 취하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급진적으로 나가면 관료들이 조직적인 방해부터 시작하는 것이고, 자본가들이 대규모적인 자본의 해외유출 등으로 맞서기 때문입니다. 관료, 자본가들의 저항을 분쇄하자면 "자본주의"/"의회주의" 틀을 넘어서는 조치까지 취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하는데, 반세기 넘어 체제내 정치에 익숙해진 프랑스 공산당에게는 그런 준비는 전혀 돼 있지 않았습니다. 아나키스트나 트로츠키주의자 등 군소 급진파들은 공산당을 압도하는 "초좌파적" 수사를 썼지만 그들의 노동자에의 영향 행사 가능성이나 조직능력, 피지배 계급 동원 능력은 공산당과 노조에 한참 미달하는 만큼 맹렬 가투와 혁명적인 출판물 발간 이상의 그 어떤 "혁명"도 일으킬 능력은 없었습니다. 덩치 큰 "올드레프트" 정파들이 사민주의 수준의 개혁주의로 퇴보하고, 덩치 작은 "올드레프트" 정파들이 셔클 수준을 넘지 못해 대중성을 전혀 획득하지 못한 것은 1968년의 비극이었습니다.
"올드레프트"의 한계도 노출됐지만, 그렇다고 "신좌파"가 선전 (善戰)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착취"보다 특히 젊은이, 학생, 종족적 소수자 등의 "소외"를 문제 삼고 "착취"뿐만 아니라 "소외"도 없는, 철저하게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탈자본주의적 사회를 꿈꾸고 숙련공이라는 피착취 계급의 "핵심"이 아닌 젊은 실업자 등의 "주변부"에 그 시선을 돌린 "신좌파"의 문제의식은 굉장히 시의적절했습니다. 그리스 같이 젊은이의 절반 이상이 직장을 아예 얻지 못해 "착취" 당할 가능성도 잃어 끝없는 소외 속에서 살아가야 하고, 소득이 괜찮은 정규직들도 관료들이 독점하는 실질적인 정치 권력, 자본과 국가가 독점하는 경제권력으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하려 하는 사회에서는 "소외"의 관점이야말로 자본주의 비판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문제는, 세계 주변부의 대중부터 서방 도심의 주변부 인생들까지, 소외를 당한 이들을 어떻게 규합하느냐, 자본주의에 어떻게 치명타를 입히느냐 라는 전략, 전술인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신좌파"는 그저 무력했을 뿐이고, 그 무력감의 표현 중의 하나는 독일, 의태리, 일본에서와 같은 일부 "신좌파"의 무장 공격으로의 전환이었습니다. 대중의 지지를 받는 무장 투쟁 전술은 성공적일 수도 있지만, 그런 지지를 확보하지 못한 고립된 소수 "영웅"들의 투쟁이야 필패인데다가 자본주의적 악선전에 이용될 뿐이죠. 결국 1968년과 그 후속 "사건"들은 구좌파와 신좌파 각각의 한계를 다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극복에 성공할 미래의 좌파는 오늘날 "올드레프트"와 "뉴레프트"의 조합일 것이고 양쪽의 장점을 취할 것입니다. 적어도 1968년 이후에는 한 가지 분명해졌습니다. 그 당시의 또 하나의 인기 있는 낙서의 말대로, "Ceux qui font les révolutions à moitié ne font que se creuser un tombeau", 혁명을 할 때에 반쪽만 가는 이들은 결국 자신들의 무덤을 팔 뿐이라는 점입니다. 체제와의 그 어떤 타협도 궁극적으로 "무덤", 우리의 경험으로 본다면 1980년대의 반동과 신자유주의의 도입 등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런데 혁명을 끝까지 끌고 가자면 좌파는 대단히 대중적이고 대단히 포괄적이고 대단히 잘 준비돼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타협을 하지 않고 끝까지 갈 용기가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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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20099.html
[박노자 칼럼] 사회적 타살의 일상성 (한겨레,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2012.02.21 19:28)
현실 사회주의를 비판하려는 이들이 늘 집중 공격하는 것은 농업 집단화나 숙청 때와 같은 대규모 국가폭력이다. 물론 이 부분에서 스탈린주의를 변호할 수는 없다. 혁명적 열기가 식어가고 정치판이 보수화하는 가운데 초고속 공업화라는 어마어마한 과제를 안게 된 국가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총동원 체제를 구축한 것이고, 그 어떤 총동원 체제도 폭력 없이 가동될 수 없다. 물론 스탈린 사망 당시의 소련 총인구 대비 ‘수용소 군도’의 인구 비율(약 1%)은 오늘날 미국에서의 수인(囚人) 인구 비율(약 0.7%)보다 약간 높은 정도이긴 해도, 이것 역시 변명거리는 되지 못한다. 자본주의적 야만을 근절하겠다는 체제가 결국 가장 야만적인 자본주의 국가들처럼 감옥을 하층민들의 ‘순치’와 노동착취를 위해 이용했다면, 사회주의적 간판과 이 체제의 본질이 서로 맞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 사회주의 나라들에서의 국가폭력을 이야기하자면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놓쳐선 안 된다. 북한과 같이 군사적 대립이 늘 첨예한 일부 경우만 제외하면, 대부분의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어느 정도 공업화에 성공한 뒤로는 민중의 불만을 인식하여 국가폭력의 남용을 자제했다. 예컨대 소련의 경우 1987년 페레스트로이카 과정에서 일체 양심수들이 석방됐을 때 석방 대상자들은 2억7000만명 인구의 나라에서 약 280명에 불과했다. 즉, 소련은 몰락하기도 전에 대내적으로 반대자에 대한 물리적인 국가폭력의 사용을 최소화했다.
현실 사회주의의 국가폭력은 사회의 성숙과 함께 수그러들었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덜 폭력적으로 되지 않는다. 전쟁이라는 형태의 대외적인 국가폭력은 여전한데, 오히려 그것에 대한 반대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체제를 뒤엎어버릴 것 같았던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의 베트남 침략 반대 시위와, 그 존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구미권에서의 오늘날 아프간 전쟁 반대 운동을 과연 비교라도 할 수 있을까? 한국도 아프간에 파병한 나라 중 하나지만, 진보계 안에서조차도 침략 방조행위인 아프간 파병은 거의 관심 밖에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체제의 폭력성이란 꼭 국가의 적극적인 폭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의 직접적인 폭력보다도, 자본과 국가가 소극적으로 유기한 (또는 그 본질상 처음부터 다할 리도 없는) 사회적 책임은 더 많은 이들을 간접적으로 죽일 수 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인간이란 잉여가치 수취의 도구에 불과하다. ‘쓸모 있는’ 도구라면 국가는 그 종전의 이데올로기를 고치면서까지 배려하는 척이라도 한다. 120만명의 국내 외국계 인구는 농촌인구의 재생산이나 중소기업들의 경제성 유지에 필수불가결하니까 2000년대 초에 ‘단일민족’과 같이 오랜 이념이 정부에서 용도폐기되고 적어도 형식상으로 ‘다문화주의’로 전환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쓸모없는 도구’가 돼버린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 체제는 모든 책임을 다 유기할 뿐이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중에서는 이미 21명이 자살이나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질환으로 비명에 사망했지만, 과연 정부나 쌍용자동차 자본이 대책다운 대책을 세워본 적이라도 있었던가? 나이가 40~50이 되고 ‘강성노조’ 이미지가 강해 취직전선에서 기피 대상 1호가 돼버린 늙고 병든 실직노동자들은 이 사회의 주류로부터 그 어떤 관심도 끌지 못한 채 그저 죽어가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노조에 가입되었던 노동자들의 죽음은 노동계 안에서라도 동감과 연대의식을 유발하지만, 어디에도 소속돼 있지 않은 ‘쓸모없는 도구’의 죽음은 아예 흔적도 없이 묻혀버리고 만다.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세계 최고이며 일본·미국의 4~5배 정도인데, 해마다 가난과 멸시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5000~6000명의 노인들에 대해서 이 사회가 약간이라도 신경 쓴 적이 있었던가?
스탈린주의 체제와도 비교

될 수 없는 자본주의의 내재적 살인성은 민중의 위력적인 압력에 의해서만 어느 정도 제어될 수 있다. 계급의식과 조직성이 낮은 우리나라 민중들이 그러한 압력을 행사하지 못하기에 사람들이 계속 죽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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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16830.html
[박노자 칼럼] 한국 자본의 ‘통념’, 인종주의 (한겨레,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2012.01.31 16:29)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서 자주 보여주었던 <톰 아저씨의 오두막> 장면들은 필자의 머릿속에 각인됐다. 혹서의 미국 남부 여름에, 뙤약볕에 땀을 흘리는 흑인 노예, 그리고 채찍으로 그들을 위협하면서 “야, 이놈들아, 해는 아직 지지 않았으니 열심히들 하라”고 고함을 지르는 백인 지배인…. 소련 텔레비전에서 이와 같은 영화들을 ‘제국주의 역사 바로 알기’ 차원에서 보여주었는데, 필자 또한 이 장면이 현재와는 무관하다고 믿으면서 자랐다. 대한민국이 앞장서는 요즘의 신자유주의적 ‘노동착취의 지구화’ 현상을 알게 되고서야 인종주의적이며 폭력적인 노동자 혹사가 현재형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다.
“열대의 뜨거운 공기 속에서 수백명의, 주로 피부색이 가무스름한 인디언 계통의 젊은 여성들은 방직 작업에 열중한다. 옆에 있는 동료에게 말 걸기조차 무섭다. ‘잡담’하다가 걸리면 한국인 관리자가 와서 머리를 마구 때리거나 적어도 폭언을 쏟아붓기 때문이다. 체벌을 당하면 악취 나는 화장실로 도망가듯이 가서 실컷 울기라도 하고 싶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화장실을 자주 다닌다고, 한국인 관리자가 면박 주거나 또 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관리자가 보통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어로 고함 지른다. 그러나 이러다가 ‘빨리빨리’와 ‘개새끼’ 등 일부 단어들을 가무스름한 피부의 모든 노동자들이 알게 되는 것이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 장면을 연상시키는 위의 이야기는 한 인권활동가가 묘사한 1980년대 말 과테말라 한국계 방직회사의 일상이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에 국내에서 과거와 같은 마구잡이 임금착취가 어려워지자 방직업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친한적인’ 극우정권이 다스리는 과테말라와 같은 나라들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은 과테말라에서 제1위 투자국가였는데, 그 ‘성공’의 이면에 피부색이 검은 인디언 노동자들에 대한 기록적인 혹사와 일상화된 체벌·폭력이 있었다. 한국계 공장에서의 폭력이 어느 정도 심했기에 한국과 과테말라 양쪽 정권의 ‘기둥서방’ 격인 미국의 국무부마저도 결국 ‘조사’를 해야 할 정도였을까? 한국 기업들에 의한 폭력과 초과착취, 군사주의적 노동자 통제의 ‘해외수출’의 효시 중 하나였던 과테말라 투자 붐은 결국 중국과 베트남의 부상으로 끝났지만, 한 가지는 바뀌지 않았다. 백인이 아닌, 특히 피부색이 까만 외국 노동자에 대한 끝이 없는 인격적 무시와 끔찍한 폭력의 연속, 즉 살인적 인종주의다.
물론 한국 기업의 착취와 부당노동행위의 일차적 피해자는 누구보다도 국내 노동자들이다. 또한 백인 노동자라고 해서 이윤추구에 눈이 먼 국내 자본가들로부터 각종 권리침해를 당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한국 학원업자들의 영어 원어민 강사(주로 미국 등 국적의 백인)에 대한 임금체불, 잔업강요, 퇴직금 지급 거부 등 각종 부당노동행위는 이미 국제적으로 문제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인이나 백인에 대해서는 적어도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하거나 ‘노예취급’ 하듯이 대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검둥이’, 피부색이 가무스름한 노동자들에 대한 대접은 완전히 다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2011년 12월호에서 보도된 한국 참치배에서의 인도네시아 선원에 대한 상습적 가혹행위 등의 만행은 예외라기보다는 다반사에 가깝다. 한국 기업의 착취 대상이 된 피부색이 까만 사람은 언제나 폭력이나 폭언을 각오하고 살아야 한다.
최근 국내에서 벌어지는 인종주의 관련 논의의 초점은 국내 거주 동남아인이나 흑인 등에 대한 몰상식한 일부 일반인의 모욕 등에 맞추어져 있다. 서민들까지 지배자들의 ‘통념’을 그대로 배우는 것도 물론 한탄스러운 일이지만, 문제의 핵심은 미국식 ‘인종 질서’를 그대로 익혀 인종주의를 착취의 무기로 삼는 한국 자본가들이다. 그들이야말로 한국을 피부색이 다른 사람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살기가 어려운 곳 중 하나로 만들었다. 과연 우리들이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는 연대정신으로 그들의 ‘통념’에 맞설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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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4312
"반미는 '공기'처럼 필요하다" (레디앙, 2012년 01월 20일 (금) 10:21:01 박노자 / 오슬로대)
미, 이란 원유수입 감축 요구와 한국의 집권 노예 계급들
어렸을 때에 배운 역사교과서에서는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되는 한 가지 사진이 있었습니다. 1917년10월 혁명 이후에, 평생 최초로 글을 배우기 시작한 농민 부인들은 칠판에 쓰여진 대로 공책에다가 잘 따르지 않는 손으로 어렵게 어렵게 씁니다: "우리들은 노예가 아니다. 노예는 우리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는 소련 정권 초기의 최초의 교과서 중의 하나인 <문맹 타도. 성인용 자모 교과서> (Долой неграмотность: Букварь для взрослых, 1919)에서 따온 문구였지요. 오늘날 자본주의 국가인 러시아의 역사교과서에서 그 사진이야 나올 리가 없지만, 인터넷에서 그 사진을 만날 때마다 왠지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비록 그 때의 해방은 몇 년 가지 않아 결국 스탈린주의적 관료체제는 봉기를 단행한 인민으로부터 그 자유의 상당 부분을 회수(?)해버리고 말았지만, 그 순간이 엄연히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실에 대한 기억 그 자체가 아주 중요합니다.
1945년 8월 이후의 조선 각지에서의 인민위원회 설립 등 일시적인 '직접적 인민 민주주의' 출현이나 1946년 10월 항쟁, 지리산 등지에서의 빨치산 투쟁에 대한 기억들은 한반도 남반부 민중들에게 중요하듯이 말입니다. 그러한 기억을 가진 인민들을, 잠시 다시 노예화시킬 수 있어도, 노예 상태를 벗어나려는 그 의지들을 완전히 꺾을 수 없는 거죠.
그런데 요즘 국내 소식을 듣노라면 아무래도 지금의 우리 상태는 집단적 노예상태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예컨대 최근 이란산 원유 수입 감축에 대한 소식을 생각해보시지요.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이란을 경제적으로 질식사시키려는 상전나라에서 후국(侯國) 한국에다가 "50%로 이란산 원유수입을 줄여라!"라고 엄명(?)을 내리고, 천자의 혜명(惠命)을 받들어 모시는 남조선후(南朝鮮侯) 명박(明博) 전하의 장상(將相)들은 "천자의 성은이 망극하옵니만, 저희 살림살이의 어려움을 돌봐주셔업소서, 부디 30%만 줄이도록 은혜로운 명령을 다시 고쳐내려옵서소"라고 천사(天使: 천자의 사절) 앞에서 무릎을 꿇어 읍소하는 꼴입니다.
남조선 후왕 (侯王)의 뛰어난 충성에 힘입어, 천자의 사절은 이제 보다 덩치 큰 후국 일본에 가서 역시 "이란에 대한 경제적 토벌에의 동참"을 비슷한 방식으로 명령할 셈입니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한 나라의 국가적 독립성이나 자주성은 물론 그 나라의 여권을 갖고 사는 모든 시민들의 개인적 자존감까지도 완전히 뭉개버리고 마는 이 소식은, 국내 매체들은 대개 "경제뉴스"로 다루어주었습니다.
경제보다 훨씬 더 일차적이고 중요한 부분들이 관계되는 일이지만, 이미 주인님과의 명령/복종 관계에 익숙해진 노예들에게는 그 관계틀 속에서는 돈밖에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왜 개인적 자존감의 문제인가요?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도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데에 대해서 나름대로 자긍을 하고, 자존의 의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스코틀랜드 시인 로버트 번스 (1759-1796)의 명시 "사람은 사람이다, 등등"에서 이야기하듯이, "정직한 가난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자는 그저 비겁한 노예, 우리는 그를 상대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가난하게 살 용기가 있다 등등" 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미 제국의 "이란 고사 작전"에 동참하는 이상, 우리는 더이상 "정직하다"고 자긍할 수 없습니다. 미 제국이 이란에 대해 별의별 경제 제재를 하고, 이스라엘의 모사드라는 첩보조직과 협동해 벌써 이란 핵과학자 4명의 목숨을 테러적 방법으로 빼앗고, 나아가서 아예 이란과의 전면전이라도 벌이려고 하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권?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란 국회를 보시면 여성 의원 아홉 명 정도 보이지만, 미국과 함께 이란 공격을 준비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국회는 물론 없고 여성의 정치적 진출을 아예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이란의 우파적인 신정(神政) 독재는 여성 등 여러 약자 집단들의 인권을 억압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이 전폭적으로 지지, 지원하는 사우디 등등의 걸프 지역의 보수적 왕국에서는 이란과 같은, 전체 대학생 중에서 여성이 65%나 차지하는 역동적 사회를 상상도 할 수 없다는 거죠.
핵 폭탄 제조의 위험? 핑계에 불과합니다. 중동 유일의 진짜 핵무장은 바로 미국의 "우방 이상의 우방" 이스라엘이 갖고 있으며, 대다수의 객관적인 관찰자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이란은 아직도 핵폭탄 제조 수준 가까이도 못갔습니다. 간다 하더라도 무엇이 달라지나요? 파키스탄에 핵무기가 있다고 해서 주변 지역의 지정학적 지도는 과연 크게 바뀌었나요?
진짜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북조선이나 시리아, 중국과 마찬가지로, 이란은 미 제국의 후국이 되려 하지 않거나 될 수 없는 나라들의 그룹에 속합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의 이란은 실제로 종교적 보수주의 방향으로 가고 인민들의 많은 기대들을 배반했지만, 그 혁명의 결과로 그나마 대외적인 자율성 정도는 따낼 수 있었습니다.
이 부분이야말로 미국 집권자들의 눈엣가시가 되고, 혁명의 "혁"자만 봐도 벌써 겁과 증오에 치를 떠는 사우디와 같은 나라들의 지배자들을 자극시킵니다. 이란이 혁명을 거친, 자원에 대한 민족주의적인 국가적 통제를 확립시킨 나라이기에 그 유전을 싼 값에 임대해 그 자원을 더이상 쉽게 약탈할 수 없게 된 유럽 열강들도 기본적으로 이란을 회의적으로 보고, 미 제국의 반(反)이란 책동에 아주 쉽게, 비교적으로 지율적으로 동참합니다.
예컨대 과거에 이란을 반(半)식민화시킨 영국 같으면 그러한 동참은 자연스럽기까지 하죠. 그런데 한국은 영국과 같은 식민주의 침략의 역사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영국과 달리 이란 혁명으로 그 자원 약탈의 기회를 잃은 것도 전혀 아니지 않습니까?
한국 시민 대다수가 공유하는, 일제시절에 대한 집단 기억에 기반을 두는 반(反)식민주의적 정서로 봐서는, 이란혁명의 성과에 박수갈채라도 보낼 부분들은 많고, 굳이 경제적으로 보더라도 에너지집약적 제조업 국가 한국의 특징상 이란과 차후 아주 긴밀히 협력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같은 피해자 대열에 속한다는 역사적인 동류의식이나, 미 제국의 전횡과 범죄(여태까지 4명의 이란 핵물리학자를 암살시킨 것은 분명히 국제범죄입니다!)에 대한 도덕적 분노 등을 다 나몰라라 하는 우리 후국은, 미 제국의 공범으로 아주 아주 쉽게 나서는 것입니다. 한국 여권을 갖고 계시는 독자 여러분, 아무래도 자존심은 좀 상하지 않으십니까?
1980년대식, 단순한 "양키여, 물러가라! 통일하자!"식의 반미에는 여러 가지 문제들은 있습니다. 남북한 양쪽 지배자들부터 시작해서 진정으로 통일을 원하지 않는 것부터 문제죠. 통일문제보다 계급문제가 일차적으로 해결돼야 된다는 말씀이죠.
그런데, 이와 같은 단순한, 감상적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형태는 아니더라도, 노예상태에 묶여 있는 우리에게는 "반미"는 공기처럼 필요합니다. 미 제국의 국제범죄에 공범으로 나서게 되는 만큼, 우리들은 우리 자신들의 인간적 본성, 기본적 자존부터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또 주인님들의 요구가 어디까지일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문제죠. 정말 미 제국이 이란을 침략하게 된다면 또 파병을 요구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또 거기에 가서도 제국의 총알받이 노릇을 해야 한단 말인가요?
반미는 공기, 물처럼 필요한 것이고, 또 한국이 미 제국과 적당히 거리를 두자면 현실적으로 수많은 방편들은 있습니다. 남북 공동 군축으로 주한, 주일 미군의 주둔 명분부터 약화시킬 수 있는 것이고, 또 중국과의 안보차원 협조를 토의해, 미군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중-북-남의 공동안보협력의 시대를 향해서 적어도 한두 걸음을 걸어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제 생각 같으면, 아주 궁극적으로는 남북한 양쪽의 영세중립과 한반도에서의 일체 외국군 철수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방향"입니다. 문제는, 노예화가 지나친 나머지 오웰의 말대로 "노예상태는 바로 자유"라고 생각하기에 이른 한국의 지배층이죠.
"오렌지 발음"으로 한반도 "원주민"들을 줄세우고 계급으로 나누는 저들은, 상국(上國)으로부터 그렇게 쉽게 떨어져나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오렌지 발음"이 별로 좋지 않은 가난한 "원주민"들을 주인님들에게 총알받이로 계속 공급하려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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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이 민주주의 국가라고요? (레디앙, 2012년 01월 13일 (금) 10:47:22 박노자 / 오슬로대)
"송경동, 정진우 구속은 70년대식 전체주의 회귀 현상"
노르웨이 기자들은 (북한이) "스탈린주의의 유교적 변형은 아니냐"고 묻곤 하지만, 군사화의 정도나 "유일사상" 강조는 예컨대 동유럽 스탈린주의 정권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미-일-한 침략적 블록으로부터의 위협이 실제로 엄연히 존재하고, 또 (억압적 기구의 역할은 물론 없는 건 아니지만) 정권의 선군정책의 명분이 되는 제국주의적 공격에 대한 방어적 태세는 실제로 대다수에게 내면화돼 있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는, "스탈린주의적 공업화 방식과 행정적 기술과 함께 전근대적인 통치 이데올로기 등을 동시 이용하는 반제적 성격의, 군사주의적 요소가 강한 대중 (합의) 독재" 정도면 어느 정도 객관적이다 싶은 정의가 될듯한데, 너무 길죠? 그런데, 조선반도의 근현대사가 복잡한 만큼, 그것보다 더 짧게 정의하기가 정말 힘듭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북조선보다 어쩌면 남한 체제의 성격을 규정하기가 더 힘들 것 같기도 합니다. 신자유주의 국가라고요? "가카"가 손수 라면 값 등등을 "잡아주는" 쇼를 벌이고, 이와 동시에 소비자 물가 앙등의 위험을 무릅쓰고 환율을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필요성대로 조정해주는 나라가 (국가의 개입이 최소화된다는) "신자유주의 국가"라면 저는 화성인일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한쪽으로 보면 비정규직 양산이나 저임금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의 경향적 저하, 중간 규모 근로소득자와 중소 자영업자 계층(중산층)의 경향적인 축소 등으로 봐서는, "신자유주의 국가"는 거짓말은 아니거든요. 단, 이와 함께 국가가 주요 재벌들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챙겨주는 "재벌국가형 중상주의" 같은 측면도 적지 않게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와 재벌국가형 중상주의의 결합"일 터인데, 신자유주의로도 (노동자 이해관계를 배제하는) 중상주의로도 고통을 받는 민중을 도대체 어떻게 해서 통제를 한단 말씀이죠? 그러니까 여기에다가 한 가지를 꼭 첨가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와 독특한 기업국가형 중상주의를 겸비하는 규율국가"라고 해서, 이 "규율 국가"에다가 방점을 찍어야 합니다.
이 부분은 아니면 노르웨이 사람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휴대폰과 자동차의 부품들을, 산업화된 나라 중에서 가장 노동시간이 길고 가장 산재 위험이 많고 가장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공장에서 만드는 노동자들이, 노르웨이 나들이를 좋아하는 그 "사장님"들을 그냥 린치해버리지 않고 아직도 계속 참고 견디는 것은 설명되어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체제 하에서 불가피하게 쌓여가는 불만의 폭발을, 이 체제는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잘 예방합니다.
실제 "내면의 규율화"가 없으면 남한이라는 자본주의형 전체주의적 사회에서는 그저 살아남을 수가 없거든요. 전체주의가 아니라고, 대통령까지도 "쥐박이"라고 마음껏 욕할 수 있는 자유의 낙토라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병역거부를 하는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계속 감옥행해서 세계의 수감중인 병역거부자들의 95%(!)를 차지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여러분들께서 남한에서 용감하게도 미국 상전들의 언어를 (의무교육 교정 이외에) 달달 외우기를 거부한 "영어 거부자"를 한 명이라도 보셨나요?
돈이 없어서 "내지어"(?) 공부를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돈이 있어도 식민모국 언어에 대한 거부의사를 자유로이 실천한 경우를 보셨습니까? 대학입학을 거부한 몇 명의 용감한 젊은이들을 제가 요즘 인터넷상으로 만날 수 있었지만, 과연 그런, 매우 상식적인 운동들은 남한에서 보편화될 수 있을까요? 고문실과 양심수 구속의, 유신정권식의 전체주의는 이미 상당 부분 가긴 갔지만, 남한의 보이고 보이지 않는 사회적 압력들은 실로 "소프트한" 전체주의 수준입니다.
그러한 압력을 받으면서도 돈 들여 주인님들의 언어를 배울 만한 집안 사정이 되지 못한 아이들이 조금만 크면 관리자 욕설을 들어가면서 주차장 관리요원과 편의점 알바를 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낙오자가 되지 않을까" 미리 겁을 먹는 아이들은, 과연 더 커서 반란을 일으켜 착취공장들을 쳐부쉴 위험은 클까요? 우리는 아주 아주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노예화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삼성과 현대의 대주주들이 별 근심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돈벌이할 수 있는 기반이죠.
"중상주의와 신자유주의를 겸비하는, 전체주의적 요소가 강한 규율국가" 남한.... 우리가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대다수의 인구가 일찌감치 순응주의자로 클 수밖에 없는 이런 사회에서는, 관리자들은 늘 70년대식 "고전적인 전체주의"를 재도입할 "유혹" (?)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끄럽게 하는" 몇 명의 반대자들을 본보기 삼아 감옥에 쳐넣어도 사회에서 무슨 폭발이라도 일어날 일은 없거든요.
예컨대 최근의 사회당 당원 박정근 동지의 구속 사건을 보시지요. "조선로동당 반대" 입장에 확고히 서는 사회주의 정당 당원이 북조선 어투를 패러디 재료(?)로 삼아 몇 개의 트위트를 날리더니 금새 "찬양고무자"가 되어서 영어의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공안당국이 사회당이 북조선을 철저하게 비판한다는 걸 모르는 것은 전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다 알면서 또 다른 "까부는 아이"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 그저 국가보안법을 악용을 해서 정권의 비판자를 물리적으로 탄압한 것이죠. 그렇게 해도 대다수가 그저 침묵만 하고 자기 일에만 신경쓰는, 경제동물화된 사회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은 "주인님"들에게 부담도 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70년대식 전체주의로의 회귀" 현상 중의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최근의 송경동, 정진우 등 "희망버스" 조직자의 구속입니다. 알 사람은 다 알지만, 그들이 조직한 운동은 한국 노동운동사상 아마도 가장 평화적이었습니다.
상당 부분 아이를 대동하고 부산에 오는 "희망버스" 승객들은, 화염병이나 돌에 호소하지 않는 건 물론 몸싸움까지도 피하려는 경우가 대다수이었죠. 비폭력적이었던 만큼 이 운동은 잘 대중화돼 결국 성공했습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송경동시인과 정진우 동지가 감옥에 가게 된 이유죠. 그들은 너무나 성공적으로 평화 지향적이었다고 해서요.
이게 전체주의가 아니고 민주국가라고요? 남한을 보고 "북조선보다 그래도 우월한 민주적 체제"라고 주장하시는 진중권 류의 리버럴 분들께서, 이 장면을 보고 약간이라도 반성해주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나라가 민주국가라면, 오웰의 말대로 "노예상태는 바로 자유"죠.
"진짜" 전체주의, 양심수 다수를 양산하는, 그런 전체주의로의 회귀를 방지하려면,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만히 있지 않는" 일이죠. 트위터로든 블로그 포스트로든 매체 기고문이든 시위로든 모든 가능한 표현 방식들을 다 동원해서 송경동 시인과 정진우 동지를 비롯한 여러 양심수들을 석방하라고 고집스럽게 요구하는 일부터 하는 게 가장 쉽고 일반적인 방법이겠습니다.
그 다음에, 금년에 총선, 대선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양심수 석방에 대한 입장을 특정 정당 지지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방법도 있겠습니다. 양심수 석방을 요구하지 않는 정당이라면, 이 정당은 비(非)민중적인 것은 물론 아예 진정한 의미의 자유주의 정당도 아니라고 봐야 할 겁니다.
그리고 제일 근본적인 대책은 노동자들의 조직화, 그리고 노조들의 전투화, 급진화입니다. 노동운동이 그 고립을 극복하고 급진화돼야 노동운동가들의 구속은 정권으로서 훨씬 더 부담될 것입니다. 결국 급진화된 노동운동과 급진적인 민중 정당만이 이 체제 전체를 한 번 근본적으로 흔들 수라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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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칼럼] 푸틴의 러시아: ‘마피아 국가’의 말로? (한겨레,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20120112 19:05)
경제성장을 주된 목표로 삼아온 남한에서 태어나고 사는 주민들의 특징이겠지만, 우리에게 국가는 적어도 경제적인 차원에서 ‘이성적인’ 존재로 쉽게 인식된다. 즉, ‘정상적인’ 국가라면 ‘발전’을 목표로 할 것이고, 고부가가치 제품의 생산 및 수출을 장려할 것이라고, 우리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전제한다.
하지만 이 전제는 오랫동안 북한과 체제 경쟁을 해야 했던, 그리고 지금까지도 주로 기술집약적 제조업 제품들의 수출로 자본의 이윤을 벌어야 하는 남한이라는 국가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지, 세계사의 보편적 규칙이라고 하기 어렵다. 1997년 이후에 신자유주의적 성격도 띠게 됐지만, 남한은 근본적으로 산업자본의 이익 극대화에 중점을 두는 신(新)중상주의적 국가다. 하지만 그러한 국가보다 세계체제의 주변부나 준주변부에서 더 흔한 국가의 유형은 ‘약탈국가’다. 약탈국가에서 집권 관료는 특히 매장자원의 수출 등으로 지대를 올리는 반면, 다수의 평민은 만성적 빈곤에 허덕인다. 외형적인 민주국일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약탈국가들은 독재 내지 준독재일 가능성이 높으며 많은 경우에는 집권 관료층이 조직범죄와 결합되거나 ‘조폭적인’ 방법들을 통치에 이용한다.
지난번에 ‘위키리크스’에서 “마피아 국가”로 명명된 옐친이나 푸틴의 러시아는, 위의 약탈국가 정의에 거의 그대로 부합된다. 지난 12월에 세계를 놀라게 한 모스크바 등지에서의 부정선거 반대 시위는, 바로 이와 같은 약탈국가에 대한 대중들의 피로와 불만의 수준을 보여준다. 실은, 1993년에 옐친이 탱크 대포로 국회를 파괴한 이후로는 러시아에서의 거의 모든 선거들은 부정선거였다. 이제 와서야 유권자들이 부정선거에 항의하기 시작한 이유는, 매장자원의 수출에 의존하는 약탈국가의 허약함이 세계공황의 질풍노도에 의해서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2011년 내내 러시아 주민들의 평균적 실질 소득은 거의 오르지 않았으며, 자원에 대한 수요를 깎는 공황이 지속되는 한 앞으로도 그 소득이 당분간 오를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자본의 러시아라는 약탈국가가 소련 시절부터 이어받은 기술, 교육, 의료 인프라 상태는 가면 갈수록 나빠지기만 했다. 이와 같은 상황은 2011년 말에 러시아 시민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러시아를 약탈국가로 정의하면 많은 이들이 반대할지도 모른다. 2000년대 내내 경제가 고속성장한 이른바 ‘브릭스’ 국가이며 아직도 나로호에 기술을 제공할 정도로 우주항공 등 일부 부문에서 세계적 기술 수준을 유지하는 나라가 과연 약탈국가일 수 있느냐고 물어볼 것이다. 하지만 점차 기술집약적 제품 수출로 옮기는 등 세계 자본주의의 먹이사슬에서 2000년대에 꾸준히 상승 이동해온 중국과 달리, 러시아의 높은 성장률은 거의 전적으로 매장자원 가격 폭등에 의존했다. 러시아 수출에서의 기계 등 기술집약적 자본재 비율은 2003~2008년 사이에 9%에서 4%로 내려갔으며, 이후에도 계속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러시아 기계생산량은 소련 말기의 40% 정도에 불과하고, 그 기술적 수준은 갈수록 떨어져 간다. 이와 같은 퇴락의 이유는 자명하다. 자원 수출의 길에서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국내 고부가가치 상품의 생산을 고사시킬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몰아붙인 푸틴 정권은 석유와 가스 장사로 단기간 떼돈을 벌 생각만 하지, 다수에 이득이 될 나라의 장기적 발전에는 하등의 관심도 없고 투자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러시아 집권 관료들은 나로호 프로젝트에 제공되는 옛 소련의 기술을 이용할 줄 알지만, 소련 유산을 약탈하는 일 이외에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 바로 이 점은 특히 정보력이 빠른 도심의 젊은 중산층 사이에서 그들에 대한 분노의 원천이 된다.
성난 민심에 푸틴 정권이 머지않아 무너질는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약탈국가의 성격이 당장 바뀔 것은 아니다. 대기업의 재(再)국유화와 사회주의적 계획경제 요소의 재도입, 민중의 저항에 따르는 민주화와 관료층의 대대적 물갈이 등이 없으면 러시아에 그 어떤 미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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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성한다" (레디앙, 2012년 01월 07일 (토) 00:57:01 박노자 / 오슬로대)
"분당 긍정한 것 책망…자주파 대한 이해, 관용 부족"
자본주의가 힘을 잃어가는 오늘날에 한국을 포함한 수많은 나라의 좌파가 자본주의적 시장지상주의가 추락한 그 만큼의 "세 확장", 그 만큼의 성장을 하지 못한 이유들이 객관적인 현실에도 있지만, 또 동시에 분명히 우리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그 부분에 대한 반성을 치열하게 해야 좌파라고 누구에게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반성이 있어야 좌파는 좌파답게 대중화될 수 있을 것이고, 반성하지 않고 독선적으로 나가는 만큼 결국 폐쇄적인 섹트로 전락할 위험은 큽니다. 반성의 주제들을 거칠게나마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듯합니다:
1.
소련의 망국은 분명히 역사 희대의 비극이었습니다. 1989년과 1997년 사이에 러시아만 해도 1천명 당 사망률이 9명에서 16명으로 폭등해, 1980년대에 비해 약 3백만 명이 "추가적으로" 죽은 셈이었습니다. 영양실조와 알콜, 마약 중독, 각종 범죄, 체첸 독립운동에 대한 무력진압과 학살 등등으로, 고통스럽게 죽은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민중의 희생을 대가로 해서, 극소수의 관료와 관제 재벌, 정상배들이 구소련의 자원과 공장을 "사유화"(약탈)한 것이고, 기생적이고 극도로 폭력적, 반민중적 "신흥 자본주의" 사회를 건설한 것입니다. 이런 사회에 비해서야, 후기의 소련도 거의 낙원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과연 소련이나 동구라파 국가들의 망국/체제변환은 "사회주의 사망 신고"이었을까요? 푸틴의 마피아 자본주의에 비해서야 당연히 민중으로서 살 만한 사회이었지만, 스탈린 시절의 보수화와 혁명가들의 숙청, 관료화를 거친 그 사회는 이미 거의 이렇다 할만한 혁명성을 보유하지 못했습니다.
혁명성을 그대로 어느 정도 여전히 보유하는 쿠바와 같은 "현실 사회주의" 사회들은, 소련과 달리 망하지도 않았으며 망할 일도 없습니다. 스탈린 시기 이후의 소련의 사회적 체질로 봐서는, 고급 관료들이 약탈적 자본가로 변신해 "사유화"에 나서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간의 문제이었으며, 이는 "사회주의 패망"이라기보다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의 궁극적인 "한 주기의 완주"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혁명 이전의 자본에 대한 사유제가 부활됐으니 "원점"으로 다시 온 셈이죠. 그런데 일국화된 뒤에 고립화, 관료화돼, 결국 변질되어 이렇게 자기부정된 러시아 혁명은 "원점"으로 귀환될 수 있어도, 이는 사회주의라는 세계적 이념의 패망을 의미하지 않으며, 의미할 수도 없습니다.
소련의 패망을 "사회주의의 패망"으로 간주한 것은 분명 근거없는 패배주의였습니다. 그런데 이 패배주의는 특히 1990년대에 국내 좌파를 황폐화시키고, "포스트 바람" 등 각종의 기형적인 현상들을 일으킨 것입니다. 역사를 긴 안목으로 봐야 할 좌파는, 왜 그렇게도 근시안적이었을까요?
2.
소련이나 북조선은 분명히 우리가 꿈꾸는 "사회주의"와는 상당히 다른 사회들입니다. 혁명의 점차적인 제도화, 관료화 과정도 있었지만, 아무리 혁명적 열정이 남는다 해도, 미제나 서유럽, 일본, 남한과의 같은 굴지의 야수들로부터 방어하느라고 국내총생산 20~25% 정도를 무의미한 "국방"에 써야 하는, 각종의 무역 제한으로 말미암아 최신의 기술에의 접근이 많이 차단돼 있는 (준)주변부 사회들은, 사람들이 조금씩만 일하고도 각자의 자유로운 자기 실현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공산주의적 낙토로 고립된 채 발전되기가 아주 힘듭니다.
그 엄청난 자원과 상당한 기술력을 가진 소련마저도 결국 대다수의 인민들에게 약간의 여유만 있는 상대적 빈곤을 선사해야 했으며, 자원은 훨씬 없는데다가 국방비 비중이 훨씬 더 높고 고립이 훨씬 더 심각한 북조선은 비극적이게도 식량문제마저도 안정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진정한 사회주의는 일국적 현상이 아닌 세계적 현상이어야 하는 것이고, 지금 핵심부가 보유하는 기술력 이상의 생산력 수준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자유, 즉 매일매일 사람을 파김치로 만드는 노동으로부터의 자유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각자가 하루에 2~3시간씩 사회적 노동을 한 뒤에 시를 쓰거나 산책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사랑을 나누는 등 말 그대로 모두들의 자유로운 자기실현을 담보할 개인의 자기실현에 몰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회가 되라고, 야수나 언제 간섭할지 모를 강대국에 둘러쌓인 동북아의 최빈국에 요구하는 건 분명 무리일 것입니다.
그런데 소련이나 북조선의 현실은 우리 이상과 많이 다르더라도, 그 현실을 여러 가지 이유로 객관적으로 보기가 어려운 여러 분파들의 진보주의자들에 대해서는 과연 그렇게까지 배타적으로 대할 필요는 있었을까요? 2008년 이전의 구 민노당의 민족주의자/자주파들은 북조선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계급문제를 등한시한 것은 안타까운 사실이었지만, 좌파는 정말 그들과의 타협의 여지도 없이 선을 그어야만 했을까요? 분당은 불가피했는지는 몰라도 정말 최선이었을까요?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좌파가 떠난 민노당이 유시민 류의 부르주아 정객들의 들러리가 돼버린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부르주아 정객들의 손을 머뭇거림없이 잡아주는 것은 분명 민족주의자/자주파들의 엄청난 오판이고, 그들의 어떤 근본적인 판단 오류를 보여주는 부분이지만, 그래도 좌파는 같은 당 안에서 남았다면 민족주의자/자주파들을 견제하여 그들의 이와 같은 치명적인 오류들을 예방할 수라도 있지 않았을까요?
이미 과거의 일이라 소용없는 이야기지만, 그 때에 분당을 긍정한 제 자신의 언행을 저는 지금 책망하고 싶습니다. 잔류 만노당이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치의 늪으로 빠지고 만 지금으로서야 진보신당의 독자적인 강화, 진정한 계급 정당으로서의 대중화 등이 유일한 선택이지만, 4년 전의 일은 많은 면에서 후회스럽게 느껴집니다.
3.
산업화된 세계에서 노동자들이 가장 오래동안 일하고, 비정규직들이 가장 많은 나라에서는, 절실한 계급문제 대신에 다소 관념화돼 있는 "민족" 문제를 앞세우고 우선시하는 것은 당연히 좌파가 할 일은 아닙니다.
노동자들에게 지옥뿐인 야수 남한의 주도로 "통일"이 되는 것은 잘못하면 북조선 민중들에게 대재앙이 될 위험성이 높습니다. 결국 남한과의 평화 공존 체제 속에서 북조선이 독립적으로 발전돼 가는 가운데 지금 중국이나 월남 민중이 파업 등을 통해서 하듯이 북조선 민중들도 그 통치층들에게 사회적 정의 구현을 요구해가면서 그 자율적 역량을 강화시키는 것은 아마도 민중 본위로 사고되어지는 "통일" 문제의 당분간의 최선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좌우간, 좌파의 "통일" 논의 기조에는 추상적인 "민족"이 아닌 구체적인 노동계급의 권리와 복지, 독립적 역량 강화가 깔려 있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자주파의 "통일지상주의" 등의 오류에 위와 같이 반대해도, 미제에 의해서 군사보호령이 되고 만 나라에서 지식인이 당연히 느낄 수밖에 없는 어떤 민족주의적 울분을 십분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군사적 점령에다가 요즘 매판적 성격이 아주 강한 남한의 지배엘리트들이 영어를 모든 사회적 진출, 신분상승의 기분으로 만들어놓은 것도, 사실 많은 이들에게 그저 민족적 모욕감만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좌파가 반대해야 할 것은 영어를 쓰는 나라들의 민중이 아니고 남한을 비롯한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의 지배자들이지만, 좌우간 한반도의 식민지적 과거까지 생각하면 계급 문제들이 "민족적으로" 오해될 소지들은 여기에서는 많습니다. 그렇다면 민족주의자/자주파들과 보다 진지하게 논쟁해서, 적어도 그들을 인간적으로라도 이해해주어야 되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하지 못한 저는, 지금 이 부분에 대해 많은 후회를 합니다.
민족주의적 등의 오류들을 당연 "오류"라고 이야기해야 하지만, 좌파에게는 독선이 아닌 이해와 관용이 필요할 것입니다. 속단 대신에 장기적인 역사적 비전이 필요합니다. 과거에 장기적 시각과 이해력, 관용이 부족했던 데에 대해 반성하고, 앞으로 같은 실수들을 반복하지 않을 것을 인제 자신에게 서약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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