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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레이코프의 『폴리티컬 마인드』 서평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817141119
'박근혜' '박근혜' 떠들면 '박근혜 대통령'! (프레시안, 한승동 <한겨레> 기자, 2012-08-17 오후 6:33:01)
[프레시안 books] 조지 레이코프의 <폴리티컬 마인드>
민주당은 왜 이렇게 무기력한가? 무엇 때문에 그들은 분열하는가? 보수는 왜 자신의 개념을 훨씬 더 잘 전달하는가? 왜 민주당은 2006년 의회를 장악한 이래 더 많은 성공을 거둘 수 없었는가? 가난한 보수주의자는 왜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투표를 하는가? 대중은 지구 온난화가 실재한다고 인식하면서도 왜 그것에 훨씬 더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하지 않는가? 민주당 후보는 왜 공화당의 후보와 달리 상세한 프로그램 목록을 들고 나오는가?
2006년에 번역 출간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유나영 옮김, 삼인 펴냄)로 우리에게도 꽤나 알려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 언어학과 교수 조지 레이코프. 2008년에 출간한 <폴리티컬 마인드>(나익주 옮김, 한울 펴냄)에서 그는 강연을 하러 미국 전역을 돌아다닐 때 이런 질문을 계속 받았다고 얘기한다.
레이코프가 받은 질문들에서 미국 민주당을 한국 민주통합당이나 민주 진보 세력으로 바꿔 읽어도 별로 어색할 게 없겠다. 왜 민주당은 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는가? 늘 그런 건 아니고 이기기도 하지만, 왜 더 자주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특히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정권 등장 이후에.
<폴리티컬 마인드>를 읽다가 공자의 '정명(正名)' 얘기를 떠올렸다. 정명, 즉 '이름을 바로잡는다' 또는 '이름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의 21세기 버전이 <폴리티컬 마인드>일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인지 과학(신경 과학, 신경 계산, 인지 언어학, 인지 발달 심리학 등)의 성과를 활용해 그 근거를 좀 더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는 점이 다를 뿐.
<폴리티컬 마인드>는 주장한다. 민주당이 선거에서 이기려면, 아니 민주당의 가치가 실현되는 쪽으로 세상을 바꾸려면 사물이나 사상의 언어적 표현 이면의 실재(본성)를 드러내고 그에 합당한 이름을 붙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18세기 이래의 계몽(구계몽)주의적 이성과 합리, 논리에 대한 과도한 믿음을 버려야 한다. 왜냐? 21세기 인지 과학의 성과를 동원해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게 <폴리티컬 마인드>를 떠받치는 핵심 기둥의 하나다.
레이코프는 구계몽주의적 이성과 합리보다는 감정과 은유와 영상과 상징 등에 의해 구조화되는 사고의 21세기 신계몽주의적 프레임(생각의 틀)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이 프레임을 통해 반복적으로 노출(주입)되는 언어(낱말)의 자극에 호응하는 뇌 속의 신경 회로망의 증가와 활성화가 사고 패턴을 지배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 인간의 사고는 98퍼센트가 무의식적, 반사적으로 이뤄진단다.
이처럼 우리 의식의 통제를 벗어나 무의식적, 반사적으로 이뤄지는 사고 과정에 대한 인지 과학적 이해 없이는 민주당이, 민주 진보 세력이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게 레이코프 주장의 핵심이다. 한글판 부제를 "21세기 정치는 왜 이성과 합리성으로 이해할 수 없을까?"로 붙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 전에, 프레임이란 게 무엇인가?
레이코프는 학생들에게 틀 의미론(frame semantics)을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예의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과제를 화두처럼 제시한다고 했다. 레이코프에 따르면, 이 과제의 핵심은 그 명제를 과제로 삼는 순간부터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낱말은 프레임의 관점에서 정의되며, 낱말의 사용은 그러한 프레임을 부정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을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치에서 사람들이 알아야 할 중요한 사항이다. 만일 당신이 상대방의 프레임을 사용한다면, 심지어는 그 프레임을 부정하거나 반증한다 하더라도, 당신은 상대방을 돕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대중의 마음속에서 프레임을 활성화하고 있으며, 그들의 프레임은 다시 그들의 세계관을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등의 레이코프 전작들을 읽은 사람들에겐 새삼스러울 게 없을 것이다. 레이코프의 얘기를 좀 더 들어 보자.
"보수주의 토크쇼의 함정은 보수적인 주최자가 질문을 하고 보수적인 방식으로 프레임을 설정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세금 구제(tax relief)를 지지하는가? 우리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는가? 아니면 황급히 도망쳐야 하는가? 당신은 자유 무역을 선호하는가? 아니면 보호주의를 선호하는가? 우리 학교와 교사에게 학생을 가르쳐야 할 책무성을 부과해야 하는가? 만일 당신이 이 질문을 수용한다면, 당신은 그들의 프레임에 들어가 있으며 당신의 것이 아닐 수도 있는 세계관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 프레임을 그들의 세계관이 아니라 당신의 세계관과 일치하는 프레임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먼저 그들의 세계관이 무엇인지, 당신의 세계관은 무엇인지, 그리고 반응을 어떻게 프레임에 넣어야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또한 단순히 정확하고 자세한 내용으로 대답하는 방법이 아니라, 그 정확하고 자세한 내용을 프레임 만들기와 서사를 통해 유의미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논어> '자로'편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자로가 공자께 물었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모시고 정치를 하면 무슨 일부터 하시겠습니까?"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必也正名乎)"
"역시 그러시군요. 선생님은 답답하십니다. 하필 이름을 바로잡으십니까?"
"너는 너무 모른다! 군자는 자기가 모르는 것은 가만히 있는 법이다. 만약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주장(말)이 정연하지 않고, 주장이 정연하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성취되지 않고, 일이 성취되지 않으면 예악이 흥성하지 않고, 예약이 흥성하지 않으면 형벌 적용이 올바르지 않다. 형벌 적용이 올바르지 않으면, 백성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이름을 붙였으면 반드시 주장할 수 있어야 하고, 주장했으면 반드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군자는 자기주장에 애매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논어집주>(박성규 역주, 소나무출판사 펴냄)

"보수주의 토크쇼의 함정은 보수적인 주최자가 질문을 하고 보수적인 방식으로 프레임을 설정한다는 것"이라는 레이코프의 얘기를 공자 어법으로 바꾸면 그건 잘못된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그 프레임이 진실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름이 바르지 않다"는 얘기다.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고 한 공자의 얘기는 "프레임을 그들의 세계관이 아니라 당신의 세계관과 일치하는 프레임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레이코프의 얘기와 상통한다. 공자는 결국, 세상사에 이름을 올바로 붙이지 못하면 세상은 혼란에 빠진다, 그런 세상을 구하려면 먼저 이름을 바로잡아줘야 한다고 얘기했고 레이코프 얘기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박근혜 대세론' 또는 '박근혜 현상'도 정명(正名) 부재 현상의 하나일 수 있다. 박근혜 현상은 프레임의 승리다. 박근혜 현상의 근저에는 한국 현대사를 '산업화'와 '민주화'로 양분한 흑백논리가 깔려 있다. 산업화-민주화 프레임은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화가 이룩한 성과를 상대화, 극소화하고 독재, 친일(사대), 반통일, 소수 특권이 버무려진 반민주 세력을 민주화 혁명의 해일 속에서 구출해냈다. 구출해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민주 세력을 위기에 빠뜨리고 자신들이 주인 자리를 차지하는 극적인 역전극을 연출해냈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분리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국 산업의 고도성장이 냉전과 미·일 반공 동맹 체제 및 경제 블록 편입 등의 외부 요인들은 차치하고라도, 그들 소수 특권, 지배 세력 덕이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전태일 분신과 김진숙 크레인 고공 농성이 상징하듯, 공장을 돌리고 농사를 지어 양식을 마련하고 수출을 늘린 것은 그들 소수 특권층이 아니라 살인적 저임금과 비열하고 참혹했던 노동 조건 등 그들의 전횡에 저항하며 싸운 사람들과 그 자식들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산업화의 지도를 그리고 지휘한 세력의 공과를 무시해도 된다는 얘긴 아니다. 문제는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민중의 저항으로 위기에 몰린 반민주 전횡의 주역들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분리해서 등치시키는 프레임을 설정하고 산업화를 자신들의 전매특허로 독점하면서, 그것을 민주화에 대응하는 등가적 가치로 양립시켰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산업화의 주역 자리를 배타적으로 독점하면서 위기에서 살아남았고 민주화는 그와 대결하거나 길항하는 그저 또 다른 세력의 또 하나의 가치로 전락했다.
산업화-민주화라는, 옛 장기 독재 체제 수혜자들이 설정한 프레임 속에서, 예컨대 박정희가 경제 개발의 주역이냐 아니냐, 우리가 박정희 덕에 잘 살게 됐냐 아니냐, 그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그 역할을 했을 것이다 아니다 따위의 논란은, 레이코프가 지적했듯이 결과적으로 프레임 설정자들의 의도에 놀아나는 것이다. 그럴수록 박정희 향수·신화, 레이코프 식으로 얘기하면 박정희 프레임을 활성화하는 뇌 신경 회로망을 반사적으로 자극, 증폭시키고 그것은 박근혜 신화 강화로 이어진다.
그 프레임을 수용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프레임을 활성화하는 것이며 그 활성화는 대중들의 뇌 속에 이미 자리 잡고 있는 다른 무수한 연관된 프레임들을 연쇄적으로 가동시켜 프레임 설정자가 주장하는 세계관 전체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산업화-민주화 프레임은 산업화, 그 주역, 박정희, 그가 선도했다는 포항제철, 고속도로, 독일 파견 광부·간호사 신화, 농부들과의 막걸리 대작, 지독하게 가난했던 농촌 소년 등의 선견지명과 소탈·소박·검약 이미지와 얽힌 기존 신경 회로망들을 자극한다. 나아가 만주 군관학교, 관동군, 친일의 부정적 기억까지 '영웅 서사'와 '구원 서사' '가난뱅이에서 부자로' 서사와 은유와 연결되면서 희석되고 오히려 영웅 탄생을 위한 통과 의례적 긍정 모드로 뒤바뀌는 기적을 만들어낸다.
북의 실패와 남의 경제적 성공, 처참했던 전쟁 체험과 극심한 반공주의 풍토가 그런 자의적 프레임 설정을 뒷받침한 토양이 됐다. 그와 반비례로 민주화와 민주화 세력은 그들의 성공과 구원 서사, 영웅 서사를 무너뜨리려는 반대자, 훼방꾼, 적으로 간주되는 프레임에 갇히기에 이르렀다. 민주화 세력=반미 친북·종북 좌파라는 허구가 사실로 통용되는 현실은 그 잘못된 프레임, 잘못 붙인 이름이 세상을 얼마나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마침내 황폐화할지 하나의 전형을 보여준다.
미국에서도 공화당 우파가 민주당보다 프레임 구사에 훨씬 더 유능했다고 레이코프는 얘기한다. 잘못된 프레임에 빠지지 않으려면, 이름을 바로잡으려면, 그 프레임을 거부하거나 자신의 프레임을 내세워야 한다.
레이코프는 2007년 7월 2일 CNN이 중계한 민주당 대통령 후보 토론에서 중립을 가장한 보수파 토론 진행자 울프 블리처가 설정한 프레임을 오바마 후보가 거부한 장면을 "최근 정치 관련 텔레비전의 가장 위대한 순간 중 하나"로 꼽았다. "영어가 미국의 공식 언어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면, 손을 들어주시오"라는 블리처의 요구에 당시 오바마는 "(그것은) 우리를 분열시킬 의도로 제기하는 질문"이라 받아치면서 "쟁점은 미래의 이민자 세대가 영어를 배우려 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합법적이고 양식 있는 이민 정책을 내어 놓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라고 논점을 바꿔 자신의 주장을 폈다.
인종주의적 애국자가 될 거냐 매국노가 될 거냐, 그리하여 어느 쪽을 택하든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양자택일 식의 프레임을 오바마가 거부했을 때 레이코프는 "거실에서 벌떡 일어나 환호했다"고 썼다. 그렇게 보수파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았던 덕택인지 2008년 선거에서 오바마는 승리했다. <폴리티컬 마인드>는 2008년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에 탈고한 책이다.
레이코프는 보건의료 문제도 그것이 '건강 보험' 프레임 속에 들어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보험 프레임을 통해서 볼 것이고 해당 정책도 보험 프레임에 따르게 될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렇게 되면 보건의료가 이익금과 관리 비용, 보험료, 보험계리사, 외부 발주, 의료 보장 기준, 이익 극대화를 위한 의료 보장 거부 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업'이 되고 돈 없는 사람들 다수가 거기에서 배제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반면에 보건의료를 식품 안전이나 경찰의 보호, 화재로부터의 보호 차원의 '보호' 프레임으로 보게 되면 그것은 정부의 도덕적 임무가 되고 정부는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교육과 공적 자금 투입 등의 공공적 역량 강화에 나서게 된다.
레이코프에겐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국 군인의 역할을 대행하면서 군인 이상의 거대 조직으로 성장한 블랙워터 같은 민간 용역 업체 육성, 의약품 임상 시험 검열 기능을 극소화하면서 그 기능을 사기업에 넘겨주는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의 변질, 국민의 건강 관리를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민간 의료 보험 회사들에 맡기는 의료 민영화 등의 신자유주의 정책도 마찬가지다. 그는 그것을 시장 자유와 효율성 강화가 아니라 결국은 "평범한 납세자한테서 부유한 투자가에게로 부를 이전하는 수단"으로 보는 '사영화(privateering)' 프레임에 집어넣는다. 제대로 된 이름 붙여주기다.
처음엔 알카에다 조직과 대량 살상 무기 제거 등을 이유로 내세웠다가 나중에 그게 거짓임이 드러나자 이라크 민주화 등의 인도적 이유를 들이댄 이라크·아프간 침공도 결국은 석유, 특히 거대 석유 기업들 이익을 위한 것이었고 그 때문에 수천억 달러의 국민 세금을 쏟아 부어야 하는 현실에 대한 인식 전환과 제대로 된 이름 붙여주기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설파한다. 우선 사실, 이면의 진실을 제대로 알아야 하고 그 바탕 위에 제대로 된 이름 붙여주기, 프레임 설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세금 구제 문제도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 프레임에 따르면, 세금은 무거운 짐이고, 세금 부과자는 악당, 세금을 없애는 자가 영웅이 된다. 말하자면 부시라는 영웅이 기업과 열심히 일하는 미국인 가정이라는 희생자를 큰 정부라는 악당으로부터 구원하는 서사 구조가 짜이고 그것은 우익의 양극화 경제 정책과 군사주의적 외교 정책을 정당화하고 촉진한다.
만일 이 프레임을 열심히 일하면서 세금 잘 내는 미국인 가정이 희생자고, 가능한 한 세금 내기를 회피하며 세금으로 구축된 사회 인프라 덕에 떼돈을 버는 거대 기업과 그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악당이며, 공적 자금 지원 프로그램 등 공공복지가 영웅이 되는 쪽으로 짜면 가난하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을 보살피는 감정 이입과 보호, 책임감, 역량(사회적 인프라) 강화, 평화를 촉진하게 된다. 이 대비는 레이코프가 자주 동원하는 보수주의적 '엄격한 아버지 가정 모형'과 진보주의적 '자애로운 부모 가정 모형' 대비와도 조응한다.
표상 뒤의 진실 바로 알기와 이를 토대로 한 바르게 이름 붙이기(正名). 여기에 빠뜨려선 안 될 요소가 하나 더 있다. <폴리티컬 마인드>가 가장 주목한 요소, 그것은 진실 바로 알기가 프레임 전환과 세상 바꾸기로 자동 연결되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18세기 구계몽주의적 이성관이 옳다면 더 정확하고 더 많은 정보·사실을 알게 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더 올바른 판단을 하고 올바른 행동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바로 구계몽적 이성관에 오류가 있기 때문이라고 인지 과학자 레이코프는 얘기한다.
18세기 구계몽적 이성관에 따르면,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이성적 존재다. 말하자면, 그 이성은 의식적이다. 그리고 모두에게 동일한 보편적 이성이다. 또 감각이나 지각 행위 등과는 무관하게 탈신체화되어 있다. 이성은 또한 논리적이며 감정으로부터 자유롭다. 비감정적이다. 이성은 내가 어떤 가치를 갖고 있든 동일하게 적용되는 가치 중립성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의 목적과 이익에 충실하다. 그것은 또 객관적인 세계 및 그 논리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축자적 이성이다. 따라서 좀 더 정확하고 더 많은 정보·사실을 알게 되면, 그런 이성의 소유자인 사람들은 '합리적 행위자 모델'대로 자신과 세상의 이익에 두루 합치하는 대로 판단하고 행동하게 된다. "사실이 스스로 말할 것이므로" 굳이 사실을 의도된 프레임에 집어넣을 필요도 없고 집어넣어 봤자 바뀔 것도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레이코프의 인지 과학에 따르면, 우리의 이성은 대부분 무의식적이고, 신체화돼 있으며, 감정적이고, 공감적이며, 은유적이고, 부분적으로만 보편적이다. 이게 21세기 신계몽주의적 이성이다.
"신계몽은 이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실제 이성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신체화된 이성으로서, 실제 이성은 우리의 몸과 뇌와 실제 세계 내 상호 작용에 의해 형성되고, 감정을 담고 있으며, 프레임과 은유와 영상과 상징에 의해 구조화된다. 또한 실제 이성에서는 의식적 사고가 의식이 접근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방대한 영역의 신경 회로에 의해 형성된다."
'실제 이성'이란 말이 다소 모호하지만, 18세기 계몽주의적 이성이 아니라 21세기 인지 과학이 밝혀낸, 현실에서 작동하는 실제에 가까운 이성이나 사고 메커니즘쯤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그것은 결국 뇌 속의 신경 회로망 작동에 의해 좌우되는데, 그 작동의 98퍼센트는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며, 의식할 수 없으므로 당연히 통제할 수도 없다.
결국 사람의 생각을 바꾸려면 생각에 대한 의식적인 통제가 아니라(그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뇌 속의 신경 회로망을 바꿔야 한다. 21세기 인지 과학은 어떤 낱말을 어떤 맥락(프레임)에서 사용할 때 뇌 속의 특정 신경 회로망들이 증폭되고 활성화되는지, 관련 뉴런과 시냅스의 수상돌기와 수용체와 신경 전달 물질들이 늘어나는지 그 메커니즘을 밝혀냈다고 레이코프는 얘기한다.
말하자면 사람들의 정치적 의식을 민주당 지지와 민주당 후보에 대한 투표 쪽으로 바꾸려면 민주당 선호 쪽으로 활성화되는 신경 회로망들을 늘리고 그들을 자극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어내야 한다. 바로 프레임 설정을 제대로 하고 그 프레임을 활성화하는 낱말(말)들을 사용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공화당 우파와 같이) 구원 서사나 영웅 서사, '가난뱅이에서 부자로'처럼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감정적이고 은유적이며 상징적인 21세기 신계몽적 서사들을 동원해야 한다.
"프레임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말을 하라. 다시 또 말하라, 계속 그 말을 하라. 힘차게 말하라. 생기 있게 말하라. 한 목소리로 말하라. 어디에서나 말하라. 많은 진보주의자가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출연해 그 말을 계속하라."
이름을 제대로 붙여준 뒤 그에 걸맞은 말을 골라서 쓰게 하라. 그런 말을 중복적으로, 누적적으로 많이 하면 할수록 관련 신경 회로망은 더욱 늘어나고 더욱 활성화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레이코프가 보기에는 그런 일을 잘 해온 쪽은 민주 진보 쪽이 아니라 보수 우파 쪽이다. 보수 우파는 이미 오래전부터 18세기 계몽주의적 이성과 합리의 한계를 본능적으로 간파하고 프레임 전쟁을 선도해 왔으며, 그 전쟁에 필수불가결한 언론 미디어와 여론 선도 지식인들을 장악해 자신들이 설정한 프레임을 활성화하는 말을 하고 또 하게 하고 끊임없이 줄기차게 얘기하게 했다. 공화당이 벌인 문화 전쟁의 실체가 그것이며, 그 덕에 공화당은 선거에서 더 많이 이겼다.
연말 대선에서 여론 시장의 70~80퍼센트를 흔드는 보수 매체들을 장악한 쪽이 유리할 것은 불문가지다. 그런 판에 프레임부터 먹히고 들어간다면? 정책이나 민심, 대내외 정세보다 말과 사고, 의식의 전환 쪽에 더 무게를 두는 듯한 레이코프식 분석에 일말의 회의가 없지 않으나, 분명 설득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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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41452.html
프레임전쟁 시즌2, 선거 진짜 전쟁터는 ‘뇌’ (한겨레, 노형석 기자, 2012.07.06 20:18)
폴리티컬 마인드/조지 레이코프 지음, 나익주 옮김/한울아카데미·2만4000원.
지난 4·11, 14대 총선의 성적표 앞에서 많은 진보 쪽 사람들이 좌절하고 절망했다. 대통령 일가의 땅투기, 민간인 사찰, 측근들의 뇌물 릴레이, 방송파업 등 심판거리들이 산적했는데도 결과는 거꾸로 나왔다. 당색을 붉게 바꾸고 밥그릇 모양으로 당 로고를 바꾸고 ‘보수가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뀐다’를 구호로 내건 여당에 야당은 과반수 일당을 헌납했다. 공천 실패, 정책 부재 때문이라고?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낀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세계적인 인지언어학자이자 미국의 대표적 진보 지식인인 조지 레이코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석좌교수가 이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면 아마도 이렇게 답하지 않았을까. “유권자 자신들도 모르는 마음, 뇌를 장악하지 못한 거야!”
그의 책 <폴리티컬 마인드>는 미국에서도 고민거리인 진보세력의 무기력화 현상을, 이른바 ‘마음학문’이라는 뇌과학·인지신경학 이론들을 바탕에 두고 고찰한다. 지은이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마음’을 지배하기 위한 여론 싸움에서 보수세력들이 판판이 의제를 선점하며 승리하는 데 반해, 진보세력은 유권자들 뇌구조의 2% 정도에 불과한 의식적 이성, 이른바 계몽적 이성의 힘만 믿다가 낭패를 보며 여론 주도권을 빼앗겨왔다고 질타한다. 그래서 이 책은 정치를 바라보는 시선을 철저히 사람들의 뇌구조, 마음 얼개를 보고 성찰하는 쪽으로 다 바꾸자고 촉구하는 일종의 격문 같은 책이기도 하다.
1980년대 이후 보수 공화당이 득세한 미국의 대통령 선거 결과처럼, 보수주의자들은 뇌를 싸움터로 삼은 문화전쟁에서 진보진영을 마구 두들겨 팼다. ‘테러와의 전쟁’, 정부기구 사영화 등 보수수구세력의 권위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세계관에 맞춰 미국인들의 정신적 구조를 뜯어고치려는 전쟁이 금력과 미디어를 업고 전개됐다. 그 결과 사회 양극화와 약자들에 대한 외면이 갈수록 심화되는 등 민주주의 가치가 훼손되는데도, 진보세력의 본산 민주당은 애국 전쟁 트라우마에 걸려 별다른 제동도 걸지 못했다. 그들은 의식 층위 아래서 뇌가 작동하는 방식이 정치와 직결된다는 점을 간파하지 못했다. 공화당 실정의 진실만 제대로 알리면 유권자들이 잘 판단할 것이란 착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의 뇌구조를 바꾸어야 정치가 산다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지은이는 인지언어학·뇌과학의 학문적 분석틀을 동원한다. 뇌에서 작동하는 무의식적인 정치적 선입관이 다양한 은유적 서사나 프레임을 통해 더욱 굳어지는 메커니즘, 그리고 이런 구도 아래 미국 보수 매파의 유권자 세뇌 전략이 이라크 전쟁, 테러와의 전쟁 등에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철되었는지를 여러 일례 등을 통해 드러낸다. 특히 그는 공포심과 애국심을 조장해온 미국 보수파들의 프레임 전략을 인지과학적으로 해부하는 데 책의 상당부분을 할애한다.
예컨대 조지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전쟁에서 대량살상무기 은닉을 전쟁 명분으로 제시했다가 거짓이 탄로나자, 사담 후세인의 악정에 시달리는 이라크 민중들을 해방하고 민주주의를 심기 위한 구원의 서사로 프레임을 교묘하게 바꾸었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은 무력하기만 했다. 애초 전쟁 비용 삭감 캠페인을 구상했지만, 구원자 서사에 기대어 강대한 미국, 전쟁 총사령관인 부시 대통령의 가부장 이미지를 유권자 뇌리에 말펀치로 각인시킨 보수세력의 노회한 술수에 말려든 것이다. 뒤늦었지만 진보세력이 반보수의 프레임을 짜고, 감정이입(교감)과 책임, 봉사라는 미국 민주주의의 가치를 체화시킨 말의 정치를 집중 활용해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레이코프는 강조한다.
인간 이성에 대한 성찰에서 길어올린 그의 정치적 마음 이론은 뇌를 바꾸는 민주주의라고도 할 수 있다. 요즘 통합진보당 부정 선거 논란에 갖다붙인 보수언론의 종북 프레임이 한국 정치를 뒤로 끌고 가는 현실과도 맞아떨어져 기묘한 쾌감까지 느끼게 한다.

 


 

좌파는 프레임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가? (참세상, 이득재(진보전략회의) 2011.06.02 21:07)
[진보논평] 대중들의 가슴을 울리는 정책이 필요하다
조지 레이코프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말한 프레임 전쟁처럼 좌파는 프레임 전쟁에서 계속 밀린다는 느낌이 든다. 최근 새로 선출된 한나라 당 지도부가 반값 등록금 문제를 들고 나왔다. 한대련 소속 대학생들이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집회를 벌이고 청와대로 진출하려고 하던 대학생 몇 명이 연행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라고 하지만 대통령의 공약을 지키겠다는 뜻이 아니라 보궐 선거에서 패배했고 내년 총선 대선도 있고 하니 포퓰리즘으로라도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반값 등록금 정책이 제대로 실현될 리 없다. 이미 성적이나 가정 형편 등을 기준으로 반값 등록금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반값 등록금 정책이 왜곡되어 가고 있다.
중앙일보는 반값 등록금 정책 이전에 재단의 전입금 문제 먼저 해결하라고 호통을 쳤다. 대학들이 학생들의 등록금을 펀드에 투자해 손실을 보고 신축 공사 등으로 돈을 재단으로 빼돌리고 있는 이미 다 알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대학 총장들은 반값 등록금 문제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36조원 이상을 자랑하는 한국 대학들의 자산 규모는 어디가고 반값 등록금에 찬성하지 않겠다는 모양새다. 한나라당의 반값 등록금 문제가 왜곡 변형되어 가겠지만 한나라당이 내건 프레임은 진보 세력들이 내건 프레임보다 월등한 것처럼 보인다.
프레임은 결국 언어로 표현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발등에 떨어진 불은 핵 문제도 고엽제 문제도 아니다. 땅 문제, 아파트 문제, 등록금 문제, 청년 실업 문제가 중요하다. 부산저축은행 사태처럼 당장 돈을 떼인 고객들의 고통이 문제다. 그런데도 진보 세력들은 당을 둘러싸고 합종연횡에만 목을 매단다. 일반 대중들은 지금 이 곳에서 당하고 있는 고통의 바다에서 프레임을 길어오지 않는다. 지금 진보의 대합창 같은 압력단체 결성이 중요한 사안일까.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이 과연 국민의 명령을 받드는 길일까.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합치기로 합의했다. 수업 시간에 앞으로 졸업생 두 명 중 한 명은 백수가 된다라는 다음 포털의 한 줄 메시지를 전달하자 ‘무섭다’라고 반응하는 학생들의 표정을 보면서 중요한 것은 정파들의 이합집산이나 합종연횡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좌파는 왜 반자본주의를 대표하는 프레임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까? 기본소득이라고 말해봐야 일반 대중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진보신당의 현수막에 적힌 대로 최저임금 천 원 더 올리자고 해 봐야 일반 대중들은 백수나 노동자로 전락하는 것이 더 무섭다. 과연 좌파는 일반 대중들의 눈높이에서 운동을 하고 정책을 개발하는가? 너의 입장에서 너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입장에서 너를 바라다보는 것은 아닐까?
좌파의 정책이 일반 대중들로부터 공포를 걷어가게 해준다는 확신이 일반 대중들의 뇌리에 보편적으로 각인되지 않는 한 좌파의 대중운동은 불가능하다. 개념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의 가슴을 울리는 정책들이 일정한 프레임 안에서 언어로 표출되어야 한다. 좌파적인 프레임의 언어가 바이러스처럼 번지는 핫팬츠와 7부 바지의 유행처럼 가공되어 전파되지 않는다면 개념에 의한 계몽으로는 일반 대중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없다. 김상곤 경기교육감의 무상급식 논의는 개념을 통해 가동된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 부모들의 지나친(?) 자식 사랑이 무상급식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아닐까? 이념에서 떨어져 나온 개념으로는 프레임 전쟁을 일으킬 수도 없고 그 전쟁에서 이길 수도 없다. 현실에서 추상된 개념으로는 지배세력과의 프레임 전쟁에서 패배하고 만다.
인간은 자기와 종적으로 유사한 생명체의 죽음에는 공감하지만 그렇지 못한 생명체의 죽음에는 무감하다. 개구리가 차에 깔려 죽는 것에는 슬픔을 느끼지 못하지만 포유류 인간과 유사한 고양이나 개가 죽으면 슬픔을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무덤을 만들어 묻어준다. 일반 대중에게 좌파는 개구리다. 일반 대중들에게 노동자는 개가 아니다. 자기들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존재이거나 공포의 대상일 뿐이다. 한국 사회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조작되었든 아니든 간에 ‘정’에 약한 곳이다. 일반 대중이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은 할 필요 없다. 모든 것이 자기에서 출발하는 것 아닌가. 나만 광우병 소고기 안 먹으면 된다. 일반 대중의 이기주의는 여기까지 간다. 좌파가 일반 대중에게 다가가는 프레임을 개발해야 한다.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등 시민사회운동을 비판하고 거기에 기본소득, 사회연대소득을 들이대 봐도 무상급식 논의가 나올 때 좌파는 이미 프레임을 빼앗기지 않았는가? 한나라당에 프레임을 빼앗기고 시민사회운동에 프레임을 다 빼앗기고 나서 무슨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이란 말인가?
현재 부상하는 무상급식, 보편적 복지, 반값 등록금 등의 프레임은 내년 말까지 간다. 이미 늦었다. 언어는 계급투쟁의 장인데 좌파는 계급투쟁의 장에서 제도정당과 시민운동에 비해 프레임 설정이 늦었다. 6월 초는 최임 투쟁이 시작되는 날이다.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 자본은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 민주노총은 일반 대중이 알아듣지 못할 국민 임투라고 하면서 프레임 전쟁에서 탈선하고 계급투쟁도 회피한다. 박근혜가 부모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해 미래의 전망이 불확실한 것처럼 좌파는 프레임 설정에서 보여주는 것이 없다. 반자본 투쟁의 프레임과 제도정당과 시민운동이 제기하는 프레임이 섞일 수 없는 것이라면 계급투쟁이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서 프레임 설정에서 기존 권력들을 앞질러야 한다. 좌파가 프레임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노동운동의 미래도 담보할 수 없다. 미래에도 차이 없는 반복만 지속될 것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29765
"긍정의 언어로 도덕적 가치 세워야" '정치 프레임'의 무서운 비밀, 이겁니다 (오마이뉴스 안희경 기자, 12.05.09 09:53) 
[깨어나자 2012 : 석학을 만나다 3-①] 조지 레이코프 UC 버클리대 교수

지난 4월 27일, '프레임(frame)' 이론의 권위자인 조지 레이코프 UC 버클리대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를 만나기 전,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질문을 떠올렸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한국에서는 야권이 총선에 패배했고, 또 하나의 거대한 분기점인 대선이 올해에 있기에 그에게서 가져올 지혜는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부담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프레임을 말한다. 선거 전에도, 그 후에도 프레임은 자신의 날선 비판을 객관화하는 도구가 되었다. 투쟁 현장에 있는 이들은 그래서, 그만 '프레임'을 잊자고도 말한다. 프레임이란 단어로 현실을 옴짝 달싹 못하게 옥죄는 압력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과연 프레임은 무엇인가? 레이코프 교수와의 인터뷰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했다. 선거 전술 평가라는 감각적 소재들이 무수함에도 원론에서 출발했다. 그래야 우리가 스스로의 현실을 타개하는 프레임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 '프레임'이란 단어를 매일 보고 듣게 됩니다. 그래서, 혹 각자 자신들이 정의하는 프레임을 말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프레임이 뭡니까?
"(프레임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습니다. 프레임은 생각의 구조입니다. 우리 두뇌 속에 있는 물질적인 것으로, 뇌 속 신경회로가 프레임의 구조이며, 거기에는 프레임을 규정하는 다양한 언어 의미적 규칙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식당에 가면, 음식, 서비스, 웨이터, 계산서 등 한 묶음으로 짜여진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 구조가 프레임을 이룹니다. 야자수나 버스 등은 그 식당 프레임에 들어올 수 없죠. 프레임 속에는 특정한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언어 속에 있는 단어는 어떤 프레임의 범위 속에서 의미가 규정됩니다. 두뇌 속에는 물리적으로 경험이 만들어낸 수만 가지 프레임들이 있습니다. 당신이 이해한다는 것은 뇌 속에 있는 어떤 프레임 속으로 맞춰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프레임은 각각의 단어가 아니라, 단어가 활성화시키는 사고입니다."
- 그렇다면, 단어를 사용하는 방식에 의해 사람들의 사고 패턴을 바꿔낼 수 있다는 건데요. 정치에 있어서 효과적으로 대중을 설득하는 프레임 활용은 어떤 방식입니까?
"정치에서 가장 상위의 프레임은 도덕성입니다.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의견들은 모두 '무엇인가 옳다'라는 자신의 도덕적 생각 속에서 나오죠. 그래서 모든 정치는 도덕적입니다. 정책은 그들의 도덕적 프레임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대중을 자신의 입장으로 끌어 오려면 가장 상위 프레임인 그 도덕적 프레임을 만들어야 합니다. 미국의 보수 정치리더들은 이를 잘 활용해요. 늘 자신들의 도덕적 가치가 옳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민주당을 비롯한 자유주의자들은 항상 정책을 설명하는데 집중합니다."
- 영어로 도덕성(Morality)이라고 표현하였는데, 한국에서는 자칫 정치인 개인의 도덕성을 연상하게 됩니다. 지난 선거에도 개인에 대한 자질 평가가 주요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지금 이야기 되는 도덕성은 정당성을 포함하는 일종의 가치 프레임이라고 보면 좋을 듯합니다.
"네. 사람들이 생각을 받아 들이는 근거는 98%가 무의식입니다. 의식적으로 논리를 따지고 취하는 경우는 오직 2%뿐입니다. 그런데, 소위 진보적인 사람들의 경우 사회 정의에 관심을 두면서 대학에서 정치나 사회과학 경제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거기서 이성적으로 타당할 때 동기를 유발시킬 수 있다고 배웁니다. 이는 잘못된 낡은 이론입니다. 인지과학에서는 인간은 만들어진 프레임에 기반해서 생각한다고 설명합니다. 상징, 비유에 기반을 둔 인지적 기초요소의 작용으로 반응하죠. 그리고 공감을 이뤄내야만 상대와 결속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이 신경세포 체계 연구를 통해 증명되었습니다. 우리 몸이 그렇게 프로그램되어 있습니다."
정책에 앞서 '가치 프레임'으로 대응하라
- 지난 4월 11일 한국 총선에서 집권 보수 세력이 이겼습니다. 많은 분석가들이 내 놓는 의견 중에는 야당이 유권자에게 정책 설명을 하지 못했고, 정책 생산도 제대로 이뤄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글쎄요. 정책을 설명한다고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요? 정책을 제시한다 해도 먼저 도덕적 가치 프레임을 만들고 다가간 다음 이뤄져야 합니다. 우리 진영이 왜 옳고, 가치가 있는지 입장이 세워져야 해요. 정책은 그 프레임 안에서 설명되어야 하고, 사람들로부터 자연스레 그 가치가 '옳다'라는 의견이 이끌어져야 표를 얻습니다. 미국에서는 보수세력들이 이 점을 잘 활용합니다. 그들은 대학에서 경영을 공부했고, 마케팅 교수들은 생리학과 인지과학을 공부했기에 사람들이 진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압니다.
오바마의 경우 선거 기간 중에는 아주 잘했어요. 하지만 직무를 맡자마자, 가장 기대받는 정책을 들고 집중적으로 논쟁에 붙었습니다. 그때 보수주의자들은 가치를 가지고 응대했습니다. 의료보험 개혁입니다. 보수는 어느 누구도 정책에 대해서 공격하지 않았어요. '자녀를 보험에 올려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은 보험을 가질 자격이 없다'… 이런 말을 듣지 못했을 겁니다. 그들은 도덕적 가치에 입각한 논쟁으로 프레임을 옮겨갔습니다. 자유와 생명을 이야기했죠. 살고 죽는 것을 결정하는 의학적 사망선고를 정부가 하려 든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정책은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오로지 개인의 삶에 정부가 들어오지 말라는 구호로 상대했습니다."
- 결국 국민의료 보험안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게 되었고, 2010년에는 의회를 보수들이 점령하게 되었구요. 한국의 경우는 지난해부터 '정권 심판'이라는 네거티브 프레임이 전면에 내세워졌습니다. 현 정권의 실정을 모두 인정할 것이라는 전제를 아래 진행되었지만 결국 패인이 되었는데요. 하지만, 역사적으로 네거티브 캠페인의 성공 사례들도 학자들에 의해 거론되지 않습니까? 클린턴의 경우도 부시 정부의 실정에 대한 네거티브 프레임으로 성공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 부정의 프레임이 유용하게 활성화 되는지요?
"결코, 네거티브는 긍정적으로 작동할 수 없습니다. 클린턴도 네거티브 프레임을 사용하지 않았어요. 그가 사용한 것은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였어요. 우리에겐 살림을 펴줄 좋은 경제가 있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희망을 주는 가치 프레임을 알렸죠. 다수의 지지를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제3의 후보가 나와 보수 표를 끌어갔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클린턴은 억양과 바디 랭귀지를 잘 사용했습니다. 공감을 보여주는 언어를 썼지요. '저는 당신의 고통을 느낍니다'라고 계속 이야기한 것이 승리의 이유입니다.
그럼 네거티브 프레임을 봅시다. 세상에는 두 가지의 네거티브 광고가 있습니다. 가장 나쁜 종류는 그들의 언어를 써서 그들을 부정하는 겁니다. 끔찍한 발상입니다. 그들의 도덕적 가치를 활성화시키니까요. 사람들의 뇌에서 보수의 체계가 활성화됩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면서 당신이 먼저 코끼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거죠. 보수의 정책을 무력화시키자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 정책을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어요. 그 정책에 대해 긍정적으로 작동합니다. 왜냐면, 긍정성이 작동하지 않는 부정성은 없기 때문이죠."
긍정의 언어만이 상대를 제압한다
- 일단 그 정책에 관심을 준 다음에 반대할 것인지 의사를 결정하기에, 그들의 내용을 받아들이고 지나갈 수밖에 없다는 거군요.
"그래서 긍정적인 것, 우리의 언어로 말해야 하는 것이고, 그럼 암암리에 무의식이 활성화되어 원래 지적하고 싶었던 부정성을 지적하게 됩니다. '우리 당은 정직합니다'라고 말하면, 상대는 정직하지 않다는 의미에요. 우리는 가장 긍정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저들이 말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되받아 치면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 지난해 한국에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촉발한 주민투표가 있습니다. 이슈는 무상급식 문제였습니다.
"이런! 그건 우파의 프레임이에요. 무상급식을 이야기하자마자 바로 우파를 돕게 됩니다."
- 복지의 관점을 차별적으로 접근한 것인데요. 우파의 선별급식 대신 좌파는 전면 무상급식을 주장했습니다. 학생들의 자존심을 지키며 나눔의 평등을 제시하는 보편복지입니다. 이번 선거에 앞서 이와같이 가치를 흔드는 정치적 논쟁을 다시 부각시키자는 의견들이 나옵니다.
"그래도 잘못된 접근입니다. 무상급식이란 말을 쓰자 마자 사람들은 자식의 급식비는 부모가 내야하는 것을 떠올립니다. 거기에는 무상급식이 없는 거에요. 이 사안의 핵심은 진보의 시각과 보수의 시각입니다. 두 개의 다른 도덕적 시스템이죠. 민주주의에 대한 진보의 시각은 '서로 보살피며, 책임있게 행동하고 사회적으로 함께하는 노력이 훌륭하다'는 윤리 시스템입니다. 정부는 모두를 평등하게 보호하고, 평등하게 권한을 주는 도덕적 과제를 갖게 되죠. 바로 공공의 이익에 관한 개념입니다
이 원칙 아래서 도로, 공립학교, 공중보건, 음식 공급의 안전을 살피는 시스템 등이 제공되고 산업의 기초가 됩니다. 그 위에서 개인들이 사업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구요. 공적 시스템 없이 사적인 소유는 기능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자유주의 진보들이 놓치는 중대한 사안이에요. 만약에 그대 스스로 돈을 번다고 생각해봐요. 하수 처리장을 세우겠어요? 길을 닦겠습니까? 공군 조종사를 훈련시킵니까? 우리는 다 공공시설을 이용했습니다. 혼자 돈을 벌어낸 것이 아니기에 공익 시스템을 유지하는 책임이 있어요. 이것이 진보적인 생각이고 이 가치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야 합니다.
보수들은 이것을 거부하죠. '민주주의는 다른 사람을 보살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책임지는 것이다. 개인의 활동은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을 자유가 있다. 그래서 우리에겐 개인적 책임만 있지 사회적인 책임은 없다'고 합니다. 보수의 이런 사고를 저는 '엄격한 아버지 도덕'이라고 부릅니다. 가부장적 아버지는 선악을 구별하는 절대 권력입니다. 개인의 관심사를 추구하는 합법적 권리를 부여받아 부자가 되길 바라고 만약에 실패한다면, 이는 스스로 단련하지 못한 것이기에 가난해도 마땅하다고 하죠. 무상급식이 활성화되는 우파의 논리입니다.
여기에 대응하는 답은 공공성을 살려 말하는 거죠. '모든 학생의 적절한 학습효과를 위해서 학교는 충분한 영양을 공급해야 한다'라고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모든 이들이 민주주의 속에서 평등하게 된다는 정당한 도덕적 가치가 생기는 겁니다. 바로 공익 추구의 정당성을 어떻게 이야기 하느냐가 좌파의 과제입니다."
'영양 급식, 성장 급식'이라고 했다면,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건강권이 떠올려 졌을 테고, 그에 대한 차별적 접근이 시장논리에서 벗어나는 도덕적 가치 평가로 될 수 있었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보수'를 이길 수 있는 '진보'의 소통 전략은? (프레시안, 이승선 기자, 2010-12-20 오전 8:45:31)
[조지 레이코프의 제안] "말해지지 않은 15개의 진실들"
다음은 미국의 저명한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쓴 <말해지지 않은 진실들(Untellable Truths)'의 전문번역(원문보기)이다. 레이코프는 이 글에서 미국의 진보진영이 정치담론싸움에서 보수진영에게 지고 있다는 기존의 진단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진보가 보수진영에 대항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소통의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레이코프 교수는 이 글에서 최근 보수당인 공화당과 '부자 감세 연장'에 합의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내 진보진영으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등 궁지에 몰리고 있지만, 진보진영 역시 '프레임' 싸움에서 보수진영에 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그는 이미 보수진영은 세금은 나쁜 것이라는 부정적인 것으로 의미를 변질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감세라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슬로건으로 이들과 싸우려드는 것은 오히려 보수진영의 프레임에 갇혀 그들을 도와주는 결과만 초래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레이코프 교수는 진보진영은 보수진영의 프레임을 벗어나 독자적인 프레임과 독자적인 언어로 슬로건을 만들어서 보수진영에 대항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진보진영의 입장에서 보수진영에 대항할 수 있는 소통의 전략 11가지와 함께 대중들에게 어필해야 할 정치적 진실 15가지를 사례로 제시했다.
미국의 보수진영이 지난 30년간 집요한 노력끝에 대중의 정치적 담론을 장악했듯이 진보진영도 장기간의 계획과 노력끝에 진보진영의 언어로 정치담론을 탈환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를 위한 나름의 대응전략을 제시한 것이다. <편집자>
 
모든 민주당원들은 성향과 관계없이 정책의 디테일에 빠져 보수 진영에 공공정책 담론을 넘겨주었다. 이와 함께 국가의 미래를 열어나갈 열쇠까지 넘겨주었다.
물질주의적 관점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공화당과 합의한 감세 연장 방안에 대한 민주당의 진보진영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간의 차이점이 물질주의적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다. 물론 그런 관점은 현실적이다. 누가 돈을 얼마나 많이 가져가고 우리 돈이 어떻게 쓰이느냐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과되는 게 있다. 물질적인 정책 현안에 대한 해답은 미국 시민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즉, 이런 문제들이 시민들의 머릿속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러한 인식이 정치적 지지 또는 지지의 부재를 결정하는 핵심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투표가 됐건 정치헌금이 됐건 또는 정치적 압력이 됐건.
어떤 정책이 제안되고 채택되는 것은 미국인들이 정책과 정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에 달렸다. 이런 이해는 소통에 달렸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이든 그에 대한 진보파 비판자들이든 민주당원 모두가 바로 이 지점에서 패배하고 있다. 민주당은 유효한 소통을 보수 진영에 넘겼고, 보수진영은 자신들의 우월한 소통 능력을 한껏 이용하고 있다.
진보파 비판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 오바마 대통령은 알아서 먼저 굴복해 왔다. 그래야만 하는 상황이 오기도 전에 항복하고, 그에 따라 민주당의 원칙들도 배신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관점에서 보면 그 자신은 절대 굴복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는커녕 자신은 실용주의적 점진주의자(pragmatic incrementalist)다. 한 번에 한 걸음씩 서민과 중산층을 위해 그가 얻을 수 있는 최선의 협상을 얻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진보파는 대통령의 행동을 다르게 보고 있다. 오바마는 자신이 믿는 바를 밀고 나갈 배짱이 없거나, 아니면 그의 행동이 그의 실제 신념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의 행동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에게 표를 주었던 사람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보수적이라는 것이다.
진보파가 제기하는 경제정책에 관한 주장은 건전한 상식에 부합한다. 부자 감세를 지속하는 것은 상당한 경기부양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며, 재정적자를 크게 늘리고, 경제 전망을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진보파의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부자 감세는 공정하지 않다. 이미 심각하게 벌어진 경제적 격차를 더욱 확대시키기 때문이다.
한편 실용적 점진주의에 입각한 오바마대통령의 주장도 자신의 관점에서 보면 합리적이다. (공화당과의 협상에 의해) 지금 당장 부자보다는 서민과 중산층에 더 많은 돈이 가도록 했고, 서민과 중산층은 지금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을 얻으려 하며(실용주의), 차후에 추가적인 조치들이 가능하다(점진주의)는 것이다.
이상에서 말한 것들이 현재 민주당원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는 물질주의적 주장들이다. 나는 양쪽 모두에게서 간과되고 있는 중요한 결정요인(causal factor)으로 프레임(논의의 틀)을 옮기고 싶다. 바로 미국인들이 이해하는 현실을 만들어내는 소통의 역할이다.
상대방 도와주기
뇌의 작용기전과 언어의 정치적 효과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사물을 좀 다르게 본다. 내 관점에서 보면 양쪽은(오마바든, 오바마에 대한 진보파 비판자들이든) 모두 미리 항복해버리는 행동을 하고 있다. 중요한 소통을 포기해버린다는 것이다.
우선 "부자 감세 절대 반대"라는 슬로건을 예로 들어보자. 내가 반복해서 강조해왔듯, 어떤 프레임을 부정하는 것은 듣는 사람들의 뇌에 그 프레임을 각인시킨다. 크리스틴 오도넬(지난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로 지명돼 돌풍을 일으킴. 편집자)이 "나는 마녀가 아니다"라고 말했을 때나 닉슨이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고 말했을 때처럼 말이다. '부자 감세 절대 반대'를 외치면 '부자 감세'라는 프레임이 각인된다.
'부자'라는 프레임도 각인된다. TV 쇼 <부자가 되고 싶은 당신> 또는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그리고 <부자와 결혼하는 법> 등을 생각해보라.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부자가 된다는 것은 선망의 대상이다.
그 다음에 '세금'을 살펴보자. 진보진영에서 세금은 미국인 전체에게 필요한 일을 정부가 하기 위한 수입이다. 실업수당, 사회보장, 건강보험, 교육, 식품안전, 환경개선, 기반시설과 수리 등에 쓰이는 돈이다.
하지만 지난 30년에 걸친 반복된 세뇌로 보수진영은 '세금'이라는 단어를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그 의미를 바꾸어 인식하게 만들었다. '세금'이라는 것은 "정부가 돈을 번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빼내어, 돈을 벌지 않고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기 위한 수입'이라고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 이에 따라 '세금 부담 경감'이라는 말은, 과세는 고쳐야할 악행이며 '감세'는 대체로 좋은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래서 보수진영은 "세금 인상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보수진영의 슬로건은 세금에 대한 보수적인 관점을 강화한다. 하지만 "부자 감세 절대 반대"라는 진보진영의 슬로건도 세금에 대한 보수진영의 관점을 강화시킨다! 진보진영은 보수진영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보수진영은 우월한 여론 형성 장치를 보유하고 있다. 홍보조직과 시설을 갖춘 수십개의 싱크탱크, 프레이밍 전문가, 교육시설,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논객, 언론과 시민단체들과 논객들을 연결시켜주는 중개인, <폭스뉴스>같은 매체, 수많은 토크쇼라디오 등을 들 수 있다. 수용자들은 "세금 인상은 있을 수 없다"는 보수진영의 메시지를 반복해서 듣게 된다.
진보진영에는 보수진영에 견줄 만한 여론 형성 장치가 없다. 하지만 그런 장치가 있다고 해도 민주당은 비효율적으로, 또는 보수진영을 도와주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사용하게 될지 모른다. 왜?
언어, 뇌, 그리고 정치
민주당의 정치 지도자들은 대학 시절 정치학, 경제학, 법학, 공공정책학 같은 과목을 전공하는 경향이 있다. 이 분야의 학문은 인간의 이성에 대해 과학적으로 오류가 있는 이론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즉 이성을 계몽적 이성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이성은 의식적이며, 세상을 직접 인식할 수 있고, 논리적이고(수학적 논리라는 의미에서), 감정은 이성을 방해할 뿐이고, 이성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작용하며, 언어는 중립적이고 세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뇌과학과 인지과학은 이런 이론적 가정이 모두 틀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성은 물질에 기반을 둔 것으로 세상을 직접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뇌와 신체를 통해서만 세상을 인식한다. 이성은 프레임과 개념적인 은유(신체에 형성된 신경회로들)들을 사용한다. 이성의 작용에는 감정이 필요하며, 이성은 이기적인 목적뿐 아니라 감정적인 연결과 도덕적 가치도 추구한다. 그리고 언어는 외부세계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뇌 속에 인식의 틀에 맞춰지는 것이다.
이데올로기 마케팅 활동에 노련한 솜씨를 보이는 보수진영은 민주당보다 사람들의 생각이 실제로 어떻게 형성되는지 잘 알고 있다. 마케팅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뇌와 언어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최근의 지식을 습득하는 경향이 있다.
보수진영은 지난 30년에 걸쳐 여론 형성을 위한 효과적인 조직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미국인들의 뇌를 변화시킨 메시지를 반복해서 전했다. 물론 민주당도 진실하고 사실에 입각한 주장을 통해 효과적인 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이성의 실체와 언어의 역할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복잡한 문제
나는 종종 사람들로부터 '상황을 내일 당장 바꿀 수 있는 슬로건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물론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슬로건은 있다. 하지만 상황이 그처럼 빨리 변하는 것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할 일과 명심할 것들이 많이 있다. 간단한 목록을 제시한다.
-소통은 장기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정치 지도자들은 이미 대중적 담론으로 통용되는 것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는 언급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것은 공직에 있지 않은 사람들이 새로운 사고방식과 대화법을 포함해 효과적인 소통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정치는 도덕적이다. 정책이 제시된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책이 담고 있는 도덕적 가치를 항상 분명하게 해야 한다.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은 도덕적 개념이 서로 다르다.
-민주당은 몇 가지 도덕 원칙으로 뭉치고, 이것을 표현할 효과적인 언어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선거 유세에 이런 원칙들을 미국 민주주의의 기반으로서 간결하게 표현한 바 있다. (1)공감-미국인들은 서로를 배려하자. (2)책임: 개인적, 사회적 책임 모두. 우리는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 (3) 향상심. 더 나은 가정, 공동체, 나라,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 자신을 향상시켜야 한다. 정부는 특별한 임무를 지녔다.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도록 보호하고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런 원칙을 믿지 않는 민주당원들은 없을 것이다. 공개적으로 반복해서 이런 원칙들을 말해야 한다.
-지도자들은 전면에 나와 운동(movement)을 이끌어야 한다. 연대(coalition)가 아니라 운동(movement)을 해야 한다. 우리의 원칙은 간명하다. 정부 외곽에 있는 우리들은 단합된 운동을 조직해야 한다. 특정 주제들에 매몰되어서는 안된다. 이 운동은 진보주의에 대한 것이지 환경주의, 사회정의, 노동, 교육, 건강, 평화 등 특정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인 원칙들이 필요하다.
-유권자들 중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중개념틀(bi-conceptual)"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사람들은 보수적 도덕체계와 진보적 도덕체계 모두를 갖고 있으며 사안에 따라 둘 중 하나를 적용한다. 이런 사람들은 '무소속(independent)' '부동층 유권자(swing voters)', '온건파(moderates)', '중도파(the center)' 등으로 불린다.
이들이야말로 유권자 중 우리가 접근해야 할 가장 주요한 대상들이다. 진보와 보수, 두 종류의 도덕체계는 뇌 속에 각자의 회로를 형성하고 있다. 한 쪽 회로가 활성화되고 강화되면 다른 한 쪽 회로는 약화된다.
보수진영은 보수적인 도덕 개념을 반복해서 끊임없이 전달해 그들을 우측으로 이동시켰다. 민주당은 그들의 뇌 속에 진보주의 도덕 회로를 활성화하고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진보적 언어와 진보적 주장만을 사용하고, 우측으로 가려고 하거나 우파의 언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중도로의 이동'과 정반대다. 중도라는 이데올로기는 없다. 그것은 진보적 견해와 보수적 견해의 혼합이 있을 뿐이다.
-보수적 언어를 사용하지 말라. 듣는 사람들의 뇌에 그들의 도덕체계를 활성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을 부정하려고 하지 말라. 그들의 주장을 더욱 강조하는 것이 될 뿐이다. 자신의 언어와 자신의 주장을 사용하라.
-보수적 도덕체계에서 최상의 도덕 원칙은 보수적 도덕체계 자체를 보존, 방어, 확대하는 것임을 기억하라. 예를 들어 그들의 관점에서 볼 떄 개인적 책임은 도덕적이다. 사회적 책임은 그렇지 않다.
-프레이밍과 스핀 또는 선전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프레이밍이 정상적인 것이다. 유권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고자 한다면 그 정책을 프레임 안에 넣어라. 그래야 즉각적 소통이 가능하다.
프레이밍이 선행돼야 효과적인 정책이 될 수 있다. 당신이 정말로 믿는 것과 진실이 무엇인가를 표현하기 위해 프레이밍을 한다면, 당신은 효과적인 소통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것이다. 프레이밍은 선전을 위해서 오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절대 안된다.
-언론과 여론조사기관들에 이런 모든 사실들을 교육시켜야 한다.
-(이상과 같은 준비가 됐다면) 효과적인 소통체계를 가동시키기 위해 할 일을 찾아 이를 가동해 보라!
자세한 내용을 알려면 내가 쓴 책 <정치와 마음(The Political Mind)>을 읽기를 바란다.
말해지지 않은 진실들(Untellable Truths)
(지난 30년간) 보수적 여론형성 조직이 우리의 정치담론을 완벽하게 장악해 오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를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진실들은 현재의 담론체계에서는 정치 지도자들이 논의조차 할 수 없게(untellable) 만들어버렸다(분명한 정치적 진실이긴 하나 보수파가 담론체계를 장악한 현 상황에서 말로 표현될 수 없다는 의미). 이런 상황을 바꾸려면 대단한 소통의 노력이 요구된다.
다음은 현재 상황에서 말해지지 않은 진실들의 몇 가지 사례다.
-정부 보존의 원칙. 보수주의자들이 시민에 의한 공익을 위한 정부를 축소하는 데 성공한다면 통치의 몫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력이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바로 기업이다. 시민들은 정부가 아닌 기업에 의해 통치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기업에 의한 영업이익을 위한 정부를 갖게 될 것이다. 이런 정부는 좋은 정부가 아니라 잔인한 정부, 압류와 아웃소싱, 노조 파괴, 모든 사소한 것에도 상당한 지불 요구, 연금 폐지에 나서는 정부가 될 것이다.
-정부의 도덕적 책무에는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들 강하게 만들어주는(empowerment) 것이 포함된다. 보호에는 건강보험, 사회보장, 식품안전, 소비자 보호, 환경보호, 일자리 보호 등이 있다.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에는 품위 있는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도로와 기반시설, 소통과 에너지 체계, 교육 등)울 마련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없으면 어떤 기업도 기능할 수 없다. 이런 문제들이 적절하게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도덕적 임무에 봉사하는 정부는 자유, 공정, 그리고 번영을 가져온다. 보수진영은 정부의 이런 도덕적 임무를 믿지 않는다. 그들은 권력을 잡으면 이런 도덕적 임무를 수행할 정부의 능력을 전복시킨다.
-정부의 도덕적 책무에서는 필수적인 것(necessities)과 서비스(service)를 구분해야 한다. 정부는 필수적인 것을 제공할 도덕적 책무가 있다. 적절한 음식, 식수, 주택, 교통, 교육, 기반시설(도로와 교량, 쓰레기처리, 공공건물), 의료, 노인과 장애인 요양, 환경보호, 식품안전, 신선한 공기 등이 필수적인 것들이다. 필수적인 것들이 사적 이익을 위해 밀려나서는 안된다. 시민들은 사익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필수적인 것을 위한 공공자금이 사익을 위해 쓰여서는 안된다.
-서비스는 매우 다른 것이다. 이것은 필수적인 것들이 아니다. 개인적 서비스 산업들은 자동차 렌털, 주차장, 미용실, 정원가꾸기, 페인팅, 하수구 뚫기, 패스트푸드, 자동차 수리, 세탁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한다. 정부의 '서비스'에 대해 말하는 것을 중단하고 정부가 제공하는 '필수적인 것'들에 대해 말해야할 때다. '소비(spending)'라는 것도 필수적인 것을 제공한다는 개념을 담고 있지 않다. '소비'는 민간산업에 의해 중단될 수도 있고 제공될 수도 있는 서비스를 시사한다. 경제학자들은 필수적인 것을 논의할 때 '소비'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시장은 재화와 서비스를 분배할 때 '효율적'이며, 때때로 적절한 경쟁이 존재하는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시장은 필수적인 것들을 제공하는 데에서는 대체로 비효율적이다. 이득으로 잡히는 모든 돈은 필수적인 것으로 가지 않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은 완벽한 사례다.
-공무원 연금제도는 근거가 있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퇴직 후 더 나은 혜택을 받는 대가로 낮은 수준의 봉급을 받아왔다. 퇴직 공무원들은 낮은 봉급으로 오랜 기간을 열심히 일한 대가로 연금을 받아온 것이다. 연금은 기업과 정부가 낮은 봉급을 지불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공공기관이건 민간기관이건 책임져야할 입장에 있는 기관들이 연금 기금으로 조성된 자금을 투자에 썼다.
이렇게 연금 기금을 투자 자금으로 굴렸던 기업과 정부들이 지금 파산지경에 몰리고 있다. 이런 기관들(기업과 정부 모두)은 연금을 지불할 돈이 부족해지자, 연금 형태로 지불이 지연된 소득에 대해 협상에 나선 노조들을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관들(제너럴 모터스 같은) 자체가 지연된 월급을 따로 적립해 놓지 않고 안전한 투자운용을 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교육은 공익을 위한 것이지, 사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교육받은 사람들이 많은 나라에서는 모든 국민이 그 헤택을 입는다. 교육받은 직원이 많을수록 기업에도 유리하다. 교육받은 시민이 많을수록 민주주의에도 기여한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은 교육을 오직 돈을 버는 수단으로 사익을 위한 것으로만 생각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은 교육에 대한 공적 자금 지원을 폐지하려고 한다. 이것은 돈이 없어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될 사람들이나 학비 때문에 엄청난 부채에 몰릴 사람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큰 재앙이다.
-거대한 빈부격차는 민주주의 대한 위협이며, 공동체에 심각한 경고를 제기하고 있다. 미국 사회의 상층부에 엄청난 부가 축적되는 것은 희소자원에 대한 접근이 불공정하고, 필수적인 것들에 대한 접근이 많은 사람들에게 제한되고, 권력(언론에 대한 힘과 정치적 권력) 분배가 매우 불공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세' '감면', '절세' 등은 가장 돈이 많은 개인과 기업들에게조차 좋은 말로 들린다(당신도 이것들 중에서 어떤 것을 좋아하지 않을까?). 이런 용어들은 돈이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부자에게로 이전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민과 중산층이 부자에게 돈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왜? 필수적인 것(식품, 교육, 건강, 주택, 안전 등)들에 가야할 돈이 그런 것이 필요없는 가장 부유한 사람들의 주머니에 흘러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장은 경제적 기능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도덕적인 기능이 있다.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은 산업에 필요하며, 기업이 거두는 수익과 생산성에 상응하는 보수가 지급되어야 한다. 민간산업의 봉급체계는 사적 문제일 뿐 아니라 공적인 문제이다. 미국의 중산층 월급은 지난 30년간 오르지 않았다. 반면 상위 1%에 속하는 사람들의 소득은 엄청나게 늘었다. 이것은 도덕적 문제다.
-탄소계 연료(석유, 석탄, 천연가스)는 치명적이다. 이런 연료들은 인간과 동물들을 죽이고, 자연 파괴를 초래한다. 우리는 이 연료를 사용하는 비용을 제대로 치르지 않고 있다. 공적 자금으로 보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조선에 의한 해양오염, 원유 유출, 멕시코만과 알래스케 해안에서 발생한 것처럼 자연 파괴를 막기 위해 엄청난 돈이 들어가고 있다. 공기와 수자원의 오염이 죽음을 초래한다. 지구온난화가 자연 자체를 파괴하고 있다. 북극 빙하 용해, 폭풍우, 홍수, 사막화를 유발하고 있다. 죽음의 상인(석유와 석탄 회사)들은 보조금과 높은 가격을 통해 우리가 내는 돈으로 막대한 이득을 거두고 있다. 일반인들이 그들에게 보조금 형태로 주는 돈으로 그들은 정치적 과정을 부패시키고, 정치 지도자들이 우리에게 최대 위협이 되고 있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다루지 못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에너지를 의존하고 있다. 대체로 그것은 그들이 오랜 세월 동안 대안 개발을 정치적으로 차단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공교육 실패'라는 것은 사실 시민의 실패다. 우리가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자금 지원과 필요한 일을 하지 못한 탓이다. 조기 교육, 교사에게 더 나은 연수와 보수 제공, 현장학습과 즐거운 학습 문화, 가난에서 자유로운 경제 등이 요구된다.
-납세자들은 기업의 특혜를 위한 자금을 내고 있다. 기업은 영업비용을 공제받을 수 있기 때문에 납세자들은 기업이 비용처리하는 금액의 상당부분을 내주고 있다. 호화로운 사무실, 업무용 차량과 제트기, 1등급 및 비즈니스 클래스 비행 좌석, 비싼 장소에서 열리는 회의 등이 그것이다. 기업들은 세금 공제 제도를 통해 지속적으로 납세자의 돈을 빼앗아 간다.
-경제적 위기와 생태계 위기는 동일한 위기다. 이 위기는 단기적인 탐욕 때문에 초래된 것이다. 토머스 프리드먼이 이를 잘 표현했다. 두 가지 모두의 원인은 같은 것이다. 위험의 과소평가,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진실은 공적 논의 영역에서 배제돼 있다.
-저임금 이민노동자들은 중산층과 상류층의 생활방식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이들은 감사의 대상이 될 자격이 있을 뿐 아니라 건강보험, 그들의 아이들의 교육, 적절한 주택을 가질 자격이 있다.
지금까지 하나의 단락을 통해 각각의 진실들을 말했음을 유념하라. 각 단락은 진실이 말해지기 위한 프레임을 만들어낸다. 단어는 이런 개념적 프레임의 관점에서 정의된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프레임이 없이는, 프레임을 표현할 간단하고 평범한 어휘라는 것은 없다.
이런 어휘들은 고안되어야 하며, 지금은 말해지지 않은 진실들이 널리 알려진 진실이 될 때에서야 평범한 용법으로 쓰일 것이다. 다음과 표현들이 일반적인 공적 논의에 쓰이기 위해서는 일반인들의 이해가 얼마나 높아져야 하는지 상상해보라.
-경제적 위기가 아니라 탐욕의 위기
-불법 이민자들이 아니라 감사한 이민자들
-사유화가 아니라 이익추구 정부
-세금 감면이 아니라 공공 절도
-공교육 실패가 아니라 시민 실패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기업의 잔인함
-청정 석탄이 아니라 치명적인 석탄
대통령에게는 담론을 변화시킬 힘이 있다. 그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사용할 의지가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혼자서 할 수는 없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조언할 기회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공감', "어머니가 나에게 가르쳤던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그것을 다시 꺼내달라는 것이다. 상처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공감'을 말하라. 공감은 어떻게 민주주의의 기반("동료 시민들을 배려하라")이 되는 것이고, 이 공감에 기초해 행동할 책임(개인적, 사회적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지 다시 말하라.
민주사회에서 공감의 핵심적 역할을 언론에게 촉구하라. 개인적 책임만으로는 반애국적이며, 미국이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것의 정반대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라. 이것이 말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진실을 말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이것이 공적 논의에서 보수진영이 장악한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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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아버지' vs '온화한 어머니'…대한민국은 전쟁터! (프레시안, 나익주 전남대학교 영미문화연구소 연구원, 2010-12-10 오후 7:17:25)
[프레시안 books] 왜 조지 레이코프인가?
캘리포니아 대학교(버클리)의 언어학과 교수 조지 레이코프는 언어 능력도 인간의 일반 인지 능력의 일부이므로 언어의 본질은 인간의 다양한 인지적 측면을 고려할 때야 비로소 해명 가능하다고 보는 인지언어학의 창시자이다.
레이코프는 MIT 재학 시절 놈 촘스키의 제자였다. 그러나 그는 촘스키의 생성언어학이 언어의 본질을 해명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언어 연구에서 인지적 측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언어학자로서 레이코프는 스승과 완전히 대립적인 입장에 섰다.
언어학자 레이코프에서 정치 평론가 레이코프로
인지언어학의 중요한 발견 중의 하나는 은유가 단순히 언어의 장식적 사용이나 화용적 효과의 강화와 같은 언어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고 과정의 중요한 기제라는 시각이다. 레이코프는 개념적 은유 이론이라 불리는 새로운 은유관을 <삶으로서의 은유(Metaphors We Live By)>(1980/2003년)에서 정립한 이후 <여자와 불, 위험한 것들(Women, Fire and Dangerous Things)>(1987년)과 <냉철한 이성을 넘어서(More Than Cool Reason)>(1988년), <몸의 철학(The Philosophy in the Flesh)>(1999년)에서 계속 다듬어 왔다.
특히 레이코프는 이 은유 이론과 프레임 이론을 이용하여 미국인의 정치적 세계관의 본질을 분석하려고 시도했다. 그 결과 그는 미국인의 정치적 사고 기저에 '가정은 국가'라는 은유가 작용하고 있으며, 가정에 대한 상이한 두 가지 모형('엄격한 아버지 모형'과 '자애로운 부모 모형')이 미국 정치에서 대립하는 두 가지 정치적 세계관, 즉 보수주의적 정치관과 진보주의적 정치관을 낳는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도덕, 정치를 말하다(Moral Politics)>(1996/2002년)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Don't Think of an Elephant!)>(2004년), <프레임 전쟁(Thinking Points)>(2007년),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Whose Freedom)>(2007년), <정치와 마음(The Political Mind)>(2008년) 등의 책에 오롯이 반영되어 있다.
상대의 프레임은 아예 언급하지도 마라!
언어학자로서의 레이코프는 은유 이론을 정립한 <삶으로서의 은유>(나익주·노양진 옮김, 박이정 펴냄)가 나오기 전부터 이미 유명한 인물이었지만, 그가 대중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2004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펴낸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유나영 옮김, 삼인 펴냄)가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덕택이다. 이 책에서 레이코프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들을 때 사람들은 누구나 코끼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는 사례를 들면서, 상대방의 프레임을 부정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 프레임이 강화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이후 미국의 진보 진영이 잇달아 보수 진영에게 패하고 있는 이유가 미국의 보수는 자신들의 정치적 가치와 정체성을 적절한 프레임에 넣는 반면 진보는 그러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보고 정치와 선거에서 프레임 형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예를 들어, 보수주의자는 '세금 인하'를 '세금 구제' 프레임으로, '상속세'를 '사망세' 프레임으로 재구성하여 '세금은 모든 납세자에게 고통을 주는 해로운 무기와 같은 것'이므로 반드시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통해 부시를 비롯한 보수파는 자신들은 영웅이며 세금 인하에 반대하는 진보주의자는 악당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데 성공하였다.
가치를 두고 벌이는 개념 쟁탈전
레이코프는 <프레임 전쟁>(나익주 옮김, 창비 펴냄)에서 은유 이론이 미국의 다양한 진보적 가치를 분석하는 데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새로운 논증의 프레임을 구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미국을 정의와 평등을 실현하는 위대한 자유 국가로 만든 미국의 진보적인 가치를 은유 이론의 시각에서 다루며, 미국 진보주의자의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그가 보기에 현재 미국의 진보적 가치들(공평성, 정의, 평등, 책임, 안전 등)은 자칭 '보수주의자'라는 극우들에 의해 그 본질적인 의미가 훼손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진보주의자는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진보주의자는 자신의 옳은 판단을 언어로 표현해야 하며, 자신의 진실을 타인에게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프레임을 찾아야 하고, 이것을 효과적인 논증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는 진보주의자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반영할 프레임을 재구성함으로써 이러한 가치의 전통적인 의미를 지켜나갈 수 있다고 조언한다.
'자유'를 두고 벌이는 개념 전쟁 
레이코프는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나익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자유'의 의미를 보수주의자들이 어떻게 훼손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레이코프는 이 책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발달 과정에서 노예제 철폐, 여성 참정권 인정, 노동자 권리의 신장, 시민적 권리의 확대, 기회의 확대, 환경 보호 운동을 가능케 했던 것이 바로 (자애로운 부모 가정 모형에 근거한) '자유'의 진보적인 해석이라고 단언한다. 그가 보기에 지금 이 자유는 위기에 처했다.
미국의 보수 우익이 미국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자유'의 의미를 자신의 구미에 맞도록 새롭게 해석하면서 이 개념을 훔쳐갔기 때문이다. 레이코프는 이 위기감을 "자유를 잃는 것도 두려운 일지만, '자유' 개념을 잃는 것은 훨씬 더 두려운 일이다"라는 짧은 어구로 표현하고 있다.
정치는 뇌와 마음에 있다!
<정치와 마음>에서도 레이코프는 인지언어학의 은유 이론을 토대로 미국의 정치적 상황과 미국인의 정치적 사고를 분석하여, 보수주의자들이 정치·사회적 이슈를 프레임에 넣어 사람들의 마음을 통제함으로써 선거에서 승리하고 권력을 계속 장악해 왔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 책에서 레이코프는 정치적 사고가 프레임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자신의 생각이 신경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다는 주장을 앞의 책보다 더 강력하게 펼친다. 그는 정치가 논쟁, 논증을 통해서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경 경로나 회로(neural circuitry or pathways)를 만들고 짠다고 주장한다.
마음에 와 닿고, 매력이 있으며, 마음을 편하게 하는 서사(narrative), 은유, 어구를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면, 그러한 표현의 이해에 관여하는 우리의 특정한 신경 경로가 계속 활성되어 결국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몸에 고착된 신경 경로는 강력한 프레임으로 작용해,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이끌고 제약한다. 한 마디로, 사람들의 뇌를 통제하는 정치가가 선거에서 승리한다.
정치평론가 레이코프의 출발점은?
앞에서 간략히 살펴봤듯이 레이코프는 생성언어학자에서 인지언어학자로 전향하고 나서, 미국의 정치와 미국인의 이념을 분석하는 데 자신의 이론을 적용하여 상당히 통찰력 있는 결과를 내놓고 있다. 또 새로운 책을 내놓을 때마다 그는 조금이라도 새로운 주장을 더하고 있다.
그렇지만 <삶으로서의 은유>부터 <정치와 마음>까지 다섯 권의 책은 한 가지 핵심 주장을 공유한다. 그는 미국 정치의 보수적인 세계관과 진보적인 세계관의 밑에는 '국가는 가정'이라는 은유가 깔려 있으며, 미국인의 보수주의적 가치관은 '엄격한 아버지' 가정 모형에서 진보주의적 가치관은 '자애로운 부모' 가장 모형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주장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 바로 <도덕, 정치를 말하다>(손대오 옮김, 김영사 펴냄)이다. 정치평론가이자 정치철학자로서의 레이코프는 <도덕, 정치를 말하다>에서 출발한 것이다.
한국 사회와 레이코프
대부분의 주요 저서가 번역되어 나왔을 정도로 레이코프는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인지언어학계는 이제는 고전으로 평가 받는 <삶으로서의 은유> 덕택에 상당히 오래전부터 유명하였다. 또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은유 이론과 프레임 이론으로 정치 담론을 분석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프레임 전쟁>,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등으로 한국의 일반 독자에게도 낯설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치평론가 레이코프의 출발점이었던 <도덕, 정치를 말하다>는 몇 년 전 한국어판이 출간되었지만 별로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도덕과 공정성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바로 이 시점에 이 책이 다시 출간되었으니 반가운 일이다.
정치적 세계관은 이상화된 가정 모형의 도덕성에서 나온다
레이코프는 <도덕, 정치를 말하다>에서 미국인의 정치적 사고는 대부분 무의식적인 은유에 의해서 결정되며, 대립하는 두 가지 정치적 입장(진보와 보수)은 앞에서도 간단히 소개했듯이 '국가는 가정' 은유 (달리 표현하면, '가정으로서의 국가' 은유)와 이상적 가정에 대한 두 가지 모형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이 은유의 존재는 독립전쟁 유공자 자손 단체의 이름이 '미국 혁명의 딸들'이라거나, 1787년 미국 헌법안에 서명한 제헌의원 55명을 '건국의 아버지들', 이라크 전쟁에 참여하는 미군을 묘사하는 '우리의 아들과 딸들' 또는 '형제의 부대'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은유에서는 국가는 가정에, 정부(의 수장)는 부모에, 국민은 자녀에 대응한다.
보수의 정치적 세계관과 진보의 정치적 세계관은 미국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이상적 가정 모형의 도덕성에 의해 정교하게 형성된다. 하나는 엄격한 아버지 가정이고 다른 하나는 자애로운 부모 가정이다.
엄격한 아버지 가정에서는 위험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가족을 보호하고 부양할 책임을 떠맡으며, 자녀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규칙을 부과할 권위를 지닌다. 어머니는 자애로운 사랑으로 아버지의 권위를 보완할 뿐이다. 이 세계관에서는 자기절제와 자립심, 합법적 권위에의 순종이 바로 자녀들이 배워야 하는 가장 중요한 속성이다. 이 모형에서는 보상과 징벌의 원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순종에 대한 보상과 불순종에 대한 징벌은 도덕적 권위(힘)를 유지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자녀는 절제력을 기르고 외부의 간섭을 차단하며 자기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반면 자애로운 부모 가정 모형은 감정 이입과 자애로움, 자신과 타인에 대한 보살핌, 공정한 분배 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가정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동등하게 자녀들을 감정 이입과 사랑으로 보살피며, 이로 인해 자녀들은 행복감을 느끼며, 부모에 대해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갖게 된다. 그 결과 성장한 뒤에 자녀들은 벌을 받을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존경과 사랑의 마음으로 인해 자신의 부모와 공동체를 보살피게 된다.
레이코프는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를 정의하는 데 도덕성에 대한 은유들의 무리가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이 무리 중에서 어떤 은유들에 우선순위가 주어지는가에 따라 보수적 사고와 진보적 사고의 특성이 규정된다고 주장한다. '안녕은 부', '도덕 회계'(예를 들어, '명예는 자본', '불명예는 부채', '모욕은 피해', '존경은 수익' 등), '도덕성은 자기 이익 추구', '일은 가치 있는 물건', '도덕은 힘', '악은 힘', '도덕적 권위', '도덕적 질서'(즉, '도덕적 질서는 자연적 질서'), '도덕적 본질', '도덕은 깨끗함', '도덕은 건강', '도덕적 감정 이입', '도덕적 양육' 등의 은유가 엄격한 아버지 가정의 도덕성과 자애로운 부모 가정의 도덕성을 정의하는 데 사용된다. 그런데 이 두 가정 모형이 어떤 은유들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가는 다르며, 이것이 정치적 세계관의 차이로 이어진다.
엄격한 아버지 가정 모형에서는 '도덕적 권위'와 '도덕적 힘', '도덕적 질서' 은유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한다. 이 가정 모형은 엄격한 도덕적 질서를 명시하는데, 아버지는 본래부터 가정을 이끌기에 적합하며 자녀를 통제할 권위(힘)을 갖는다. 이 권위는 아버지의 자연적인 우위와 성품으로부터 나온다. 이 가정 모형에도 '도덕적 감정 이입'과 '도덕적 양육'이 있지만, 도덕적 힘과 합법적 권위를 계발하는 일차적인 목적에 비해 부차적이다. 반면 자애로운 부모 가정 모형에서는 '도덕적 양육(자애로움)'과 '도덕적 자애로움' 은유를 특별히 강조한다. '도덕적 권위'와 '도덕적 질서' 은유는 이 가정 모형에도 존재하지만, 부모의 자애로운 보살핌과 성품에 비해 보조적이다.
얼핏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회 복지 프로그램 축소론자, 감세 옹호자, 사형제 옹호자, 낙태 합법화 반대자, 총기 소유 지지자, 환경 규제 반대자(개발론자), 차별 시정 조치 반대론자, 동성애 반대자들이 주로 보수주의 경향을 가진 사람인 반면, 사회 복지 프로그램 확대론자, 감세 반대자, 사형제 폐지론자, 낙태 합법화 옹호자, 총기 소유 반대자, 환경 규제론자, 차별 시정 조치 옹호자, 동성애 옹호자 등도 쪽은 진보 경향을 가진 사람인 이유는 무엇일까? 레이코프는 엄격한 아버지 가정 모형의 가치와 자애로운 부모 가정 모형의 가치 덕택에 전자의 무리와 후자의 무리가 각각 일관성 있게 묶이게 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엄격한 아버지 가정 모형을 적용하는 보수주의자에게 사회 복지 프로그램은 사람을 응석받이로 만들고 도덕적으로 약하게 만들며 절제와 의지력을 길러야 할 필요를 제거하므로 도덕적이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을 돕는 데 사용하는 세금을 늘리는 것은 비도덕적이며, 오히려 세금을 낮추는 것이 도덕적이다.
자애로운 부모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무조건적인 자애로운 사랑을 베풀어야 하며, 이것은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암시하기 때문에, 당연히 진보주의자는 사형 제도에 반대하게 된다. 반면, 엄격한 아버지 가정의 도덕에 따르면, 자녀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당연히 엄한 벌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는 당연히 사형의 징벌을 지지한다.
보수주의자는 낙태가 엄격한 아버지 도덕을 위반하기 때문에 반대하며, 진보주의자는 원하지 않는 아기의 출산으로 인해 곤란에 처하게 될 산모가 동정과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보기 때문에 낙태를 허용하는 입장을 갖는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신의 가족을 최대한 보호할 책임이 엄격하고 권위 있는 아버지에게 있다고 보는 보수주의자는 총기 소유권을 지지한다. 총기는 개인적인 보호의 한 형태이며 남성성의 상징으로 도덕적 힘과 도덕적 권위, 도덕적 질서를 유지하는 도구이다. 반면에 진보주의자는 고통스런 육체적 징벌은 폭력의 악순환을 가져올 뿐이라고 보는 자애로운 부모 도덕성에 따라 총기 소유권에 반대한다.
이러한 보수와 진보 사이의 격렬한 논쟁은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현재 두 진영 사이에 치열한 개념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개념 쟁탈전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거의 물리적 대결이나 언어적 감정적 대립의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더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전국적으로 논란이 되는 쟁점을 살펴보자면, '4대강 개발 사업' ' 고교 평준화의 유지 여부' '기업형 슈퍼마켓 및 대형 할인점 영업 허가 제한' '서울대학교 지역 균형 선발제' '대북 정책(햇볕정책 지속 여부)' '(종합부동산세 폐지를 비롯한) 감세 정책' '낙태 금지' '사형제 폐지' '이주노동자 인권 보호 문제' '소외 지역 교육 복지 투자 우선 사업(사회 보호 프로그램)' '의료 보험 민영화' '영리법인 병원 허용' '직업 안정성이냐 노동 유연성이냐' 등을 두고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이 첨예한 의견 대립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엄격한 아버지 가정의 도덕성을 따르는 보수파에게 한반도의 4대강은 자원이자 인간의 소유물이며, 따라서 이익 추구를 위해 개발할 수 있는 대상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그들에게 4대강 개발 사업은 이익 추구 과정에서 환경에 손상을 입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기 때문에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의 도덕에서는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활동을 중단할 수는 없으며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
대북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보수주의의 엄격한 아버지 도덕성에서 볼 때, 한반도는 갑자기 부모가 계시지 않은 가정이며, 이 가정에 두 형제(남한과 북한)가 살고 있는데, 한 형제(남한)는 충분한 자기절제와 책임을 바탕으로 성장하여 스스로 도덕적으로 권위 있는 성인이 되었지만 다른 한 형제(북한)는 절제가 부족하기 때문에 도움을 주면 더욱 응석받이가 되어 절제를 기르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더욱 엄하게 대하여 그로 하여금 스스로 절제를 길러 살아가도록 훈육해야 할 것이다. 현 시점에서의 대북 관계는 이러한 엄격한 아버지 가정의 도덕성에 근거하여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핵심은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대립이 단순한 당파성이 아니라 그들이 자라났거나 이상화했던 가정 모형의 도덕성에 의해 영향 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레이코프는 지루할 정도로 세세하게 개념 정리를 하고 있다. 이 책이 저자의 다른 정치 평론책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서술이 진보주의와 보수주의 어느 한쪽 편에 편향되어 있지는 않지만, 레이코프는 환경문제와 빈부 격차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보수주의자의 인식 부재가 위험하다고 지적하면서 진보주의자들이 보수주의자의 정치적 세계관을 정확하게 이해하여 그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자신의 바람을 밝힌다. 저자의 이러한 바람이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경계를 정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는 한국의 상황에서도 그대로 적용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렇지만 대립하는 쟁점의 범위가 점점 확대되어 가고 있는 이 상황에서 이 책은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판단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번역 상태와 관련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전체적으로는 저자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었으나 적지 않게 눈에 띄는 오역과 생경한 용어, 어법이나 호응 관계가 어색한 문장으로 정확하게 이해하기 힘들고 글의 흐름이 자꾸 끊기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으며 다음 판을 인쇄하기 전에 바로잡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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