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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운. 2009. 국제인권법으로 본 국가인권위원회의 의의와 독립성

 

박찬운. 2009. 국제인권법으로 본 국가인권위원회의 의의와 독립성. 「법학논총」 26(3), 한양대학교 법학연구소: 85-101.

Ⅰ. 글에 들어가며
인권위의 강력한 반발은 물론 인권위의 존재의의를 아는 대부분 인권시민단체의 반대 속에서도 정부는 국가인권위원회법(인권위법)이 조직에 대해서는 대통령령인 직제령(국가인권위원회와 그 소속기관 직제)에 의해 정하도록 되어 있다고 하면서 막무가내로 밀어부쳤다. 2009년 4월초 20% 이상의 인원을 감축하고 조직을 대폭 축소하는 내용으로 인권위 직제령을 개정해버린 것이다. 이 사태는 급기야 헌법재판소로 가고야 말았다. 정부의 일방적인 직제령 개정이 인권위의 독립성을 규정한 인권위법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하면서 인권위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청구를 제기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인권위의 독립성, 곧 무소속 독립기관으로서의 인권위에 대한 헌법상 위상이다. 인권위가 권한쟁의를 낸 근거는 법률에 의해 주어진 독립기관으로서의 지위가 대통령의 일방적인 직제령 개정에 의해 침해되었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헌재의 심리는 주로 인권위의 독립기관성에 대한 공방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본다(박찬운, 2009: 85-86).
 
Ⅱ. 국가인권기구의 개념과 배경
1. 국가인권기구의 개념
국제사회(특히 유엔)는 각 국가에 국제인권법이 요구하는 인권을 실현하고 증진시키기 위하여 특별한 인권기구(human rights institutions)의 설치를 장려하고 있다. 이것은 국가 내에 존재하는 인권을 현실적으로 보호하고 집행하는 법집행기구(예컨대 사법기관)와는 존재의의를 달리하는 것이다. 국가인권기구는 그러한 법집행기구의 행위가 국제인권법에서 요구하는 수준인지를 점검하고 국가 전체의 인권문제를 관련 국가기관에 권고하기 위하여 국가가 설치하는 인권옹호기구를 말하며, 국제인권법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제도로 국제인권법을 떠나서는 생
각할 수 없는 기구이다(조용환, 2002: 117). 즉, 이것은 국가인권기구가 기존의 국가권력기구로서는 담보해 내지 못했던 인권보장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국가인권기구는 제도적 형식으로는 각국이 국내법에 따라 설립하는 국내기구이지만, 그 실질을 들여다보면 자국의 입법기관이 제정한 국내법의 시행을 본질적 임무로 하는 일반국가기관과 달리 국제인권법의 효과적인 국내적 적용을 확보함으로써 국내에서 인권보호와 향상, 인권침해의 예방과 구제를 달성하려고 한다는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하면 국가인권기구는 형식상으로는 국내법상의 기구이지만 그 모체는 국제인권법이며 활동의 기본 방향과 내용은 국제인권규범에서 찾는 이중적이고도 특수한 기구라고 할 수 있다(조용환, 2002: 13; 박찬운, 2009: 86 재인용).*
* 국내 학자들 대부분도 국가인권기구의 국제인권법적 관련성을 이런 내용으로 설명한다.

2. 국가인권기구의 설립배경
파리원칙은 국가인권기구의 설치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박찬운, 2009: 88-89).
① 권한과 책임: 국가인권기구는 인권의 신장과 보호의 권한을 부여받아 가능한 한 광범위한 직무가 인정되어야 하며 그 구성과 권한은 헌법 또는 법률에서 정해야 한다. 국가인권기구의 권한으로서는 정부 의회 등에 대하여 인권법제와 인권상황에 관한 제언 및 권고, 국제인권문서의 실효적 이행의 촉진 및 확보, 인권조약의 비준 및 그 이해의 담보, 인권조약상의 정부보고서에 대한 협력 및 의견표명, 국제적인 인권관련 기관과의 협력, 인권교육 연구 프로그램의 작성 지원 및 프로그램에 참가, 인권 및 차별철폐에 관한 선전 등을 예시하고 있다.
② 독립성과 다원성: 국가인권기구가 위와 같은 기능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인권기구의 구성원에 관한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권NGO와 노동조합, 변호사, 의사, 언론인 등을 예로 들고 있다. 아울러 활동과 재원 등에 있어 독립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③ 활동방법: 국가인권기구는 권한에 속하는 모든 사안을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심사하고 필요한 조사를 할 수 있어야 하며 전체회의와 실무회의 구성 등 운영방식을 자유로이 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파리원칙은 국가인권기구의 활동으로서 진정사건의 심사, 의견청취 및 정보나 문서의 취득, 의견 및 권고의 공표, 정기적인 회의 개최, 실무위원회와 지역 또는 지방사무소의 설치, 인권촉진 및 보호에 책임을 갖는 사법기관 등과의 협의, 인권에 관련된 NGO와의 연대 등을 열거하고 있다.
④ 준사법적 기구: 국가인권기구는 개별적인 인권상황에 관한 고발과 진정을 청문하고 심리하는 권한을 갖는다. 인권기구의 이러한 조사와 구제절차는 기존의 사법기관에 의한 권리구제절차와 상호 보완기능을 하는 일종의 대안적 분쟁해결기구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인권기구가 기존의 국내법에 의하면 사법적 권리구제가 곤란한 문제, 즉 실정법상 합법과 불법 여부가 불분명한 이른바 회색지대의 인권침해도 조사하고 구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조용환, 2002: 42 참고).
파리원칙은 인권기구의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와 권고기능을 말하면서 이에 대해 조정을 통한 우호적 해결, 진정인에 대한 구제수단에 관한 정보의 제공, 법률의 제한 내에서 진정의 청문 및 타 기관에의 이송, 법률 규칙 행정관행의 개선 등의 제안 및 권고 등의 기능을 제시한다.
3. 인권조약기구 설립 권고
조약이행감시기구(treaty monitoring body)들은 이제까지 해당 인권조약의 국내 이행을 위해 가입국에 대하여 국가인권기구의 설립을 각국에 강력히 권고해 왔다. 따라서 이들의 활동은 국가인권기구의 설립의 또 다른 배경이라 할 수 있다(박찬운, 2009: 90).
사회권규약위원회는 1998년에 채택된 일반논평 10(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권리의 보장에서의 국내인권기구의 역할)에서 각 당사국이 사회권규약이 개인에게 보장하는 권리를 점진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의무(제2조 제1항)를 상기하고 이를 위해 국가인권기구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위원회는 국가인권기구에 부여된 권한 속에 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권리에 대한 적절한 관심과 동시에 기관의 활동으로서 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권리에 관한 교육 프로그램 등의 촉진, 규약과 국내법의 합치에 관한 검토, 전문적 조언, 규약상의 의무에 관한 국내적 지표의 설정, 연구 및 조사, 규약상의 권리의 실현상황에 관한 감시 및 보고서의 공표, 사회권의 침해에 관한 진정의 심사 등을 인권기구의 역할로서 예시하고 있다.
자유권규약위원회의 경우 일반논평의 형태로는 국가인권기구에 관한 언급을 한 바 없지만 체약국의 정부보고서 검토 중에 여러 차례 인권기구의 설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아동권리위원회도 국내인권기구의 설치를 제안하거나 권고하고 있다(박찬운, 2009: 90-91).
 
Ⅲ.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와 역할
1. 준국제기구
국가인권기구는 각국이 국내법을 근거로 설치하는 국내기구인 것이 분명하지만 그 목적은 국제인권법의 발전과정에서 국제인권규범의 실현에 있는 것이므로 국제기구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만들어지는 국가인권기구는 유엔헌장에 기초한 유엔인권기구나 전문기관, 국제인권규약 등 조약에 의하여 설치된 실행감시장치 등과 유럽인권협약에 따른 인권위원회와 인권재판소, 미주인권위원회와 인권재판소, 아프리카인권위원회 등 지역적 인권보장 장치를 넘어 국제인권규범의 실천을 위해 고안된 또 하나의 보장체제이다. 이는 국제법에 의해 만들어진 인권기구만으로는 국제인권규범의 이행에 한계가 있다는 인식으로 국제사회가 각국에 국제인권규범의 실천을 위해 설치를 요구하여 만들어진 기구이다(박찬운, 2009: 92).
2. 국제인권법의 국내 이행 촉진자
많은 나라의 사법기관은 국제법의 국내법상의 효력과 관계없이 국제인권법을 재판규범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고, 법관을 위시한 법집행자들 대부분이 국제인권규범에 대해 무관심한 상태에 있다. 국제인권법은 국내법 질서에 단순히 추상적 지위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인권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생겨난 조직이다. 국가인권기구는 국내법 체계에서 국제인권법이 안고 있는 한계, 즉 추상적 지위를 넘어서 규범적 의미를 구체화하는 방법론의 하나로 구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조용환, 2002: 48 참고).
3. 비사법적 인권옹호기구
사법적 절차에 의한 인권옹호는 법원이나 헌법재판소 등에서 담당하고, 비사법적 절차는 바로 국가인권기구 등이 담당한다. 한 국가의 인권보장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사법적 절차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법적 판단은 성질상 법적 구속력이 있으므로 인권 실현에 있어서 대단히 실효적이다. 그러나 이 절차는 많은 자원을 전제로 한다. 많은 사법적 인력과 시간 그리고 재원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이 절차는 대부분 사후적 개념의 인권옹호절차이다.
이에 비해 비사법적 절차에 의한 인권옹호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한계는 있지만 오히려 실효성이 높은 경우가 많다. 우선 사법적 절차에 비하여 돈과 시간이 절약된다. 그리고 이 절차에서 나오는 결정(권고)은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사법절차의 그것보다 다양하며 유연하다. 따라서 비사법적 절차는 경우에 따라서는 사법적 절차 보다 오히려 실질적인 인권옹호 절차가 될 수 있다(박찬운, 2009: 93).
 
Ⅳ. 국가인권기구 독립성 원칙과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
1. 국가인권기구 독립성 원칙의 내용
파리원칙에서 국가인권기구의 주요 요소로 독립성을 강조하였고, 이 원칙은 유엔이 각국에 국가인권기구의 설치를 권고하는 과정에서도 인권기구의 실효성을 담보하는 가장 필요한 요소로 강조되었다.* 유엔이 강조하는 독립성 원칙의 내용은 국가인권기구 설치 지침서(핸드북)나 유엔 국가인권기구조정위원회의 인권기구 등급부여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들어난다.
* 유엔의 국가인권기구 핸드북은 인권기구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한 요소로 독립성의 원칙, 적절한 관할과 권한의 원칙, 접근성의 원칙, 협력의 원칙, 활동의 실효성 원칙 및 책무성 원칙을 들고 있다(UN Handbook, 1995: 10-17).
(1) 조직 운영에서의 독립성
효과적인 인권기구는 어떤 정부기관이나 정당 또는 어떤 단체나 상황에서도 독립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인권기구는 다른 국가기관 특히 정부로부터 독립하여 독립적인 결정권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며 그 정도는 어떤 정부기관이나 공적 혹은 사적 기구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고 직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독립성은 운영의 자율성을 한 내용으로 하기도 한다. 기관의 운영과 관련된 절차를 외부기관의 간섭 없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어야 하며 기관이 발한 권고나 보고서 및 각 종 결정 또한 다른 기관에 의 한 간섭 없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2) 재정의 독립성
국가인권기구의 독립성과 관련하여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재정의 독립성이다. 아무리 조직운영에 독립성이 법률적으로 보장된다고 해도 재정에 자율성이 없다면 그 독립성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재정권을 가진 국가기관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독립적인 인권기구는 재정에 있어서 예산 수립권을 가지고 직접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할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3) 조직 구성의 독립성
국가인권기구의 독립성 중에서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조직 구성을 인권기구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구성원에 대한 임명, 해임, 임기 등에 대한 독립성을 의미한다. 아무리 법적으로 인권기구가 독립적인 기구이며, 예산상의 독립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다른 국가기관이 인권기구의 구성원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독립적인 인권기구라고는 할 수 없다. 따라서 이를 보장하기 위해 인권기구 설립법에는 그 근거 규정을 두어야 한다. 핸드북은 임명방법, 임명기준, 임기, 재임여부, 해임권자 및 해임사유, 구성원에 대한 특권 및 면제 등에 대한 사항은 근거법령에 규정할 것을 요구한다(박찬운, 2009: 95).
 
2.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
(1) 인권위의 지위
인권위는 타 국가기관의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파리원칙을 충실히 이행하는 방법으로 무소속 독립기관으로 탄생했다. 인권위법 제3조 제2항은 “위원회는 그 권한에 속하는 업무를 독립하여 수행한다”라고 규정하여 인권위가 독립적인 인권기구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물론 이 규정이 인권위가 무소속 독립기구라는 법적 근거로는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독립성이 강한 다른 행정위원회가 그 설치 근거법에서 소속을 분명히 하는 것을 고려하면* 위 규정만으로도 인권위가 무소속 독립기구라고 할 수 있고, 입법과정에서도 인권위가 무소속 독립기구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의가 없었다. 나아가 설립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권위는 다른 국가기관으로부터 무소속 독립기구로 취급되어 왔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우리 헌법상 헌법기관을 제외하고 무소속 독립기관이 가능한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이 문제는 해당기관의 설립 목적, 기능과 권한, 그리고 다른 국가기관과의 관계를 헌법이념에 비추어 실질적으로 검토할 문제이다. 즉, 헌법상 기본권보호의무(헌법 제10조)를 진 국가가 그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국가기관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바로 헌법에 근거한 것으로서 위헌 문제는 나올 수 없다고 본다. 또한 무소속 독립기관은 우리 헌정사에서 인권위가 처음은 아니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소속으로 바뀌었지만 그 이전에는 무소속 독립기관이었으며, 수차례 만들어진 특별검사는 대표적인 무소속 독립기관으로 볼 수 있다(조용환, 2002: 118-119).
* 즉, 국민권익위원회는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한다고 규정되어 있지만 분명하게 소속은 국무총리로 한다고 되어 있고(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 제11조 및 제16조), 공정거래위원회 또한 사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한다고 하면서도 소속은 국무총리로 한다고 되어 있다(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35조).
(2) 인권위의 구성과 운영
인권위법 제2장은 인권위의 구성과 운영을 규정하고 있다. 이 장의 목적은 한 마디로 인권위의 독립성을 조직 구성과 운영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이다. 파리원칙과 유엔지침서에 따라 인권위원의 임명방법(제5조), 임명기준(제5조), 임기(제7조), 재임여부(제7조), 해임 및 해임사유(제8, 9조) 등에 대해서 규정하고 있다. 독립성 관점에서 중요한 몇 가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인권위원(11명) 임명은 헌법재판관과 같이 국회(4인), 대통령(4인) 및 대법원장(3인)이 선출하거나 지명하는 방법으로 한다(제5조 1항). 이것은 특정 국가기관에 의한 영향력을 방지하기 위한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다. 인권위원에게는 신분보장 규정이 적용된다.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않으면 그 의사에 반하여 면직되지 않는다(제8조). 나아가 정당 및 국가기관의 영향을 배제하기 위해 정당원이나 국가기관의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등은 인권위원이 되지 못한다(제9조, 제10조).
문제는 사무처 조직의 인사권이다. 인권위법은 사무처에 대하여 사무총장과 소속 직원 규정을 두고 있다(제16조). 조직 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사무총장과 5급 이상 공무원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위원장에게 제청권을 주며, 6급 이하는 위원장에게 임명권을 주고 있다(제16조 2, 3항). 그러나 소속 직원의 수나 사무처의 조직은 법률 사항이 아니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제18조). 이에 따라 사무처는 대통령의 직제령에 의해 조직되는데, 여기에 큰 문제가 있다. 정부에 따라서는 인권위의 독립성을 이해하고 직제령의 제 개정에서 인권위에 실질적인 주도권을 주지만 그렇지 못한 정권인 경우에는 인권위법의 이러한 규정을 이유로 실질적인 주도권을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인권위 인원및 조직 감축 문제가 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진행된 것도 바로 인권위법의 이런 형식적 규정의 존재 때문이다(박찬운, 2009: 97).*
* 물론 인권위의 독립성에 대한 분명한 원칙이 존중된다면 직제에 관한 인권위법의 규정(제18조)은 합목적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즉, 이 규정은 대통령이 직제령에 의해 인권위 조직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규정이 아니고 조직에 관한 입법형식만을 규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인권위의 조직과 인원에 대한 대통령령은 인권위가 주도하여 발의하고 이를 정부(대통령)가 존중하는 방법으로 정해져야 한다. 인권위법은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인권위 위원장이 국무총리에게 대통령령의 개정안 등을 제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인권위법 제6조 4항.

(3) 직무 독립성
인권위법은 인권위가 독립적으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법적 장치를 만들어 놓고 있다. 우선 원칙 규정으로 인권위의 직무 독립성 규정(제3조 1항)을 두고 있고, 세부적으로는 제2장 이하에 위원회의 운영, 업무수행 및 조사절차, 사무처 및 지방사무소의 운영, 직원의 인사 등의 사항에 대하여 기본적인 규정은 인권위법에 세부적인 내용은 인권위의 내부 규칙에 의해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제12조 4항, 제16조, 제18조 등). 또한 직무 독립성은 다른 국가기관의 협조가 전제되어야 한다. 인권기구의 독립만 강조되지 다른 기관이 업무에 필요한 사항을 협조하지 않는다면 인권기구가 제 기능을 다할 수 없다. 따라서 인권위법은 다른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그 밖의 공ㆍ사단체에 협의를 요청할 수 있어야 하고, 이러한 요청을 받은 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성실히 응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제20조).
(4) 재정 독립성
인권기구의 재정 독립성은 유엔 지침서가 권고하는 대로 인권기구가 예산안을 편성하여 직접 국회에 제출하여 승인을 얻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우리 인권위법은 그렇게는 하지 못하고 인권위 위원장이 위원회의 예산관련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국가재정법(제6조)에 의한 중앙관서의 장으로 보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 의미는 인권위 위원장이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다른 중앙관서와 같이 기획재정부의 예산편성지침에 따라 예산요구서를 제출할 수 있다는 것일 뿐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 재정상의 독립과는 거리가 먼 개념이다. 이런 한계로 인해 인권위는 설립 이후 예산 수립을 함에 있어 많은 애로를 겪고 있다. 적어도 예산 측면에서는 인권위는 정부의 다른 부처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박찬운, 2009: 97-98).*
* 인권위도 재정적 독립성 측면에서 파리원칙에 못 미침을 인정하고 있다. 2008년 유엔 국가인권기구조정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인권위는 이 점의 문제점을 분명하게 인정하였다. Statement of Compliance with Paris Principles of the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of the Republic of Korea(November 2008).

인권위가 독립기관으로서 재정독립성을 어느 정도 보장 받으려면 국가재정법상의 독립기관에 준하는 정도의 대우는 받아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 인권위가 예산편성을 독자적으로 하고, 그것에 대해 정부가 마음대로 감액을 하지 못한다. 이에 대해 논자에 따라서는 국가재정법상(제6조 1항) 예산수립에서 특별대우를 받는 독립기관은 모두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인권위는 그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하지만 이것은 입법정책의 문제일 뿐, 헌법기관이냐 아니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박찬운, 2009: 98).**
* 즉, 정부가 독립기관의 예산을 편성함에 있어서 당해 독립기관의 장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며, 조정이 필요할 때에는 미리 독립기관의 장과 협의하여야 한다. 나아가 예산요구액을 감액할 때는 국무회의에서 독립기관의 장의 의견을 구하여 하며, 그 경우 감액 규모 및 이유, 감액에 대한 독립기관의 장의 의견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국가재정법 제40조.
** 실례로 국가정보원은 국가재정법상 독립기관이 아님에도 국가정보원법에 의해서 국가재정법 제40조상의 독립기관으로 대우 받고 있다. 국가정보원법 제12조 1항.

3. 소결론
인권위법은 그 제정과정에서 파리원칙이 요구하는 독립성 원칙을 반영하기 위해 해당 기관과 상당한 갈등을 견뎌야 했다. 인권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법무부는 어떻게 해서라도 인권위를 그 소속 하에 두려고 갖은 노력을 했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들은 인권위가 법무부 소속 하에 들어가면 인권기구의 독립성은 사라진다면 극력 반대하며 엄동설한의 추위 속에서 거리 연좌 농성을 하기도 했다. 이런 처절한 투쟁 끝에 인권위는 무소속 독립기구로 탄생할 수 있었다. 다만 재정(예산 편성)이나 조직 구성(인사)에 있어서는 파리원칙을 완전히 반영하는 데에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예산 편성에서는 헌법기관인 사법부나 헌법재판소와 같은 독립기관과 같은 독립성을 보장 받지 못하고 있고, 다른 중앙행정기관과 다를 바 없다. 조직 운영에 있어서도 그동안 정부(구체적으로는 행정안전부)의 지속적인 견제를 받아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위는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지위를 확보하였다. 우선 무소속 독립기구로 탄생하여 설립 이후 지금까지 인권위 활동에서 다른 기관으로부터 어떤 간섭도 받지 않고 활동해 온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 면은 파리원칙에 완전히 부합하는 것으로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샀다. 재정적인 면이나 조직 구성에 있어서는 미흡한 점이 있었지만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비교적 인권위와 해당 국가기관 간에 협조가 잘 이루어졌고, 해당기관은 인권위의 독립성을 존중해 주었다. 이런 것들도 국제사회에서는 우리 인권위가 상당히 대접받는 데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 대한민국 인권위는 국제사회에서 메이저 국가인권기구로 자리매김 하였다. 유엔의 국가인권기구조정위원회가 부여하는 인권기구 등급에서도 인권위는 최상위 등급인 A 등급 기구로 분류되었고, 이 조정위원회의 부의장 기구가 되었던 것이 그것을 말해 준다(박찬운, 2009: 99).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인권위가 겪고 있는 수난은 독립적인 국가인권기구를 무색케 한다. 이것은 인권위가 가진 독립성의 제도적 한계가 정권의 색깔에 따라 극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권위의 독립성은 정권의 의지만으로는 지켜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박찬운, 2009: 99). 정권의 부침과 관계없이 인권위가 독립적인 국가인권기구로 남기 위해서는 바로 독립성 확보를 위한 그 제도적 개선이 본격적으로 도모되어야 할 것이다.
 
V. 결론-국가인권위원회의 헌법적 함의
문제는 유엔이 오랜 기간 각 국에 요구해온 국가인권기구가 각국에서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헌법과 조화를 이룬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차피 국제인권규범의 이행은 각국의 헌법적 장치에 의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권위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위의 국가인권기구 개념이 헌법에 의해 충분히 지지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인권위는 다음과 같은 헌법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박찬운, 2009: 99-100).
첫째, 인권위 설치는 우리 헌법의 국제법 존중주의(국제법 평화주의)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헌법 제6조를 국제법 존중주의의 하나로 이해하면서도 그것은 국제법의 국내법적 지위와 효력에 대한 규정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인권보장적 측면에서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 규정은 국제인권법상의 인권보장 체제를 우리 헌법이 긍정하고 존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국가인권기구는 국제사회가 만든 국제인권조약의 국내적 실천을 위한 주요한 장치이고, 이것은 국제인권법의 전체 체계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 헌법의 국제법 존중주의는 이러한 국제인권법의 체계를 존중한다는 것으로 내연을 넓혀가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인권위 설립은 바로 헌법의 국제법 존중주의에 기초하여 국제사회가 요청해온 국가인권기구의 설치를 의미한다.
둘째, 인권위 설립은 우리 헌법상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와 관련이 있다. 헌법 제10조 1항은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하여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국가인권기구는 바로 이러한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와 맥을 같이 한다. 국가는 사법기구와 다른 차원에서 보다 손쉬운 방법으로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비사법적 인권기구를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인권위가 헌법에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지만 헌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근거는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에서 찾아야 한다.
위와 같은 헌법적 함의에도 불구하고 인권위가 국내의 정치상황에 취약한 것은 그 존재가 헌법에 명문으로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권위가 형식상 헌법기관이 아닌 법률기관으로 있는 한 그 기능과 역할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의 최고 담당자의 의지에 따라 달라 질 수 있다. 이것은 독립적 국가인권기구의 존재의의와는 거리가 먼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향후 한국의 인권위가 국가인권기구로서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언젠가 헌법 개정을 통한 헌법기관화를 본격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박찬운. 2008. 『인권법』. 도서출판 한울.
인권법교재발간위원회 편저. 2006. 『인권법』. 아카넷.
조용환. 2002. 국가인권기구의 국제적 발전과 한국의 대안.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UNITED NATIONS, National Human Rights Institutions. 1995. A Handbook on the Establishment and Strengthening of National Institutions for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Human R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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