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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라 에런라이크의 『희망의 배신』

 

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2/10/25/0608000000AKR20121025078900005.HTML
공 든 스펙 무너진다..'넥타이'의 배신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2012/10/25 10:34)
"사무실과 집에서, 심지어 퇴근하는 시간에도 업무에 짓눌린 채 일주일에 60~80시간을 일하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빈 시간이 주어진다. (중략) '이 그림은 어디가 잘못된 거지?'라는 질문을 제기하게 된다."(271쪽)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만 자본에 배신당하는 것이 아니다. 사무직 넥타이족은 한번 해고되면 구직 단계부터 수차례 뒤통수를 맞아야 한다.
미국 출신인 칼럼니스트인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긍정의 배신' '노동의 배신'에 이어 '희망의 배신'을 펴냈다. 막연한 긍정주의에 도사린 함정을 파헤친 '긍정의 배신', 저임금 노동자의 빈곤 악순환을 고발한 '노동의 배신'으로 주목받은 저자는 이번엔 증산층으로 분류되는 사무직 근로자를 도마 위에 올렸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며, 고임금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화이트칼라 계층도 알고 보면 한순간에 빈곤층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것.
이들의 문제는 한번 해고되고 나면 재취업에 오히려 어려움이 가중된다는 데 있다. 그동안 쌓아온 화려한 스펙은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되고, 다시 구직자로 맨땅에 헤딩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 '회사형 인간'이었던 이들에겐 노동이 아닌 구직 과정 자체가 배신의 연속이라고 저자는 꼬집었다.
저자는 실업수당 증액, 의료보험 확대, 계층간 연대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정부를 통하든, 비영리 부문을 통하든, 또는 협조적인 대안 기업을 통하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1026122753
연봉 1억의 그녀, 변기 닦이로 전락한 이유는? (프레시안, 안은별 기자, 2012-10-26 오후 6:20:33)
[꿈깨라 중산층]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희망의 배신>
미국의 한 유명 저널리스트가 자신의 경력이 호환되지 않는 세계에서 허위 이력서로 취업에 도전한다. 그녀도 이 과정에서 "평범한 이력서를 눈에 띄는 것으로 만드는 법, 실제로는 갖지 않았거나 가질 자격이 없는 자신감을 가장하는 법" 그리고 "이런 식의 속임수가 게임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위장 취업 도전기를 담은 <희망의 배신>(전미영 옮김, 부키 펴냄)은, 한국에 뒤늦게 소개된 저널리스트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3부작' 마지막 책이다.
<긍정의 배신>(전미영 옮김, 부키 펴냄)과 <노동의 배신>(최희봉 옮김, 부키 펴냄) 그리고 이 책의 원제는 모두 '배신'과 거리가 멀지만, 사회적 고통을 긍정 마인드로 견뎌도, 뼈 빠지게 노동해도, 하라는 대로만 하면 잘 살 거라는 희망을 가져도 소용없는 세상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꽤 잘 지은 제목이다. <긍정의 배신>의 예상치 못한 성공을 이어가보려는 출판사의 희망도 배신당했을지 모르겠지만….
<희망의 배신>의 원제는 싼 광고 상품으로 손님을 끌어 비싼 물건을 파는 상술을 뜻하는 "Bait and Switch"라고 한다. 책을 읽다 보니 이건 기업 중심의 사회에서 처참하게 잘려 버린 화이트칼라 실직자들이, 다시 안정적인 중산층으로 진입하고자 사기에 가까운 게임에 말려드는 불행한 처지를 은유하는 것 같다. 겨우 "실직은 당신 내면의 문제야"란 말을 듣기 위해 코칭 프로그램에 수백 달러를 지불하고, 인맥을 만들어 준다는 네트워크 모임에서는 같은 실직자의 명함 몇 개만 쥐고 돌아오기 일쑤다. 기업에 맞는 인간이 되기 위해 나를 개조하고 또 개조하지만, 돌아오는 건 무반응, 연장되는 건 '공백' 상태뿐이다.
바버라는 자신이 알려진 대학, 출판(잡지 신문 책), 비영리 진보 단체 등 일부 영역은 배제하고, 그동안 비판해 온 기업에 대한 비판 의식과 의구심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신분을 만들고 거기에 맞는 개인사를 갖다 붙인다. 그녀는 활동가 경험, 출판사의 홍보부 사람들과 함께 일해 본 경험 등을 떠올려 가며 "나는 회의를 계획하고 주재했다.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리더 역할을 했다. 남들 앞에서 말하는 데 익숙하다"는 식으로 '홍보 전문가'로서 자신을 위장한다. 그리고 결혼 전 성을 활용해 바버라 알렉산더로 명함을 팠다.
반쯤은 바버라이면서 반쯤은 바버라가 아닌 자신을 만들어 놓고 기업의 세계로 나간 그녀, 결과는 어땠을까? 이 책이 블루칼라 노동을 다룬 <노동의 배신>과 마찬가지로 위장 취업 '체험'기라 생각한 나는 책의 3분의 1을 읽어갈 때쯤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이쯤이면 어떤 기업이든 들어가서 과도한 야근과 상사의 압박에 괴로워하는 내용이 나와 줘야 되는 거 아냐? 라는 기대를 갖고 읽어나갔지만, 책의 마지막에 이르도록 실험자=피실험자가 결국 원하는 홍보직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간에 보험 없는 보험 판매원, 화장품 방문 판매원 같은 영업직으로는 간신히 취업되기는 한다.)
비단 그녀가 원래 글 쓰던 돌아갈 장소가 있어서, 그러니까 절실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약 10개월간의 프로젝트를 마치고 그녀가 코칭 프로그램이나 취업 알선 행사에서 만난 전 화이트칼라 구직자들에게 연락을 해 본 결과, 열한 명 중 '진짜' 일자리를 찾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신 그들은 일단 무슨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시간당 8달러를 받고 월마트에서 육체 노동을 하거나, 공황 발작 등의 고통을 겪으며 청소나 변기 닦기 등에 매진했다.
그들은 이것을 "생존용 일자리"라 부른다. 그러나 저자는 '진짜 일자리'를 상정하는 "생존용"이란 명명이 낙관적이라면서, 이 상태가 각자의 전문 분야를 살린 재취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실업률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물론 생존용 일자리에 내몰린 전 화이트칼라가 기대하는 건, 대기업 옆 일류 레스토랑에서 접시를 나르다 보면 언젠가 그 회사 임원과 연줄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긍정적인 생각'이다.
바버라에 따르면 그들은 "열심히 일하면 물질적 풍요와 안정을 누리게 된다는 구식 청교도 윤리 속에서" "만사를 올바르게 해"왔다. "철학이나 음악에 대한 젊은 열정을 접고 꾹 참고 경영과 금융 같은 지루하고 실용적인 학문을 공부"한 사람들이다. 재미나 모험 대신 일찍이 안정성(다시 말해 지루함)을 선택했기에, 적어도 자기 분의 치즈 한 조각은 계속 같은 자리에 있을 거라 생각해 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책 속의 화이트칼라 실직자들이 처한 상황은, 치즈의 실종 정도가 아니라 극단적으로 말하면 '죽음(존재의 없음)'이다. 캐서린 뉴먼이 <추락(Falling from Grace)>에서 쓴 대로 "이전의 자아를 떨쳐 내는 지침도, 새로운 자아를 위한 지시 또는 훈련도 없으므로 사회적·문화적 진공 상태에 놓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만사를 올바르게 해온 만큼 회사 속에서의 자기가 전부였는데 그것을 부정당했기 때문이다. 바버라가 보기에 코칭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구직자들은, 실업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일부러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직장에서의 생활을 필사적으로 모방하고 있었다. (좀비!) 여기서 바버라의 코끝에는 시간증(屍姦症)의 냄새마저 스친다.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건 이 구절뿐만이 아니다. 바버라는 외모와 의상을 개조하는 코칭을 받는 동안 전문가의 손길로 화장을 마친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며 "인간에서 물건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중간 단계로 일종의 죽음을 거쳐야 하는 것일까?"라고 자문한다. 인성을 규정하고 그에 맞는 직업을 찾아준다는 와그너 에니어그램 성격 유형 지표(WEPSS) 검사지 앞에서는 자신이 "의존과 독립, 용기와 비겁함 어느 쪽으로든 이끌릴 수 있는" 생명체라며 진저리친다.
이 죽음을 잘 극복하라며 들이밀어지는 것이, 자신의 처지를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차단시키는 '종교적인' 제안들이다. 바버라는 코칭 프로그램이나 네트워크 모임에서 '내면의 문제와 마주하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일자리를 끌어들이라'는 유사 종교적 선언들을 발견한다. 한국에도 불안한 시기일수록 장사가 잘 되는 건 보험사와 교회뿐이라는 우스개가 있는데, 바버라 역시 당시 미국에 횡행한 복음주의 열풍의 기능 중 하나가 "점점 더 신뢰할 수 없는 직업 세계와 인간을 화해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비꼰다.
이제 바버라가 결론부에서 역설하는 주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기업 세계는 다른 사람의 일자리를 없애야 전진할 수 있는 포식자의 세상으로 변해 버렸고, 따라서 남아 있는 자들에게도 명백하게 서바이벌 게임이며, 조금 일찍 발생한 대숙청은 결코 '개인적인' 불행이 아니다. 그러니 용기를 내 다른 사람들과 손을 맞잡고 어려운 고민을 시작해야 하며, 바로 지금이 공통의 문제에 함께 맞설 기회가 어느 때보다 풍부하다는 것. 이 과정에서 "만성적인 억압에 시달리는 블루칼라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더욱 이상적"이라는 지적도 잊지 않는다.
뒷부분이 조금 허탈할 수도 있지만, 책은 상황의 끔찍함을 상술하고 각성을 촉구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충분히 다 했다고 보인다. 그 역할은 이 책 자체보다 책이 '놓인' 자리와 함께 생각해 봄직 한데, 가령 화이트칼라 세계로 ('재진입'이 아니라) '진입'하려는 구직자들이 처하는 구조적 모순을 다룬 <청춘 착취자들>(로스 펄린 지음, 안진환 옮김, 사월의책 펴냄)이나 탄탄했던 미국 중산층의 몰락과 그 유발자들을 비판한 <중산층은 응답하라>(톰 하트만 지음, 한상연 옮김, 부키 펴냄) 등 비슷한 문제의식의 책들 옆자리 말이다. 미국에서는 각각 2006년(<희망의 배신>), 2007년(<중산층은 응답하라>), 2011년(<청춘 착취자들>)에 나왔지만 한국엔 모두 2012년에 번역되어 도달했다.
각각 결도 다르고 내놓는 방안도 다른 책들이지만, 가장 안정적이라 여겨졌던 세계에서 오는 신음소리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런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독자의 자유이지만, 이미 긍정주의와 이별한 사람들은 경제 성장과 안정적 고용 등이 보장됐던 중산층의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는 또렷한 경고음에 고개를 돌릴 수 없을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희망의 배신>은 그 한국어 제목이 말해주듯, '중산층의 복권', '중산층 진입 통로를 위한 재정비' 등 마지막 희망에마저도 기대지 않는 자세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기업에서 일해본 적 없지만 글 쓰는 '화이트칼라'인 저자는, 기업 문화(기업 문턱에 이르는 문화?)의 해괴함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이 속했던 언론계와 학계의 유연함을 자주 강조한다. 가령 "언론계나 학계에는 유별나거나 까다로운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원고가 제때 도착하기만 하면,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만 하면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런데 기업 세계로 향하는 길에는 성격을 개선하라는 경고 표지판이 줄지어 늘어 있다."(282쪽) 같은 부분.
맞는 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끊임없이 역겨움을 표하는 '나 자신을 포장해서 먹기 좋게 내놓기'라는 기업식 요구가, 언론계나 학계에서는 과연 없거나 덜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미국의 환경쯤 되면, 아니면 바버라 에런라이크쯤 되면 좀 다른 걸까? 이곳의 소위 '지식 시장'에서는 '지식 노동자'의 열정과 인성, 적절한 가장(假裝) 능력이 오히려 거래의 주요 품목인 것 같은데.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102601032630021002
‘화이트칼라’ 무너지는 꿈… ‘장기 자산’서 ‘단기 비용’ 전락 (문화, 김도연 기자, 2012년 10월 26일(金))
저자, 구직 단계부터 직접 체험 
명불허전이다. ‘긍정의 배신’과 ‘노동의 배신’을 통해 각각 ‘행복전도사’들이 퍼트리는 긍정주의의 허상과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워킹푸어의 실상을 파헤친 저자가 이번엔 무너져 가는 중산층의 현실을 통렬하게 고발한다. ‘화이트칼라의 꿈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가’라는 부제는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압축해 보여준다. 책은 생물학 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가 60대 초반의 나이에 기업에 몸 바쳐 충성하고도 버려지는 화이트칼라의 세계에 뛰어들어 쓴 체험형 현장 르포르타주다.
저자는 화이트칼라들이 정말로 회사에서 쫓겨나고 있나, 그런 사람들이 새 일자리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황이 정말로 그렇게 안 좋다면 왜 저항의 기미가 전혀 안 보일까라는 세 가지 의문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저자가 프로젝트를 시작한 2003년, 미국의 실업률은 5.9%였고, 이 중 화이트칼라의 비율이 20%로 160만 명에 달했다. 높은 성과를 낸 사람들도 해고됐고, 사양산업에서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었다. 저자는 그 답을 찾기 위해 대대적인 구직 프로젝트를 세우고 최선을 다한다.
커리어 코치들이 인터넷 검색보다 훨씬 나은 시간 활용법으로 추천하는 네트워킹 행사에 바지런하게 쫓아다닌 저자는 그러나 실망감만 느낄 뿐이다. 네트워킹 행사가 많이 열리는 초대형 교회는 실직도 구직도 모두 하느님의 뜻이라고 설명하고, 현실보다는 구직자 개인의 태도를 바꾸는 쪽에 집중하게 만든다.
저자는 “네트워킹이 실업자들이 함께 모여 연대감을 형성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동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네트워킹의 본질 그 자체가 동료 구직자를 향한 연대감의 싹을 짓밟고, 동료 구직자는 기껏해야 연락처나 정보를 얻는 수단으로 여겨질 뿐이거나 최악의 경우 경쟁자로 간주된다”고 말한다.
저자가 보기에 기업이 돈을 버는 방법은 두 가지다. 매출을 늘리거나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다. 대부분의 경우 기업의 운영 경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가 비용 절감의 일차 대상이 된다. 또 최고경영자(CEO)가 그토록 선호하는 인수·합병의 결과,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면 필연적으로 정리해고가 뒤따른다. 주주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운사이징도 일상적으로 행해진다. 저자는 이에 대해 “생물학적으로 거칠게 표현하면 기업은 포식자의 세상으로 변한 셈이다”며 “다른 사람의 일자리를 없애야 전진할 수 있다”고 꼬집는다.
책에 소개된 한 경영컨설턴트의 다음과 같은 말은 오늘날 미국의 화이트칼라가 처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예전에 조직은 사람을 키우고 발전시켜야 할 장기 자산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지금은 줄여야 할 단기 경비로 본다. 사람을 생산 방정식의 한 가지 변수에 불과한 ‘물건’으로 여긴다. 손익 숫자가 바라는 대로 나오지 않으면 ‘물건’은 언제든 내버릴 수 있다.”
저자는 화이트칼라들이 안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가 일자리의 안정성 이상으로 존엄성의 희생이라고 지적한다. “화이트칼라가 사는 세상은 음모와 정체불명의 기대치, 조작과 심리 게임이 횡행하는 곳이며, 성격과 태도 같은 자기 표현이 업무 수행 능력보다 더 중요한 곳이다.” 정장을 빼입은 화이트칼라가 육체노동자를 얕볼지 모르지만 사실은 육체노동자들보다 훨씬 강압적인 심리적 요구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책의 내용은 미국 이야기지만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중·장년 화이트칼라의 상시 정리해고는 우리에게도 일상이 됐고, 앞으로 개선될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무엇일까. 저자는 “언제든 처분 가능한, 그리고 이미 처분당한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뭉쳐 자신들의 존엄성과 가치를 주장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2102417485385555&outlink=1
'박사'학위 언론인, 10달 구직한 결과는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2012.10.27 09:01)
[BOOK]희망의 배신..칼럼니스트의 화이트칼라 구직체험기
미국의 사회운동가이자 칼럼니스트인 바버라 애런라이크는 책 '희망의 배신'에서 대학을 좋은 성적으로 나와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데도 일자리 불안과 과다 노동에 지쳐가는 미국 화이트칼라 중산층의 암울한 현실을 고발한다. 화이트 칼라가 일단 해고되면 마주치는 것은 실직자를 볼모로 돈을 버는 구직컨설턴트와 아무런 복지없이 미끼상술만 판치는 프랜차이즈·영업직 뿐인 게 현재 미국의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박사학위를 갖고 있으며 오랫동안 저널리스트로 일했던 그녀는 '르포르타주' 방식을 이 책에서도 적용해 기업 홍보담당 간부직원이 되고자 10개월간 노력한 경험을 담았다. 비싼 돈으로 취업컨설팅을 받아 이력서를 꾸미고 화장은 물론 성격까지 순종적으로 고치면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쫓아다니며 노력했으나 결국 자신이 원하는 직장을 얻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이는 미국의 많은 화이트 칼라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저자는 개인을 고용하고 해고하는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미시적 수준의 광기 이면에 존재하는 거시적 수준의 비합리성을 타파하기 위해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연대해야 하며, 블루칼라 노동자들과도 손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불완전한 고용에 시달리는 실업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실업수당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밖에 대안기업 등 다양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선을 앞둔 우리나라의 정치권에서도 참고해야 할 대목이다.
저자가 기업에 던지는 신랄한 비판은 아직도 과거 신자유주의 분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한국기업들이라면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 많다. 수십 년간 신자유주의 체제를 거치면서 미국 기업은 '포식자의 세상'으로 변해버렸다. 과거의 기업은 사람을 키우고 발전시켜야 할 장기자산으로 간주했지만, 지금은 줄여야 할 단기경비로 본다. 사람을 생산 방정식의 한 가지 변수에 불과한 '물건'으로 여기므로 숫자가 바라는 대로 나오지 않으면 그 '물건'은 언제든 버릴 수 있다.
이에 따라 최고경영자(CEO)들이 다른 사람의 일자리를 없애는 것으로 자신의 수입을 늘리는 희한한 구조를 만들어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정리해고를 단행한 CEO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많은 보수를 챙겼으며, 대부분 서비스직을 아웃소싱한 50개 미국기업 CEO의 보수 인상폭이 다른 회사에 비해 5배나 높았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그러나 이런 현상이 엄청난 사회적 비효율을 낳는다고 비판했다. "미국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직원에 대한 인간 본연의 배려가 아니라, 기업 내부의 방종 문화와 그로 인해 빚어진 무능"이라는 지적은 다가올 산업구조의 변화를 대비해야 할 CEO라면 깊이 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
"최고경영자가 자신은 고액연봉을 받으면서 회사를 위해 오랫동안 기여한 장기근속자를 무작정 정리해고 해선 안 됩니다. 기업조직을 비롯한 모든 사회계층이 변화에 참여해 새로운 태도와 문화를 익히고 새로운 경제로 편입되도록 돕지 않으면 엄청난 혼란이 올 것입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경고다.
◇희망의 배신-화이트칼라의 꿈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가〓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부키 펴냄. 304쪽. 1만4800원.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2102914335872377
[BOOK]세상이 '배신' 때렸다...'멘붕' 직장인의 절규 (아시아경제, 사회문화부 김수진 기자, 2012.10.29 14:40)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2001년 내놓은 '노동의 배신'은 저임금 노동자의 실상을 잠입 취재한 르포물로 출간 즉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50만부 넘게 판매됐으며 예일대를 비롯한 미국 600개 대학에서 필독서로 선정됐다. 후속작격인 '긍정의 배신'에서는 체제의 실패를 개인의 실패로 규정하는 신자유주의적 '낙관론' 이데올로기를 폭로해 역시 좋은 반응을 거뒀다. 그런 그녀에게 주변에서 다음에는 중산층의 몰락을 탐색해보라고 독촉을 했다. 평범하지만 그럭저럭 일해 온 대졸 화이트칼라 사무직들이 이제는 시급 7달러를 받는 일자리에서 절망하고 있는 현실을 파헤쳐보라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이런 제안은 다소 의외였다. "굳이 나까지 나서서 걱정할 필요없이 편안하게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던 사람들에게 무언가 심각한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직접 구직자가 되어 일자리를 찾아보기로 결심한다. 보도 저널리스트 출신이니 직종은 홍보직이 가장 걸맞아 보였다. 결혼 전 성을 사용해 '바버라 알렉산더'라는 새로운 '노동 상품'을 창조한다. 목표는 의료보험이 제공되고 연봉 약 5만달러를 받는 중산층의 일자리다. '노동의 배신'을 쓸 때 3년간 웨이트리스, 청소부, 월마트 직원 등으로 일했던 것에 비해 이번 프로젝트는 그리 힘들 리 없어 보였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구직 일대기를 담은 '희망의 배신'은 중산층의 고단한 현실 속으로 들어가면서 겪게 되는 '멘탈붕괴'의 수순을 보여준다. 먼저 그녀는 '커리어코치'를 만난다. 비용을 받고 이력서를 다듬어주거나 취업 수순을 알려 주는 일대일 코치들이다. 이들은 별자리 운세 수준의 심리검사 결과나 인성 검사, 별반 필요없는 취업 강의 수강을 강권한다.
그 다음은 인맥을 쌓기 위한 노력이다. 구직자들이 모이는 지역 경제인 모임이나 임원 훈련소를 전전한다. 그곳에서 만난 구직자 중 한 명인 짐은 11년간 일하던 타임워너에서 영문도 모른 채 구조조정당한 뒤 7개월간 구직에 매달려왔다. 손익분기점을 맞추기조차 어려운 부동산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신시아는 이렇게 묻는다. "내 인생을 어쩌면 좋을까요?" 답이 안 나오는 방황을 계속하다 '마지막 수단'으로 취업 박람회장을 찾는다. 교회를 찾아 하나님 대신 일자리를 구한다. 200여개가 넘는 기업에 지원서를 내고 수천달러를 날렸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결과물은 초라했다. 기본급도 복지 혜택도 사무실도 없는 보험 영업사원과 화장품 방판 사원이 유일하게 손을 내민 일자리였다.
책 곳곳에는 통렬한 위트가 있지만 결코 웃을 수가 없다. 그 위트에는 벼랑 끝에 매달린 중산층의 절망이 그대로 묻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동 시장에서 자아마저 박탈당한 상품이다. 집에 있는 시간마저 구직활동을 위해 가상의 상사를 설정하고 하루를 구획한다. 기업이 원할 만한 인간으로 '재탄생'하기 위해 외모부터 성격까지 개조한다. 일상화된 구조조정이 유발한 노동의 문제는 스스로의 결함 때문에 야기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노동을 파는 블루칼라 노동자들과 달리 자기 자신이 상품인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은 훨씬 더 심각한 심리적 강박에 시달린다. 실직 상황에 놓이면 '혐오대상'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거기에 인간적 존엄성 따위는 없다.
이제 화이트칼라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은 경기와 무관한 문제가 됐다. 1990년대부터 '첨단 경영기법' 대접을 받으며 일반화된 구조조정은 중산층의 삶을 생활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만들어버렸다. 반면 기업의 경영진들은 엄청난 연봉을 받아간다. 에런라이크의 표현대로 '포식자의 세상'이다.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상황은 놀라울 만큼 한국과 흡사하다. 미국에서도 재취업에 실패한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택하는 길은 프랜차이즈 업체 창업, 부동산 중개업, 수수료 없는 영업직이다. 번듯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시급제 일자리를 받아들인다. 에런라이크는 이 상황에 대해 함께 고민하길 권유한다.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뭉쳐 자신의 존엄성과 가치를 주장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같은 절망에 맞닥뜨려 있는 한국 사회에서도 이제는 해결책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http://www.book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724
잠입취재 통해 구직현실 고발해 (북데일리, 박세리 기자, 2012년 11월 02일 (금) 09:24:22)
기업 밀림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할 거라는 막연한 동경심을 갖게 하는 ‘화이트칼라’는 기술집약적 직업인 ‘블루칼라’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이들에게도 점차 취업난이라는 검은 그림자기 드리워졌다. 신간<희망의 배신>(부키.2012)은 화이트칼라의 구직난을 통해 중산층의 쓸쓸한 초상을 대변했다.
이 책은<노동의 배신>이후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집필한 배신 시리즈의 완결판격인 책이다. <노동의 배신>이 저소득층의 노동을 고발했다면 <희망의 배신>은 몰락해가는 화이트칼라를 ‘구직활동’으로 면밀히 파고들었다.
책에 따르면 작가는 집필을 위해 또 다시 잠입취재에 들어간다. 치밀한 구상과 계획을 짜면서도 저소득층의 삶을 대변하기위해 일했던 시간에 비해 어렵지 않을 거라 자신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밝혔다. ‘결과적으로 내 생각은 모든 면에서 빗나갔다.’ 그만큼 어려웠다는 이야기다.
구직활동을 통해 그는 기업 안으로 들어가고자 했다. 첫 번째 단계로 구직과 관련해 코칭을 받는다. 세 명의 코치들은 저마다 취업에 필요한 노하우를 전수했다. 그 가운데 작가가 경험한 이력서 쓰기 부분은 꽤 흥미로웠다.
“우선 이력서에서 ‘나는’, ‘나의’ 같은 표현을 없애라고 했다. 지적을 받고 보니 그런 표현이 기묘하고 겉돈다는 점이 내 눈에도 보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타자가 내 삶을 살아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또 활동을 더 작게 쪼개어 기술하라고 했다.”-42쪽
이어, 이력서를 쓰기 위해서 분량도 중요하지만 일과 관련된 유행어를 적절하게 배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책은 보다 심층적인 취재로 들어간다. 화이트컬러의 구직활동을 생생하게 알기 위해 취업 박람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만난 구직자들의 고뇌와 심리는 우리사회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다음은 취업박람회에서 겪은 일이다.
“별안간 테드가 눈물을 터뜨렸다. 정리해고를 당하고 몇 달 동안이나 해고 사실을 숨긴 이웃에 관한 얘기였던 것 같다.(중략) 테드의 눈물로 한 가지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오늘날 기업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어떤 식으로 단물을 빨아먹고 내뱉는지 모르지만 그런 것들이 사람을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70쪽
이렇듯 작가가 구직활동 가운데 만난 몇몇 구직자들은 화이트컬러임에도 사용되고 버려지는 아픔이 있었다. 안타까운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책은 구직자는 상품화되어가고 있으며, 가치기준에 의해 팔릴만한 물건이 되기 위해서는 ‘가면’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토로했다. 기업의 맞춤형 상품이 되어야 구직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또한 <해고당했다! 지금까지 겪은 일 중 최고다>의 한 대목과 <뉴욕타임즈>의 보도 내용을 빌려 구직의 어려운 현실을 드러냈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오전 9시부터 오후5시까지 일하는 사치를 누린다. 하지만 직장을 찾으려는 사람은 구직에 12~16시간씩 투자한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65족
“구직은 데이트와 비슷하면서도 더 힘들다. 절대 걸려 오지 않을 구혼자의 전화를 기다리며 전화기 옆을 떠나지 못한다. 구직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된 것 같은 심정이 된다. 쾅쾅 두들기며 목청껏 소리를 질러도 눈앞의 문은 요지부동 열리지 않는다.” -214쪽~215쪽
작가는 기업이 원하는 대로 이력서를 고치고 분량을 늘리고, 외모를 가꾸고 심지어 태도까지 고분고분하게 바꾼다. 면접관에게 잘 보인 덕분에 구직에 성공하지만 실상은 녹녹치 않았다.
책은 기업의 도구가 되어 자신의 권리조차 주장하지 못하게 조장하는 기업 문화를 체험을 통해 보여준다. 구직에 성공한 사람은 기업 안에서 죽어가는 기업의 ‘물건’으로 전락하는 문제를 고발하며, 화이트칼라의 실업문제를 잠입취재를 통해 생생하게 전한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3210.html
노예거나 워킹푸어거나 (한겨레21 2012.11.05 제934호, 오승훈 기자)
[출판] 일자리 불안과 과다 노동에 지쳐가는 신자유주의 시대 중산층의 암울한 현실 고발한 바버라 애런라이크의 <희망의 배신>
화이트칼라 구직활동 직접 벌여 쓴 르포

사회안전망이 성긴 한국 사회에서 해고가 살인이듯, 긴 실업 또한 죽음을 부른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업 스트레스 탓에 자살 충동을 느꼈다는 구직자가 10명 가운데 6명에 달했다. 청년 실업만의 문제도 아니다. 중·장년층의 정리해고와 재취업난도 이미 일상이 돼버렸다. 얻기도 어렵고 지키기는 더 어려운 일자리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포박된 나라들의 공통점이 되었다. 빈곤층에겐 내일이 없고, 중산층은 내일이 불안하다. 희망은 없다.
바버라 애런라이크의 <희망의 배신>(부키 펴냄)은 이런 출구 없는 시대의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한 르포다. 저자는 기업이 요구하는 스펙에 매달리며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화이트칼라 구직자들의 세계를 통해, 빈곤층은 물론 이제는 중산층에서도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이 살얼음 꺼지듯 무너져가는 현실을 고발한다. 3년에 걸쳐 웨이트리스, 청소부, 월마트 직원 등 블루 칼라 노동자의 일자리를 체험하며 쓴 전작 <노동의 배신>처럼, 이 책에서도 저자는 직접 화이트칼라 노동자로 구직활동을 벌여 자신이 몸으로 느낀 세계를 적어낸다.
잠입 취재를 위해 저자는 우선 연봉 5만달러 이상에 의료보험을 제공하는 곳으로 ‘좋은’ 일자리의 기준을 세우고 결혼 전 성이던 ‘알렉산더’로 이름을 바꿔 합법적인 신분을 마련한다. 그 뒤 이력서를 꾸미고, 인맥을 만들고, 화장을 바꾸고, 인성까지 개조하는 대대적인 구직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이 책은 2003년 11월부터 약 10개월간 이루어진 이런 구직 체험을 바탕으로 했다.
먼저 저자는 구직 세계의 법칙에 따라 자신을 취업의 길로 인도해줄 커리어코치를 구하고 연줄을 찾아 네트워킹 행사를 쫓아다닌다. 그런데 그 세계에서 마주친 것은 ‘모든 것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된다’는 대책 없는 낙관주의였다. 커리어코치는 나이 때문에 걱정하는 저자에게 ‘본인이 37살이라고 생각하면 37살이 된다’는 황당한 생각에 장단을 맞추어 ‘함께 춤추자고’ 한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저자는 구직자가 갖춰야 할 가장 ‘올바른’ 태도가 ‘순응’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외모에서도 기업에 순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올바른 옷차림과 적절한 액세서리’를 갖춰야 한다. 인성검사도 여기에 한몫한다. 결국 내가 해고되거나 취직을 못하는 것은 기업에 맞추지 못한 ‘내 탓’이 된다. 실직과 정리해고는 사회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로 축소되고, 불평등은 정당화된다.
충성을 바쳐도 피할 수 없는 ‘배신’
저자는 구직 산업이 요구하는 대로 이력서를 늘리고, 화장을 바꾸고, 태도까지 고분고분하게 고친다. 면접관의 말을 ‘잘 들은’ 덕분에 ‘취직’도 한다. 그런데 그 일자리라는 게 월마트 판매직만도 못하다. 기본급도 의료보험도 없고, 사무실도 없으며, 일에 꼭 필요한 노트북 컴퓨터조차 주지 않는다.
저자가 보기에 화이트칼라는 두 부류로 구성돼 있다. 일자리가 없는 구직자와 일자리를 갖고는 있으나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일해야 하는 ‘생존자’. 저자가 직접 체험한 구직자는 ‘살아 있는 시체’이자 ‘투명인간’이다. 끊임없이 이력서를 보내고 전화를 해도 기업은 응답하지 않는다. 절대 오지 않을 연인의 전화를 기다리며 전전긍긍하는 처지와 다름 없다. 살아남은 ‘생존자’ 역시 실업자 못잖게 ‘시름시름 죽어간다. 이제 직원은 사람이 아니라 기업의 ‘물건’이다. 수익이 나지 않으면 언제든 내다버릴 수 있다. 실제 그렇게 하는 최고경영자(CEO)는 주주에게 이익을 안겼다며 오히려 더 높은 보수를 받는다. 대부분의 서비스직을 아웃소싱한 50개 미국 기업 CEO의 보수 인상폭은 다른 회사 CEO에 비해 5배나 높았다. 한마디로 기업은 ‘포식자의 세상’이 되었다.
기업 밀림에서 살아남으려고 생존자들은 모든 걸 바친다. 상사의 비위를 맞추고 완전한 ‘충성’을 서약한다. 자기 자신까지 ‘파는’ 것이다. 화이트칼라들은 오늘도 ‘열정’과 ‘에너지’와 ‘헌신’을 강요당하며 기꺼이 24시간을 회사에 바친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충성을 바쳐도 ‘배신’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가장 성격이 좋고, 충성심이 제일 강하고, 가장 복종적인 직원이 감원 1순위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기업에서 밀려난 화이트칼라는 아래로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일자리를 잃었다가 다시 취직한 사람들의 수입은 전 직장에 다닐 때보다 평균 17% 줄어든다. 구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실직과 구직이 반복될수록 수입은 물론 자신감까지 급격히 줄어든다. ‘유능하고 주도적’이던 사람조차 ‘쓰레기’가 될 만큼.
‘기업의 노예’로 시들어가거나, 빈곤의 공포에 떠는 워킹푸어로 전락하거나. 이것이 바로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소박한 희망을 품고 ‘만사를 올바로’ 해온 세계의 중산층이 처한 오늘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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