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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태 변호사의 론스타 연속기고(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21205164400
"론스타 소송, 패소하면 전 국민이 5만원인데…" (프레시안, 김익태 변호사, 2012-12-06 오전 10:13:42)
[연속 기고 - 론스타 ①] ISD와 사법주권 문제, 현실로 나타나다
미국의 자동차 번호판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특징이 있다. 주마다 번호판의 디자인과 문구가 다르다. 내가 살던 일리노이 주는 링컨의 고향인 이유로 "링컨의 땅(Land of Lincoln)"이다. 미연방에서 두 번째로 큰 주인 텍사스 주는 "론스타의 주(Lone Star State)"이다. 1845년에 26번째 주로 미연방에 가입하기 이전까지 별개의 독립 국가였던 텍사스 공화국의 국기에 담겨 있던 별 모양의 상징이었던 론스타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론스타는 텍사스 주의 상징이다.
이 텍사스 주는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고향이며 최근 대한민국을 상대로 투자자-국가 소송(ISD)을 제기한 '먹튀' 자본 론스타의 고향이기도 하다. 외환위기를 틈타 헐값에 외환은행을 인수하고 꽤 많이 챙겨서 작년 말에 떠난 걸로 알고 있는데, 2조 4000억 원 정도를 덜 챙겼다며 대한민국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소장을 보자는데 정부는 안 보여준다. 궁금하면 500원 내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알 것 없단다. 2조 4000억 원은 소송에서 패소하면 전 국민이 5만 원씩 부담해야 하는 액수인데도 여전히 비공개이다. 그렇다면 지난번 중재의향서의 경우처럼 론스타가 먼저 보여주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인가? 결국, 중재의향서에 기초하여 판단을 해보면 내용은 이렇다.
한국과 벨기에가 1976년에 맺은 투자협정에 의하면 벨기에 회사는 한국에서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으로 인한 수익금에 대해서 세금을 물렸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벨기에에 있는 론스타 회사가 페이퍼 컴퍼니라서 한국에 있는 론스타 코리아를 국내 고정사업장으로 판단하고 이에 과세를 했다고 한다. 한데, 문제는 한-벨기에 투자협정에 의하면 페이퍼 컴퍼니는 협정 적용에서 제외된다는 내용이 없다. 페이퍼 컴퍼니에 대한 협정 적용 배제 조항을 두었어야 하는데 협정 체결 시 이를 간과하였고 2006년 개정 시에도 역시 간과하였다. 따라서 한국 정부의 과세는 협정 위반이라는 것이다. 법리적으로 근거가 있는 주장이다.
두 번째의 주장은 이른바 론스타가 산업자본인지 금융자본인지에 대한 판단의 문제에서 발생한다. 금융당국이 론스타의 자본 성격에 대해서 제때에 적절하게 판단하지 못함으로써 매각이 지연되었고 이로 인해서 론스타는 더 비싼 값에 외환은행을 팔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최초에 론스타가 한국에 들어올 때는 금융자본이라고 인정해 주고서는 왜 툭하면 자본의 성격에 대해 시비를 걸고 론스타 코리아의 대표를 구속하는 등 괴롭히면서 매각을 지연시켰냐는 말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론스타는 제때에 외환은행을 팔지 못하여 더 많은 매각 이윤을 얻지 못하였고 이는 간접적으로 재산을 빼앗아 가는 행위와 마찬가지이므로 간접수용이라는 주장이다.
법적으로 볼 때 이 주장 또한 설득력이 없지 않다. 한국 정부의 일관성 없는 비밀행정으로 발생한 문제의 성격이 크다. 결국, 금융당국의 무책임하고 비밀스러운 행정으로 인하여 발생한 사건인데, 이로 인한 책임은 고스란히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대한민국이 ISD 소송에서 패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누군가는 득을 보았을 텐데 책임은 국민이 져야 하는 상황이다.
ICSID와 한국 사법부 판결이 충돌한다면?
패소하면 억울하더라도 2조 4000억 원만 물어주면 끝인가? 아니다. 사법주권의 문제가 발생한다. 2012년 1월 금융당국은 최종적으로 론스타가 금융자본이라고 판정을 해줌으로써 스스로 면죄부를 발행했다. 이에 국회의원과 외환은행 소액주주들은 2012년 7월 헌법재판소에 금융당국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역시 2012년 7월에, 참여연대는 서울중앙지법에 론스타가 산업자본임에도 부당한 이익을 챙겨간 것에 대해 환수 소송을 제기했다. 두 사건 모두 론스타가 산업자본인지에 대한 판단이 핵심 쟁점이다.
그런데, 론스타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제투자중재재판소(ICSID)에 제소한 이번 ISD 사건의 내용 또한 론스타의 자본 성격에 대한 판단이 핵심 쟁점이다. 같은 내용에 대해서 국제중재재판소와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비슷한 시기에 판단을 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국제투자중재재판소의 심사는 사실관계와 근거법에 대한 해석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개별 국가의 법적 해석의 영역과 중복된다.
론스타 사건의 경우, 우리의 은행법 하에서 론스타 자본의 성격에 대한 규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를 국제투자중재재판소가 판단하게 된다. 이 투자중재재판소가 론스타의 손을 들어주면 우리 정부는 ICSID 협약에 의거하여 국내 사법 절차를 통해 배상해 줘야 할 의무가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국내사법 절차는 투자중재재판의 결과를 재차 심사하는 별도의 절차가 아니다. 국내법상의 배상 집행절차일 뿐이다. 3인의 패널이 진행하는 국제투자중재재판은 항소도 불가능하며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판 무효 신청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동일한 사안을 가지고 심사하는 국제투자중재재판소와 대한민국의 사법부의 판단이 충돌할 경우에는 어느 쪽의 판단이 우선할 것인가? 즉, 국제투자중재재판소는 론스타의 손을 들어주고 배상명령을 내렸는데 한국의 헌법재판소와 법원은 론스타에 불리한 판단을 내릴 경우, 국제투자중재재판소의 판단은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판단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
한국 사법부의 판단이 무력화될 가능성이 있다. 한미FTA 논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제기된 ISD와 사법주권의 문제가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이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 동일한 근거법을 가지고 국내의 사법부와 3인의 국제투자중재재판소가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릴 때, 국내 사법부의 판단과는 무관하게 중재재판부의 배상 명령을 이행해야 한다. 혹시, 국제투자중재재판소의 무리한 판단에 대해 별도로 국내 사법부가 심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을까? 이 부분에서 사법부의 법리적 고민이 시작된다.
국제투자중재재판소의 보상 명령의 근거는 대한민국이 1966년에 가입한 ICSID 협약이다. 중재기구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을 했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해외투자가 전무하던 사실은 차치하고 보릿고개를 걱정하던 시절에 우리는 ICSID의 회원국이 되었다. 이러한 ICSID 협약은 국제조약으로서 헌법 제6조에 의해 국내법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그런데, 국내법적 성격을 지닌 조약으로 인한 중재재판소의 판단이 헌법적 기준에서 국내법을 심사하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무력화할 수 있는 상황의 발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미국 연방대법원과 메데인 사건
이 점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의 의미 있는 사건 하나가 떠오른다. 2008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메데인 사건(Medellin vs. Texas)이라는 중요한 판결을 내렸다. 1993년, 18세의 멕시코 국적의 소년 메데인이 텍사스에서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소년의 혐의는 입증되었고 소년은 유죄를 선고받고 사형을 언도받았다.
대부분의 사형 확정 판결이 그렇듯이 소년의 변호인은 다양한 절차상의 문제점을 들어 항소하였다. 그중 하나가, 메데인은 멕시코 국적을 가진 멕시코 시민인데 멕시코 대사관에 소년의 체포에 관해 고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69년 체결한 비엔나 협약에 의하면, (미국을 포함한) 협약 가입국은 자국에서 외국인의 체포나 구금 시 지체 없이 자국에 있는 외국 대사관에 그 사실을 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한데, 메데인이 체포되었음에도 그러한 사실이 주미 멕시코 대사관에 고지되지 않아서 텍사스 주가 비엔나 협정을 위반하였다는 것이다. 소년의 주장은 기각되었다.
그런데, 몇 년 후인 2003년 멕시코 정부가 메데인과 그 외에 미국에 수감되어 있는 51명의 자국민에 대한 수감 내용을 고지하지 않음을 들어 UN 산하의 국제재판소(ICJ)에 미국을 제소하였다. 이듬해, ICJ는 멕시코의 손을 들어주고 메데인을 비롯한 다른 멕시코 확정범들에 대한 판결과 형량에 관해 미국 법원이 재고할 것을 명령하였다. 사안이 국제적인 이슈로까지 번지자 당시 부시 미국 대통령은 '미국은 국제재판소가 내린 결정을 따를 의무가 있으니, 사법부는 국제재판소의 판결을 존중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2008년 연방대법원은 국제재판소의 판결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비록 미국이 ICJ 가입국이기는 하지만, 국회에서 ICJ의 효력에 관한 상세한 연방법을 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들었다. 이것은 국제법 학계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이다. 국제조약에 관한 미국 사법부의 지나치게 보수적인 경향성 때문이다. 강대국의 오만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자국의 사법 체제를 보호하려는 측면에서 보면, 현재 우리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국제중재법정에 세울 수 있는 근거가 된 한-벨기에 투자협정은 체결 당시 국회 비준을 거치지 않고 발효되었다. 그런데, 헌법 제60조 1항에 의하면, "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 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 2조 4000억 소송을 가능하게 한 한-벨기에 투자협정은 ISD 소송을 그 내용으로 담고 있음으로 인해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사안에 대해서 어떠한 해석을 내릴 수 있을까? 외국인 투자자가 우리의 사법주권까지 무력화할 수 있는 ISD 소송을 바라보며 이제 우리의 사법적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가 되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21210115126
ISD,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투자금 내놓으라는 격 (프레시안, 김익태 변호사, 2012-12-10 오후 2:18:52)
[연속 기고 - 론스타 ②] ISD, FTA 등장 후 급증하다
약법삼장(約法三章). "살인하면 사형에 처하고 남을 다치게 하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면 죄에 따라 처벌하겠다"는 말이다. 진나라를 멸하고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이 진나라 수도를 점령한 후 수립한 법이념이다. 과연 정말로 법이 세 개만 있었을까마는, 적어도 법의 단순화를 통하여 사회의 개혁과 안정을 이루려 했던 당시의 시대정신이라고 본다. 그에 비해, 복잡한 현대사회라지만 요즘은 법이 너무 많다. 내국법뿐만 아니라 외국과 맺은 협정도 넘쳐난다. 투자협정(BIT)은 무엇이고, 자유무역협정(FTA)은 무엇이며 요즘 뜨거운 이슈인 투자자-국가소송제(ISD)는 도대체 무엇인가?
'돌아온 장고' 론스타가 다시 한 번 대한민국 국민에게 ISD 학습을 강제하는 느낌이다. ISD(Investor-State Dispute)는 말 그대로 투자자가 투자 유치국을 상대로 소송(중재 형식이지만 내용적으로 소송과 동일하기 때문에 이유로 소송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을 제기할 수 있게 만든 법적 제도이다. 개인이 타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이 국제법 하에서 타당한가 하는 논의는 생략한다. 다만, 유럽인권재판소의 경우처럼 개인이 인권 침해를 사유로 국가를 제소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사실이지만, 인권과 투자가 동일한 법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ISD는 1960년대부터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신생국가들이 구 식민지 자본을 국유화하면서 발생한 자본의 위기감이 그 역사적 배경이다. 안전한 식민지에 마음 놓고 투자했는데 어느 날 이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을 하면서 그동안 투자했던 설비와 자본을 모두 국유화해버리니 위기감을 느낀 자본이 미래에 대한 안전장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 보면 식민지 지배에 실패한 점령국이 떠나면서 식민지 국가에 자신들이 그동안 식민 지배를 통하여 착취한 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도리어 그간 투자한 금액에 대하여 보상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일본 점령군이 35년 동안 우리나라를 지배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패배와 함께 본국으로 도망가면서 그동안 식민지 조선에 투자한 금액을 보전해주길 기대하는 경우와 유사하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ISD는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점점 그 면모를 달리하게 되었다. 군사력을 앞세운 식민지 투자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하에서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초국적 성격으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국경 없는 자본은 전 세계를 떠돌며 투자할 만한 곳을 찾아 냄새를 맡는다. 그러다가 만만한 투자 대상을 찾으면 거기에서 최대한 이윤을 창출하고 이내 또 다른 투자 대상을 찾아 떠난다. 한데,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원금을 까먹거나 이윤 창출이 제대로 안 되면 자본이 투자 유치국에 법적 책임을 묻는 방식이다. 국가 간의 전통적 외교 방식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간접수용과 같은 새로운 법적 개념을 통하여 법적으로 해결하게 된 것이다.
ISD 탄생의 역사적 배경
론스타의 경우가 이러한 프레임의 전형적인 예이다. 론스타는 외환위기를 틈타 대한민국에 들어와 헐값에 외환은행을 인수하고 수조 원의 이익을 내고 떠났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추가 이익 발생을 우리 정부가 가로막았다며 ISD를 제기한 것이다. 위의 전형에서 한 가지 예외는, 론스타의 경우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중요한 고비마다 한국을 방문해서 유사(類似) 외교적 작용을 했다는 점이다.
ISD는, 론스타 사건의 근거가 되는 한-벨기에 투자협정에서와 같이, 기존의 양자 간 투자협정(Bilateral Investment Treaty, BIT)에도 포함되어 있는 조항이다. 하지만, FTA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제 기능을 하게 되었다. 2011년 11월 발표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보고서는 BIT-FTA 체결 증가로 2000년 이후 ISD 제소가 급증했다고 분석한다. 자료에서 인용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2011년 세계투자보고서' 도표를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1993년까지 그 존재가 미미하던 ISD 소송이 가시권에 들어온 시점은 1994년이며, 급증하기 시작한 때는 1996년이다. 바로 미국이 캐나다와 멕시코를 상대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한 시점이다.
<그림 1. ISD 연간 발생 건수 및 누적 건수(1987-2010년)>

▲ UNCTAD, "World Investment Report, 2011"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절차(ISD) 관련 투요 분쟁 사례 및 시사점," 2011년 11월 21일, Vol 11, No. 30.에서 재인용. ⓒ대외경제정책연구원
NAFTA 제11조에 포함되어 있는 투자자-국가 제소 조항 때문에 ISD 소송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많은 ISD 소송은 국제투자중재재판소(International Center for Settlement of Investment Disputes, ICSID)로 몰리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 개점한 이후 거의 휴업 상태에 있던 ICSID가 갑자기 바빠진 것이다. 앞서 인용한 보고서에서 밝힌 바와 같이, 국제중재기관으로 ICSID, UNCITRAL, SCC, ICC 등이 있는데, 이 중 1966년 세계은행 산하에 설립된 ICSID가 가장 대표적인 중재 기관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같은 보고서에서 인용한 UNCTAD 자료에 의하면 2010년 말 현재 ISD는 총 390건이며, 이 중 미국 투자자가 제소한 사건은 109건으로서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 하지만, 론스타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ISD 소송의 경우와 같이, 미국 투자자임에도 한-벨기에 투자협정에 의거하여 벨기에 투자자의 자격으로 옷만 갈아입은 소송까지 포함하면, 실제 미국 투자자가 제기한 ISD는 109건을 상회할 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국가 간의 무역기구인 WTO에도 없는 ISD를 미국은 왜 굳이 FTA에서 강조하고 발전시키려 하는가? 답은 미국의 사회구조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미국은 더 전형적인 자본주의 국가이다. 국가의 개입이 최소화되고 모든 것은 시장의 논리에 맡기는 나라다. 하지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드러난 것처럼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길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미국적 자본주의의 특징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가 국민의 기본적인 복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음에도 너무 많은 것을 시장에 맡긴다. 이라크전쟁과 아프간전쟁에서도 드러났듯이 국가 간의 전쟁도 민간 전투 용역업체에 맡긴다.
정부가 자본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온 측면도 있다. 모든 것을 자본의 논리에 맡기고 정부는 자본의 이익을 보호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ISD이다. 미국의 자본은 월가를 중심으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이제는 전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전 세계의 투자자치고 월가 자금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투자자는 드물다.
전통적으로 해외 투자는 국가가 보호해 주었다. 하지만, 국가가 보호하기에는 이미 덩치가 너무 커졌고 국적도 없어졌다. 해외 투자 자본은 스스로 보호막을 형성하였다. 그것이 ISD이다. 국가는 뒤에서 나머지 할 수 있는 안전망을 쳐주기만 할 뿐이다. 사실, 국가로서도 이게 더 수월한 일일 것이다. 전통적으로 정치적 동맹 관계에 있는 다른 국가에 대해 국가의 이름으로 소송한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전통적 우호국인 나토(NATO) 국가들을 제소한다면 이에 따른 정치적 부담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한데, 개인이 따로 국가를 제소한다면 국가로서는 손에 흙을 묻히지 않게 되는 셈이다.
'론스타 건은 한미FTA와 무관' 호도하는 정부
이러한 흐름 속에서 ISD는 발전해 왔고, 론스타가 근거로 삼은 BIT 내의 ISD보다 미국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FTA의 ISD가 더 진화했다. 투자 개념을 확장하고 미국의 판례법을 이식했기 때문이다. 한-벨기에 투자협정에서 규정한 투자의 정의와 한미FTA에서 규정한 투자의 정의를 비교해 보면 알 일이고, 간접투자의 정의에 관해 한미FTA에 그대로 베껴 쓴 미국연방대법원의 판례를 보면 알 일이다. 이렇듯, 진화한 ISD를 미국은 NAFTA를 통해 한미FTA를 위시한 여타 국가와 맺은 FTA에 집어넣었다.
결과는 지금까지 미국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자본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확대해나갔고 견디다 못한 국가들은 ICSID 협약에서 탈퇴하기에 이르렀다. 2007년 볼리비아를 시작으로, 2010년 에콰도르 그리고 2012년에 베네수엘라까지 ICSID에서 탈퇴하였다. 너무 심하게 미국의 예상이 들어맞았다. 하지만 이러한 투자 자본을 미국이 통제할 의사도, 힘도 없는 듯하다. 이제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혼자서 뛰어다닌다. 그런 와중에 우리는 미국과 FTA를 맺었다.
정부는 론스타 사건이 한미FTA와 무관한 한-벨기에 BIT에 근거했기 때문에 한미FTA의 ISD는 마치 안전한 것처럼 호도하는 경향이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BIT의 ISD는 한미FTA의 ISD에 비하면 고전적이다. 좀 오래된 영화지만 <터미네이터>의 1편과 2편에 등장하는 터미네이터의 차이 정도라고 말하고 싶다. 더 심각한 사실은, 한미FTA가 체결된 이후인 2012년에 헌법재판소와 법원에 제소된 론스타 사건의 판결이 자신들에게 불리할 경우, 론스타가 한미FTA를 근거로 ICSID에 제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인데 마냥 걱정하지 말라고만 말하는 정부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처사인가? 그동안 당연시되어왔던 비밀주의 정부 행정은 이제 ISD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정보에 있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21213173901
전두환 정부는 미국 무기 회사에 얼마를 건넸을까? (프레시안, 김익태 변호사, 2012-12-14 오후 2:01:07)
[연속 기고 ? 론스타 ③] 28년 전, 콜트사에 판정패한 대한민국 정부
지난 기고의 마지막은 "이제 투자자-국가 소송(ISD)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정보에 있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과거의 얘기 하나 해보자. 론스타 사건 이전에 대한민국은 한 번도 외국인 투자자에게 ISD 소송을 당한 적이 없다는 주장이 그동안 객관적인 사실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자연스레 론스타가 첫 번째 ISD 소송이라고 말한다. 한미FTA로 전국이 떠들썩하던 2011년 11월 21일에 발간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절차(ISD) 관련 주요 분쟁 사례 및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봐도 "우리나라가 체결, 발효 중인 85개 BIT 중 81개 협정에 ISD 조항이 포함되어 있으며, 현재까지 발효된 7개 FTA 중 6개 FTA 협정에 ISD 제도 관련 조항이 포함되어 있으나 아직까지 우리나라 정부가 ISD의 분쟁 당사국으로 제소되거나, 우리 기업이 투자 유치국 정부를 제소한 사례는 없음"이라고 밝혔다.
사실이 아니다. 1984년, 대한민국은 국제투자중재재판소(ICSID) 설립 이후 제18번째 ISD 피소국으로 등재됐다. 아시아 국가로는 인도네시아를 이어 두 번째였다. 소송을 제기한 투자자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미국 투자자였다. 미국의 대표적인 총기 회사인 콜트(Colt)사다. 사건명은 "Colt Industries Operating Corporation, Firearms Division v.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ICSID Case No.ARB/84/2)"이다.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ICSID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이제까지 종결된 사건들과 현재 계류 중인 사건들이 쭉 나열되어 있다. Korea라는 단어를 ICSID 사건 검색창에 쳐보면 이 사건이 뜬다. 곧 론스타 사건도 뜰 것이다.
콜트사 사건은 ISD가 아니다? 납득하기 어려운 외교부 주장
사건은 합의로 끝났기 때문에 사건의 내용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나마 알려진 내용은 대한민국과 미국의 총기사인 콜트사가 무기 생산에 관한 기술과 라이선스 협약(Technical and licensing agreements for the production of weapon)에 관한 분쟁을 했다는 정도이다. 디테일이 가려져 있으니 궁금증은 커간다. 그래서 2012년 7월 18일 외교통상부에 이 사건에 대한 정보공개를 신청하였다. 소송의 사유는 무엇이었으며, 소송의 전개 그리고 합의금의 실체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물었다. 외교통상부는 자신들이 소관부서가 아님을 들어 법무부로 신청을 이관하였고 이어 법무부는 7월 29일, 신청한 정보가 부재하다는 짤막한 답을 내놓았다.
그런데, 2012년 8월 12일, 이 문제에 대해 한 일간지가 "김익태 미국 변호사가 최근 펴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소송 당하는 대한민국>에 의하면 "대한민국이 투자자-국가 소송을 당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정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그러자 외교통상부는 바로 다음날인 2012년 8월 13일, 대변인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반박 성명을 발표했다.
"기사에서 인용한 미국 콜트사의 중재는 무기 생산 관련 라이선스 계약에 관한 일종의 상사분쟁으로 투자보장협정(BIT)이나 FTA 등에 근거한 ISD가 아님. 통상 국가가 일방 당사자가 되는 상사계약에서도 분쟁 해결을 위해 중재 조항을 삽입하는 경우가 많아 그 외형이 투자자-국가 간 분쟁처럼 보이나 그 본질은 상사분쟁이지 ISD가 아님. 참고로 상기 분쟁 제기 시점에서 우리나라와 미국 간에는 투자보장협정이나 FTA가 체결되지 않은 상태였음."
한 달 전에 정보공개를 청구했을 때는 소관부서가 아니라던 외교통상부가 언론 보도가 나자 즉시 상세하게 사건에 대해 해명했다. 해당 부서가 이 사건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정보 독점이 빚은 해프닝으로 볼 수 있고 좀 더 심각하게 볼 때 정보공개 요청에 대한 행정부의 직무유기이다.
외교통상부의 설명을 단순하게 요약하면, 콜트사 사건은 별게 아니고 ISD와는 무관하다는 말인 것 같다. 그렇다면 진즉에 공개하면 되었을 텐데, 언론 보도가 나가자 부랴부랴 해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나마 외교통상부의 성명에서 밝힌 내용을 최대한 우호적으로 해석해 봐도 여전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ISCID 협약 제1조 제2항에 의하면, ICSID라는 국제투자중재재판소는 "ICSID 조약에 의거하여, 투자자와 국가 간의 투자분쟁, 즉 ISD를 해결하기 위하여 설립된 기구"이다. 원문은 이렇다. "The purpose of the Centre shall be to provide facilities for conciliation and arbitration of investment disputes between Contracting States and nationals of other Contracting States in accordance with the provisions of this Convention."
ICSID의 재판 관할권을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조항이다. 일반적인 무역 분쟁은 WTO에서 담당하며 기타 국제통상에 관한 분쟁 또한 상이한 여러 국제 중재기구에서 담당하고 있다. ICSID는 특별히 투자자가 국가를 상대로 제소하는 투자 분쟁을 관할하기 위하여 만든 국제기구이다. ISD는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투자보호협정(BIT)를 통해서만 제기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BIT나 FTA의 급속한 확대를 통하여 ISD 소송의 수가 증가했다는 것이지, ISD가 BIT나 FTA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 계약 체결 당시 당사자들의 합의에 의해 ICSID를 중재재판소로 지정할 수가 있다. 그리고 ICSID를 중재재판소로 지정할 수 있는 당사자 자격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투자자와 국가 간의 관계일 때만 가능하다.
또한, 외교통상부 성명에서 밝힌 상사분쟁이라는 것은 별종의 특별한 분쟁이 아니다. 일반적인 상사계약에서 발생하는 분쟁일 뿐이다. 상사계약이라 함은 상업적인 계약, 즉 commercial contract이며 상사분쟁은 commercial dispute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분쟁이 중재를 통하여 해결된다면 그것이 바로 상사중재, commercial arbitration이다. 대한상사중재원이 밝힌 상사중재의 당사자 자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일반 상사중재(commercial arbitration)의 경우 중재 절차의 당사자는 해당 계약의 당사자이면 충분하고 달리 특별한 제한이 없으나, ICSID 중재의 경우에는 협약 규정에 따라 '일방당사자는 체약국이거나 또는 그 하부조직(constituent subdivision), 기관(agency)이어야 하고, 상대방은 다른 체약국의 국민이어야' 한다. 따라서 분쟁 당사자가 모두 체약국이거나 또는 모두 투자자인 경우에는 ICSID의 관할이 미치지 않아 중재 신청은 접수가 거부된다."
외교통상부는 차라리 다음과 같이 변명하는 편이 나을 뻔했다. "이 사건은 국방산업의 일부인 무기 제조 사업에 관련된 것으로서 미국 콜트사의 대한민국에 대한 투자적인 성격이라기보다는 기술 이전 내지는 기술 사용에 관한 사업이므로 투자자가 국가를 제소하는 ISD와는 성격이 다른 사건으로 분류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 또한 설득력이 없다. 투자의 본질과 성격에 대한 규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광범위하다. 투자자인 기업의 처지에서 볼 때는 자본이나 설비 투자 이외에도 기술 이전이나 사용 또한 투자로 규정할 수 있으며 이러한 주장은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ICSID 관할 사건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례로 콜트사 사건의 핵심 쟁점인 라이선스(Licence)는 한미FTA 제11장 제28조에서 규정한 투자의 한 범주이다.
'피라미드 사건'을 통해 본 ISD
1984년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 언론은 통제되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정보는 차단되었다. 사안이 국방사업인데 과연 사건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더욱 궁금하다. 이 베일에 싸인 사건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합리적인 추론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한 국가가 국제재판소에서 소송을 당한다면 국격 수호 차원에서라도 끝까지 소송에 임하여 승소하려고 할 것이다.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유사한 사건에 대한 선례를 남기는 차원에서라도 더욱 그럴 일이며 국내의 부정적인 여론을 고려해서도 그렇다. 지금의 론스타 사건에 임하는 정부의 자세를 봐도 그렇다. 한데, 콜트사 사건은 합의로 끝났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1992년에 발생한 유명한 "피라미드 사건"(S. Pac. Properties Ltd. V. Arab Republic of Egypt, 3 ICSID (W. Bank) 45, 46 (1992))이라는 것이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집트의 고대 유적인 피라미드 근처에 리조트를 짓기 위해 이집트 정부에 허가를 요청하였다. 처음엔 별 생각 없이 건축 허가를 내주었던 이집트 정부는 이후 반대 여론에 밀려 허가를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투자자들은 이집트 정부를 상대로 ICSID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양자는 일단 합의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비밀로 진행된 합의의 내용은 은밀하게 제스왈드 살라쿠제(Jeswald Salacuse)라는 외부학자에게 알려졌다. 최초 합의금은 미화 1000만 불이었다. 이집트 수상에게 합의금의 액수가 보고되자, 수상은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와 국가의 위신을 고려하여 소송을 진행하도록 지시하였다. 소송은 진행되었고 1993년에 ICSID는 미화 2760만 불과 소송 비용 500만 불을 원고인 투자자들에게 지급할 것을 명령하였다. 결국, 이집트는 투자자에게 굴욕적으로 판결 액수에 대한 인하를 요청하여 최종적으로 1750만 불을 지급하면서 사건은 막을 내렸다. 최초 합의금보다 750만 불, 한화로 약 80억 원 이상을 더 지급한 것이다. 사건이 불리했음에도 이집트 수상이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와 국가의 대외 이미지 때문에 내린 결정의 대가치고는 너무 비싼 대가였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국내의 부정적인 여론과 국격 상실을 감수하고도 합의를 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합의는 피고가 불리할 경우 한다고 보면 된다. 예외적인 경우는 소 제기 후 전혀 예상치 못하게 피고에게 유리한 증거가 발견될 경우이나, 원고의 처지에서는 모든 것을 주도면밀하게 검토한 후 승소 가능성을 타진하고 소송을 제기한다. 소송에서 패할 경우 본인의 소송비용이나 피고의 소송비용까지 지불해야 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소송에서도 이러한 원칙이 분명히 적용되는데 일국을 상대로 하는 소송에서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위에서 설명한 이집트 피라미드 소송의 경우 1992년 기준으로 원고의 경우 미화 500만 불의 소송비용이 들어갔다. 아무리 돈이 많은 투자자라고 할지라도 패소 시 감당해야 할 본인의 소송비용과 상대방의 소송비용은 한화로 100억이 넘어가는 액수이다. 함부로 할 수 있는 소송이 아니다.
1984년 콜트사 사건 정보, 국민에게 공개해야
다시 1984년 콜트사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ISD 소송으로 돌아가 보자. 합의로 끝났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미국의 콜트사에게 합의금을 지불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졌다는 얘기다. KO패가 아니니 무승부라고 말할 것인가? 물론 KO는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면 판정패다. 합의로 끝난 사건들은 제외한 채, 미국의 ISD 관련 승소율이 높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통상의 관점에서 나온 시각일지 모르나, 법 실무의 관점에서 볼 때는 합의된 사건은 원고 승소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이미 오래전에 ISD 관련 제소를 당하여 패한 적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정보를 감추려는 행위는 정보가 공개되면 유리하지 않은 무엇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ISD에 대해서 많은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감추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감춘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드러난 진실은 국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이제라도 인정하고 그 내용을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은 어떨까? 변호사인 나도 궁금하다. 도대체 5공화국 시절에 미국의 무기 회사와 어떤 분쟁이 있었는지 그리고 이 사건의 합의를 위해 혈세가 얼마나 쓰였는지도 궁금하다. 과거에 국민들 모르게 ISD 소송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렇게 감춰야만 할 대단한 사건은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과거의 사건을 공개하고 분석하여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한다면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 있다.
당장 닥친 론스타의 ISD 소송과 미래의 ISD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기존 소송에 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합의의 내용은 당사자들의 원(願)에 의해서 비밀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국민들의 알 권리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 합의 당사자인 정부만 알고 있는 정보를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신뢰를 회복할 때만 이후에 진행할 추가 FTA에 대한 국민적 지지 또한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21217105626
'제2의 론스타'로 가는 지름길 민영화, 박근혜는… (프레시안, 김익태 변호사, 2012-12-18 오전 8:14:22)
[연속 기고 ? 론스타 ④] 박근혜, ISD 본질 왜곡하고 있다
2011년 중국 칭화대에서 한중FTA를 주제로 논문을 쓰며 중국 법을 연구했다. 일 년 동안 중국에 살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바로 물이다. 온 국민이 물을 사 마신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가난한 도시 노동자부터 벤츠를 타고 다니는 부자까지 모두 그렇다. 나도 당연히 사서 마셨다. 물 한 병 값이 그리 비싼 건 아니었지만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중국에서 가장 기본적인 상수도 시설조차 국민에게 만족스럽게 제공할 수 없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서민 정책의 일환인 값싼 수도세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분석하기도 하지만, 전 국민이 물을 사서 마시는 마당에 성공한 서민 정책이라고도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국민이 세금을 내는 이유는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단지 외침을 막고 도둑만 잡으라고 내는 게 아니다. 국민들이 생활하기에 가장 기초적인 골격을 만들고 유지하라고 세금을 내는 것이다. 돈 있으면 택시 타지만 돈 없어도 버스 타고 지하철 탈 수 있어야 하며, 돈 있어서 에비앙 사서 마셔도 돈 없으면 수돗물을 안심하고 마실 수 있어야 한다. 나도 한국에서는 종종 수돗물을 마신다. 그래도 국가의 공공 서비스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 속에서 국가는 운영된다.
그런데, 합법적인 국가의 공공 정책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바로 외국인 투자자가 제기할 수 있는 투자자-국가소송제(ISD) 때문이다. 론스타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국가의 정당한 조치가 간접수용이라는 이름으로 소송의 도마 위에 오르기 때문이다.
얼마 전 TV 토론에서 박근혜 후보가 "론스타의 ISD는 한미FTA하고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또한 "국제사회 협정에 있어 거의 모든 국가가 ISD를 기본으로 갖고 있다"며 ISD가 표준약관처럼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제도라는 주장을 했다. 앞선 기고에서 밝힌 바와 같이 ISD 소송이 FTA의 등장과 함께 비약적으로 성장한 마당에 이러한 해명은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제2, 제3의 론스타 사건은 한미FTA의 체결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소송 대상은 국가의 정당한 공공 정책이다. 공공 정책에 대한 위험성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으니 새삼 재론하지 않겠다. 다만, 이러한 위험성의 불꽃에 자발적으로 휘발유를 붓는 일이 민영화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는 기존의 ISD 소송을 분석해 보면 알 수 있다.
론스타 ISD는 한미FTA와 무관? 진실이 아니다
최초의 FTA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다. 미국의 민간단체인 퍼블릭 시티즌(Public Citizen, www.citizen.org)이 2012년 1월 미국과 맺은 FTA를 통해서 발생한 ISD 사건을 요약한 자료(Table of Foreign Investor-State Cases and Claims Under NAFTA and other U.S. Trade Deals)를 발표했다. 이 자료에 의하면, NAFTA 유형의 ISD 소송은 총 72건이다. 이 중 15건은 기각으로서 국가의 승소이며, 10건은 투자자 승소 사건이다. 나머지는 소송 미개시, 취하, 병합, 혹은 계류 중인 사건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투자자 승소 10건이 모두 미국인 투자자의 사건이라는 점이다. 미국 투자자는 캐나다를 상대로 4건, 멕시코를 상대로 5건, 그리고 도미니카공화국을 상대로 1건을 각각 승소하였다. 퍼블릭 시티즌이 정리한 모든 소송의 내용을 요약해 소개하고 싶으나, 지면의 한계로 이 중 몇몇 사건들을 중심으로 민영화의 부작용에 대하여 살펴보자.
FTA 사건은 아니지만, 미국인 투자자가 개입된 사건 중 유명한 볼리비아 수돗물 사건이 있다. 볼리비아는 미국과 직접 FTA를 맺지 않았지만, IMF 재정 지원을 받는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실제로 대부분의 공공 서비스, 자원 산업을 외국 기업에 매각하였다. 그중 상수도는 IMF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미국의 다국적기업 벡텔사에 장기 시설운영권을 넘겼다. 수도가 민영화된 후에 수돗물 값이 4배 가까이 상승하자 국민들이 빗물을 받아쓰려 했고, 투자자의 항의에 경찰은 빗물받이 단속까지 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민영화의 부작용이다. 공공산업이 민영화되어 자본의 논리에 따라 운영될 때 국민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대표적 피해 사례이다.
NAFTA와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 사건들을 들여다보면, 공공 산업의 민영화로 인해 발생한 ISD 사건들이 다수 존재한다. 2008년 발생한 탬파 일렉트릭(Tampa Electric Company Guatemala Holdings, LLC) 사건의 경우, 과테말라의 전력 공급 시스템을 사들인 미국 회사가 과테말라 정부의 전기세 인하 명령에 이의를 제기한 소송이다. 전기 사업의 민영화로 빚어진 사건이다.
2007년 사건인 레일로드(Railroad Development Corporation) 사건의 경우, 과테말라의 철도 운영권을 사들인 미국 회사가 당초 약속한 5단계 시스템 재건 중 1단계를 시행한 후 추가 이행을 하지 않으면서 발생했다. 한 과테말라 회사가 운영권을 매도할 것을 요청하였고, 미국 회사가 매도를 거부하자 과테말라 정부는 미국 회사의 행위가 공익을 해친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미국 회사는 미국인 투자자의 자격으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공공 교통의 민영화로 인한 사건이었다.
앞의 두 사건은 현재 계류 중인데, 합의가 된 사건도 있다. 2007년 티시더블유 그룹(TCW Group et. al) 사건의 경우, 도미니카공화국으로부터 국가의 전력 시스템 지분을 사들인 미국 회사가 간접수용 소송을 제기하자 도미니카공화국은 한화 약 270억 원에 합의했다. 소송을 더 진행하는 것보다 싸게 먹힌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공공 교통 민영화, 제2의 론스타 사건 발생시킬 가능성 많다
이들 피소국들이 대부분 상대적 빈국이므로 우리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면 다른 예를 들어보자. 선진국인 캐나다 또한 민영화로 인해 미국인 투자자로부터 ISD 소송을 당했다. 2007년 캐나다 정부는 "국제 교량과 터널에 관한 법(International Bridges and Tunnels Act)"을 제정하였다. 미국과 인접한 국가로서 미국과 캐나다를 연결하는 다리와 터널의 안정성을 확보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이 법은, 교량의 소유권 이전이나 구조 변경 시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과 통행료 부과를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자 2010년, 미국 투자자인 디트로이트 국제 교량 회사(Detroit International Bridge Company)가 캐나다 정부를 제소하였다. 국제 교량인 앰배서더 국제 교량에 대한 회사의 투자자 권리가 침해당했다는 것이다. 국책 사업의 민간 이양 시 발생할 수 있는 소송의 또 다른 예이다.
민영화로 인한 이러한 ISD 소송에 대해 우리도 예외일 수 없다. 2012년 봄에 발생한 서울시 지하철 9호선의 요금 인상 발표가 한 예이다. 당시 서울시는 요금 인상 신고를 허락하지 않았다. 국민들의 여론을 의식한 9호선 운영 회사인 서울시 메트로 9호선은 인상을 보류하는 대신 두 차례에 걸친 요금 인상 신고를 반려한 서울시의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민영화로 인해 지방자치 정부의 요금 정책 안정을 위한 어떠한 규제도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는 현실이 된 것이다. 당시 맥쿼리의 주식 매각 등을 들어 ISD 소송 가능을 일축한 정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ISD 소송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성질의 사안이다. 다만, 서울시 메트로 9호선 측이 국민 여론에 대한 부담과 소송비용에 대한 손익 계산 때문에 ISD 소송 대신 국내 행정소송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공공 교통의 민영화는 특히 한미FTA 체결로 우리에게 더 심각한 문제로 발전하게 되었다. 공공 교통에 대한 투자의 경우, 한미FTA 부속서 11-나에 의하면, ISD 소송 예외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즉 ISD 소송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공공 교통의 민영화가 지금과 같이 진행될 경우, 제2의 론스타 사건은 이 분야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최근 논란이 있었던 인천공항 민영화 논의도 마찬가지이다. 49%의 지분을 매각하고 정부가 51%의 지분을 쥐고 있으면 경영권 행사에는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 49%의 주식 중 일부라도 외국인 투자자에게 매각될 경우, 인천공항의 미래는 외국인 투자자의 손아귀에 놓이게 된다. 비록 소수 지분을 보유한 외국인 투자자라고 하더라도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에 의거하여 51% 대주주인 정부의 정책 변화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영화에 대한 태도에서 MB와 궤를 같이하는 박근혜
MB 정부의 실정과는 일정한 선긋기를 하며 당명까지 바꾸고 대선가도를 달리는 박근혜 후보의 정치공학의 기술은 일정 정도 설득력을 얻은 듯하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박근혜 후보의 민영화에 대한 입장은 CEO 출신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과 그 궤를 같이하는 것 같아 우려가 크다. 자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보수 정당의 정책이니 그 한계는 이미 노정되어 있으나, 다소 무차별적 경향성을 보인다.
청주공항을 민영화하겠다고 하며, 논란이 되고 있는 인천공항은 슬그머니 면세점부터 민영화에 착수했다. KTX 민영화에 대해서 입을 다물자 오히려 국토부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 재추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한 영리병원 도입에 찬성하며 의료 민영화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반대하지 않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물 민영화와 관련해서 <시사IN>에 보낸 답변서에 의하면, "상수도 민영화 정책은 현재 검토한 바가 없으나 지방 상수도 경영 효율화를 위해 현재의 민간 위탁 제도 등을 비롯해 다각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면적인 민영화가 국민적인 반대에 부딪히자 MB 정부가 단계적 추진으로 선회한 입장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막히자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재추진하는 MB 정부의 대표적인 옷 갈아입히기 사업 방식이 현재 진행 중인 민영화 사업의 특징이라고 볼 때, 박근혜 후보 역시 그 연장선장에 있다고 보인다.
무엇을 위한 민영화인지는 둘째 치고, 그 폐해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자본은 국적이 없다. 얼마 전 한전이 전기세 인상과 관련하여 대한민국을 상대로 ISD 소송을 검토한 사실이 입증하는 바와 같다. 외국인 투자는 국내 기업의 주식 소유 형태로 이미 상당 부분 국내 진입이 완료되어 있으며, 그 지분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소송 당사자의 적격성을 인정받는다. 혹세무민(惑世誣民)하여 집권해도 그 기간은 유한하다. 하지만, 실정(失政)의 책임은 무한하며 그 책임은 결국 국민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21230194832
투자자국가소송, 이제 골목을 노린다 (프레시안, 김익태 변호사, 2012-12-31 오후 1:35:22)
[연속 기고 - 론스타 ⑤] 지방자치단체와 ISD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말이 있다. 오랑캐를 이용하여 오랑캐를 친다는 중국의 전술이다. 대통령 선거전이 한참 뜨거웠던 2012년 11월 론스타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제투자중재재판소(ICSID)에 투자자-국가 소송(ISD)을 제기했을 때 떠오른 말이었다. 어쩌면, 론스타라는 오랑캐를 이용해서 ISD라는 오랑캐를 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가 생겼다. 대한민국은 ISD로부터 안전하다고 거듭 강조하던 근거 없는 낙관론이 무너지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주류 정치권 어느 진영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ISD 문제에 대해 대선 후보들의 진일보한 입장을 기대했다. 하지만, 이슈는 부각되지 않았고 국민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왜일까? 생각을 해봤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전히 피부로 다가오는 이슈가 아니었기 때문일 성싶다.
그렇다면 좀 더 피부로 다가오는 사안들을 얘기해 보자. 바로 지방자치단체의 문제이다. ISD 문제는 외환은행 매각으로 발생한 론스타 소송과 같이 중앙정부와 관련된 거대한 소송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저 멀리 경남 남해군에 화력발전소가 지어졌다면, 경북 영주의 수돗물 민영화가 현실화되었다면, 그리고 동네의 코스트코 주말 휴무를 서울시가 계속 강제한다면 발생할 수 있는 생활 속의 이슈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지방자치단체가 있다.
지자체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나름의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고 그것이 순기능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자체의 순기능이 ISD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2011년 미국의 메사전기회사(Mesa Power Group)가 지방정부의 조치에 이의를 제기하며 캐나다를 상대로 제소한 ISD 사건이 있다. 에너지 재생산 프로그램 운영 시 일정량은 지역 생산할 것을 지자체가 강제하자, 해당 기업이 '이는 외국투자자에 대한 차별'이라며 반발하면서 발생한 사건이다. 메사전기회사는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8000억 원을 요구하며 소송을 걸었다. 사건은 아직 계류 중이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우리 지자체에도 유사한 조치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1년 고양시는 시가 발주하는 공사 계약에 대하여 50% 고양시민을 고용할 것을 의무화했다. 그런데 이러한 시의 조치가 법적 분쟁의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 먼저 국내의 사법 구제 절차에만 한정해 보자. 고양시민들로 구성된 하도급 업체와 관계가 좋은 A사가 있고, 이와 대조적으로 작업 인력의 대부분을 서울시민으로 충당하는 B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B사는 고양시의 이러한 정책에 불만을 품고 행정소송이나 헌법소원을 할 수 있다. 판결 내용에 상관없이 사건은 국내에서 종결된다. 하지만, B사가 외국인 건설업자일 경우, 혹은 외국인 투자자가 B사의 주식을 일정 지분 소유하고 있을 경우를 상정해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 외국인 투자자는 곧바로 ICSID로 직행할 것이다. 멀게만 느껴지던 ISD가 이제는 골목으로 들어오는 상황이다.
지자체는 ISD로부터 안전? 정부의 이상한 논리
그런데, 이 문제에 관해서 정부는 이상한 논리를 펼치며 '지방자치단체는 ISD 소송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2012년 6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행된 "한미FTA 주요 내용"을 보면, "ISD 대상으로서 협정상 의무 위반 외에 투자 계약 및 투자 인가 위반 사항을 포함(제11.16조)"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투자 계약은 중앙정부와의 계약에 한정하고 지방정부 및 국영기업체는 제외"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미FTA 주요 내용", 96페이지).
이러한 입장은 언론을 통해서도 이미 확인된 바이다. 외교통상부는 서울 지하철 9호선 요금 인상을 둘러싼 서울시와 '메트로 9호선' 간 갈등이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의 투자자·국가소송제(ISD)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일부의 주장과 관련해 "지방자치단체-외국인 간 계약은 ISD 제소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라고 반박했다. ("지자체 계약은 국가소송 성립 안 돼" 외교부, 일부 주장 반박, <동아일보> 2012년 4월 14일)
이러한 주장은, 일견 지방자치단체는 ISD 소송에 대해 면책권이 있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한미FTA 제11장 제1절 제3조(제11.1.3조)를 보면, 투자분쟁을 야기할 수 있는 투자유치국의 조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11.1.3. 이 장의 목적상, 당사국이 채택하거나 유지하는 조치라 함은 다음을 말한다.
가. 중앙 지역 또는 지방 정부와 당국이 채택하거나 유지하는 조치, 그리고
나. 중앙지역 또는 지방 정부나 당국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여 비정부 기관이 채택하거나 유지하는 조치"
이 조항의 의미에 대해서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ISD 소송의 당사자 자격은 당사국인 투자 유치국이다. 즉, 중앙정부를 의미한다. 지방자치단체는 당사자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위 조항에서 밝힌 바와 같이 당사국이 채택하거나 유지하는 조치의 내용은 광범위 하다. 지방정부나 당국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비정부 기관이 채택하거나 유지하는 조치까지 포함하고 있다. 소송의 당사자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소송의 원인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미국의 경우에도, 주정부의 조치에 대해 외국인 투자자가 ISD 소송을 하면 주정부가 아니라 연방정부가 소송의 당사자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일 뿐이다.
이와 관련해 법무부 관계자도 "ISD의 피소 당사자는 중앙정부로 지자체가 될 수 없으며 그 책임 또한 중앙정부가 진다"고 설명했다. 최근 서울시가 ISD 영향평가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자, 정부가 이에 대해 반박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정부는 이 자리에서 서울시의 의견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대부분이 사실관계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박원순 시장이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에 대해 "미국 기업이 지방자치단체를 ISD 제소할 가능성이 급격히 늘 것"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법무부 법무실장은 "ISD의 피소 당사자는 중앙정부로 지자체가 될 수 없으며 그 책임 또한 중앙정부가 진다"고 설명했다." ("지자체엔 ISD 소송 못 건다", <중앙일보> 2011년 11월 9일)
지자체의 조치, ISD 사유 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미성년자의 과실에 대해서 부모가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민법의 원리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미성년자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소송의 원인 제공자는 되는 경우이다. 지자체가 취하는 모종의 조치가 ISD 소송의 사유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다만 당사자는 중앙정부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자체는 소송의 당사자가 아니니 ISD 소송을 신경 쓰지 않고 어떠한 조치도 자유롭게 채택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결국은 지자체의 조치로 인한 ISD 소송의 비용은 고스란히 중앙정부에서 충당할 국민의 세금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설명에 의하면 ISD 소송은 "중앙정부와의 계약에 한정"한다고 하는데, 한미FTA 제11.16조 어디에도 ISD 소송의 근거는 "중앙정부와에 계약에 한정"한다는 문구는 없다.
현재, 지방자치단체는 앞 다투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려 하고 있다. 코트라 외국인투자통계시스템의 발표에 의하면, 서울시의 경우만 하더라도 2007년 1842건, 2008년 1721건을 비롯하여 해마다 약 1300여 건의 외국인 직접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적극적인 투자 유치를 위하여 인센티브까지 제공하고 있다. 서울시 외국인투자 지원조례 제15조, 제16조에 의거하여, 외국인투자비율 30% 이상 외국인투자기업 중 고용인원 10명을 초과하는 기업에 대해 1인당 월 100만 원씩 최대 6개월분을 기업당 2억 원 한도 내에서 지원한다. 또한, 외국인 투자기업이 R&D센터를 유치할 시, 외국인투자촉진법 제14조의 2, 서울시 외국인투자지원조례 제14조에 의거, 투자금액의 일정 비율을 현금 지원한다. 국비 40%, 시비 60%의 비율이다.
인센티브는 비단 이러한 서울시의 경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외국인 투자 유치 지역인 인천광역시나 경기도의 경우, 부지 제공이나 세금 감면은 기본 옵션이며, 서울시와 같이 현금 지급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인센티브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외국에도 존재한다. 문제는 이러한 인센티브 제공이 지자체의 사정에 의해 어느 날 중단되거나, 혹은 형평의 문제에 의해 변경되는 경우다. 수십억 원에 이르는 혜택을 외국인 투자자에게 제공하면서도 이제는 되려 ISD 소송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인센티브 제공에 대한 애초의 약속을 지키면 될 것 아니냐면 할 말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환경이나 교통과 같은 공공정책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조치에 대해서도 ISD 소송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수도권과는 다르게 지방에 유치된 외국인 투자의 경우 화학제조와 같이 환경에 예민한 산업들이 다수 존재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친환경적인 조례를 제정했다고 가정해 보자. 외국인투자회사는 투자 환경의 변화로 인해 투자에 손실을 입었다며 간접수용을 들어 ISD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 멕시코 지자체의 환경조치에 이의를 제기하여 180억 원을 배상받은 미국 회사 메타클레드를 생각해 보면 쉽게 그릴 수 있는 상황이다.
또한, 18대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경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의 공약을 보면서 '교통정책과 관련한 ISD 소송이 현실화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모든 후보자가 민자로 건설된 거가대교와 마창대교의 반값 통행료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2007년 캐나다 정부가 제정한 "국제 교량과 터널에 관한 법"에 의해 통행료가 규제 대상이 되자, 미국 투자자인 디트로이트 국제 교량 회사가 캐나다 정부를 제소한 사건이 떠올랐다. 외국인 투자가 섞여 있을 것이 거의 당연시되는 민자 교량에 대해 통행료를 반값으로 내리겠다는 공약을 발표하기 전에 후보자들이 자본 구성 비율에 대한 분석이라도 해보았는지 궁금하다.
이러한 모든 사항이 지자체가 외국인 투자와 관련하여 고려해야 할 문제이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적 자원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에 대한 대비는 중앙정부가 일차적으로 주도해야 한다. 지방정부와 법적 네트워크를 정비하는 것이 시급하다. 아울러 지자체의 조치로 인한 ISD 소송 시 재정 부담 기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ISD 소송의 당사자는 대한민국이지만, 지자체의 행정조치나 조례에 근거한 소송인 경우 지자체의 법적 책임에 대한 부분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연재가 일주일 정도 지연되었다. 대선 결과에 대한 국민적인 반응이 극대화되던 시점에 ISD 관련 연재가 눈에 들어올까 싶어서였다. 그 와중에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다. 남자들끼리 게임을 해서 완장을 차고 제한된 시간 동안 리더 역할을 하는 내용이었다. 독재자부터 무개념 리더까지 다양한 리더십이 교차하는 동안, 두세 명은 여전히 비슷한 처지에서 비슷한 노역(?)을 하면서 푸념을 늘어놓는다. "리더가 바뀌어도 우리의 삶은 별반 달라지는 게 없다"고 말한다. 이 땅의 민초들을 암시하는 대사이지만, 동시에 내게는 ISD 이슈를 연상시키는 지점이었다. 오십보백보 차이로, 정치권의 어느 진영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 이슈는 그래서 계속 제기되어야 하며, 연재는 계속되어야 할 것 같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30107132006
국제중재재판은 공정하다? 천만의 말씀 (프레시안, 김익태 변호사, 2013-01-07 오후 2:20:05)
[연속 기고 - 론스타 ⑥] 일관성도, 투명성도 결여된 ICSID
오래전, 미국에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형사법원에 취직하여 우리의 국선 전담 변호사와 비슷한 Public Defender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첫 번째 사건으로 폭력 사건을 배당받았다. 단순범죄 사건이려니 싶어 긴장을 풀고 검찰의 기소장을 들여다보고는 깜짝 놀랐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 무려 다섯 가지 다른 형사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었다. 살인기도, 가중폭력, 단순폭력, 폭력 모의, 심지어는 풍기문란까지 들어가 있었다. 이게 뭔가 싶어 선배 변호사에게 물었더니 신경 쓸 것 없단다. 실제 재판에 들어가면 입증 책임은 검찰에 있기 때문에 입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일단 걸 수 있는 모든 혐의를 걸어놓고 시작한다는 것이다. 시장 좌판에서 물건 파는 만물상도 아닌데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츰 적응해 갔다. 론스타가 최근 대한민국 법원을 종횡무진하며 소송의 달인으로 등극하는 과정을 보면서, 국민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울까를 생각했을 때 떠오른 기억이었다.
론스타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투자자-국가 소송(ISD)를 제기하자, 국민 여론은 국제투자중재재판소(ICSID)로 향한 이 국제중재재판에만 집중하는 듯하다. 하지만, 드물게 알려진 바처럼, 론스타는 ISD뿐만 아니라 국내 법원과 헌법재판소에 유사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외환은행 주식매각 시 원천징수한 3915억 원 취소를 위한 행정소송이 있다. 현재 ICSID에 제소한 내용 중 일부와 동일한 조세 관련 사안이다. ICSID에서 금지하는 중복제소의 의혹이 드는 부분이다. 동시에, 론스타는 동일한 사안으로 국내 법원에서 피소하기도 했다. 연속 기고 제1회에서 밝힌, 국회의원 김기준과 외환은행 소액주주들이 헌법재판소에 청구한 헌법소원과, 참여연대가 론스타를 상대로 법원에 제기한 부당 이익 환수 소송이 그것이다.
대한민국 법정에서 론스타는 이미 재미를 보았다. 론스타는 2004년 스타타워 매각 시 세무서가 부과한 1000억 원의 양도소득세와 16억 원의 법인세에 대해서도 지난 2007년 이래 끈질기게 소송을 제기한 결과, 대법원에서 2012년 1월 1000억 원 양도소득세에 대해서는 취소 판결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인세 16억 원에 대해서는 기어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밖에도 더 있다. 조금 다른 사안이기는 하지만, 부산 화물터미널 부지 개발 사업에서 생긴 손실에 대해 예금보험공사와 얼마 전까지 300억 원대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대단한 집념이다. 한 푼도 손해 보지 않겠다는 자세에 경의를 표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국제중재재판을 신청했으면 그만이지, 왜 동일하거나 유사한 사안에 대해 대한민국 법원에 기대는 것일까? 답은 서두에서 밝힌 검찰의 기소 유형과 비슷하다. 할 수 있는 모든 법률적 대응을 다 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의문이 생긴다. 이렇듯 대한민국의 사법구제절차를 이용할 테면, 도대체 ICSID에서 벌이는 ISD 중재재판은 왜 필요한 것일까? 대한민국 법원이 론스타에 편파적인 판정을 하기 때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스타타워 매각 시 징수한 1000억 원의 양도소득세에 대해서 대법원은 이미 론스타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법원에 대한 일정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 소송을 벌이는 것일 텐데, 그렇다면 ISD는 애초부터 대한민국에서는 불필요한 제도인 셈이다.
국제투자법 전문가인 제스왈드 살라쿠제(Jeswald Salacuse) 교수가 "선진국 간의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이라는 논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호주-미국 FTA에서 드러난 것처럼 일정한 수준의 법치가 이루어진 국가 간에는 국내 법원의 구제절차로 국제투자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지 않은가? 이명박 대통령이 그토록 거듭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이 아니며 법치주의가 서지 않은 나라이기 때문에 ISD가 필요하다면 할 말 없다. 하지만, 론스타의 마구잡이 국내 소송을 보면서 ISD의 필요성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론스타의 전 방위 소송이 가능한 이유

론스타의 이러한 전 방위적 소송 전략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국제중재재판의 사각지대(loophole) 때문이다. 중복제소에 대한 판단의 복잡성과 ICSID의 적극적인 재판관할권 확보 때문에 이길 때까지 가볼 수 있는 상황이 형성되는 것이다.
ICSID 협약 제26조를 보면 중복제소는 금지되어 있다. 이 점은 이어지는 협약 해설집(Report of Executive Director), 제32조에도 명시적으로 강조되어 있다. 그런데, 앞에서 소개한 3915억 원 양도세 취소를 위해 론스타가 제기한 국내 행정소송의 당사자는 ISD 소송 당사자와 동일한 LSF-KEB 홀딩스 SCA이다. 차이는 ISD 소송의 당사자가 추가 5개 회사를 포함하여 총 6개의 회사로 이루어졌다는 점뿐이다. 근거가 되는 법률 또한 '은행법', '증권거래법', '조세법' 등으로서 동일하다. 결과적으로 똑같은 소송이 ICSID와 국내 법원에 제기되어 사법권의 충돌로까지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이 사안은 중복제소로 판단함이 마땅하고 둘 중 하나는 취하되거나 각하되어야 한다.
하지만,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ICSID에서 두 사건의 당사자가 다름을 들어서, 혹은 사안의 경미한 차이를 들어 동일한 사건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ICSID에서 중복제소가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연속 기고 제1회에서 다룬 대한민국 사법주권의 무력화가 현실이 되며, 동일한 사안을 가지고 이길 때까지 재판을 할 수 있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소송에 임하는 대한민국의 첫 번째 전략은 중복제소에 대한 문제제기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만일 ICSID가 중복제소라는 판단을 내린다고 가정해 보자. 어느 소송이 각하되어야 할까? ICSID에 제기한 론스타의 ISD 소송이 각하되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이미 국내 법원에서 동일한 사건에 대한 심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ICSID는 자신의 재판관할권에 대해서 상당히 적극적이다. 다소 공격적이기까지 하다.
실례로, 국제검증기관인 스위스 SGS가 파키스탄을 상대로 ICSID에 제소한 ISD 사건을 보면 드러난다. SGS는 파키스탄에 수입되는 물품에 대한 사전 검역과 관세 품목 지정에 관한 심사를 제공하는 내용으로 1994년에 파키스탄 정부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계약의 말미에는 분쟁이 발생할 시 오직 파키스탄 국내 중재재판만을 이용할 것을 명시하였다. 1996년 분쟁이 발생했고, 2000년 파키스탄 정부는 국내중재재판소에 SGS를 제소하였다. 이에 2001년 SGS는 ICSID에 파키스탄을 제소하였다. 양 당사자가 1996년 체결한 계약서에 의하면 분쟁 조정은 파키스탄 국내 중재재판소로 국한함을 들어 파키스탄 정부는 자국의 대법원에 SGS의 ICSID 제소를 중지할 것을 요청하였고 대법원은 파키스탄 정부의 주장을 인용하였다. 한데, 동시에 SGS는 파키스탄 중재재판을 중지할 것을 ICSID에 요청하였고, ICSID는 SGS의 주장을 인용하였다. 파키스탄 사법부와 ICSID가 진검승부를 벌인 것이다.
결과는 ICSID의 승리였다. 분명히, 계약서에는 분쟁 조정을 파키스탄 국내 중재재판으로 국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은 ICSID에서 진행되었고 결국 사건은 2004년 합의로 종결되었다. 파키스탄이 돈을 물어주었다는 얘기다. 이게 다가 아니다. SGS는 유사한 사안으로, 2002년 필리핀에 대해서도 ICSID에 제소하였고 2008년 합의를 이끌어냈다. 두 사건의 사안은 계약 분쟁이었고, 재판관할권은 국내 법원으로 한정했음에도 투자사건으로 해석되어 ICSID로 향했다는 지점에서 당혹스럽다. 개인적으로는, 1984년 콜트사가 대한민국을 ISD로 제소하여 ICSID에서 합의로 끝난 사건에도 이와 유사한 법리가 적용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참고로, 우리나라도 중국 농산물 검역에 관한 서비스를 SGS에 의뢰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러한 ICSID의 재판관할권에 대한 적극적인 유권해석은 론스타 사건이 결국 ICSID에서 해결될 수밖에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3인으로 구성된 ICSID 중재재판부는 왜 이렇게 재판관할권에 대해서 적극적일까? 그때그때 다른 구성원들로 이루어지는 재판부가 자신들의 부와 명성에 집착한 사욕의 발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국제 투자 보호에 대한 중재재판부의 경향성일 성싶다. 어떤 점에서 보면, ICSID의 자기 존재감에 대한 적극적인 발현 의지로도 볼 수 있다. 우리 국민들에게는 ISD만큼 생소한 이 국제투자중재재판소(ICSID)는 그렇다면 어떤 기구인가?
ICSID가 공정? 일관성 없고 오판 위험 높아
1944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도 전에 전후 세계 경제구도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44개 국가, 700여 명의 대표들이 미국 뉴햄프셔 주의 브레튼우즈라는 작은 휴양도시에 모였다. 그리고 IMF와 세계은행을 만들었다. 전쟁의 일등공신 미국과 여타의 승전국들이 자기식의 시스템으로 세계 경제를 주도해 나가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20여 년 후인 1966년, 세계은행 산하에 ICSID가 설립되었다. 주지하다시피, 개점 이후 거의 휴업 상태였던 ICSID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점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이후인 1996년이다. 그 후 수많은 투자 사건을 재판하면서, ICSID는 단기간에 성장하였다.
하지만, 단기간의 급속한 성장으로 인한 부작용 또한 존재한다. ICSID 판결 내용의 일관성의 문제나 재판의 공개성 여부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2011년 발표된 OECD 보고서를 인용해 보면, 먼저 ISD를 통한 투자자 국가제소 중재 재판이 일국의 공공정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중재재판이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중재재판을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시인하면서, 그런 점에서 OECD가 노력을 해왔다고 강조한다.
ICSID의 중재재판 절차법에 의하면, ICSID의 판결은 선례에 구속되지 않는다. 이 점은 WTO 중재재판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일견 그때그때 사안에 따라서 마음대로 결정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사안의 심각성을 잘 아는 재판부로서는 근거 없이 무리한 법적 해석을 내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근거가 필요하다. 만약에 비슷한 사건을 다룬 이전의 판례가 있다면 재판부는 이를 인용할 것이다. 한데, ICSID에 사건이 몰린 시점은 최근 10여 년이라서 여전히 판례는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고민을 안고 있는 재판부에게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FTA가 일견 해결책이 되고 있다. 미국의 판례법을 그대로 FTA 조항에 인용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간접수용에 관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가 미국과 맺은 FTA 조문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들어가 있는 경우이다. 분쟁이 생기면 법 조항의 해석이 항상 문제가 되는데, 그럴 때 이 조항을 해석해 놓은 미국의 판례법을 참조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물론, ICSID의 재판부가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를 그대로 베낄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다만, 미국의 판례법에서 그러한 조항에 대한 해석을 참조할 것이다. 그리고 약간 변형해서 자신들의 해석을 내놓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러한 미국의 판례법에 기인한 조약 해석의 경향은 당분간 꾸준히 진행하고 발전할 것이다. 그 길이 ICSID가 그동안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간 ICSID에 쏟아진 가장 많은 비판은 판결의 일관성 문제였다. 매번 재판부가 다르게 구성되는 특성과 근거가 되는 각각의 조약이 상이한 점 때문에 재판부마다 법 해석에 있어서 조금씩은 다른 입장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WTO 중재재판부처럼 항소재판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비판을 ICSID가 모를 리가 없다. ICISD 사무총장 또한 "궁극적으로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 일관성 없는 결정을 내렸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고심할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판례법이 그대로 이식된 FTA의 경우는 이러한 고민에 대한 손쉬운 대답을 중재재판부에 제공할 것이다.
론스타 ISD 소송의 주된 주장은 공정한 대우, 비차별적인 조치, 수용에 대한 보상과 같은 전형적인 투자 분쟁 사건의 내용이며, 미국 주도의 FTA에서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되는 내용들이다. 과연 ICSID 재판부가 기존의 ICSID 판례와 미국의 판례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궁금하다.
하지만, 더 궁금한 게 있다. 이처럼 일관성과 투명성의 결여 그리고 단심으로 인한 오판의 위험을 안고 있는 ICSID 국제중재재판 법정에 대한민국이 서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론스타가 이미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우리의 국내 사법구제 절차가 버젓이 존재하는데, ISD는 표준약관과 같은 것이고 ICSID의 재판은 공정하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은 이에 대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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