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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온 넷우익』(야스다 고이치)/재특회와 일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6032210525&code=940202&s_code=as114
[‘일베 현상’에서 한국 사회를 본다]“일베의 증오 표현, 법적 제재 이전에 시민 힘으로 제어 노력해야” (경향, 곽희양 기자, 2013-06-03 23:04:21)
야스다 고이치 인터뷰
▲ 극우 가면을 쓴 ‘재특회’, 6년 만에 회원 1만3천명
연령 10~70대 사회 축소판
▲ 자신이 겪고 있는 부조리 재일조선인에 책임 전가
‘피해의식’은 일베와 비슷
▲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넷우익 발생한 계기 작용
라이벌서 반발심리 번져

재특회는 발족 당시 회원이 500명이었다. 현재는 1만3000명에 달한다. 6년간 회원수가 26배로 늘어났다. 재특회는 10대 중학생부터 70대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에 분포해 있다. 20~40대가 중심이다. 이들은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모든 부조리를 ‘적(재일 조선인)’의 책임으로 전가한다. 고용 불안, 경제적 어려움, 복지 후퇴, 한류 드라마와 K팝의 융성도 모두 ‘적’의 음모다. 넷우익과 한국의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피해의식’이다. 하지만 재특회 회원들의 대부분은 그 과격한 언동을 제외하면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국가나 민족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것 외에 자기 자신을 주장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거리에서 ‘조선인 죽여’라고 외치지만 혼자 있을 때는 애니메이션이나 동물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재특회의 회원수가 늘어나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재특회를 두려워하는 것은 이들이 일본 사람의 심정을 대변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재특회 회원이 아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재특회의 과격한 행동은 지지할 수 없지만, 그들의 주장은 지지한다’고 말한다. 이게 진정한 공포다. 1만3000명밖에 안되는 재특회 수가 늘어나는 건 무섭지 않다. 이미 커져있는 재특회적인 생각이 일반인에게 언제 나타나느냐가 두려운 것이다.
그 수익의 대부분은 개인 기부금이다. 수백~수천엔씩 입금된다. 진정한 풀뿌리 조직인 것이다. 지금까지 좌익이나 시민단체가 하지 못했던 일을 재특회가 하고 있다. 재특회를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풀뿌리이기 때문이다. 일본인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어서 무섭다. 일본 사회 그 자체이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논의는 매우 중요하다. 더 활발해져야 한다. 법적인 제재 이전에 시민의 힘으로 그들을 무너뜨려야 한다. 적어도 그러한 폭언을 용납하지 않기 위한 시민운동이 활발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9881
넷우익은 이미 거리에 있다 (미디어오늘, 조윤호 기자, 2013.06.04  18:02:38)
[서평] 거리로 나온 넷우익 / 야스다 고이치 저/ 후마니타스 펴냄
일본에 ‘재특회’라는 모임이 있다. 재특회란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이다. 이들은 처음에 인터넷에서만 활동하다 거리로 나왔다. 1만 명이 넘는 조직원을 갖추고 있는 대규모 조직이다.
재특회는 재일조선인들을 적으로 여기며, 일본사회가 재일조선인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 노동단체와 교사단체(일교조) 및 시민단체와 민주당은 재일조선인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내는 좌익세력이다. 재특회는 이들 좌파엘리트에 맞서, 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 언론에 맞서 일본을 구원한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는 재특회를 오랫동안 연구하고 관찰해 <거리로 나온 넷우익>이란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 야스다가 묘사하는 넷우익, 재특회 이야기를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일베’를 떠올리게 된다. 실제로 야스다는 성공회대 강연에서 일베에 대해 “데자뷰 같은 것이 느껴졌다. 재특회가 만들어지기 직전의 일본 인터넷 게시판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재특회를 보면서 일베를 떠올리는 이유는 재특회와 일베 모두 실제로는 한줌도 안 되는 사회적 약자들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재특회는 재일조선인과 그들을 돕는 좌익들이 일본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베도 마찬가지다. 일베 유저들은 그들이 적으로 규정한 몇몇 세력(강성노조, 외국인, 여성, 전라도, 전교조 등)과 그들을 돕는 좌빨 세력이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재특회와 일베는 스스로를 이 기득권에 맞서는 정의로운 세력으로 규정한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특권’이라 명명하고, 적으로 규정한 이들을 혐오한다. 재특회는 재일조선인을 조센진보다 더 멸시적인 말, ‘총코’라고 부른다. 일베 유저들은 여성을 김치녀라 부르고 전라도 사람들을 홍어라 부른다. 이 멸시적인 단어는 단순히 태생적인 조건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재특회는 재특회를 비판하는 야스다에게 “너도 총코지!”라고 소리친다. 일베는 일베를 비판하는 이들을 ‘홍어좌빨’이라 부른다. 멸시적인 단어는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을 통칭하면서 상대의 생각 자체를 멸시하는 기능을 한다.
재특회는 좌익세력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음모론을 이용한다, 재특회는 재일조선인에 대한 사회적 배려의 근거가 되는 일제강점기를 인정하지 않으며 위안부도 기득권 언론이 만들어낸 헛소리라고 생각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재일조선인이 일본 각지에서 약탈과 살육을 벌였다는 ‘조선진주군’ 음모론도 있다. 재특회는 거리 시위 때마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조선진주군 이야기를 퍼트리고 다닌다. 5·18 때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주장한 누군가와 꼭 닮지 않았나?
따라서 재특회와 일베의 싸움은 기득권과의 싸움인 동시에 ‘진실’과의 싸움이다. 재특회와 일베는 자신들의 주장을 ‘팩트’라고 부른다. 나아가 자신들이 인터넷을 통해 계몽됐다고(일베 용어로는 산업화) 주장한다.
재특회가 아닌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을 것이다. 일베 유저가 아닌 이들이 일베의 난동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야스다도 책에서 내내 재특회가 정말 한심하고 멍청한 놈들이며 말도 안 되는 궤변만 일삼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동시에 야스다는 재특회 현상이 무시할 만한 현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재특회 뒤에 더 무서운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책에 등장하는 한 재일조선인은 이렇게 말한다. “재특회는 명쾌하죠. 너무 명쾌해서 공포를 느끼지는 않아요. 제가 무서운 건 재특회를 칭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을 거라고 생각하면 너무 괴로워요” 북한이 일본인을 납치했다는 이유로 조선학교의 무상교육을 반대하는 사람들, 평소엔 착하지만 술을 먹으면 재일조선인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는 사람들. 재특회보다 무서운 건 이들이 아닐까? 실제로 연간 1천만 엔에 다다르는 재특회 운영 자금은 소액의 개인 헌금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재특회는 소수가 아니다.
일베도 마찬가지다. 많은 이들이 일베를 ‘일베충’이라 부르며 비판하지만 외국인과 여성,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를 갖고 살아가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 소수일까? 야스다가 재특회와 일베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내용의 기사 밑에 ‘원숭이한테도 동정 받는 일베충’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여성을 김치녀라 부르고 전라도 사람들을 홍어라 부르는 ‘일베충’과 일본인을 싸잡아 원숭이라고 부르는 사람 간에 과연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우리는 더 이상 재특회와 일베를 무시할 수 없다. 적극적으로 나서 재특회와 일베의 논리에 맞서 싸우고,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지켜내야 한다. 그리고 이 싸움은 우리 사회, 우리 안에 내재한 차별과 멸시의 논리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넷우익은 이미 거리에 있다.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2515440
외톨이들의 빗나간 증오 '재특회' (노컷뉴스, 2013-06-05 11:11 | 데일리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 거리로 나온 넷우익/야스다 고이치/후마니타스
"조선인은 뭐든지 차별이라고 우기면서 일본인에게 양보를 요구한다. 우리는 지금 이런 오물, 쓰레기, 구더기들한테 두려움 없이 소리 높여 항의하는 것이다."-
사쿠라이 마코토(40) 재특회 회장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 줄여서 재특회. 2013년 현재 일본에서 1만 30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는 반한 단체의 이름이다. 이들은 권리만 내세우고 일본에 감사할 줄 모르는 재일 한국인의 존재가 일본의 위기를 불렀다고 주장한다. 재일 한국인만 없다면 모든 사회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사실 일본 극우 청년들의 모임인 재특회는 넷우익(인터넷에서 우익적인 언동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으로 시작됐다. 이들 회원은 "진실에 눈 떴다"는 말을 즐겨 쓰는데, 언론이 가리고 있던 진실의 출처를 발견한 곳이 인터넷이었다고들 말한다.
신간 '거리로 나온 넷우익'은 재특회에 대한 탐사 르포다. 이 책의 지은이가 일 년하고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재특회의 집회 현장을 쫓으면서 관찰한 기록의 결과물인 것이다.
지은이는 일본 사회의 1%도 되지 않을 이들이 힘을 얻게 된 것은 인터넷 때문이라며, 넷우익이라는 자원이 없었다면 재특회도 없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사실 확인이 아니라 야만스러운 이웃 나라를 격렬하게 욕할 수 있는 힘 있는 주장이다. 그것은 일찍이 학생운동 시절 거대 신문을 부르주아 신문이라고 매도 했던 감성과 비슷한 것인지도 모른다. (94쪽)'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보수가 되었는가'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극우 청년들의 절망과 증오의 뿌리를 찾는 데 주력한다. 지은이는 재특회가 참여자들로 하여금 생의 열정과 자신감을 느낄 수 있게 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재특회가 스스로를 '행동하는 보수'라고 부르며 기존 우익과 구분 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지은이는 18세기 영국의 문학가 새뮤얼 존슨의 그 유명한 "애국심은 악당의 마지막 은신처다"라는 말을 통해 그 허상을 끄집어낸다. 사회로부터 거절당한 경험이 있거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도 공감을 얻지도 못한 이들의 무력감. 지은이가 재특회 회원 한 명 한 명의 삶에서 확인한 결과 이곳은 외로운 사람들의 마지막 피난처에 가까웠다.
'재특회 회원들을 취재하면서 솔직히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다들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멋있는 척을 해도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려워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그것만큼은 잘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순간의 축제를 즐기는 것으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들, 그것이 재특회이고 예전의 나였다.(367, 368쪽)'
선명해지는 일본 재특회 위로 우리나라의 극우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가 겹쳐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경제적인 조건이 위태로운데다 이를 조정할 정치 세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공동체에서는 '알기 쉬운 적' '내부의 적'을 찾는 목소리가 커지는 법이다. 희생양이 필요한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비뚤어진 시선이 일베라는 맨얼굴로 드러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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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redian.org/archive/55872
“애국심은 악당의 마지막 은신처” (레디앙 / 2013년 6월 1일, 3:33 PM)
[책소개] 『거리로 나온 넷우익』(야스다 고이치/ 후마니타스)
지금의 차별적·배외적 운동은 현실의 온갖 불만과 불안을 끌어들이는 블랙홀로 기능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 바로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의 회원들을 추적한 논픽션이다. 어찌 보면, 재특회는 태어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낳은 것이다. ?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재특회와 넷우익
“조선인은 뭐든지 차별이라고 우기면서 일본인에게 양보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오물, 쓰레기, 구더기 들한테 두려움 없이 소리 높여 항의하는 겁니다!” ? 사쿠라이 마코토(재특회 회장, 40세)
“저는 그때까지 텔레비전의 정보를 곧이곧대로 믿었어요. 그런데 인터넷 덕분에 그런 정보가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 마쓰모토 슈이치(재특회 카메라맨, 34세)
재특회(在特會).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 2013년 현재 일본에서 1만3천여 명이 활동하고 있는 반한(反韓) 넷우익 단체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이들이 가장 혐오하는 대상은 ‘재일 코리안’이다.
‘권리만 내세우고 일본에 감사할 줄 모르는’ 재일 코리안의 존재가 일본의 위기를 가리키며, 이들만 없어지면 모든 사회문제와 모순이 해결되리라고 보는 것이 재특회의 입장이다. 현실 속 불만을 전가할 ‘알기 쉬운 적’, ‘내부의 적’을 지목한다는 점에서 서구의 네오 나치와 유사한 면이 있다.
넷우익(Net右翼). 2005년경부터 일본에서 처음 쓰이기 시작해, 일반적으로 인터넷에서 우익적인 언동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정의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일본 넷우익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세 가지 속성으로는 한국과 중국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고, 평화헌법 9조 개정이나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에 동조하는 등 국내 이슈에 우익적 성향을 보이며, 온라인상에서 정치·사회문제에 대한 자기 의사를 표명한다는 점 등이 있다(김효진, “기호로서의 혐한과 혐중: 일본 넷우익과 내셔널리즘” 참조).
“진실에 눈을 떴다.” 재특회 회원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이들은 언론이 가리고 있던 진실의 출처를 발견한 곳이 인터넷이었다고 말한다. 이 책의 저자 야스다 고이치가 “일본 사회의 1퍼센트도 되지 않을 배외주의자들이 힘을 얻게 된 것은 인터넷 때문”이며 “넷우익이라는 자원이 없었다면 재특회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측면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행동하는 보수의 탄생
“기존 보수나 우익이 하지 않은 일을 했다는 자부심은 있습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운동을 한 게 아니에요. 다들 자기 돈을 쓰면서 활동하고 있고 성실한 사람들이에요.” ? 나카타니 다쓰이치로(재특회 회원, 회사원, 42세)
이 책의 원제 “인터넷과 애국” 또한 재특회가 탄생하는데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중요하게 기능했음을 보여 준다. 한 번 클릭하는 것만으로 가입할 수 있는 메일(일반) 회원을 모집하고, 자신의 활동을 영상으로 만들어 실시간으로 게시판에 올리거나 온라인을 통해 집회를 조직하는 등 재특회는 일본의 기존 우익과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재특회의 증오 연설이 빠르게 확산되고 영향력을 얻게된 데는 인터넷 매체만의 속성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재특회 현상을 낳은 이유를 알 수는 없다.
저자는 재특회가 참여자들로 하여금 생의 열정과 자신감을 느낄 수 있게 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대부분의 재특회 회원들이 “재일특권이야말로 세상의 부조리를 풀 열쇠”라고 믿으며 이를 박탈시키는 것이야말로 “애국적인 행위”라고 말하는 데서 이들이 “타자에 대한 불필요한 증오”까지 받아들였다는 점은 분명해진다. 이들은 스스로 기존 우익과 구분하며 ‘행동하는 보수’라고 칭한다.
저자가 봤을 때 이 애국심은 허상에 가깝다. 그는 18세기 영국의 문학가 새뮤얼 존슨의 유명한 경구, “애국심은 악당의 마지막 은신처다.”라는 말을 소개하면서, 정작 자신이 재특회 한 명 한 명의 삶에서 확인한 애국심의 의미란 “외로운 사람들의 마지막 피난처”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사회로부터 거절당한 경험이 있거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도 공감을 얻지도 못한 이들의 무력감. 저자는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를 좇는 과정 속에서, 자신을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하고 있다.
탐사 저널리즘의 힘
“어쩐지 학력이 높고, 어쩐지 월급이 많고, 어쩐지 보호받고 있다, 가해자들에 대한 공통적인 이미지죠.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재특회 회원 대부분이 이런 가해자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는 처지라는 사실인지도 모릅니다.” ? 익명(재특회 지방 지부 간부, 40대)
“정부만 해도 일본인을 먼저 구해야죠. 외국인한테만 신경 쓰고, 용납이 안 돼요. 그러니까 짱개들이 늘어나는 겁니다. 놈들한테 점령당해 버린다고요. 일도 점점 짱개들한테 빼앗기고.” ? 도쿠베 기쿠오(재특회 회원, 덤프트럭 운전사, 41세)
이 책은 인터넷상에 한정된 극우 담론을 거리로 옮겨 온 그들은 누구인지, ‘행동하는 보수’가 탄생한 이유와 그 사회적 의미는 무엇인지를 물으며,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해법처럼 여겨지는 사회의 단면을 직시하는 일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이를 위해 저자가 선택한 방법은 우선 그들 속으로 파고들자는 것이었다. 1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재특회의 집회 현장을 쫓아다녔다. 그들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보며 때론 다투기도 하고 때론 사적인 조언을 건넬 만큼 다가서기도 한다.
필자와 관찰 대상의 거리는 체취가 느껴질 정도로 가깝다. 일장기를 펄럭이는 열광적인 집단의 모습을 외면하지 않으며 혐오스러운 욕설에 귀를 막지도 않겠다는 것.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세상을 내놓기에 앞서 있는 그대로 보고 듣는 일을 수행하겠다는 것.
작가가 드러나되 대상에 대한 객관성을 유지하고,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 한 명 한 명의 삶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면서도 핵심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는 서술은 탐사 저널리즘의 정수라고 할 만하다.
저자는 이를 통해 일본 사회에 고용 유연화 정책이 자리 잡으면서 “학교를 졸업하고 평범하게 취직하면, 30대까지는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언젠가는 교외의 작은 전원주택을 살 수 있고, 정년을 맞으면 연금으로 손주들에게 용돈이라도 줄 수 있는 미래가 한정된 계층에만 주어지게 된 현실”과 “계약직이나 하청 등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자재 중 하나로 취급받으면서 빈부 격차와 분열이 생기는 현실”이 만든 맨얼굴을 드러낸다. 어쩌면, 저자의 말대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중 일부가 ‘일본인’이라는 불변의 ‘소속감’에 의지하게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의 ‘재특회’는 무엇인지를 묻기 전에 짚어야 할 것들
“일베를 혐오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을 벌레로 규정하는 순간, 모든 가능성을 닫겠다는 것이다.” ? 이길호(『우리는 디씨』 저자)
“증오의 연쇄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도쿄 신주쿠의 재특회 시위에 반대하는 이들이 내건 팻말
이 책은 일본저널리스트회의상 및 고단샤 논픽션상을 수상하는 등 2012년 4월 출간된 직후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일본 언론은 재특회의 활동을 다루지 않는 것으로 일관해 왔다. 혐한 성격을 띤 인종차별주의 집단의 활동을 소개하는 것 자체가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이 이유였고, 그래서 관련 보도는 한국 언론이 재특회의 활동을 다룬 기사를 간접적으로 소개하는 데 그쳤다.
한편, 한국에서 재특회의 행적은 내셔널리즘에 입각해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방향에서 소개되곤 했다. 실체를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 채 현상을 낳은 심층적인 원인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점은, 극우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를 다룰 때도 반복되는 아쉬움이었다.
역사교육의 부재에서만 그 원인을 찾거나 혐오 집단일 뿐이라고 치부하는 데 그친다면, 우리는 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일말의 여지마저 포기해야 할 것이다. 침묵하지도 과장하거나 왜곡하지도 않아야 한다는 점. 언론이 재특회와 일베를 다루는 모습은 사회를 더 낫게 만드는 데 기여할 공론의 장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인터넷에서는 일찍부터 재일 코리안이 공격 대상이 되었습니다. 역사적 경위나 직접적인 피해 때문에 발생한 증오가 아니라, ‘보호받고 있다’, ‘우대받고 있다.’라는 일방적인 인상이 ‘재일 코리안 비판’을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강제징용이나 종군 위안부 유무는 사후적으로 만든 핑계죠.”- 시부이 데쓰야(프리랜서 작가, 42세 남성)
“재특회 활동을 떠나면, 보통 사람들이에요. 여러 가지 일로 고민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한마디로 저랑 같아요. [재특회라는 존재가 불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혼잣말로] 당연히 불쾌하지. 근데 그 사람들도 즐거운 인생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니잖아? 화가 나기도 하지만, 어딘가 불쌍해 보여. 적어도 행복해 보이지는 않아.” ? 재일 코리안(조선학교 졸업생)
재특회의 인종차별적인 발언은 일본 시민사회는 물론 기존 우익 단체로부터도 지지받지 못한다. 저자 또한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2013년 들어 혐한 시위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행동에 나서고 있다는 점을 소개한다. 재특회 회원들이 재일 코리안에게 자행하고 있는 언행은 두말할 것 없이 부당하다.
그러나 그들이 재일 코리안의 일상생활을 위협하는 가해자인 동시에 삶이 불안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잘 안 풀리는 사람들’, 즉 사회적 약자의 정체성을 갖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는 재특회 현상이 단순히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든 전 사회적으로 확산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사카에서 하시모토 도루가 시장으로 당선된 이유에 대해, 시장 선거를 취재한 기자로부터 “공무원 사이에서는 하시모토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강했지만, 관공서에서 하청을 받아 일하는 저임금 노동자 사이에서는 압도적으로 ‘하시모토 지지’가 많았다.”라는 말을 전해들었다고 소개하면서, ‘보호받는 측’에 대한 ‘잘 안 풀리는 사람들’의 공격이 일반 사회에서도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실제로 후지 텔레비전에서 한류 방송을 방송하는데 반대하는 시위에는 재특회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으로 보이는 이들까지 폭넓게 참여했다. 사회경제적 조건이 위태롭고 이를 조정할 정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공동체는 그 안에서 더 약한 집단을 희생양으로 지목하는 선택을 하곤 했다.
한국 사회의 재특회를 이야기할 때 넷우익 단체인 일베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피는 것 못지않게,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와 조선족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돌아볼 필요성이 있는 것은 그래서다.
“‘재특회란 무엇인가?’라고 내게 묻는 사람들이 많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의 이웃들입니다.” 사람 좋은 아저씨나 착해 보이는 아줌마, 예의 바른 젊은이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작은 증오가 재특회를 만들고 키운다. 거리에서 소리치는 젊은 사람들은 그 위에 고인 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저변에는 복잡하게 뒤엉킨 증오의 지하 수맥이 펼쳐져 있다.”- 야스다 고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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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88204.html
[야! 한국사회] 한·일의 ‘신우익’ (한겨레, 박권일 칼럼니스트, 2013.05.20 19:23)
일본의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이하 재특회)이 “한국인이 보이면 돌을 던지라” 외치고 “바퀴벌레 조선인을 추방하자”고 선동하며 공항에서 한류 연예인의 입국을 막는 등 크게 물의를 일으키며 한국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에 대해 취재하고 싶다며 내게 인터뷰와 조언을 요청한 일본 저널리스트들이 공히 언급하는 단체도 재특회였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삼아 지지를 모으고, 저열한 욕설을 자주 구사하며, 인종주의 담론을 유포한다는 점에서 일본의 재특회와 한국의 일베는 무척 유사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일베만 주목해서는 문제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2010년에 ‘뉴라이트에서 네오라이트로? 한국의 반이주노동 담론 분석’이라는 글에서 인터넷의 반이주노동자 담론을 유형화한 적이 있다.(2012년 <우파의 불만>이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이들 ‘네오라이트’들은 진보좌파세력뿐 아니라 거대 보수정당과 정부기관들에까지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낸다. 자국민을 우선적으로 챙기지 않고 다문화주의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이들에게 한국의 진보나 보수는 한통속이다. 반이주노동자 커뮤니티의 담론은 어쨌든 나름의 근거를 들어 자국민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일베의 담론은 전라도 비하, 여성 혐오, 인종주의적 욕설로 일관하면서 사람들을 말초적으로 자극하지만 정작 현실 권력에 대해선 입도 벙끗하지 못한다.
반이주노동자 커뮤니티와 일베를 신우익의 맹아 단계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체계적 운동으로 발전하진 않았다. 반이주노동자 커뮤니티들은 ‘온라인 한정’이라는 점에서 일베와 비슷하다. ‘언어의 저렴함’에서 일베와 유사한 재특회가 오프라인 시위를 활발하게 개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우익과 신우익이 각각 조직으로 활동하는 일본과 달리 한국 사회는 여전히 ‘정통 우익의 나라’다. ‘반공 우익 노인’들은 날이면 날마다 거리에 나와 폭력을 휘두르며 노익장을 과시한다. “종북좌파 인사” 운운하는 문건들이 폭로되며 국가정보원이 여전히 국내정치에 개입하고 있는 정황들이 드러나기도 했다.
정당정치와 분배구조가 현실의 모순을 반영하지 못하게 되면 정치는 사회경제적 불만을 해결하기보다는 어떻게 대중을 위무해 주느냐의 게임이 되기 쉽다. 모두에게 ‘빵’을 주진 못하지만 ‘2등 국민’을 차별하며 우월감을 느끼는 짓을 방치함으로써 불만을 해소시키는 일종의 극장형 사회가 되는 것이다. 반이주노동자 커뮤니티의 논리와 일베의 열기가 결합한다면 가까운 미래의 한국에 명실상부한 네오라이트, ‘한국형 신우익’이 탄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들의 정서를 정치적 언어로 대변해줄 매력적인 정치인이 등장했을 경우 그 화학반응은 그야말로 가공할 수준일 것이다.
재특회, 반이주노동자 커뮤니티, 일베 등을 움직이는 심리적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이를테면 ‘상상된 착취’(imagined exploitation)가 아닐까. 당연히 받을 몫을 ‘내부의 타자’에게 빼앗겼다는 박탈감. 그래서 나보다 ‘자격’과 ‘능력’이 없는데 몫을 더 받는 것처럼 보이는 대상들을 찾아내고 공격하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그것이 ‘상상된’ 착취인 이유는 실제 착취하고 배제하는 주체는 내부의 타자가 아니라 자본과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과 국가에 저항하지 못한다. 자신의 ‘자격 있음/없음’과 ‘유능/무능’을 인준해주는 주체가 바로 자본과 국가인 까닭이다. 재특회와 일베는 하늘에서 떨어진 괴물이 아니다. 그들 대부분은 남한테 큰소리 한번 못 내는 평범한 시민이다. 만약 괴물이 있다면, 평범한 시민 상당수가 저런 사고방식을 내면화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일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89093.html
뒤틀린 욕망과 증오…일본 사회가 낳은 ‘괴물’ (한겨레, 한승동 기자, 2013.05.26 20:25)
거리로 나온 넷우익
반한류·반조선을 외치는 ‘재특회’ 등 일본 신우익 청년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들을 등장시킨 일본의 사회적 배경은 무엇일까. 그들의 목소리는 한국의 우익 ‘일베’와 기묘하게도 닮았다.
“김치 냄새 난다!” “조선인은 똥이나 먹어!” “바퀴벌레 조선인, 구더기 조선인은 반도로 돌아가라!” “일본에 살게 해 주고 있잖아! 너희는 구석에 처박혀 있으면 돼!”
그들의 주장에는 일본의 과거 침략에 대한 역사인식도, 그에 따른 책임감도 전혀 없다. 오히려 애초에 식민지배는 없었으며, 강제연행이나 일본군 위안부 등은 좌익세력의 날조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심지어 일본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은 재일 조선인이며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으면 일본이 살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한편으론 열등하다고 깔보고 욕하면서 한편으론 두려워하는 그들의 기묘한 심리.
이 모순투성이, 어쩌면 완전히 뒤집힌 세계관의 소유자들. 종잡기 어려운 위험한 존재. 그들이 오늘날 일본에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신우익, 행동하는 극우 청년들이다.
거리로 나선 이들 신우익의 활동 중심에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이 있다. 서두의 생경하고 날선 야비한 욕들은 재특회 행동대원들이 오사카 쓰루하시의 코리아타운, 교토 히가시쿠조의 조선제1초급학교 등에 몰려가 외쳐댄 구호들이다.
월드컵에서 일본팀이 졌을 때 환호작약하던 한국에 좌절했다
북의 일본인 납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을 때 분노했다
시대를 사유할 능력이 없다
근본 모순과 대결을 피하면서 조선인을 표적으로 삼은 것은 그들의 치명적인 한계다
2007년에 결성된 회원수 1만1000여명의 재특회. 그들이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하는 시위·집회 동영상 사이트나 일본 최대의 보수 우익 인터넷 익명 게시판 ‘2채널’에는 수천, 수만, 수십만명이 찾아가 환호하고 댓글을 단다.
야스다 고이치(49)의 <거리로 나온 넷우익-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보수가 되었는가>는 바로 그들이 도대체 누구인지,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려 하는지, 그들의 뿌리와 한계는 무엇인지를 추적한다.
예컨대 가난한 조선 사람들이 많이 살던 기타큐슈 지역 중소 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재특회 회장 사쿠라이 마코토(41)는 재학시절 존재감이 없는 얌전하고 온순한 학생이었다. 고교 졸업 뒤 고향 동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지내다 20대 중반이던 1997년에 도쿄 달동네로 옮겨가 경비원으로 일했다. 그가 10년 뒤 반조선·반한류·반중국·반좌익의 총아로 떠오른 데는, 재특회를 기존 보수 우익과는 다르게 만들어준 결정적 요인인 인터넷 혁명, 그리고 2002년 한·일 월드컵, 같은해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평양 방문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과격 구호가 난무하는 시위·집회 현장의 인터넷 실시간 중계와 유튜브를 통한 동영상 확산, 트위터와 블로그, 페이스북 등을 통한 수많은 복제, 조회가 달변의 그를 신우익 스타로 만들었다. 그는 월드컵에서 일본 팀이 터키 팀에 졌을 때 환호작약하던 한국 응원부대에 좌절하고 증오했다. 평양에 간 고이즈미 총리를 통해 북의 일본인 납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을 때 그는 분노했다. 그리고 그 분노와 증오를 증폭시킨 것은 그야말로 별볼일 없었던 비주류로서의 그의 소외된 삶과 좌절감, 주류 엘리트들에 대한 반발과 복수심이었다. 또 한 가지 뺄 수 없는 것은 압도적 우위를 차지해온 ‘선진국 일본’의 상대적 지위 저하로 인한 초조와 불안, 몰락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지은이는 사쿠라이 회장뿐만 아니라 그를 신우익 행동파 논객으로 데뷔시킨 보수 우익 매체 <채널 사쿠라>의 미즈시마 사토루 사장, 그를 투사로 키운 우익 행동주의 리더 니시무라 슈헤이 같은 구체적인 인물과 사건들을 추적하면서 재특회의 정체, 그 강점과 약점, 특질과 한계를 하나씩 드러낸다. 이들은 특별 영주권과 조선학교 보조금, 생활보호 우대, 통명(일본식 이름) 허용을 두고 재일 조선인의 ‘4대 특권’이라고 주장하는데, 지은이는 이들의 주장을 논박한다.
재특회 회원들에게 기존 우익과 좌익은 모두 자신들을 소외시키는 기득권자로 비쳤다. 그들은 과격한 말투와 튀는 행동을 통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기성 가치들을 깨부수려는 그들의 계획에 동원하려 했다. 이는 한국의 ‘일베’와도 상통한다.
일본의 상대적 쇠퇴와 주류 엘리트의 무능과 구태의연과 부패도 한몫했다. 그리하여 “사회에 분노하는 사람, 불평등에 분노하는 사람, 열등감에 괴로워하는 사람, 동지를 원하는 사람, 돌아갈 장소가 없는 사람”들이 재특회로 몰렸고 거기서 유사 가족의 보살핌과 인정 욕구를 충족시켰다.
하지만 “재특회에는 사상이 없다”는 지적처럼, 그들은 인터넷상에 떠 있는 잡다한 지식을 짜깁기해서 논쟁의 재료로 활용했을 뿐 시대의 고민을 내면화하고 자기 논리로 심화시킬 능력이 없었다. 사회모순과 정면대결을 벌일 힘도 용기도 없었다. 그들이 엘리트나 천황제, 주일 미군과 같은 주류나 일본 사회 근본 모순과의 정면대결을 피하면서 재일 조선인 등을 표적으로 삼은 것은 결국 자신들에게 제대로 대들 수 없는 만만한 약자를 골라 때리는 비겁한 전략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치명적인 한계다.
지은이는 23일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재특회란 무엇인가?라고 내게 묻는 사람이 많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의 이웃들입니다.’ 사람 좋아 뵈는 아저씨나 아줌마, 예의바른 젊은이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작은 증오가 재특회를 만들고 키운다. 거리에서 소리치는 녀석들은 그 위의 고인 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저변에는 복잡하게 뒤엉킨 증오의 지하수맥이 펼쳐져 있다. 그들에게는 ‘차별’이라는 자각조차 없을 것이다.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타자에게 조금 전가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재특회보다는 재특회를 만들어내는 일본 사회, 그것을 구성하는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잘못된 의식이나 욕망, 증오가 더 무섭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일베’와 그것을 만들어내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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