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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켄 로치다운 리얼리즘 영화. 두 형제의 다른 전망. 운동의 비극 속의 개인사적 비극의 혼합.

 

홀로 떠난 부산국제영화제로의 2박3일간의 주말 답사를 통해 그토록 보고싶던 이 영화를 보게되었다. 잔잔하고 찬 바람이 부는 부산 요트경기장 야외상영장에서 혼자 앉아 광대한 스크린, 바다 널리 울려퍼지는 사운드로 보는 이 영화의 감상분위기는 최고였다. 이 영화는 그런 곳에서 봐야한다. 영화 속 아일랜드 시골의 너른 보리밭이 너무 아름답고, 그곳에 부는 바람을 찍은 영상은 민중들의 노래, 파도 소리같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동생을 아일랜드 독립투쟁의 대열에 합류시킨 형은 자유주의적이고 '점진적 개혁'이라는 전망만을 갖고 있었고, 형에 의해 투쟁대오에 함께 하게 되었지만 아일랜드 민중들이 겪어온 고통들에 대해 보다 심도깊고 뜨거운 가슴으로 고민해오던 동생은 사회주의자였다. 켄 로치는 다시 묻는다, '자유주의인가', '혁명투쟁인가'

 

독립, 대의, 국가를 위해 투쟁에 있어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무엇으로 인식해야 하는가? <보리밭은 흔드는 바람>은 스페인 내전을 다룬 <랜드 앤 프리덤>을 꿰뚫는 주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진행되는 두 형제와 동지들의 혁명을 위한 투쟁 과정에서 그/녀들은 구체적인 삶, 상황에서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 하느냐고 묻고, 논쟁하고, 고민한다. 그리고 그 거친 언덕 들바람에 휩쓸려온 자신의 삶처럼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자신의 삶, 실수 속에서 좌절하고 슬퍼한다. 갑자기 혁명은 기쁘고 행복하기만 한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혁명적 정세는 너무도 슬픈 고뇌가 될지도..

 

영화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속의 피냄새를 대비적으로 보여준다. 보리밭 언덕이 아름다운 만큼 그 안에는 착취당해온 민중들의 피와 상처들이 있는 것이다. 켄 로치는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여받을때 이 영화에 대해 "이 영화는 부시와 미제국주의의 이라크전쟁을 비판하는 내용이다."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켄 로치의 영국은 잔인한 학살을 일삼은 윈스터 처칠의 영국이고, 그 처칠은 훌륭한 정치가가 아니라 학살자로 묘사된다.

 

해방은 잡힐듯, 잡힐듯하면서 잡히지 않는다. 혁명적 상황 속에서 유리한 상황을 성취해도, 많은 것을 이룬듯하여도...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었다. 정작 중요한 내부의 투쟁들이 그/녀들 앞에 놓여있는 것이다. 켄 로치는 동생과 같은 진영의 사회주의자들의 치열한 논쟁들을 빌어 오직 억압받는 노동자들의 입장에 서서 끝까지 투쟁하고자 하는 운동만이 대안이고, 민중들이 바라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해방은 무엇으로부터 가능할까? 과연 우리 운동은 언젠가 과정 속에서 지도부의 명령과 '대의'라 지칭되는 무엇이 인간성과 대립되지 않을까? 이 섣부른 고민이라 생각될지도 모르는 이슈는 결코 우릴 비켜가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모든 혁명적 상황에서, 목숨을 건 투쟁 속에서 저항하는 대중을 선도해온 활동가들은 언제나 그 고뇌에 빠지곤 했다. 자신의 오류를 언제나 정정해나갈지 모른다면 그 어떤 비극적 상황도 쉽게 일어날 것이다. 동생은 비극적으로 총살을 당한다. 독립운동의 뛰어난 리더였지만 자유주의자이자 민족주의자이었기에 대립했던 형으로부터.

 

'혁명적 상황'은 그 역동성만큼 저항했던 개인들에게 비극이 되곤 했다. 비극을 연출할 것인가,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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