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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Goldberg Variationsiations BWV 988

좀 멍해지는 봄날, 정신없이 돌아가는 사무실에서 잠시 짬을 내서 음악을 들을 때는 피아노 연주곡들이 좋다. 오늘은 바흐를 듣다가, 잠시 시간에 틈을 벌인다.

바흐, Goldberg Variationsiations(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988 중에서 Aria No.1과 Variation 3.

* 곡을 클릭하면 재생.

 

사실, 바흐의 곡들은(이 곡도 마찬가지지만) 화성법을 "연구"하거나 "교육"하기 위한 것들이 많다.
그래서 윤소영 선생같은 분은 바흐의 작품을 (특히 베토벤에 비해서는 ^^;) 좀 폄하하기도 하지만, 그냥 편하게 이렇게 듣기에 무척 좋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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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행사"와 "투쟁"사이

시청광장에서 진행된 3.8 여성대회 본행사는, 엄청난 돈을 들였다고는 하는데, 죄송하게도 도대체 이런 행사에 왜 나와야하는 지 의문스러울 지경이었다.

사회자가 민주노총 임원"님"들을 공들여 차근차근 소개하는 가운데 시작된 이 행사는 익숙한 대회사와  "성평등상" 시상식이 이어진다. 수상받은 조직들은 여성 비정규투쟁사업장도 있지만 성'희롱'에 대한 법률적이거나 이런저런 대응을 한 사례가 많다. 도대체 그 조직이 조직내에서 어떤 페미니즘적인 실천을 했는지, 심사와 추천기준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잘 알 수 없다. 성희롱, 성폭력 사건 대응이 노조 여성위원회의 특허전담사업이 되어버린 현실도 한편으로 보여준다.

상을 받는다면 오히려 여성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하고 치열하게 싸운 조직들이 모두 상을 받아야하는 것 아닐까?

또 하나의 집회

예컨데, 이런 조직들 말이다.
오전에는 기륭, 뉴코아-이랜드 등 여성비정규직투쟁사업장, 민주노총서울본부, 사회진보연대, 노힘여성활동가모임 등의 단체가 주최한  "3.8 세계 여셩의 날 100주년 투쟁 기획단" 집회가 열렸다.


△ 집회 한켠, 인권운동사랑방의 피켓. "우리들이 행진을 계속하기에 위대한 날들이 온다네. 여성이 떨쳐 일어서면 인류가 떨쳐 일어서는 것"이라는 구절이 마음을 울린다. 영화 "빵과 장미"의 대사라고 한다.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투쟁을 이야기한다. 기륭전자. 학교비정규직, 이랜드일반노조, 광주시청비정규직.. 투쟁으로 비정규직으로 빈곤으로 내몰리는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자고, 연대하자고 호소한다. 투쟁 승리하고 내년 3.8은 현장에서 맞자고 말이다.

3.8을 무엇으로 보는가, 3.8, 여성의 힘을 통해서 무엇을 하고자하는가를 상징적으로 비교해주는 일들이 계속된다.

총선 들러리?

그렇다면, 민주노총의 시청 앞 행사에서는 이들 투쟁사업장이 등장하지 않았나? 아뇨, 그렇지는 않죠.
투쟁사업장 각각의 생생한 목소리가 있었던 11시 집회의 투쟁단위들 몇몇은 단상에 올라갔다. 함께 올라서 미리 쓰여진 멘트를 깔끔하게 읽고 나자, 이런, 사회자가 민주노동당 총선 여성출마자를 단상으로 함께 불러세운다.

투쟁하는 여성노동자를 위해서라도 민주노동당의 여성 후보를 지지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민주노동당을 통해 총선을 승리하자고 연호를 요구한다. (썰렁한 분위기~)

이 한순간에, 투쟁하는 여성노동자들은 민주노동당 지지를 위한 엑스트라로 전락해버렸다. 민주노동당이 분당된 후에 상황 때문에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장의 투쟁에 대해서, 여성의 비정규직화 빈곤화에 대한 어떤 투쟁의 전망도 없이 너무나 뻔뻔하게 후보들을 단상에 올리고 투쟁사업장 동지들을 "활용"하는 모습이 기가 막힌 것이다. 심지어 자신들이 비례대표 후보를 거부한 뉴코아-이랜드 조합원까지 단상에 올리고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라고 하니, 도대체 최소한의 예의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결국 이랜드일반노조 이남신 부위원장이 진보신당 비례대표로 출마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명 가수나 연예인들이 나왔다는 유관순기념관 행사나 정리집회 행사는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아마도 "문화적으로 풍성한" 어떤 행사를 원했기 때문에 그런 데 돈을 썼을 것이다.

극단 신명 공연, 광주시청비정규직노동자 해고1년

하지만 정작 그날의 가장 감동적인 문화적인 경험은 집회 직전에 시청 광장 한 귀퉁이에서 진행된 '극단 신명'의 광주시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그린 마당극이었다. 작년 3.8일 일터에서 폭력적으로 쫒겨난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작년 바로 그때 박광태 광주시장은 "세계여성평화포럼"을 유치하고 생색을 내고 있었으며, 주류여성운동은 시청 여성노동자 투쟁현장이 아니라 그 행사에 몰려가 주었던 것이다.)

극단 신명은 이 공연 때문에 예정되었던 공연장 대관도, 지원금도 모두 취소되고 말았다. 그러나 공연은 감동적이고, 잘 짜여졌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고, 중간중간 짠하다. 모두 구체적인 현실이다. 한 동지의 말대로, 이 극에는 "어떤 정해진 결말"이 없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더 슬프다. 극은 현실에서, 여전히 진행중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극을 함께 보는 여성비정규직노동자들, 특히 공공노조 서울지역의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분들이 극에 함께 웃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쁘고 마음 한편이 짠했다.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예술이 삶을 이렇게,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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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청비정규직 동지들은 3월10일(월)부터 상경투쟁을 진행한다. 중간중간 일정은 공공노조 홈페이지에 공지될 예정이다. 관심있는 분들의 연대가 있다면 고마운 일이다.
* 광주시청비정규직 상경 투쟁일정(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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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운동사, 몇가지 교훈

최근에 이런저런 토론과 교육을 하면서 느낀 것들. 첫번째와 두번째 것은 내가 강의를 진행하면서 생각하게 된 것인데, 역시 생산적인 노동자 교육은 일방적인  지식의 전달과정이 아니라 서로 배우기의 과정이라는 점을 느끼게 된다.

1. 이주노동자의 눈으로

이주노조 농성단 동지들에게 한국노동자운동사를 세번에 걸쳐 교육할 기회가 있었다. 의사소통이 여전히 어려운 점도 있고(중간 중간 통역도 필요하다) 한국 역사에 대한 배경 이해가 부족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역사적 과정 자체에 기입되어 있는 노동자운동의 역사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1. 노동자운동의 탄생과 좌절, 부활
-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기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2. 노동자운동의 폭발적 성장과 제도화
- 1980년대말 호황기 노동자운동의 폭발과 1997년 IMF 구제금융
3.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노동자운동의 도전
- 1998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 사용한 교안(link), 역시 실제 교육은 교안과는 또 다르게 진행된다.

특히 우선 반성하게 되는 것은 내용적으로더 쉽게, 언어의 사용에 있어서도 더 쉽게 했어야한다는 것이다. 내가 워낙 개념어를 남발하기 때문에 더 어려운 점이기도 한데, 쉬운 일상의 낱말로 추상적인 개념을 표현하는 것은, 노동자 대중과 교통하는 데 꼭 필요하다는 점에서 신경써야할 부분이다.

무엇보다, 내가 느낀 것은, "이주노동자의 눈으로" 노동자운동, 운동사를 바라보아야한다는 점이다. 민족국가에 대해서도 세계노동자운동사에 대해서도 그렇다. 우리는 이미 민족적 시야에 너무나 익숙해져있다는 점, 모든 교육에서도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반복하고 강화하고 있다는 것을 반성하게 된다.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왜 남한에서 1920~30년대 노동자운동이 급진화되었나? 1945년 이후 왜 노동자운동이 폭발하는가?, 1970년대 노동자운동은 왜 부활하는가? 1980년대 후반 노동자대투쟁의 국제적 배경은 무엇인가? 1997년 총파업은, 2000년대의 비정규직확산은 어떤 의미인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 민족국가 내부의 논리가 아니라 국제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이런 속에서는 또한 반주변도 아닌 주변부 국가들, 이주노동자들의 모국에서 자본주의 저발전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인식해야한다. 그래야, "근면한 한국사람"이라는 식의 민족주의적 정당화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자본주의 역사와 노동자운동사를 결합해서 인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노동자운동이 매시기 폭발하고 부활한 것은 민족적 기질이 과격해서라거나 혹은 반대로 민주적인 열망을 "타고나서"가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발전과정, 정치정세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 -- NL은 물론 구제불능이지만--  좌파들의 노동자운동사 교육도 민족주의적인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다. 일제시기부터 1997년까지, 매시기 노동자운동의 부활에 대한 민족주의적인 낭만화와 근거없는 낙관, "씨알"과 같은 개념도 그렇다. 우익들이 민족의 위대한 역사를 찬양하는 것처럼, 좌익들도 민족적 저항의 로망을 특권화하는 것을 보게 될 때, 당혹스럽다.(물론 해당 지역의 독특한 역사적 경험, 이에 따른 이데올로기적 특수성이 반영될 것이기 때문에 이데올로기가 경제적 토대로부터만 형성될 수는 없다. 다만, 그러한 특수성을 인식하더라도 "민족적 로망"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편, 이런 맥락에서 최근의 노동자운동사를 인식함에 있어서도 이주노동자층의 형성에 대한 인식이 필수적이다. 1993년 이후 이주노동자를 입국시키는 정부와 자본의 논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들어낸 논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 특히 이들은 80년대 말 이후 노동자운동의 투쟁 덕분에 급격하게 상승한 임금인상에 대안을 찾기 위해서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를 도입했다. 역설적으로 운동의 성공이 노동자들의 분할을 만들어낸 점을 정확하게 반성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19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의 전투적 노동자운동을 아무런 반성없이 이상화하는 논리에도 마냥 동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전투적이고 변혁적이라고 했던 당시 운동의 "비사고"의 지점이 2008년 현재 우리 눈앞에 있다. 그것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혹은 눈앞에 보면서도 인식하지 "않아"서는 안된다.

그리고 이러한 지점들이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교육이 아니라 한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자운동사 교육 등에서도 적용되어야한다. 한국인 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의 눈으로 자신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하고, 또 현실을 돌아볼 수 있어야한다. 그것이 노동자교육의 하나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야한다. 국제주의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곳에서부터 인종주의적 차별을 박멸해가야하기 때문이다.

2. 역사적 자본주의와 페미니즘

사회진보연대의 사회운동세미나 중 "세계노동자운동사" 부분을 맡아서 몇번째 진행하고 있다.
http://pssp.jinbo.net/bbs/view.php?board=notice&id=1134&page=3

세번째인 이번 세미나(거의 강의─.─;;)까지 진행하면서 특히 생각하게 되는 점은 역사적 자본주의의 맥락에 따른  "역사적 노동자운동"이라 할만한 것의 분석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여기에는 필수적으로 페미니즘적 시각이 결합되어야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말하자면 역사적 자본주의론과 결합되는 역사적 가족형태의 분석이 구체적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고, 이런 맥락에서 역사적 노동자운동을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비판할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볼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점을 인식할 수 있도록 비판해준 것은 세미나에 참석한 여성동지였는데, 무척 고마운 일이다.)

물론 역사적 가족형태에 대한 비판에 대한 여러 연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다 구체적으로 역사적 자본주의 분석과 결합되어야하고, 이런 맥락에서 매 시기 노동자운동의 형태와 내용에 대한 비판도 함께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이다. 가족임금에 대한 요구는 언제부터 어떻게 노동자운동에 완전히 내재적으로 통합되었는가, 19세기 초반의 "유토피아 사회주의"운동에서 페미니즘적 시각이 발견되는 것은 어떤 맥락인가, 20세기 초 미숙련-반숙련 노동자의 진출과 아메리카에서 "동반자 결혼"의 발명과 유럽에서의 지체와 같은 가족형태의 변화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또 그러한 차이는 전후 자본주의 형태의 차이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19세기 후반 이후 노동자운동의 민족적 통합과 여성배제는 어떤 과정에서 결합되어 이루어지는가, (반)주변에서 자본주의 발전에서 여성의 지위, 그리고 노동자운동의 수용은 어떤가, 이런 과정은 남한의 노동자운동에서는 어떻게 일어났는가, 그것은 현재의 노동자운동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등등등.. 너무나 많다.

민주노총의 2008년 임금인상요구도 철저하게 가족임금 모델에 근거해서 산출되는 것이 현실인 이상, 이러한 비판과 분석의 중요성은 전혀 무시할 수 없다. 노동자운동의 역사를 말하면서 이런 것들을 제대로 결합해서 진행하지 못한다면 완전히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 고민되는 일이다. (내가 공부를 더 해야할 부분도 많다. 불행히도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운동을 각각 공부하는 사람은 많은데, 이 둘을 모두 공부/연구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같다.)

3. 사소한 것에 비판적일 필요 : 노동자운동의 역사

우연치 않게 다음날 노조의 어떤 교육에 참가하게 되었다.(이번에는 피교육자) 주제는 "독일 산별노조(통합서비스노조 Ver.di)의 교섭구조"다. 강의를 해주신 박장현 교수가 매우 구체적으로 알려주신 덕분에 산별노조의 교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구체적인 도움이 되었다는 점을 우선 언급해야겠다.

그런데, 교육 내용중 흥미로운 것이 있다. 바로 내가 전날 사회진보연대에서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이야기했던 내용이 다른 방향에서 언급되었던 것이다.

독일에서 산별교섭이 안착화되는 시기는 바로 "1914년"이라는 점이다. 특히 공공부문의 경우 정부가 사용자성을 인정하면서 교섭에 나서고, 다른 산업에서도 기업별교섭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산별노조의 교섭권만 독점적으로 인정된다. 왜? 전쟁(1차 세계대전)에 노동자계급과 노조의 협조를 얻기 위해서였다는 점이다. 바로 제2인터내셔널의 배신.

그러니 말하자면, 지금 남한의 노조관료들이 부러워하는 독일 등 유럽의 산별교섭 구조는 전쟁과 혁명을 거치면서 노동자계급을 민족국가에 통합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제(양보?)의 일부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실천적 교훈은 무엇일까? 이 날 교육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매우 건조하게 전달되었다.. 역사적 사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제2인터내셔널의 배신과 역사적으로 노동자운동의 민족국가에 대한 통합과 사민주의적인 합의체제의 성립 등과 연결해서 이해되지 않을 경우에,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에게 어떤 결론이 남을까? 역사적 위기의 상황에서 민족국가를 거부하는 투쟁이 아니라, "기회"를 활용해서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결론이 남을 수밖에 없다. 교육의 목표가 바로 "산별교섭 실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민족국가 사이의 전쟁에 충성하는 게 무엇이 문제지?

이 에피소드가 말해주는 것은 이런 점이다. 개별적인 사안에 대한 것처럼 보이는 노조교육조차도 정치적 맥락에 대한 정확한 평가에 기반해서 진행되지 않을 경우 매우 왜곡된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들은 특히 남한의 산별노조가 그 모델로 독일/유럽 산별노조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우려되는 점이다. 금속노조는 독일 금속노조IG Metal, 공공노조는 독일 통합서비스노조 Ver.di를 모방하는 데 몰두한다. 민주노총은 독일식 산별노조와 북유럽식 노사정 타협체제 모방에 몰두한다. (중앙파, 좌파가 다를까? 푸훗─, 진보신당은?)

물론,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와 혁명을 배반하고 파시즘으로 결과한 민족주의화된 노동자운동의 역사를 반복해도 된다고 생각하거나, 가능하거나 말거나 아메리카 헤게모니의 황금기에 가능했던 모델을 그 황혼기에도 주장하면서 자신과 조합원을 기만해도 된다고들 생각들하시는 거라면 더 할말은 없다.

4. "현장에서 미래를"? 노동자사회운동

민주노총 서울본부를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는 "노동운동포럼"은 노동자운동의 혁신을 현장의 실천 속에서 이루어내려는 매우 의미있는 과정이다. 최근 진행되는 어떤 노력보다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프로그램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데, 오는 3월12일에는 (19시, 총연맹서울본부) 백승욱 선생의 강연이 예정되어 있기도 하다.  ("신자유주의 맞서는 사회운동"이라는 제목. 이 글을 보시는 분들에게 강추)

여튼, 지난번 토론은 "신자유주의와 노동자의 삶"이라는 주제의 토론이었다.(토론 전주에 진행된 강좌는 장시복 선생이 진행했다.)

여기서 미묘한 쟁점이 발견된다.(참가자들이 모두 인식했을지는 모르겠다) 말하자면, (특히 정규직의) 노동현장에서는 더 이상 어떤 사회운동적인 쟁점을 발굴할 수 없으니 외부에서 활동가들이 도입하는 방식으로 노동자사회운동을 형성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 있다. 그리고 이와는 미묘하게 다르게 (이건 나의 입장이라 할 것인데) 정규직 사업장의 경우 측면도 있으나, 비정규직 사업장의 경제투쟁은 여전히 다른 의미일 뿐 아니라, 정규직 사업장이라고 하더라고 현장의 쟁점을 급진화하는 실천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이 있다.

이런 미묘한 쟁점은 노동운동포럼에 결합하는 단체들 사이의 쟁점일 수도 있을지 모른다.(사실 그보다는 나의 개인적인 쟁점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내가 보기에는 노동자운동은 여전히 자신의 노동현장의 어떤 쟁점들을 급진화된 실천으로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고, 그것은 노동자운동에 고유한 본질적인 부분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더욱 사회운동적 맥락에서 진행되고, 노동현장 바깥의 사회운동과 만나고 변화하는 과정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최근 2~3년 동안 공공노조 사회연대연금지부(구 국민연금공단노조)는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으로,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 급격히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급진적인 현장활동가들의 노력은 눈부시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동의가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조합원들은 일견 경제적 이해와는 또 다른 국민연금제도의 공공성과 관련된 쟁점을 정치적으로 제기하면서 급진화되었다. 완전히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여전히 노동현장에서의 쟁점을 급진적으로 전유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래서 노동자운동이 여전히 "노동자"운동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현장 외부의 사회운동적 쟁점이 노동자운동과 결합하는 것이 당연하고 필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주장에는 다른 협의를 갖게 된다. 현장의 쟁점에 대한 투쟁을 상대화하기 위한 혹은 현장 쟁점에 대한 운동의 끊임없는 실패를 정당화하는 맥락이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점이다. 전적으로 "현장에서 미래를"을 포기하는 근거로 사회운동이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심지어 노동시장의 이중화/분할로 인해 현장운동이 어려움에 처한다고 해도, 여전히 그것과 싸울 수 있는 어떤 계기를 조직해야한다.

이런 점에서 나는 노동자사회운동을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구좌파"적이라고 할, 혹은 고루한 "현장파적"이라고 비아냥받을지도 모르는 쟁점들을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고, 오히려 여전히 노동자운동에 근본적인 부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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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으로부터, 거리.

지역지부 동지들을 만나서 술을 늦게까지 마시면서, 이런 화제로 이야기를 한다.

오늘 현장간부들과 진행한 신규조합원 상담. 무엇보다, 상담한 노동자는 억울한 상황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기뻐했다고 한다.
노조의 "미조직 비정규직 전략조직화 사업"을 지역에서 유사한 부문의 사업장끼리 같이 진행하기 위한 사업단위를 꾸리자는 제안을 한다. 앞으로 업종을 넘어선 지역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하다.
한 사업장 안에서 정규직-직접고용/간접고용비정규직을 모두 조직할 수 있는 전략 사업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담당자를 어느 정도 시기 동안 집중적으로 배치하면 할 수 있을 것같은데, 그게 쉽지 않다.
해고 투쟁 중인 분회 동지에게 지부 상근 활동을 제안한다. 어렵다고 발을 빼지만 마음 깊이는 설득하면, 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다.
집에 가는 길이 두시간 넘게 걸리는 동지가 술자리 중간에 먼저 간다. 멀다.
내일 한 사업장의 조정회의.  조정회의에서 합의를 만들 것인지, 투쟁을 조직할 것인지 종합적인 판단을 하자는 토론을, 현장의 상황, 활동가들의 고민을 이야기한다. 내일 오후에 지노위 조정회의가 있으니, 오전 중에 다시 이야기해야한다.

그래서, 오후에 있는 한 투쟁 분회 집회 참석 일정을 조정한다.

이런 이야기로 술을 마시고, 새벽 2시, 집에 들어왔다.
이것이 우리 노조, 지역지부 활동의 일상이다.

병가와 휴직 6개월,
그리고 지역본부를 떠나 탁상공론이나 난무하는 노조 정책담당자라는 자리로 복귀한 세달 동안,
이런 조합원들의 삶과, 투쟁에, 불과 몇달 전에 나의 고민이었던 것들과 얼마나 멀어져왔는지,
울컥해지고 말았다.

노조, 노동자운동의 대중조직에서 일한다는 게 뭔지, 생각하다,
나의 상황에 막막해졌다.
 



거의 기적같은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매일 이어지는, 어쩌면 노동운동의 대세에 큰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고, 중대한 사회적 쟁점으로 보이지도 않고, 깔끔하게 어떤 결과로 해결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리 많은 수의 조합원도 아닌 현장의 하나하나의 쟁점에 매일 부딪히고 끈질기게 싸우는 활동가들이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나만 하더라도, 그런 매일매일의 싸움을 지쳐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열정을 유지하면서 해나간다는 것이 가능할지를 다시 묻게 되는 것이다.

그런 활동가들, 쉽게 찾을 수 없지만 그러나 사라지지는 않는, 그런 유형의 사람들이 세상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어떤 때는 그것이 이 세상의 진짜 "기적"이라고, 신이 있다면 그 축복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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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선생 강연 중에.

노조 교육에서 오랜만에 백기완 선생 강연이 있었다. 나이가 나이이신만큼 예전처럼 힘이 넘치지는 않았지만, 좌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와 말씀은 여전하시다. 이날 말씀이나 평소의 내용에 모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러 내용이 있었지만 이 부분은 생각해볼만하다. (아래는 나의 언어로 정리한 것)


"누구나 나누고 고르게 잘 사는 사회라는 이념, 평등사회라는 이념은, 단지 200년짜리의 이념이 아니라 인류 역사 전체를 통해서 형성되고 내재화된 이념이다. 그래서 이것은 어느 시대에나 어느 지역에서나 항상 존재하고 부활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계급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진보사상의 위기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평등사회를 지향하는 이념 자체의 위기라기보다는 표면적인 것이거나, 운동 주체의 위기이다."



[이날 강연 것을 갖고 있지 않아서, 인터넷에서 찾은 다른 사진. 나중에 이날 사진은 구해서 올려야겠다]


몇가지 생각해볼 부분.

발리바르가 「공산주의 이후에 어떤 공산주의가 오는가?」에서 언급하는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와 비교해볼 수도 있다.(번역글 보기) 평등사회라는 유토피아,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공산주의 운동이라는 전통. 그것은 (중세적인 형태, 발리바르에 따르면 "첫번째"인 공산주의로서 "청빈형제회(fraticelli) 혹은 급진적 프란체스코주의의 공산주의"처럼) 단지 역사의 어느 시점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훨씬 이전부터, 인류가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면서부터 만들어진 보편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백기완 선생의 말에 담겨있다. (“천년왕국-메시아”마저도 중세가 아니라 그 천년도 전에 중동에서 제기된 한 시기의 사상이다.)


재미있는 부분인데, 평등사회에 대한 지향은 인간의 사회적 본능 자체의 내용(혹은 그 필수적인 일부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어려운 정세에서도 완전히 압살되는 경우는 없고, 매시기 다시 부활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것은 마치 함석헌-김상봉이 말하는 씨알과도 유사하지만, 민족적이지 않으며, 보편적이다. 인류 전체에 그렇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의, 인류의 보편적인 이념인 평등사회-공산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의식”의 형태를 띤다는 것. 보편적 해방의 주체로서 노동자계급이라는 사고와도 통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노동자 계급의식의 선험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백기완 선생의 말씀 안에도 그런 씨앗이 있다.

여기서 더 주목한 부분은, 계급의식이라는 것의 원래의 형태가 인류의 보편적 해방에 대한 사상이라면 그 내용이 그에 걸맞아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계급”이라고 불리는 인구의 특정부분에 특수적인 이해가 아니라 끊임없이 인류의 보편적인 해방을 위한 것으로, 자신의 이념을 보편화시켜 가야한다. (그런 측면에서 전투적인 경제투쟁을 계급의식의 핵심적이고 주된 발현형태인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에는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평등사회-공산주의가 대중들의 정서 속에, 사회적 본능 속에 내재되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현재 다시 표면에 드러날 수 있는 형태로 만들 것인가가 문제이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운동이 매번(장소와 시간에 따라) 같은 형태를 띠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 시대, 우리 장소에서의 그 형태, 그렇지만 보편적인 내용을 채워가는 형태가 무엇일까를 생각해야한다.


강연 끝무렵에는 카프 작가 강경애의 단편소설 “원고료 이백원”을 소개한다.(찾아보니 범우사 판의 <인간문제(외)>에 실려있다.) 한번 읽어보기는 해야겠는데, 사람은 자신의 (자본주의적인) "교환가치“를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되며, ”사회적 가치“를 높여야한다는 소설의 한 부분을 소개한다. 사람에게 어떤 ”가치“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볼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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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파/분당파 유감

1.
"패권주의"에서 "종북주의"로
애초에 대선즈음에 들은 민주노동당 혁신의 문제의식의 핵심은, 당내 민주주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자주파의 패권주의적 행태였다. 그리고 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패권주의의 원인으로 종북주의가 지목되었을 때만 해도 이해할만한 상황이었다. 스탈린주의적 당노선을 가진 세력들과는 상호 존중하는 정치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인정할만했다.
 
그러나, 정작 상황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문제는 패권주의가 아니라, 패권주의의 원인으로서 (민족주의화된) 스탈린주의(주체주의)가 아니라, 곧장 "친북노선"자체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바로 빨갱이 사냥으로 이어졌다. 최기영 제명안은 비록 나중에 수정되기는 했지만 "편향적 친북행위"가 문제로 지적되었다. 이쯤되면, 쟁점은 애초에 문제의식, 패권주의로 인해 불가능해진 당내 민주주의 수호가 문제가 아니라 북조선에 대한 공격이 된다. 노골적인 반공주의 노선으로 전환.

2.
"신당파"의 반공사민주의
이 과정에서 신당파의 정치적 포지션은? 당장 결성한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의 공동대표는, 박승옥이었다. 92년 전노협 위기논쟁에서 2007년 노동운동위기논쟁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노동운동의 변혁성과 전투성을 문제삼고 "새로운" 노동운동을 주장했던 사람이다. 그 "새로운"이라는 수사 안에는 이제까지 그나마 민주노조 운동이 만들어왔던 긍정적인 정치적 의미를 모두 폐기하는 운동이 그려져있다. 신당파의 입장이 무엇인지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그런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이 NL에 비해서 급진적이기는 한가? 신당파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본질을 너무 빨리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렇다고 당내 혁신파가 다른 입장이었나? 비록 그 안에는 당을 보다 왼쪽으로 가게 해야한다는 입장이 있었을지 몰라도, 심상정 비대위가 제안한 내용은 한편으로는 "편향적 친북행위"라는 반공주의 의제를 활용하고 또 한편으로는 "생활 속의 푸른 진보" 운운하는, 생태주의를 핑계로 우경화된 정치노선을 표방했던 것이다. (더 오른쪽에 있는 노회찬은 말할 나위도 없다.) 왜 급진적 생태주의와 반자본주의 변혁으로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퇴행적인 생활정치로 나가는가? 이후 민주노동당내 "자율과 연대"와 같은 사민주의 세력은 노골적으로 신당지지를 선언하고 나선다.

결국 애초부터 신당파, 혁신파 모두가 동일한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처한 공간은 그 프레임 때문에 점점 더 우경화하고 있다. 이제 자신들의 위치를 보면 NL을 "우파"라고 부르기가 쑥스럽지 않나?

어떤 분이 모아놓은 민주노동당 분당관련 신문기사, 사설들을 보라.
http://cafe.naver.com/hamsatam.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974

3.
대중조직의 분할인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분열이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 책임묻기로 일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가장 중요한 공동의 과제 중 하나는, 당의 분열이 대중조직의 분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이미 일각에서는 공공연하게 이런 위험을 경고한다. 이미 강승규사태, KT노조, 민공노, 민주연합노조 사태 등 폭약은 쌓여있으니, 뇌관만 있으면 되는 상태일수도 있다.) 이번 민주노동당 분당의 사실상의 정치적 책임이 NL에 있는 것처럼, 민주노총의 위기도 국민파-NL 집행부가 만들고 있다. 이미 실질적으로 진행되는 정치적 분화를 패권으로 막으려는 우매한 행위를 민주노총 집행부가 하고 있고, 이는 역으로 현장의 분할을 촉진한다. (민주노동당 분열의 주된 책임이 NL에 있는 것처럼, 민주노총이 분할의 위기에 빠진다면 그 정치적 책임은 온전히 국민파-NL 집행부에 있다.)

이런 조건에서 양식있는 활동가들은 당의 분할이 민주노총의 분할로 이어지지 않도록 함께 노력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노총 안에서 정치적 선택의 폭을 여는 것이 필수적이다.(민주노총 정치방침, 민주노동당 배타적지지 방침 개정) 그러나 그러한 방향자체가 민주노총의 정치적 분할을 촉진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되며 매우매우 신중해야한다. 앞으로 예상되는 민주노총 분열위기의 1차적인 책임은 국민파-NL집행부에 있을 것이지만, 중앙파-좌파도 면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4.
그럼 NL--'민족주의화된 스탈린주의'와 동거할 수 있는가?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NL당이 된 민주노동당에 남아있는 것이 가능할까? 그런 점에서 노운협 등의 입장은, 정치적 지형에 대한 진단에서는 올바르지만, 정작 현실의 정치적 지형에서는 무능하다.

자주파/평등파 왜곡된2분법, 민족개량파 공개사과하라
천영세 직무대행이 쿠데타를 꾀하고 있다

민주노동당내 이른바 '평등파'가 분할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스탈린주의자들인 NL이 노선을 혁신하여 분파형성권을 인정하고 당 노선을 수정하지 않는한 그들과 공동의 정치활동에서는 "복종"혹은 "압도"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그런 측면에서는 애초에 당내 평등파의 문제제기--"패권주의"의 본질이 NL의 "종북주의"정치노선, 당과 수령관을 핵심으로 주체주의에 있다는 비판은 정확했던 것이다.)   NL만이 압도적으로 남은 당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혹은 조선노동당의 우당인 조선사회민주당 같은 포지션은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5.
제 3의 선택지?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신당파의 반공 사민주의도 아니고, 민주노동당에 남은 NL의 스탈린주의도 아닌 다른 정치적 위치가 가능할까? 이것은 마치 냉전시기의 국제적인 사회주의 운동이 처한 것과 유사한 딜레마. (물론 정치적 지형은 분명히 다르고 따라서 다른 사고, 제3의 선택지에 대한 사고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이런 지형에 대한 "좌익적 비판"은 어떤 내용이 될 수 있을까?

사회주의 정치를 압살하는 두 경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우의 간지와 사자의 용기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특히 비-NL 사이에서 민주노동당 분당-탈당파가 "전면적으로 지지"받는 상황, 레디앙만이 아니라 이제는 참세상 기사에도 그런 기사가 탑에 올라오는 작금의 상황에서 그래도 이제는 생각을 좀 해보자. 지금 더 절박한 것은 NL만 남은 (이제 서서 죽은) 민주노동당 공격이 아니라 새로운 당을 만들겠다는 흐름에 대한 비판이다. 비-NL이 올바른 정치노선을 보장해주지는, 전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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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곡-단테 알레기에리의 코메디아


신곡 -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박상진 옮김,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 민음사


단테의 신곡을 읽으려고 마음을 먹은 직접적인 계기는 서경식의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에 대한 독서다. 책은 신곡 지옥편의 첫 두연으로 시작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우슈비츠에서 레비는 신곡의 구절을 생각하면서 인간임을 자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신곡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그리고 그 켭켭이 쌓힌 각주들까지)까지 모두 읽은 후에도 이 작품이 "인간임을 지탱하게 할" 힘이 있는지 나는 잘 확신할 수는 없다. 위대한 작품이라는데는 전혀 이견이 없지만 말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기질적인 무신론자인 나로서는 기독교 문명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의 감성에 완전히 일치되기는 힘들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레비의 언급을 통해서 신곡을 어떻게 읽어야하는 지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는 말은 할 수 있다. 이렇게 읽기 시작할 수 있다. 레비는 지옥편의 오디세우스와 관련된 구절(26곡)을 수용소에서 기억한다.(아래 인용한 번역들은 모두 내가 읽은 민음사판의 것)

그대들의 혈통을 생각하라! 그대들은
짐승처럼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덕과 지혜를 따르기 위해 태어났다

오디세우스는 운명 앞에도 불굴의 의지로,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영웅적으로 도전한다. 그러나,

풍랑은 우리 배를 바닷물과 함께 세바퀴 돌게 했다오
네 바퀴째에 선미가 높이 솟아오르더니 뱃머리에서 떨어져
마침내 바다가 우리 위로 덮쳐왔소

하느님께서 원하셨던 대로였다오

레비는 "하느님께서 원하셨던 대로였다오"라는 구절을 되씹는다. 인간의 위대한 행위가 하느님의 섭리 앞에서 좌절할 때, 그러나 지옥에서도 오디세우스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그것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죄악, 아우슈비츠라는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운명인가. 그것은 단테가 쓴 의도와는 다른 것일 수 있지만, 단테가 본 지옥도 인간의 눈으로 다시 읽을 수 있다. 신곡은 그렇게 열려있다.

작품 전체는 단테의 구체적인 시대적이고 개인적인 제약 안에 있다. 단테는 자신을 추방한 정적들을 하나씩 지옥편에 등장시킨다. 타락한 성직자들은 교황도 예외없이 지옥에서 끔찍한 고통을 당하는데, 교황청의 금서가 될 만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비판이 가능했다는 것은 교황청의 권위에 근거한 중세 카톨릭 체제가 이미 붕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대의 과학지식에 따른 지리적 설명(주로 천국편에 등장하는)은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면 단지 지리적인 오류만이 아니라 인종주의적이고 유럽중심주의적인 편견을 담고 있기도 하다. 지옥편에서 이슬람 지도자가 등장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점에서 시대적 한계를 이해하면서 읽는 것은 물론이지만 중간중간 불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그런 제약들에도 불구하고, 혹은 오히려 그런 구체성 때문에 신곡을 읽을만하다고 해야할 것같다. 그런 구체성들이 없다면 지옥-연옥-천국으로 이어지는 길은 따분한 교리문답에 그쳤을 것이다.( 죄송하지만 천국편의 상당부분은 사실 순전히 신학적인 교리문답이기도 하다.;;) 특히 그런 구체성의 핵심에는 베아트리체에 대한 단테의 사랑이 있다.

아홉살에 베아트리체를 처음 본후 사랑에 빠진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되기 훨씬 전인 1290년, 그녀를 죽음으로 이별한다. 베아트리체의 나이는 스물다섯이었다.


[△사진은 단테가 아홉살에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났다고 하는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 여행할 때 만난  다른 여행자가 나의 작은 호의에 대한 답례로 이 이야기를 가르쳐주었는데, 신곡을 읽지 않고 온 것을 후회한 적이 있다.]

신곡 전체에 가장 가슴떨리는 부분은 연옥편의 후반부(30편~)부터, 연옥의 끝 에덴동산에서 베아트리체를 다시 만나는 장면이다. 그녀는 지옥에서부터 이제까지 순례자(단테)를 인도하던 베르길리우스(로마의 시인)를 대신해 천국을 안내한다. 천국편까지 베아트리체가 등장하는 구절들은, 단테가 이 작품을 무엇보다 자기위안을 위해서 썼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어느 구절보다 생생하게 빛나고, 그 것을 묘사하는 순간에 가장 행복한 사람의 글이라는 것을 700년이 지난 지금도, 다른 언어로 번역된 시로도 느낄 수 있다.

나를 하느님께 인도하던 그녀가 말했다. "이제
다른 생각은 그만 하세요. 내가 모든 고통을 덜어주시는
그분과 함께 있다는 것을 생각하세요"

그 사랑스러운 말에 나는 나의 위안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때 그녀의 거룩한 눈에서 본
사랑은 너무나 거대해서 말로 옮기지 못하겠다.

내 말이 실패할까 두렵기도 하고,
누군가가 위에서 인도하지 않으면 내 정신이
그런 높이까지 오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순간에 대해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녀를 바라보면서 내 마음이
다른 모든 추구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기쁨이 베아트리체의 얼굴에 곧게
비치고 있었고, 그 반사광이 나를
기쁨으로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미소의 빛줄기로 나를 압도하면서
말했다. "이제 몸을 돌려 잘 들으세요.
천국은 내 눈에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 천국편 18곡 중

단테가 천국의 안내자, 혹은 동행자(그러니 그녀는 진정으로 Soul Mate라고 할만 하다)로 베아트리체를 등장시킨 것은, 그녀가 구원의 여성상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와 함께 있는 곳이 천국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단테의 사랑이 비록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었을지라도 천국을 희망하는 삶의 힘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고, 방대한 신곡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물론 이것이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일방적 판타지라고 말할 수도 있고, 이 판타지는 성녀-창녀의 이분법을 전제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서로의 영혼의 발전에 도움을 주는 관계를 우정이든, 날개달린 에로스든 만들어갈 수 있을테니까.)

한편, 기독교 신자가 아닌 나는 신곡을 통해서 기독교적인 구원에 대해서도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한국에서는 교회를 통해 복을 내려주는 기복신앙의 대상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그것은 절대자를 통해서 영혼의 고양, 완전성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어떻게 보면 하느님이라고 하는 인격신은 이름만 있는 것이지 실제로는 각자의 영혼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매개로 그 자체가 하나의 비유일 수 있다. 다만, 불교와 같은 경우에는 직접적으로 자신안에 있는 부처를 찾으라고 가르치는 데 비해서, 기독교는 하느님을 매개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물론 사소한 차이는 결코 아니다.)

인간은 자기 한계 내에는 결코
완성될 수 없어요. 그러니 계속해서 겸손하고
복종하는 자세로 자신을 낮추지 못하는 것은

거스르려 했던 그만큼 자꾸오르려 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혼자 힘으로
하느님께 이르기 힘든 것입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말하자면 두 길들 중 하나로,
혹은 두 길 모두를 통해
인간이 완전한 삶으로 이르는 길을 마련하신 것이지요.

그 일을 행하는 자가 더 감사하는 만큼,
그 마음에서 나오는 자비가 더 선하게
우러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온 세상에 자국을 남긴 영원한 하느님의 덕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기꺼이 다시 한 번
인간을 끌어 올리고자 하신 것입니다.

- 천국면 7곡 중 베아트리체의 말

비유적인 표현으로서 "하느님"의 표상, 인격신으로서 "야훼"는 이중적인 효과를 가진다. 한편으로는 이해하기 쉬운 인격적 상징으로, 누구나 자신의 영혼을 고양시키는 길을 따라갈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쉬운 비유 때문에 왜곡되기도 쉽고,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에게 원래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미신의 대상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말씀이나 성경 자체도 물론이지만 심지어 "하느님"의 표상까지도 일종의 비유일 수 있다는 생각을 열어야, 영혼을 ("천국"으로 불리는 지고의 장소까지) 고양시키는 기독교 안의 위대한 가르침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신곡은, 지옥에서 연옥으로, 천국까지 길을 걸으면서 인간과 악마, 천사와 신을 만나고 깨달음을 얻어가는 일종의 "여행기"라 할 만하다.(SF영화와도 비교할 수 없을 우주적 규모의 여행기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여행에 신곡의 독서를 통해 동반하면서, 단테가 추구하려고 했던 영혼의 고양을 함께 하거나, 혹은 적어도 그 장면을 구경해 볼 수 있다. 물론, 각자의 베아트리체를 만나는 경험은 현세에서들 하셔야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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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서경식 지음, 박광현 옮김 / 창비(창작과비평사)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쁘리모 레비는 자살로 삶을 마무리하면서, '침묵과 죽음'을 자신의 마지막 증언으로 남겼다. 서경식은 불가리아 출신의 지식인 츠베땅 토르도프를 인용해 "레비가 1987년에 자살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이 단순 명쾌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고난에 대한 인간성의 승리와 구제의 서사로, 그 모든 것은 증언을 듣는 우리에게는 명쾌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불가해한 질문을 던진다. 불가해한 질문에 직면한 그가 죽음으로서 우리는 그 질문에 내던져진다. 오히려 그 이유를 알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서경식은 말한다.

글과 여행을 통해서 쁘리모 레비를 찾아가는 이 책에서 두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 혹은 "이해해서는 안되는 것"이 또 등장한다.

효율적인 학살을 통한 절멸(노동력이 없는자)이거나 "노동을 통한 절멸"(노동력이 남은자)이라는 프로젝트, 이 아우슈비츠는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한다는 것은 "인정"한다는 것과 닮은 행위이기 때문에, 또 그렇게 연결될 수 있는 위험을 갖고 있다. 그러나 끔찍하지만 우리와 같이 히틀러, 괴벨스, 히믈러, 아이히만과 같은 "독일인들", 그들도 인간의 일부라면, 그들을 "이해"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는 인간 자체에 대한 근원적 질문과 같다.

"그들은 자신들이 '유대인은 인간 이하'라는 사상에 희생된 까닭에, 그 사상을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사상으로 대치해야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독일인'도 물론 '인간'에서 예외는 아니다."(181쪽)
그러나 그것은 결코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모순은 쁘리모 레비와 같이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자하는 생존자의 삶을 갉아먹는다. 오히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피해자가 "인간이라는 수치"에 시달린다.

레비에게 "독일인"은 그런 존재다. 그들 전체를 인종주의적으로 재단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압도적인 다수가 공범인 행위를 볼 때, 그들이 행한 폭력이 취한 독일적 형식(식사나 노동의 양식, 오락의 취향, 언어감각, 나치식 농담의 센스까지!)을 볼 때 그런 이름을 붙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대다수의 독일인은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나는 일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오히려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도된 무지는 무죄가 될 수 없다. 자신은 공범이 아니라는 변명은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이다. 스스로의 기억도 조작된다. 마치, 레비가 수용소에 I.G.파르벤의 화학공장에서 만난 민간인 뮐러 박사가 자신이 레비와 "우정을 쌓았다"라고까지 왜곡된 기억을 갖게 되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그래서 레비의 죽음은, 피해자는 결코 잊을 수 없고 매순간 노출되는 모순에, 가해자는 오히려 스스로 확신을 갖고 잊고-잊고자하고 "이제는 그만하자"고 말하는 현실을 대면시킨다. 역설적이다. 독일에서, 일본에서 이미 그런 목소리가 높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이스라엘과 미국은 눈감는다. 어떻게 가해자들이 먼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일까, 그들은 피해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 "인간"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일까?


[△ 사진은, 독일에 갔을 때 찍은 베를린 인근 작센하우젠 수용소의 처형장]

한편, 서경식은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이 왜 벌어졌는지를 물으면서, 그 질문을 유럽인인 쁘리모 레비에게도 되돌린다. 나치의 행위는 "중세 이후의 반유대주의, 히스테리컬한 패권욕과 식민지 획득욕, 약육강식.우승열패의 사회진화론과 우생사상, 인종주의 그리고 '효율'에 대한 물신숭배와 테크놀로지 신앙, 이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상승작용을 하여 폭발한 것"이면서 동시에, 독일 자본주의의 발전경로와도 연관된다. 독일은 후발 제국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영국, 프랑스 등 다른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유럽의 "바깥"에서 행한 행위를 유럽의 "안"으로 돌리게 되었다.

좀더 부연하자면, 역사적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독일이 영국 헤게모니를 대체하기 위해 (미국과) 벌인 경쟁 과정으로 이 시기를 연관시켜 볼 수 있다. 독일은 부족한 식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시장을 확대하는 등 내부로 확장의 방향을 추구한다. 중화학공업의 발전과 (힐퍼딩과 레닌이 비판한) 금융과두제는 이렇게 형성된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영역의 확장"은 한계를 가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생활공간의 확장"이라는 나치식의 구호가 등장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독일 내부에서 정치적 압력을 가중시키고 소수자를 절멸하는 정치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과 함께, 곧이어 인근 국가들에 대한 전쟁으로 나간다. 1차 대전은 식민지 재분할 요구이 성격이 강했지만 2차 대전에서 독일은 유럽대륙을 지배하는 제국을 건설하고자하고 보다 더 직접적인 유럽의 문제가 된다.

아우슈비츠는 유럽의 역사 자체가 만들어온 과정이기도 하다. "야만"이 유럽의 문제가 된 이때, 비로소 근대 유럽의 이념으로서 "인간"의 보편성을 둘러싼 자기모순이 드러난다. 쁘리모 레비조차 아우슈비츠를 묘사하면서 (비유럽적인 것으로서) "아만", "야만적인 피그미"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서경식은,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문명인가'를 물어야하는, 또 다른 과제가 주어진다고 말한다.

다른 책에서처럼 서경식의 장점은, 쁘리모 레비라는 사람을 그의 시간과 공간에 고립된 인물이 아니라 현재에, 그리고 글을 쓰는 자신의 삶에 불러온다는 데 있다. 그래서 쁘리모 레비는 "간첩"협의로 고문받고 투옥된 서승, 서준식 두 형제를, 디아스포라이자 그 투쟁과 고난에의 "외부"에 있다고 느끼는 저자 자신을 만난다. 팔레스타인을 만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우리도, 쁘리모 레비를 그리고 서경식을 지금 현재, 우리의 삶에 불러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타인의 고통에 동참(김상봉)하는 것과 동시에 나의 고통을 통해 타인과 연대할 수 있기 위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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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서경식은 일본과 독일의 상황을 비슷하게 진단한다. 일본의 우익정치인들이 "자학사관"을 넘어서자고 선동하는 것처럼, 독일에서도 "수정주의 사관"은 아우슈비츠를 다른 테러독재, 학살들과 "비교할 수 있는 것"으로 놓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태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차이가 있다고 느껴진다. 독일에서는 적어도 기억하고 반성하기 위한 시도들이 의미있게 지속되고 학살을 용인하는 것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금기가 더 강하다. 베를린의 "유태인 기념관"과 같은 곳은 일본에는 없는 것이다.

여행기에서 베를린에 대한 느낌에서 쓴 것처럼, 독일인들은 스스로의 힘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것으로 느꼈다. 일본도 그럴까? 적절한 비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서 "폭주"라는 말이 일본에서 어떤 어감인지 느끼게 되었다.

이 책에는 일본인들이 2차 대전은 잘못된 정치인과 군인들이 "폭주"[暴走]한 것으로 이해한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지금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기도 한)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에서 "에바"는 통제불가능하게 "폭주"한다. 자신의 힘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순간이다.(그래서 에바의 전원장치는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폭주를 '구속'하는 장치이다.) 독일인들이 느끼는 것으로 보이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과 유사한 것은 아닐까? 이 경우에는 훨씬 약하게 드러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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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임순례 감독은, 전작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처럼, 어쩌면 진부한 소재를 진부하지 않게 그려낸다. 한국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 기껏해야 지하철에서 자리를 냉큼 차지하는 존재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 "아줌마"들의 삶에 대해서 말이다.

이 영화에 대한 좋은 이야기는 여기저기 많으니 한 가지만 이야기해보자.

국제 체육대회(국가대표)라는 소재는 사실 위험하다. 자칫하면 민족-국가에 인민들을 동원하는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그것을 소재로 다룬 영화도 반복하기 쉽다.(그것은 소재 자체에 각인된 것이기도 해서, 밑에서 말하겠지만,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다루려고 해도 민족-국가는 끊임없이 복귀한다.)

그런 점에서 임순례 감독은 솜씨있게 다른 방식으로 소재를 다룬다. 영화에 등장하는 선수들은 어떤 민족적인, 국가적인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삶 혹은 꿈을 위해서 뛰어든다. 그것이 잘 어울리는 이유는,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어차피 민족-국가가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으며 앞으로도 이들에게서는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는 '아줌마'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올림픽 시즌에 잠깐 주목받고, 금메달 카운트로만 집계되는 경기의 뒷면에는 그녀들의 삶이 있다.

임순례 감독은 그 금메달의 '뒷면'을 현실과 단락시킨다. 그녀들은 경기가 끝난 이후에도 뉴코아, 홈에버에서 물건을 파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일 것이고, 동네식당 "아줌마"(달리 그녀들을 부르는 어떤 용어가 있담?)일 것이고, 딸을 둔 이혼녀일 것이다.(한미숙-송정란-김혜경) 우리 옆에 있는 그녀들이다. 감독은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전에 실제 선수들과 감독의 인터뷰를 붙여넣는다. 영화는 다시 "올림픽이 끝나면 돌아갈 팀이 없는" 그녀들의 현실로 난폭하게 돌아온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국가"대표선수들에게조차 "국가"가 무엇인지, 혹은 그보다는 그녀들의 삶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대항의 국제 스포츠 경기에는 '경기'를 일으키는 나 같은 이도 그녀들의 결승전을 응원하면서 볼 수 있다. 그 경기는 민족-국가의 영광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그녀들이 생존을 위해서 싸우는 또 다른 삶의 현장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얼마전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올림픽 등 각종 세계대회에서 국위선양을 하고 있는 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 이 영화를 관람"했다고 한다. 이명박에게는 그녀들의 삶이 아니라 "국위선양"이 보였던 모양이다. 소재의 위험은, 영화보다도 더 현실과 거리가 있는 그런 식의 상징조작도 가능하게 한다. 그러니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이 영화를 보고나서 그녀들에게 "민족-국가의 영광"을 위해 베이징 올림픽에서 열심히 뛰라는 얼빠진 이야기는 하지 말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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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삶의 한가운데


삶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지음, 박찬일 옮김 / 민음사


지금, 단테의 신곡(코메디아)을 읽고 있다. 지옥편,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무엇보다 지난 2007년을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서른다섯, 장기간의 병가와 휴직, 여행, 그리고 이혼까지, 인간의 자연적 수명이 일흔이라는 잠언(89:10)의 구절이 아니라도, 나의 영혼의 수명은 아마 일흔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삶의 한가운데"를 지나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애니어그램 성격 테스트의 지표까지 모든 것이 송두리채 변했던 것이다.. 작품의 주인공 니나는, 오늘 서른일곱을 마무리한다. 나 혹은 그녀처럼, 말 그대로 "삶의 한가운데"를  지나왔다고,  생각하게 된다.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를 읽게 된 것은, 아마도 이런 정황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미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이야기되었던 책이라고는 하지만, 공대생, 운동권으로 20대를 보낸 나의 독서 목록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루이제 린저는 이 작품 속에서 전후무후한 인물들을 창조한다. 그러나 그 인물들은 마치 작가, 그녀의 여러 변신
變身들 같다. 일인칭 서간체의 소설이어서일까? 어느 소설에서보다, 이 책의 인물들, 누구보다 니나, 그리고 슈타인은 그녀의 일부로 느껴진다.

니나는 자신의 경험 속에서 좌절하고 무능하게 된 한 남자 교수의 이야기를 한다. 이 에피소드의 결말은 (나의 다소 보수적인 도덕관념으로는) 좀 경악스럽기는 하지만, 니나의 표현으로는 이 사람의 부인은 이런 사람이다. "짐작하기에 부인은 착하고 현명한 여자 같았어, 아울러 마치 간호사들처럼 정확하고 친절은 하지만 남자들에게 꿈을 주는 못하는 부류의 여자였던 것같아. 언니, 이해해? 이 세상엔 그런 여자들이 많아."

19세의 니나를 처음 만나고 치료한 의사인 슈타인은 18년 동안 그녀를 원했지만, 짧은 기회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안정적인 연애관계를 갖거나 결혼하지는 못한다. 평생을 모호한 관계를 유지하지만 말이다. (이 작품은 그 과정을 기록한 슈타인의 일기로 이어지면서, 또한 니나의 회상으로 구성된다. 그것은 직소 퍼즐같이 연결된다.) 그것은 슈타인 자신의 말대로 너무 우유부단하거나 신중해서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 그것은 그녀의 정치적 이상에, 혹은 그보다는 그녀의 솔직한 행동주의에 슈타인이 다가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간접적으로는 기여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어떤 점에서, 슈타인은 나와 비슷하게도 느껴진다. 나도 한편으로는 우유부단하며, 지나치게 신중하기도 하다. 또한 시간 속에 길을 잃지만, 잊을 수는 없다. 슈타인은 니나를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이런 모습이다.
"니나는 엘베 강과 같은 존재다. 유혹적이고 순진하며 도덕이 얽매여 있지 않고 본능적으로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멀고 낯설게 느껴져 붙잡을 수 없다"(123)

이런 성격이 이 책이 출간된 이후에, 니나에게 많은 젊은이들이 열광하게 만든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같다. 그러나 다만, 이것이 그저 젊은 사람들의 반항적인 한때의 기질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행동에 까지 이르는, 자신의 사라지지 않는 본질이라는 점을 함께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녀는 이미 서른 여덞이니 그것은 젊은 한 때의 혈기만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시 나 자신을 떠올리게 된다. 이 작품은, 모든 구절에 나의 존재를 대입하게 되는 신기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 작품을 일반화하고 거리를 두기 보다는, 작품의 그 안에 나를 위치시키고 생각하게 된다. 작품 속에서 순간 순간 슈타인이 되거나 니나가 되어서 혹은 알렉산더이든, 퍼시이든 그 등장인물 중 하나가 되어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특히 슈타인에 대해서라면, 그의 "내밀한" 일기는 마치 나의 일기에도 쓰지 못한 말들을 그가 대신 쓴 것처럼 느껴진다. (여성 작가인 루이제 린저가 어떻게 이렇게 한 남성의 영혼 자체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슈타인과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온갖 위험들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정치적으로 행동하고, 아마도 또 그렇게 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관념이 그 자체로만 존재하고 물질적으로 실현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그것은 알튀세르를 내가 깊이 공감하면서도 다른  부분이다. 알튀세르는 수용소 탈출 계획을 세운 것으로 만족했지만[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비록 엄청나게 동요하더라도 결국은 나는 그것을 실행하는데 충동을 느낄 것이다. 혹은 실행하지 못한다면 참을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느낄 것이다. 어떤 컴플렉스?)  정치에 대해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니나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렇다.

한편으로 위안은, 모든 관계의 고통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람의 자연적 수명을 넘어설수는 없을 것이라는, 절대적인 물리적 한계에 대한 것이다. 슈타인에게 그것은 18년이었다. 나에게 그것이 얼마일지는 모르겠지만 니나, 그녀의 온갖 삶의 굴곡을 넘어선 어떤 시간일까..? 여튼 그것은 어떤 식이든 나의 물리적 존재의 한계라는, 끝이 있는 과정이다. 그러니, 그리 절망하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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