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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3

늙고 지친 활동가를 위한 진료공간을 만들어야겠다. 

이전부터 생각해 오던 일이었다.

주변에 이야기하니 다들 긍정적이다. 

 

이제 시작하는일만 남았는데,,,

언제 시작할지는 모르겠다.

 

대략 10년이상 활동한,, 40대이후 활동가를 위한 공간이다.

 

다음은 이 공간을 구상하며 떠올렸던 노래다

유명한 노랜데 000만 바꾸었다.

***에 실려간'의  ***은 머리가 나빠 뭘로 바꿀지 떠오르지 않는다.

 

늙은 활동가의 노래

 

1.

나 태어난 이 강산에 활동가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한세월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죽어 이 강산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못올 흘러간 내 청춘
***에 실려간 꽃다운 이내 청춘

2.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
너희들은 자랑스런 활동가의 아들딸이다
좋은옷 입고프냐 맛난것 먹고프냐
아서라 말아라 활동가의 아들딸이다
아 다시못올 흘러간 내 청춘
***에 실려간 꽃다운 이내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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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7

불로그가 개편되어 스킨을 이것저것 바꿔보다,, 제일 간명한걸로 바꿨다. 이미지를 바꾸려하니 잘 안된다. 그래서 그냥 이미지 없는채 헤더 높이만 줄였더니 그런데로 좋다..

 

요즘읽은 책구절이다.

"인간을 동물과 근본적으로 구분짓는것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가장 단순하고,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통속적인 대답은 이렇다. 그것은 의식이라는 것이다.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의 의식이다. 자기감정이라든가, 감성적 식별력이라든가, 지각이라든가, 외적 사물을 일정한 징표에 따라서 판단한다는 의미에서의 의식은 동물에게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가정 엄밀한 의미에서의 의식은 스스로의 유(Gattung)나 스스로의 본질을 사고의 대상으로 삼는 존재에게만 가능하다."

"우리는 의와같이 제한된 의식, 그러나 바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전혀 오류가 없는 의식을 의식이라 부르지 않고 본능이라 부른다. 엄밀한 의미 또는 본래의 의미에서의 의식과 무한한것에 대한 의식은 서로 떨어질 수 없다. 제한된 의식은 의식이 아니다. 의식은 본질적으로 포괄적이며 무한한 성격을 지닌다. 무한한것에 대한 의식은 의식의 무한성에 관한 의식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무한한것의 의식 속에는 자기본질의 무한성이 의식의 대상이 된다."

"이성의 제한 또는 일반적으로 인간본질의 제한은 모두 기만이나 오류에 의존한다."

"인간의 개체가 자기의 제한을 유의 제한으로 간주한다면 이것은 인간의 개체가 자기를 유와 동일시하는 기만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 기만은 개체의 안일함, 태만, 허영, 이기심과 가장 긴밀하게 연관된다. 내가 순전히 나의 제한으로서 알고 있는 제한은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나를 수치스럽게 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이러한 수치심이나 불안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나는 내개인의 제한을 인간본질의 제한으로 만들어버린다."

"개체의 절대적 본질이 되는 인간의 본성과 유의 본질을 유한하고 제한된 것으로서 규정하는것은 환상이며 우스꽝스럽고도 경솔한 오류다.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충분하다. 어떤 존재도 자체를, 곧 자체의 본질성을 부정할 수없으며, 어떤 존재도 자체로 제한된 존재가 아니다. 모든 존재는 오히려 그 자체로서 무한하며, 스스로의 신, 스스로의 최고의 본질을 자체안에 가지고 있다." 

 

포이어바흐/강대석옮김  '기독교의 본질'중 제1장 '일반적인 인간의 본질'에서

 

오만할정도로 자신만만한 글이다.  허나 현실에서는 그것도  너무 징글징글한 '현실'앞에선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이런 물음이 참 덧없어진다.


 어제 '뺑뺑이 인생에 종지부를 찍자'라는 제목의 메일이 왔다. 그제 지원요청하는 전화를 받고 답답한 마음에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별 도움을 못주던차라 궁금한 마음에 열어보니 폐쇄조치를 진행한다고 한다. 안가봤지만 상황은 짐작이간다. 

폐쇄조치소식에 속시원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득한 답답함이 느껴진다. 그것은 메일제목에서 보듯이 그들에게는 뺑뺑이의 계속일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설에 살던 이들중 일부는 다른 시설로 옮겨가고, 일부는 가정으로 돌아간다고한다. 하지만  그뒤의 모습이 너무 뻔하게 그려진다.  앞에 비마이너 기사에도 보듯이 30대 뇌병변장애인이 지체장애인으로 분류되고,,  노인병원,정신병원을 전전하는게 지금현실이다.  메일제목은 '종지부를 찍자'지만 그도 답답한마음은 마찬가지일것 같다.

 

다른책의 한구절이다.

"먼저 자연권이다. 자연권은 인간에게 자연적으로 속한 권리, 즉 인간이라는 단한가지 사실만으로 가질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이다. '자연적'이니까, 국가가 준 게 아니니까 어떤 권력으로도 빼앗을 수 없다. 인간으로 태어났단 사실만으로 자연권을 가지므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자유가 구속당하면 자연권을 행사할수 없으니 자유로워야 하는것도 당연하다. 따라서 자유와 평등이 자연권의 핵심 개념이 된다.

그런데 자연권을 말할때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필수적인 특질이 있다고 말하는데 바로 '이성'이다. "

"'이성'과 '자율적인 도덕적 의지'를 갖지못했다고 낙인 찍은 사람들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았다. 노예, 이교도, 야만인, 식민지인, 원주민, 여성, 아동, 빈민 , 광인(당시의 표현에는 정신장애란 말이 없었다)에겐 이성이 없고 자율적인 도덕적인 의지가 없으니, 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건 '인권침해'로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고 했다. 자연권은 모든 사람의 권리를 외쳤지만 실상은 대다수 인간을 '배제'하는 논리였다."

 

류은숙  '인권을 외치다'  서문에서

 

이책('인권을 외치다')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상당수 죽임을 당했다. 인권은 선언문이나 철학책속에 있는것이 아니라 이렇게 죽음을 무릅쓰고 싸울때 존재한다고 저자는 말하는것 같다.

하지만 싸울래야 싸울수 없는사람들 앞에서, 답답함은 마찬가지다..

 

<추가> 관련글 링크

1) http://beminor.com/news/view.html?section=1&category=4&page=2&PHPSESSID=a6643e24f16cfe6b0fb25f14c0cf2839&no=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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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비마이너] 25년만에 시설에서 '탈출'했지만…

25년만에 시설에서 '탈출'했지만…
활보 없어 '상처'투성이, 소득보장 미약해 '앞날 캄캄'
장애등급재심사 받으면 활동보조 대상자에서조차 탈락될 가능성 커
2010.08.10 14:05 입력 | 2010.08.10 20:53 수정

▲지난 4월 중순께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정승배 씨가 집으로 가고 있다.

 

2010년 현재 우리 사회에서 탈시설한 뒤 자립생활을 시도하는 중증장애인의 현실은 어떨까? 정승배(31세) 씨의 이야기로 그 답을 알아보자.  

 

지난 4월 중순께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한 정 씨는 다섯 살에 장애인생활시설에 입소해 25년 동안 장애인생활시설은 물론 정신병원, 노인병원을 전전하며 살았다. 정 씨는 실제로는 뇌병변장애가 있지만, 시설에서는 그들의 편의 등을 위해 지체지적장애 1급으로 등록했다.

 

"일곱 살에 장애를 비관해 면도칼로 손목을 그었다"라고 말할 만큼 세상과 장애에 대해 민감했던 정 씨. 그는 입소할 때 '오백만 원만 주면 평생 있도록 해주겠다'라고 약속했던 시설에서 그동안 계속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요구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결국 스물아홉 살 때 생활비를 재촉하는 원장과 크게 싸우고 다른 시설로 보내졌다.

 

하지만 정 씨의 분노를 이해하는 사람은 주변에 없었다. 대신 원장과 마찰을 일으킨 정 씨에게 사람들은 정신장애가 있을 거라고 여겼다. 여러 시설을 전전하던 중, 마지막으로 있던 정신병원에서는 한 달 내내 방에 홀로 갇혀 알 수 없는 약을 먹어야 했다. 

 

정신병원에서 다시 전라도 지역의 한 노인병원으로 옮겨졌을 때 정 씨는 '탈출'을 결심하고, 전부터 알고 있던 장애인인권단체 전화번호를 간호사실 컴퓨터로 몰래 찾아 "시설에서 나가고 싶다"라며 도움을 청했다. 이후 정 씨는 면회를 온 장애인권활동가들과 함께 서울로 '탈출'했다. '탈출'을 '납치'로 오해해 경찰에 신고가 접수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아무튼 그때부터 정 씨의 자립생활은 시작됐다.

 

▲'장애인주거복지 및 권리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사업' 대상자로 선정된 정승배 씨가 주거지원을 받아 현재 살고 있는 집.

 

한동안 다른 동료 중증장애인의 집과 체험홈 등을 전전하며 생활하던 정 씨는 5월 하순께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원하는 '장애인주거복지 및 권리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사업' 대상자 14명 중 한 명으로 선정돼 종로구 이화동에 있는 원룸에 입주하게 됐다.

 

일단 자립생활의 가장 큰 걸림돌 중의 하나인 주거 공간이 해결됐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시설에서 나온 지 넉 달이 되어 가지만 아직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을 가능성도 적다는 것.

 

"내가 뇌병변장애인이 아니라 지체지적장애인이라는 것을 (지역사회로) 나오고서야 알았다"는 정 씨는 뇌병변장애인으로 등록되기를 원하고 있으며, 현재 활동보조서비스 신규 신청 등을 위해 의료기관에서 장애등급 판정과 장애등급 심사를 위한 절차를 거치고 있다.

 

그러나 정 씨는 등급이 하락해 1급으로 대상자를 제한한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정 씨는 휠체어를 손으로 잡고 밀면 어느 정도 보행이 가능한데, 뇌병변장애인의 경우 보행이 불가능해야 1급 판정을 받기 때문이다.  

 

현재 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전적으로 비용을 부담해 일주일에 6시간의 활동보조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지만, 식사와 세면 등 일상생활을 원활히 수행하기에도 턱없이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지원하기 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에 자원봉사자가 와서 2~3시간 집안일을 도왔을 뿐이다. 그나마 이런 지원도 언제 중단될지 모른다. 

 

"어느 때에 활동보조서비스가 가장 필요하냐?"라는 질문에 정 씨는 밥솥을 열어 보여줬다. 그는 "내가 쌀을 물로 씻으면 다 쓸려 보내기 때문에 씻지 않고 밥을 했다"라면서 "밥을 공기에 담을 때에도 다 흘리기 때문에 활동보조인이 담아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 씨는 허벅지의 상처를 보여주면서 "혼자서 라면을 삶아 먹다가 뜨거운 물을 흘려 화상을 입었다"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하지만 상처는 허벅지뿐만 아니었다. 턱에도 혼자 면도를 하다가 난 상처가 있었다.

 

▲쌀을 물로 씻기 어려운 정승배 씨가 물에 씻지 않고 한 밥을 보여주고 있다.

▲활동보조인 없이 혼자 식사와 세면을 해결하다가 턱과 허벅지에 난 상처들.

 

활동보조서비스 뿐만 아니라 소득보장 문제 또한 정 씨의 자립생활을 가로막고 있다. 정 씨는 현재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있고 아무런 지원도 없지만,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다. 

 

차상위계층에 속해 장애인연금 대상자이지만 급여를 받아도 월 9만 원에 불과하다. 현재 몇만 원 가량의 후원비와 함께 원룸 관리비와 쌀 등을 지원을 받고 있지만, 이 지원 사업이 끝나면 결국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생각이냐?"라는 물음에 정 씨는 "일자리를 구해 남의 도움 없이 생활하고 싶고 가능하다면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장애인주거복지 및 권리보장을 위한 네트워크'의 조사랑 활동가는 "주거지원 사업 대상자로 현재 14명을 선정했지만, 승배 씨 등 2명만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나와 주거지원을 받았고, 나머지 대상자들은 장애등급심사 등으로 서비스를 받으려면 몇 달 이상 소요돼 현재 시설에서 나오지 못하고 서비스 신청 절차를 밟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조 활동가는 "특히 지방에 있는 시설에 사는 경우 지자체들이 '활동보조서비스 예산이 부족하다'라며 이유로 아예 신청 자체를 거부하거나 신청을 받아도 바우처 시간을 제공하고 있지 않고 대기자로 두고 있어 시간이 더욱 걸리고 있다"라고 설명하면서 "선정된 분들도 시설에서 나오는 시간이 길어져 많이들 힘들어하신다"라고 전했다.

 

장애등급 심사제도 확대 등 장애등급제 강화와 예산 부족으로 행정당국이 중증장애인에 대한 서비스를 제한함에 따라,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하고자 하는 중증장애인의 삶이 상처투성이가 되고 있다.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나오는 출구조차 희미해지고 있다.



홍권호 기자 shuita@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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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3(2)

얼마전 시청광장에서 열린 사대강관련 집회에 가봤다.

가만히 있기에는 죄책감(?)비슷한것이 들어 뭐라도 해야할것 같아서였다.

멀뚱히 구경만 하다, 후배만나 잠깐 이야기하다 왔다. 

앞으로 뭘 할수있을까 좀 찾아봐야겠다..

 

강은 물이 가는 길이다. 

얼마전 저 먼곳에서 기름을 싣고온 배가 서해앞바다에 기름을 쏟아낸 사건이 있었다. 

벌써 많이들 잊었겠지만 기름은 그렇게 멀리서 배타고 온다.  매장되있는 량/곳이 제한적이고 한번 사용하면 발산된 에너지와 배기가스로  사라진다.

반면 물은 어느곳에나 존재하는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석유와 마찬가지로 물도 제한되있다.
다만 물은 사용되면 사라지는것이 아니라  순환할뿐이다.  그리고 이 순환과정의 줄기가 곧 강이다.

 

강을따라 농경문명이 자리잡아왔고,, 인간이 지금까지 먹고 살아온것이  다 물덕분이다. 

경작지(논,밭)에 작물을 키울때  중요한것은 물의 충분한 공급이다. 무한하게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햇빛,공기와는 달리 물은 일정지역에 일정량이 시간적 제약을 갖고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경사회의 주요한 기술/정책은 물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유지,사용하느냐의 문제이었다.

계속 먹고 살려면 물은 살려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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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3

1.

시골에 살며 '산으로'를 꿈꿨으나,, 

결국 도시한복판으로 가게 됬다.

 

작년 여름부터 대학로에 주말마다 오갔다.

대도시의 번다함에 정신이 멍했다.

이제 1년쯤 되니 어느정도 익숙해진것 같긴한데......

앞으로 계속 서울서 살아갈 생각을 하니 걱정도 많이 된다..

뭐 남들 다 사는데 살아지겠지...

 

2.

지난 몇년간 많은 일들이 있어왔다.

전업활동가도 아니고,,,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일은 늘 많았다. 

누구말처럼 사서고생이었고 '미친놈'소리도 무수히 들었다...

생업도, 가정도, 활동도 뭐하나 제대로 하지못하고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상했다..

그런데 신기한것은 정말 힘들고,외로울땐 

꼭 누군가 내옆에 나타나 손을 잡아 주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사람들에게 다시 감사드린다.

 

아래는 이년전 블로그에 올린글이다.  그래도 그때는 자신감이 있었나보다..

사실 일이 계획대로 됬으면 그때 옮겻을텐데..

결과적으로는 뭐 다 잘되었다..  내 몸/맘의 기운이 바닥난것 빼고,,, 

쉴때는 분명히 쉴때인것 같다.

 

***** 아래 ******

 

이제 새 길이 열리고 있다
제대로 가는 방법은 하나다
더 열심히 사는것이다
산행,운동,명상,사색,고전읽기로 몸과 마음의 힘을 기르고
지금 하는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하면 된다
욕망은 최소로 낮추고 생활은 최대한 간명하게 단순화시키자
할 일은 정확히 선정하고  집중하여 밀어붙인다
지금까지도 잘 해왔다
지금처럼 앞으로 살면된다
아무도 안믿어도 나는 나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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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8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시민운동'의 힘으로 넓히자는 제안이 언론을 통해 얼마전 대대적으로 나왔다.

수십명의 사람이 개인적으로 참여한것인데도 몇몇 언론사가 같이 해주니 상당한 영향을 발휘한다.

참여한 사람들을 보니 주로 '명망'있는 사람들이다.

제목은 광고에 나오는 보험상품 비슷한 느낌의 '건강보험하나로...'다

 내용은 건강보험료를 시민들이 먼저 추가 부담(일인당 만천원정도)하여 기업과 정부의 부담을 강제하고 이를 통해 재원을 확보해 건강보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올린다는 것이다.

 

보장성을 넓히는것은 두방향이 있다. 하나는 지금까지 급여대상진료(보험진료)가 아니었던 것을 급여대상진료에 포함시키는것이고,, 다른하나는  본인부담률을 낮추는 것이다.

비보험을 보험으로 하면 , 본인부담률을 낮추면 그로인해 손해보는사람들이 분명 저지할것이다.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이 관계되있는데,,,   손해보는 세력의  힘은 참 세다.  이를 모를리 없는 사람들(성원들을 보니 우리나라에서 이분야에대해서는 가장 잘 알만한 사람들이다)이 들고나온거 보면 무슨 수가 있나라는 순진한(?) 생각도 든다.

 

문제는 누가하느냐는 것이다.

건강보험 보장성은 건강보험법,시행령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보건복지부장관의 위촉/임명으로 구성)에서 결정한다. 

곧 이는 이러한 요구가 정치적 힘으로 표현되야 해결될수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진보정당이 국회교섭단체를 구성할정도면 가능할려나...

 

**추가**  어떻게 이러한 요구를 정치적힘으로 만들어갈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이 없다는 이야기다, 

                 명망가들  이 앞에서동을 뜨고 언론에서 띄워준다음 인터넷등등으로 회원모아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여간 여러 문제를 떠나서 그렇게 된다면 좋겠다.

일인당 만천원이지만 보험료가 소득비례이니 만큼 저소득층이 실제 부담할 금액은 더 적을 것이다..

 

하지만 내 얼마안되는 힘이지만,

거기에 참여하기보다는 지금 하는일을 꾸준히 하는게 낫다는 생각이다.^^  이것도 힘들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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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7

어제 내 머리카락을 잘랐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자른것이 아니라 미용서비스를 일정액수를 지불하고 구매하였다.

 

별일 아닌일인듯 하지만 나에게는 좀 별일이다.

미용실에가서 돈내고 머리자른것은 5년만이고 내가 직접 자른것도 한 4년쯤 된것 같다.

 

내 머리모양이 좀 독특한(?)가 보다...

머리를 자르시며,

'자른지 얼마나 됬냐?'

'일부러 이렇게 층이 안나게  잘랐냐?'

'뒷머리하고 옆머리하고 전혀 다르다..' 등등등

질문을 많이 하신다.

차마 '내가 짤랐어요'라고 말은 못하고 대충 얼버무렸다.

 

하여간 일부러 동네 미장원도 아닌  시내 큰 미용실(헤어샵이라 이름붙여진)에 마음먹고 갔다.

나에게는 어떤 결정이다.

 

오늘 거울을 보니 내가 자른것보다 그리 나아 보이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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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자원활동에 대한 이전 메모들(덧글로 쓴)

1

정책은 좁게는 국가의 정책이지만 넓게 본다면 우리스스로의 대안적인 정책도 포함될것입니다.
의료자원활동은 국가,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참여자가 스스로 자율,자발적으로 움직이는 활동이면서 또한 그활동이 의료행위(의료관계형성및 실질적인 진료)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자원활동의 정책적마인드는 국가의 보건의료정책을 바꾸려는 노력과는 다르겠지요. 그렇다면 두가지의미정도로 생각이 되네요. 하나는 현재의 보건의료정책및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여 자원활동을 할때 가장 필요하고 우선적인곳을 찾는 시도일것입니다. 이는 현의료정책의 빈곳을 채우는 의미겠지요.
또하나는 단지 현의료정책을 보완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안의 의료정책을 현실화하는것입니다. 기존의 의료제도에서 잘못되고, 부족한 부분을 매꾸려는 노력과 그부분을 우리힘으로 새로 만들어보려는 시도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제도권 정책은 제도권 인력이 만들고 실행한다면, 제도밖정책(대안정책)의 수립및 시행은 제도밖인력인 자원활동이 수행하는것이죠.

 

2

병원은 좁게는 일정한 요건을갖춘 장소로서의 진료소를 지칭하는 곳이겟지만 넓게 보면 의료인과 환자가 만나 진료하는(질병과 건강에대해 나누는) 모든곳일 것입니다.
특히 장애인인경우 여러 이유로(보행을 못하거나,경제적인 이유,지적능력의 부족등), 장소로서의 병원에 오기힘든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개원을 하는 시점에서  많은 역량을 병원 바깥에 둘수는 없겠지만,  처음부터 이부분에 어느정도  비중을 두지않으면 앞으로는 점점더 하기 힘들것이라 생각합니다.

함께걸음한의원 한의사이든, 조합원의료인이든, 의료자원활동역량이든 좀더 의식적으로, 병원안 진료뿐아니라 병원 밖(재가장애인,시설내 장애인등)진료에 역량을 조직,배치해야 할것으로 생각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충분한 여건이 성숙되서 나타난적은 없습니다. 몸으로 부딪혀나가야 힘과,지혜가 모인다고 생각합니다.

 

3

건강이 건강한 관계이라면, 건강한 의료역시 건강한 의료관계일것입니다.
의료매매관계가 아닌, 공무원과 국민의 관계가 아닌 '나눔과 협동의 관계'로 의료인과 환자간의 관계가 되려면 어찌해야 될까요?
어쩌면 현재의 의료기관내에서의 활동 못지않게, 의료기관의 제약을 벗어난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의료자원활동을 만들어가는 노력도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의료기관과 함께, 때로는 독립적으로 건강한 의료관계를 형성해가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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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0

전화를 걸면 사람들이 잘 안받는다.

뭐 늘 그런편이라 별로 기분 상하지도 않는다.   전화를 거는것은 쌍방이 함께 동의해서 하는것이 아니라 한쪽에의한 일방적 행위이므로 전화받지 않는다고 뭐라 하는것이 무례한 행동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좀 심한경우ㅜㅜ;;

보통은 3-4번 시도하면 한번정도는 이루어지는데...

토요일 일요일에 걸쳐 일곱번이 다 안되었다.(약속 한건 포함)

 

흑흑 일곱명이 다 다른 사람임.  이런적은  모처럼만이다...

내안의 좋은기운이 다 떨어졌나보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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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참세상] 장애인의 시설탈출, 살이있는 드라마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6501

 

장애인의 시설탈출, 살이있는 드라마

[상상나누기] 장애인들의 탈출이 계속되고 있다

김유미(노들장애인야학 교사)  / 2010년04월28일 18시17분

 

지난 토요일 한 장애인이 또 시설에서 ‘탈출’했다. 이번에도 ‘한 편의 드라마’가 연출됐다. 28세 남성 S, 뇌병변장애에 언어장애가 있다. 열 달 전 경기도에 있는 ㄱ시설에서 동료들과 함께 ‘탈시설’ 하려다 부모의 극심한 반대로 실패, 전라남도 장성에 있는 ㄴ노인요양병원으로 보내진다. ㄴ병원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생활하던 S와 시설 동료들 사이에 작은 싸움이 일어나고, 이 일로 S는 ㄷ정신병원에 격리된다. 미치지 않은 S는 시설 밖 친구들에게 SOS를 날린다. 그리고 얼마 뒤 시설 밖 친구들이 차를 끌고 ㄷ정신병원에 S를 ‘면회’하러 간다. 친구들을 만난 S는 친구들에게 여기서 나가게 해 달라고 요청하고, ㄷ병원 관계자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S는 친구들의 차를 타고 서울로 출발한다. ㄷ정신병원은 경찰에 S가 납치되었다고 신고. S가 탄 차량 번호가 노출된 탓에 S와 친구들은 경찰 검문을 피해 국도와 고속도로를 번갈아 타 가며 급히 서울행…

 

지금 S는 잘 있다. S와 친구들, 분노한 S의 아버지, 납치범 탐문에 나선 경찰, 관리 부실 책임을 뒤집어쓸까 노심초사한 정신병원 사이에 여전히 긴장이 흐르고 있긴 하다. S는 열 달 전 함께 탈시설을 하려고 했던 ㄱ시설 출신 친구들 집에 머물며, 앞으로 만들어 가야할 자신의 삶을 고민하고 있다. 병원에서 뭔지도 모르고 먹어야 했던 약을 끊은 덕분에 더 안정된 S.

 

지난해 여름에도 한 편의 드라마가 있었다. 마흔두 살의 지체장애가 있는 여성, A. 경기도 산골짜기 시설에 살던 그녀는 사람들이 모두 ‘소등’하고 ‘취침’한 밤에, 온 몸으로 기어 시설을 탈출했다. 큰 길이, 불빛이 보일 때까지 무작정 기었다. 몇 시간을 기었는지 모르겠다. 차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이 그녀를 발견해 근처 경찰서에 데려다주었다. 언젠가 시설에 들어와 ‘탈시설 욕구’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고 갔던 S가 생각나 무작정 ‘탈출했으니 도와 달라’ SOS를 날린다. A의 전화를 받고 급하게 달려온 S와 경찰의 전화를 받고 급하게 달려온 시설 관리자. A를 가운데 두고 설전이 벌어지고, A는 S와 함께 시설이 있는 동네를 벗어난다. 밤 1시, 그녀의 탈출이 이뤄졌다. A도 지금 잘 살고 있다. 그새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도 했다. A가 한밤중에 시설을 기어서라도 나가야겠다 결심했던 건, 시설에서 A의 손전화기를 빼앗은 사건 때문이었다.

 

지금은 그녀의 남편인 T와 그녀는 시설에서 만나 사랑하는 사이가 됐다. A와 T는 시설에서 나가 함께 살기로 약속했으나 A 부모가 심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T 먼저 시설을 나가게 된다. 떨어져 있는 동안 A와 T를 이은 유일한 수단은 손전화. 시설에선 A가 손전화를 통해 계속 ‘탈시설’을 꿈꾼다는 사실을 알고, 전화를 못 쓰게 눈치를 주다가 결국 이를 빼앗고 만다. 눈앞이 깜깜해진 그녀, 더 이상 ‘그들’의 말을 듣지 않기로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시설에서 기어 나온다. 그곳에선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벼락 맞듯 깨달은 것이다.

 

‘한 편의 드라마’라고 표현했지만 이 이야기들은 바로 2009년, 2010년에 일어난 실제 사건이다. 몇 십 년 전 일어났던 이야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오늘’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다. 자, 이제 극적인 드라마의 재미에서 빠져나와 ‘시설’에 주목해보자. 대체 시설이 어떤 곳이기에 장애인들이 거기에서 ‘탈출’하고 있는지 말이다.

 

“한 달에 한 번 사람이 죽어나갔다. 정신질환자 80%, 알콜중독자 20%, 한 방에 60명이 똥통, 소변통 옆에서 잤다. 새벽 4시 기상시간. 배고파서 개밥도 먹어 봤었다.” 1998년에 충주 장호원 근처에 있었던 장애인생활시설의 모습이다. 당시 시설은 열악했고, 인권유린의 온상이 되어 우리 앞에 종종 등장했다. 그곳에 살았던 야학 학생 덕민께서는 당시를 “완전 삶을 포기한 상태였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시설은 한 방송사의 ‘현장고발’ 보도로 바로 폐쇄됐다.

 

시설 폐쇄로 살 곳이 없어진 덕민은 ‘음성 꽃동네’로 옮겨 갔다. “꽃동네는 동네가 아니었다. 작은 도시라 할 만했다. 5000여명이 있었는데 내가 살던 건물만 해도 300여명. 한 방에 15명 내지 17명까지 정신지체, 뇌성마비, 중도장애인들이 같이 생활했다.” 꽃동네는 그 명성답게 장애인을 잘 보살폈다. 덕민은 꽃동네를 “춥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시설”이라고 이야기한다. 21세기 시설은 이제 적어도 먹고 생활하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는 듯하다. 아직도 종종 인권유린 뉴스가 흘러나오긴 하지만, 예전에 비해 나아진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시설이 살 만한 곳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더 이상 춥고 배고프지 않았지만 덕민은 2004년 꽃동네에서 나왔다. 그 역시 지금 잘 살고 있다.

 

“아침에 5시 반에 일어나서 6시 반에 밥을 먹고, 씻고 뭐하고 하다보면 8시가 돼요. 8시부터 8시 반까지 기도 시간이고, 기도가 끝나면 10시 반부터 11시 반까지 근무자들이 점심 준비를 해요. 우리는 11시 반에서 12시까지 점심을 먹어요. 12시부터는 근무자들이 밥을 먹고, 그 뒤부터 저녁 먹기 전까지는 자유시간이에요. 자유시간에 저는 주로 컴퓨터를 해요. 3시 반부터 4시 반까지 근무자들이 저녁 먹을 준비를 해요. 4시 반부터 5시까지 밥을 먹고, 5시부터 청소하고 이불 깔고 잘 준비를 해요. 6시부터 6시 반까지 저녁 기도 시간이고, 그 뒤론 또 자유시간이에요. 9시에는 불을 꺼요. 불은 꺼야 되는데 텔레비전은 안 꺼도 돼요. 텔레비전은 11시까지 볼 수 있어요.” 2010년 4월 현재 꽃동네에 살고 있는 국진 씨, 종일 뭐하며 지내냐는 질문에 그가 한 대답이다. 국진 씨는 1990년 그의 나이 15살에 꽃동네에 입소해 20년째 살고 있다.

 

시설 안과 시설 밖의 삶은 확연히 다르다. 시설 안의 삶은 군대 안, 감옥 안과 닮았다. 한 방에서 대여섯 명이 5시 반 기상 9시 소등하는 생활을 20년 동안, 아니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 학교에서 단체 생활과 규칙을 가르치기 위해 진행하는 극기 훈련, 야영 프로그램도 3박 4일이면 족했다. 시설 안의 삶, 장애인의 삶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래도 된다는 전제를 깔아야 시설이 살 만하다,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결국 장애인이니까 어쩔 수 없으니까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장애인에 대한 포기가 전제된 말. “아직까지 시설에 대한 불만은, 그렇게 큰 불만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소한 것들… 나도 자립생활 한번 해보자, 남들 같이 일도 해보고 돈도 벌어보고 한번 그렇게 살아보자 그런 마음이 있는 거죠… 시설에서는 틀에 박힌 생활이니까. 오늘이 어제고, 어제가 오늘이고…”

 

지난해 국진 씨는 시설에서 나와 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시설 바깥으로부터 받았다. 가족의 반대가 심하기도 했지만 그가 선뜻 나가지 못 한 건 대책이 없어서였다. “그때는 숙일 수밖에 없었어요. 돈… 보증금이 필요한데… 그동안 제가 나오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무조건 나오겠다고 했던 거예요. 근데 돈 문제가 걸리니까 고집을 끝까지 못 부리겠더라고요.”

 

 

‘탈시설’은 엄연한 현실의 문제다. 시설에서 삶을 저당 잡힌 채 살아오던 사람들에게 무슨 돈이 있을 것이며, 가족의 포기로 버려진 이들에게 돌아갈 집이 있을 리 없고, 게다가 일상적으로 활동보조가 따라 붙어야 삶이 가능하다는 취약점(?)도 있다. 모든 것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밑바닥에서 탈시설은 시작된다. 투쟁하지 않으면 되는 게 없는 게 탈시설 장애인들의 삶이다.

 

야학에서 매일같이 만나는 탈시설 중증장애인들은 “선생님, 화장실 좀…” 화장실에 함께 가 달라고 부탁하고, “안 바쁘시면 밥 좀 먹여주세요.” 매 끼니 밥 먹을 걱정을 한다. 보증금을 모으기 위해 과일 가게 앞에서 고개를 돌리고, 활동보조인이 갑자기 오지 못 하는 날이면 축축한 엉덩이로 종일 천장만 보고 누워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은 지역사회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마치 신고식이라도 하듯 한번 씩 대성통곡을 한다. 힘들어죽겠다, 외로워죽겠다는 이야기는 해도 시설로 돌아가겠다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현재 국진 씨는 꽃동네에서 함께 생활하는 동료와 음성군수를 상대로 자립생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지난 해 12월 음성군에 사회복지서비스 변경 신청을 했는데, 퇴짜를 맞았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업법 제33조는 복지서비스를 이용하는 당사자가 자신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요청할 수 있게 돼 있다. 당사자가 서비스를 신청하면 관할 기관은 욕구 조사를 하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국진 씨는 음성군에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해달라고 신청했다. 하지만 군에서는 시설에서 나오면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될 수 있다 정도의, 누구나 아는 정보만 제공했다. 욕구조사도 없었다. 국진 씨는 음성군청이 자신이 제기한 사회복지서비스 변경 신청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에 문제제기하는 소송을 시작했다. 소송의 의미는 크지만 가족의 반대가 여전하고 소송이 잘 될지,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가족들은 내가 몸도 못 가누는데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 것이며, 몸이 갑자기 아프면 누가 병원에 데려갈 것이며, 갑자기 위험한 일이 나도 대처가 불가능하지 않느냐고 합니다. 시설에 있으면 다 알아서 해주는데 왜 그러냐고… 사람으로 살면서 그게 다가 아니잖아요. 내가 느끼는 기쁨, 그런 것이 없으면 아무리 좋아도 천국이 지옥이 되고, 지옥에서도 내가 기뻐하면 그게 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진 씨의 드라마는 아무래도 대하드라마가 되려나 보다. 야학에선 ‘포기’란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라고 말장난을 하곤 한다. 썰렁하지만 맞는 말 같다. 시설에 장애인을 가두는 것, 스스로 시설에 갇히는 것, 결국 서로 함께 살기를 포기한 것과 같다. 꽃동네 국진 씨가 어서 이곳으로 나오면 좋겠다. 활동보조가 없어 쩔쩔매고 대성통곡하는 시간을 겪어야할지도 모르겠다. 어제, 오늘, 내일이 다를 게 없다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보다, 후들거릴지라도 이곳에서 함께 사는 게 낫다. 삶은 밑바닥에서 만들어 가면 되는 거니까. 포기하는 것보다 투쟁하는 게 더 나은 결과를 만드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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