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자의 일기-3

from 단순한 삶!!! 2010/12/03 11:00

 

 

해고자의 일기 ❸ 당해 봤어? 아니면 말을 말어…….

 

1.해고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일찍부터 나돌았기 때문에 아내에게는 미리부터 말해 왔다. 해고가 될 것이고, 약간의 불편이 있겠지만 그리 오래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고, 또 나쁜 짓을 해서 해고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당당하다고 말했다.

아내는 “마음 편하게 먹고 지내라”고 위로를 해 줬다. 마음 편하게 먹고 지내라는 건 위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금새 불편으로 나타났다. 아침에 평소보다 조금 늦도록 미적거리고 있으면 아내의 한마디가 날라 왔고, 어쩌다 저녁에 일찍 집에 들어가면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밖에서 사람을 만나서도 ‘남편이 해고됐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실직자 남편이 있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이 모두 ‘무시한다’고 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남편이 직장이 없다는 것은 아내에게도 엄청난 부담이다.

 

2.누구를 만나든 당당하게 ‘나는 해고되었다’고 말해 왔지만, 부모님과 형제들에게는 그 말을 아직 못하고 있다. 아직도 부모님은 내가 안동에서 근무하고 있는 줄 알고 계신다. 수술하고 병원에 누워 계시는 어머님께 주말에 찾아 가면 “언제 올라왔냐? 안동에는 별일 없냐?” 하고 물어보신다. 그럼 지나치듯 작은 소리로 “예...” 하는 것으로 끝낸다. 뭐라 한마디도 덧붙일 수가 없다.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거짓말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이젠 만날 때 마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는 것도 당당하게 얘기해 왔고, 경상도가 고향이라 박정희와 박근혜가 좋다고 말씀하시는 아버지에 맞서서 좋은 점도 있지만, 해악을 끼친 것도 많다고 말싸움을 벌이기까지 해 왔지만, 나의 해고에 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다. 아무리 당당하고 잘못한 일이 없지만 해고되었다고 부모님께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부모님과 형제들을 속이고 거짓말 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고 괴롭다.

이런 사정으로 해서 그동안 꽤나 공들여서 만든 놀이터 블로그도 문을 닫고 있다시피 하다. 해고된 이후에 한건의 포스팅도 하지 못했다. 형제들이 블로그에 가끔 방문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 여기다 무슨 포스팅을 할 수 있으랴...

 

3.적게 벌어 적게 쓰고 살자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나 부부는 같은 생각을 하기도 어렵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집을 넓혀 가기를 바라고, 그걸 실행에 옮기는 건 여자다. 남자는 가정의 경제에 별다른 영향력이 없다, 내 경우에는.... 남자는 그냥 ‘돈 벌어 주는 기계’라는 말이 헛소리가 아닌 모양이다.

살던 집을 정리하고 새로운 집으로 옮기면 되겠다고 계산한 아내는 이를 실행에 옮겼지만, 옮겨 가야 할 순간에 살고 있는 집은 팔리지 않는다. 은행에서 돈을 빌어야 하는데, 직업이 없는 내게는 대출을 추가로 해 줄 수 없다고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의 연속이다. 실직자는 은행대출부터 받을 수 없다고 하던 선배 실직자의 한 마디가 현실이 되어 내게도 다가와 있다. 그러나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4.해고되면 시간여유도 있고, 일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으니까 마음 편하게 놀러라도 갔다 오라는 사람들도 있다. 돈도 돈이겠지만, 잠간 시간을 내서 친구들을 만나거나 바람을 쐬러 어디를 가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냥 불편하고 답답함이 남아 있다.

‘노동자에게 해고는 사형선고’라는 말이 있다. 정말 사형선고 맞다. 그렇게 사형을 시켜 놓고도 희희낙락하고 있는 인간들에게는 정말이지 뭐라 할 말이 없다.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한때는 시(詩) 한 줄 쓰기도 했는데...

저들이 그런 사형선고를 모를 리 없건만 굳이 해고를 강행하는 목적은 딱 한가지다.

“그냥 괴롭혀 주는 거다”

저들은 목적을 완전히 달성했다. 해고자는 엄청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니까

“해고당해 봤어? 안 당해 봤으면 말을 말어.....” 어느 개그맨의 유행어가 갑자기 생각난다. ■곽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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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3 11:00 2010/12/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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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험가 2010/12/03 12:1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백기완 선생 공연 때 박태하씨에게 들었어요. 요새 여기도 잘 안오게 되면서 몰랐네요. 암튼 드런 세상 영리하게 복수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