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접근할수 있는 안을 가져 오라 했는데, 사측은 움직임이 없다.

그러니 예정된대로 파업투쟁 출정식과 삭발식을 거행했다.

위원장과 지부장 두 사람이 삭발을 했다.

두 동지의 삭발을 바라보면서,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았다.

원래 무감각한 산오리의 감성이라지만,

그래도 요즘 들어서는 유행가 가사를 들으면서도 눈물이 날 것같고,

시덥잖은 가족이나 친구얘기가 라디오에서 나오면 코끝이 찡했는데...

 



오래전에 노동조합에서 파업을 앞두고 지부장(위원장)이 삭발을 하면

흰 천에 '파업투쟁 승리' '결사투쟁' 등이라 쓰인 밑글에다

그 잘라낸 머리카락을 한올, 한줌씩 테이프로 붙이면서 눈물을 흘렸다.

정말 눈물이 나왔고, 여성 조합원들은 엉엉 소리내어 울면서 잘라낸

머리카락을 한줌씩 들고 나가서 붙였다.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단식하는 동지가 있으면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그 단식농성장에 가서 정말 가슴메이게 숙연하기도 하고,

뭔가 할말이 없어서 그저 묵묵히 앉아 있다 돌아 오기도 했다.

요즘에 열흘 단식하면 경찰들도 그런단다.

"40일 단식한 사람도 많은데,,,,그거 가지고...."

경찰 뿐만 아니라, 나도 우리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파업을 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1백일 파업한 것은 어디가서 말도 꺼내지 말고,

1년 동안 파업한 것 가지고는 명함도 내밀지 말라는 말을

우리 스스로 너무 자연스럽게 한다. 그리고 수긍한다.

그러니 어떻게 감동을 느낄 수 있으랴...

오늘 집회에서 잠간 발언을 한 동지는 140여일 파업한 와중에

열흘(보름?)동안 단식한 노조위원장을 수갑을 채워서 끌고 다니다 유치장에 가두었단다.

열흘동안 굶은 강아지가 있다면 그 강아지 발 다 묶어서 질질 끌고 다니지는 않았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도, 우리도, 우리의 적들도 자극에 대해 무디어져 가고 있다.

엄청 무디어져 버렸다.

적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기본적인 인간성마저 잃어 가면서

나는 정말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 가만 생각해 보니 오늘이 11월 18일이다.

      이제 한달 후면 이 고민도 사라질까?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처럼

      보이지 않음으로 해서 나는 좀 더 인간적일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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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8 21:40 2004/11/1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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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옛글] 불감증의 시대를 뛰어넘어라

    Tracked from 2004/11/19 08:28  delete

    * 이 글은 산오리님의 [무디어져 가는 인간성 - 자극에 대한 면역] 에 관련된 글입니다. 노동조합이 대자보 하나만 붙여도 통하던 때가 있었다. 야간농성만 들어가도 사용자가 벌벌 떨던 시절

  2. Subject: 너무나 새로울 따름

    Tracked from 2004/11/19 11:43  delete

    다른 사람들에겐 어쩐지 모르나 난 자꾸 보게 된다. 그렇다고 투쟁의 기운이 활활 타오른다는 건 아니다. (내 몸 속에 투쟁의 피가 흐르고있기나 하나?) 알던 사람이기에 다르게 와 닿는 것

  1. hi 2004/11/18 22:4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내성이 생겨가는 듯 합니다. 마약처럼... 인간한계에 도달할 정도나 되야 고작 이야기거리가 되어버리는 시대, 고통이라는 것이 도처에 너무 흔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 아닐지... 그러다보면 글쎄요, 가끔은 "인간적"이라는 말이 뭘 의미하는지 궁금해지네요. 이젠 눈물조차 나지 않는...

  2. babo 2004/11/19 16:1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니까 그래요. 단순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리고 자본과 정권이 하두 공격을 해대니까 우리의 저항의 강도도 커져가고 있다는 것 아닌가? 요즘에는 웬만한 강도로는 사람들 감성이 꿈쩍도 안한다니니까...

  3. azrael 2004/11/20 15:4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그만큼 적들이 독해지고, 우리도 내몰리고 있는거 같어요...여담이지만...저도 작년에 투쟁하느라 삭발을 했었는데...약발이 며칠 안가더라구요..다들 나중엔 귀엽다는 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