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썰매장

from 아무그리나 2007/01/21 23:36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눈썰매장을 다녀왔다.

 

파주 법원리에 있는 쇠꼴마을 눈썰매장이다.

주로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참여했고 파키스탄, 스리랑카 친구들도 함께 갔다.

 

나도 처음 타는 눈썰매라 은근히 기대되었다.

처음 타 본 눈썰매는 생각보다 속도가 빨랐다. 순식간에 언덕 아래까지 도착했는데 눈가루를 흠뻑 뒤집어 써야했다.

 

 

 

 

 

 

눈썰매를 한 2시간 정도 타고 나서 고구마를 구워먹었다. 그리고 말뚝박기, 닭싸움 같은 한국전통놀이와 네팔의 전통놀이도 하였다. 네팔전통놀이는 공으로 사람을 맞추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하는 놀이와 비슷했다. 모두들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놀이규칙가지고 마구 싸우는 등 정말 유치하게 놀았다. 뭐니뭐니 해도 이런 놀이는 유치해야 재미있다.

 

 

 

다시 금촌으로 돌아오는 길은 저절로 졸음운전이 되었다. 오랜만에 밖에서 한참 뛰어놀았더니 온몸이 나근해짐을 느꼈다. 지금 집에 돌아와 아이랑 한판 씨름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너무너무 피곤하다.

 

그래도 오늘 이 추억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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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1 23:36 2007/01/21 23:36

아들 산이가 아파서 응급실에 가게 되었다.

 

요즘 유행하는 장염에 걸렸다고 했다. 처가집 식구들이 모조리 걸리더니 옮았나보다.

 

밤에 자다가 두 번이나 구토를 하고 설사를 하더니 몸에 열까지 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애기 데리고 병원 뛰어다니는 일)이 들었다.

 

영문도 모르고 울기만 하는 아새끼가 정말 불쌍했다.

 

그리고 응급실에서 피뽑으면서 처음으로 아새끼 피를 보았다.

 

정맥에서 뽑아서 그런지 껄쭉해보이는게 정말 물보다 진해보였다.

 

애기 피도 어른 피랑 똑같았다.

 

다행히 저녁이 되어 다시 한 피검사에서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와 퇴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종일 병원에 있는 것은 어른 들에게도 힘든 일이다.

 

병원의 공기는 일부러 그런건지 무척 탁하다. 멀쩡한 사람도 환자가 될 것 같다.

 

지금 아새끼도 쓰러져 자고 애미애비도 쓰러질려구 한다.

 

병원은 정말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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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4 20:41 2007/01/14 20:41

등록서류를 만들면서 약력을 보니 2004,2005,2006년 당대의원이었다. 이번에도 선출되면 4선 의원이다.

 

그러다보니 사실 처음에 가졌던 의욕이 많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좀 쉬려고 했으나 사람이 모자란다는 '감언이설'에 또 속았다.

 

결과는 경선! 6명 선출에 무려 10명이 등록했다.

 

맨날 사람이 없어서 허덕이던 당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갑자기 간부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번에 대의원이 되면 대선 특별당비를 내야한다는 걸 알고 있는걸까?(아마 모를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기호가 8번이라는 것.

 

대충 후보들의 면면을 보니 전교조 같이 대중조직의 지원을 받는 분들이 많다.

 

나처럼 혼자 싸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는 걸로 봐서

 

이번에 아주 제대로 걸린 것 같다.

 

떨어지면 이 핑게로 1년은 편하게 살 수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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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9 17:09 2007/01/09 17:09

쥐를 잡다.

from 아무그리나 2007/01/04 22:37

오늘 나눔꽃에 들어온 쥐를 잡았다.

 

현관 샤시 사이로 난 조그만 구멍으로 들어온 듯 했다.

 

여성들만 있는 우리 단체에서는 내가 남자라는 이유로 쥐잡기에 불려갔다.

 

물론 나도 정말 가기 싫었다.

 

그러나

 

남자라는 이유로 불려가고 말았다.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가는 길에 월드푸드에 들려 쥐잡는 끈끈이 판을 빌렸다.

 

그리고 파키스탄에서 오신 남자분 한분을 더 끌어들였다. 아무래도 나 하나로는 부실해보였나보다.

 

나눔꽃에 도착하니 모두 의자위에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끈끈이판을 쥐가 나온 구멍 앞에 놓고 쥐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영리한 쥐는 끈끈이 판에 올려놓은 멸치만 빼먹고는 좀체 나오지 않는다.

 

몇번을 씨름한 후에 마침내 쥐가 나오다가 끈끈이 판에 한쪽 다리가 붙었다.

 

쥐는 그 다리를 빼려고 움직이다 나머지 몸이 모두 끈끈이 판에 붙어버렸다.

 

몸을 움직일 수록 끈끈이는 쥐의 몸에 더 바짝 붙었다.

 

쥐가 "찌-익"하는 긴 비명을 질렀다.

 

나는 아직도 펄떡대고 있는 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쥐가 붙어있는 끈끈이 판을  반으로 접었다.

 

쥐는 보이지 않았으나 쥐의 움직임때문에 끈끈이 판이 덜썩거렸다.

 

검은 비닐종이에 그 끈끈이 판을 집어넣고 입구를 묶었다.

 

그리고 쓰레기 봉투에 넣어서 버리는 곳에다 버렸다.

 

쥐는 아마 곧 굶어죽거나 밤새 얼어죽을 것이다.

 

운좋게 목숨이 붙어있다해도 쓰레기처리장에 가서 다른 쓰레기들과 더불어

 

땅에 묻혀버릴 것이다.

 

우리는 쥐를 버린 쓰레기 봉투에 죽은 국화꽃더미도 함께 넣어주었다.

 

쥐띠인 내가 쥐를 잡으려니 더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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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4 22:37 2007/01/04 22:37

새해 소원

from 아무그리나 2007/01/02 23:22

간절히 바란다면 이루어진다고 했다. 소원을 빌어보자.

 

1. 이라크에서 미국이 졸라 쪽팔린 모습으로 쫓겨나게 해주세요. 자이툰도요.

 

1.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후보가 '깜짝 놀랄' 표를 얻게 해주세요.

 

1.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철썩 뭉쳐서 한판 멋지게 싸워 이기게 해주세요.

 

1. 한미FTA '쫑'나게 해주세요. 덤으로 한중,한일,한-EU....등등 도

 

1. 평택 대추리에서 다시 농사짓게 해주세요.

 

1. 북한과 아프리카 등에서 굶어 죽는 애들 안나오게 해주세요.

 

1. 집값 좀 폭삭 내려주세요.

 

1. 이주노동자들 그냥 좀 일하게 놔두라고 해주세요.

 

1. 민주노동당, 그만 싸우게 해주세요.(지들끼리)

 

1. 우리 산이를 비롯해 가족들 모두 건강하게 해주세요.

 

1. 머리 더 안빠지게 해주세요.

 

 

나머지 더 생각나는 거 있으면 그때 그때 또 빌께요.^^

 

 

근데 누구한테 비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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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2 23:22 2007/01/02 23:22

오랜만에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았다. 그것도 허리우드 극장에서. 허리우드 극장은 정말 강북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10년전과 비교해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다만 극장의 간판과 내부 인테리어가 조금 변했는데 주변은 그대로다.

게이들의 사랑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한국에서 존재했던가? 암시나 곁가지로 동성애 코드를 이용한 경우는 최근 들어 많이 늘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보여준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사랑은 계급적 차이와 사회적 차별을 뛰어넘는다는 신파적인 소재지만 동성애자들이 느끼는 미묘한 감정들 그리 촌스럽지 않게 잘 보여주고 있다.

다만 영화속에서 재벌가 외아들로 나오는 주인공의 차가 포텐샤(!)라는 것이 영화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한다. 저예산 영화의 슬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강북을 중심으로 서울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눈을 즐겁게 하고 무엇보다 영화음악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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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30 23:52 2006/12/30 23:52

이라크전 징집을 앞둔 미 육군 소속 예비군이 낙담에 빠져 크리스마스 날 밤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며 14시간 대치한 끝에 사살됐다고 미 언론들이 27일 보도했다.

 비극의 주인공은 이미 이라크전에 참전, 18개월간 복무했던 올해 28살인 제임스에머릭 딘.

 보도에 따르면 딘은 이라크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또다시 징집명령을 받자 낙담에빠져 지내던 중 25일 밤 메릴랜드주 레오나드타운의 아버지 집에서 몇가지 총기류로무장한 채 바리케이드를 치고 자살하겠다고 위협하며 경찰과 대치를 시작했다.

 딘은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게 누구든 집안으로 들어오면 쏘겠다고 위협했고 경찰이 딘을 집밖으로 나오도록 하기 위해 최루탄을 사용하려고 하자 경찰관에게 수차례 총격을 가하기도 했으며 결국 응사에 나선 경찰의 총에 사살됐다.

 가족들은 딘이 최근 이라크 징집명령을 받고 낙담에 빠졌다고 경찰에 밝혔다.

<워싱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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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8 11:57 2006/12/28 11:57
12월26일 저녁 인천공항을 통해 스리랑카로 돌아갔습니다. 옷가지가 들어있는 가방 1개가 함께 동행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그간 사만타씨를 위해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생업을 거의 놓다시피하며 동분서주 노력한 니로산씨,
사업주와 달리 끝까지 사만타를 돕기 위해 애써주신 박봉호 공장장님,
넉넉지 않은 형편임에도 200여만원의 돈을 모아주신 공장동료들,
시신을 본국까지 보내는데 도움을 주신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와 김봉천 목사님,
어려운 사정을 듣고 흔쾌히 도움을 주신 외국인의료공제회분들,
이메일을 보고 후원을 해주신 정재룡 회원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애써주신 백병원 의사,간호사 선생님들과 원무과직원분들,
대사까지 직접 찾아와서 일이 빨리 해결되도록 도운 주한스리랑카대사관 분들....등등등
미처 열거하지 못한 분들까지 포함해 모두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사만타씨가 이제 길고 험난했던 여정을 끝내고 가족들이 있는 고향에서 영원히 편안하게 잠들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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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7 15:06 2006/12/27 15:06

사만타를 본국으로 보내는 일이 얼추 마무리되었다. 다음주 화요일 밤에 비행기로 가게 된다. 그때까지 서울의 한 장례식장 영안실에 누워있을 것이다. 일이 좀 정리되니까 며칠간 있었던 일들이 다시 떠오른다. 누군가의 임종을 지킨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의사의 급한 호출로 중환자실에 들어가면서도 난 사만타가 죽을 것 같지 않았다. 이번에도 지금껏처럼 고비를 넘길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만타는 이미 몇 번의 심폐소생술에도 불구하고 맥박이 50이하에서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침대주변은 인공적으로 심폐소생을 하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피들로 얼룩져있었다. 갈비뼈도 대부분 부러져서 가슴이 쪼그라들어보였다. 의사는 앞으로 30분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 사이에도 맥박이 제로가 되기도 하였다. 의사가 급히 가슴을 치고 약을 좀더 투입해서 다시 30~40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있지 않아 다시 맥박이 제로가 되었다. 의사는 더 이상 손을 쓰지 않았다. 심장이 멈췄음을 알리는 기계신호가 삐-익하고 길게 울렸다. 사망을 하였지만 사만타의 가슴은 인공호흡기때문에 위아래로 움직였다. 움찔하는 듯한 움직임도 없었다. 체온도 아직 그대로였다. 사만타의 손을 세게 잡아주었다. 왠지 그렇게해야할 것 같았다. 죽은 사람의 몸을 만진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불운했던 그의 인생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린다는 것이 슬펐다.

 

중환자실은 엘리베이터로 바로 영안실과 연결되어 있었다. 중환자실은 지하1층이고 영안실은 지하2층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는 겨우 한 층밖에 되지 않았다. 영안실 직원들은 밝고 친절했다. 산 자를 다루는 중환자실 의사와 간호사들보다 얼굴이 훨씬 밝았다. 혹시 영안실 측에서 일부러 그렇게 교육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사는 게 오히려 더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 생각을 들게하였다. 하긴 영안실 직원들이야 업무상 아무리 큰 실수를 해봤자 뭐 더 나빠질 것이 없으니까. 의사들이 폭주를 즐기는 것도 이해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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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4 18:17 2006/12/24 18:17
공장에서 발생한 추락사고로 백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던 스리랑카 노동자 사만타씨가 끝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19일 오후5시50분경 사망하였습니다. 뇌를 많이 다쳐 뇌수술을 2차례나 받고 힘들게 버텨왔지만 뇌상태가 호전되었음에도 다른 합병증이 발병하여 결국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올해 나이는 36세이고 아직 미혼입니다. 지난4월에 한국에 와서 김포에 있는 공장에서 일해왔습니다. 사고 당일엔 인근의 친구가 다니는 공장에 놀러갔다가 어둠속에서 실족하여 3m 높이의 축대에서 떨어졌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만약 다음 세상이 있다면 꼭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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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9 23:25 2006/12/19 2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