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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서 고민을 했었는가?

 

나는 정말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서 고민을 했었는가?


손미아 


나도 예전에 비정규직으로 일했었다. 인턴을 마치고 일반의로 일할 때였다. 그 당시 어느 직업소개소가 소개시켜주는 병원을 찾아가면,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여자라고 퇴짜를 놓았고, 그나마 아주 저임금의 조건으로 나를 받아주는 곳이 가끔 있었다. 임금은 보통의사의 절반이하였다. 한번에 며칠이고 몇 달이고 일을 하게 되는데, 받은 임금으로 10%이상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식비, 차비 등등을 지불하고 나면 실제 남는 것은 거의 없었다. 어느 경우에는 단 하루를 일하더라도 수수료를 고스란히 직업소개소에게 내야 했다. 그때 나는 여자라고 고용을 안하려는 그 병원장도 미웠지만, 그 허름하고 보잘 것 없는 민간직업소개소는 나의 목줄을 쥐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 당시 직업의 불안정성때문에 내가 느꼈던 것은 “이러다가 어디서 죽게된다 하더라도 아무도 모르겠구나!”하는 불안감이었다. 지금에 와서 나는 정말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서 고민을 했었는가?


지난 6월, 영국의 포드공장내의 노동조합 간부와 노동자들과 스웨덴의 금속노동조합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만났을 때,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과 비교해보고 놀랐다. 영국과 스웨덴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과 복지수준은 정규직 노동자의 그것들과 동일하다고 한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동일한 작업장에서 동일한 업종에 일하고 있는 한 무조건 노동조합에 가입되거나 가입할 것이 권고된다고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당연히 정규직과 동일한 노동조합에 가입을 하고 있다고 했다. 동일한 작업장에서 일을 할 경우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자간의 노동계약관계가 불안정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노동조건들은 정규직 노동자들과 같다고 했다. 나는 그때 우리보다 더 좋은 조건이라는 것에 놀란 것이 아니라, 남한의 비정규직의 문제를 나 스스로도 이미 고착화된 상태로 바라보지 않았는가? 하는 자책과 부끄러움이 들었었다. 노동자의 건강에 관한 현장조사 등으로 노동현장을 남들보다는 많이 돌아다닌다고 자처하는 나 스스로 얼마나 정말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했었는가? 혹시 비정규직의 증가경향과 노동조건을 무의식적으로 당연하게 여기게 된것이나 아닐까?


최근에도 나는 자본가들이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서 ‘노동자인정을 반대‘하고, 노동부는 ‘유사근로자’라는 명칭을 쓰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현실”을 그냥 무심히 보고 있지는 않았는지...... 현재의 정부와 자본가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사실은 꼭 마치 10년전 남아프리카에서 백인지주와 자본가들이 흑인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노예로 인정하고 있는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남아프리카에서 불과 10년전까지만해도 백인지주와 흑인노예의 관계(형식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불평등한 관계)만이 인정될 뿐 백인자본가와 흑인노동자의 관계(형식적으로는 평등한 계약관계인것처럼 보이나 실제 내용적으로는 불평등한 관계)가 인정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남아프리카에서 흑인이 법적으로 노동자임을 증명하는 노동계약서를 체결할 수 없었듯이, 현재 남한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근로계약서”체결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는 그렇게 공장을 돌아다니면서도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는가? 남아프리카에서의 백인자본가들이 흑인노동자들에게 노동계약서를 쓰지 못하게 한 이유는 노동자로써 인정하지 않고, 그럼으로써 노동의 댓가로써 굶지 않을 정도의 곡식 몇알을 주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한데에 있었듯이, 남한의 정부와 자본가들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노동계약서에 의한 임금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임금을 주면서도 그렇게도 당당한 것이다. 남한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력의 댓가도 못 받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1/2의 임금을 받고 사니 법적으로 인정된 노동자도 아니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생겼는가?


나는 노동현장에 갈 때마다 자본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이중의 착취가 더욱 강화되는 것을 보면서 깜짝 놀라곤 한다. 최근들어 원청과 하청사업주에 의한 이중의 착취구조는 점점 노골화되고 있다. 임금계약은 하청업체와 하고, 작업장의 통제는 원청관리자에 의해서 통제를 받는 구조, 이러한 구조역시 비정규직 노동자의 존재근거의 부당성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며칠전 한 금속산업 노동현장에서 노동강도를 측정하기위하여 공장에 들어가서, 어느 곳을 지나려니 갑자기 와르르 사람들이 모여서 비오듯이 흐르는 땀을 씻어내지도 못하고, 정말 쉴틈없이 일을 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여기에서는 중량물을 옛날 농부들이 쌀자루 지고 나르듯, 거의 80kg에 해당하는 의자철골구조물을 순식간에 노동자 두 세명이 들어서 올리고 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정말 저러다가 허리가 뿌러지는데...’ 하고 있는 사이, 그들이 일하는 이 부산한 작업현장에는 가끔 아주 말쑥하게 차려입은 00팀장이라는 명찰을 단 원청 관리자들이 나타나서는 “시간내에 다 못끝내면 철야야!”하면서 지나간다. 작업장내에서 보이는 계급구조이다. 차례로 한명씩 나타난다. 원청 관리자가 와서 실제적인 감독과 관리를 하고 있다. 하청업주는 보이지도 않는다. 결국 동일한 자본가와 관리자에 의해서 관리감독을 받으면서 도대체 왜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고용이 되었는가?


현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는 왜 잉여노동을 해야하는가?도 정상적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매우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이중의 자본가에 의한 이중의 착취를 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는 더욱 열불나는 상황이다. 도대체 계약은 하청업주와 원청 사업주가 해놓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제적인 통제와 관리는 왜 원청사업주가 하며, 이 작업현장에 노동자의 잉여노동을 원청사업주와 함께 나누어 먹기 위해 등장한 하청사업주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자본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규직 노동자도 비정규직 노동자도 모두 자본에 의해서 착취를 당하고 있는데,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이간질시키며, 구별해내려고하고, 경쟁을 시키면서 그들에게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고 하고 있는데...... 노동자들은 자본가가 원하는대로 서로의 신뢰가 깨져야 하는가? 더 이상 서로의 신뢰가 깨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문제의 근원은 원청∙하청사업주에게 있지 않는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로 호흡을 맞추어서 공동의 칼날을 자본가계급에게 겨누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전국적 차원에서 자본의 이중적인 착취구조를 폭로하고 원청∙하청 자본가에 대항해서 공동의 투쟁을 만들어 나가자.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동의 조직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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