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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살다가 가끔 생각나는 고향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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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06/08
    풍란(1)
    봄-1

입춘-백석시인의 글

 

입춘(立春)

백석


이번 겨울은 소대한 추위를 모두 천안 삼거리 마른 능수버들 아래 맞았다. 일이 있어 충청도 진천(鎭川)으로 가던 날에 모두 소대한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공교로이 타관 길에서 이런 이름 있는 날의 추위를 떨어가며 절기라는 것의 신묘한 것을 두고두고 생각하였다. 며칠내 마치 봄날같이 땅이 슬슬 녹이고 바람이 푹석하니 불다가도 저녁결에나 밤 사이 날새가 갑자기 차지는가 하면 으레 다음날은 대한이 으등등해서 왔다. 그 동안만 해도 제법 봄비가 풋나물 내음새를 피우며 나리고 땅이 눅눅하니 밈이 돌고 해서 이제는 분명히 봄인가고 했는데 간밤 또 갑자기 바람결이 차지고 눈발이 날리고 하더니 아침은 또 쫑쫑하니 날새가 매찬데 아니나다를까 입춘이 온 것이었다. 나는 실상 해보다 달이 좋고 아침보다 저녁이 좋은 것같이 양력(陽曆)보다는 음력(陰曆)이 좋은데 생각하면 오고가는 절기며 들고나는 밀물이 우리 생활과 얼마나 신비롭게 얽히었는가.

절기가 뜰 적마다 나는 고향의 하늘과 땅과 사람과 눈과 비와 바람과 꽃들을 생각하는데 자연이 시골이 아름답듯이 세월도 시골이 아름답고 사람의 생활도 절대로 시골이 아름다울 것 같다. 이번 입춘이 먼 산 너머서 강 너머서 오는 때 우리 시골서는 이런 이야기가 왔다. 우리 고향서 제일가는 부자가 요즈음 저 혼자 밤에 남포불 아래서 술을 먹다가 남포가 터지면서 불이 옷에 닿아 그만 타죽었다 했다. 평소 인색하기로 소문난 사람인데 술을 먹되 누구와 같이 동무해 먹지 않았고 전등이나 켤 것이지 남포를 켰다가 변을 당했다고 하는 시비가 이야기에 덧묻어 왔다. 또 하나는 역시 우리 고향에서 한때는 남의 셋방살이를 하며 좁쌀도 되술로 말아먹고 지나던 사람이 금광(金鑛)에 돈을 모으고 얼마 전에는 자가용 자동차를 사들였다는 이야긴데 여기에는 또 어떤 분풀이 같은 기운이 말 끝에 채이었다.

오는 입춘과 같이 이런 이야기를 맞으며 나는 생각했다. 내 시골서는 요즈음 누구나 다들 입을 삐치거나 솜씨를 써가며 이 이야기들을 할 것인데 그럴 때마다 돈과 목숨과 생활과 경우와 운수 같은 것에 대해서 컴컴하니 분명치 못한 생각들이 때로는 춥게 때로는 더웁게 그들의 마음의 바람벽에 바람결같이 부딪치고 지나가는 즈음에 입춘이 마을 앞벌에 마을 어귀에 마을 안에 마을의 대문간들에 온 것이라고

이런 고향에서는 이번 입춘에도 몇 번이나 '보리 연자 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말을 하며 입춘이 지나도 추위는 가지 않는다고 할 것인가.

해도 입춘이 넘으면 양지바른 둔덕에는 머리칼풀의 속움이 트는 것이다. 그러기에 입춘만 들면 한겨울내 친했던 창애와 썰매와 발구며 꿩 노루 토끼에 멧돼지며 매 멧새 출출이들과 떠나는 것이 섭섭해서 소년의 마음은 흐리었던 것이다. 높고 무섭고 쓸쓸하고 슬픈 겨울이나 그래도 가깝고 정답고 흥성흥성해서 좋은 겨울이 그만 입춘이 와서 가버리는 것이라고 소년은 슬펐던 것이다.

그런 소년도 이제는 어느덧 가고 외투와 장갑과 마스크를 벗기가 가까워서 서글픈 마음이 없듯이 겨울이 가서 슬퍼하는 슬픔도 가버렸다. 입춘이 오기 전에 벌써 내 썰매도 멧새도 다 가버린 것이다.

입춘이 드는 날 나는 공일무휴(空日無休)의 오피스에 지각을 하는 길에서 겨울이 가는 것을 섭섭히 여기지 못했으나 봄이 오는 것을 즐거이 여기지는 않았다. 봄의 그 현란한 낭만과 미 앞에 내 육체와 정신이 얼마나 약하고 가난할 것인가. 입춘이 와서 봄이 오면 나는 어쩐지 까닭모를 패부(敗負)의 그 읍울을 느끼어야 할 것을 생각하면 나는 차라리 입춘이 없는 세월 속에 있고 싶다.

(조선일보 193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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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송만규의 재첩을 잡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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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를 타는 대우조선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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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 춘천에 핀 유채꽃

 

한겨울에 춘천에 핀 유채꽃


손미아 


유채꽃 이파리가 어떤것인줄도 몰랐었다. 우연히 춘천 학교 언덕 공터에 누군가에 의해서 씨앗이 뿌려진 것 같은 자리에 두꺼운 이파리를 가진 서양채소 같은 것이 파릇하게 올라오길래 오며가며 뜯어다가 고추장에 찍어먹기도 하고, 마요네즈에 버무려먹기도 했었다.


몇사람들에게 저 채소를 왜 안뜯어먹느냐고 물어도 보았었다. 그런데 우연히 엘리베이터앞에서 그 채소를 뜯어오는 것을 본 학교 청소 아주머니께서 그것이 바로 유채라고 말씀하셨다.. 아 유채!! 맞다!! 마치 이파리가 두툼하여 맑간 “수채화”의 이미지보다는 짙은 초록의 “유채화”의 의미지가 더 났었는데... 어쨌든 아주머니로부터 그것이 동자대에서 심은 것이란 것과, 봄에 유채꽃을 보려고 심어두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얼마전에 대전역을 가기위하여 대전시내를 흐르는 하천을 따라 택시를 타고 가다가 푸르고 보랏빛을 띠는 유채를 보았다. 춘천것보다 훨씬 웃자라있었다. 대전의 택시기사아저씨도 저것이 유채라고 말씀하신다.. 대전에서는 겨울을 나고 당연하게 봄에 꽃이 피겠지... 설마 춘천에서도 봄까지 견디고서 꽃을 피울까? 한겨울 된서리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오늘 아침에 춘천의 학교 언덕에있는 유채가 새벽서리를 맞고 고스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견딜수 있을까?


유채꽃이 이렇게 고된 겨울을 지나서 샛노란 꽃을 피우는 지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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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란

 

풍란

글 손미아


제 온 몸을 내보이지 않고서는


썩는구나


고이지 말 것,


묻히지 말 것,


언제나 바람으로 소통할 것을


풍란은 몸소 보여주고 있다.


소통하라.


소통하라.


바람과 세상, 그리고 소통하라.



 

오늘 썩어가는 풍란의 뿌리를 잘라내다.


아, 단 하나의 뿌리만 남았어도 난잎의 건재함은 무엇을 말함인가?


뿌리의 거룩한 희생이 잎사귀에게 보이려는 충성심인가?


아니면, 끝까지 구차하지않게 아름답게 살려는 의지인가?


 


 

나의 안쓰러움과는 상관없이


풍란은 그렇게 고고하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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