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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11/13
    방문 이벤트 *^^*(10)
    hongsili
  2. 2004/11/09
    캠브리지 첫 눈(5)
    hongsili
  3. 2004/11/01
    시간 바이러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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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4/10/22
    조카 편지
    hongsili
  5. 2004/10/21
    빨간 양말의 우승(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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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4/10/21
    캠브리지 생활 #5 - 요리 이야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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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4/10/19
    캠브리지 생활 #4(6)
    hongsili
  8. 2004/10/04
    친구의 궁금증을 풀어주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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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4/09/23
    invisible people(1)
    hongsili
  10. 2004/09/21
    캠브리지 생활 #3
    hongsili

노동의 기록 [2]

내용도 허접하고 영어는 더욱 허접했던 오늘의 발표. 아... 좌절이다. 내일 또다른 제 2, 제 3의 허접 발표가 또 기다리고 있으니 이번 주 좌절 연속이다. 듣는 사람들도 괴로웠을 거다. 어찌 보면 고마운 사람들 (ㅜ.ㅜ)...

 

이 와중에 짬을 내어 글을 쓴다. 망중한이라 했던가.. 나의 방어기제는 급한 일들이 많아지면 역치가 상상초월 수준으로 높아져서 마음이 오히려 안정된다는 것. 아마도 무의식 세계는 지금 난리굿이 벌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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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갑 만들기

이건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했던 일 같다. 연대기는 주로 살고 있었던 집에 근거해서 파악할 수 있다. 전세방을 옮겨다녔기 때문에 기억나는 집의 구조를 통해 시대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장갑이라 함은 털장갑이 아니라 (가짜) 가죽 장갑(진짜였을지도 모르겠으나 어린 시절이라 구분이 불가능), 결혼식 등의 예식에 사용하는 레이스 장갑, 체육대회나 각종 테이프커팅 행사에 사용하는 흰색 장갑을 말한다. 나이 드신 아저씨 한 분이 재단된 보따리를 우리집에 풀어놓고 가면 재봉틀로 바느질하고, 마무리해서 뒤집는 것이 일이었다. 엄마는 재봉틀에 앉아서 재단된 감을 두장 겹쳐 손가락 모양을 따라 박음질을 하셨고, 내가 주로 했던 일은 감을 재봉틀에 올려주기, 경쾌한 소리와 함께 줄줄줄 꽈배기처럼 내려오는 장갑들을 쪽가위로 잘라서 하나씩 떼어놓기, 모양을 내기 위해 2차 박음질이 필요한 장갑들을 다시 재봉틀에 올려놓기, 그리고 마지막에 뒤집기 등이었다.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까 오빠는 일을 별로 거들지 않았던거 같다. 이미 그 때 학생이어서 그랬나?  그래봤자 초등학생인데? 하여간 장갑이 재봉틀에서 뚝딱 만들어져 내려오는 모습은 무척이나 신기하고 재밌었다. 새로운 장갑이 오면 꼭 끼어보고는 했다. 그렇게 많은 레이스 장갑이 필요하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우리 집 말고 이 일을 하는 곳이 또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엄마 없을 때 재봉틀에 올라가서 전등 켜놓고 장난치다가 감전되어 화들짝 놀랬던 기억은 난다. 너무 어린 시절이라 우리 엄마가 받았던 임금이 얼마였는지는 도저히 모르겠다. 그러나 실밥이 많이 날렸고, 엄마가 하루종일 백열전구 밑에서 일을 하면서 몹시도 힘들어했었다는 건 기억이 난다. 

 

2. 라디오 부속품?

그 때도 몰랐고 지금도 여전히 그 용도가 무엇인지 짐작이 안 가는 품목이다. 길이 1~2센티미터 되는 플라스틱 사출물 ("ㄷ" 모양)의 홈에 여러 개의 철심을 끼우고 자그마한 프레스 같은 것으로 꾹 눌러주는 것인데, 사람들 말로는 이것이 라디오의  부속품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이 일은 우리 동네 전체에서 아주 인기(?)있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좋아해서 한 거 같지는 않고, 인근 공장에서 물량이 딸려 온 동네에 이 일을 뿌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단가가 무지하니 싸서 천 개를 조립해야 겨우 백원 정도 받았던 거 같다. 그 때도 힘든 것에 비해 가격이 형편없이 싸다고 온동네 사람들(울 엄마, 아줌마들, 그리고 동네 아이들)이 욕했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길이도 안 하는 철심 대여섯 개를 하루 종일 박고 있다보면 손가락 허물이 벗겨지고 시커멓게 색도 변하고, 어깨도 아프고, 무엇보다 쇳가루 플라스틱 가루가 많이 날렸다. 그래서 이 일은 주로 마당, 골목길에 옹기종기 모여앉아서 하고는 했다. 겨울에는 일이 없었나?

 

3. 신발 주머니

울 엄마가 처녀 적에 익힌 재봉 기술은 두고두고 우리 집 살림에 큰 (아니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중학교 동안에는 신발주머니 만드는 일을 하셨다. 근데 이게 이쁜 만화 그림 그려진 신발주머니가 아니라 시커먼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그야말로 가장 싸구려 품목이었고 울 엄마는 남는 천을 이용해서 우리 신발주머니랑 도시락 가방 같은 것도 만들어주셨다. 정말 뽀다구 안 나는 품목이었다. 이것도 장갑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엄마한테 재단된 감 올려주고, 줄줄이 내려오는 신발주머니 받아서 쪽가위로 자르고, 실밥 정리해서  다시 올리고, 그리고 마지막 뒤집기.. 먼지는 장갑보다 덜했던거 같은데, 천에서 나는 화학약품 냄새가 싫었고, 무엇보다 감이 뻣뻣해서 뒤집기를 할 때 손의 피부가 많이 상했던거 같다. 임금은 역시 형편없이 낮았던 걸로 기억되고 심각했던 것은 물량 공급과 기한이 일정치 않아서 아주 늦은 밤까지 일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 무렵 다른 집들에서는 또다른 일감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레이스 자르기. 이게 뭐냐 하면, 레이스는 보통 넓은 폭으로 한꺼번에 여러 칼럼(?)이 직조되는데, 그걸 가위로 잘라 분리하여 여러 개의 레이스를 만드는 것이다. 이 일도 먼지가 굉장히 많이 날리고, 하루 종일 가위질을 해야하는 데다가, 집중(!!!)이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에 힘들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또 기억나는 일은 구슬 만드는 일인데.. 목걸이 알처럼 가운데 구멍이 뚤린 구슬의 양쪽을 실로 왔다갔다하면서 겉을 감싸는 일이다. 장식용 비드처럼 쓰였던거 같은데, 나중에 고정을 시키는 본드 냄새가 문제였다.

 

4. 내가 학업도 작파하고 이런 일에만 매달렸다는 것은 아니다. 울 엄마한테는 이게 생업이었지만 나에게는 어디까지나 효도의 한 품목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그렇게 일하는데 옆에 디비져 누워서 텔레비전이나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어려서는 싸가지가 있는 편이었다). 친구들이 놀러오면 같이 신발주머니를 뒤집으면서 수다를 떨었던 기억도 난다.

울 아빠가 실업자도 아니었고, 빚보증을 잘못 서서 가정 경제가 파탄난 것도 아니었는데, 항상 그렇게 아둥바둥 일해야 먹고 살 수 있었다는게 새삼 놀랍다. 울 엄마의 (생업에 가까운 부업)  행렬은 최근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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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기록 [1]

각종 세미나 발표"들"이 임박한 가운데, 또다시 잡념이 왕성하게 들끓어오른다. 병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내가 해보았던 노동 혹은 부업에 대해 정리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봤자 뭐 대단한게 있을까마는... 시골에서 자라나 어린 시절 닭서리하고 논밭에 나가 부모님 거들고... 우리 세대에도 이런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서울 달동네에서 내내 살아온 나에게 이는 책과 드라마에만 존재하는 유사체험이다. 농활가서 9박 10일 있어본게 나의 가장 긴(!) 농촌 생활이다. 그런데 도시 아이들이라고 매일 다방구하고 구슬치기만 했던 것은 아니며, 집안 일을 거들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설겆이하고 빨래하고.. 이런걸 했다는게 아니라... 고만고만한 동네에서 엄마들이 많이 했던 부업(? 말이 부업이지. 이거 없으면 살기 힘들다) 이야기다. 음.. 이야기는 1) 초중고 시절의 가내 부업 도우미, 2) 대학 시절의 알바, 3) 대학 졸업 이후의 각종 돈벌이.. 발전과정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사실 이걸 써보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 것은 아니다. (또 시작이 영 창대한걸... 꼭 이러다가 본론은 못 쓰지) 대학에 입학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수련의/전공의 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대학이라는 곳에 취직을 하면서 나는 어울리지 않는 곳에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우리 집이 특별히 가난하다고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우리 집보다, 우리 동네보다 어려운 곳도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가보니 다른 세상이 있었다. (울 학교는 세검정에 위치해 있어서, 달동네 홍제동과 우아한 평창동 학생들이 함께 공부를 할 수 있는 천혜의 계급 친화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 후 대학에 들어가고 의사가 되고, 교원이 되고 나서는, 주변에 나와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새록새록 깨달아야만 했다.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이다. 현재 내 주변에서 나와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낸 만날 수 없는 것 이상으로, 지금의 어린이들은 출신이 다른 서로를 "정상적으로는"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더욱 크다. 그래서.. 내기 지금 속한 사회에서는 "특이"하기만 한 "평범한 달동네" 생활에 대해 기록을 남겨두고 싶었다.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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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수적인가?

나름대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가끔은 생활 속의 내모습은 의외로 보수적인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인류생태학 수업을 같이 듣는 인도 여학생이 있는데, 의상이 영.. 당혹스럽다. 나는 그런 골반바지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입고 다니는 줄 알았지, 일반인(ㅜ.ㅜ) 도 입는 줄은 몰랐다. 서 있을 때는 그냥 견딜만 한데 앉으면 바지 허리 선이 심하게(!!!) 내려간다. 한번은 도대체 어디까지 내려가나 봤더니 거의 Iliac crest 높이에 근접한 듯.. 물론 상의의  길이는 짧기 때문에 등짝-허리-엉덩이 일부까지 훤하게 드러내놓고 앉아 있는 걸 보면 마음이 참으로 심란하다. 그 뿐이랴.. 윗옷을 보면, 스판 섬유의 놀라운 기능을 확인할 수 있다. 저렇게 조여대면 숨쉬기는 괜찮을까 하는 걱정마저 들때가 있다. 어쩜 숨쉬기가 힘들어서 윗단추를 그렇게 많이 풀어놓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추측도 해보았다. 그 아가씨가 옷을 입고 수업하던, 홀라당 벗고 수업하던 사실 아무 상관도 없는데.. 왜 이리 맘에 안 드는거야...

 

한 2-3주 전의 일이었던 것 같다. 관계사를 이용한 대화연습을 하는데 50도 훨씬 넘은 브라질 아줌마가 나한테 "네가 마지막으로 춤추러 갔던 것은 언제니?" 하고 물어보았다. 음.. 언제였더라. 아마도 문* 형 결혼식 때 였던거 같은데.. 춤을 추러 갔다기보다 나이트에 가서 술을 마시고 왔지... (그 때 생각하면 정말 웃겼다. 새신랑만 신나서 머리에 넥타이 두르고 광란의 스테이지를 벌이고 우리 하객들은 그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고담준론을 나누었다 ㅎㅎㅎ). 그래서 "약 5년 전 인거 같아" 하고 대답했더니 아줌마가 화들짝 놀라면서 옆에 앉은 페루 아줌마한테 "어머, 얘 정말 보수적이다. 춤을 춘지 5년 되었대. 나는 매주 두 세번은 춤추러 가는데.."  허걱..... 충격받았다. 보/수/라/니....

 

선배 언니 왈, 요즘에는 육체를, 욕망을 이야기해야 진보 명함을 내밀 수 있단다. 

그래요? ......... ㅡ.ㅡ

혼란스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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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 만들기

는 정말 힘들다.

 

1. 계란 말이

광화문, 구세군 회관 앞 육교 건너편 골목 입구에 자유인이라는 허름한 술집이 하나 있다. 거기 계란말이는 정말 맛이 있다. 문득 그 생각이 떠올라서 지난 주말에 도전했다.

양파, 당근, 파를 "송송" 썰어넣고, 소금간을 맞추고... 나한테는 "송송"만큼 어려운 단어가 없다. 가끔 "착착착착" 리듬감 있는 소리를 내면서 무언가를 써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심마저 든다. 하여간... 근데 문제는.. 도대체 달걀이 말아지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한쪽을 뒤집개로 말면 다른 쪽이 무너져내리고.. 결국 계란을 말았다기보다 은근슬쩍 밀고 뭉개서 비스무레한 모양을 만들고 말았다. 나물이 홈피에 보면 김밥 마는 대나무 발에 싸서 썰면 모양이 예쁘다고 해서 그걸로라도 모양을 좀 만회해볼까 했지만.. 결국 가느다란 발 사이에 끼인 계란하고 야채 파내느라(ㅜ.ㅜ) 설겆이만 힘들었다. 뒤집개의 크기가 작아서일까, 아님 야채를 너무 크게 썰어서일까? 순식간에 일주일 분량인 계란을 네 개나 축냈지만(비율을 맞추다보니..) 결국 내가 찾던 그 모양과 그 맛을 내지 못했다. 얼만큼의 수련이 더 필요한 것일까..

 

2. 오징어채

일전에 미국에 다녀가신 선생님께서 오징어채를 한 봉지 주고 가셨다.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왕 있는거니 이걸로 밑반찬이나 만들어보자. 갸륵한 생각을 했다. 역시 나물이 요리책을 찾아본 즉.. 설탕을 많이 넣으면 너무 딱딱해진다고 주의사항이 써 있다. 워낙 단 것을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해서 설탕은 안 넣고, 그냥 써있는대로 물엿만 넣었다. 그런데... 우리집 레인지는 가스불꽃이 아니고 전기코일로 가열이 되는데.. 가열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지만 빨랑 식지를 않는다. 그래서... 순식간에.. 어찌 손써볼 사이도 없이 오징어채가 심하게 그을러버렸다. 고추장 양념에 물엿을 뒤집어  쓴 오징어채의 화상은 참혹했다. 일단 가장 문제는...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밥 먹을 때마다 한 가락씩 떼어내는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 반만 하고 나머지 반 봉지를 남겨놓은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3. 오이김치

매번 손이 가지 않으면서 신선한 야채를 안정적으로 먹을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 고민하던 중, 마침 "크자"님이 오이 김치에 대한 정보를 주셨다. 오이, 부추, 양파, 파, 마늘, 고추, 고춧가루 등등등... 뭐 엄마가 해주던만큼의 깊은 맛은 없지만 작은 유리통에 담겨서 냉장고 선반에 얌전히 앉아 있는 이들을 보면 마음이 절로 흐뭇해진다. 최소 1주일 동안은 반찬 걱정을 안 해도 되는구나...

 

다음달 중순에 펠로우 저녁 모임을 우리 집에서 하기로 했다. Korean dinner 를 준비하겠다고 이야기는 해 놓았는데... 뭘 하는게 좋을까.. 더구나 두 명은 채식주의자들... 가장 간단한 고기 구워 상추쌈 싸먹는게 불가능한 상황...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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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판 인생

기대했던 방문 이벤트는 실패로 끝나고..

 

이상하게도 나에게 길을 묻는 사람이 많다.

서울 살 때는 물론이요, 대전에 내려가서도 이틀(?)만인가 길을 묻는 사람이 있었다.

심지어 영국(2주)과 미국(3주)에 잠깐 교육받으러 갔을 때에도 다가와 길을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뿐인가. 하루는 다른 학교에 세미나를 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당시에 후배와 이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한테만 길을 물어봐... 왜 그럴까 어쩌구저쩌구... 그 때 심상찮게 보이는 행인이 우리에게 다가와서는 나를 콕 찝어서 길을 물어보는게 아닌가. 일행 모두 쓰러질 뻔했다.

여기 캠브리지에 오고 나서도 물론 이런 기이한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첫 주에는 한 할머니가 옷가게 (GAP)를 물어왔는데 잘못 가르쳐주기도 했다. 위치도 모르지, 영어도 못하지.. 할머니는 계속 버티고 서있지... 대략 기억을 떠올려 주절주절 설명했는데 나중에 보니 아니더라.

 

프랑스 작가가 쓴 "표절"이라는 소설이 있다. 작가 이름은 물론 까먹었는데... 거기 주인공인 작중 화자가 그런 이야기를 한다. 자기한테 길을 물어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결국 자신이 길거리의 안내표지판처럼 무미건조하게 생겨서 그렇더라는 것이다.

 

오늘 저녁, 발걸음을 재촉해서 영어학원에 가는 길에.. 웬 승용차가 한 대 슬금슬금 다가와 내 앞에 서더니만 Kendall square 에 어떻게 가야하냐고 묻는다. 왜 하필 나야..  하지만... 표지판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친절하게(손짓발짓) 설명해주었다.

 

오늘 저녁, 운명을 받아들이겠다는 위대한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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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 방문 이벤트

* 이 글은 홍실이님의 [방문 이벤트 *^^*]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포스트가 밀려서 안 보일까봐 친절하게(^^) 다시 공지합니다.

 

3천번째 방문객, 그리고 2999 혹은 3001번째 방문객께서는 친히 덧글을 달아주세요.

 

그럼...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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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이벤트 *^^*

다른 사람들 블로그에 가보니 방문 이벤트라는 것이 있더라.

**** 번째 방문자에게 선물을 주거나 같이 영화를 보거나 기타 등등...

 

재밌을 것도 같다. 하여.. 내 블로그에도 3천번째 방문객에게 경품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한번 해볼까 한다. 근데, 진보넷 블로그의 속성 상 본인 스스로 알려주기 전까지는 도대체 누가 언제 다녀갔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방문객의 양식을 믿고 진행할 뿐...

 

- 공 고 -

 

홍실이 블로그 3000번째 방문자께서는 꼭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푸짐한 상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1. 3000번째 방문자 : 1일 무료 숙박권(우리집) + 저녁 만찬 초대권(우리집에서 하는) + 무료 커피 시음권(물론 우리집)

 

2. 아차상- 2999 혹은 3001번째 방문자 : 새해맞이 연하장 수령권(홍실이 자필 사인 첨부)

 

한가지 주의할 점은.... 당첨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선물을 거부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선물은 반드시 전달되고, 실천되어야 합니다. 반/드/시...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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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브리지 첫 눈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이 깊고 어두운 겨울을 어찌 통과할 것인가.....

라고 고민하기 전에 임박한 이 보고서들을 어찌 해치울 것인가 고민해야된다.

아까... 서울에서 원고독촉 국제전화를 받고 깜짝 놀라서 실신할 뻔했다.

영어도 아닌데 막 혀가 꼬이면서... 하핫... 잘 지내시죠...

 

사실... 지금 이거 쓸 때가 아닌데.. 꼭 시험때, 보고서 마감 때면 뭔가 다른게 하고 싶어지니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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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바이러스?

일욜 아침..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알람 소리와 함께 몸부림을 치며 엎어졌다 뒤집었다 하기를 몇 차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수하고 아침 먹고... 이멜 확인할게 있어서 컴을 켰는데...

 

이상하게도, 컴의 시간이 내 손목 시계보다 한 시간이 느렸다. 어제까지도 멀쩡하던 것이, 별 일이네.. 내가 언제 건드렸나? 시간을 고치고 일거리를 챙겨서 사무실에 나갔다. 집에서 해도 상관 없는 것들이지만, 그래도 괜히...

 

근데, 사무실 컴을 켠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으니... 사무실 컴도 역시 한 시간이 느린 것이었다.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바/이/러/스.... 컴의 시간을 한 시간 늦추는 신종 바이러스임이 분명하다. 이런 기괴한 바이러스가 등장하다니.... 집과 사무실의 내 컴이 동시에 감염된 걸로 보아 common source infection.. 내가 자주 들르는 인터넷 사이트에 악성 스크립트를 통해 감염된게 틀림없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불길한 생각이 나래를 펴던 중...

 

혹시, 내 손목시계가 틀린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혼란에 빠졌다. 지금 진짜 시간은 몇 시일까? 뭐가 진실일까?

불과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실로 엄청난 시간 정체성에 혼돈이 오고야 말았으니...

 

급히 인터넷으로 세계표준시를 확인해보았다. (인터넷 없으면 어쩔뻔 했나?). 오늘 새벽으로 미동부지역 섬머타임이 해제되어 한 시간이 늦어진단다. 앗, 그렇지...

 

컴퓨터 바이러스가 문제가 아니라,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내 머리 속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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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편지

둘째 조카 우재 생일이라 카드를 보냈더니만 답장이 왔다.

물론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기 때문에 (다섯 살), 일곱 살 누나가 대신 쓴 것이다.

 

개구리고모카드보내조서고마워
개구리고모는왜바다에서안살아  우재말.

 

내가 하도 말을 안 들어서 울 오빠는 나를 (청)개구리로 불러왔다. 그런데 결혼하고, 조카들이 생기고 나서도 여전히 그렇게 부른다. 그래서 조카들은 나를 개구리 고모라고 부른다. 바쁠(?) 때는 그냥 개구리라고 한다 (ㅜ.ㅜ) "야.. 개구리다 ~~ " 이건 내가 조카네 현관문을 들어서면 아이들이 너무 반가워하면서 지르는 소리다. 그리고 잊을만하면 내 앞에서 한번씩 노래를 부른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밥 먹는~다.. 무슨 반~찬. 개구리 반~찬. 살았니 죽었니.. 살았닷!"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꺄르르....

 

그런데... 개구리가 바다에서 산다고 생각하다니... 도대체 새언니와 오빠는 가정교육을 어떻게 시킨 것일까?

 

아.. 보고 싶은 조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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