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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12/21
    손님 접대용 요리(3)
    hongsili
  2. 2004/12/19
    캠브리지 주민(2)
    hongsili
  3. 2004/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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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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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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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4/12/14
    노동의 기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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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4/12/10
    내가 보수적인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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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4/11/19
    반찬 만들기(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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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4/11/18
    표지판 인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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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4/11/16
    [필독] 방문 이벤트(5)
    hongsili

눈 때문에 눈이 부셔

여기 사람들이 오바질에는 일가견이 있기에, 방송에서 웬만큼 호들갑 떨고 이야기해도 잘 믿지 않는 편이다. 우리 나라도 그렇지만 프로그램 중간 홈쇼핑 광고를 보면 amazing, incredible, oh my god 이 한 10초 간격으로 나온다.

 

하여... 평생 본 적 없는 눈폭풍 snow storm (blizzard)이 온다고 각 쇼핑센터와 비디오가게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뉴스를 보면서, 저인간들 또 시작이네.. 시큰둥 했었다.

그.러.나....  장난이 아니었다. 토욜 오후부터 엄청난 바람과 함께 날리기 시작한 눈발은 일요일 점심 무렵까지 지속되었다. 일욜 오후에는 꼼짝 못하고 집에만 있었다. 방송에서 "really dangerous"라고 겁을 주면서 제발 집에 있으라고 하길래 충실히 따른 셈 ㅎㅎ

 

한국에 있을 때는 눈이 정말 싫었다. 우선 서울 집은 가파른 산동네라 출퇴근 길이 정말 악몽이었다. 어려서는 연탄재들도 많이 뿌렸는데, 요즘은 연탄 떼는 집도 없는 데다가 어중간한 상태에서 사람들이 차를 움직이는 바람에 녹고, 다져지고, 얼고.... 조금만 날이 추우면 온 동네가 얼음 미끄럼틀로 변해버렸다. 넘어진 적이 한 두번이 아니라, 눈이 오면 한숨부터 나오는게 일이었다. 대전은? 정말 기억도 하기 싫다. 대전은 생태적 관점에 충실하여, 눈들이 제풀에 지쳐 녹을 때까지 시에서 그냥 방치한다. 작년 초 폭설이 내렸을 때, 가장 놀라운 것은 버스가 다니질 않았다는 거다. 그만큼 눈이 쌓였냐 하면 그건 또 아니지. 큰 도로조차 제설 작업을 안 해주니까 눈길 경험 없는 버스들은 그냥 운행을 중단해버리고, SUV 차량을 가진 사람들만 신나서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나머지 사람들은? 걸어 다녔다. 두 시간 걸려 눈+얼음+물의 난코스를 퇴근하고 걸린 심한 감기 끝에 오늘날 한 쪽 귀가 이지경이 된 것이다.

 

이런 안 좋은 추억에도 불구하고.... 오늘 아침 출근길 문밖을 나서는데 수북이 쌓인 눈더미들이 무척이나 친근하게 느껴졌다. 오염 정도가 상대적으로 덜하다보니, 눈 색깔도 순백색 그대로고,  날이 쌀쌀해서 질척거리며 녹지도 않고, 또 한국 눈과 다르게 질감이 포실포실하다보니......미로를 찾듯 눈길을 헤치며 인도와 도로 사이를 걸어다니는 것이 재미있기까지 했다. 눈 치우는 동네 사람 붙들고 같이 눈싸움이라도 하고 싶었다. 눈이 오려면 모름지기 이 정도는 와야지 어디서 명함이라도 내미는 거 아닌가.. 음하하하.... 눈길 헤치고 출근해야 하는 절박함이 없고, 산동네 미끄러운 얼음길 걱정 없고.... 환경의 변화는 사람의 취향까지도 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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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생활의 보람 ^^

며칠 전부터 요란하게 광고를 때리더니만, 어제 저녁에 두 시간 동안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일부 지역을 강타한 쓰나미 피해자를 돕기 위한 자선 공연(?)이 생방송으로 진행되었다.

뭐 별다른 기대 없이 그냥 켜 놓은 텔레비젼이었는데... 여러 모로 특이한 점들이 있었다.

 

우선, 세계 경찰을 자임하는 미국이 하는 짓이라 별로 탐탁치는 않지만 (오지랍도 넓다) 어쨌든 이런 행사를 기획했다는 거 자체가 솔직하게 좀 부럽기는 했다. 물론, 한쪽으로는 이라크에서 그칠 줄 모르는 쓰나미를 만들어내고는 있고, 부시 취임식 비용이면 쓰나미 피해 지역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거라는 보도를 보면 화가 나기는 한다. 

 

둘째, 두 시간 동안 광고가 없었다.

미국 텔레비전에서는 10~15분만에 한 번씩 꼭 중간 광고가 나온다. 심지어 30분짜리 "The Simpsons"에도 중간 광고나 두 번이나 있는데, 미국내 올스타들이 총출동하는 이 프로에 광고가 없다니... 프로그램 도입부에 MSNBC 사장이 직접 나와서 "광고도 없이" 라는 말을 강조할만 했다. 그만큼 비영리적 성격을 팍팍 강조해준 것이다. 

 

셋째, 그동안 텔레비전으로 접할 수 없었던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가요프로그램이 있는게 아니라서, 가수가 노래하는 걸 보거나 들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가수가 각종 운동회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ㅎㅎㅎ 결국 공연장을 직접 찾거나 MTV를 통해 뮤직 비디오를 봐야하는데, 나한테야 뭐 언감생심... 그런데!! 어제는 줄줄이 가수들이 나와서 직접(!) 노래를 불렀다. 좀 감동먹었다. 마돈나가 첫 무대에 올라 Imagine을 불렀는데, 그 느낌 정말 기묘했다. 이어 줄줄이 노라 존스, 쉐릴 크로, 샤라 멕클란, 글로리아 에스테판, 넬리 등등등... 아, 그리고 에릭 크랩톤의 기타 연주까지... 노라존스 얼굴은 사실 어제 첨으로 봤다. 생각보다 무척 젊었다. 조명발인지 모르지만.. 하여간, 소박한 무대에서 기타 혹은 피아노, 기껏해야 세 네 명의 소규모 밴드와 함께 진지하게 열창하는 가수들의 모습을 떼거지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무척이라 보람있게(^^) 여겨졌다.

 

넷째, 가수들은 노래를 했지만, 배우들은 기상천외한 서비스를 했다. 일단 공연 중간에 나와서 쓰나미 현지 피해 상황에 대한 보도자료들을 전하면서 기부에 동참하라는 멘트를 날린 것은 물론이거니와.... 두 시간 동안 텔레마케터처럼 그 자리에 지키고 앉아 기부 전화를 직접 받았다. 어떤 인물들이었느냐 하면,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니콜라스 케이지, 르네 젤위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할 베리, 나탈리 포트만, 팀 로빈스, 맷 데이먼, 제이미 폭스, 벤 에플릭(바야바처럼 수염을 기르고 나와 깜짝 놀랬음 ㅜ.ㅜ), 그리고 타란티노 감독 등등등.... 세상에 제일 바쁘다는 이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말이다. 미국 사람들이 연예인이라면 껌뻑 죽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이건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이 프로가 끝나고 그들이 사용했던 전화기는 연예인들의 싸인을 해서 3천불에 팔린다고 했다 ㅎㅎㅎ  이러한 연예인들의 참여가 일부는 개인적인 선의에서, 또 상당부분은 연예기획사의 매니지먼트에 의해 이루어졌을 것이라 짐작하지만 (최근 개봉작 배우들이 주로 참여한 걸 보면), 어쨌든 그들로서는 자신의 재능을 사회에 기여한 것임에 틀림없다.

 

미국 와서 20불짜리 텔레비전을 바꾸고 가장 보람있는 저녁이 아니었나 싶다. 배우들 본 거야 뭐 좋을 것도 없지만, 실력있는 뮤지션들의 좋은 음악을 한꺼번에 그렇게 감상할 수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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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 해..

* 이 글은 홍실이님의 [앗싸..귀인이 떼로 몰려오는구나] 에 관련된 글입니다.

나라 안 팎으로 참으로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이때.. 한량 이방인은 미국 동해바다로 일출을 보러 갔더랬다. 나이 한살씩 더 먹을 때마다 새해를 맞는 마음은 더욱 밍숭맹숭... 그냥 어제 같은 오늘이 되어간다.

 

나의 전공과 同名異學 인 易學에 근거하면, 닭띠 해에는 귀인들이 떼로 나타나서 나를 도와준단다. 오호라.. 이제 머리에 어사화 꽂고 금의환향할 일만 남았단 말인가.

 

허나, 지금의 내 심정은 보이지 않는 끈에 발목을 묶인 채 어두운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새와 같도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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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싸..귀인이 떼로 몰려오는구나

무료 운세 사이트에서 올해 토정비결을...

 

* 총운

  • 심방춘일 각견화개라.
  • 꽃다움을 찾는 봄날에, 문득 꽃피는 것을 보게 되는구나.
  • 일을 도모하면 도와주는 사람도 많고, 매사에 힘이 들지 아니하고 잘 되리라.
  • 미혼자인 경우에는 혼인하여, 자식을 얻게 될 괘이다.
  • 일신이 편안하니, 무엇하나 바랄 것이 없다.
  • 재물도 있고 권세도 있으니, 상하가 근심없어 순풍에 돛단 격인 금년의 운세이다.
  • 승마출문 일행천리라.
  • 말을 타고 문을 나서니, 하루에 천리를 가는 격이이다.
  • 많은 일이 순조롭게 이룩되고, 또한 나날이 발전하며 이득 또한 크게 얻으리라.
  • 집안의 웃어른이 온화함을 보이니, 가정이 화목하고 안락하다.
  • 귀인이 와서 도와주니, 재물과 명예가 쉽게 얻어 지리라.
  • 높은 사람과 벗하는 기회가 많고, 그로 인해 좋은 일이 발생하리라.
  • 제비가 동풍에 지저귀니, 그 새끼가 화합하는 형상이다.

 



* 1월운

  • 가문 때에 단비를 만나, 초목이 생기를 얻어 푸른 형상이다.
  • 힘든 일이 있을 때, 좋은 사람과 좋은 기회를 얻어 일이 쉽게 성사되리라.
  • 재물이 흥하고 왕성하며, 슬하에 기쁜 일이 발생한다.
  • 하늘이 도우니, 반드시 복이 형통하리라.

* 2월운

  • 토끼를 구하다가, 사슴을 얻는 형국이다.
  • 작은 소망을 원하는 가운데, 오히려 더욱 큰 것을 얻으니 행운이 넘치는구나.
  • 때를 만나 경영하는 일이 형통하고, 덕도 쌓으니 몸소 큰 경사를 만난다.

* 3월운

  • 어려운 일이 생길지 모르나, 주위에 도와 줄 사람이 많으니 다시 흥성해지리라.
  • 이득은 일터에 있으니, 성실히 일하면 반드시 큰 이로움을 얻으리라.
  • 이 달의 운세는 대체로 좋은 편이니, 하는 일은 뜻한대로 반드시 성공하리라.

* 4월운

  • 신수도 왕성하고 재물 또한 왕성하니, 한 집안이 두루 화목하고 평안하리라.
  • 문서와 관계하면 좋은 일이 있으니, 반드시 치부를 기약하리라.
  • 그러나 몸에 병이 생기거나, 그렇지 않으면 슬하에 액이 두려우니 각별히 주의하라.

* 5월운

  • 오월에는 귀인이 와서 도우고, 그로 인해 반드시 기쁜 일이 생긴다.
  • 문 밖에는 길성이 있으니, 반드시 횡재하거나 귀한 여인을 만날 운 이다.
  • 높은 누각에 한가하게 앉아서, 그 즐거움을 한껏 누리는 격이다.
  • 다만 배우자에게, 근심이 생기는 것을 주의하라.

* 6월운

  • 꽃이 떨어지고 열매가 맺듯, 자손에게 영화로움이나 부귀가 얻어진다.
  • 만일 시험을 치르면 합격하고,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재물을 얻는다.
  • 평소에 선한 일을 하고 덕을 쌓으니, 칭송이 자자하며 재난과 화를 당할 리 없다.

* 7월운

  • 길성이 문에 비치니, 반드시 좋은 일이 있으리라.
  • 부부의 경우에는, 아내에게 태기가 있다.
  • 부부가 화목하고 순조로우니, 집안에 기쁨이 가득하다.
  • 잠시 어렵다가 다행히 귀인을 만나니, 꾀하는 일이 뜻대로 되리라.

* 8월운

  • 심신이 안락하며 청하지 않아도, 도와 줄 사람이 스스로 나타나는 운이다.
  • 운세가 춘삼월 훈훈한 바람과 같으니, 매사에 되지 않는 일이 없다.
  • 다만 친구를 너무 믿으면, 재물을 잃게 될 우려가 있으니, 그것만 주의하면 순탄하다.

* 9월운

  • 운수가 형통하니, 하는 일마다 뜻대로 이룩된다.
  • 부부인 경우에는, 금슬이 증가하거나 자녀를 얻는 경사가 있다.
  • 미혼자는 기쁘게도 배우자를 얻으니, 혼인하게 되리라.
  • 만일 질병이 있거든, 목성의 약을 쓰면 쉽게 나으리라.

* 10월운

  • 새로운 것을 접하니, 지금까지와 또 다른 세계이다.
  • 시월에는 구설수가 발동하니, 새로운 사람을 사귀면 주의하는 것이 좋다.
  • 수성을 사귀면 매우 불리하고, 집에 있으면 심란한 일이 생긴다.
  • 남쪽이 이로우니, 일이 없으면 여행이라도 다녀 오라.
  • 최선을 다 하여 일에 열중하면, 길성이 배로 비출 것이다.

* 11월운

  • 순풍에 돛을 단 격이니, 매사를 순조롭게 이루리라.
  • 집안이 흥성하고 그 운이 왕성하니, 오래도록 태평하고 편안하게 지내리라.
  • 작은 것을 얻고자 노력하는데, 오히려 더 큰 이득을 얻거나 큰 명예를 얻게 된다.
  • 생각하지도 않은 행운이 찾아 오는 운에는, 마땅히 좋은 일에 희사함이 유익하리라.

* 12월운

  • 유월 염천에 단비를 만난 듯, 기쁜 일과 좋은 일이 자주 생기리라.
  • 승진 또는 합격의 기쁨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며, 그렇지 않으면 뜻밖에 횡재할 괘이구나.
  • 매사에 힘드는 것이 없고, 재물운 또한 왕성하니 자연히 식록이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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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나의 7대(?) 사건

* 이 글은 뻐꾸기님의 [잘가라, 2004년] 에 관련된 글입니다.

도대체 연말 기분이 나지 않던 차에, 뻐꾸기 언니의 글을 보고 잠시 나의 1년을 돌아보다. 올해는 정말 사건이 하나도 없었네... 하면서 입을 삐죽거리다 아참, 미국에 연수 왔지? 하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이쯤 되면 무심함이 입신의 경지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저히 10대 사건을 만들어낼 수가 없네. 7대 불가사의도 아니고, 7대 사건이라니 무슨 소년과학잡지 제목도 아니고 ㅜ.ㅜ 그나마 6대사건, 9대사건 아닌게 다행인가?

 

1. 태백산 일출 산행

난생 처음으로 엄동설한, 야간산행 도전.. 기다렸다는 듯 마침 그날은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찾아온 강추위 때문에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더랬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엄청난 추위 땜시 일행들의 랜턴이 모두 방전되어 버리고, 오빠에게 빌려간 좋은 헤드랜턴 덕분에 무리들 사이에 "앞장서는" 황당한 일까지 경험했다. 얼어죽는다는게 어떤건지 정말 실감했다. 흰눈덮힌 태백산 어스름과 일출은 대 장관이었다. 허나 그렇게 얻은 호연지기는 영하 18도의 추위에 꽁꽁 얼어붙어 약발이 별로 오래가지 못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꼭한번 다시 가고픈 산행... 지리산 백무동 계곡으로 일출보러 올러가는 건 나한테 좀 무리겠지?

 

2. 고속도로에서 퍼진 차

대전에서 서울 올라가던 중(2월, 미국 출장가기 전날) 어이없게도 냉각수 뚜껑이 날아가 버려 차가 오버히트 되는 불상사 발생... 고속도로 한 복판에서 자욱한 연기 휘날리며 달리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연출했다. 갓길로 겨우 빠져나와 비상등 켜놓고 있자니, 날은 춥고, 차들은 쌩쌩 달리고... 출근길 청계고가 한복판에서 엔진 꺼졌던 사건만큼이나 처량하게 느껴졌다.

 

3. 남아프리카 공화국 방문

제 3회 국제건강형평성 학회 참석 차, 난생 첨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밟아보았다. 발표 때문에 좀 후달리기는 했지만... 낯선 곳, 새로운 환경에서 형평에 관심을 가진 여러 나라의 의욕적인 연구자들을 만나보고, 수박 겉핥기 식이나마 남아공 사람들 사는 모습, 활동가들의 모습도 직접 보고... 짧게 표현하기 힘든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 여행이었음

 

4. 내 귀에 도청장치.. 가 아니고 진주종...그리고 수술

역시 평생 처음으로(여러가지가 다 처음이로군) 전신마취와 수술... 수술 전에 밀린 일들 마무리하느라 며칠 동안 잠을 설쳤더니만 막상 병원에 가서는 정신 못차리고 푹 잘 수 있었다. 수술 당일 아침에도 늦잠을 자서, 문병온 친구가 아연실색했다. 마취에서 아련히 깨어날 무렵, 머리속에 번뜩였던 것은 술후 합병증... 귀 수술 후에는 안면신경 마비가 흔한 합병증 중 하나다. 그 졸린 와중에 눈을 깜빡이고 얼굴을 찡그리며 신경을 자가 테스트해본후 아무일 없음을 깨닫고 다시 자버렸다. 수술은 했는데... 귀는 여전히 잘 안들리고... 환장할 노릇이다.. 평생 이렇게 살아갈 걸 생각하면 좀 우울하기는 하다. 그러고보니 올해 있었던 일들 중 가장 슬픈 사건이로군... (어쩜 평생에?)

 

 



5. 사랑니 뽑다

작년까지 뵈지도 않던 한쪽 사랑니가 올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더니만 피곤할 때마다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그것도 귀와 같은 오른쪽.... 미국 가기전에 이걸 해결해야 한다는 필사의 신념으로 출국 막판 그 바쁜 와중에 이를 뽑았다. 가은씨한테 야매로...치료비는 책선물로 대신 ㅎㅎㅎ. 이빨 뽑은지 두 시간 만에 김 모 샘의 강권에 의해 짜장면 먹고, 그 날 저녁에는 가족 외식한다고 유황오리 먹으러 갔다. 정말 괴로웠다.

 

6. 가족 나들이

초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온 가족이 함께 물놀이를 갔다. 부모님, 나, 오빠네 식구들... 그래봤자 한나절 북한산 계곡에 가서 백숙, 매운탕 뭐 이런거 시켜먹고 물장구 친게 전부지만... 정말 감회가 새로왔다. 이것도 내가 연수를 가는것 때문에 특별히 기획된 가족행사였다. 안 그랬으면 아마 불가능했었겠지... 나는 귀에 물이라도 들어갈까봐 평상에 하루 종일 누워서 그늘 따라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이게 얼마만의 가족 나들이인가.. 부모님께 정말 죄송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7. 미국 연수

여차저차하여 미국 땅을 밟게 되었다. 이제 네 달째에 접어드는데, 뭘 많이 배우긴 한건지 잘 모르겠다. 시간이 정말 빨리 가기는 한다.

 

그 밖에 또 뭐가 있을까... 감동을 주었던 책들, 영화들, 좋은 사람들과의 여행.... 개인적인 일은 아니지만 민노당의 의회진출... (그 때 목이 메었던 걸 생각하면서 지금 최저위원들 하는 꼬라지 보면 화가 두 배로 난다)..

 

아... 잘 가라.. 2004년...

내년은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과연 일신우일신할 수 있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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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이벤트??

3천번째 방문객을 위한 이벤트가 썰렁함 속에 실패로 돌아가고.... 5천번째 방문객을 목전에 둔 지금.. 방문 이벤트를 다시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이런거에 집착하는 걸 보면, 아무렇지 않은거 같아도 타향살이가 외롭긴 한가보다 ㅜ.ㅜ

(정말 그럴까???)

 

음.. 어쨌든... 5천번째 방문객에게는 자그마한 선물(내가 번역한 책)이라도 전달해볼까...  이미 그 책을 가진 사람이면? 할 수없지.... 팔자려니...ㅎㅎ

 

구체적 방침은 정해지지 않았고, 어쨌든 5천번째 방문객이 메일이든, 덧글이든 흔적을 남겨준다면 자그마한 성의 표시는 해야겠다는게 오늘의 결정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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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접대용 요리

밤새 눈보라가 휘날리기 시작하더니 영하 8도, 체감기온은 무려 영하 15도란다. 일찌감치 퇴근하여 무언가 따끈한 것을 떠올리다가 오뎅국을 끓였다. 솜씨에 스스로 감탄하기까지 했다.

 

그러고보니  지지난 주 손님맞이 대작전을 치루면서 기록을 안 남겼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잊기 전에 정리.... (별 시덥잖은 걸 다 정리하려고 하다니.. 성격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

 

1. 랍스터 찜과 클램 차우더, 그리고 치즈 케익

회심의 역작.. 랍스터라니....한국에서라면 언감생심 꿈도 못 꾸었을 요리 아닌가. 후배가 불원천리 찾아왔길래 그에 상응하는 이곳의 전통(?) 요리를 대접하려고 맘 먹었다. 마트에서 살아있는 바닷가재 세 마리(한 사람당 한 마리)를 불과 25불(진짜 싸다!!!)에 구입하여 찜통 바닥에 물을 조금만 붓고 다음 랍스터를 넣은 후 화이트 와인 약간 뿌리고 뚜껑 닫고 15분 가열하면 끝. 웹사이트를 찾아보니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월계수(허거덕..) 잎을 넣으라고 되어 있지만, 어데 가서 이걸 구한단 말인가. 설령 구한다 한들, 이파리 열 장.. 이렇게 팔것 같지는 않았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바닷가재들이 요동을 쳤는데(그 때까지 살아 있었다), 마음이 조금 아프기는 했지만(^^) 그냥 뚜껑을 꾹 누르고 있다가 15분 지나 뚜껑을 열었다. 오... 진홍색으로 변신한 먹음직스런  랍스터~~ (사진이 없는게 안타깝네). 이 전에 뉴잉글랜드 특산이라는 냉동 클램차우더를 끓는 물에 중탕해서 내놓았더니 이거에도 손님들 감동했다. 이어 대부분 평생 첫 경험인 "가재 한 마리씩 들고 뜯기"를 경험하고 황홀경에 빠져 있을 무렵(실제로는 한 마리 해체하는데 불과 10분도 안 걸렸다.. 하이에나가 울고 갈 지경...), 마트에서 사온 냉동치즈 케익을 전자레인지에 살짝 해동시켜 대접했더니만 손님들이 감격에 겨워 쓰러져버렸다. 한국에서 이렇게 먹어본 적은 없지만 짐작컨데 1인당  최소 5만원 이상은 들거란다.  손님들의 감동을 흐뭇한 맘으로 지켜보면서, 앞으로 한국에서 온 방문객은 무조건 이 메뉴로 통일해야겠다고 결심했다. 

 

2. 비빔밥과 두부 부침

펠로우들 저녁 모임에 비빔밥을 준비했다. 참으로 현명했던 선택이다. 무나물, 당근, 버섯, 버섯, 호박을 볶고, 달걀 지단과 상추를 준비하고, 다진 쇠고기를 불고기 양념장에 볶았다. 베지테리안들에게는 상추까지만, 옴니보어 에게는 불고기까지 얹은 후 고추장과 참기름.... 그리고 된장국은 향이 강해서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을 것 갈아 두부와 미역이 들어간 일본식 미소된장국을 끓히고 반찬으로 김치와 두부 부침(+양념장)을 내놓았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다음 날 영어 과외 선생인 캐리(이 여인네도 역시 베지테리언)에게도 똑같은 메뉴를 준비했었는데 좋아했다. 사실 비빔밥이라면 신선한 산채가 필수인데, 이 놈의 미국 땅에는 "나물"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전에 밥상을 들여다보고 "저푸른 초원"입네, "녹색혁명"이네 하면서 엄마한테 투정부렸던 일이 후회된다. 그 때 풀떼기를 더 많이 먹어둘걸....  하여간 비빔밥은 여러 사람의 입맛을 다양하게 충족시킬 수 있는 현명한 조합형 음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야채를 썰어서 볶는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 아니, 볶는거 말고.. 써는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 어깨 아파 죽을 뻔했다.

 

앞으로 튀김 요리에 한 번 도전해봐야겠다. 엊그제 송년 모임에 가서 깐풍기로 추정되는 닭튀김 요리를 먹었는데.. 그러고보니 튀김 - 고구마 튀김, 깻잎 튀김 같은거 먹어본지가 너무 오래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밤낮없이 앉아서 공부는 안 하고 먹을거 생각만 하는 거 같네... 아.. 한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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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브리지 주민

미국에 온지 넉 달 동안 참으로 기이한 경험들을 많이 했다.

 

집에 있는 텔레비젼의 떨림 현상이 너무나 심각해져서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내가 유일하게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심슨]인데, 지난 주 그거 보려고 앉아 있다가 결국 화면이 안 나와서 못 본게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벼룩시장 같은데 들어가보니 삼성 25인치 칼라TV가 20불이라고 해서 얼른 메일을 보내 찜하고 오늘 아침에 찾으러 갔다. 갔더니 이게 웬말인가. 이 아저씨가 나 말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오케이라고 답을 해놨고 자기 나름대로는 먼저 오는 사람에게 주겠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우리(?)한테는 말을 안 했던 것이다. 그런 사실도 전혀 모른채 지하실에 있는 TV를 꺼내와서 잘 나오는지 시험을 하는 중에 웬 여자가 들어오더니만 TV 찾으러 왔다면서 20불을 획 던지고 들고나가려 했다. 어안이 벙벙하여. 이게 뭔 일이냐 했더니만.. 아저씨 주저리주저리 사람들이 온다 해놓고 안 오는 경우가 많아서 어쩌구저쩌구... 짧은 영어로, 나는 이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신경질을 좀 냈더니만, 기껏 내놓은 안이 동전을 던져서 임자를 결정하잖다. 기가 막혀서.. 이 주말 꼭두새벽(9시 반), 차도 없어서 김** 선생님한테 부탁해서 찾아갔는데(샘 부부는 아침도 안드시고 오셨단다 ㅜ.ㅜ), 이 띨띨한 아저씨 땜에 10년도 더 된 텔레비전을 놓고 저 싸기지 없게 생긴 여자애랑 동전 던지기를 해야 하다니..... 기가 막혔지만 동전은 던져졌고 내가 이겼다. 정말 기분 더럽더라. 그나마 여기서 졌으면 얼마나 더 황당했을까.... 미국 생활 4개월만에 별 해괴한 경험을 다 한다 싶었다.

 

아침에 그렇게 설쳐대고 집안 청소를 하고 나니 정말 피곤했다. 오후에 깜빡 잠이 들었는데, 전화벨 소리 우렁차게 ..때르릉....  전화를 받아보니 미국질병관리본부(CDC)에서 온 것이다. 아동 예방접종에 관한 설문조사 중이란다. 다행이 우리 집에는 3살 이하의 어린이가 없었기 때문에 전화 통화는 1-2분만에 끝냈 수 있었다. 전화설문은 벌써 세 번째다. 첫 번째는 Mass 주 정부에서 하는 건강 조사(특히 의료보험)에 대한 것이었고, 나는 외국인이고 여기 임시로 살고 있다고 둘러대서 겨우 피해갔었다. 여기 산지 채 한 달도 안 되었을 때 벌어진 일이다. 두 번째 설문조사는 CDC의 BRFSS 라는 유명한 건강행동 조사였다. 영어 못하고 나 외국인이라서 못하겠다고 했는데도 설문 아줌마 막무가내였다. 아마도 할당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20분 넘게 흡연, 음주, 식이, 운동, 예방접종, 질병 과거력, 의료 이용 등 두루두루 답변을 해야만 했다. 성 정체성을 묻는 문항도 있어서 적잖이 당황했다. 사실 한번도 나의 성정체성에 대해 의심해본적 없었고, 여태껏 살아오면서 누구도 그런걸 물어본 적이 없었는데 전화로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보니까 그냥 당황.... 몆 주 후에는 설문 협조에 감사하는 편지까지 받았다.

 

미국에 산 지 이제 겨우 네 달 째... 마치 10년은 산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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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기록 [4]

이번 주에 있었던 허접 시리즈 발표는 오늘로 끝이 났다. 인내심을 갖고 경청해준 국내외 연구자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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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했다. 우리 때는 입시가 전기/후기로 나뉘어졌 있었는데 어찌어찌 하다 나는 후기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은 우리 집이 심하게 안 좋을 때였다. 아빠가 많이 편찮으셨고, 그래서 오빠는 진학을 포기하고 회사에 다니다가 내가 3학년 되던 해에 입대를 했다. 전기에 불합격 되고 일단 가만히 있기도 뭐해서 후기에 응시했고 운좋게 합격을 했다. 당시 유명한 모 입시학원에서 내가 무시험 합격자(ㅎㅎㅎ)에 해당한다고 전화가 오기는 했는데, 학원 등록금도 무지하니 비싸서 일단은 학교에 다니면서 알바를 해서 재수를 하자.. 이런 깜찍한 생각을 했었다. 

 

그리하여 알바가 시작되었는데.... 합격자 발표가 난 그 다음 주부터 바로 일은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때 한 공부 했었기 때문에(호호).. 여기 저기 과외 자리가 줄을 이었다. 대학 입학식도 하기 전에 시작된 과외는 본과 4학년 국가고시를 치르기 두 달 전까지 7년 동안 거의 한 달도 쉬임 없이 지속되었다. 어찌 보면 여지껏 내가 가졌던 일자리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동네는 주로 우리 고등학교 인근 지역을 커버했다. 홍제동, 홍은동으로부터 시작하여 녹번동, 불광동, 세검정, 부암동, 평창동, 정릉.. 등등... 그리고 서클 사람들의 소개로 멀리 여의도, 반포동까지 진출하기도 했었다. 한창 때에는 두 개, 방학 시즌에는 세 군데를 뛰기도 했는데, 끼니도 거른 채 땡볕에 돌아다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다른 일들에 비하면 과외라는게 심하게 (!) 편한 일이기는 하지만, 스트레스는 정말 컸다. 학생 부모나 학생에 대한 스트레스도 있었지만, 학교에서 하는 각종 활동이나 시험 등에 일정을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었고 주변에서 이런 상황을 잘 이해해주려 하지 않았다. 내 용돈을 벌려고 하는게 아니라 그게 중요한 생계였는데, 그게 없으면 학교에 다닐 수 없었는데, 의대에 다니는 사람들, 심지어 운동을 한다는 선배들도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한번은 세미나 일정을 잡는데  "제가 과외 때문에 그 때는 좀.... ㅜ.ㅜ" 했더니만 대뜸 그거 꼭 해야 하는 거냐고 신경질을 낸 선배도 있었다. 사실 나만큼 세미나 시간을 잘 지킨 사람도 없었건만....본과에 들어가서는 수업과 시험 때문에 좀 힘들기는 했었다. 본 3때.. 화요일 마지막 교시가 성형외과 였는데 교수가 시간 개념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 슬라이드를 몇 박스씩 가지고 들어와서는 저녁 여덟 시나 되어야 수업을 끝내주고는 것으로 유명했다. 결국 한 학기 동안 그 수업을 한 번도 못 들었다. 다섯 시가 넘으면 살금살금 빠져나가 일터로 달려갔다. 그 시간이 엽기적이고 황당한 사진 많이 보여주기로 유명했는데.. 좀 안타까운 일 ㅎㅎㅎ



내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 한번은 예고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여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반짝 과외.. 거의 문제집 암기 수준), 그 집은 평창동 고급 빌라촌에 위치하고 있었다. 빌라 두 채를 터서 개조한 집이라 무지무지 넓었다. 내 기억에는 현관에서 저쪽 마루 끝이 운동장만큼 멀었던 것 같다 ㅎㅎㅎ. 하여간 학생 방에 들어가면 어머니가 에어컨을 조절해주시면서 생과일 쥬스를 내오시고.. 끝나면 (다른 레슨 때문에 내 과에는 밤 12시에 끝났다) 승용차로 우리 집까지 데려다 주셨다. 방에는 책상과 피아노, 탁자 등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이런 부잣집 아이가 침대를 안 쓰나보네 하고 의아했었는데, 나중에 보니 이건 공부 겸 레슨 방이고 침실은 따로 있었다. 반포 아파트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새끼 선생이었다. 당시 모 학원에서 잘 나가던 수학 강사가 본 선생이고, 그 사람의 수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게 아마추어 강사인 나의 일이었다 (당시에 세미나를 했던 쿠바 혁명사에 보면 혁명전 쿠바의 부패와 빈부격차를 이야기하면서 새끼 과외선생에 대하 이야기가 나와 깜짝 놀랐었다). 이 집 엄마의 극성은 정말 대단해서... 암기과목 시험보는 날이면 엄마가 고등학생 딸과 같이 앉아서 책을 외우고 그걸 퀴즈로 내주기까지 했다. 나로서는 상상 못할 일이었다. 허나... 홍제동 인근에서 했던 과외들 중의 일부는 차마 돈을 받기가 미안한 형편인 경우도 꽤 있었다. 내가 보기에 과외를 할 상황이 아닌거 같은데 부모님들이 무리해서 자식들을 공부시키는 경우였다. 다행히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은 그런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본인들 스스로도 열심히 해서 비교적 짧은 기간이 지나면 자신감을 갖고 혼자 공부하기를 원했다. 덕분에 나는 일자리를 잃기는 했지만 그래도 심리적으로는 다행감을 느꼈었다.

중간에 휴학했을 때에는 잠깐 학원에 나간 적도 있다. 월급은 별로 안 많았던 거 같았는데 난생 처음으로 중학생도 갈쳐보고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다. 멀쩡하게 생긴 범생이 여중생들이 담배 피우는거 보고 화들짝 놀랐던 기억도 난다 ㅎㅎㅎ 

 

이렇게 모은 돈은 참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학비와 각종 부대비용(책값이 정말 비쌌다 흑.), 활동비(?)... 다행히 장학금을 받을 수 있어서 졸업할 때까지 4백만원 정도 저축도 할 수 있었다. 내가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공부를 잘 해서 이기도 하지만(음하하.. 자만심..) 장학재단에서 기준으로 제시하는 가정형편에 해당하는 사람이 의대 내에 거의 없었기 때문에 경쟁이 없었다는 점이 큰 역할을 했다. 참 잘들 살더라....어쨌든 그 코묻은 돈은 오빠 결혼 때 전세값으로 모두 기부당했다.

 

이후.. 인턴, 레지던트 하면서 정식으로 월급을 받고... 나 개인의 경제적 곤란은 상당부분 해결되었지만, 그 와중에 집안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나이드신 부모님이 할 수 있는 일들은 점점 줄어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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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기록 [3]

오만가지 다른 잡다한 일들이 많았던거 같은데 짧게 했던 일들은 잘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최근의 두 가지 일은 아주 생생하게 떠오른다.

 

5. 부적 다듬기

이게 뭔 황당한 일인가... 궁금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처음에 그것들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대전에서 지내다가 주말에 모처럼 집에 갔더니 마루에 금박 문양이 찍힌 새빨간 부적들이 널부러져 있다. 울 부모님 두분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 (ㅜ.ㅜ). 진상 파악에 나서본 즉.. 당시에 우리 동네에서 잘 나가는 부업 중 하나란다. 금박 찍힌 빨간 천이 테이프처럼 길게 말려서 나오면 그걸 일정한 길이로 잘라서 반을 접어 (인쇄한 쪽이 나오게) 투명한 비닐 커버 안에  끼우는 작업이었다. 울 엄마의 설명으로는 그게 외국으로 수출되는 거라는데, 여태까지 집에서 한 일 치고 외국에 수출한다는 설명이 없는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 집도 당당한 수출 역군이었던 것이다. 이 일은 가위질, 그리고 자연히 날리는 섬유먼지들이 좀 고달프기는 했지만 커버에 끼우는 일은 비교적 쉬웠다. 크기가 꼭맞는 플라스틱 자를 찾아내서 이 작업 할 때 엄마의 수고를 반으로 줄이는 기특한 일을 하기도 했다. 하나 끼우는데  십원 정도 했으니까 단가도 아주 나쁘지는 않은 편이었다. 그 당시에 집에 귀신이라도 찾아왔으면 혼비백산해서 도망갔을 거다. 집에 수 천개의 부적이 그득이... 쌓여 있었으니...

 

6. 딱지 다듬기?

다듬기.. 라는 표현말고 뭐가 적합할지 모르겠다. 이것도 최근, 내가 미국에 오기 거의 직전까지 엄마가 드문드문 하시던 일이다. 여기서 딱지라 함은 우리가 어렸을 때 달력 종이나 신문지, 공책 표지 등으로 접어서 가지고 놀던 사각형의 그 딱지를 말한다. 처음에는 나도 이 품목을 보고 도대체 뭐에 쓰는 물건인고 의아했는데, 그것이 딱지 재료라는 것을 알고 더욱 놀랐다. 요즘 아이들은 남는 종이를 가지고 딱지를 만드는게 아니라 포켓몬이나 디지몬이 그려진 이런 "고급" 재료를 이용하는구나..... 각종 만화캐릭터가 접이면마다 인쇄된 딱지 재료(ㅎㅎ)가 여러개 줄줄이 붙어있는 형태로 배달이 되는데, 이걸 뜯어서 반을 접고, 그걸 10장씩 묶어서 얇은 종이봉투에 담으면 끝나는 일이다. 종이를 뜯다보니 먼지가 좀 난다는 단점은 있지만 정말 아무 생각없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주로 주말에 서울에 가다보니, 이 딱지 생각을 하면 자연스럽게 토욜 밤에 일을 하면서 보던 "느낌표" 와 일욜 아침 "서프라이즈"가 떠오른다. 그러나 암 생각 없이 TV 보면서 일을 하다가 나중에 일어날 때면 어깨, 허리, 무릎 안 아픈 데가 없었다. 울 엄마도 아파 죽겠다고 했다. 후딱 해치우려는 욕심에 자세도 바꾸지 않고 열중한 탓이다. 이거는 단가가 기억이 안 나네...

 

밖에 나가면 의과대학에서 일하는 교원이요, 집안에서는 딱지 접기를 돕는 무급가족봉사자...어떻게 나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ㅎㅎㅎ

또하나..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는 가설... 표준직업 분류 상 "주부"로 표기되는 우리 어머니들의 이런 비공식 노동이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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