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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09/19
    캠브리지 생활 #2 (2004.9.8)
    hongsili
  2. 2004/09/19
    캠브리지 생활 #1 (2004.9.2)
    hongsili
  3. 2004/09/19
    감사의 글 (2004.8.28)
    hongsili
  4. 2004/09/19
    이사 중...
    hongsili

빨간 양말의 우승

두어 시간 전부터 바깥에서 괴성들이 자꾸 들린다 싶더니만... 갑자기 메신저에 있던 친구가 축하한다고 메시지를 날린다. 한국은 정말 뉴스가 무지하니 빠르다. 뉴욕타임즈에 들어가보니 아직도 9회 기사가 올라있던데 ㅎㅎㅎ

이어서 자동차 경적 소리에 사람들 괴성에 죽을 맛이다. 텔레비젼을 켜보니 생 난리다.

월드컵의 악몽(?)이 떠오른다.

 

저 관심과 저 열정을 반만 다른 곳(!)에 투자해준다면, 전세계인들이 좀더 평화롭게 살 수 있을텐데...

 

내가 지나치게 정치편향인가?

그렇담.. 다시 생활로 돌아와서... 우승도 했다는데 기념으로 따뜻한 빨간 양말 한켤레씩 나눠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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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브리지 생활 #5 - 요리 이야기

* 이 글은 molot님의 [무엇을 할 것인가?]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molot 님에게는 불길 시뻘겋게 타오르는 이스크라가 있지만, 나는 없다. 우리집 전기레인지는 빨갛게 달아오르기만 할 뿐 불꽃, 그 핵심이 없다. 엄청난 속도의  가열, 그리고 빠르게 식지 않는 속성 때문에 온도 조절이 쉽지 않다... 초보 요리사에게는 엄청난 시련이 아닐 수 없지.

 

대전으로 독립한 이후, 지금까지 해본 요리는 무엇이 있을까?

 

1. 일상식 

 

잡곡밥

 

온갖 종류의 된장국(두부, 감자, 배추, 콩나물 등등), 미역국, 북어국, 쇠고기 무우국, 앗. 오뎅국이 있었지. 무우와 다시마를 오래오래 끓여서 만든 국물맛이 내가 먹어봐도 환상이었는데.. 

 

김치찌게(돼지고기, 스팸, 참치)

 

취나물 무침 : 기념비적 작품이었다. 할인마트에 삶은 것을 팔길래 그냥 사다가 무치면 되는 줄 알았더니만, 물에 씻어 헹구고 간을 해서 볶아야했다. 더구나 양도 많아서 프라이팬에 두 번 나누어 볶아야했고 거의 일주일을 넘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우연히 그 시즌에 방문한 친구들이, 나의 호화식단("자취생이 나물까지!!!")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비빔국수 : 김치넣고 참기름 넣고 대충만 해도 맛이 나는 고마운 음식

 

유부국수 : 유부가 남아서 그냥 해본 건데 정말 맛있더라.

 

그 외 각종 무침. 콩나물, 오이, 등등. 샐러드는 넘 쉽기 때문에 음식 목록에 안 들어간다.

 

 

 



알밥 : 대전과 캠브리지 모두에서 손님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

 

두부 두루치기 : 이건 영국에 갔을 때 해본 건데, 있는 재료를 그냥 쓸어넣었는데 그런 맛이 났다는게 지금 생각해도 기적에 가깝다. 아주 호평을 받았지.

 

유부초밥 : 풀무원 재료를 사다하면 아주 쉬운데, 그냥 유부를 사다가 만들려면 손이 장난 아니게 많이 간다. 남은 재료로 주먹밥도 만들면 좋다.

 

스파게티 : 햄, 냉동 새우 등을 다양하게 이용해서... 재료만 잘 다듬어 놓으면 20분 내에 요리 완료해서 먹을 수 있는 비교적 간단하고 맛난 음식

 

고추잡채 : 대전에 있을 때 상당한 호평을 받았던 음식이다. 그 기억을 되살려, 이번 주 주말 손님 초대에 이 비장의 카드를 꺼낼 생각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매워서 잘 먹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냉동 꽃빵은 지난 번 중국 마트에서 사다놓은게 있지...

 

잡채 : 펠로우들 모임 때 역시 호평을 받았던 음식... 인도 출신의 Sangeetha 는 나에게 레시피를 적어달라고까지 했는데(^^).. 그건 좀 무리지... 심지어 나보구 요리 잘한다고 다음에는 김치를 해가지고 오란다. 황당하지 않을가. 그건 너무 어렵다고 했더니만 "너네 엄마한테 가면 틀림없이 간단한 레시피가 있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다음에 꼭 맛보자".... 배추를 소금에 절여서 씻어서 갖은 양념을 만들어 적절한 온도에서 적절한 기간 익혀야 한다는 걸 어찌 인도 아줌마가 알 수 있단 말인가... -_-

 

생선전: 물론 한국에서 제사 때 수도 없이 부쳐보았지만, 내 손으로 직접 생선을 사서 썰어서 전 과정을 준비해보긴 처음이었다. 사실 생선 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전자사전 들고 생선 진열대 앞에 가서 하나하나 이름을 쳐보고 cod 가 대구 인 것을 알았다 (ㅜ.ㅜ)

 

근데 써놓고 보니 별로 해본게 없구나. 이게 다 쓴거 맞나?

 

3.  이번 주의 도전 과제

 

아이들 손님을 위하여 특별히 치킨 데리야끼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사회역학 공부하러 와서 요리만 공부하는 느낌이다. 이러다 현모양처 되는게 아닐까 우려했더니만, 김, 전 선생님 부부께서 현모양처를 넘 우습게 보지 말라고 충고해주셨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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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브리지 생활 #4

2년 반 남짓 대전에 살면서 참으로 많은 손님치레를 했다. 유성 호텔촌에서 워낙 학회들이 많이 열리다보니, 난데없이 전화와서 "나 여기 유성인데~" 하는 돌발 손님에서부터, "누나, 이번 주에 한번 다같이 내려갈라고 하는데~" 하는 단체 엠티 손님까지... 같이 술마셔주고 밥해주고, 맛난 거 사주고... 관광 안내.. 관광이래봤자 대전에 뭐 볼게 있나, 엑스포 공원 두 번 갔는데 반응은 싸늘했고 (ㅜ.ㅜ), 시민 천문대 두 번 갔던 것은 아주 호평을 받았고, 그 밖에 금산, 계룡산, 칠갑산, 좀 멀리 진출한 변산, 전주 등은 꽤 반응이 좋았다. 의보사 후배들이 계룡산으로 엠티왔을 때... 이마트에서 선양 소주를 한 박스 들고 계산대로 가다가.... 주변을 돌아보니 다들 가족끼리 단란하게 쇼핑카트 끌면서 반찬거리를 사고 있었다. 젊은 처자가 커다란 카트에 소주만 한 박스 덜렁 싣고...(-_-) 이건 아니다 싶었다. 박스 크키가 훨씬 작은 "청하"로 바꾸고 나서야 부끄러움이 좀 사라졌다. 그리고는 계룡대에서 군의관으로 일하는 친구한테 찾아가 군납 맥주 몇 박스 ㅎㅎㅎ

 

이야기가 샛길로....  여기 캠브리지에 둥지를 튼지 어언 한달 반... 드뎌 첫 번째 벗이 자원방래한고로, 지난 주말을 몹시도 힘겹게 보냈다. 혹시나 관광 다니면서 찍은 사진 좀 올렸으면 하고 바라는 지인이 있을지 모르나... 내 사진기는 들고 나가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진은 절대 없다. 궁금하신 분은 현지 방문해주시면 친절한 가이드와 함께 기억에 남을 사진을 찰칵 ^^

 

첫 날 오후에는, 남들 다 하는대로 Harvard Square 를 중심으로 이곳 저곳, 이를테면 하버드 서림(행당 서림을 따서 내가 붙인 이름 ^^ 원래는 harvard book store), 기념품 매장 등을 둘러보고 캠퍼트 투어를 했다. 정식 가이드 투어를 한 건 아니고 그냥 대충대충 내가 안내를 했는데, 중간에 길을 잃어서 가이드 체면 구겼다. 좀 많이 걸어야 하는 Radcliff와 Divinity school 들은 아예 언급도 안 했다. 가보자구 하면 다리 아프니까... ㅎㅎ 그리고 역시 다른 사람들 하는 대로 harvard  동상과 Weidener library 앞에서 기념 사진 찰칵...  손님이 염치도 없이 배고프다고 생떼를 쓰는 바람에 일찌감치 집에 와서 밥을 했는데... 세상에나 그 비싼 김치로 김치찌게를 끓여달라고 하더니, 먹기도 많이 먹는다. 2박 3일 지나고 나니 김치통이 반이나 비어버린 데다가 쌀 봉투가 바닥이 났다. 주말에야 장을 보러갈텐데, 걱정일세... 

 

 



시내 트롤리 관광을 했다. 아무래도 현지 가이드로부터 대략의 설명을 듣고 명소를 가보는게 좋을 것 같아서... 아저씨가 참 재미나게 설명을 하기는 했는데....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very, very nice, antique.." 그 다음 설명 들어보면 겨우 200년 된 건물, 뭐 하나 설명할 때마다 "the oldest in this country, the largest in the world" 어쩌구... 뭐 이 쪼그만 도시에 국내 최고, 세계최대가 이렇게도 많은지... 중국 사람들 뻥에 비견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 나는 아저씨가 한마디 할 때마다 두 마디씩 궁시렁댔다 (물론 한국말로). 설명하는 기사 아저씨도 웃기지만 승객들도 장난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별 허접한 걸 다 사진찍고, 질문하고... 우리는 점심으로 싸온 주먹밥을 까먹으면서 쉴새 없이 궁시렁대고 분개(-_-)했다. "아니, 뭐 저런걸 사진찍어, 어디 시골 촌구석에서 살다왔나, 아이고.. 신났네 신났어..." 관광 프로그램 중에 freedom trail 이란게 있는데 소위 미국의 독립전쟁과 관련된 유적을 걸어서 돌아보는 것이다. 다섯 명 죽었다는데,  "massacre"라고 써있다. 이런 젠장..  유람선 타면 헌법 박물관에도 갈 수 있는데, 미국의 정신 어쩌구 저쩌구 하는게 하도 가당치도 않아서 들어가지 않고 배타고 그냥 돌아오면서 경치만 구경했다. 항구에는 그 유명한 보스턴 차 사건의 유적이 남아 있다. 어쨌든 바다에서 바라보는 항구의 풍경은 꽤나 멋지다. 고담시를 연상시키는 시카고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저녁에는 야경을 본다고 행콕 빌딩에 갔는데 911 이후 안전 문제로 문을 닫았단다. 프루덴셜 타워에 갔더니만, 세상에나.... private party 때문에 통째로 임대를 해서 일반 입장이 안 된단다. 입장하는 사람들의 옷 차림새를 보아하니 우리같은 촌놈들은 감히 끼일 자리가 아니다.

 

셋째 날에는 아침 든든하게 먹고(아이고.. 내 쌀) 찰즈 강변을 산책하고, 하버드 스퀘어 가서 기념품 사고, 보스턴의 자랑이라는 fine art museum 에 갔다. 자원봉사로 박물관 투어가이드 하는 아줌마 설명이 아주 재미났다. 하지만, 세계 4대(도대체 누가 갖다붙인건지) 미술관이라는 미술관의 콜렉션은 좀 실망스러웠다. 근대 미술로는 유럽의 무수한 미술관들에 비할 바가 못 되고, 고대 혹은 아시아 수집품으로는 대영박물관과 메트로폴리탄에 비할 바가 못 되고.. 미술관에 대해서는 다음에 한 번 맘 먹고 정리해볼 기회가 있음 좋겠다. 일본의 거품 경제가 한창일 때, 예술도 모르면서 비싼 명화들 싹쓸이해간다고 서양인들이 일본을 얼마나 경멸했던가? 미국 미술관에 와 보면, 그런 비판이 얼마나 어줍잖은 것인지 5분만에 깨달을 수 있다.

하여간, 마지막으로 말레이지아 식당에 가서 맛난 저녁 먹고 찰즈 강에 다시 나가서 야경까지 구경하니 길고도 힘들었던 가이드 생활이 끝이 났다. 물론 수족관, 과학 박물관을 비롯한 각종 볼거리들, Jamaica Pond와 식물원 같은 곳을 돌아보지는 못했지만..뭐 이번이 마지막도 아니고...  다음 번에 다른 손님이 오면 이런 데를 가봐야지. 보스턴 심포니나 버클리 퍼포먼스 센터 공연도 가보고...

 

하여간... 보스턴 근처에 오실 분은 꼭 연락하시라... 세계 최고(^^)의 투어 가이드와 함께 재미난 여행을 즐길 수 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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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궁금증을 풀어주다

나의 오랜 벗 장양이 과연 내가 어찌 차려놓고 사는지 궁금한가보다. 평소에 별로 호기심 소녀의 자태를 보이지는 않았었지만, 어쨌든 그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집 안에서 사진을 몇 장 찍어보았다. 사무실 사진도 올려달라는데 거기서 찍으면 좀 민망하지 않을까? 어쨌든 기회를 함 노려봐야지.

 

1. 거실 : 상당히 우아해 보인다. 침대로 펼 수도 있는 Futon (접이식 소파)와 간접 조명, 주제를 알기 어려운 그림까지 걸려있다. 물론 내가 입주하기 전부터 있던 셋팅 그대로 ^^

아래의 사진은 거실 창문쪽에서 바라본 식탁과 화장실 입구...  식탁 위를 좀 치우고 찍고 싶었지만 지나치게 "연출"의 냄새가 날까봐 그냥 평소대로 두었다. 여기에도 역시 벽면에 그림 한 점... 참고로 말하자면 이 집 주인장이 은퇴한 인류학 교수이고, 그 부인은 한국인이라 한국에 대한 조예가 굉장히 깊다고 한다. 우리 집에도 없는 한국 고가구들이 심심찮게 있다.

 



 


 

2. 담은 부엌... 불판 네 개 달린 오븐과 식기 세척기, 전자 레인지, 전기밥솥 등이 눈에 띈다. 식기 세척기는 머리털 나고 처음 써보는 것이라 당황스럽고, 오븐은 아직 한 번도 불을 켜보지 않았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요리책을 보면서 오븐이 없음을 안타까워했는데,,,, 음...이제는 저걸 뭐에다 쓰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 떠나기 전에 한번은 써보고 가야할텐데... 혹자는 어쩜 부엌이 저리 깨끗하냐고 놀랄 수도 있는데, 평소 모습이다 (^^)V

 


 

3. 마지막으로 침실 겸 공부방.... 어지럽게 펼쳐져 있는 모습에 벗들은 이제서야 우리 집임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프린터, 모니터, 키보드는 모두 얻어온 것이고, 컴퓨터 책상은 야드 세일 가서 5달러(10달러 부르는 걸 깎아서)에 사온 것이다. 혼자 끌고 오는게 불쌍했던지 심지어 물건 판 아가씨가 자기 차로 우리 집까지 실어다줬다. 차 범퍼에 케리-에드우드 지지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하여간... 책상이 넓어져서 공부하기는 좋다. 아직 공부를 많이 안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ㅎㅎㅎ

 


 

 하여간, 혼자 살기에는 과분하게 좋은 집이다 (집세가 얼만데 -_- )...

 침대 구조와 거실의 소파까지 고려하면 3명, 뭐 엠티 상황이라면 6명도 잘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 곳을 친히 방문하려는 친구들은 적어도 잠자리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것이 오늘 포스트의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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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visible people

오늘은 Cambridge Center for Adult Education 에서 ESL 강좌가 개강하는 날이다. 강의 시간이 저녁 8시라, 모처럼 사무실에 늦게까지(일곱 시 ^^)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초저녁이지만, 사실 여기에서는 처음으로 이 시간까지 남아 있는 것이었다. 일단, 남아 있자면 저녁을 해결해야 하는데.. 사먹자니 돈이 없고.. 또 밤에 혼자 남아 있는것이 괜찮을까 싶어서 아직 시도를 해보지 않았었다. 하지만 오늘은 할 수 없이 도시락을 두 개 (그래봤자 샌드위치 두 덩어리) 싸가지고 와서 저녁까지 떼웠는데....

여섯 시에 한 낯선 남자가 건물에 들어왔다. 하도 들락거리는 연구자들이 많다보니 또 다른 펠로우인가 싶었는데... 아저씨는 친절하게도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청소와 정리 등의 일을 한단다. 인도에서 왔고, 이곳에서 일한지 15년 째.. 그동안 수많은 펠로우들이 이 곳을 거쳐갔고 사진과 명패를 통해서 나를 이미 알고 있단다. 일하는데 방해가 되는게 아닌가 싶어서 남아 있어도 괜찮겠냐고 했더니만.. 걱정 말란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이 전에도 여러 명의 펠로우들이 밤늦게까지 남아서 공부하고는 했으니 걱정말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쓰레기통이며 회의실 탁자며.. 아침마다 항상 치워져 있었는데, 나는 그게 연구자들의 자발적인 셀프 서비스라고 생각했었다. 어떻게 그런 깜찍한 생각을 했을까? 보건대학원에서도 대개 강의가 5시 반에 끝나는데, Women, Gender & Health 강좌는 6시 반에 끝나고 이걸 듣고 나오면 계단과 복도를 부지런히 닦고 있는 노동자들을 만나게 된다. 물론 대부분 히스패닉이나 흑인들이다. 우리가 일과 수업을 끝낸 후에, 이들은 유령처럼 나타나서 소리없이 일하고 사라진다. 이들은 낮동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들도 용역, 혹은 파견 노동자들일까? 노조는 있을까? 일당은 얼마나 받고 있을까?

 

가끔씩... 누군가의 노동을 통해 나의 일상이 굴러가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망각하고는 한다. 그걸 깨달을 때면.. 그냥 혼자 쪽팔리지...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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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브리지 생활 #3

여기 미국 생활에서 가장 놀라운 것 중의 하나는 엄청난 소비문화...

줄리엣 스호르의 신간 제목은 "Born to Buy" .. 표지에는 어린 아기와 쇼핑백이 그려져 있다.

코스트코를 비롯한 대형 마트에 들어가면 입이 쩍 벌어진다. 심지어 어제 고속도로를 지나다 본 스테이크 요리집과 대형 입간판은 그 규모에서 나를 질리게 만들었다. 저 정도 되면 식당이라기보다 대형 도축장이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

 

그 와중에 우리 동네에 있는 Whole Food Market 은 좀 색다른 분위기...

우리나라의 규모가 좀 큰 슈퍼마켓 정도인데.. 내가 놀란 것은 1리터짜리 우유와 1/4 조각짜리 수박을 판다는 것. 그 외에도 도저히 다른 할인점에서는 보기 어려운 작은 단위의 포장 제품들이 즐비하다. 처음에는 단순한 소매점인가보다 했는데, 알고보니 유기농 전문 매장이다. 그러다보니 물건들이 조금씩 다 비싸다. 장보러 오는 사람들도 쇼핑수레를 끌고 다니며 트렁크 가득 물건을 채워가는게 아니라 장바구니에 조금씩 사간다. 심지어 비닐봉투를 가지고 가면 5센트를 돌려주기까지 하니... 감동할 지경이었다 (-_-)

사실, 한국에서는 유기농 매장 근처에도 가지 않았었다. 일단 가격도 그렇고, 믿을 수도 없어서...

하지만, 여기에서 곰곰히 고민해본 결과... 단위 가격은 당연히 대형할인 매장이 싸지만 혼자 사는 살림에 아무래도 오래 보관하기도 힘들고 나중에 버리느니 그냥 이곳 식품을 사는게 낫다는 결론... 무엇보다, 단순히 몸에 좋은 유기농이라기보다는 (소위 나만을 위한 웰빙? 국적불명의 요상한 단어...) 제품 포장지들이 대부분 재활용 용지일 뿐더러 비닐백에 대한 환불 조치, 각종 환경 보호 상품들을 판매하고 안내를 한다는 사실이 이 소비의 천국에서 한 줄기 신선한 자극....

 

뭐 이런 것까지 고민하며 살아야 되나 싶기도 하다가... 그래도 이 지구를 내가 구해야지 안 그러면 누가 구하나 하는 독수리 오형제 정신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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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브리지 생활 #2 (2004.9.8)

사람나고 돈 나지, 돈 나고 사람났냐.. 이런 생각에 큰 맘 먹고 스피커를 구입했다.
아직 오른쪽 귀 청력이 안 좋은지라, 이어폰을 쓰기에는 무리가 있는 듯하여 문구할인매장에 가서 가장 싼 걸로 하나 샀다. 대략 만 오천원... 특이하게도 LED 전원이 형광 파란색이다. 정신 없어라...
 
이** 선생님이 남겨주신 모니터와, 전** 선생님이 주신 키보드, 신** 선생님이 물려주신 프린터를 연결하고, port replicator, speaker 등을 셋트로 연결하고 나니 뭔가 자리가 잡힌 듯..
이승열의 나즈막하지만 강렬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열심히 데이터 정리 작업을 벌이다 블로그에 잠시 들렀다. 녹차라도 한 잔 마시고 싶지만 설거지 하기 싫어서 참고 있다.
 
이곳은 평균적으로 들어왔던 미국의 도시와는 좀 다른 모습이다. 늦은 밤까지 버스에 사람이 끊이지 않고, 불야성(?)을 이루는 술집, 삼삼오오 밤거리를 몰려다니는 학생들의 모습... 피부색과 쓰는 말이 달라서 그렇지, 한국에서의 대학 앞 풍경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듯 싶다. 슈퍼마켓도 차를 가지고 도시 외곽으로 나가야 한다고 알고 있었지만, 이 곳은 학생들이 많은 상황을 고려해서인지 도심에 크고 작은 할인마트들이 즐비하게 있다. 문구류가 비싸다고 사가라는 사람이 많았는데 와보니 대형 문구 할인 매장에 없는게 없을 뿐더러, 볼펜 같은 기본 필기구는 진짜(!!!) 싸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자야겠다.
아참, 민지네 회원인 사과나무님과 연락이 되었다. 동부 번개 한번 하자는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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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브리지 생활 #1 (2004.9.2)

새로운 곳에 정착한지 어언 사흘...
미해결 보고서 때문에 여기가 도대체 미국인지 한국인지 정신이 없다.
 
아틀란타 공항에 내리자마자 눈에 띈것은 온갖 형형색색의 자판기와 가게들, 그리고 열심히 무언가를 소비해대고 있는 사람들... 오늘은 우리 동네(^^) 쓰레기 수거가 있는 날이었는데 내놓은 물건들을 보니 그저 입이  쩍 벌어질 뿐이다. 진작에 알고야 있었지만, 정말 적응이 안 되는 이 소비문화....
지구촌 다른 이웃들과 후손들에게 짓고 있는 이 환경파괴의 업보를 미국인들은 어찌 갚으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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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글 (2004.8.28)

한 때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반 정도는 사실이었다. 학비 조달이 학창 시절 가장 중요한 화두였고, 수업은 대개 나홀로 자습... (결국 학비 마련해서 자습했다는 소리구만 -_-)
 
하지만 어느 순간인가, 갑자기 깨달음을 얻었던 것 같다.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보내준 애정, 격려, 지지, 비판, 가르침.. 이런 것이 없었으면 지금의 내 모습(?)이 가능했을까.
고등학생 때 학비를 지원해준 이름모를 후원자. 그 존재에 대해서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다는게 지금으로서는 더욱 미스테리다. 싸가지가 없는 것인지, 둔감한 것인지...  물론, 대학시절 ** 장학회는 개인적으로 전혀 고마움이 없었다. 오히려 "적의 군량미"를 소진시켜야 한다는 기괴한 생각은 했지만...
대학 선택의 기로에서 "결정적" 조언을 해주신 선생님. 만일 원래 뜻대로 ** 공대에 진학했다면 지금 뭐하고 있을까나
대학 시절, 삶의 화두를 함께 고민했던 선/후배와 친구들... 그리고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피붙이의 정을 느끼게 해 준 의보사 식구들... 실제로 이들 덕분에 겨우 인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어서 만난 예방의학/보건학계의 스승, 선후배와 동료들... 이들의 포괄적이면서도 구체적인 가르침은 소위 학문하는 자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데 근간이 되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공부하러 떠나는 이 길에....
주변의 많은 분들이 보여준 따뜻한 마음(이런 표현 닭살이지만 사실..)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누군가가 학문을 한다는 것은 본인의 재능이나 노력을 통해 스스로 무얼 한다기보다 주변 사람들의 사적, 혹은 사회의 공적 투자를 통해 "사회적 존재"로서 다듬어지고, 이에 대해 사회적 임무를 떠안는 것 아닐까?
적어도, 이 사람들에게, 사회에게 "배신(?)"을 때릴 수는 없다는 소박한 마음으로라도 열심히 살아가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마지막.... 짐 점검을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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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중...

엠파스에 있던 블로그를 옮겨오려구 준비 중...

시간이 꽤 걸리는구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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