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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4/08
    때이른 선거 후기(5)
    hongsili
  2. 2008/04/07
    선거 단상...(2)
    hongsili
  3. 2008/03/30
    알 수 없는 인생(3)
    hongsili
  4. 2008/03/29
    하루 세 번 양치질?(5)
    hongsili
  5. 2008/03/17
    [진보신당] 단상(9)
    hongsili
  6. 2008/02/26
    해산?(4)
    hongsili
  7. 2008/02/04
    역사적인, 너무나 역사적인!(8)
    hongsili
  8. 2008/01/07
    안내 [보건의료 진보포럼] (3)
    hongsili
  9. 2008/01/01
    역사는 진보한다....(2)
    hongsili
  10. 2007/12/18
    무지 혹은 외면? 당, 그리고 염치!(4)
    hongsili

햇님 달님???

옛 이야기 '햇님달님'에 보면, 오누이가 호랑이를 피해 나무로 기어올라가자, 호랑이가 물어본다. "얘들아 어떻게 올라갔니?" "참기름 바르고 올라왔지~" 뜬금없이 이 이야기가 생각난 건, 광화문 명박산성에 윤활유(?)를 바르고 있다는 속보 때문... 웃어야 하는 거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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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도시들

서울과 대전이, 기차로 불과 50분에 불과한 거리이지만, 오늘 저녁 풍경만으로는 백만광년 쯤 떨어진 듯 하다. 사람들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그 잘난 '민주'정부 동안 수많은 이들이 소리 없이 (지금보다 결코 덜하지 않게) 다쳤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아픔 속에서, 시민이자 노동자로서 연대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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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가 제일 쉬웠어요!

선거 당일날은 일 하느라 개표 방송을 못 보고 (인터넷에서 최종 득표율만 확인) 어제는 하루 종일 바깥에 나다니느라 뉴스를 못 봤다. 오늘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진짜... 배꼽 잡고 쓰러졌다.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463 뉴스엔조이 2008.4.3 - 한나라 비례대표 1번 강명순 목사 인터뷰 "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묻자, 강 목사는 "아이들을 위해서요.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난 뭐든 할 수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강 목사는 "정치에 대해서는 묻지 마요. 난 아무것도 몰라요. 대운하고 뭐고, 북한과의 관계가 어떻든, 한나라당의 정책이 뭔지 난 전혀 몰라요. 정치에 대한 질문은 무조건 노코멘트에요"라고 일축했다. 정치에 대한 얘기만 꺼내면 몇 번을 "몰라요"라고 대답했다. 대선 때는 어떤 후보를 뽑았냐, 평소 한나라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냐는 질문에도 "몰라요"로 답했다. 강 목사는 한나라당으로부터 몇 번에 걸쳐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화여대를 통해 제의가 들어왔는데 거절했어요. 몇 주 지나서 또 제의가 들어오는 거예요. 그때는 한나라당에서 누가 직접 찾아왔는데, 그 사람이 '하나님이 강 목사님을 찾아가랬어요. 목사님이 십자가를 지시죠'라고 말하며 입당을 권유하더군요." "비례대표가 뭔지 이번에 알았습니다"라며 말하는 강 목사는 공천제의를 놓고 일주일 동안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결과에 따라 순종했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아닌, 다른 당에서 제의는 없었냐고 묻자 "그 어떤 당에서도 제안을 하지 않았어요. 한나라당에서만 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했습니다"라고 말했다. " 오피스텔 선물, 땅사랑, 귀신 토지거래 사건을 단박에 무너뜨리는 초절정 내공... "개그가 제일 쉬웠어요."


3% 안 넘어서 해산되는 줄 알았는데, 기준선이 2%란다. 기뻤다. 아마 이에 대해서도 걱정하는 분들 꽤 있을 거다. 당이 완전 해체되지 않고, 노/심 중심의 패권주의를 그대로 가져갈까봐... ㅡ.ㅡ 우쨌든 나는 기쁘다. 그리고, 믿고 지지해주신 지인들께 감사드린다. 비바람 뚫고 힘겹게 투표하고 왔는데, 자신이 겨우 대한민국 3% 소수자였다는 걸 알고 나름 충격 받으신 지인들... 너무 놀라지 마셈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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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이른 선거 후기

선거는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런 후기를 적다니 ... (야간 강의 시간까지 애매하게 시간이 남아서....) 일단, 여한은 없다 ㅎㅎ 급하게 총선에 참여하는게 과연 올바른 길일까 고민하기도 했으나, 만일 안 그랬다면 이 시기에 뭘 했을까 싶다. 물론 아쉬움과 부끄러움이야 왜 없겠나? 정책은 이야기도 않은 채 무작정 지지를 호소한 경우도 많았고 (일명 묻지마 투표 ㅡ.ㅡ), 스스로의 고민이 정리되지 않았음에도 무작정 변호를 한 경우들도 있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주변 사람들과 모처럼 진득한 이야기를 나누고 지지자를 조직하는 일이 과연 선거 아니면 또 언제 가능하랴 싶다. 당원 게시판의 분위기는 2004년 총선 전야와 비슷하다. 사람들이 '진심으로' 자신의 활동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좋겠지만서도, 어쨌든....다들... 여한은 없을 것이다. 백만년 만에 문자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화이팅이라는 답문자를 보내준 선후배, 친구들을 비롯하여, 어렵사리 말을 꺼냈는데 흔쾌히 오케이 사인을 보내주신 선생님들 (심지어 결과가 나빠도 실망하지 말라는 덕담까지), 적지 않은 후원금을 턱 하니 내놓으신 지인들... 모두 고맙고, 한편으로는 어깨가 매우 무겁다. 이 분들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뭔가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은... 그런데 참 미스테리로구나... 내 주변에 이렇게 지지자가 많은디, 지지율은 어째 2%... 내 주변에는 기인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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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단상...

선관위에서 보낸 공보물을 보다가 허거덕.... 0. 정당기호 8번 기독사랑 실천당.... 이 분들의 정강 정책 6번이, '비성경적인 동성연애법, 체세포복제법 반대'란다. 나도 모르는 새, 한국에 '동성연애법'이 생겼단 말인가? 동성애도 아니고, 동성'연애'를 적극 장려하기라도 한다는 말쌈? 아마도 차별 금지법을 지칭하는 듯한데... 참으로 해도 너무 하시는 분들이로구나! 기독당 국회의원 후보의 특징은 1. 신앙심이 투철한 하나님의 사람 2. 각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능력있는 사람 3. 투철한 국가관을 갖춘 애국하는 사람 이란다. 1번이야 그렇다 치고, 도대체 2번 3번은 성경 어디 쯤 나와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도다. 거기다가, 모르고 있었는데 '평화통일 가정당'은 통일교 관련 정당이라는 친절한 설명도 해주고 있다.


0.정당기호 14번 평화통일 가정당 이 분들도 기이하기는 마찬가지. '초종교, 초국가, 초이념, 초인종 평화센터 건립'을 추진한다며 '민족사관 숙지'니 '대한민국이 세계중심국으로 부상하도록...' 운운은 도대체 뭣이다냐??? 괴이하다 괴이해... 0.정당기호 15번 한국 사회당 이 분들.... 당 내 상황이 복잡하다는 뉴스는 보았으나, 기왕 선거에 개입하기로 했다면 최소한 당 홍보물이라도 만들어주셨어야 하는거 아닌가? ㅜ.ㅜ 웬지 안타깝다... 더구나, 우리 지역구에 원래 출마하려 했던 후보마저 당내 사정으로 좌절되었다니 씁쓸하다. 민주노동당 당원이던 시절에도, 우리 후보가 없다보니 이 양반한테라도 표를 주려고 투표하러 가곤 했는데 말이지... 선거 후에는 같이 할 수 있을까? 0. 정당기호 13번 진보신당 인터넷 게시판을 들여다보면 이만한 절대 악이 없다. 한나라당 '이중대'에, '고작' 개량 사민주의 세력일 뿐 아니라, 기껏 연예인들이나 동원하고 명망가 위주의 정치를 펼치는 포퓰리스트 정당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당원이며 지인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이유는? 그 이름이 사민주의건 삼민주의건 관계없이 당의 지향점이 보편적 기본권의 보장이기 때문이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께서 비판하시는 유럽의 사민주의는 알다시피 궁극적 지향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결과물이었다 (Esping-Anderson 이나 Korpi의 논문 한편쯤은 교양으로 읽어두자!) 사회변혁 운동은 다양한 스펙트럼과 층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게 기본 믿음. 일부는 제도권에서, 일부는 비제도권에서, 또 누군가는 좀더 온건한 방법으로, 또 다른 누구는 아주 단호하고 급진적인 방법으로... 어느 하나가 모든 것은 대표할 수는 없으며, 반드시 어느 한 가지가 그 나머지보다 우월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따로, 또 함께 궁극의 지향을 향해 함께 가는 것이 민주주의 아녀? 핀란드나 스웨덴의 사민주의가 개량이라고 '에이~' 손사래를 치는 건 한국 현실에서 너무한 처사... 또다른 지지의 이유는, 함께 하는 이들에 대한 믿음! 다른 분야는 잘 모르겠지만서도, 보건의료 부문에 참여하고 있는 샘들이나 활동가들이 매우 훌륭하신지라 이 분들만 봐도 지지할 수 있다는 헛된(^^) 신념이 샘솟는다는... ㅎㅎㅎ 그리고 이전 민주노동당에서와 달리, 좀더 체계적으로 당의 정책과 의제를 만들어나가는데 참여할 수 있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 반미와 통일 말고는 아무런 관심도 없던 이전 지도부에 대해 우리가 경험했던 좌절과 무기력을 이제 노력을 통해 극복할 수 있으리란 작은 희망을 갖고 있다. 물론 현실은 이와 다를 수 있다. 어차피 정책의 우선순위라는 것도 정치활동의 결과물이라 전문가 몇 명이 이야기한다고 뚝딱 우선순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도 안 되고), 최소한 논의구조를 만들고 조직화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는 거 자체가 희망의 근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까, 지인들에게 열라 문자를 보냈는디, 반응이 나름 괜찮다.... 이렇게 다들 지지한다는데 2%도 안 되는 지지율은 뭐여.... ㅜ.ㅜ * 뱀발 당내 자유게시판을 보면, 전문 키보드 워리어들의 그 부지런함에 깜딱 놀라곤 한다. 그 분들... 진보누리 시절부터 시작하여 민주노동당, 민지네, 레디앙 게시판 등등에서 꾸준히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던 분들이다. 심지어 민지네 '사과나무'님이 그토록 싫어하던 (문장에 쉼표 없다고 ^^) &&타이거까지 출몰한 거 보고 '이제 다 왔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더랬다. 원래 뭐하는 분들일까??? 이 열정의 근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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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인생

사람의 앞길이란 참으로 알기 어렵다. 지금 생각하면 좀 (많이) 웃긴데... 대학 1, 2 학년 때 나의 꿈은 전위정당 (소위 VPa - Vanguard Party)의 보건의료 부문 담당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공도 이 길로 ㅎㅎㅎ 그런데 지금 모하나??? (몇 해 전 내과의사인 친구가, 우리 인생이 이리도 평범할 줄 그 시절 미처 예상치 못했노라 고백했더랬다. 그러게나 말이다... 그래도 아주 쪼금, 먼지만큼 미세하게 비슷한 일들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줄까?) 최근 몇 년 간, 비교적 예측가능한 생활 속에서 가장 뜻밖의 사건은 성수노동자 건강센터 설립에 관여하게 된게 아닐까 싶다. '난데없이' 프로젝트에 연루되고 얼떨결에 책임을 맡고, 그런데 알고보니 이게 엄청난 일이었더라는... ㅜ.ㅜ 정말... 알 수 없는 인생이로다!!! 노신 선생님이 그랬다며... 길이 원래 있는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지나면 길이 된다고... 경험도 부족하고 아는 것도 없는 나는, 그냥 동지들 믿고 간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위장한 J 같은 이들말이지... ㅎㅎㅎ) 그래그래...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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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세 번 양치질?

행인님 블로그에 들렀다가 퍼왔다. 촌스러우면서 귀여운디... 근데 재밌기보다, 이거 만들려고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는 생각에 짠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ㅡ.ㅡ 그래도, 브라질 PT 보다는 낫다. 그 양반들 당 번호가 13번인데, 여기는 만들어지면 고유번호를 부여받도록 되어 있어 앞으로도 대대 손손 13번이다. 국민 대다수 카톨릭인 국가에서 ....ㅡ.ㅡ 2004년도에 분당한 PSOL 은 무려 당 번호 50번.......... 여기 블로그에 들르시는 지인들... 하루 세 번 양치질할 때마다 13번 기억해주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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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단상

드디어, 오늘 창당대회가 있었다. 지난 주 내내 출장 때문에 밀린 일들이 많아 가볼 수가 없었다. 중간에 잠깐 인터넷 생중계를 틀었더니 마침 변영주 감독이 홍보대사라며 김부선, 진중권씨를 소개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안티가 젤 많은 사람들이라고 ㅎㅎㅎ 지난 몇 달 - 특히 대선 이후 두 달 동안 민주노동당이 갈라지고 신당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은 바빠서 두 가지만 적는다. 0. 운동과 진보는 소위'운동권'의 훈장 혹은 전유물인가? 인터넷 공간의 키보드 워리어들이 하는 소리에 일희일비하지는 않지만, 진보신당의 전략 비례대표 명부에 대한 일부(?)의 악성댓글은 참 심란하기 그지 없었다. 물론 이성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특정 후보를 호불호할 수는 있다. (명망가 중심, 당 외부인사에 치중되었다는 비판은 여기서 논외로 한다) 내가 문제삼고 싶은 것은 소위 운동권의 적자임을 내세우는 자들의 어줍잖은 '운동경력' 비판이다. 특히 홍보대사로 위촉된 영화배우 김부선 씨나 비례후보로 추천된 피우진 중령에 대한 비판이 그렇다.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지만 진보/정치에 대해 이들이 뭘 알겠냐는 식의 댓글들 말이다. 운동이 뭐고 진보가 뭔가? 내가 팔로군 사령관 주덕을 존경하게 된 것은, 그가 혁명의식이 투철하거나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바) 서민적인 풍모 때문이 아니다. 30대 중반까지 그저 그런, 그 시대의 또다른 군벌세력의 한 명이었다가 뒤늦게 삶의 경로를 바꾸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오던 방식을 바꾸긴 정말 힘들다. 그것도 사회에서 개인으로의 침잠이 아니라, 개인에서 사회로 나아가기란.... 그런데, (스스로 운동권임을 강하게 어필하는) 이 키보드 워리어들은 자신의 사적 경험으로부터 사회에 눈을 뜨고 뒤늦게 사회를 바꾸는 대열에 참여하겠다는 이 훌륭한 사람들에게 왜 그리 족보를, 사상검증을 요구하는가? 오히려 내가 걱정하는 부분은, 정파도, 잘난 운동 경력도 없는 이 분들이 당 활동에서 소외되거나 상처를 받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2004년 총선 비례대표 선출 투표에서 나는 단병호, 심상정에게 표를 던졌다. 안정된 공직을 벗어버리고 양심선언을 했던, 그리고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던 이문옥 선생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그에게 투표하지는 않았었다. 순진하게도, 남들이 찍을 줄 알았었다. 허나 개표 결과를 보고 기절할 뻔했다. 당시 이문옥 후보는 이주희 후보의 다음인 10번을 배정받았던 것이다. 총선이 있던 날, 일부 언론들은 드디어 20대 국회의원이 탄생하느냐 마느냐 하며 이주희의 당선 가능성을 선정적으로 보도했지만, 나는 8번 노회찬후보에서 그냥 끝났으면 좋겠다고 염불(ㅜ.ㅜ)을 했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소수 키보드 워리어들 뿐 아니라, 이 바닥에는 전력/경력에 대한 숭배문화가 자리하고 있는 듯 싶다. 하긴, 학생운동 2-3년 한 거 가지고, 2-30년씩 우려먹는 사람들도 널렸는데, 꾸준히 운동을 해온게 왜 존경할만하고 자랑할만한 일이 아니겠나! 하지만, 사람들이 살아온 방식은 다양하고, 운동의 방식도 다양하다. 뒤늦게 삶의 경로를 바꾸어 광장으로 뛰어나온 이들에게 필요한 건, 족보 확인과 사상검증이 아니라 따뜻한 동지애와 격려, 가슴으로 하는 연대가 아닌가 싶다.


0. 긴 호흡, 장기적 낙관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좌파들, 특히 초기 신당파들에게는 진보신당의 모습이 매우 성에 차지 않는 듯 하다. 물론 나도 탈당하고 얼마동안 신당 가입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는 했다. 아마도 가장 결정적인 비판은, 민주노동당에서 문제되었던 패권주의와 평당원 민주주의의 실종이 여기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점인거 같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당이 명망가 중심의 선거에만 매몰되고 있다는 비판도 높은 비중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비판에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나는 저기 안 갈래', 혹은 '망하든지 말든지 나는 신경 안쓰겠다', 심지어 '실망해서 탈당하겠다'는 때이른 결단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지금 한창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는 정당에 필요한 것은 더많은 비판과 동반된 더많은 참여가 아닐까 싶다. 팔장 끼고 관전하면서, '어디 잘 하나 보자, 잘 하면 내가 들어가주마' 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당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더욱 어려워진다는 건 분명하다. 또한 현실 속에서 (주변과 동떨어진) 이상향 건설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 또한 관념론적 편향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인터뷰에서 레빈스 교수가 했던 이야기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 ...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가 건설하려고 하는 사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다. 우리는 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사회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며, 우리 삶을 이에 따라 미리 형상화하려고 하지만 완벽할 수는 없다. 내가 처음으로 공산당 활동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공산당 활동을 하는 건 좋은데 ‘공산당’과 ‘공산주의 사회’를 절대 혼동하지 마라. 만일 당이 공산주의적 삶을 보장해준다면, 굳이 혁명이 필요 없을 거다. 이미 자본주의 안에서 그렇게 살 수 있다는 소리 아니겠냐! " (실망스럽거나 혹은 부끄럽지만) 이게 우리 민주주의 수준이고, 우리 운동의 수준인 걸 어쩌겠나? 민주주의가, 정당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닐진데, 우리가 죽는 날까지 남한사회의 문제점을 모조리 극복한 완벽한 정당 혹은 정치조직이 탄생할 수 있을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세상이 무조건 악화일로만 걷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진과 퇴보를 거듭하면서도 조금씩 세상은 나아가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50년 만에 민주노동당이 의석을 얻기도 하고 (이게 뭐 진보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이 좌파적 가치와 민주주의를 이슈로 분화되기도 하고, 또 성소수자가 백주대낮(^^)에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기도 하고... 좀 천천히, 긴 호흡으로 갔으면 좋겠다. (근거없는 장기적 낙관주의자라고 비판하더라만...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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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

며칠 전 모임에서 진보의료 연구회 해산을 결의했다.

 

지난 남유럽 출장 때 '혹시나' 해서 대책을 논의했던 바대로...

 

연구회 구성원 대부분이 이미 탈당한 데다, 진보정치연구소 성원들도 모두 자리를 뜬 상황에서 당 소속으로 더 유지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당에 남겠다는 분들도 일부 있었다.

 

그간의 많은 연구회들과 달리 당과의 연계 속에서 조직적 활동을 도모했던 이 모임의 성과와 한계 (연구회 자체 뿐 아니라, 당의 정책 생산 기전까지 포함하여) 는, 다른 자리에서 평가가 될 것이다. 해소 단계에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더욱 바람직할 수 있겠지만, 해소나 당을 바라보는 입장의 차이 때문에 이는 쉽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새로운 진보정당과 연계된 모임을 결성하는 과정에서 이를 평가하게 될 것 같다.

 

이러한 연구회가 당의 정책 결정 구조와 좀더 유기적 연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나, 참여하는 개인의 결의 수준이 이전보다는 더 높아야 한다는 것은 대략 공유되지  않을까 싶다. 

 

오랜 동안 모임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왔던 Y 샘은 회한, 허탈, 그리고 약간의 분노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한???)를 느끼는 듯 보였다.

 

나는...먼 옛날에 경험했던 한 해산의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에, 이번 해산 결정이나 그에 임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참으로 깔끔하고 민주적이라고 생각되었고, 그래서 그닥 회한이 크거나 허탈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동안 당의 모습을 생각하면 왜 아쉬움이 없겠냐만...  (이제사 하는 말이지만 그 옛날, 내 평생 이렇게 지루하고 답 없는, 토론아닌 토론은 다시 오지 않을거라 주문을 외우기도 했었다. 헤어지는 마당에 서로 의심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지...)

 

위기를 기회 삼아, (이름이 뭐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연구회가 외연도 넓히고, 당 구조 속에서 실천적/이론적으로 좀더 활발한 활동을 하는 모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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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너무나 역사적인!

남한 아니, 세계 진보 운동 역사에,

길이길이 기억될 것이다. "2008년 2월 3일"

 

그럴 줄 알았다, 고 냉소해버리기엔, 상처가 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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