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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난 두 분을 추모하며...

 

올해 학술운동(?)의 목표 중 하나가, 건강생활최저소득 (Minimum income for Healthy living) 관련 예비연구를 진행해보는 것이었다. 지난 여름부터 꾸준하게 모임이 지속되었고, 낮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몇 주 후면 연구결과를 발표하게 된다.

6개월 남짓 함께 공부를 하는 동안 당혹스러운 두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세미나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건강불평등 연구업계에는 Townsend index 로 널리 알려져있으면서, 복지업계에서는 상대적 빈곤과 박탈개념의 선구자로 명망이 높으신 Peter Townsend 교수가  돌아가신 것이다. 향년 81세.... 부고 기사를 읽어보니,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한 분..... (부고 기사는 여기)

안타까운 마음에, 부고 소식을 연구자 회람도 하고, 학회 소식지에도 실었는데...

 

엊그저께 또 하나의 부고...

건강불평등 연구업계의 전기를 마련한 블랙리포트의 공저자이자, 우리가 요즘 진행하고 있는 건강생활최저소득의 개념을 최초로 제안하신 분인 Jerry Morris 교수가 28일에 돌아가셨다. 이제서야 알았는데, 자그마치 1910년 생이시다... 향년 99세..............ㅡ.ㅡ

그럼 2000년도에 MIHL 논문을 제 1저자로 게재하셨을 때, 이미(!!!) 90세였다는 거다......

심지어 2005년 런던스쿨에서 노인을 위한 건강생활최저소득 프로젝트 보고서의 책임자를 맡았을 때는 95세.....  도대체 뭐 드시고 이렇게 총기를 잃지 않으셨다냐?  살아계실 때 그 비법을 캤어야 했다!!!!  나는 지금도 총명탕이 절대 필요한 상황인디?

 

언젠가 친구가, 우리가 좋아하는 가수들은 다 일찍 죽는다고 불평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 김현식, 김광석, 들국화의 허성욱, 나는 별로 관심없었지만 듀스의 김성재....

Townsend 나 Morris 교수들이야, 절명하신 건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한참 그분들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돌아가시다니.....  일면식도 없는 사이기는 하지만 섭섭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건강하게 더 오래 사셨으면, 아마 더 많은 일을 하셨을 분들이다. 여기 젊은이들은 오늘도 스스로의 '연로함'을 탓하며 퍼져있는데..... 부끄러운 일이야!!!

부디 영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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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념'이라는 이데올로기

요며칠 경험한 (새롭지는 않지만) 난감한 상황...

 

#1. '엄마는 우리 집에서 제일 한가한 사람이예요' 

 

연수를 가게 된 남편을 따라 현재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대학원 후배 1인.

얼마 전 그 집 여덟살짜리 딸래미랑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다. 

"엄마가 논문도 쓰고 힘들테니까 동생도 잘 돌보고, 엄마 공부할 수 있게 시간 좀 줘" 했더니만 득달같이 대답한다. "엄마는 우리가 학교가고 아빠 일하러 가면 집에서 빨래나 하는 제일 한가한 사람이예요..." ㅜ.ㅜ

 

허거덕했지만 굴하지 않고, "아빠 연구하는 것만큼 엄마 공부도 중요하니까, 아빠보고 집안일좀 거들라고 니가 말해" 했더니만, 아빠가 논문쓰느라 얼마나 바쁜데 그러냐며 나를 나무란다... ㅜ.ㅜ

 

그녀가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지는 나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함께 진행하던 논문의 1차 심사결과가 왔는데, 그 '한가한 엄마'가 과연 언제 시간을 내서 그것을 수정할 수 있을지..... 이건 뭐 어디서부터 어떻게..... OTL

 

#2. "국가경쟁력"

 

고 3들이 생각하는 저출산 고령화 대책의 핵심은 '국가경쟁력 확보'인가보다.

지구촌 인구가 폭발하기 전인데 왜 한국만 인구를 늘려야 되냐고, 청년 실업이 백만인데 자꾸 더 낳기만 하면 어쩌냐고, 지식기반/서비스로 경제구조가 바뀌면 힘쓸 일이 줄어서 노인도 일할 수 있을텐데 왜 노인인구 증가가 부정적이기만 한거냐고 반문해도, 한참을 주저리주저리 하다가 '그래도 국가경쟁력'으로 돌아온다. ㅜ.ㅜ 막상 국가경쟁력이 도대체 뭐냐고 물어보면 답도 못하고.... 어이구.......

 

뭐 고등학생들한테 큰 기대를 하는 건 아니지만, 어느 누구도 저출산이라는 현상이 젠더/노동의 이슈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더라. 그나마 좀 나아가면 사교육비를 줄여서 경제적 부담을 줄여야 된다는 정도? 개중에는 여성들의 인식을 제고시키는 캠페인을 해야 한다니, 원, 조선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인가???

 

하긴, 누구를 나무라겠나....

이들만 특별히 이런 생각을 가진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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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 않을 기억으로!

쌍용차는 정리(?)가 되었지만, 용산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쌍용차의 경우, '타결'이란 이름을 달기는 했지만 

이 일을 가슴에 담아두었던 그 누구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2009년의 이 두 사건은,

연민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한편으로 의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인간의 잔인함에 대해 몸서리쳐지는 공포를 실감할 수 있는 체험장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고통과 상처의 기억이 바람 속에 그저 흩어져버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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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선택 [건강정책웹진 칼럼]

건강정책포럼/비판과 대안을 위한 건강정책학회 웹진의 '건강정책칼럼' 한 꼭지를 맡게 되었다.

 

사실, 독자층이 누구인지 파악이 안 돼 좀 고심하다가, 그냥 보건의료/사회정책 분야 언저리에서 공부, 연구, 일하는 사람들을 두루두루 생각해서 썼다...

정치적 스탠스도 짐작 불가한지라... 역시 두루두루..... ㅡ.ㅡ

그래서, 근자에 쓴 글 중 가장 점잖다! (심지어 본문에 영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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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행복의 지도]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즈와 공영 방송 NPR 기자로 일하며 세상의 온갖 불행한 사건·사고 를 알리던 ‘에릭 와이너(Eric Weiner)’가 행복의 정체를 찾아 떠난 유쾌한 여행담입니다. 저자는 국왕이 직접 국민의 행복 지수를 챙긴다는 부탄, 실패를 찬양하는 사회 아이슬란드는 물론, 더 이상 불행하기란 불가능해 보이는 몰도바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행복의 근원을 탐색해 봅니다. 여행이 중반 이후에 접어들면서 필자는 ‘행복도 선택’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쉬운 선택도 아니고 항상 바람직한 선택도 아니지만, 어쨌든 선택’이라는!
 


 

책을 읽으며, 한국은 과연 얼마나 행복한 사회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OECD 최고를 자랑하는 자살률만으로도 우리는 한국 사회의 행복 수준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유달리 존재론적 고뇌의 결행으로써 자살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면 말입니 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도 간접적 척도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이라면 굳이 다음 세대의 탄생을 피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일찍이 경제학자 이스털린(Easterlin)이 확인했듯, 부나 소득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것들이 증대한다고 행복도 따라서 늘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 성장이 바로 행복과 직결된다면, 우리는 한국 전쟁 이래 거의 백 배 이상 더 행복해졌어야 합니다. 한국은 국민 소득에서 이미 세계의 선두 그룹에 서 있지만, 행복 척도에서는 항상 뒷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행복 연구자’들은 행복의 근원을 찾고자 매달렸습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사회적 신뢰와 관용입니다. 

전 세계 사회과학자 네트워크가 80여 개 사회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사회적 가치와 문화에 대한 의견을 주기적으로 조사하는 ‘세계가치 조사(World Values Survey)’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수백 개의 문항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사회학자 잉글하트 (Inglehart)는 요인분석을 통해 ‘well-being vs. crude survival’이라는 개념을 도출한 바 있습니 다. 이 요인에는 다음과 같은 변수들이 적재됩니다. 얼마나 행복한가, 삶에 얼마나 만족하나,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 나, 이웃에 범죄자/외국인(이주 노동자)/동성애자/에이즈 감염인 등이 사는 것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나, 일자리가 부족할 때 여 성보다는 남성, 이주 노동자보다는 내국 노동자들에게 우선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데 얼마나 동의하는가…. 쉽게 이야기하자면 ‘내가 우선 힘들어 죽겠으니 다른 사람이 어찌 되건 말건 우선 나부터 잘 살고 보자고 생각하는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 다. OECD 국가들의 점수를 살펴보면, 한국은 헝가리와 슬로바키아를 제외하고 가장 높습니다. 심지어 나머지 다른 국가들과의 점수 차이도 상당합니다. 즉 한국은 ‘well-being’보다 ‘survival’에 지나치게 경도된 사회라는 뜻입니다. 

사실, 이런 통계 결과가 없어도 우리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살벌하고 타인의 삶에 무심한지 이미 직관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아이를 특별한 1%로 키우라는 분유 광고, 어떻게 지냈냐는 친구의 인사에 말없이 대형 승용차를 내보이는 TV 광고는 상징적인 일면입니다. 또한 어린이들의 무상 급식을 반대해서라도 정적을 무력화시키겠다는 무모한 열정, 부동산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아파트 소유자들 의 끈끈한 짬짜미 연대, 한 달 2천원을 아끼겠다고 최저 임금도 못 받는 고령의 아파트 경비원을 해고하는 일상의 알뜰함도 우리에게 아주 익숙합니다. 6개월이 넘도록 냉동고에 가족의 시신을 방치해야만 하는 용산 철거민의 외침은 도무지 메아리가 없고, 평택의 노동자들은 물과 음식, 의약품마저 끊긴 상태에서 자국의 경찰과 힘겨운 공성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 사회입니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평온하게 일상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그 외견상의 평온은 OECD 최고 자살률과 최저 출산율, 최저의 행복 수준으로 속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극심해지는 불평등과 민주주의의 후퇴 속에서 나 홀로 행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경쟁과 불안, 유무형의 폭력이 행복과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이제 고용 불안은 대다수 노동자(소위 직장인)들이 직면한 보편적인 문제가 되었고 부동산 군비 경쟁은 모두를 아파트와 대출의 노예로 만들었으며 적자생존의 사교육 생태계에서 누구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무엇을 희생해서라도―생태계를 훼손하고, 어린이들의 꿈을 짓밟고, 노동자들의 삶을 희생하고, 가난한 이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 잘 살아보자는 우리 사회의 선택이 이러한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나부터, 우리 가족부터, 우리 아이부터 잘 살고 보자는 소박함에서 비롯된 선택들이 결국 우리 모두를, 그리고 나와 우리 가족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연 ‘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제, 다른 선택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적 신뢰와 관용이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도록, 그 속에서 함께 행복할 수 있도록, 서로에 대한 연민과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오늘날 한국 사회가 이토록 불행한 것은 시류에 편승한 우리의 소극적 무책임, 부당함과 불의에 저항하지 않은 우리의 적극적 무책임 탓 아닐까요? 행복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시민적 연대’ 속에서 함께 행복할 수 있는 한국 사회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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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요구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 [프레시안]

소위 '성명서' 활동이 바람직하다고 생각치는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하는 일도 없어  이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들을 했다.

한 마디라도 보태야 하지 않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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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쌍용차 사태'가 벌어진 이래, 벌써 네 명이 세상을 떠났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 혹은 노동자의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얼마나 대단한 것이기에 이렇듯 목숨까지 걸어야하는지 그저 가슴이 먹먹해질 뿐이다.

이제 와서 새삼스레 파업 투쟁의 정당성이니, 먹튀 자본의 부도덕성이니 따지고 싶지 않다. 강 건너 불구경을 지나쳐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있는 정부의 무책임함도 따지고 싶지 않다.

다만, 우리는 인간에 대한 예의, 그것도 최소한의 예의를 요구하고자 한다.

장사에도 상도덕이 있다. 야간에 빚 독촉을 하고 채무자의 가족을 협박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심지어 전쟁터에도 지켜져야 할 룰은 있다. 적군이라도 환자들에게는 의료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하며, 의료물자의 수송은 보호받아야 한다.
 

 

 



▲ 지난 20일부터 쌍용차 공장 안에 식수가 끊겼다. 22일부터는 소화용수마저 끊겼다. ⓒ프레시안
쌍용자동차 사 측은 어제까지 함께 일하던 노동자를 파업 파괴조로 동원하여 노동자들의 가슴을 찢어놓고, '수면가스' 살포 운운하며 진압 작전을 모의해 왔다.

식수와 가스를 차단하는 것도 모자라 확성기로 음악을 틀어대며 잠을 못 자게 하는 주도면밀함까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며 파업 참가 노동자들의 연로한 부모와 가족들을 협박했다.

심지어 환자들을 위한 약품 반입을 금지하고, 환자를 만나러 가겠다는 의료진의 출입을 차단하기까지 했다. 후송이 필요한 환자들마저, 체포 협박 때문에 현장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측의 행태에, 우리는 의사이기에 앞서, 인간으로서 분노를 감출 수 없다.

지난주, 다섯 살도 채 안 된 두 아이를 남겨두고 한 노조간부의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가 평소에 우울증을 앓았다는 사측의 설명이 사실이라 해도, 현재의 '사태'가 그녀 죽음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게다가 우울증을 앓는 환자에게 '협박'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더더군다나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사측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경찰의 의료진 출입 봉쇄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하물며 가운을 입은 현장 진료 의사를 연행하는 모습에서 사실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에도 이런 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 쌍용차 공장 위를 날아다니는 헬기. 경찰은 헬기를 동원해 최루액 봉지를 쌍용차 공장에 투하했다. 노동자들의 건강을 염려한 의사들이 공장에 진입하려 했으나, 경찰은 이를 막았다. 노동자들을 진료하던 의사들이 연행되기도 했다. ⓒ프레시안
정체불명의 '비닐 봉투 최루액'을 맞은 노동자들의 피부에 수포가 생기고 진물이 흘러내리는 사진이며, 미국 영화에서나 보던 테이저 건의 탄환이 노동자 얼굴에 박힌 사진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런 모습을 도대체 어떤 의학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있겠나? 이제 경찰은 '용산'에서 특공대를 투입할 때 사용했던 진압용 컨테이너를 배치했다고 한다. 어디까지 갈 셈인가? 용산 참사만으로는 진정 부족하단 말인가?

▲ 경찰은 파업 조합원을 향해 전기총 테이저건을 발사해 한 사람은 얼굴 왼쪽 뺨에, 또 한 사람은 허벅지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테이저건은 총알 대신 전기선으로 이어진 탐침을 발사해 순간적으로 약 5만 볼트(V)의 고압전류를 사람의 몸에 흘려보내는 무기다. ⓒ<노동과 세계> 이명익 기자

우리는 의사로서 쌍용자동차 사측에 '최소한'의 것들을 요구한다.

첫째, 사측은 노동자 가족들을 회유ㆍ협박함으로써 극심한 스트레스와 가족 갈등을 유발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죽음은 한 명으로 충분하다.

둘째, 식수 공급을 재개하고 음식물 반입을 허용해야 한다. 이 무더위에 물을 공급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살인 행위다.

셋째, 의료진의 자유로운 출입과 의약품 반입, 안전한 환자 후송을 허용해야 한다.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을 가진 이들에게 무더위와 스트레스, 수면박탈은 견디기 어려운 조건이다. 또한 각종 외상을 입은 이들에 대한 위생적 처치 또한 매우 시급하다. 이러한 세 가지 요구는 결코 커다란 정치적 결단도 아니고, 숭고한 인도주의적 희생도 아니다. 다만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 용산참사 당시에도 사용됐던 컨테이너 박스가 쌍용차 공장 앞에 배치됐다. ⓒ프레시안

또한 우리는 정부에도 '최소한'을 요구한다.

첫째, 무엇보다 강제 진압은 절대 안 된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도 꿈쩍 안했는데, 그깟 노동자들의 목숨이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우리는 또 다른 용산 참사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

둘째, 최루액과 테이저 건 등 어떤 건강 위해를 가져올지 모르는 진압장비의 무차별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 파업과 시위 현장은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진압 장비의 임상 시험장이 결코 아니다.

▲ 쌍용차 공장 옥상 위로 최루액이 떨어지고 있다. ⓒ프레시안

마지막으로, 의사로서 우리는 쌍용차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부탁한다.

죽지 말고, 제발 살아서 싸워야 한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동료들과 함께 했던 소중한 순간들을 떠올려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건강하게 살아남아, 다시 일터에서 가정에서 그 행복했던 시간들을 함께 하길 바라는 수많은 이들의 연대의 마음을 당신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혹은 연구실에서 건강문제를 연구해왔던 우리 의사들은, 더 이상의 불필요한 죽음을 두고 볼 수 없다. 환자 한 사람의 건강을 되찾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평균 수명 1년을 늘리는 보건정책을 개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이렇듯 아까운 생명들을 줄줄이 떠나보내고 속수무책으로 다음 차례의 비극을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진심으로, 다시 한번, 사 측과 정부의 최소한의 예의를 요구한다!

2009.07.25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건강과 안전을 생각하는 의사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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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보건의료 청년학생캠프 후기

준비가 충분치 못한 듯하여 사실 심히 걱정되었으나,

어쨌든 하기로 한 거... 강행되었다 (대책없는 사람들....  ㅡ.ㅡ )

 

우여곡절 끝에, 그리고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를 뚫고

계룡산 갑사 유스호스텔에 도착하니 저런 네온사인이 우리를 반겨주더라...

완전 감격... 지난 '김보순당 관광위원회 (주)'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격세지감!!!

이 사람들, 진보신당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구나....ㅎㅎㅎ

 

 

이번에는 건강과 인권을 주제로 인권운동사랑방의 명숙 활동가, 건강세상네트워크 전 대표를 맡으셨던 강주성 샘의 초청강연과 푸제온 사건(?)을 다룬 역할극을 진행했다.

후발대로 출발하느라 명숙활동가의 강의는 아쉽지만 못 들었고, 강선생님의 강의는... 우리들의  가슴을 후벼파고 반성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사실 생업으로 복귀하신 이래 외부 활동은 모두 접고 계셨는데, 학생들 강의라고 정말 1년만에 강연에 나서주신 것이다. 이후 역할극에서도 어찌나 열심히 참여해주시던지... 

 

역할극은 푸제온 강제실시 (정식 이름은 통상실시라더군!)를 둘러싼 논쟁을 제약회사, 보건복지부, 특허청, 환우회,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나누어 재연한 것이었다. 학생들이 환우회와 시민사회단체를 맡고, maddoc 님이 특허청, adonis 님이 로슈, 내가 복지부 역할을 맡았다. 뒤의 세 명이 선수다 보니 토론이 정말 웃겼다 ㅎㅎㅎ 첨에는 어색해들 하다가 나중에 자기 역할에 완전(!) 몰입해버린 것이다... 법과 절차를 들먹이며 뻔한 이야기를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이들 셋 때문에 환자 역할 맡은 학생은 속이 터져 죽으려고 했다....  플로어에 있던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건 여태까지의 현실이기도 했다... 

특정 사안을 두고 실무/효율성과 가치가 맞붙으면 대개 가치가 뻘쭘해지기 마련이다. 

 

정말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갔고, 뒤풀이에서도 당사자 운동, 진보정당의 역할, 전문가의 역할 등에 대해 뜨거운 논쟁이 이어졌다. (이 역할극의 여파로 뒷풀이 때 나랑 adonis 님이 무슨 말을 해도 그 진정성을 사람들이 믿지 않는 분위기 ㅡ.ㅡ)

 

참가학생 중에, 아버지가 직접 전화로 행사를 문의하시고 딸을 부탁해오신 경우가 있었다. 떡도 한 상자 들려보내셨다... 우리는 충격과 감격.....

 

글리벡 투쟁과 관련한 이런저런 야사들도 들었다. 돌아가신 김삼덕 씨가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였고, TV 에 나온 강주성 샘을 보고 나중에 연락해와서 함께 싸우게 되셨다는.... 심지어 이 두분은 골수 이식을 하셨기 때문에 글리벡 한 알 못 드셔본 분들이다..... 정말 훌륭하신 분들이다... 선생님이 함께 해주신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심지어 오늘 아침 서울상경팀의 차편 운전까지 맡아주셨다. 이게 웬 민폐냐고... 멀리서 오신, 연로하신 초청강사분께 운전까지 떠맡기다니.. !!!)

 

술자리는 즐거웠고,

심지어 새벽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물론 이들 밤샘 음주자들의 아침 상태는 가히 좋지 않았다 ㅎㅎㅎ

후배들끼리도 서로 꽤나 친해진 것 같았다. 술의 힘은 정말 위대해....(maddoc 님이 인터내셔널가를 부르셨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도대체 그림이 안 그려진다 ...이게 뭔 분위기냐고...본인도 아침에 무척 어이없어하심 ㅎㅎㅎ)

 

시작 직전에는, 너무 무리한 진행이다, 담에는 이런 행사 좀 자제하자 하던 분위기가

끝날 무렵에는 예의 그 낙관주의로 돌아서곤 한다.

재밌기도 하고, 보람있기도 하고, 또 함께 있어 든든한 이 사람들과 서로들 좀처럼 떨어지기 싫은 것이다 - 무슨 마약 중독도 아니고.... ㅎㅎㅎ

 

후배들... 앞으로도 계속 함께 고민하고 활동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야 아니지만, 오늘날 이 살풍경한 한국사회에서 이만큼 훌륭한 선배들 만나서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것도 큰 복이다 (^^) - 자뻑모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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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 속에서...

서울만큼 폭우가 쏟아진 것은 아니었지만,

비'바람'만큼은 장난 아니었다.

 

#1.

 

퇴근 길에, 유등천 위로 힘겹게 날고 있는 하얀 새 두 마리를 보았다.

우산 들고 휘청거리는 다리위의 사람들만큼이나, 제 한 몸 가누기 어려워보였다.

 

며칠 전, 선물받은 문화상품권으로 책을 몇 권 주문했는데 사은품으로 딸려온 공지영 씨의 친필 (을 인쇄한) 엽서에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세계가 거짓말을 하는 날들이 있고

 세계가 진실을 말하는 날들이 있다.

 세상을 바꾸려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싸우는 것이다."

 

비바람 속에서 날아오르려 애쓰던 하얀 새의 모습은 이 문구의 메타포.... 

 

#2.

 

오전 나절에, 한국전 당시 공주 인근에서 자행된 집단학살 유해발굴 현장에 다녀왔다.

대전을 출발할 무렵에는 비가 걷히는가 했더니, 계룡산을 지나면서 장대비가.... ㅜ.ㅜ

흙탕물이 개울을 이루고, 토사가 무너져내리는 산길을 10분 정도 올라가면 현장이었다.

매우 그로테스크했다.

 

영문도 모르고 줄지어 결박당해 총살을 당하고,

60여년의 세월 동한 저렇게 나란히 누워 구천을 헤메고 있었을 영혼들을 생각하면 짠하다기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인간이 인간에게  이리도 잔인할 필요가 있을까? 왜?

 

 

지난 첫 지리산 둘레길에서 마주친 산청-함양 집단학살 추모관에 보면 해방 전후 전국에서 이루어진 각종(!) 민간인 학살 기록이 주~욱 나열되어 있는데, 사건 이름만으로도 벽 한 면을 채우고 남았다.

아마 희생자 이름으로 나열한다면, 팔만대장경을 집필할 수도 있으리라.....ㅡ.ㅡ

 

 

현장에서 유골과 함께 발견된 탄피와 탄창...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라고 했다.

잊지 않기 위해,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역사는 기록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요즘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과연 우리 사회가 과거로부터 어떤 배움을 얻고 있기는 한건지 의심이 된다. 저 이성없는 학살의 현장이, 오늘날에도 충분히 재현될 수 있을 거라는 불안이 가시질 않는다.

 

온통 찌뿌린 하늘, 몰아치는 비바람만큼이나 내 마음도 스산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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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선을 따라...

 

#1. 성수동 - 지난 주 토요일

 

성수노동자건강센터에 자원활동을 해주실 전문가(?)들에 대한 첫번째 정식 교육이 있었다.

그동안 의사들이나 다른 분야 전문가들이 부정기적으로 검진이나 교육 등 여러 프로그램에 함께 해주었지만,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 그들 스스로, 또 프로그램을 조직하는 우리들의 아쉬움이었다.

선한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며,  

그 좋은 뜻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별도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이 날, 센터소개와 그간의 지역활동 역사에 대한 간략 소개 영상, 노동자건강의 정치경제학이라는 엄청난 제목(과 빈약한 내용)의 강의, 노동자의 흔한 건강문제 (근골격계, 직무 스트레스)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역시 현장방문이었다.

인간문화재만큼이나 희귀한 (ㅡ.ㅡ) 제화노조 활동가분들의 도움으로 몇몇 작업현장을 실제로 돌아보고 현실에 대한 간단한 강의를 들었다. 

대학에서 연구활동을 하거나 혹은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이들, 소위 중산층으로 살아온 '화이트칼라 보통사람들'에게는 상상도 못할 광경이고 현실이다. 건강불평등을 연구해온 몇몇 샘들은 입을 못 다물고 돌아갔다.....이론적으로 아는 것과 직접 대면하는 것은 많이 다르다. (이날 방문한 사업장은 그래도 상황이 많이 나은 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놀랐던 것은...

이들 사업장에도 '특수고용'이 횡행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개수 임금을 받는 이 숙련 노동자들이 각각 '소사장'으로 등록되어 노동자로서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를 어쩌란 말이냐........... ㅜ.ㅜ

 

이날 땡볕에 돌아다니느라 고생한 참가자들과,

교육프로그램 조직에 수고하신 동지들께 모두 감사....

이런 노력이 헛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달 교육에 더많은 사람들이 참가하고,

더많은 일거리와 프로그램으로 연대할 수 있기를!!!

 

 

#2. 양산 - 지난 화요일

 

프로젝트 관련하여....

건강형평성에 초점을 둔 지역사회 건강증진 사업을 주제로 부산-울산-경남 보건소 관계자들 워크샵...

 

원래 안 가려했는디....

소그룹 토의 맡은 사람 부족하다고 Y 샘이 쪼아대서 새벽부터 먼길...

아이구.. 진짜 멀더라...

 

지역에서 건강불평등 문제에 대한 관심은 높은데, (아마도 복지부가 제일 관심없는 듯)

이를 어떻게 잘 끌고갈지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

우리 연구진들도 여전히 경험과 노하우가 부족하고,

지역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다보니 빠른 시간 내에 가시적인 변화를 이루기는 쉽지 않아보인다.

 

뭐 그래도 논의의 확산 자체가 긍정적이라고 생각....

그리고 역시 현실에서의 모범 창출과 사례발굴이 중요!!!

 

 

#3. 서울 - 지난 금요일

 

건강정책학회 창립 학술대회가 지난 금욜 서울에서 열렸다.

예상은 했으나, 정말 많은 사람이 왔더라.

갈증이 있었던게다... ㅎㅎ

정말 오랜만에 업계 지인들을 많이 만났다.

 

의료채권이나 MSO 문제, 건강관리 서비스 등은 사실 잘 모르는 내용이라 잘 배우고 싶었는데 다른 일 때문에 중간에 나와야했다.  정 모 교수, 이 모 박사의 토론도 꼭(!!!) 들어보고 싶었는디...많이 아쉬웠음...

 

이런 류의 논쟁이 붙을 때마다 항상 전가의 보도처럼 나오는 이야기가

소위 좌파들이 근거도 없이 이념에 경도되어 우긴다는 것이다.

근데 내가 그동안 '목격'한 바에 따르면, 오히려 증거와 근거가 빈약한 것은 저쪽이다.

이를테면 민주노동당 공약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무슨 이야기만 하면 그게 현실 가능한거냐, 무슨 근거냐 이런 반격이 끊이질 않아서 이런거 준비하는 데에는 오히려 좌파들이 더 민감한 것 같다. 하지만 그토록 근거를 요구하는 그들이 정말 납득할만한 근거를 제시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사회와 의료'님 블로그를 참조컨데, 아마도 예의 이 근거 논쟁, 우기기 논쟁이 약간 있었던 것 같다...

 

그래, 학회니까... 가진 증거들 다 까놓고 토론 좀 본격적으로 해보면 좋겠다.

그게 바라는 바....

 

어쨌든, 이날 모였던 사람들의 실천적, 학문적 열망이 잘 수렴되어 부디 건강한 담론 투쟁이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주변에 얼쩡거리다 낚여서 웹진에 고정칼럼 쓰기로 했다. 아는 것도 쥐뿔 없는디... 담론의 품격을 떨어뜨리는데 기여할 것같은 이 불길한 예감이란.... ㅡ.ㅡ)

 

 

 

#4. 울산 - 지난 금요일 저녁

 

진보신당 건준모에서 기획한 지역 순회 시민/당원 건강강좌 제 1탄으로 울산 지역에서 3주에 걸쳐 강좌가 진행되었다. 2주 전, 인의협 정책국장인 김종명 샘이 '건강한 주민이 건강한 지역을 만든다'는 주제로 건강생활 일반과 건강검진 등에 대한 강의를 해주셨고, 지난 주에는 건강세상 네트워크 김창보 샘이 '올바른 병의원 이용법과 한국의 보건의료 체계 소개'를  해주셨다. 마지막으로 내가 다른 나라의 제도와 사회적 통제사례들을 간략히 소개하면서 교훈을 찾고자 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때 울산에 간 것 같기는 한데, 도대체 기억은 안 나고

말하자면 울산에 태어나서 첨 가본 셈이다. 

퇴근 시간, '아산로'를 지나 동구로 이동하는 동안의 광경은 참으로 그로테스크했다.

오른쪽 해안가로는 석유화학단지들이 늘어서 정유탑에서 불꽃이 쉴새없이 솟구쳐오르고,

이어진 미포만(!)의 엄청난 규모의 기중기들은 보는 이를 압도했다.

왼쪽에 선적을 기다리는 자동차들의 모습 또한 장관(?)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신호대기에 도열해있는 똑같은 작업복을 입은 오토바이 퇴근 부대였다.

성수동과는 엄청 다른 분위기.... ㅜ.ㅜ

 

이날 강의에는 주로 건약, 건치 선생님들이 참여하셨는데 특히 지역사회 참여 모형, 사회민주적 통제 기전들에 관심이 많으셨다. 대상자마다 조금씩 달라져야 하겠지만, 지역 활동을 고민하시는 분들에게는 제도의 비교보다는 지역사업이나 참여민주주의의 모범 사례들을 발굴하여 소개드리는 것이 더욱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뒷풀이 때, 참가하신 분들께 그동안 궁금했던 걸 여쭈어보았다. 빈곤/박탈 수준은 현저하게 낮은 울산 지역이 사망률 (그것도 손상이 아니라 암과 심혈관질환)은 유독 높은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 대부분 납득 가능하다는 반응이었다. 공해도 굉장한데다, 엄청난 노동 끝에 뇌혈관질환 등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노동자들 만나는게 그리 드문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도 의심은 했으나 지역 분들도 그리 이야기하시니 추가 분석을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간 건강격차와 그 원인에 대한 탐구는 단지 지자체 선거용 의제로서가 아니라,

지역과 건준모가 두고두고 함께 논의해볼 문제인 것 같다.

 

일단, 이번 울산 교육에 대해 냉정히 평가해보고 

다른 지역에서의 교육 확산(?) 방안과 프로그램 수정에 대해 논의할 것!!!

 

 

 

#5. 서울 - 토요일

 

세미나 모임에 갔다가 웃긴(?)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보건의료인 시국선언과 관련하여 복지부가 한의사협회에 선언자 신원확인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는 것이다. 한의사협회에만 보냈겠나?  당연히 의협에도 보냈겠지 ㅎㅎ 아마도 국공립 기관에 근무하는 이들에게는 어떤 조치(?)를 취하려나보다...

 

그 이야기를 하고 칠레 사례를 살펴보는데...

피노체트 집권하고 나서 칠레의사협회가 아옌데 정권에 협력하던 의사들 명단을 넘겨주고, 적지않은 숫자의 의사들이 학살당했다는 내용이 나왔다....  허거덕이었다.............

 

며칠 전에...

일부 샘들과 보도연맹 사건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는 과연 예비검속에 의한 학살 대상일까 아님 회유와 전향의 대상일까 했을 때 내가 '당근 회유의 대상이죠' 했는데....

어쩜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 싶으니 등골이 서늘... ㅜ.ㅜ

 

이거 뭐.......

 

 

#6. 천안 - 일요일

 

올해 꼭 해야겠다고 결심한 일 중 하나가 건강생활 최저 생계비 관련 연구였다.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어느 정도의 물질적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가.... 이를 통해 최저생계비와 최저임금에 대한 '통념'을 바꾸어보겠다는 것이 원대한 목표다.

 

물론 예비연구 성격이라 뚜렷한 결론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간답게,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무엇이 '필수'요소인가를 정의하고 논쟁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건강하게 살기 위한 노동시간의 단축, 그에 수반되는 최저임금 인상의 실질적 필요성 등을 강조할 수 있는 근거가 만들어진다면 금상첨화....

 

양적 분석의 결을 더할 수 있도록 소위 중산층, 서민층, 빈곤층 두 가구 씩을 뽑아

가계부 계측과 심층면접을 실시하기로 했다.

최저생계비 계측에 활용되는 대한민국 표준가구는 40대 초반의 남편과 30대 후반의 부인, 11살, 6살 두 자녀가 있는 집이다.

그런데....이런 집 찾기가 어찌나 힘들던지... (더구나 빈곤층에서는 이런 '정상' 가족 만나기가 더 힘들었다. 섭외를 도와주신 여러 분들께 감사!!!)

 

다행히 천안에 사는 친구네가 연구 취지에 공감하고 도와주기로 했다.

오늘 가계부 서식도 전해주고 감사 인사도 할 겸, 천안에 다녀왔다.

내가 며칠 시험삼아 써보니까 상세하게 가계부 기록하는게 쉽지 않다. ㅡ.ㅡ

이걸 한달이나 써달라고 하려니.....

그 수고로움을 감내해주겠다는 친구네 집에 정말 감사....

 

참가해주신 가구들, 그리고 아무런 보상없이 연구모임에 참여해주고 있는 공동연구자, 대학원생들,  경비를 지원해준 한국건강형평성학회에 진심으로 감사....

 

부디 사회에 도움이 되는 성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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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과 대안을 위한 건강정책학회]

예전에 이 블로그를 통해 소개한 적이 있는 [건강정책포럼]에서 학회를 출범시켰습니다. 사실 저는 여기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 편이 아닌데다 (전공이 좀 달라서 ㅡ.ㅡ), 이 날 저녁에 진보신당 울산시당 교육이 있어서 참석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끝까지 참여는 못하더라도 가서 일단 '세'를 과시하는데라도 한몫 보태야 할 것 같기는 합니다. 기존의 주류 학회를 벗어나 이렇게 따로 학회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그닥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생각들이 자유롭게 토론되고 사심없이 검토될 수 있다면, 굳이 별도의 학회를 만들지 않아도 될텐데 말이죠... 이 블로그에 들르는 보건,사회,정책 기타 등등에 관심 가지신 이들은 이날 학술대회에 꼭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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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진보신당] '지못미'는 이제 그만...

어느 덧 또 내 차례가 돌아왔다. ------------------------------------------------------- 여느 토요일 아침처럼 ‘무한도전’ 재방송을 보려고 TV를 틀었다가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슬픔보다는 우선 놀라움이,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깊은 연민이 밀려왔습니다. 비록 정치적으로 그를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죽음이라는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했던 한 ‘인간’의 고통을 감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나타난 폭풍 같은 애도의 물결은 놀라웠습니다. 상갓집에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예의도 지니지 않은 자들을 제외하고는, 생전의 지지자건, 비판자건, 혹은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이들마저도 진심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어쩌면, 좌절당한 우리 스스로의 꿈과 회한이 그의 죽음 속에 녹아있었기에 더 크게, 많이 슬퍼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약 350년 전, 루소는 자신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타자에 대한 ‘연민’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자취를 감춘 줄 알았던 이 엄청난 ‘연민’의 폭발은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2007년 한 해에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1만 2천 명이 넘습니다. 40분에 한 명씩, 누군가 돌아오지 못할 발걸음을 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죽음을 떠올리고, 또 실제로 결행에 나섭니다. 죽음의 이유는 그 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할 것입니다. 존재론적 회의, 누군가에 대한 복수, 혹은 감당할 수 없는 심리적 고통으로부터의 탈출...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다양한 사연들을 넘어서는, 거대한 사회적 힘이 존재하고, 자살 또한 엄연한 사회적 불평등의 일면이라는 사실입니다. 지난주, 대전 중앙병원에 안치된 박종태 열사의 빈소에 다녀왔습니다. 마침 시내에서 추모 집회가 열리고 있었던 시간이라, 장례식장 건물 입구부터 늘어선 검은 화환들의 행렬과 대조적으로 영안실 안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가 몇 시간씩 줄을 서며, 진심으로 전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그 날, 박종태 열사의 영안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떠난 이는 말이 없기에, 열사의 삶을 뒤흔들었던 고뇌를 모두 알아내기란 어렵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죽음이 자신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비정한 사회를 향한 최후의 말걸기였다는 점입니다. 30여 년 전 전태일 열사가 썼던 이 최후의 수단을 다시금 반복해야 한다는 오늘날의 현실이 새삼 놀랍고도 슬픕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음’으로 자신의 고통을 ‘증언’하고 우리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애원’해야 하는 것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죽음으로서 진정성을 증명해보이라고 누군가에게 잔인한 요구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수많은 이들이 전임 대통령의 소박한 꿈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의 꿈은 무엇이었습니까? 돈보다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그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합니다. 그 렇다면, 지금 우리가 지켜줄 수 있는,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그런 일들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전직 대통령마저 견디기 어려웠던 삶의 신산함을 온 몸으로 견뎌내고 있는 우리 이웃들의 현재 진행형 고통에 결코 둔감해지지 말자는 것입니다. 굴뚝으로 올라간 쌍용차 노동자들, 어처구니없는 복직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88CC 여성 노동자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뉴스거리’도 못되어 언론에선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그 수많은 장기투쟁 사업장의 노동자들... 이들의 삶을, 고통을 함께 하자는 것입니다. 또 다른 비극, 더 큰 고통 앞에서야 뒤늦게 회한에 젖지 말고, 지금,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았으면 합니다. 돌아보면, 글쓴이 스스로도 우리 사회의 이러한 고통들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익숙함이란 참으로 놀라운 잔인함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가진 우리들, 이제 더 이상 ‘지못미’는 그만 하고, 사랑할 수 있을 때, 연대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 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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