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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3/11
    헤르난데즈, 김부선 그리고 이참
    평발
  2. 2008/03/10
    가방 끈이 긴게 뭐!!
    평발
  3. 2008/03/06
    무조건 달리게 하겠다는 말
    평발
  4. 2008/03/03
    아빠되기란 힘들더군(3)
    평발
  5. 2008/03/03
    역사적 예수에서 사도 바울로
    평발
  6. 2008/02/26
    역사적 예수에서 위안을...
    평발
  7. 2008/02/25
    누가 이명박에게 돌을 던지랴
    평발
  8. 2008/02/22
    [책]사람이야기가 재미있다
    평발
  9. 2008/02/22
    <여성신문>유감
    평발
  10. 2008/02/21
    참 미안한 생각..
    평발

가방 끈이 긴게 뭐!!

신문을 보다가 진보신당-민노당 기사가 났길래 쓱 훝어 보는데, 천영세 대표가 한 말이 눈에 쏙 들어오더군. 진보신당을 겨냥해 '가방 끈이 길고 골방에서 책만 읽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쓴 것인데..

 

난 대학원 석사 공부를 마쳤다. 고로 가방끈이 긴 사람이라는 표현에 들어갈 것이다. 그런데 골방에서 책만 읽었다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왜냐? 일단 천 대표의 말은 논리적 모순이 있다.

 

가방 끈이 길다는 명제와

골방에서 책만 읽는 사람이라는 명제는 등가가 아니다. 엄연히 다른 가치를 담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천대표는 이 둘을 교묘히 섞어서 가방 끈이 길면 -> 골방에서 책만 읽은 사람 이라는 등식을 만들어 냈다. 아하하. 그런데, 주지할 사실. 사실 천대표도 고려대 사회학과 대학원 출신이라는 것.

 

결국, 제 얼굴을 침뱉기 정도라 볼 수 있겠다. 거참, 참모들의 머리쓰는 수준이 고까워 죽겠다.

 

개인적으로 지난 연말에서 올해 초까지 민노당 게시판에서 소위 '개싸움'을 하면서, 제발 '공부 좀 하라'고 말한 적 있다. 자기의 주관적 세계가 진리인 줄 알고 있는 사람들, 자신이 하는 운동만이 제대로된 헌신으로 아는 사람들, 자신들이 '민중'이라 지칭하는 사람들만 민중으로 아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학습 좀 하라고 다그쳤다.

 

좌파의 역사는 이론의 갱신으로 이루어졌다. 그람시의 표현에 따르자면, 개개의 국면은 그것을 이해하는 국면적 이해방식을 요청한다. 이런 방식에 '개량'이란 주홍글씨를 새기고 아주 쉽게 반통일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갱신이 없는 이론이었다고 생각한다.

 

민노당의 분열을 미제국주의의 공작에 의해 진행된 것으로 철썩같이 믿고 성명으로 발표하는 요상스런 집단이나, 그런 논리 구조를 그대로 가져와 논쟁의 질을 떨어뜨리는 무뇌아들 보다는 가방 끈이 긴게 무어 대수인가.

 

골방에서 조차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 자들이 정당운동을 하겠다고 설치는 것은,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마루타 실험을 하겠다는 오만의 발로다. 최소한의 사고실험을 거치지 않은 공약을 들고 나올 셈인가?

 

천 대표의 말을 곱씹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렇다. 역시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희대의 말장난은 그냥 나온게 아니라고 말이다.

 

제발 공부 좀 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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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달리게 하겠다는 말

오늘 신문을 보니, 서울시교육청이 관내 초중학교에 달리기시합을 의무화하겠다고 한다.

 

요지는, 체력이 학업의 기본인데 요즘 학생들은 운동을 하지 않는다 -> 이런 상황에서 학생 관리의 책임이 있는 학교가 방관해서는 안된다 -> 학교가 학생들을 뛰게 해야 하고, 교육청은 이를 학교 평가에 반영하겠다.는 것.

 

난 학교다닐 때 달리기를 싫어했다. 달리는 것 자체가 아니라, 기록을 측정하고 순위를 매기는 것이 싫었다. 물론 내가 잘 달렸다면 그럴 필요가 없었겠지만. 그래도 농구를 좋아했고, 여러가지 달리는 놀이는 했었다.

 

그런데, 육상경기를 의무화하라니... 이건 왠 말도 안되는 박통식 교육정책인가.

 

학생들의 체력이 떨어지고, 신체의 균형이 나빠지는 것은 하루 이틀일은 아니다. 이미 서구화된 식습관에 등등의 이유를 너무 잘알고 있지 않나? 그런데 문제가 이것 뿐일까?

 

언제 부턴가 동네 놀이터엔 유아들로 넘쳐나고 한창 뛸 나이의 아이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건 단순히 하이들이 놀기 싫어해서일까?

 

서울시교육청의 방법은 너무 쉬운 방법이다. 아이들을 달리기로 내몸으로서 교육기관으로서 스스로 알리바이를 만드는 행위다. 할 만큼 했다는 주장이 가능하겠지.

 

그런데, 다시금 아이들이 달리기 1등에서 꼴찌까지 순위를 매긴다는 것이 해법이 될까. 난 지난 번 보다 더 빨라졌다고 느끼면서도 언제나 꼴찌였던 달리기가 죽기보다 더 싫었는데도?

 

우스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거 참...

 

우리 아이들은 이제 각종 학원에 이어, 달리기 과외라도 받게 해야될 참인가? 에구구

차라리 하루 정도는 학과공부를 하지 말고, 놀기를 시키는 것이 좋겠다. 잊혀져간 옛날 놀이들을 아이들에게 하도록 하는 것이다. 재미도 있고, 웃고 떠들면서 좋아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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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되기란 힘들더군

지난 목요일이었어.

지방으로 출장을 가있던 터에 전화가 왔지. 곧 아이를 출산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전화기를 타고 넘어왔어.

 

사실, 이번 출장은 사죄로 점철된 것이었기에 금방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도 없었어.

 

어렵사리 이야길 꺼내 서울로 향하는 도중... 태어났다더군.

차라리 마음이 편했어. 이 놈은 태어나면서부터 불효를 하는 군... 투덜되면서 병원에 도착한 것이 밤 11시.

 

아내는 아파죽겠다고 하고....밤새도록 팔다리를 주물렀지. 아기 얼굴을 면회시간이 안되서 보지도 못하고 말야.

 

다음날... 아침에 이런 저런 검사를 받는다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 올해 3살이 되는 딸애가 왔어. 난 딸애와 아내를 보느라 기진맥진. 오후가 될 때까지 아이 얼굴도 못봤지... 나중에 병실로 올라온 주먹만한 아이를 보면서...그제야 실감이 나더군.

 

그런데 왠일... 아이에게 이상이 있다며 의사가 큰 병원으로 가보라더군. 아내는 놀란 눈치고 난 애써 태연했지. 그래야 감정의 균형을 겨우 겨우 맞출 수 있었거든.

 

요지는 이래. 누구나 알다시피 똥꼬는 하난데, 이 아이는 똥꼬로 보이는 구멍이 두개가 있는 거야. 단순히 똥꼬 문제면 두 군데로 나오고 편하겠다 하겠지만, 똥꼬하고 연결된 신경들과 장기가 문제인 거지.

 

결국 퇴원하는 날, 세브란스로 갔어. 1시간이 넘게 막 출산한 아내와 막 태어난 아이를 안고 병원 복도를 서성이는데 만감이 교차하더군. 의사는 입원을 시키자고 하더라.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면서.

 

감정의 균형이 깨져버린 아내는 울기 시작했어. 겨우겨우 참아왔었는데.

난 괜실이 아내에게 짜증을 냈어. 왜 울고 그래, 아이에게 나쁜 기운이 갈거야, 그러지 마!!

 

그런데 왜 모르겠어? 나도 아이가 이런 걸 보니, 내가 그동안 무엇을 잘못했더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는데, 아내는 오죽했겠어. 결국 아내나 나나 다 죄인이 되어버렸지 뭐.

 

그러고나서 3일 째. 난 집에서 첫째를 보다가 조리원에게 가서 아내를 들여다 보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아이를 보기위해 신촌을 향해. 그리곤 다시 집에 와서 첫째를 보다가, 아내에게 가서 모유 짜는 것을 도와주고, 팔다리를 주물러 주다가 집에 다시 오고...

 

사실, 병원에 누워있는 아이를 볼 때마다 감정이 북받쳐. 그런데, 내가 울면, 아내도, 영문도 모르는 첫째도 울거라는 걸 너무 잘알고 있어서, 그럴 수가 없더라고. 수술때문에 몇일째 금식을 해서 뼈밖에 남지 않은 아이를 보고 와서, 건강하게 잘 있더라며 아내에게 말할 수 밖에 없는 걸, 그 외엔 무얼 할 수 있겠어.

 

결국, 아이는 무사히 수술을 받고 건강하게 퇴원할 것이라 믿어. 아내도 첫째 낳을 때 제대로 추스리지 못해 골골 댔던 몸을 제대로 간수하고 조리원을 나오게 될 것이고. 내 딸은 어렵게 집에 도착한 동생을 많이 아껴줄 것이라고 믿고 있어. 그렇게 믿는 것 외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아빠가 되는 것. 죄인도 되고, 바보도 되야 하더라.

그러면서, 길을 가다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런 아빠의 자식들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어.

참. 이제서야 철이 든다.

 

아빠가 된다는 것. 참 무서운 일이야. 하지만, 그 아이의 눈망울을, 아빠가 아니면 누가 볼 수 있겠어. 그리고 '나'라는 존재의 무거움을, 아빠가 아니면 이렇게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을까.

 

암튼, 이 세상의 모든 아빠들! 뜨거운 동지애를 전하며!!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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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명박에게 돌을 던지랴

아침에 여의도를 지나는데, 무슨 불이라도 난 줄 알았지 뭐야.

알고 봤더니 대통령 취임식한다고, 그거 보겠다고 가는 거더라구.

대단했어.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것은 최근들어 처음이라니까.

 

 

그 사람들을 보는데 두가지 생각이 들더라구.

'야~ 저 사람들은 월요일에 일안해도 먹고살만한 사람들인가보네'하는 맘이 첫번째.

사실 벨이 꼴리더구. 정말 그들만의 대통령 아닌가? 아닌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니, 다 복부인 같고 그렇더라구. 흐흐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이런 생각도 들더라구.

희망의 형태는 다르겠지만, '저들에게 이명박은 꿈이겠구나'라는 생각.

방향이나 어찌되었던 그들이 이명박을 바라보면서 하는 생각은 딱 하날것 아냐.

 

'잘 살게 해주세요'...

 

아무리 정치가 종교를 벗어나려고 해도, 기본적으로는 뿌리가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선거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지복을 비는 행위니 말야. 제도화된 샤머니즘이라고 할까?

 

그런 점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어쩌면, 절대로 다수가 될 수 없다는 생각도 드네.

세상에 누가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할까? 그냥 열심히 빌어도 될 건 될텐데 말야.

 

오늘 아침나절에 그렇게 싫어하는 비가 오길 간절히 기원할 만큼, 이명박이 싫지만 누군가에겐 희망일 그에게 무조건 돌맹이를 던질 수는 없겠더라고.

 

어째, 날씨가 우울해서 나오는 헛소리 같다. 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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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미안한 생각..

이런 블로그란 것이 대단해.

1.------------------------------------------------------------------------

예전엔 싸이란 걸 미친듯이 하다가, 관뒀지. 처음에는 알콩달콩 재미있다가 일촌의 범위가 너무 넓어지니 내가 스스로 검열을 하고 있더라구. 각자가 속해있는 위치나 연령차(나의 경우엔 아래도 10살도 있었으니) 등등의 차이 때문에 말야. 첨엔 신경쓰지 말자 했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니 내가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보여주게 되더라구. 그래서 바로 싸이 페업신고를 했지.

그래서 둥지를 튼게, 네이버 블로근데. 하 이게 참. 일반인을 상대로 이쪽동네 방언이나 일삼는 내가 한심해 보이더라구. 그러다 보니 내용은 말랑말랑... 하고싶은 말을 제대로 못하는 블로그는 개뿔 그랬지.

그래서 엇그제 이사온게 진보블로그. 일단 자기 검열을 하지 않아도 편하다. 그리고 내가 진보넷메일을 상요하지 않으니 내 존재를 누군가 알 수 없다. 등등.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것은 블로그 홈에서 이런 저런 글을 읽으면서 트랙백을 쫒아 가다보면 누군지 알 수 있는 사람의 집 앞에 있더란 말이지. 하하 바닥이 바닥이니 만큼.

2. --------------------------------------------------------------------------

그래서 결국 몇 단계를 거치면서 예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의 블로그로 들어가게 됐지.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더군.

그러면서 끝까지 내가 하지 못한 말 때문에 그랬어. 미안하다는 말이었는데.

완고한 나로서는 아직까지 동의되지 않는 일들이 있지만, 그래도 그만큼 미안하다고.

그런데, 난 아직 좋은 방향으로 나를 변화시키지 못했으니 당분간은 보지 말자는 말도 하고 싶었어. 사람의 차이란 건 무한한 이해심만으로는 되는 것이 아닌걸 아니깐. 어쨌든 지금의 분위기로만 보면 활동 반경이 겹칠 일은 없을 것 같아 안심이긴 해.

3. --------------------------------------------------------------------------

아무래도 10년은 넘게 잡았던 내 인생의 '챕터 2'가 너무 싱겁게 마무리 되는 관계로, 나도 이제까지의 판에서 떠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거든. 암튼 평범한 소시민이 되는 것도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는 요즘. 그렇지 뭐.

암튼 건강하길. 아니, 그만 좀 아프길,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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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백의종군' 주장에 대해

심상정, 노회찬 의원에 대해, 그리고 최근의 단병호 의원에 대한 훈수가 줄을 잇고 있는 모양이다.

 

우스운 것은 대부분의 훈수가 '고언'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으며, 이런 저런 말들로 '백의종군'을 종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우스운가?

 

첫째. 고언이란, 같이 하는 자가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충고와 고언의 사전적 의미는 다르다. 그 다름의 핵심에는 말하는 자의 위치에 있다. 즉, 말의 대상이 서있는 자리와 말하는 자가 같은 자리에 서 있느냐 혹은 다른 자리에 서 있느냐로 구분된다. 그런 점에서 같이 하지도 않으면서 고언이랍시고 지껄이는 말들은 짜증난다. 일종의 같은 판에 있지 않냐고?

 

그렇게는 연결되겠다. 그렇다면, 그런 고언과 연결되는 백의종군의 내용을 보자. 백의종군의 유명한 사례로는 이순신의 것과 근래에 박근혜의 것이 있겠다. 이 둘의 백의종군이 가지는 특징은 '신분보장'이다, 이순신의 경우에는 정치적 백의종군에 가까웠다. 당시 조정 내부에서는 유성룡 등 이순신의 중용을 위해 몸을 던지 이들이 있었다. 박근혜의 경우, 더 말할 것이 무엇인가.

 

노회찬, 심상정, 단병호에 대해 백의종군을 이야기하는 하는 것은 쉽다. 일순간 그렇게 말하는 자는 순결한 도덕성의 화신이 되어 버리고, 예의 백의종군을 하지않는 이들은 한 줌 권력의 아집에 사로잡힌 이가 되어버린다. 얼마나 확실한 선인가?

 

하지만 나는 반대다. 여기서 백의종군은 알량한 전략가들의 자기만족에 다름아니다. 내가 정치가로 이 세명을 여전히 신뢰하는 것은 스스로 정치의 바닥에서 몸을 망칠 각오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지방의원의 임금이 노조 전임자의 임금보다 적다는 이유로 선거에 나서지 않는 소위, 노동 활동가들을 보면서 짜증에 앞서 연민이 느껴졌었다. 그럼에도 이런 자들은 나름 노동현장에 복무한다는 위치만으로 아무 말이나 해도 괜잖은 것인가?

 

노동정치는 노동자 정치와 다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노동자 정치인 만들기와 다르다. 상식아닌가.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의 장에서 좀더 영약해지는 것이다. 정치에서는 인파이터만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노회찬, 심상정, 단병호는 안에서 싸우는 사람이다. 필요하다면, 전 국회의원의 상징을 이용하고 언론플레이를 열심히 해주길 빈다.

 

누구는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순수한 것에 집착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바 있다. 글쎄,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세상의 때에 더렵혀 있다. 그것이 정상아닐까.

 

노회찬, 심상정, 단병호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주저앉히기 위해 노력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게 맞다. 그들이 지난 4년간의 정치적 자산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용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전체의 것으로 전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별개다.

 

때 아닌 훈수쟁이들과, 고고한 척하는 이야기들이 판을 치는데 우스운 일이다. 무슨무슨 파라는 이유로 칼을 휘두르고, 사민주의-의회주의라는 말로 깔아뭉게는 초딩 수준의 말들이다. 아무리 싸움을 못해도 링안에서 싸우는 선수에게 욕을 하는 것이 정당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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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계속 찝찝했던 건 이 때문이다.

동거

민노당의 자주파 문제는 새로 발견된 문제가 아니다. 처음부터 존재한 문제다. 이번 선거 결과 역시 의외랄 게 없는 그 자연스러운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어쨌거나 자주파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나 방식엔 짚고 넘어갈 데가 있어 보인다. 이번 선거의 실무적인 책임은 다들 말하듯 아둔하고 시대착오적인 행각으로 일관한 자주파에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책임은 그런 자주파와 멀쩡히 동거해 온 평등파에게 있다. 그 동거에 대해 아주 오래 전부터 민노당 밖의 거의 모든 진보정치세력이 비판과 우려를 표시해왔다. 그 문제를 적시하며 민노당을 탈당한 사람도 있다. 민노당의 평등파는 그런 비판과 우려에도 아랑곳없이 자주파와 동거해왔다. 그들은 그 동거가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게 많다고 주장해왔다. 이번 선거는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안이하고 오만했는가를 명백하게 드러냈다. 이상한 일은, 그들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동거가 아니라 자주파에게 납치나 감금이라도 되어 있었던 걸까?

 

(http://www.gyuhang.net/mt/mt-tb.cgi/1229. 1413113108)

 

김규항의 글이다.

 

그래, 맞다. 이상하게도 몇달 동안 찝찝했던 것이 이 때문이었나 보다.

이상하게 조승수도, 소위 전진파도 싫더니 이런 이유가 있었다 싶다.

지난 2000년에 '전략적 외연확대'를 비판하는 글을 지역위원회(준) 소식지에 실었다가 운영위에서 공개적으로 욕을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런 젠장.

 

대강 이쪽 저쪽도 선택하지 못하는 내게 면피거리를 얻었다. 아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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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라, 민주노동당

예상했던 결과였던 셈.

 

그들의 문법에만 갖혀서 스스로 하고싶은 말만 하고 결국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난무했던 시간들.

 

굳이 사전적인 의미를 갖다 붙인다 하더라도, 과연 '혁신'에 부합하는 내용이었는지 의심된다. 결국 어물쩡 넘어가겠다는 심산인데, '반창고' 하나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는 걸까.

 

단순하게 따져보면 국민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아직 당에 미련이 있는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테고, 여전히 아무생각없는 이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국민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하면 무색무취해질 테고,

당에 미련있는 이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 지난번 당대회의 만행이 부끄러울 테고,

그래서 결국 선택한 것이 이 정도이구나 싶다.

 

뭐, 민주동문회 수준의 당이 바라는 것이라면 그대로 하라고 할 수 밖에.

맨날 현장, 현장 떠드는데 그 놈의 현장이란 것이 결국 학교의 학생회 수준이란 말이지.

그러니 무슨 조직이니 이런데선 짱을 먹어도 제도정치에선 3%로 박박기는 것 아닌가?

 

이젠 당에 대한 글을 쓰는 것도 한계가 왔네. 더 할말도 없군. 잘 가라, 2008년의 민주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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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의 정치적 활동에 장애 구조&quot;가 뭘까

강내희 교수의 '변혁적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정세분석'이라는 글을 읽다. 이 글은 지난 1월에 사회실천연구소에서 열린 이론정세토론회에서 제출된 것으로, 비슷한 제목의 김세균 교수 글과 짝글이다.

 

나름 신뢰하는 맑스주의자인 강내희 교수가 진보정당에 대한 글을 썼다기에 찾아서 읽어보았다.

 

솔직히 읽고 난 후의 소감은, '너무나 진지한 마스터베이션'이라는 것?

 

정세적 필요성이 반드시 구체적인 사회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 점에서 정세적 구부러짐에 과잉인 그의 분석에서 갑자기, 그것도 예상치 못하게 '변혁적 정당건설'로 깡충 뛸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대략의 글 구성은 이렇다. 지금은 정치적 핵분열의 시기 -> 신자유주의 전면화라는 정세적 특징 -> 다수화되는 소수자들 -> 좌+좌 연합의 가능성 -> 변혁적 진보정당 건설.

 

명료하고 간단해 보지만, 그동안 지난하게 논의되었던 계급정당 논의와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면서도 드는 의문.

 

강내희 교수는 '좌파의 정치적 활동에 장애 구조'로 민족주의 + 사민주의 결합체인 민주노동당이 진보정당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을 지적하고 있다. 글쎄. 사민주의라는 것이 뭘까? 그것도 21세기 현 정세속에서의 사민주의라는 것이 뭘까?

 

정당운동은 제도정치에 대한 개입을 의미하며, 결국 제도정치의 언어구조를 변혁적으로 바꾸는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제도정치에 통용되지 않는 용어를, 중간에 각색하려는 노력도 없이 사용한다면 자기만족 이외에 무엇이 남을까?

 

솔직히 구체적인 정부정책에 대한 분석을 폐기한지 오래된 '문화과학'을 보면서, 결국 진보적 운화운동이라는 것도 동인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강내희 교수가 정직해지려면, 왜 그가 꿈꾸었던 문화사회가 끊임없이 유예되고 있는지를 '문화연대'와 '문화과학'이라는 자신의 활동을 통해 평가해야 한다. 그것이 솔직한 태도다.

 

그런데, 끈금없이 변혁적 진보정당이라니, 게다가 민주노동당의 존재를 장애 취급이라니?

 

정신적 상쾌함을 위해 너무 많은 것들을 휙 날려 버리려는 것 아닌가? 뭐, 이런 저런 논점이 섞여 있긴 하지만, '왜' 이런 글을 썼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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