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1'에 해당되는 글 22건

  1. 바람... 그리고 투쟁!!! (25) 2005/01/31
  2. 운악산에 오르다. (8) 2005/01/30
  3. 지부장에게 마구 퍼붓다 (7) 2005/01/28
  4. '예민'아 놀자!! (14) 2005/01/27
  5. 둘째는 서럽다 (9) 2005/01/26
  6. 연극 보면서 울었다 (6) 2005/01/26
  7. 동문회는 안간다 (10) 2005/01/24
  8. 도대체 어떤 놈들이 만든 법인지..... (2) 2005/01/24
  9. 25명의 결재.... (5) 2005/01/21
  10. 여전히 엄마가 문제다... (13) 2005/01/19

* 이 글은 알엠님의 [횡설수설 보충설명] 에 관련된 글입니다.

 

알엠님의 글을 읽고 여자들이 가진 불만을 어느 정도 이해 할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알엠님 처럼 밑줄을 그어가면서 일일이 반박할 마음도 없고, 또 그렇게 반박할만큼의 지적인 소양도 없기에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냥 두어번 읽고 나서 또 결론을 간추려 보면,

1. 남자들의 바람.

2. 회사에서의 반항 또는 투쟁

3. 가정에서의 투쟁

이렇게 될 거 같습니다. 그래서 이 세가지에 대해 제 맘대로 또 한번 정리해 볼게요.

 

1. 남자들의 바람.

 

저 결혼한지 올해로 17년째입니다. 그동안 아내는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두세번의 '바람'이 제게 왔지요. 그리고 그때마다 아내는 평소와 다르게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했어요, 집으로 전화가 와도(그 전에는 휴대폰이 없었으니까...) 자기가 받아야 된다고 했고, 밤에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만나러 가도, '누굴 만나러 가냐?'고 물어 봤어요. 그즈음에는 제가 감정적으로 마음이 가는 여자친구들이 있었지요. 굳이 애인이라고 표현할수 있을런지, 아니면 바람이라고 표현할수 있을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부부이기 때문에 관계를 정리하라 그러면, '감정적으로 마음이 가는 친구'가 생기면 당장 이혼해야 하나요? 그 관계를 정리해야 하나요? 그냥 마음이 가는대로 좋아하기도 하고, 또 싫어지면 돌아서기도 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요? 이건 그야말로 국보법에서 얘기하는 양심의 자유일수도 있고, 사랑하는 감정은 자유롭게 표현될수도 있는 거죠.

그걸 어떻게 관계이기 때문에 정리해야 되요?

 

그리고, 설사 그 '감정적으로 마음이 가는 친구'와 육체적인 관계까지 맺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또 '부부'는 당장 정리해야 하는 건가요? 육체적인 관계도 몸이 원한다면 그대로 따라 가야 된다고 봐요. 다만 '서로가 원할때'라는 단서가 붙겠지요.

또 감정이 따라가지 않더라도 '육체적인 매력' 만 쫓아 가고 싶은 때도 있어요. 그럼 감정을 주지 않았으니까  '부부'관계는 유지해도 행복한 것인가요? 그도 잘 모르겠어요.

 

언젠가 서양(특히 유럽)에는 평생동안 섹스파트너가 평균 잡아서 남자는 30여명, 여자는 20여명이라는 보도를 봤어요, 미국도 별반 다르진 않더군요... 그럼 서양에서는 모두다 '관계'를 정리 못하고 있는 것인가요?

마음이 끌리는데로, 몸이 원하는 대로 왜 못간다는 것이죠?

'관계' 는 그저 관계일 뿐이죠. 평생동안 몸과 마음을 다바치는 '부부관계'도 있고, 몸만 가있는 부부관계도 있고, 몸도 마음도 못가는 부부관계도 있겠지만, 어느것도 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은 자유로와야 하거든요... 남자든, 여자든......

 

2. 회사에서의 반항 또는 투쟁

 

2년만에 회사에 다시 돌아왔어요. 지난주에 회사사람들 술자리에 갔지요. 지난 연말에 새로 채용되었다는 예쁘게 생긴 여직원이 술자리에 앉자 마자 한 일이 뭔지 아세요? 수저통 찾아서 모든 사람들에게 숟가락과 젓가락 챙겨서 다소곳하게 두손으로 받쳐서 전해 주는 거예요, 오늘도 회사 사람들과 술마셨는데 여전히 똑 같아요..

 

지난 번 첨 술마실때 그래서 뭐라 했는지 아세요?

"숟가락 젓가락 선배들 한테 챙겨줄 생각말고, 선배들 맘에 안드는거 들이 받아라!"

이렇게 얘기했어요, 근데 달라지지 않아요.

더구나 요즘에 들어서 젊은 사람들은 더 심해진거 같아요, 취직하기 어려운데, 저 높은 사람이, 힘 있는 사람이 '나를 뽑아 주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그건 아니죠...

젊을수록, 패기있게 아닌건 아니다 라고 들이 받아야 한다는 거죠.

 

커피든, 담배든, 스스로 주위의 눈치를 보는 순간

그 '노예근성'을 벗어나지 못할거라 생각해요.

 

3. 가정에서의 투쟁.

 

남자들이 투쟁하지도 않고, 많은 권리를 누리고 있다는거 인정할수도 있어요. 현재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그런 거지요. 그렇지만 선사시대든 역사시대든 바르게 서술하고 있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고대에는 '모계사회'라고 하잖아요,(그런적 있었어요?)

당시에는 어머니가, 아내가 권력을 잡고 있었던 거잖아요.

 

그런데 왜 이즈음에 와서 남자들이 권력을 잡게 되었어요?

여성들이 너무 너그러워서 남자들에게 권력을 스스로 넘겨 준 것인가요?   
그건 아니죠, 그 동안에 남자들이 적과 싸우든, 내부의 동족과 싸우든, 아니면 옆에 있는 여자와 싸우든 하여튼 싸워서 지금까지는 이겨왔기 때문에 이런 불공평한 사회가 되었다고 산오리는 생각해요

산오리가 팔불출처럼 아내의 예를 잘 드는데....

우리 부부도 한때는 부모님 모시고 살았어요. 또 따로 나가서 살다가 먹고 살기 힘들어서 다시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서 살기도 했어요, 제가요, 6남매 중에 누님 한분 있고, 장남이에요, 그럼 아래로 동생 4명과 부모님과 동희 동명이와 한집에서 살았어요, 그럼 식구가 몇인가요? 기본이 10명은 되죠?

아내는 그 10명의 살림살이도 훌륭하게 해 냈어요. 얼마나 손이 크고 맏며느리 처럼 잘 했지요, 그래도 그렇게만 하고 있으면 부모든, 시누이와 시동생도 바라기만 하지, 형수나 올케언니에 대해 뭘 해줄까 고민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죠.

 

참다 못한 아내는 무조건 나가자고 개겼고, 산오리도 중간에서 불편하니까 돈 한 푼 없이 다시 나왔어요. 그리고 아내는 시댁에 대해서 하고 싶은 대로 했어요, 어지간하면 가지도 않고, 명절에도 기본적으로 할일만 하고, 시댁에 무슨 일이 있어서 남편이 부모님한테 좀 가자 하면 '당신이나 갔다 오세요'하고 안갔어요. 그래서 정말이지 산오리는 이런 거 때문에 이혼하겠다고 했어요. 도대체 우리 부모님을 뭘로 보냐면서....

 

한데, 계속 아내가 개기니까(?) 결국은 아내의 뜻대로 대부분 정리되더라구요. 부모님도 아내를 인정하고, 산오리도 아내가 하자는 대로 하고....

그래서 저는 여자도 '이혼할 각오로' 무엇이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신부님의 아내라고 신부님을 챙겨줄 필요는 없죠.

신부님은 신부님대로 일하시고, 영화를 만드시는 알엠님은 알엠님대로 살면 되죠...

신도들이 뭐라하든 그건 신경쓸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신도들은 신도일뿐이고(남편과 아는 사람들이고), 나는 나일뿐이죠.

 

그건 투쟁도 아니고, 내 맘의 자유일 뿐이죠.

내 맘의 자유는 누구도 침해하지 못하는 것이죠........

이렇게 하기 싫으면 그냥 남편과 자식들에게 뒷바라지 잘 하면서 살라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사는 동안에는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서 해야 일도 재밋고 본인도 스트레스 안받는 것이죠.

불만은 불만대로 있는데, 주위 눈치 땜에 속이 다 타는 것은 무조건 피하세요!!

 

 

아즈라엘 님이 제기하신 문제는 담에 또 얘기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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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31 22:29 2005/01/31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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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추워지고 눈이나 비가 내린다고 하는데,

오가는 길이 걱정되기도 했는데, 오히려 눈이 쏟아진다면 산은 더 좋을 거라 여겼다.

아니나 다를까 현등사 입구에 도착해서 식당에서 모자란 아침으로

두부를 먹고 있는데, 창밖은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고,

텔레비전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렸다고 자막이 지나가고 있었다.

식당집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위험하다면서 정상은 가지 말고 조금만 가다 오란다.

눈 속에 산을 올라 본지가 얼마만인가?

그냥 눈 속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황홀하고 행복했다


 

 



 

 

카메라를 꺼냈을때는 이미 눈발이 잦아들고 있었다.. 이게 뭐야?

그래도 흙이나 바위를 직접 밟을수는 없을 만큼 눈은 쌓였다.

만경능선을 올라서 정상으로 향한다.

 

바위를 많이 올라야 했는데, 쇠밧줄을 달아두어서 그걸 잡고 오르는 데는

그리 불편이 없었다.

그러나 산등성이를 따라오르는데,

저 봉우리가 정상일까 하고 올라보면 아니고, 다음 봉우리도 가 보면 아니고..

오르다 내려보면 멋진 바위도 보이고.

 

눈이 멈추면서 가평쪽으로 내려다 본 전경도 희뿌옇지만 볼만했다.

 

나무가지마다 눈이 살짝 살짝 업혀 있었고,


정상에서 서봉쪽을 바라다 보니 눈꽃이 제법 피었다.

 

절고개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남근바위라 있었는데..

 

현등사에는 보물이라는 종이 있다고 쓰여 있었는데, 그게 어디 있는지 모르겠고,

눈을 약간 덮어쓴 작은 탑은 귀여웠다(?)고나 할까?


정상에서 다행이 반대쪽에서 올라온 한팀을 만나 서로 사진도 찍어주었고,

 

정상임을 확인하는 돌을 붙잡고도 한장.

 

내려오다 만난 작은폭포도 고스란히 얼은 채 눈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내려와서 다시 올려다 보니 하늘은 맑게 개고, 언제 눈이 왔었냐 싶은데,

산 꼭대기는 여전히 눈이 보인다.

 

운악산에 혼자 가서 빗속을 헤메던 것만 기억에 남는데,

그 이후에도 셋이서 갔던 적이 있었구나. 그때도 주변 경치는 구경못했고..

 

http://go.jinbo.net/commune/view.php?board=산오리-1&id=101&page=1&s2=subject&s_arg=운악산

 

당초에는 '게으른 산행'(우종영)이 추천한 겨울산행으로 청평사 계곡을 가려 했는데,

일행들이 지난가을에 갔다 왔다고 해서 바꿨다.

같이 산에 가기로 했던 한 친구가 다른 일정이 있어서 못간다고 하는 바람에 날자까지

바꿨는데, 그바람에 눈 속에 산행을 하게 되었다. 전화위복인가?

그래도 같이 가기로 한 다른 한 친구는 일정을 바꾸는 바람에 같이 못갔다.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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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30 12:16 2005/01/30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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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야옹이님의 [두려움] 에 관련된 글입니다.

안산의 해양연구원 지부 창립기념식에 다녀온 우리 지부의 지부장과 대전에서 올라온 한  지부장이 산오리와 함께 저녁을 먹고 술을 마셨다.

대전에서 산오리를 보러 온 지부장은 옆에다 앉혀 두고

우리 지부장에게 온갖 문제점들을 다 퍼부었다.

 

조합원들이 지부장을 이렇게 비난하고 있고,

조합원들이 지부장은 이런 건 좀 해 줬으면 하고,

조합원들이 지부장이 이런 건 안했으면 좋겠다 하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지부장은 문제가 많다 면서

마구 퍼부었다.



지부장에게 '당신은 이렇게 잘못하고 있다'고

강하게 얘기한 사람이 없었는데,

산오리가 이처럼 직설적으로 소리 높여가면서

따지고 추궁했으니, 

지부장은 상당히 당황과 충격을 먹은 모양이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맹세코 어용이 될 꿈도 꾸지 못했다.

 조합원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장 그만두어야지 더할 기운이 안난다'

 

이렇게 항변했고,

더 나아가 내가 퍼부은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자신의 잘못이 없음을 설명했다.

 

뒤에서 들리는 얘기와 본인의 얘기는

다를수도 있고,  또 달라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직접 지부장의 얘기를 듣고

내가몰랐던 것에 대한 오해(?)도 좀 풀렸다.

그러나

활동방식의 차이는 여전히 크게존재하고 있었다.

 

밤에 잠을 자다 술때문에 머리가 아파 깨어서도

'내가 너무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출근해서도

여전히 그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렇게까지 얘기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나는 왜 이렇게 직설적으로,

모든걸 다 까발려서 얘기하는 것일까?

상대방이 충격을 받을 정도로...

 

근데, 주위에서 내게 그렇게 얘기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산오리는 오히려 행복할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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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8 13:18 2005/01/2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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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아 놀자!!

from 단순한 삶!!! 2005/01/27 14:35
* 이 글은 달군님의 [예민함을 두려워하지 말것] 과     알엠님의 [횡설수설] 에 관련된 글입니다. 

‘달군’님에게는 글좀 쉽게 써 달라고 했는데도 여전히 어렵다. 말이든 글이든 짧고 간단하게 나타내지 않으면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인지 읽는 나로써는 정말 헷갈린다. 달군 님의 문제라기 보다는 글을 해독하는 산오리의 지식 능력이 좀 문제가 있다는 것이 맞을라나?

하튼, 달군 님의 이 글은 산오리가 단순하게 결론을 내리면, ‘여자들이 차별 받고 있는 것을 남자들은 그리고 사회는 너무 모르고, 오히려 당당하게 차별을 정당화하고 있다’ 뭐 이정도가 아닐까?

‘알엠’님의 글은 그나마 쉽다. ‘조제..’가 도대체 뭔가 하고 두 번이나 글을 읽었는데 도저히 찾지 못했다. 그런데, 뒤에 드라마 라는게 나와서 검색을 해 봤더니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란 영화가 나왔다. 이영화 맞겠지? 언젠가 어디 블로그에서 영화감상기를 본듯한데, 영화를 보지 못했으니 알 수 가 있나? 그래도 앞쪽의 ‘감정과 관계’의 문제나 뒷부분의 생활속의 이야기는 그런대로 이해할 수가 있다.

‘알엠’님 글의 결론도 산오리가 단순하게 내리면,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살면 나쁜 인간이다’ 뭐 이런 정도가 아닐까 한다. 두 글을 보고 산오리가 내린 결론을 너무 단순하다고 비웃지는 마시길....



 

1. 담배 피는 여자

어릴적 시골에서 살 때 할머니가 곰방대에 넣어서 피우는 담배 연기 속에 언제나 방 안은 굴뚝속처럼 뿌연 채로였다. 그 속에서 먹고 자고, 살아왔기에 내가 담배를 피울때 아내가 문 밖이나 베란다에 나가서 담배 피라고 성화를 부리거나 말거나 방에서 거실에서 담배를 피웠다. ‘내 어릴때 그 담배연기 속에 살아도 괜찮았는데, 이정도가 뭐 어때서?’ 이러면서... 그런데 아내가 끈질기게 나가서 피우라고 잔소리를 하는 통에 그 잔소리가 무서워(?) 베란다로 쫓겨 났다.

87년인가 일본에 처음 갔는데, 길거리에서 여자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걸 봤다. 그것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역 앞에서... 충격이었다. 어떻게 여자들이 길거리에서 대낮에 담배를? 우리나라에서는 그리고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다방이나 술집에서 담배피우는 여자들이 눈에 띄었다. 요즘은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고 다니는 여자들도 보인다. 한 번도 ‘왜 여자가 담배 피우냐?’고 물어 본적은 없다. 나도 피우는 담배인데....

아내도 담배를 피운다. 남편한테 나가서 담배 피우라고 잔소리 열심히 했는데, 자신의 말이 걸려서인지(사실은 애들앞에서 담배 피는 모습 보이기 싫어서다) 뒷베란다에 가서 열심히 피운다.(애들 앞에 있는 대로 보이면 안되나?)

이 시대에도 여자들에게 ‘여자가 담배 피냐?’고 묻는 남자가 있다면 생각할 가치도 없는 거 아닐까? 그런 사람에게 ‘예민’까지 보여주는 건 과잉친절인 듯하다.

다만, 증명이 되었는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누군가의 희생’(간접흡연도 건강에 나쁘다는..)이 따르는 것인지는 고려해 봐야 할 듯하다.


2. 커피, 카피...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회사에서 노동조합도 생기고, 분위기가 좀 민주화 되었다면서 직장 내에서 말이 많았고, 또 여성문제에 있어서도 논란과 화두가 되었던 게 이것이었다. 대부분 여직원들이 타이피스트로 채용되어 차심부름과 복사 심부름, 심지어는 담배심부름까지 했던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게 바뀐 것은 노동조합이 문제를 제기한 것도 있지만, 여성들 스스로 문제제기를 하고 어떨 때는 소리내어 싸우면서 조금씩 조금씩 바꿔 왔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그 놈의 아이엠 에프를 지나면서 오히려 뒤로 후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최근에 주 5일제를 도입하면서 겨울철에 퇴근시간이 5시였는데, 공무원들이 6시로 바꾸면서 산하 기관들에게도 당연히 그래 하라고 했다. 노동조합이 ‘근로조건 후퇴’라고 반발했는데 기관이 정부로부터 찍히는게 무서워서(?) 내부의 규정은 바꾸되 단체협약을 바꾸지 않아서 그냥 5시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부서장들이 은근히 ‘6시까지 근무해야 한다’고 협박(?)하자 대부분의 직원들이 6시까지 근무하고 있다. 산오리는 노동조합 간부 출신인데, 노동조합의 지시를 충실히 따라서 5시좀 넘으면 그냥 퇴근하지만...

한 여성조합원이 불만을 털어 놓았다. 노동조합에서 그렇게 하면 어떻게 5시에 퇴근을 하느냐고...(노조도 문제이지만, 부서장들 한마디에 주저앉아 버리면 어쩌란 말이야...)

차심부름 하기 싫으면 거부해야 한다. 퇴근시간도 조합원이라면 그냥 5시에 당당하게 나가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 시비를 걸거나 피해를 준다면 싸워야 하지 않을까?


3. 감정과 관계

알엠 님이 쓰고 있는 감정과 관계는 이런 것인지 모르겠다. 감정은 사람이나 미움의 느낌, 그리고 관계는 부부나 애인 또는 가족이라는 사회적인 관계? 계약? 이런 것인 듯하다.

단어에 대한 적절한 정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의가 좀 틀렸다 하더라도 나는 왜 알엠님이 ‘그러나 감정과 다르게 관계는 고정되어 있다. 관계에 대한 예의를 지키자는 거다. 어쩔 수 없이 이 문제는 나한테 굉장히 중요하다.’고 얘기하는지 알 수 가 없다. 그 관계라는 것이 무엇인가? 가족, 부부, 애인... 이런 관계도 앞에서 말한 ‘담배 피우는 여자와 그를 탓하는 남자’와의 ‘관계’와 다른 게 뭐가 있나? 커피 타오라고 시키는 남자 상사와 커피를 타 가는 여성부하와의 관계와 다른 게 뭐가있나? 나는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부터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런 관계가 만들어 졌을 것이고, 우리가 그런 관계를 ‘옳은 관계’ 또는 ‘나쁜 관계’라고 규정짓는데, 그 속에도 우리가 버려야 할 고정관념이나 의식들이 많이 숨어 있기 때문데 절대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관계도, 절대적으로 옳은 관계도 없다는 것이다.

감정이든 관계이든 자유로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정이 충분하게 뒷받침 되는 관계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관계라 하더라도 감정 이외의 다른 요소로 그 관계는 유지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람을 피우고 다른 감정을 가진다 하더라도 그건 개인의 문제이고 자유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생기는 ‘누군가의 희생’은 어쩔건데? 라고 묻는다면, 그 희생도 어느 일방의 희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4. 부부는

알엠 님의 글을 보니까 우리 부부 생각이 많이 난다. 한때는 내가 술먹고 놀다가 늦게 들어갔더니, 아내는 헤어지자고 까지 했다. 그런데 그 시기가 지나고 나니까 이제는 아내가 술먹고 놀다가 늦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늦게 들어갔을때는 몰랐는데, 아내가 늦게 돌아 오니까 이게 장난이 아니었다. 밤에 놀다가 우연히 집에 전화해 보면 애새끼 둘이서 울면서 엄마는 안오고 배고프다고 한다. 휴대전화가 생기고 부터는 애들이 전화해서는 ‘아빠 배고파’ 이런다. 엄마 없냐? 연락 안되냐고 물으면 ‘엄마는 전화 안받는다’는 대답이 들려 온다. 몇 번은 어린 놈들 밥 챙겨 주려고 밤에 놀다가도 허겁지겁 집에 달려 가기도 했다.

아내는 단단히 작심을 했는지, 아니면 모른 채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새벽 2시, 또는 밤을 새워도 안들어 오는 날도 있었다. 어떤 날은 열 받아서 아예 문을 닫은 적도 있었다.

그게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겟다. 아내는 다시 술먹고 놀기 위해 나가지 않았는데, 이때 아내가 내린 결론은 ‘술먹고 노는 것도 한때다’ 이런 것이었다. 돌아 보면 남편에 대한 철저한 복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5. 그래서 어쩌라구?

산오리의 답은 간단하다.

삶은 투쟁하는 만큼 얻어진다. 가족이라고 다르지 않다. 남편이 형제가 자식과 부모가 내 맘속에 들어있지 않고, 밖에서 만들어진 관계일 뿐이다. 그래서 자신이 편하기 위해서, 자신이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열심히 싸워야 한다. 싸운 만큼 행복해 질수 있다.

요즘 우리 집에서 애들이 손가락 까닥 않고 밥먹고, 생선 가시 발라주는 걸 먹게 된 것도 이 놈들이 개기고 싸우기 때문이다. 여기에 엄마가 완패한 것이다.

그런데, 싸우기도 전에 그저 열만 받고 예민해서 속으로 끙끙 앓고만 있다면, 상대방이 무엇 때문인지, 왜 그러는지도 모르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예민은 해결될 수도 없다.

담배 피우는데 뭐라 하는 놈들에게 “야 이새끼야 니가 담배 한갑 사줘 봤냐?”고 싸우고, 커피타 오라는 놈에게 “너는 손발 뒀나 뭣에 쓰려고 하냐?” 하면서 싸우고, 집안 살림 다 맡기고 도와 주지 않는 놈에게는 “너도 한번 해 봐라”고 몇날 며칠이고 집에 안들어가면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관계도, 제도도 새롭게 만들어지고, ‘누군가의 희생’도 줄어들거나 일방적이지 않고 쌍방의 것으로 바뀌지 않을까?

싸우지 않은 예민은 한낱 푸념에 불과하고, 그 예민만 자기 가슴에 쌓여서 병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대충 포기 해야 한다.

담배핀다고 뭐라 하는 놈이든, 커피 타오라 하는 놈이든, 제혼자만 성공적인 삶을 살려는 놈이든, ‘원래 그런 놈들이니까, 아예 상대할 가치가 없는 놈이니까 신경안쓴다’면서 포기해야 한다. 


덧붙여- 좀더 살아본 경험으로 볼때, 그리고 주위를 둘러볼 때, 부부관계는 한 10년쯤 지나면 ‘상호투쟁의 경과’에 따라 약간 고정적인 관계설정이 된다. 그래서 알엠님은 3년이 아니라 앞으로 7-8년은 더 남편과 투쟁해야 할 거라 생각한다.

  - 설레발레 넘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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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7 14:35 2005/01/2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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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서럽다

from 나홀로 가족 2005/01/26 09:12

 

그저께 밤 11시가 넘어서 집으로 한약 한 제가 배달되어 왔다.

어제 아침밥상에 앉아서 아내에게 물었다.

"무슨 한약이야?"

"응, 동희 먹이려구..."

"밥만 잘 먹으면 되지 한약은 무슨 한약이야?"

"그래도 크는 애들에게는 한제씩 먹여야 되지."

"근데, 왜 동희만 한약 지어주구 동명이는 없어?"

"그 새끼는 한약 먹는 거보다 더 돈을 쓰고 다니는데 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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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6 09:12 2005/01/2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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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에 잘 해야 한 번 구경 가는 연극이다.

평생 가야 구경하지 못할 연극이지만,

그나마 전부터 알고 있는 배우 덕분에

이 친구가 나오는 연극을 보러 간다.

그동안 하도 어려운 연극들만 해서

연극은 다 저러려니 하고, 억지로 봐 왔는데,

어제는 연극 보다가 한참을 울었다.



 

연극 '운수좋은날' 이었는데,

운수좋게도(?) 돈 많이 벌어서 집에 돌아와보니

아내가 죽어 있었고,

그래서 남편은 한참을 울고 있었는데..

그 장면에서 나도 한참을 울었다....

 

영화든 연극이든, 또는 현실이라도

거의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슬픈 얘기를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나이 탓인가?

 

연극 끝나고 서경화와 맥주집에서 잠간 앉았다 왔는데

배우 서경화(앞줄  왼쪽)는 예전보다는 더 밝아졌다.

이나라에서 배우로 살아 간다는 것도 만만찮은 것일텐데,

그나마 지난해보다 더 밝은 모습을 보인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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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6 09:08 2005/01/2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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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삐딱, Sisyphus, ....님의 [패거리..학벌...] 에 관련된 글입니다.

산오리는 서울 변두리 어느 고등학교의 3회 졸업생이다.

지난 주엔가 산오리 동기 중 한명이 고등학교 동문회 총동문회장이 되었다고,

그래서 시내 어느 호텔에서인가 동문회장 취임식한다고 같은 기수들은 많이 와 달라고

문자가 몇 차례나 왔다. 그 동문회장 된 친구는 중고등학교 동기동창이기도 하니까

학교 다닐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동문회 갈까 말까 잠시 망설이기도 했는데,

그동안 해 왔던 거 처럼 안가기로 결정했고 가지않았다.

 

산오리도 고등학교 동창생들이 모이는 모임이 하나 있기는 하다.

고등학교 졸업때부터 만나 왔으니까 4반세기가 넘도록 줄기차게 만나 왔다.

지금도 1년에 네번 정도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그저 오랫동안 만나 왔기에 정겨운 친구들일 뿐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만나지도 않았고, 학교다닐때 얼굴도 알수 없었던 선후배들이

세월 지나서 만나면서 달라진 게 있다.

나이 먹고 제법 돈 푼이나 만지게 된 친구들(선후배)도 생기고,

사업한다고 사장님 소리 듣는 친구들(선후배)도 생겼고,

관공서나 정치판에서 한가닥씩 하는 친구들(선후배)도 생겼다.

 

그런데, 이즈음에 만난 친구들(선후배들)은 대놓고 얘기한다.

"뭐 필요한거 있으면 얘기해라, 서로 돕고 사는게 친구고 선후배 아니냐?"

그리고 가끔은 산오리한테도 전화가 온다.

"오리야!(선배님!) 그 회사에 이런저런 일 할 거 좀 없냐(소)? 이것 좀 도와 주라(시죠).."

 

학교 동문 좋다는 것이 이런 것이란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학교를 같이 나왔다는 것으로 이렇게 하는 것은

한마디로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경기고-서울대 로 이어지는 막강한 동문에 감히

서울 변두리 신생 고등학교 - 서울변두리 대학교 로  어찌 맞설수 있으랴...

뭐 꼭 거기에 맞서서라기보다도,

고향과 학교, 이런것으로 작은 끈이라도 엮어서

'비정상적인 특혜'를 만들고 싶어하는 우리네 정서는 정말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고향의 향우회 동문회 이런데는 가기 싫고 안갔다.

(향우회는 아버지의 강권에 못이겨, 그리고 친한 시골친구를 만나러 두세번 따라간 적이 있다.)

그런데, 나이 먹을수록 고향으로, 동문회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산오리도 나이 더 먹으면 고향 찾고, 학교 동문 찾고 그럴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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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4 20:55 2005/01/24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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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쳤다는 저작권법은  저 제목에 걸맞는 수준인듯 하다.

 

* 이 글은 NeoScrum님의 [[펌] Fuck Q] 에 관련된 글입니다.

이 살벌한 저작권 공안 정국에도 웬지 퍼와야 될 것 같은....



♪ Fuck Q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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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4 13:32 2005/01/2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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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명의 결재....

from 단순한 삶!!! 2005/01/21 17:06

2년간 노동조합 갔다가 회사일로 되돌아 오니

몇가지 달라지거나 정착된 것이 있는데,

전자 결재는 많이 확산, 정착되었다.

대부분의 것들은 예전부터 시행해 왔고,

최근 들어서는 문서 자체가 대부분 전자결재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컴화면에 올라오는 전자결재 서류를 들여다 보고나서는

비밀번호 란에 내 비밀번호를 넣고 확인을 눌러주면 결재가 된다.

 



이즈음에는 결재자들의 결재 이력을 들춰 보게 된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연구과제의 실행예산편성이라는게 주된 것인데,

정상적으로 가면 결재단계는

연구부서 담당->팀장->부서장->기조실담당->팀장->기조실장->선임부장

대충 7단계쯤 되니 이것만 해도 만만찮은 결재 과정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곳에 가다가 문제가 발견되어 '반려'되는 경우이다.

기조실장이 반려를 한번 하면 다시 담당자부터 시작해서 고치고, 수정하여 시작한다.

그러니, 연구실 담당부서장도 '이것 보완해라'하고서 반려하고,

기조실에서도 '이것 수정해 주세요'하면서 반려하면

결재자 숫자는 엄청 늘어난다.

 

오늘 내가 들여다 보고 결재한 것도

이런 반려의 과정을 거쳐서

무려 23번째,, 25번째의 결재자가 되어 있었다.

그냥 서류를 들고 다니면서 결재를 한다면 틀린건 수정해서 사인하고,

이런저런 의견 문서에 남기면서 사인하면 된다.

 

전자결재, 이거 도대체 효율적인거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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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1 17:06 2005/01/2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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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되면 아내는 더 할일이 많다.

애들이 학교 가서 해결하던 점심을 집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2-3년 전까지 아내는 회사 갔다가 점심시간 즈음에 집에 돌아 와서는 애들 밥 챙겨주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것도 마다 하지 않았다.

요즘에는 들를 기회가 있으면 김밥이라도 사다 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먹을 걸 많이 마련해 두거나, 때로는 중국집, 피자집에 전화해서 배달시켜 점심을 해결해 준단다.

아침에 재활용할 것들 다 치우고 베란다를 열어보니 쌀을 물에 담가두었다.

그거 뭐 할 거냐고 물었더니 가래떡 뽑아서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애들 점심때 먹게 하려고 한단다. (참으로 정성도 대단하다.... )

 

아침 밥상에는 무조건 애들을 깨워서 함께 밥을 먹는다.

새벽 2시까지 게임하고 놀다가 잠드는 놈들이 7시반에 밥상앞에 앉아야 밥맛이 있을 리 없다.



아내는 아침에도 된장찌게게 김치찌게, 두부조림, 김치 두세가지, 마른김, 생선튀김까지 그야말로 진수성찬을 차려서 내 놓는다.

깨작거리는 애들에게 아내는 생선 뼈까지 발라서 밥에다 얹어 준다.

근데, 이 놈들은 그것조차 별로 반겨하지 않는다. 억지로 깨워서 먹는 밥이니까 그저 밥 우걱우걱 떠 넣고 물 한잔 마시고 빨리 되돌아가서 잠자고 싶은 거다.

보다 못한 산오리는..

"당신 좀 그러지 마! 이제 고등학생이나 된 놈에게 그게 뭐야?"

"빨리 먹으라고 그러지..."

"당신이 그러니까 애들이 아직도 그모양이지...애들 이것 저것 챙겨주지 말라고... 그냥 밥해서 밥통에 넣어놓고 자기들보고 챙겨 먹으라고 하라고...이것저것 사주니까 제손으로 하는게 없잖아.."

아침 밥상에 엄마 아빠의 잔소리가 싫어진 큰놈이 뭐라 투덜댄다.

"그러게 엄마는 싫다는데 자꾸 먹으라고 올리고..."

"야! 새꺄! 싫기는 뭐가 싫어? 니네가 안하고 못하니까 그런거 아냐?

  엄마 아빠가 무슨 노예냐? 너네는 손도 꼼짝 안하고 부려먹으려고만 하고..."

"..................."

두 놈다 후다닥 밥을 긁어 입에다 쏟아 붓고는 후딱 사라졌다.

 

아침에 화장실에 앉아서 작은책 2월호를 봤다.

첫글이 어느 남자 고등학생이 쓴 글인데, 아픈 엄마가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하는데 도시락 싸달라고 했더니 김치 하나만 넣어서 싸준 도시락 들고 가지 않았단다. 그랬더니 엄마가 수업하는 도중에 온갖것을 만들어서 도시락을 싸서 왔단다. 그런 엄마가 너무 사랑스럼고 고맙다는 그런 얘기다.

물론 고맙고 엄마 밖에 없다. 그렇지만, 엄마는 그래서도 안되고 자식도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되면 당연히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엄마는 자식을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도시락을 학교까지 배달해 주는 정성을보여주는 덕분에(?) 자식들은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점점 늦어진다. 요즘은 아예 나이 들어도 홀로 서기 안한다는 자식들도 많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런 글이, 이런 내용을 보고 무엇을 느끼라고, 무엇을 배우라고 떡하니 작은 책에다 실었는지 그것도 이해가 안간다. 엄마는 아픈 몸 이끌고 기꺼이 자식 도시락 반찬 많이 만들어서 학교까지 가야 하고, 그걸 본 아들은 엄마의 무한한 사랑에 고마워해야 한다? 이렇게 읽으라는 것인가?

그런 아들이 커서 결혼을 한들 마마보이를 벗어날수 있으랴? 시쳇말로 '남녀평등'에 일말의 관심이라도 있을까?

 

엄마들이 애들을 망치고 있고, 남자들을 망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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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9 08:56 2005/01/19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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