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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살아 가는 것은.. (6) 2011/01/13
  3. 김이태 투명사회상 받다. (5) 201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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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아람누리 첫방문 2010/12/07
  6. 백수가 더 바쁘다?? 2010/12/03
  7. 해고자의 일기-4 2010/12/03
  8. 해고자의 일기-3 (1) 2010/12/03
  9. 해고자의 일기-2 2010/12/03
  10. 해고자의 일기-1 2010/12/03

자만이 화근??

from 단순한 삶!!! 2011/01/15 18:11

주위에서 한달 동안 감기가 낫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걸 보면서도

그깟 감기에 왜 걸리고, 오랫동안 고생하냐고 핀잔이나 주고,

운동이라도 하고, 비타민이라도 먹어 보라고 큰소리 쳤는데,

그런 자만이 화근이었던지 감기에 걸린 모양이다

 

하긴 지난 주말에 그 추위 속에 산속에서 땀흘리면서

자전거 탄 것도 무리한 거였는데,

목이 좀 아프더니 한이틀 지나면서 나아졌나 했는데

어제부터는 귀가 멍하고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멍하기도 하다.

그리고 기침이 나오고, 코도 멍멍하고...

 

주말에는 쉬어 보자고 집에서 책장이나 넘기면서

빈둥거리고 있다.

늦잠을 잤지만, 오후가 되니까 다시 졸고..

 

겨울에 감기쯤 한번 만나고 가 줘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리 달갑지는 않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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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5 18:11 2011/01/15 18:11

1. 언제 사 두고 쳐 박아 놓았는지 모르는 '육식의 종말'을 읽고 있다.

어릴적부터 고기 먹을 일이 거의 없어서 였는지 모르겠지만, 김치와 된장국으로 잘 먹고 잘 살아왔고,

어른이 되어서도 어쩌다 삼겹살 한번 먹고나면 그 담날은 여지 없이 속이 좋지 않아서 화장실을 몇번

들락거리곤했는데, 이제는 이런 일도 없이 고기를 잘, 그리고 많이 먹고 있다.

몸도 귀찮지만, 계속 넣어주는 고기들에게 어느정도 적응이 된 것인지 모르겠다.

요즈음 소와 돼지, 그리고 오리와 닭들도 땅속에 산채로 파 묻고 있다는 소식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잇기도 하지만, 이런 소식과는 상관없이 고기 먹는 일은 좀 삼가야겟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특이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2. 일전에는 산오리가 존경하는 노동운동가 한 분으로부터

"입으로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몸은 자본주의의 온갖 혜택을 누리려 한다면 어떻게 사회를 바꿀수 있겠느냐"는 얘기를 들었다, 이 분의 생활방식을 보면 충분히 자본주의와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있다는 생각을 한다.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애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아니고, 뭔가 나누고 고통을 함께 하는 것도 그렇고...

아내와 자식 핑계를 대고 있지만, 내 생활이 내 삶이 그렇다는 지적으로 들렸다.

이건 어떻게 행동으로, 생활로 자본주의를 벗어날 수 있을까....

 

3. 또 일전에는 산오리가 가장 좋아하는 한 분으로부터 "뭔가를 열정적으로 하는 걸 못봤다"는 얘기를 들었다.

너무 정확한 지적임에도 왠지 오랜동안 가슴이 아팠다. 지금도 아프다.  스므살 까지는 그래도 공부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열정적인지는 모르겟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햇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언젠가 포스팅을 한 적도 있는 거 같은데, 내가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세상돌아 가는 것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포기했다. 내가 뭔가를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수 잇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니 열정적으로 뭔가를 하지 않은 것은 맞는 말이다.

나는 앞으로도 무슨 일에 무엇에 열정을 바칠수 잇을 것인가? 그리고 삶은 뭔가에 열정을 바쳐야만 하는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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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3 22:50 2011/01/13 22:50

김이태 박사가 제 10회 투명사회상을 받았다.

9일 오후 2시 장충동 만해 NGO교육센터에서 시상식이 있었다.

 

올해 상을 받은 사람들은 김이태 박사 이외에도

이재술 대구시의원, 고 서정민 박사, CBS 라이도 프로그램 '뉴스야 놀자' 이렇게 4분(팀)이었다.

상을 받는 사람들을 동영상으로 소개하는데,

옆에서 훌쩍거리고 우는 소리가 들려서 봤더니

고 서정민 박사의 부인이었다.

 

안그래도 시강강사의 부당한 처우를 죽음으로 고발한 분이라

안타까워서 눈물이 나려 하는데,

부인이 우는 소리를 들으니 더 눈물이 났다.

오죽하면 죽음으로 얘기했으랴 마는

정말로 스스로 죽는 건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쁜 놈들은 한 놈도 스스로 뒈지는 꼴을 못보는데..ㅠㅠ

 

이 시상식이 10회가 되다 보니까

10년동안 상을 받은 분(팀)들을 보니까

이름이나마 알고 있는 분들도 많이 있었다.

그동안 힘겹고 어렵게 싸운 분들을 생각하니까 숙연해 지더라

근데 7회(2007년) 수상자 가운데는

이재일(전 한국건설기술연구소 연구원) 이 보이는데,

옆에 있던 김태진 지부장이 이게 누구냐고 물어보니까 생각이 났다.

비정규직으로 있으면서, 각종 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진정을 냈고,

이로 인해 건기연이 임금을 지급하고, 규정도 뜯으 고치고...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별 역할을 못했던 거 같다.

아무튼

그 훌륭한 상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건기연 사람(출신)이 둘이 있다니,

건기연이 참 지랄같은 기관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기연 사람(출신)들이 훌륭하다고 해석해야 하나..

씁씁하기도 하고...

 

김 이태 박사는 수상소감에서

해고자 두사람을 소개해 주면서 함께 싸운 분들이라고 해서

산오리는 좀 머쓱하기도했다..ㅎㅎ

 

김이태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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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0 09:49 2010/12/10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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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74

from 단순한 삶!!! 2010/12/07 15:35

지난 주에 어느 지부를 방문하여

그곳 이사장과 면담을 한 적이 있었는데,

손님이라고 선물을 주셨다.

창립기념식 선물이라고 만든 것이라면서

만보기와 스포츠타올을...

 

한때 어느 곳이나 기념품으로 만보기 만들고,

그거 허리띠에 매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간만에 만보기 주니까 한번 써보자고 허리띠에 달고 나섰는데,

며칠 지나보니까 하루에 겨우 5천~6천 정도가 찍힌다.

 

어제 저녁에는 비싼 밥 먹고 배는 불러서

간만에 아파트 주변을 한바퀴 돌았는데,

그러고 와서도 만보기 들여다 보니까

겨우 9774 이더라,

 

하루에 만보를 걷는게 쉬운일이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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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7 15:35 2010/12/0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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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에는 어울림 누리와 아람 누리라는 두개의 큰 문화공연 시설이 있는데,

어디 쯤 있다는 건 지나 다니면서 봤지만,

한 곳에도 가 본적이 없다.

공연이라면 오페라니, 뮤지컬이니, 유명가수의 콘서트를 한다고

도로변에 무수한 깃발을 걸어 놓고, 육교에 현수막을 걸어놓지만,

별 관심을 가져 본 적도 없으니,

문화예술에는 바보라서 그럴 것이리라.

 

어제 드디어 이 장대한 문화시설에 가 볼 기회가 있었는데,

문화예술 공연을 보러 간 건 아니었고,

노조 상집위가 낮에 회의 하기 어렵다고

저녁에 저녁식사라도 하면서 회의를 하자고 잡은 것인데,

한정식집에 가려다가 이태리 음식점으로 급 선회해서 갔다는것.

 

비싸기는 엄청 비싼데,

먹을 건 별로 없는..

그래도 먹고 났더니 배는 왜 그리 부른지...

 

하튼

비싼 세금 들여서 지은 공공시설일텐데,

또 비싼 돈 들여서 밥 먹으러나 가고 있으니,

언제쯤 이런 시설들도 내가 써먹을수 있는 공간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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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7 15:32 2010/12/0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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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월에는 그런대로 시간 여유가 좀 있었다.

마음의 상처야 그렇다 치고,

해고자의 여유를 좀 즐겨 볼까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10월 국정감사를 거치고, 지노위 이유서 답변서, 자료 만들고

어쩌고 하다 보니까 바빠 지기 시작했고,

11월 들어서는 공공연구노조의 단협준비와 회의,

그리고 지부장이 없는 한 연구원의 지부장 직무대행을 하느라

일정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2주~ 3주 만에 한번씩 만들기로 했던 소식지는

오로지 산오리의 몫인데,

날자를 보니까 그동안에도 한달에 한번 겨우 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넘어서고 있다.

 

자리에 앉아서 소식지 원고를 쓸 여유가 없어지고 만 것이다.

 

간만에 소식지 작업이도 하려고 자리에 앉았다.

아래 포스팅 들은 소식지에 실었던 글들이다.

 

이제 소식지라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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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3 11:13 2010/12/0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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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자의 일기-4

from 단순한 삶!!! 2010/12/03 11:01

 

 

해고자의 일기 ❹ 성(姓)은 해요, 이름은 고자라..

 

1. 얼마 전 술자리에서 갑자기 옆에 있던 한 친구가 불렀다.

“어이, 해 동지, 내 술 한잔 받으시오!”

“뭐라구요?”

“해 동지라구..”

“멀쩡한 곽 동지는 어디다 버려두고?”

“해고자 니까 이제 성이 해씨가 된 거요...하하하... 자, 해 동지 한잔 받으시오!”

“........ 아,,, 고맙소, 부르기 어려운 곽씨 보다, 해씨가 좋은 거 같은데..ㅎㅎ”

“성이 해씨가 된 거 좋아할 일은 아닐 거요, 이름이 고자가 되었으니..ㅋㅋ... 요즘 형수님 살 냄새는 맡아 보고 계시우?”

“으잉??? 그러니까 그게.....”

“그 보라구요. 해고자의 이름인 고자는 괜히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구요...”

 

2.술자리에서 농담이 섞인 대꾸였다고는 하지만, 그 친구와의 대화를 가만 생각해 보니까, 나도 언제 아내와 ‘밤일’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아내는 지난 해 10월 말에 배가 아프다고 병원에 입원해서 진단을 받아 보니까 대장 벽에 커다란 혹이 생겨서 수술을 받았고, 그러고 퇴원해서는 약만 먹으면서 제대로 운신도 못하고 있다 보니까 아픈 병이 빨리 완치되기를 바랄 뿐이지 ‘엉뚱한(?)’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활발하게 일도 하고, 언제나 바쁜 아내였는데, 병원에 누워 있고, 퇴원해서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병으로 아프고 오래 쉬다 보니까 회사에도 미안하다면서 다니던 회사도 그만 두고 있는 걸 보니까, 사람은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런 마당에 남편은 아내가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 받고 난리를 치는 즈음에, 지난 해 11월에 수자원환경연구본부로 발령이 나고, 그 발령은 안동실험장으로 보내기 위해서였고, 본부장의 인사권이라는 미명아래 12월에는 안동으로 쫓겨나고 말았고..... 부당하게 안동으로 쫓겨 났다는 생각이 남편의 머리 속에 꽉 차있고, 그로 인한 분노가 점점 커져갔다.

그 때부터 일요일이나 월요일이면 차를 몰거나 버스를 타고 안동으로 내려가고, 금요일 밤 12시가 넘어서 겨우 집으로 돌아와서는 주말 이틀간 파김치로 늘어져 있다가 사라지는 남편.

수술 후에 불안한 몸 상태로 혼자서 수술한 아랫배를 한 손으로 떠 받치면서 엉거주춤하게 걸어 다니면서 집안 일을 하는 아내.

이런 남편과 아내 사이에 무슨 살 냄새가 있을 것이며, 무슨 다른 생각이 떠 오를 것인가.

안동만 왔다 갔다 한 건 그렇다 치지만, 그 와중에 이제는 남편이 해고까지 되었으니 아내는 남편에게 무슨 애정이 있을 것이며, 남편은 또 무슨 변명이라도 할 게 있을 것인가...

 

3.무더웠던 여름날도 다 지나가고,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한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더니 갑자기 아랫도리에서 신호가 왔다. ‘아 아직 죽지는 않은 거구나’ 반가운 마음에 아내에게 백 만년 만에 구애를 시도했다.

결과는.......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며칠 전 먼저 해고자의 길을 걸었던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꼭 비뇨기과에 가봐라! 정신과에 가서 정신상태도 치료하고, 복직을 위한 투쟁도 열심히 하고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고자 신세 면하는게 가장 중요한 거 아니겠냐?”

뚜렷하게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곽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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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3 11:01 2010/12/0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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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자의 일기-3

from 단순한 삶!!! 2010/12/03 11:00

 

 

해고자의 일기 ❸ 당해 봤어? 아니면 말을 말어…….

 

1.해고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일찍부터 나돌았기 때문에 아내에게는 미리부터 말해 왔다. 해고가 될 것이고, 약간의 불편이 있겠지만 그리 오래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고, 또 나쁜 짓을 해서 해고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당당하다고 말했다.

아내는 “마음 편하게 먹고 지내라”고 위로를 해 줬다. 마음 편하게 먹고 지내라는 건 위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금새 불편으로 나타났다. 아침에 평소보다 조금 늦도록 미적거리고 있으면 아내의 한마디가 날라 왔고, 어쩌다 저녁에 일찍 집에 들어가면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밖에서 사람을 만나서도 ‘남편이 해고됐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실직자 남편이 있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이 모두 ‘무시한다’고 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남편이 직장이 없다는 것은 아내에게도 엄청난 부담이다.

 

2.누구를 만나든 당당하게 ‘나는 해고되었다’고 말해 왔지만, 부모님과 형제들에게는 그 말을 아직 못하고 있다. 아직도 부모님은 내가 안동에서 근무하고 있는 줄 알고 계신다. 수술하고 병원에 누워 계시는 어머님께 주말에 찾아 가면 “언제 올라왔냐? 안동에는 별일 없냐?” 하고 물어보신다. 그럼 지나치듯 작은 소리로 “예...” 하는 것으로 끝낸다. 뭐라 한마디도 덧붙일 수가 없다.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거짓말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이젠 만날 때 마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는 것도 당당하게 얘기해 왔고, 경상도가 고향이라 박정희와 박근혜가 좋다고 말씀하시는 아버지에 맞서서 좋은 점도 있지만, 해악을 끼친 것도 많다고 말싸움을 벌이기까지 해 왔지만, 나의 해고에 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다. 아무리 당당하고 잘못한 일이 없지만 해고되었다고 부모님께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부모님과 형제들을 속이고 거짓말 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고 괴롭다.

이런 사정으로 해서 그동안 꽤나 공들여서 만든 놀이터 블로그도 문을 닫고 있다시피 하다. 해고된 이후에 한건의 포스팅도 하지 못했다. 형제들이 블로그에 가끔 방문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 여기다 무슨 포스팅을 할 수 있으랴...

 

3.적게 벌어 적게 쓰고 살자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나 부부는 같은 생각을 하기도 어렵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집을 넓혀 가기를 바라고, 그걸 실행에 옮기는 건 여자다. 남자는 가정의 경제에 별다른 영향력이 없다, 내 경우에는.... 남자는 그냥 ‘돈 벌어 주는 기계’라는 말이 헛소리가 아닌 모양이다.

살던 집을 정리하고 새로운 집으로 옮기면 되겠다고 계산한 아내는 이를 실행에 옮겼지만, 옮겨 가야 할 순간에 살고 있는 집은 팔리지 않는다. 은행에서 돈을 빌어야 하는데, 직업이 없는 내게는 대출을 추가로 해 줄 수 없다고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의 연속이다. 실직자는 은행대출부터 받을 수 없다고 하던 선배 실직자의 한 마디가 현실이 되어 내게도 다가와 있다. 그러나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4.해고되면 시간여유도 있고, 일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으니까 마음 편하게 놀러라도 갔다 오라는 사람들도 있다. 돈도 돈이겠지만, 잠간 시간을 내서 친구들을 만나거나 바람을 쐬러 어디를 가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냥 불편하고 답답함이 남아 있다.

‘노동자에게 해고는 사형선고’라는 말이 있다. 정말 사형선고 맞다. 그렇게 사형을 시켜 놓고도 희희낙락하고 있는 인간들에게는 정말이지 뭐라 할 말이 없다.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한때는 시(詩) 한 줄 쓰기도 했는데...

저들이 그런 사형선고를 모를 리 없건만 굳이 해고를 강행하는 목적은 딱 한가지다.

“그냥 괴롭혀 주는 거다”

저들은 목적을 완전히 달성했다. 해고자는 엄청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니까

“해고당해 봤어? 안 당해 봤으면 말을 말어.....” 어느 개그맨의 유행어가 갑자기 생각난다. ■곽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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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3 11:00 2010/12/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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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자의 일기-2

from 단순한 삶!!! 2010/12/03 10:57

 

 

해고자의 일기 ❷ 장하다 인사위원들이시여!!

되돌아 보니까 인사위원회에 몇 차례 참석했던 전력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노조 참관인 자격으로 인사위원회에 들어가서는 제대로 된 징계를 좀 해 달라고 얘기 했었다. 제 식구 감싸기는 어느 기관이나 다르지 않아서 연구원의 인사위원회도 가능한 징계수위를 낮추려고 노력하던 인사위원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항상 징계는 솜방망이에 그쳤다. 몇 차례 누적된 징계를 거쳐서 겨우 파면에 이른 경우를 제외하면...

 

이런 그동안의 연구원 관례에 비춰 보면 조용주 원장은 인사위원회, 특히 징계를 위한 인사위원회를 아주 획기적으로 바꿔 놓은 훌륭한 공로를 가진 분이다. 규정에 정한 징계의 양정이야 어떻게 규정되어 있거나 말거나, 징계사유가 되거나 말거나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파면이나 정직이라는 일종의 사형선고를 마음대로, 내리고 있으니 말이다.

한 가지 더 있다. 그동안 원장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무섭고 막강한 자리인지를 제대로 모르고 살아온 연구원 식구들에게 원장이 직원 몇 명의 목숨을 파리 목숨 처럼 말 한마디로 죽일 수도 있다는 걸 제대로, 확실하게 깨우쳐 준 공로도 빼 놓을 수 없겠다. 지난 반년 조금 넘는 세월 동안에 벌써 회사에서 잘린 사람이 7명이다. ‘원장은 무섭다’라는 걸 연구원 식구들이 절감하고 있을 거 같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그게 싫으면 집에 가라!!! 이게 조용주 원장의 연구원 경영방침인지 모를 일이다.

 

이야기가 샛길로 가고 있다. 다시 되돌아 가 보자.

지난 7월 30일 오후에 지부장과 사무국장을 징계하는 인사위원회가 열렸다. 그동안 징계위원회 참관은 지부장과 사무국장이 해 왔는데, 그들이 징계를 당하는 입장이니까 대신 해고자라도 참관해야 했다. 참관은 어떻게 할수 있었느냐구? 그건 공공연구노조와의 단협에 있다고 단협을 들고 들어 갔기에 가능했던 것인지, 아니면 품격 높으신 인사위원들이 은혜를 베풀어서 그런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마침 조용주 원장의 노조탄압이 상상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 서고 있다 보니까, 공공연구노조에서 이 아무개 국장이 건기연 지부의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나와 있다. 그래서 참관을 이 아무개 국장과 해고자 부지부장 이렇게 둘이서 들어갔는데, 예상대로 그냥 두지 않았다. 그동안 외부인의 참관이 없었기 때문에 외부인 참관은 안된다는 거였다. 이런 건 어찌 그리도 그동안의 관례를 열심히 따르려고 하시는지...

한 사람은 해고자, 한 사람은 본부의 국장... 둘 다 외부인인데, 그럼 참관을 하지 말라는 것이냐? 단협은 괜히 있는 거냐? 징계위원회 방해 안한다 그러니 맘놓고 해라! 뭐 이런 실갱이를 두어 차례 겪은 후에 이 아무개 국장은 나가고 해고자 부지부장은 참관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해고는 되었지만, 아직은 외부인이 아닌 것인가? 이건 또 무슨 논리가 적용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냥 누군가의 입맛에 맛는 대로 정하면 그게 법이 되고, 규정이 되고, 해석이 되고 한다.

 

지금은 연구원의 무슨 팀장으로 계신 분이 항상 하시던 말이 생각난다. “연구원은 엿가락 연구원이다” 일관된 원칙도 기준도 없고, 힘 있는 사람이면 되고, 힘 없는 놈이면 안되고... 그런 뜻이었겠지. 그즈음에도 그랬는데, 지금은 엄청난 힘을 가진 분이 원장으로 있으니까, 아마도 엿가락은 펴 졌거나 부러질 정도로 딱딱해 졌는지 모를 일이다. 팀장으로 계신 이 분은 지금의 상황에서 연구원을 어떻게 표현하실라나? ‘내 맘대로 연구원’ 이거나 ‘한 분의 생각대로 연구원’이 더 잘 어울릴 거 같다.

 

해고자 주제에 인사위원회 참관이라도 하라고 내쫓지 않고 앉아 있게 해 준 것에 감지덕지 해서 인지 모르겠는데, 해고자 부지부장은 그날 인사위원회 처음부터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참관은 쳐다 보기도 하지만, 말도 할 수 있는 거였고, 말을 하고 싶었으면 저들의 반대나 무력행사에도 굴하지 않고 참관인으로서 하고픈 말은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이미 결론은 정해져 있고, 인사위원들은 단순한 하수인이거나 거수기일 뿐인데, 거기다 몇 마디 말을 덧붙여 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싶었다. 그래도, 아무리 그렇게 생각했다 하더라도 인사위원회 내내 ‘설마 저들도 인간이고 사람인데,... 저들도 같은 동료이고 함께 얼굴 맞대고 살아온 사람인데..... 정말 저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일말의 기대를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나중에는 자신을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고, 속된말로 표현하자면 ‘쪽’팔렸고, 아직도 ‘내 맘대로 연구원’의 현실 파악도 못하는 바보로 여겨져서 슬퍼지기는 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기대했던 대로 저들은 확실하게 그리고 일말의 미련도 아쉬움도 남기지 않은 채 파면과 정직을 의결했다. 장하다 인사위원들이시여!

여러분의 미래에 무궁한 영광과 자손 대대로 부귀 영화가 함께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인사위원 만세!”라도 불러드렸어야 했는데... 그걸 못해서 좀 아쉽다.

 

인사위원회가 끝나고 나중에 위원회 도중에 들고 있었던 수첩을 들춰 보았다.

위원들이라는 사람들이 범인(?)들에게 질문한 내용들을 끄적거려 메모를 해 놓았는데, 헉!!! 그 위원들의 이름 옆에다가 ‘저런 개XX' '나쁜 XX' '저린 한심한 놈’ ‘저런 등신’ 이런 말들이 적혀 있는게 아닌가?

아이고 이거 누가 적었지? 내가 적었나? 나는 입으로 내뱉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내 수첩에 이렇게 육두문자나 욕지거리를 써 놓은 놈은 어떤 놈이야?

남의 수첩에 이런 욕지거리 써 놓은 나쁜 XX 같으니라구....ㅠㅠ <20100810> ■ 곽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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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3 10:57 2010/12/0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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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자의 일기-1

from 단순한 삶!!! 2010/12/03 10:54


 

 

 

 

 

 

해고자의 일기 ❶ 분노와 울음 그리고 인간

 

〈인사발령 사항을 알려드립니다.

수자원․환경연구본부 본부지원팀

1급행정원 곽장영

인사관리규정 제32조(징계)에 따라 파면을 명함

2010. 07. 13자

원장. 끝. 〉

 

인생 50을 넘게 살면서 받은 훈장 가운데 가장 살벌한 훈장이다. 살벌하다기 보다는 한 인간에 대한 ‘사형선고’다.

겨우 1주일을 지났으니까 이 사형선고에 따라서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직은 잘 분간이 되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사형선고를 받았고, 이미 죽었다. 내가 아무리 살아 있다고 떠들어 본들 결국은 그들의 선고대로 죽고 말 것이다.

 

노동자에게 해고는 사형이다. 한 노동자가 사형을 선고받을 만한 중대한 죄를 지었는지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사형을 선고하는 그들은 무슨 힘을 어떻게 누구로부터 받았는지도 궁금하다. 무슨 생각으로 한 인간에게, 한 노동자에게 사형을 선고했는지도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들이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과 다른 점이 있었는지도 물어보고 싶다. 아니 그들이 인간의 감정을,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사람인지도도 물어보고 싶다.

 

어쨌든 그렇게 사형을 선고받은 건 사람이고, 인간이고, 가정이 있는 가장이며, 노동자이기도 하다. 인간이기에, 사람이기에 분노할 줄도 알고, 흐느껴 울 줄도 안다. 알기 때문에 분노하거나 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사람이기 때문에 분노하고 싶지 않아도, 울고 싶지 않아도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분노와 울음을 멈출 수가 없다.

 

 

나도 사람이고, 인간이기에 이렇게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있고, 또 눈물 흐르지 않는 피울음이 솟구쳐올라 온다. 그 분노와 피울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고등학교 2학년으로 생각된다. 엄청난 세월이 흘렀지만, 잊혀지지 않는 이 인간의 치졸한 기억력에도 서글픔을 느끼지만, 큰 분노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게 정상이라 생각한다.

등록금을 제 날자에 맞춰서 내지 않는다고 선생은 종례 시간마다 이름을 부르면서 언제 낼 거냐고 다그쳤다. 물론 집에 가서는 아버지께 등록금 독촉을 받고 있노라고 말씀은 드렸다. 그렇지만 도대체 돈 가지고 있으면서 자식 학비를 늦게 내고픈 부모가 어디 있으랴....

어느날 학급회의 시간에 나는 발언권을 얻어서 말했다.

“선생님은 등록금 독촉을 좀 덜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그 말은 바로 누군가의 고자질에 의해서 선생에게로 전달되었고, 나는 선생으로부터 무자비한 구타를 당했다. 그리고 선생은 아버지를 학교로 오라고 했다.

“아버지는 안 그래도 제 등록금을 버느라고 바쁘신데, 어찌 학교로 오라 가라 하라는 겁니까?”

다시 인사불성이 될 만큼 맞았다.

결국 아버지는 학교에 선생을 만나러 갔고, 말씀을 하지 않으셨지만 봉투를 건냈다는 것을 뒤늦게야 나도 알았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상당기간 동안 나는 종례 시간이 끝나면 학교 후문으로부터 내려가는 산길에서 머리통만한 돌덩이 하나 들고 선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한 번도 선생은 혼자서 그 산길을 내려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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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3 10:54 2010/12/0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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