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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구 - Always with you.mp3 (5.87 MB) 다운받기]
엉아.. 엉아는 기억을 잘 못하겠지만, 1992년? 즈음.. 곰팡내나는 자취방서 빨래를 잔뜩 지고 내려와서는.. 집에서 컨닝페이퍼를 만들고 있는 나를 뒤지게 혼내킨 적이 있어.
젊은 놈이.. 당당한게 다인데 그렇게 시험쳐서 점수를 받은 들 먼 소용이 있겠냐? 그래서 뭔 인생을 당당하게 헤쳐나갈 수 있겠니? 하고 말이야.
물론 나는 '뭔 잔소리여.. 다들 이렇게 하는데 말이여. 거 쪼금 적었다고 워티기 되는것도 아닌데 말여.' 할 수도 있었는데.. 그때 나는 나에게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간다는걸 자꾸 생각하게되었고.. 그이후로는 조금도 어디 적어놓지 않고.. 다시는 컨닝이라는걸 안하게 되었어.
그리고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냐면 말야. 빵꾸때우며 일반화학 100점. 유기화학을 100점을 맞았어. 일반화학은 화학전공자의 기본인거여. 거기서 모든게 시작되지. 지금도 전공에 대해선.. 그 누구에게도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게 되었고.. 더 나아가 나 스스로에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어.
20여년이 훨씬 지나 생각해보니.. 나에게 떳떳하고, 솔직하고, 자신감이 있다는게 살아가며 이렇게 큰 자산이 될지는 몰랐어. 그 어떤 책을 봐도 그것이 온전한 나의 지식이 되었고, 어떤 화학실험연구소에서 어떤 권위로 밀어붙여서 노조간부로서 일개 화학전공자로서 아무도 내 얘길 안 믿어주었어도..내 화학지식으로는 당신들이 엉터리라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었고.. 스스로 공부해 밝혀냈으며.. 그게 결국 옳았어. 왜냐면 엉아말대로 나는 나에게 솔직했으니까 말이여. 당당했으니까? 말이여. 물질은 유기화합물, 무기화합물로 분류가 되는데.. 그들은 유기화합물에 대해서만 괜찮은것 같다는 의견이었는데 마치 아무이상 없다고 해석되었어.. 근데 무기화합물도 맹독성을 지닐 수 있거든. NaCl은 소금이지만.. 같은 7족을 갖는 NaF는 맹독성 물질이라는걸 난 이미 알고 있었어. 전문가도 뭐도 아닌 한때 화학을 전공했던 노조지부장인 내말이 먹히지 않아 법전을 뒤적거리기 그 이전에 말이야.
엉아.. 지나놓고 보니 그게 그렇게 큰 일인줄은 몰랐어. 지방대생에.. 쥐뿔 가진 것 없지만 나에게 당당하고.. 그래서 누군가에 당당하다는게 말이여. 살아가며 이렇게 엄청 큰 재산이 될지는 정말로 몰랐어.
엉아.. 내가 엉아가 '너 이새끼야.. 젊은 놈이 그따위로 살아서.. 낭중에 뭘 제대로 할 수 있겄냐.' 했을때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않고.. 계속 손바닥, 책상에 적어가며 시험을 쳤더라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거여. 쥐뿔 가진 것도 없고.. 계속 눈치나 보게되는 인생으로 말이여.
엉아.. 정확히 25년이 지났어. 내가 컨닝을 하고 나 자신을 속인 댓가로 대충 점수를 받고.. 사회에 나왔었더라면.. 난 매사에 자신이 없었을 것이고..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었겠지. 그 누군가에도 눈치나 보며 얘기했을거고..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를 믿을 수 없었을거여.
시험칠때 책상이나 손바닥에 슬쩍 적지 않는다는.. 나에게 떳떳하다는 삶의 방식이 이렇게 어마어마한 일인줄은.. 25년이 지나보니 소름끼치게 알게 되는거여. 그게 단순한 컨닝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여.
엉아.. 난 엉아가 있다는게 행운이라고 생각해. 물론 엉아가 기억 안나겠지만.. 초등학교 3학년때 나를 괴롭히던 덩치큰 놈을 운동장서 엉아가 혼내줄때 난 너무나 고마웠어.
엉아.. 정말로 고마워. 이번 아부지 제사에는 엉아가 꼭 왔으면 좋겠어. 모두 이해할거고.. 모두 아무 얘기도 하지 않을거여. 이 얘긴 일부러 하지 않았어. 제발 돌아와줘. 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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