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음악과 삶

  [Desperado.mp3 (4.99 MB) 다운받기]

 

 

 

  아저씨는 음악을 가구라고 생각합니다.  생활에 먼가 필요하다 하면 뚝딱뚝딱 만들어 편리하게 사용하는 가구요.  가구는 필요에 의해 탄생하지만 그렇지 않은 가구도 있지요.  소장가치를 위해 한마디로 사치품으로 탄생하는 가구들입니다.  어디다 딱이 쓸모는 없지만 먼가 고급져보이고 갖고 있으면 보석처럼 뽐내고 싶어하는 고상한 그런 가구요.  예전엔 음악이 다 쓸모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일하다 심들면 부르기도 하고 마을사람이 모여서 놀때도 부르고 시집못가 속상할때 물레를 타며 부르기도 했습니다. 쓸모가 정해지지 않은 노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음악은 돈을 벌기위한 쓸모가 되어버렸습니다. 모든걸 돈으로 주고 받고 돈없으면 당장 한 순간도 살지 못하는 세상이니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겁니다.  요즘 음악은 얼마나 돈을 벌 수 있느냐가 음악이 탄생하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친구들은 알래나 모르겠지만..  아저씨 나이때 사람들은 대부분 얼굴이란 노래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노래가 탄생하게 된 원인은 '지겨운 교무회의' 였습니다.  핵교서는 선생들을 교장교감이 모아놓고 회의라는 걸 하는데..  친구들하곤 별로 쓸데 없는 무료한 시간이지요.  그래서 작곡하신 음악선생님이 교무회의때 옆자리에 앉아있는 생물선생님을 쿡 찌르며 시하나만 써봐~ 내가 노래하나 맨들테니까 해서 지겨운 교무회의때 딴짓으로 탄생하게 된 노래입니다. 

 

  이런 역사?를 알고 학교에서 만약 이 노래를 연주한다면 교무회의를 짧게 끝내라는 의미를 갖기도 할거고 선생님이 수많은 제자들을 기억하며 가졌던 문득 떠오르게 된 그리운 제자를 의미할 수도 있을 거예요.  어때요? 친구들은 이런 얘기를 듣고 노래를 다시 들으면 전혀 다르게 다가오지 않나요?  이런걸 요즘말로 스토리 텔링이라고 하는 것 같아요.  결국 노래가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진정성을 얘기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뭐하는 사람인지를 무척 궁금해합니다.  뭐를 하면서 먹고 사는 사람인지를 보면 그 사람을 알수 있겠거니 나름 생각들을 해서 그런것도 같습니다.  사실 무엇을 하고 있는 사람이냐에 따라 그 사람의 정체성을 쉽게? 규정하고 있는 것도 같아요.   만약 똑같은 연주를 투쟁사업장의 조합원 노동자가 연주했다면..  아무리 엉성한 연주이지만 의미가 달라질거예요.  마치 전문가도 아닌 우리 동생이나 부모님이 그린 그림이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를 갖듯이요.  

 

  음악은 결국 그 음악을 연주하거나 만드는 사람의 삶을 일정부분 담게 되는것 같아요.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의 문제를 생각할 수 밖에 없으며 어떻게 살고 있으며 그런 상태로 음악을 하느냐가 또다른 음악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봅니다.

 

  나는 어떻게 살것인가? 이건은 내가 창조하는 음악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음악을 위해 뭔가 거창하거나 교훈적인 삶을 살 필요는 절대루 없습니다. 그렇기 이전에 음악은 그 자체로도 듣는 이에게 충분합니다.  음악을 위해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치 내가 모든이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는 것 처럼, 내 음악이 모든이에게 좋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럼..  뭘 어쩌란 얘기냐?  음악과 삶의 관계는 절대적이지 않다라는 생각입니다.  완숙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음악은 소중하단 얘기고..  당시 듣는 이에게 위안이 되었다면 그 뿐이란 얘깁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