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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글쓰기의어려움

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7/02
    지뢰밭.
    레이-1
  2. 2007/06/28
    이런 얘기들을 쓰고 싶지만...
    레이-1
  3. 2007/05/24
    "남자들에게 부탁"- 저도 부탁합니다.(2)
    레이-1
  4. 2007/05/23
    감정과 언어가 동일해지는 그날까지!(2)
    레이-1
  5. 2007/05/21
    글을 짓는다는 것 - 글 쓰기의 어려움.(2)
    레이-1

지뢰밭.

열심히, 꾸준히 아주아주 뒤로 미뤄 두었던 지뢰들이 연쇄반응으로 터지기 일보직전. 오늘 발제 하나, 원고 하나, 내일 원고 하나. 어이쿠야. >_< + 주말의 직관은 들어맞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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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얘기들을 쓰고 싶지만...

요즘엔 블질 할 에너지도 딸린다. 어쨌든. - 미드족과 저작권 - '민중의 지팡이', '민생치안 수호자'로서의 경찰과 시민권(자유권) - CSI, CSI spinoff series를 통해 본 다양한 리더쉽의 형태와 조직내 권력관계 - '대중운동'과 '시민운동'의 차이 : 대상의 문제냐 관점의 문제냐 -> 활동가의 관점에서 - '차이를 인정하는 것'과 '차별하지 않는 것'의 차이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것들은 저 정도. 그런데, 언제 쓸 수 있을까? =ㅂ=;; 묵혀뒀다가 월간 [사람]에나 써먹을까..? 예전 마약퇴치 공익광고처럼 내가 내 무덤을 파는 기분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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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남자들에게 부탁&quot;- 저도 부탁합니다.

남자들에게 부탁 - from worrynet 정말 남자들이라면 꼭 읽었으면 한다. 그리고 제발 '나는 괜찮은 남자인데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욕을 먹어야 하냐!'라고 문제제기 하는 난독증 환자분들이라면 더더욱 읽어봤으면 좋겠다. 일상이 편안하기 위해서 물리적 거리감을 지켜달라고 했더니 '모든 남자는 가해자, 모든 여성은 피해자? 남성들도 여성에게 피해보는 경우 있다'는 댓글이 달렸다. (솔직히 말해서) ㅅㅂ 완전 피곤 왜 그렇게 '남자들'이라는 말에 매달리는지 모르겠다. 된장녀나 개똥녀가 이슈가 될때 대부분이 여성들이 자신이 '여자'라는 이유로 모욕당했다고 느꼈을까? 왜 남자들은(또 오해받을까 말하지만 그렇게도 분류하고 싶으시다면 '어떤' 남자들은) '남자들'이라는 표현과 생물학적 성별이 남자인 자기 자신을 그렇게도 동일시 하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다. + 윗 글에 달린 댓글에 대한 내 답변. (글쓰기와 관련해서 또 푸념 : 근데 난 왜 글을 이따위로 쓰는걸까? ㅠㅠ) '남성들은 전부 혹은 거의다가 남은 상관안하고 앉는다는 표현처럼 보인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쓴 것 맞습니다. ^^ 다만, 여기서의 남성들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남성으로 규정하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남성이라기 보다는, 사회적으로 부여되는 남성의 권력을 무의식적으로 남용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맞겠지요. 물론 여성에게 피해보는 남성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경우, 가해자인 여성은 소위 '미친X' 취급을 받으며 매장당하기 쉬운, 하나의 개체로서만 판단됩니다. 그러나 가해자가 남성인 경우, 혹은 남성'들'이 가해자라고 고발하는 여성이 있을 경우 공격 받는 대상은 가해자보다는 '가해 집단'이라 명명되는 남성들의 특성이 모두 동일하지 않다는 점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가해자에 대한 비판보다는 '집단으로서의 남성'의 명예(?)를 떨어뜨린것에 대한 공격을 개별적인 남성들 모두의 탓인양 돌리는 것에 대한 비난으로 마무리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운동진영에 돌려지는 화살의 내용은 대부분 그런 것이죠. 저는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특성을 가진 개체들의 집단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남성들'이 부여받은 '호전적인 남성다움'에 대한 면죄부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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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언어가 동일해지는 그날까지!

레이님의 [글을 짓는다는 것 - 글 쓰기의 어려움.] 에 관련된 글.

.....글을 쓰겠다는 것은 아니고. 원고 마감했다. ^^;;; + 꼭 쓰고 싶은 내용이었는데 꼭 쓰고 싶지 않은 내용인것 같은 글이 되어버렸다.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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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짓는다는 것 - 글 쓰기의 어려움.

'글을 짓는다'..는 말은, 적어도 내게는, 꽤나 엄숙하고 묵직한 느낌이다. '짓다'라는 동사를 쓰는 가장 흔한 경우는 '농사'일 것이다. '피땀흘려 지은 농사'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그만큼 농사짓기가 어렵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글을 '짓는 것'도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작가들도 책을 내는 일을 출산의 고통에 비유하곤 하지 않는가. 기껏해야 회의문서나 성명서, 보도자료 등 기사형태의 사실전달을 위한 문서작업이 글 쓰기의 전부인 내가 글짓기에 대해 운운한다는 것이 어이없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글짓기가 어떤 것인지는 좀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예전에 작가 김훈의 '칼의 노래'를 보면서 한 선배가 그의 통찰력에 대해 칭찬한 적이 있었다. 기억은 잘 안나지만 책 속의 한 문장을 언급하면서 그 문장에 드러난 무력/권력에 대한 속성을 아주 정확하게 표현한 그의 문장을 칭찬했던 것 같다. 난 어렸을 때부터 외국소설(주로 영미권이지만)의 번역체에 길들여져서인지 한국작가들의 소설을 거의 안 읽기도 하지만, 선배의 말을 듣고나니 김훈의 책은 더더욱 읽고 싶지 않아졌다. 아마도 그 문장의 내용들을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순간, 그로인해 밀려올 나 자신의 초라함을 견디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특히 다른 의사소통의 방법들(음악, 미술, 춤등 비언어적 방법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내가 가진 말과 글의 표현력이 일천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게 꽤나 무서웠던 모양이다. 정말 말도 안되는 이유이지만. 말이나 글이 갖는 일차적 목표는 결국 어떤 단어들을 적재 적소에 정확하게 배치하여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국 일차적 목표일 뿐이고, 사전적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문장을 완성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화자/필자의 의도까지 정확하게 전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가령 '평화사진작가 이시우씨의 국보법반대 단식이 30일을 넘기고 있다'라는 문장과 '한 예술가이며 운동가인 이의 장엄함'이 다른 것 처럼 말이다.


'이것도 인권이에요?' - '당연하지!'라는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것은 글 '쓰기'가 아니라 글 '짓기'라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다. 짓는다는 것은 단순히 없던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주 과학적인 과정을 통한 재창조인 것이다. 볍씨를 뿌려 벼를 거두는 농사처럼, 내가 알소있는 사실과 느낌을 종합하여 언어라는 비료를 통해 하나의 글을 완성하는 것. 달마다 닥쳐오는 마감에 어지러이 쫓기는 것만 생각하다보니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를 몰랐었다. 출산의 고통까지는 아니더라도 고통을 감내하면서 내 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던 것이다. 내 글에 대한 애정을 내가 쏟지 않으면 누가 쏟아주겠는가. 좀 더 열심히, 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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