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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경제성장의 그늘, 거기에 여성노동자들이 있었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증가하던 그 시절,
그러나 자아실현이니 사회활동이니 하는 포장은 그녀들에겐 사치였다.
먹고 살기 위해 일터로 나가야 했던 이들 여성노동자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저임금에 시달리고
출산, 육아라는 또 다른 짐까지 져야했다.
이른 아침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출근 준비를 하면서
아이들을 따로 돌봐 줄 사람이 없어
긴 하루해를 보낼 먹을거리 장만해 놓고,
행여 길거리로 나가면 유괴 되지 않을까 사고 나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문을 꼭 잠그고 일터로 향했던 여성 노동자들.
그렇게 남겨진 아이들을 위해 탁아소 운동이 시작되었다.
80년대 공단과 빈곤지역에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탁아소들은
가난한 아이들도, 노동자의 자식들도
건강하게, 즐겁게, 생활하고 배울 권리가 있다는 신념으로 뭉친
탁아활동가들의 열정의 산물이었다.
그것이 보육운동의 시작이다.
부모에게는 일할 권리를, 아이들에겐 보호받을 권리를!
영유아보육법 제정이후 수많은 어린이집이 만들어지고 보육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갈수록 높아갔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민연금 기금 융자, 시설 설치기준 완화 등 보육시설 확충 3개년 계획을 발표한다.
이 시기 1년에 천 개 이상의 어린이집이 새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IMF 가 터지면서
융자를 받아 운영하던 많은 어린이집이 도산하고
보육료를 내지 못하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나와 다시 거리로 떠돌고
정원 감소로 인한 보육교사들의 정리해고가 진행되었다.
또 시설들은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 정원초과, 부실 급식 등을 자행하여
보육의 질은 갈수록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에 1999년, 보육교사가 바로 서야 보육이 바로 설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한국보육교사회에서는 현장 보육교사로 구성된 교사정책단을 구성하였다.
아이들과 가장 가까운 위치였던 보육교사의 눈으로
보육의 문제를 분석하고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대 나타난 출산율의 급감은 보육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하였고
언론과 정치권은 보육문제에 예전보다 더욱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관심의 어느 부분에도 20여년 현장을 지켜온 보육교사들의 헌신과 희생은
포함되지 못하였다.
이제 보육교사 대중이 스스로 자신들의 자주적 조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오랫동안 안으로 곪아들어 이제 숨길 수 없는 악취가 진동하는
온갖 시설 비리, 횡령, 부실한 급간식 등 보육시설내부의 문제에 대해
보육교사들이 의연히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해고의 위협을 무릅쓰고 시설장과 싸우고,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보육교사들이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보육운동은 누가 대신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노력하는 보육교사로부터 시작된다는
의식과 자각이 보육교사 내부로부터 자라나고 있다.
또한 자신의 일이 더 이상 의미 없는 희생이 아니라
당당한 노동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보육노동자의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직은 비록 소수이지만
전국보육노조가 보육운동의 새 길을 열어갈 희망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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