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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늦은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소회

최근 한동안의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의 인기는 웬지 집단적 페티시즘처럼 느껴진다. 나도 그 자장에서 벗어나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조금 엉뚱한 이야기이지만, 언제부턴가 가수들이 TV에 출현해서 '우리 회사'라든지, '사장님'이라는 단어를 거리낌없이 구사하는 걸 보면서 약간 무서워진다. 한편으로 소시와 원걸을 둘러싼 현상들을 보고 있자면 나이주의의 한 단면이 느껴진다. ... 요즘 젊은 사람들의 추세에 뒤떨어지면 안 된다 ... 그런 감성을 마케팅에 잘 활용한 듯하다.


두 경쟁사 간의 대결구도 식으로 재현된 것도 그렇고 ... 무대에서 '줄도 잘 맞추는' 엘리트 이미지의 소녀시대와 약간 발칙한 구석이 귀여움을 더해주는 원더걸스의 뒤에는 이모씨와 박모씨라는 포주가 있다.
 

어디서든 소녀시대와 원더걸스를 싫다고 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그런 용기를 가진 사람은 주로 나같이 록큰롤을 좋아하는 얼빠진 사람이 아닐까 싶다. 재즈나 클래식 팬들은 아예 관심이 없으니까.


그러나 록큰롤이 일상에 파열구를 내려 했던 실험은 90년대 초반 시애틀로 끝난 듯하다. 물론 지금도 나는 매년 4월 8일에 동쪽을 향해 잠시 묵념을 하곤 하지만, 커트 코베인의 죽음은 무엇보다도 끝이 보이지 않는 무기력함의 징표다.
 

펄잼의 경우엔 독점기업 티켓마스터와 싸웠네 어쩌네 하지만, 재판 걸어제끼는 아주 미국적인 소비자 권리 방어 방식이었다. 그들의 첫 앨범 중 "Even Flow"(그저 흘러가네)라는 곡을 참 좋아하는데 노랫말이 전하는 메시지는 노숙자들도 사람이다. 미친 놈들도 아니고, 그 사람들이 그렇게 된 게 그들 탓만도 아니다. 이런 정도다. 제2의 부르스 스프링스틴이란 수사가 딱 들어맞는다. 나는 그들의 진정성의 정치를 너무도 좋아하지만, 그것이 일년 내내 유효한 것은 결코 아니다.
 

물론 나에게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이들 두 집단은 상징적 의미가 강하지만, 개인적인 선호에 따르자면 브라운아이드걸스를 추가하고 싶다)가 자극하는 로리콘도 일년에 며칠은 매우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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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꽁브 뤼시앙과 조폭영화

루이 말르 감독의 <라꽁브 뤼시앙>이라는 영화를 봤다. 일전에 어쩌구 특별전인가 몬가 해서 간판에 네온사인 달아 놓은 구멍가게 같은 극장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영화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 조폭영화다.
 

비쉬 정권 시기 남프랑스 시골마을의 소년 뤼시앙은 '싸나이'로 인정받고 싶어 안달이 난 녀석이다. 아쉽게도 레지스탕스는 녀석을 애 취급하며 내친다. 반면 나치스 부역자들인 경찰은 녀석에게 신분증도 내어주고 그럴듯한 양복도 맞춰주면서 힘을 부여한다. 이런저런 난봉꾼 짓을 하던 녀석은 나치스에 적당히 거리를 두며 협조하던 유태인 재단사의 딸과 사랑에 빠져 산속으로 도망가는데, 막판엔 허망하게 전쟁이 끝난 뒤 처벌을 받았다던가 자살했다던가 하는 자막이 덜렁 떠버린다.
 

이 영화의 서사구조는 물질적 빈곤함과 정체성의 불안함이라는 상황 속에서 건달로 성장하여 액션 한 번 보여주고 비장한 최후를 맞는 조폭영화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다만 한국 조폭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모범생 단짝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이 영화의 미덕이라 하겠다.

 

내용 측면에서는 루이 말르가 나치스와 부역자들은 깡패집단이고, 그에 대항하려던 레지스탕스는 전위조직 엘리트주의(조직이 드러나면 작살나니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탓에 한계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 어떤지 모르겠다. 아뭏든 그런 처량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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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잡새가 날아드는 그림

 

 

우연찮게 고야의 그림 한 장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온갖 잡새가 날아드는 그림이었는데, 한 귀퉁이에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태어난다"고 적혀 있었다. 느긋하게 다시 보니 눈에 띠는 점들이 많다. 일단 문구에서부터 "괴물"이라는 비정상성의 전형을 "이성의 결여"로 표상하고 있다는 점. "괴물"들이 올빼미, 박쥐, 삵쾡이 같은 "동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 명백히 "이성"의 소유주로 의도된 듯한, 잠들어 있는 인간의 모습이 책상머리에 엎어져 있는 모양이라는 점. 인간은 밝은 "빛"을 받고 있는 데 반해, 괴물들은 저 뒷편의 "어둠" 속에서 달려들고 있다는 점.

 

그런데 자꾸만 ... 작가는 두려움을 주기 위해 의식적으로 그린 듯한 괴물들, 즉 동물들의 눈빛이 오히려 겁먹은 눈동자로 보이는 까닭은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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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과 신이현 그리고 충남 당진여자

방심한 사이 또 C에게 전화가 와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장정일과 신이현 이야기가 나왔다. 나역시도 둘을 엮어서 이야기하는 데 거부감이 있긴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대부분 둘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장정일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 나는 신이현이 소설은 정말 잘 썼다고 생각한다. 청소년들의 존재론적 불안을 그렇게 생동감있게 그려내면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보듬어나가는 글쓰기 방식이 매력적이다.
 

반면, 내가 가장 아끼는 쉬인인 장정일은 소설쓰기에 있어서 의도한 바대로 재지(jazzy)한 글쓰기를 하지는 못했다. 그의 의도에 '잡념이 틈입'했기 때문이리라. 장정일과 박노해는 비슷한 에토스를 공유하지만, 신이현과 최영미는 그렇지 않다.
 

각설하고 정말 어이없어 웃어제끼기도 하고 열받기도 했던 건, C가 모 인터넷서점을 검색해 봤더니 신이현의 알자스 일기 밑에 어떤이가 댓글로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충남 당진여자'를 옮겨적어 놨다는 것이었다. 어떤이 너는 어디서 무얼하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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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꼴리와 끝없는 슬픔

최근 들어 일주일에 한 번씩은 늦은 밤에 전화를 걸어주어 애인같이 느껴지는 C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멜랑꼴리에 대해 묻더니 그것이 끝없는 슬픔을 의미한다고 했다. 뭐 옛날 사람들이 그런 걸 무슨 체액 분비 같은 거 때문이라고 봤대나. 근데 그거 사실인 것 같다.
 

도대체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라고는 없는 나는 매일 오전 11시쯤 입안에서 암모니아 냄새 같은 걸 느끼게 되는데, 갑자기 마구 우울해진다. 그런 아련한 슬픔을 각종 상투어를 동원하여 이미지로 구현해 보자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나는 그늘 없는 바닷가에 앉아 있다. 나룻배를 타고 온 선교사들은 그 배에 광인들을 태워 멀리 떠나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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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족들은 어디로

나는 가끔씩 아스팔트를 질주하는 폭주족들을 점점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에 아쉬움을 느낀다. 125cc '오토바이'를 마후라 트고 뒷쇼바 올리고 불바퀴 달고 어쩌고 식으로 개조해서 널러다니는 눈 짝 째지고 침 좀 뱉게 생긴 것들은 이제 사라져가는 듯하다. 250cc 이상 되는 스즈키 로드카나 미국식 챠퍼를 떼거지로 유유히 몰고 다니는, 뭔가 회상하는 듯한 눈빛을 한 아저씨 무리들이 시신경에 익숙해져 간다.


나는 주로 자전거를 이용하는데, 이따금씩 어릴적 시장에서 보았던 쌀집 자전거가 그리워지곤 한다. 자전거를 홀대하는 교통법규나 교통문화에 짜증나는 거는 나도 매한가지이지만, 자전거도로가 쫙좍 깔리고, 자전거 타는 이들은 쫄바지에 뾰쪽 헬멧 쓰고 꼭 그래야 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래 물론 안전 중요하지. 그치만 안전하다 함은 누군가의 손 안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그때 그시절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일상이라는 게 예전보다 더 지루하고 반복적인 것이 된 것 같다. 그럴수록 일상적인 풍경들을 뒤틀어주는 사람들을 보고 싶은데,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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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기를 쓰는 이유

예전에 한 2년 정도 일기를 썼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들춰보니 맨 마지막 페이지에 "이제 이 일기를 그만 쓰려 한다. ... 무언가 쓴다는 것이 내게 더 이상 의미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지금 나에겐 무언가 쓰는 것이 절실하다. 나에 대해 말하고 싶은 까닭이겠지.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다른 누구보다도 나 자신에게 말을 걸고 싶다.


언제 어디선가 어떤 죄수들이 이런 말을 했다더라. "내가 누구인지 말하는 데 다른 누군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아뭏든 지금의 나는 전방위적으로 허접한 글쓰기를 하고 싶다. 생각해보니 사람들은 허접해 보이는 사람을 좋아한다. "나는 허접하지 않구나, 나는 쓸만한 사회 구성원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해 주니까.
 

갑자기 강준만이 생각나는데, 내용의 측면에서 참 민망하기까지한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형식의 측면에서 그가 전방위적으로 허접한 글을 써대기 때문이다. 스튜어트 홀이 '변변한 저서 하나 없이' 정세개입적인 글쓰기를 하면 문화연구의 대부이고, 강준만이 침 튀기며 핏대 세우면 별난 사람 취급받는다. 좌파 강준만이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멀리 북유럽에서 왔다 돌아가 있는 한 분이 그런 걸 좀 하긴 했지만 ... 여전히 좀 격이 높으셨다. 나는 그야말로 내 자신에 대해 허접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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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노동조합주의 - 허먼 벤슨

하이브리드 노동조합주의: 막다른 골목인가 밝은 미래인가?1

 


허먼 벤슨(Herman Benson)
<디센트> 2009년 겨울호

 


수년 전 노동조합 조직률이 하락하고 노동운동이 곤경에 처했음이 드러나자, 학자들은 미조직 노동자들의 보호를 위한 새로운 기준들을 제시하였다. 유일한 대안은 노동조합운동으로부터 나왔다. 이러한 생각들은 클라이드 서머스(Clyde Summers)에 의해 정교화되었고, 앨런 하이드(Alan Hyde) 등에 의해 대중화되었으며, 가장 최근에는 찰스 모리스(Charles Morris)의 저서인 <작업장의 푸른 독수리>(The Blue Eagle at Work)2을 통해 부활했다.
그들은 노동자들이 배타적 교섭대리인을 찾지 못하였을 때, 노동조합들이 이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사용자와의 교섭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전미노동관계법(NLRA)이 법적인 틀을 제공해주며, 사용자들에게도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고 설득력 있게 강조하였다. 이러한 일명 “소수자 노동조합주의”는 노동조합에 대한 기존 인식에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 아홉 개의 전국수준 노동조합들이 전미노동위원회(NLRB)에 사용자들이 어떤 노동조합도 배타적 교섭권을 갖지 못한 사업장의 소수자 노동조합들과의 교섭에 임하도록 요청하는 새로운 규제를 입안하도록 청원하였다.
다른 이들도 쇠퇴를 멈추기 위한 가상적인 대안들을 제시하였다. 인종적 정체성이 계급 연대성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지기도 했다. 또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을 대변하기 위해 법무법인 같은 여타의 제도들을 선택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견해도 있었다. 제도 외부의 노동조합들에 대한 사용자들의 적대를 극복할 수 없다면, 사측이 지원하는 기업별노조 대표성의 제약을 완화하는 방향은 어떠한가 하는 견해도 있었다. 사용자의 적대에 직면하여 노동조합들이 수많은 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노동조합이 직접적으로 고용문제 뿐만 아니라 법적 문제, 보상(임금) 문제, 실업보험, 주택문제 등을 해결해주는 것은 어떠한가 하는 견해도 있었다. 이러한 제안들은 단체교섭 또는 다른 서비스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스스로 쟁취하기 어려운 노동자들에게 그러한 것들을 제공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들 모두는 노동조합운동이 너무 낡아빠져서 다른 형태의 대표형식이나 사회적 서비스 또는 복지기관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데에 의견이 일치했다. 200년 넘는 세월 동안 다른 모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시혜적 수단들과 구별되는, 노동자들이 자선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들과 자신들의 이해를 위해 행동하는 것이 노동조합운동의 기본 원칙이었다. 이러한 원칙은 새로운 체계 하에서 쇠퇴하게 되었다.
이후 1995년에 들어선 AFL-CIO의 존 스위니(John Sweeney) 집행부는 명예롭고 영광스러웠던 나날들로 되돌아갈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 큰 변화는 없었고, 노동의 쇠퇴는 계속되었다. 앤디 스턴(Andy Stern)이 이끌었던 전미서비스노조(SEIU, Service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3 역시 마찬가지로 새로운 출발을 약속했다. 이들은 산하 노동조합들과 함께 AFL-CIO를 탈퇴하여 승리연합(Change to Win)4이라는 새로운 노총을 구성했다. 스턴은 미조직 노동자들, 특히 억압받는 소수자들, 저임금 비숙련 노동자들, 초과착취 당하는 이민노동자들의 조직화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그는 매달 새로운 슬로건들을 제시하며 기존 노동관계를 뒤흔들었다. 수백만의 노동자들을 조직할 것, 옛날식의 대립적 노동조합운동을 넘어설 것, 헤지펀드 매니저들을 주시할 것, 미국 경제의 재건을 위해 책임성 있는 사용자들과 협력할 것, 개인적인 불만들로 책임성 있는 사용자들을 괴롭히지 말 것, 월마트를 탐욕스런 착취자로서 규탄할 것, 월마트를 비롯한 거대 고용주들의 문제를 전 미국인의 건강문제와 관련지어 평가할 것, 지역조직을 보다 규모 있는 조직으로 합병하고 간부와 상근자들을 노동조합 “조직률” 제고를 위해 훈련시킬 것, 협조적인 고용주와는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규탄할 것, 국제적 협력을 위해 중국의 국가통제를 받는 노동조직들과의 공통지반을 탐색할 것 등의 이슈들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이슈들은 그리 명확히 제시된 것들은 아니었지만, 스턴은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논의를 제기함으로써 신뢰를 얻게 되었다. 그것은 이데올로기적인 잡탕이었지만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것들이었으며, 이를 통해 스턴은 미래의 노동운동 지도자로서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유명세를 탔다.
우리에겐 더 이상 노동조합운동을 대변하기 위한 학술적 이론가가 필요 없었다. 스턴은 새로운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들을 통해 논의의 장을 선점하였다. 그는 조직화와 노동조합 인정을 위한 투쟁을 위해 노동자들을 고무하는 구태의연한 방식보다는 고용주들의 협력과 지원을 통해 보다 현대적이고 거대한 노동운동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선호했다. 이러한 방식은 거대 고용주일수록 그 효과가 컸다.
고용주들에게 설득력 있는 제안들을 함으로써 노동조합 조직률을 제고하겠다는 생각에 그다지 새로운 요소는 없다. CIO가 새로운 전투적 노동운동으로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고 있었을 때, 경쟁자인 AFL 노동조합들은 고용주들에게 파트너십을 제안하는 보다 온건한 방식으로 조직화의 물결을 탔다. 일부 주류 노동조합들은 오늘날에도 진정성을 지니고 있지만, 우호적인 고용주들과 손해 보는 거래를 통해 자기 조직만의 세를 불린다고 이들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스턴의 21세기형 모델은 기업별 노동조합운동의 변형은 아니었다. 고용주보다는 실질적인 노동조합이 기본적인 세력으로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지금까지의 노동조합운동 역시 기본 세력은 아니었다. 이들은 고용주들과의 긴밀한 연관 속에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한 가지 측면에서 스턴은 옳았다. 이것은 새로운 접근법이었다. 스턴은 이것이야말로 노동운동의 밝은 미래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라 보았다. 이 모델은 과연 다른 여러 잡종(hybrid) 모델들과 같이 몰락하고 말 것인가?
스턴의 견해는 다르다. 그는 기존 노동조합운동의 강화가 아니라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않은 이들을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제안하는 노동조합이 무노조보다는 낫다고 말한다. 로체스터 지역의 한 섬유-요식업연합노조(UNITE HERE)5 조직활동가는 <레이버 노트>(Labor Note) 2008년 5월호 기고를 통해 스턴의 주장에 맞장구치며 “이 경우에 노동조합이 허약하다면 …… 임금이야 줄어들 수 있겠지만, …… 노동조건의 측면에서는 조직화 이전보다 더 저하되지는 않을 것이다. …… 이 노동자들에게 진정 노동조합이 없는 것이 더 나은가?”라며 맞장구쳤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런데 스턴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대체 어떻게 사용자들을 설득하고자 하는 것인가? 그는 적대적 노동조합주의와 개인적 문제해결의 최소화를 혼동하고 있다. 너저분한 작업장 생활의 세세한 부분들로 그의 파트너를 괴롭히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럴싸한 제안을 통해 미국경제의 재건이라는 더 커다란 공통의 이해관계에 집중하고자 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파트너로서 적극적인 사용자에게 협력을 제안할 수 있다. 사용자가 노동조합의 성장을 허락한다면 양자는 대중들에게 상호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강한 노동운동은 사용자들로 하여금 건강보험과 연금에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할 수 있고, 그러한 혜택들이 소비자들에게 되돌아가도록 사회화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용자들이 이 미끼를 물 것인가? 이것은 문제의 단 한 측면일 뿐이며,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노동운동이 새로운 노사 협력적 분위기 하에서 어떻게 성장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다.
스턴의 대규모 미조직노동자 조직화 사업 제안은 전미서비스노조와 광범위한 민주적 노동자 대중들 사이에서 거의 만장일치로 결의되었다. 지금까지도 그의 지지자들은 처음의 열정을 간직하고 있으며, “모두를 위한 정의”를 쟁취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의 탁월함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다. 그러나 스턴의 지도 아래 전미서비스노조 협정이 이루어진 지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것이 갖는 의미는 조직화를 향한 웅대한 요청만은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불안이 커지고 있다. 주된 걱정거리는 노동조합들의 대규모 지역지부로의 재조직화, 지명간부 수의 증가, 사용자에 대한 대규모 기금 요청 등 일단은 노동운동의 질적, 양적 성장을 위한 일시적 전략으로 보이던 것들이 이제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일상 속에 자리잡아가고 있고 조합원들과는 거리가 먼 권위주의적-관료적 노동운동을 향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잡종 노동조합주의의 새로운 이데올로기는 다시금 노동운동을 지도자들의 정치적 교섭도구로 만들려는 것처럼 보인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조합과 노동조건을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지역지부는 사라지고 있다. 이들은 규율 잡힌 상층간부들―선출간부든 지명간부든―에 의해 대규모 지부 또는 수십만 명의 조합비 납부자들의 평의회로 재편성되고 있다. 미국 전역의 전미서비스노조의 조합원 대중들과 해고간부들로부터 불안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2007년 1월 살 로셀리(Sal Rosselli)가 포문을 열었다.
로셀리는 전미서비스노조의 가장 큰 지역지부 중 하나이며 캘리포니아 지역에 15만여 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서부보건의료노조(United Healthcare Workers-West, UHW-W)의 의장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진보적 노동운동 지도자로 존경받고 있는 그는 스턴의 지지를 업고 전미서비스노조 집행위원 및 캘리포니아 평의회 의장이 되었다. 이러한 직함들은 그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었다.
로셀리의 서부보건의료노조는 집중공격을 받으면서도 스턴이 2003년 284곳의 노인요양시설을 대표하는 캘리포니아 간호사연합6과 맺은 협정을 비판했다. 서부보건의료노조의 주장에 따르면 전미서비스노조는 노인요양 국고지원 증액을 요구하며 요양시설 고용주들과 함께 캠페인에 나섰다. 고용주들은 2007년에 1억1,900만 달러, 2008년에는 1억8,000만 달러의 지원금을 받았다. 전미서비스노조는 사용자협의회와의 협정을 통해 42개 요양시설 2,000여명의 조합원 가입을 이루었다. 그러나 노조는 사용자협의회 측의 185개 시설에는 조직화를 위해 접근할 수 없다는 내용에 동의하였다. 서부보건의료노조는 이 협정에 따를 경우 신규조직사업장이 산업 내 노동조합들의 조직력을 약화시킬 것이며, 협정 하에서 새로이 전미서비스로 조직되는 노동조합들은 “아마도 …… 기업별 노동조합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로셀리의 공개적인 비판은 푸념어린 불평 정도로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수년 간 스턴 집행부의 여러 인물들과 함께 일해 왔으며 전미서비스노조 내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지역지부를 이끌어 왔다. 서부보건의료노조 조합원 대중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결국 스턴은 한발 물러서서 논쟁을 종결지었다. 그럼에도 얼마 후 그의 기본적인 정책방향에는 변함이 없음이 드러났다.
2008년 5월 10일 월스트리트 저널의 크리스 메이허(Kris Maher)는 전미서비스노조와 섬유-요식업연합노조, 즉 승리연합이 소덱소(Sodexho)와 컴파스 그룹(the Compass Group USA)이라는 두 개의 초국적 식품기업과 비밀협정을 맺었다고 폭로하였다. 스턴은 메이허에게 “예전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보장하는 고용주들과 이전과는 다른 관계를 시도해 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새로운 방식에 따라 노동조합들은 노동자들의 등 뒤에서, 그리고 고용주의 허가와 협조 하에서 조직화되었다. 새로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된 노동자들에게조차 협정은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비밀스런 것이었다. 북미지역에서 수십만의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이 두 기업의 노동조합은 지정된 장소에서 정해진 수의 노동자들만을 조직하도록 제약을 받게 되었다. 기업측은 조합원 명부를 제공받는 대신 노동조합의 작업장 접근권을 허가하였다. 노동조합은 비조합원들의 조직화 시도를 할 수 없게 되었고, 세계 어디에서든 회사에 대한 비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비밀협정은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에 어떻게 노동자들을 조직화할 것인가에 대한 스턴의 구상의 지저분한 실체를 폭로하고, 그가 노동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열었다는 주장들을 반박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근거가 된다. 스턴은 자신의 조직화 전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노동자들에게는 노동조합이 없다. 그게 우리의 출발점이다.”
다시금 의문이 생겨난다.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물론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1930년대의 노동조합 조직화 시기라면, 누군가 노조가 없는 것보다는 기업별노조가 낫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노동조합운동을 방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조인 경우에는 허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기업별노조로 출발하는 노동자들이―실제로 종종 그러하듯이―노동조합을 변형시키고 민주적 노동조합의 대열에 결합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오늘날에도 똑같은 답변을 할 수 있다. 초기 노동조합 조직화 단계에서 의식적 현장노동자들이 사무실을 들락거리고, 자신들을 대변해주는 대의원을 선출하고, 단체교섭과 관련한 과정들에 결합하는 등 노동조합 활동에 열정적으로 임할 수 있게 된다면, 초기 노동조합은 새롭고 강력한 노동조합운동의 핵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한 이 교묘한 방식은 조합원들을 관리하고 배가하는 리더십으로 이어지는 의지이자 생활철학으로서 노동조합에 각인되어버릴 것이라는 점에서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러한 노동조합은 첫걸음부터 퇴행적인 잡종 노동조합이 되어버릴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너무 이른 형태 확립은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은 6월의 노동조합 총회에서 실체를 드러냈다. 근대화라는 미명하에 전미서비스노조는 전화선과 인터넷을 수백만 조합원들과 집행부 간의 핵심 연결고리로 만들어버렸다. 총회에서 채택된 사업계획은 조합원들로 하여금 “직무상의 문제들”을 피와 살을 지닌 현장 대의원들에게 상의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홈페이지 상의 “조합원상담센터”에 로그인하여 사람인지 기계인지 모를 목소리의 “전문적인” 답변을 듣도록 만들 것이다. 이 새로운 시스템은 일부 노동조합 간부들을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해야 하는 시간 드는 일들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이며, 이들이 조합원 명부를 늘리는 데 집중하도록 해 줄 것이다.
대의원들(특히 선출대의원)은 선거권자인 조합원들의 압박으로부터 매일매일 발로 뛰며 그들의 불만을 듣고 해결을 위해 노력할 동기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집행부에 의해 지정된 전화상의 목소리의 주인공들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불평불만 듣기를 최소화하고 싶어한다.
회선 반대쪽 끝에서 자동기계가 들어주는 “직무상의 문제들”과 현장에서의 불만들은 이제 작업장에서 사람에 의해 다루어지지 않는다. 이 새로운 시스템은 노동조합과 조합원들 간 관계의 역학을 통째로 변형시킬 것이다.
지난 6월 총회에 제출된 31쪽의 사업계획서에는 불만이라는 단어조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조합원들이 현장에서 “문제들”을 겪는다고 쓸 수는 있지만, 불만을 지닌다는 표현은 사용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언어가 규제대상이 되면서 불만은 작업장에서 사라졌다.
잡종 노조는 스턴의 전미서비스노조 “성장”의 핵심적 원리인 협조적 사용자들의 지원에 힘입어 생겨났다. 스턴은 조직이 성장하면 할수록 보다 많은 정치권력을 갖게 된다고 확신한다. 이 전략은 아직까지는 구상이자 약속에 불과하다. 전미서비스노조의 6월 총회에서 열성적인 간부들과 그 비판자들은 모두 노동조합이 조직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비판자들에 따르면, 2007년 국제보석서비스 지부7가 다른 지역지부들로부터 지원받은 금액은 250만 달러에 이른다. 이제는 모든 지역지부가 전체 예산의 20%를 초국적기업인 국제보석서비스 조직화에 쏟아붓는다. 이 정도 규모의 자원이 조직화에 실질적으로 투입되어 조합원 명부를 늘리는 데 묶여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용자의 축복을 받은 기업들에서 노동조합이 조직화되면 전체 노동조합 규모가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전망이다. 조직화된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거두어들여진 이들이 조합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는가? 이들을 한데 묶는 것은 기업에서 선발된 많은 보수를 받는 직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책상머리에 놓인 이 엉성한 조합원 명부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겠지만, 그 가벼운 무게는 노동조합의 독립성을 위협할 것이다.
반면, 스턴과 그의 추종자들은 사용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길들여진 노동조합으로는 사회정의를 이룰 수 없다고 선전하면서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 의미를 온전히 실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이 스턴의 고상한 목표를 추켜올릴 때, 그 이데올로기를 보증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피억압자들을 괴롭히는 악마를 처단하고 노동의 세계를 변혁하자는 목표를 누가 비난하겠는가. 스턴은 그러한 욕구를 각색해내고 최우선순위의 의제로 고양시킴으로써 신용을 얻었다. 그런데 그는 대체 어디에서 노동운동을 이끌고 있는가?
스턴은 전투적 노동조합 건설 방식이 뜻 있는 사용자들―물론 때때로 자극을 줄 필요가 있겠지만―과의 협력을 통한 방식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미서비스노조에 힘과 도덕성을 부여해 주는 중핵은 교묘하게 만들어진 잡종노조들이 아니라, 전통적 노동조합운동 지도자들이 전투적으로 싸워 인정받은 구식 노동조합들이다. 그들은 단체교섭 기간 중 파업을 하였고, 고통 받는 조합원들의 불만들을 처리하였다. 전미서비스노조 강화의 주축인 보건의료 1199 지역지부는 거친 싸움 끝에 자리를 잡았다(1199지부에 대한 탁월한 역사서술인 레온 핑크(Leon Fink)와 브라이언 그린버그(Brian Greenberg)의 <무풍지대의 대격변>(Upheaval in the Quiet Zone)을 참조할 것). 고층빌딩 서비스부문의 32B-J 지역지부는 구식 “전투적” 노동조합으로 결성되었다. 청소용역노동자를 위한 급진적 사회정의 운동(The militant Justice for Janitors movement) 역시 전미서비스노조의 강화에 한몫 했다.
스턴은 피착취 대중들의 조직화에 수백만 달러를 투입하겠다고 공약하였는데, 이에 따라 열정적인 노동운동가들, 급진주의자들, 민주적 사회주의자들, 시민사회운동 출신 활동가들이 그의 편에 합류하였다. 일부는 전미서비스노조의 활동가가 되었고, 또 다른 이들은 공적인 관계 측면에서 지원하기도 했다. 전미서비스노조 안팎에서 그들은 스턴이 제시한 목표에 너나 할 것 없이 열정적인 갈채를 보냈다. 이중 많은 사람들은―거의 대부분이겠지만―타고난 사회운동가들이다. 전미서비스노조는 코포라티즘의 파트너로서가 아니라, 급진적 노동운동가들의 활동을 통해 건설되었고 힘을 지니게 되었기에, 이들 사회운동가들은 때때로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이게 진정 우리가 원하는 노동운동인가?”
노동조합들의 대규모 투쟁을 통해 연방법령이 보장하는 이의제기의 권리를 쟁취한 이후 50년을 거치면서 노동조합 내부민주주의는 깊이 뿌리를 내렸다. 전미서비스노조의 안팎에서 벌써 강한 이의제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로셀리가 대표적인 사례고, 그밖에도 전국에 걸쳐 로셀리에 동의하는 기층대중들이 있다. 그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다.
전미서비스노조의 6월 총회 전날 스턴이 반대파인 로셀리의 지역지부 의결권을 위임하도록 강제하려 하자 수백 명의 친노조적 기자, 작가, 교육자들이 “깊은 우려를 표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이들은 “우리들 중 일부는 수년 간 전미서비스노조에 관여해 왔다. …… 서부보건의료노조의 의결권 위임을 강제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전미서비스노조 내에서 내부민주주의가 허용되지 않거나 무시된다는 징후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스턴은 강제위임의 의도를 부정하였지만, 전미서비스노조의 내부민주주의에 대한 많은 지식인들의 “우려”의 표명은 일반조합원들은 물론 일부 활동가들에게도 반향을 일으켰다.
전미서비스노조는 6월 총회에서 수십만 명의 서비스노동자들을 거느린 두 개의 초국적기업 소속 대의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이미 1만4,000여명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제 그들은 보다 나은 노동조건은 물론 경제정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네 개 대학에서 모인 친노조적 학생활동가들은 생각이 달랐다. 그들은 5월에 스턴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지난 수년 간 전미서비스노조와 학생 및 대학노동자들과의 관계 발전을 가로막는 모습들을 봐 왔다. …… 전미서비스노조의 지도자들은 대학노동자와 학생들을 장기말쯤으로 취급하면서 …… 조합원 수와 조합비를 늘리도록 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은 빈곤에 시달리도록 내버려두었고, 노동조합의 성장을 위한 우리의 노고를 폄훼하였다”고 말했다. 이 학생들은 대학에 파견되어 일하는 초국적기업 소속 서비스노동자들을 지원해 왔다. 그들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노동자들의 전미서비스노조 가입을 금지”하면서 “임금과 복지혜택이 열악한 노동자들은 몇 퍼센트에 불과”하다고 말했던 초국적기업 아라마크(Aramark)와의 “거래”를 비난하였다. 또한 기존 조합원들이 신설된 “조합원상담센터”를 통해 만족할 만한 정보를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같은 5월에 전미서비스노조 대표자 250여 명으로 구성된 교섭대리기구인 노동조합대표자회의(the Union of Union Representatives) 의장은 스턴에게 전미서비스노조가 맺은 협정과 관련하여 “(로셀리의) 서부보건의료노조와 관련한 일부 사업들은” 지역지부 간부들이 해당 지부와 관련한 국제적 사안들에 개입하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점에 있어 “규정위반”의 가능성이 있다고 썼다. 노동조합대표자회의는 구성원들이 “서부보건의료노조의 지도자들을 폄훼하는 일에 가담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결의안에 따라 의장인 말콤 해리스(Malcolm Harris)는 이 문제의 논의를 위해 노사협의를 요청하였다.
이 모든 것들은 스턴의 이데올로기적 관념과 조직적 실천들이 전미서비스노조 내부와 대학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심각하게 문제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들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노동조합의 앞날은 철학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논쟁이 아니라, 실질적인 당면과제와 관련하여 논의되어야 한다.
사실, 전미서비스노조는 수백만 달러와 수천 명의 활동가들을 투입하여 신규 조합원들을 조직하였다. 이 과정의 일부에는 대규모 자원과 긴박한 대응이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 누구도 수백만 노동자들의 조직화라는 스턴의 목표의 정당성을 문제삼지는 않는다. 노동조합 내에서 그러한 돈과 노력을 들이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또한 스턴은 비판자들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그가 제시한 원대한 목표와 성공에의 약속에 대한 기대에 고무된 지지자들로부터 꾸준한 지원을 받았다. 그는 지금까지도 다수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는 모든 구성원들의 지지를 받지는 못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전미서비스노조가 잃은 것은 더 크다.
전미서비스노조는 이상주의적이고, 부분적으로는 사회주의적이기까지 한 노동조합 활동가들로 구성된 강력한 집행부를 지니고 있다. 이런 노동조합이 그 핵심을 좀먹는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닳아빠지는 것을 막고 보다 확고해지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전미서비스노조에서 이러한 과정은 두 전선에서 대규모로, 그리고 갑작스럽게 분출되었다. 스턴이 광범위한 권력을 쥐어 준 핵심 지지세력들은 부정부패와 관련되어 수렁에 빠졌다. 동시에 스턴은 자신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이며, 자신의 방해가 될 만큼 자원과 영향력을 지닌 이들을 배제하는 등 조직자원을 대표자로서의 자신의 권력행사에 남용하였다.
스턴의 골칫거리는 세 명의 측근들이 조합비를 전용한 혐의로 고발당하면서 시작되었다. 스턴은 서해안 지역에서 몇몇 지역지부들을 조합원 16만명 규모의 장기요양노동자 6434 지역지부로 통합하였다. 신규 지역지부와 관련한 연방법령에 따라, 그는 지부장으로 타이런 프리먼(Tyrone Freeman)을 지명하였다. 스턴의 지명기간이 끝날 때까지 프리먼은 성가신 경쟁후보가 나타나지 못할 조건을 만들어가면서 단독출마를 확신했다. 8월에 이르자 <로스앤젤리스 타임즈>(Los Angeles Times) 기자인 폴 프링글(Paul Pringle)은 미국 노동부가 이 선거와 관련한 불만들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프리먼이 친인척들에게 조합비 수백만 달러를 공여했다는 프링글의 보도 이후, 하원의회 교육노동위원회 역시 조사에 나섰다. 프리먼은 사퇴했고 스턴은 권한을 지부에 위임하였다.
프리먼이 미시건 주의 5만5천여명 규모의 전미서비스노조 지역지부장으로 지명했던 릭먼 잭슨(Rickman Jackson)은 그의 6434 지역지부에서 최측근 인사였다. 그 역시 프리먼의 직무유기에 공모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지부장 피지명자 직위로부터 휴가를 떠났다.
스턴은 조합원 7만7,000여명 규모의 로스앤젤리스 카운티 공공노동자 721 지역지부의 지부장으로 안넬 그라예다(Annelle Grajeda)를 지명하였다. 스턴은 그녀가 살 로셀리를 대신해 전미서비스노조 캘리포니아 평의회 의장이 되도록 지원하였으며, 전미서비스노조 수석부위원장 자리 역시 확보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라예다는 스턴과 더불어 8명의 전미서비스노조 대표자 중 하나였다. 그녀는 연인에게 쓴 수천 달러의 금액이 부적절하게 승인되었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8월에 세 개 직위 모두로부터 휴가를 떠났다.
이 사건들은 스턴으로 하여금 전미서비스노조의 윤리강령을 재검토하도록 압박하였으며, 노동조합 간부들의 조합자산 전용을 금지하는 내용을 명시하도록 했다.
그러나 스턴과 로셀리 간의 문제는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이는 확연한 정치적 시각차와 관련이 있다. 로셀리는 스턴의 노사협조주의적 이론과 실천에 강한 논조로 공공연히 비판해 왔다. 권력도 없고 분산되어 있는 일반조합원 비판자들과 달리, 로셀리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로셀리는 15만여 명의 조합원에 수백 명의 상근활동가와 수백만 달러의 조합비를 보유한 지역지부의 대표다. 또한 서해안 지역 노동계에서 존경받는 명망가에다 정치적 영향력도 지니고 있다.
전미서비스노조의 6월 총회 직전, 스턴과 그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로셀리의 지부 의결권을 위임하도록 함으로써 그의 입을 막으려 했다는 소문을 잠재웠다. 학자와 저술가들에 의해 제기된 우려에 대해 전미서비스노조의 최상층 지도부 47명은 “노동조합 내에서 권한위임의 강제를 통해 민주적 토론을 가로막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당신들의 서한은 허수아비를 향한 것이다. 권한위임을 통해 보복을 가하려는 어떤 의도도 없었고, 그런 제안은 승인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답변했다.
총회 이후 약3개월 뒤 상황이 변했다. 집행부는 6만5,000명 규모인 로셀리의 지부 하나를 없애고 타이런 프리먼이 지부장으로 있는 6434 지역지부로 통합하려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프리먼이 부정부패 스캔들로 곤경에 처하자 주춤하게 되었다. 그러나 로셀리의 권한을 박탈하려는 움직임은 가속화되었다. 8월 25일 서부보건의료노조의 전 간부와 조합원들은 열 쪽 짜리 문서를 받았다. 9월 말에 의결권 위임에 관한 공청회가 열린다는 소식이었다. 동시에 스턴은 전권을 위임받지는 않았지만, 지역지부의 “모든 지출에 대해” 즉각적으로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회계감사”를 임명했다. 여기서 핵심은 권한위임인 것이 분명했다.
지역지부가 상급단체에 의결권을 위임하게 되면, 모든 자원통제권이 선출간부와 조합원들로부터 전미서비스노조 집행부로 넘어가게 된다. 권한위임 기간 동안 지역지부 간부와 조합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방어하는 데 드는 법적 비용을 비롯한 노동조합 활동비용으로 지역지부 예산을 이용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전미서비스노조 집행부는 권한수임을 통해 바로 그 권한위임 자체에 반대하는 대응을 무력화할 수 있게 되고, 조합원의 권리 주장 역시 무시할 수 있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서부보건의료노조의 의결권 위임 문제의 핵심이다.
총회 1년 전에 있었던 의결권 강제위임 심의에서 주요 사안은 한 지역지부 집행부가 100만 달러 규모의 지출 및 추후 지출계획을 승인했던 것이었다. 이 기금은 지역지부의 대중적 건강증진 사업과 관련하여 연방 소득세 환급법령인 501(c)(3)에 근거한 비영리 재단의 설립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었다. 그 기금은 지역지부 집행부의 관리하에 있었고, 상급단체의 정상적인 통제를 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스턴은 그 기금의 실질적인 용도는 지역지부 집행부의 권한위임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비난했다. 스턴이 해당 기금이 노동조합 규약규정을 위반하였다며 규제를 가한 이후, 사업은 철회되었고 기금은 지역지부 예산으로 재편성되었다. 나아가 심의위원회는 해당 지역지부가 100만 달러 지출을 둘러싼 논쟁을 신속히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3월에 지역지부는 불법적 권한위임에 대응하여 조합원과 간부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법무법인의 관리 하에 50만 달러의 별도 기금을 조성하였다. 이에 대해서도 심의위원회는 “노동조합 예산의 부적절한 사용”이라 맞섰다. 그밖에도 두 가지 반론이 있었지만 부차적이거나 논거가 취약한 것이었다. 요컨대 서부보건의료노조에 대한 공격의 주된 내용은 지역지부가 권한위임에 대항하기 위해 기금을 전용했다는 혐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수백만 조합원과 수많은 활동가들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스턴의 새로운 비적대적 노동조합주의는 거대자본의 구미에 맞는 것이 되었다. 그럼에도 이는 여전히 진행 중인 구상이고, 따라서 결과를 가늠해 보기까지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의 실행을 위해 스턴은 고도로 집중화된 권위를 요구했고, 비판자들에 대항하여 철권을 휘둘렀다. 노동조합의 진로에 이러한 체제가 미치는 영향은 그가 승리를 거둔 총회가 열리기 1년여 전부터 이미 명확히 드러났다. 부정부패가 드러나고 민주주의는 궁지에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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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쓴이인 허먼 벤슨은 미국의 노동조합민주주의연합(the Association for Union Democracy)의 설립자이자 지난 20년 간 부위원장을 지냈다. 이 글의 원문 및 이 글에 대한 허드슨(Gerry Hudson)과 드부루인(Tom Debruin)의 비판, 그리고 벤슨의 반비판은 홈페이지(http://www.dissentmagazine.org)에서 볼 수 있다. 이 글에서 벤슨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비롯한 미조직 부문의 조직화로 근래에 주목받고 있는 미국의 국제서비스노조(SEIU)에 대해 지지를 보내면서도 최근 그 활동방식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에 대해 건설적인 내부 비판을 제시하고 있다.―옮긴이텍스트로 돌아가기
  2. 여기서 ‘푸른 독수리’란 미국 기업들이 전미노사관계법(NIRA)을 준수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한 상징이었던 날개를 펼친 푸른 불사조 이미지를 일컫는 것으로서, 1933년 7월 산업복구의 상징으로서 처음 등장하였다.―옮긴이텍스트로 돌아가기
  3. 조합원 수가 200만여 명에 이르는 전미서비스노조는 “노동자와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존엄성과 가치를 신념으로 하고, 노동자와 그들 가족의 삶을 향상시키고 보다 정의롭고 인간적인 사회를 이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http://www.seiu.org 참조.―옮긴이텍스트로 돌아가기
  4. 지난 대선에서 오바마 후보 지지선언을 하기도 했던 승리연합은 7개 노조 600만여 명의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지구적 경제의 도전에 대응하고 아메리칸 드림을 회복하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아메리칸 드림 서베이”를 실시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http://www.changetowin.org 참조.―옮긴이텍스트로 돌아가기
  5. 섬유-요식업연합노조(UNITE HERE)는 섬유산업노조(UNITE)와 호텔요식업노조(HERE)가 2004년 7월 통합한 것으로, 45만여 명의 조합원과 40만 명 이상의 퇴직자들을 포괄하고 있다. http://www.unitehere.org 참조.―옮긴이텍스트로 돌아가기
  6. 전미서비스노조 산하 지부인 캘리포니아 간호사연합은 캘리포니아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가장 급속한 성장세를 보이는 보건의료노동조합으로 3만5,000여 명의 간호사(RNs, Registered nurses)와 공공보건간호사(PHNs, Public Health Nurse)들로 구성되어 있다. http://www.nurseallianceca.org 참조.―옮긴이텍스트로 돌아가기
  7. 국제보석서비스(International Treasury Service)는 보석거래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초국적 금융기업이다.―옮긴이텍스트로 돌아가기

최근의 비정규고용문제에 대하여 - 사토 신

최근의 비정규고용문제에 대하여

 


사토 신(佐藤眞) / 2009년 3월

 

佐藤眞. 2009, 近年の非正規雇用問題について, 岩手大学文化論叢 7/8号. pp.107-111.

 


학교에서 직업사회에로의 이동패턴이 크게 변화한 현재, 다양한 각도에서 ‘청년층 노동’이 논의되고 있어 캐리어교육, 프리터-니트론(論)의 융성이 붐을 이루는 느낌마저 준다. ‘일용직 파견’, ‘넷카페 난민(사실상의 홈리스)’ 등으로 상징되는 지극히 불안정한 노동과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는 수많은 젊은이들. 그 실태가 매스컴에서도 낱낱이 밝혀져 ‘해넘이 파견촌’의 보도가 세간을 환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실업, 빈곤을 둘러싼 상황은 청년층에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라, 모든 연령계층으로 확산되는 생활불안정, 심각화되는 워킹푸어 문제로서 그 실상이 명확해져 감과 더불어 무언가 정책대응을 제시할 만한 제운동 또한 곳곳에서 이제 막 형성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지금 ‘미증유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일본경제를 바탕으로, 불안정고용의 동태를 간략히 파악하기 위해 기초적인 사항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전후일본의 고용 및 실업의 동향

 

일본의 고용-실업정세는 2008년 9월의 미국발 ‘리먼 쇼크’를 발단으로 한 세계동시불황의 타격에 따라 급속히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고도경제성장기의 ‘이자나기 경기’(1966-1970년 간의 호경기―옮긴이)를 넘어섬으로써 ‘이자나미 경기’라 불린 전후최장의 경기확대국면은 신규졸업자에게 거대판매자시장의 출현을 알리는 듯 했으나, 상황은 곧 돌변하여 이제 ‘내정자 취소’가 문제가 되고 있다.
2008년 12월 완전실업률은 4.4%(전월 대비 0.5% 상승), 완전실업자는 270만명(전년 대비 39만명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비정규고용의 확대와 워킹푸어의 증대는 심각한 사회문제로서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후의 고용-실업과 관련한 장기시계열자료를 바탕으로 과거 50여년의 동향을 관찰해보면, 우선 노동력인구는 1998년을 정점으로 감소기조로 돌아서고 있긴 하나, 1953년 약4,000만명에서 약6,650만명으로 1.7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노동력인구비율은 70%에서 60%로 감소해 가고 있다.
다음으로 완전실업율의 추이를 보면, 고도성장기에는 1%였던 것이 1차 오일쇼크(1973년) 이후 2%로 상승하였다. 그러나 플라자 합의(1985년) 이후 ‘엔고불황’ 시기에도 일본의 완전실업률이 3%대로 돌입하는 일은 없었다. 이른바 ‘완전고용’의 달성, 선진자본주의의 모범적 존재, “1등 국가 일본(Japan as No.1)" 등의 수사와 더불어 ‘일본적 경영’을 배우고자 하는 각국의 조사단이 일본을 방문할 정도였다.
그러나 1990년의 ‘버블붕괴’와 그 이후 ‘잃어버린 10년’의 사이에 완전실업률은 급속히 악화되어 1995년에는 3%를, 나아가 2001년에는 영미권 국가보다 높은 수치(5.0%)를 넘어서 2002년에는 역대최악인 5.4%를 기록하였다. 완전실업률은 이후 서서히 3%대로 회복되었다가 최근에는 다시 4%대로 상승하고 정치적 혼란까지 더해진데다, 유효한 노동정책 또한 강구되지 못한 채 일본의 고용-실업정세는 긴박한 상황하에 놓이게 되었다.

 

2. 노동시장의 규제완화와 불안정고용의 확대

 

2008년 9월 ‘리먼 쇼크’ 직전에 간행된 『노동경제백서』(2008년판)에는 “경기회복을 착실히 해 나가도록 신중한 경제운영에 힘써가면서, 경제성장의 성과를 고용의 확대, 임금의 상승, 노동시간의 단축과 잘 균형잡히도록 하여 근로자생활의 충실화를 통한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실현해 간다”고, 나아가 “2007년에도 정규직원-종업원의 증가가 계속되었다. 또한 신규졸업자의 취직상황은 계속하여 개선되고 있고, 프리터의 숫자도 감소하였다”고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고용동향의 특징으로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들 수 있다. 무엇보다 정규고용의 비중저하와 비정규고용의 증대는 일관적이다. ‘노동자파견법’이 성립된 1985년 시점에 정규-비정규 종업원의 구성 비율은 약84:16(파견, 계약, 촉탁 등 3.9%)이었으나, 2007년에는 약66:34(파견, 계약, 촉탁 등 11.0%)로, 20년 동안 급격히 변화하여 비정규직이 전체의 3분의 1을 넘어섰다. 그중에서도 파견, 계약, 촉탁의 증가 추세가 뚜렷하다.
이상과 같은 비정규고용의 규모 및 비율의 증대를 결정하고 방향지은 것은 앞서 지적한 ‘노동자파견법’(1985년)과 일경련의 ‘신시대의 <일본적 경영>’(1995년)이라는 보고서였다.
이른바 ‘노동자파견법’(노동자파견사업의 적정한 운영 및 파견노동자의 취로조건 정비 등에 관한 법률)은 제정 이전에 직업안정법(1947년)에서 금지하였던 ‘노동자 공급사업’을 ‘전문적 지식 등을 필요로 하는 13개 업무’에 한해 적용하도록 하는 것으로 시작(시행 직후 3개 업무가 추가되어 총16개 업무에 적용)되었다. 그 후 노동자파견법은 일경련의 ‘신시대의 <일본적 경영>’(1995년)에 호응하여 1996년, 1999년, 2003년 개정(적용 대상 업무의 원칙상 자유화, 파견가능기간의 연장)이 더해지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규제의 대상이 되어 왔던 제조업에 대해서는 2004년부터 노동자파견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 자동차 및 전기를 시작으로 한 현재의 대량 ‘파견해고’로 직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마키노 토미오(牧野富夫)는 1990년대 후반부터 노동시장에 대해 일련의 규제완화가 목표로 한 것은 ‘노동 빅뱅’(2006년)이며, ‘노동 빅뱅’의 실질적인 개시는 일경련의 ‘신시대의 <일본적 경영>’이었다고 말한다(牧野富夫編著 『労働ビッグバン』2007年).
고용의 유동화-다양화를 명목으로, 일경련의 ‘신시대의 <일본적 경영>’가 본 노동력의 세 가지 유형에는 제1유형인 종합직-정규종업원 그룹 이외에 외부노동시장으로부터 수시로 조달하는 ‘파견’, ‘파트타임-아르바이트’의 비정규고용이 있다.
경제재정자문회의에서 제기된 ‘노동 빅뱅’은 이듬해 ‘일-생활 균형’이라는 표현으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마키노는 ‘표현은 바뀌었지만 노동 빅뱅의 내용과 정체는 변치 않았다’고 지적하며 그 결과로서 ‘일본적 경영’의 붕괴가 초래한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3. 파견노동자의 동향과 특징

 

2009년 들어 인재파견회사의 도산건수 증가가 보고되고 있다. 이제껏 급성장해온 파견사업소와 파견노동자의 규모 추이에 대해 검토해 보자.
파견사원의 규모와 추이에 대해서는 후생노동성의 ‘노동경제백서’에도 나와 있긴 하지만, 보다 분명한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노동자파견사업의 2007년도 사업보고 집계결과에 대하여’(후생노동성 직업안정국 수급조정사업과, 2008년 12월 26일 발표)라는 보고서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에 따르면, 2008년 파견노동자 수는 약381만명(전년 대비 18.7% 증가)이다. 여기서 말하는 파견노동자 수는 일반노동자파견사업1에 있어서의 상용고용노동자수(74만명) + 등록자수(280만명)과 특정노동자파견사업2에 있어서의 상용고용노동자수(27만명)를 합산한 것이다.
여전히 일반노동자파견사업에 있어서 ‘상용고용 이외의 노동자’가 약73만명(상용환산) 존재하며, 여기에 파견취업의 문제성을 상징하는 ‘일고파견’이 포함된다.
2008년부터 ‘일고파견’ 노동자수가 포착가능하게 되었다. ‘일고파견’을 실시하는 일반노동자파견사업소는 약9700개소(전체의 48.3%), ‘일고파견’ 노동자수는 43,222명이다.
또 2004년부터 도입된 제조업 파견을 보면, 일반노동자파견사업에는 5,235개 사업소(전년 대비 56.4% 증가), 특정노동자파견사업에는 3,273개 사업소(전년 대비 76.5% 증가)로 증가하였다. 그에 따라 파견노동자도 일반노동자파견사업에는 약41만명(전년 대비 96.0% 증가), 특정노동자파견사업에는 약57,000명(전년 대비 87.7% 증가)으로 급증하고 있다.
연간매상고는 총액 6조4,652억엔(전년 대비 19.3% 증가)으로 급격히 신장하고 있는 반면, 파견노동자의 임금(8시간 환산)은, 일반노동자파견사업에서는 평균 9,534엔(전년 대비 9.8% 감소), 특정노동자파견사업에서는 평균 12,997엔(전년 대비 8.2% 감소)로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2008년 10월에서 2009년 3월까지, 비정규노동자의 해고는 약125,000명에서 약40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그 가운데 압도적 다수는 제조업, 그것도 자동차산업, 전기산업의 파견노동자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계약서상의 해고조항에 따른 위법해고가 상당한 것으로 보도되어 사회적 비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비정규고용이 대량해고 됨에 따라 공업지역에서 일자리와 주거를 잃은 노동자가 각 지방으로 흘러들어가 실업과 빈곤의 전국적인 확산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지자체의 독자적인 긴급고용대책이 어떠한 형태를 취해야 하는가에 관해서는 당사자의 의사가 반영될 것인가 또한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끝으로 공적취로사업의 현대적 재생의 전망을 주민참여를 바탕으로 개혁을 시도해 보아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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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반노동자파견사업은 특정노동자파견사업 이외의 노동자파견사업(주로 등록형 노동자를 파견하는 사업)이며, 허가제로 운영된다.텍스트로 돌아가기
  2. 특정노동자파견사업은 그 사업의 파견노동자가 상용고용노동자에만 해당하는 노동자파견사업이며, 계출제(신고제―옮긴이)로 운영된다.텍스트로 돌아가기

화산을 무너뜨린 눈물과 회한은 여전히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Joris Ivens. 1939. The 400 Millions

 

 

 

주덕(朱德, 1886-1976)

 

중국 혁명기 홍군 제4군의 총사령관이자

중국 인민해방군 총사령관을 맡았던 인물.

 

인민해방군 80주년을 맞아 중국이 떠들석한 모양이다.

 

그러나

 

제국주의와 봉건세력에 맞서 혁명의 길을,

그것도 9600Km에 달하는 대장정의 길을 걸었던 그에게

세계의 굴뚝이자 시한폭탄이 되어버린 중국의 현재는

그를 더 비극 속의 아름다운 인물로 만들어 가는 듯하다.

 

그의 눈빛을 잃어버린 중국공산당이 벌이는 잔치를 보며

그가 읊조렸던 고시(古詩)를 떠올려 본다

 

 

눈물은 흘러넘쳐 황하를 이루고

회한은 쌓이고 쌓여 세 개의 산봉우리를 이루니

화산(華山)도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무너지고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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