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토의 상상, 개토가 쓴 글, 그리고 찍은 그림들.'에 해당되는 글 262건

  1. 짧은 사랑 2002/03/22
  2. 황사 2002/03/22
  3. 피도 눈물도 없이 2002/03/07
  4. 유혈극 [혈녀] 2002/02/12
  5. 잭 다니엘 2002/02/12
  6. 라이언 일병 구하기 2002/02/12
  7. 바즈 루어만을 위하여 2002/02/12
  8. 아멜리에, 우울한 동화 2001/10/13
  9. 유리벽 너머 2001/10/01
  10. 기억해두자. 2001/08/14

짧은 사랑

from 2002/03/22 14:03
얇은 이불에
몸을 감고
커튼도 없는 창문으로
햇볕을 등지고

침대에 누워 있으면
화장실의 작은
창문으로
어린 남자아이가 들어와
내 벗은 등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보이지 않지만 알 수 있어
가로 줄무늬의 반팔 티셔츠와
베이지색 반바지를 입은
머리가 반짝거리는
무지개처럼 일렁이는
어린 남자아이

창문 밖으로
자동차의 앞문이 닫히는 소리
계단을 뛰어올라오는 발소리
달그락
문이 열리는 소리

내 짧은 사랑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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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22 14:03 2002/03/22 14:03

황사

from 2002/03/22 13:38
바깥에선
바람소리가 들린다
어찌들으면
서럽게 우는 것도 같아

창문으로는
뿌연
햇빛도 들어오는데

어제밤에는
거리가
온통
사막같은 황토색

아니
어쩌면
그렇게 많은 모래가
공중에
멈춘듯
가득할 수 있을까

먼 중국에서
거대한 바람과 함께
그 모래들은
긴 여행을
떠나온 것일까

그리고
낯선
공중에
멈추었던 것일까

황토빛의 어둠속
아스팔트에
아주 가볍게
뿌리박은

작은 아이는

그가 태어난
46억년 전의 우주를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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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22 13:38 2002/03/22 13:38
돈도 시간도 없이 살고 있지만,
그의 영화만큼은 꼭 보고 싶었다.

[아름다운 폭력의 진실성]

피와 눈물로 범벅이 된 이 영화의 제목은 [피도 눈물도 없이].

일찌기 저 타란티노가 [저수지의 개들]에서 모든 마초들을 헤모글로빈 저수지에 익사시키고
단 한 놈의 마초만 놓아주었더랬는데...

여기 그가 돌아와 다른 마초를 모두 죽이고 자신도 익사하다.

마돈나와 여급의 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첫번째 씬을 제외하고
[저수지의 개들]이라는 영화에 여자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지할 때,
[피도 눈물도 없이]의 주인공이 두 여자라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저수지의 개들은 마돈나와 여급에 대해서 100% 무지하다.
그들의 대화에서 여성에 대한 이해는 병아리 눈물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타란티노는 이 씬에서 왜, 저수지의 개들에게 마돈나와 여급을 이야기하게 했을까?
생존을 위한 폭력에서 쾌락을 위한 것으로 진화한 폭력까지 남김없이 보여주면서
경제적 의리로 뭉친 남성 사회가 정의의 배신으로 붕괴하는 과정을 표현한 저수지의 개들.

여성에 대한 이해 없는 남성 사회의 붕괴를 예언하신 타란티노 님의 뒤를 이어
류승완은 쾌락을 위한 것으로 진화한 줄 알았던 폭력이 다시 생존을 위한 폭력으로 퇴화된
우리 사회를 보여주면서 모든 마초를 스스로 죽게 하시고
아무 생각없는 우리 청소년(과연 그들도 마초가 될 것인가)과 멋진 여자들에게 세계를 넘기시다.

누구도 자본의 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돈가방은 내것이 되지 않는다.
문화를 이야기하고 삶의 여유를 이야기하면서
이제는 폭력을 휘두르는 이유가 쾌락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결국 돈가방이었던 거야.

"기라면 기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했는데, 왜 사람을 죽이려고 해요?"
구조조정에 정리해고된 '독불'은 자본에게 외친다.

더러운 꼴 다보고도 빈대처럼 남자한테 붙어살던 여성도
남자처럼 살아보려고 있는 폼 없는 폼 다잡던 여성도
사실은 남자따위 필요없어.
내가 불쌍해서 살아줬지 필요해서 살아준줄 알아?

"수진아, 내가 그렇게 싫니?"
'독불'은 그를 버리고 자신의 길을 찾아나선 여성들에게 묻는다.

마지막으로 성질급한 그의 뒷세대가 뭐 대단할 것도 없는 기술로 그를 치어 죽인다.

영화속의 폭력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잔인하고 너무 폭력적인" 그 영화는 그 보다 더 잔인하고 폭력적인 세상을
인간의 시선으로 똑바로 쳐다본다.
"이봐, 잔인하다고? 니네가 더 무서워."

마지막으로 감독을 칭찬해주고 싶은 한 가지는,
그가 이 영화에서 여성을 전혀 성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카메라의 시선은 아름다운 여성만들기, 섹시한 여성 만들기보다
그녀만의 성격, 그녀만의 표정을 보여주는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렇게 내맘대로 해석해도 되냐고? 내 맘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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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07 12:29 2002/03/07 12:29

유혈극 [혈녀]

from 2002/02/12 21:01
#1
어두운 거리. 둥글고 커다란 귀걸이가 유난히 눈에 띄는
혈녀의 그림자가 노란 가로등불을 마주한 채로 걷고 있다.
혈녀의 발자국 소리.
화면 왼편에서 나타나는 다른 그림자와 무거운 발자국 소리.
혈녀의 그림자가 빨라지고 발자국 소리도 빨라진다.
다른 그림자가 혈녀의 그림자를 덮치는 순간,

혈녀 : "꺄악~!"

동시에 양쪽 귀걸이를 뽑아 날아올라 상대를 3동강 낸다. 모두 그림자로 처리.
화면을 돌려 불빛을 받은 혈녀의 얼굴을 클로즈 업.
귀걸이에 붙은 살점을 불어 떼어 내고 귀걸이를 다시 한 후 다시 걷는다.
화면 오른쪽으로 사라지는 혈녀의 그림자.

#2
지하철(좌석은 꽉 차있고 한 칸에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서있다.)
혈녀, 다리를 벌리고 앉은 아저씨를 본 다음 좌석 전체를 흩어본다.
7명이 앉을 수 있는 그 좌석에는 6명이 앉아있다.

혈녀 : 아저씨 700원 내고 탔어요?
아저씨 : 아니, 카드로 550원 내고 탔지.
혈녀 : 아자!

동시에 구두를 벗어 굽으로 아저씨의 머리를 내리 찍고 다리를 붙여 앉힌 다음
굽에 붙은 피를 털어 내고 다시 신는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혈녀 내린다.

#3
집에서 편하게 벗고 누운 혈녀. 코를 파고 사타구니를 긁으면서 드라마를 보다 눈물을 글썽인다.
반바지와 티셔츠를 주워 입고 문을 나서는 혈녀.

가게 안.

혈녀 : 아줌마 맥주 주세요.

맥주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던 혈녀, 버스정류장에서 멈칫하다가
바로 온 좌석버스에 올라탄다.
좌석에 앉아 라이터로 병을 따고 맥주를 마시는 혈녀.
갑자기 혈녀의 눈이 커진다. 클로즈 업.
시선을 따라 카메라 내려가면 옆자리의 남자가 혈녀의 반바지 안쪽으로 손을 넣고 있다.
병깨지는 소리.
혈녀는 맥주병을 좌석 팔걸이에 대고 깬 후
남자의 배를 찌른다.
옆자리로 옮기는 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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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12 21:01 2002/02/12 21:01

잭 다니엘

from 2002/02/12 19:41
지하철이 다니기 시작한다고 생각되었을 때
잭은
티코스노바에서
나와
바랜
포스터같은
하늘을
배경으로 걷는다

티코스노바에는
그의
오래된
가방이 남겨져 있다

가방은
너무나
피곤하여

그가 일어섰을 때
문득 깨어났지만
따라나설
힘이라곤
죽어가는 개미만큼도
남아있지 않았다

가방은
위태롭게
둥근 의자의 한 귀퉁이에 놓여져서
잭을 생각한다

잭이 없는 티코스노바의
어둠속에서
그의 존재는
죽은 짐승의 그림자처럼
늘어져있다

Tycho's Nova 라는
노란
네온사인이
그림자같은
가방의
그림자를
아주 희미하게
늘어뜨리고 있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었을 때
흠칫 놀랐지만
어깨줄을
움찔거리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고 가방은 생각한다

잭은
바랜
공기를
마시면서
걷는다

담배
연기가
공중에서
유일하게
젖어 있다.

다니엘은
텅 비어서

회색 땅에
아무렇게나
꽂힌
나무가지들 틈에
비스듬하게
쓰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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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12 19:41 2002/02/12 19:41
오래전에,
내가 참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친구가
장교로 입대해서는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열심히 지키는 덕분에
현경씨가 발뻗고 잘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좋아요...]

[...]

늘 진지한 그에게,
내가 무어라고 대답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너무나 실망했던 것만은 마음에 남아있다.
내가 이 사람이랑 어떻게 친했을까?

스티븐 스필버그 따위
관심도 없지만
TV에서 공짜로 해주길래 함 보다가
엄청 화가나 버렸다.

미친 전투씬을 보여주고 나더니
그게 다 우릴 살리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삼대를 모아
보무도 당당하게
묘지에 도착한 라이언은
이렇게 단란한 가족을 이루었으니
훌륭한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니냐고
우리에게 묻는다

잊을 수 없을 만큼 현실적이고 참혹한 전투 장면을
[어쩔 수 없는 전쟁]을 합리화하는데 사용하다니
비이성적인 상황에서 일어나는 모든 비이성적 상황을
합리화하는데 사용하다니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이 영화는 또다른 전쟁을 부추긴다

[너희들은 전쟁을 잊고 있다
너희들은 너희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 전쟁을 잊고 있어서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
전쟁이라도 다시 일어나든가 해야지
삶의 의미라는 것을 도대체 알기나 하냐는 말이다]

아깝다
스텝들이 먹은 밥
전투씬에 사용된 돈
필름이랑 카메라랑 극장의 좌석까지...

천박한 그의 명성,
덕분에 나는 좋아하는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들 중에서
[A.I]를
구경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영화의 전투씬은
MTV 보다 더 선정적이다
리얼리즘을 가장한 선정성으로 관객을 끌어
미친 세계관을 유포하는, 기만적인 장사꾼.
(상인들을 모욕하려는 뜻은 없다)
그 기만적인 모습이,
전쟁을 참상을 그리는 척 하면서 전쟁으로 돈을 벌고
예술인 척 하면서 장사하는,
가슴아픈 척 하면서 즐거운 그 모습이

재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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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12 18:44 2002/02/12 18:44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
두 편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의 영화의 색감과 화려함,
고전적인 사랑과 죽음에의 동경,
그가 사랑하는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그가 할리우드적이라고?
그게 뭔데?

그의 주인공들이 원하는 것은 [사랑] 뿐이다.
지지부진 바쁜 와중에 서로 '사랑'이라고 부르는 그 무언가를
가식적으로 지켜내고는 자기안위를 위해
가족입네 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붉게 미쳐서 화려한 태양의 빛으로 눈 멀어 버리는
하얀 조명을 푸르게 얼려버리고
노랗게 타오르는 보석을 검은 색으로 시들게 하는
그보다 더 검은 피를 토하지 않고는 증명할 수 없는,
페스트처럼 보라빛으로 변한 얼굴에서
끝없이 깊은 심연으로 만나는 눈동자에서
존재하지 않는 그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

그들은 사랑을 위해서 [죽는다].
구차하게 가족이나 국가, 혹은 권태...그런 것들로 자신을 변명할 틈은 없다.

혁명처럼 그들은 화려한 피를 뿌리며
그 무엇도 아닌 그저 [죽음]을 위해 죽는다.
죽지않고는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음악과 색과 언어로
완벽한 사랑을, 죽음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그를 어떻게 비웃을 수 있지?

다른 사람의 진지함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 것
사람들은 늘 그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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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12 18:27 2002/02/12 18:27
나는 현실을 우울한 동화처럼 바라보기를 즐긴다.
교조주의적 참고서인 정치적으로 올바른 운운 하는 그런 동화말고 진짜 동화말이다.
모든 동화는 우울하다.
소외된 사람들이 우울하게 살아간다.
가난으로 아이들을 버리고 늙은 할머니가 혼자 살아야 하며
여자는 얼굴이 예뻐야 하는 그 세계는 당시 현실의 반영이다.
바보도 착하기만 하지 않아서 물건을 훔쳐야 하고,
외로운 거인은 머리가 나쁘고...인어는 말을 하지 못한다.

파우스트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바꾸어 보라지.

아멜리에를 보았다.
동화속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행복하게 오래오래, 내 맘속에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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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13 17:32 2001/10/13 17:32

유리벽 너머

from 2001/10/01 15:10
그들이 근처에서 우리를 찾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물의 흐름이 약간 달라졌고, 온도도 조금 내려갔다.
다시 어디로 움직일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며칠 전부터 모두들 말이 없다.
말을 해봤자 공포감만 늘어날 뿐이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게 된 것이다.
그 대신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자신의 의지와 욕망을 완전히 남에게 맡긴 사람의 처절한 기대감이 가득하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 밖에 없다.
운 좋게 표면까지 올라간다고 해도, 발 아래를 볼 수 없는 상태로 이동한다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다.
바닥까지 내려간다고 해도, 단지 좀 더 시간을 끌 수 있을 뿐이지만, 어쩌면, 건물밖으로 통하는 통로를 발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닐 가능성이 더 높지만, 그런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답이 없다.

내려간다. 바닥 쪽의 철망을 뜯고 아래 층으로, 우리는 일주일 동안 그 아래 층을 구경만 해왔었다.
기시감. 사실 이런 상황은 진정한 기시감이 아닐 것이다.
한 층을 내려올 때마다 기시감과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이 건물에는 바깥을 볼 수 있는 창문이 없다.
물론 바깥에서도 우리를 볼 수 없으니, 도망치기에는 비교적 좋은 조건이다.
그러나 어디까지?
창문도 없지만, 문도 없다. 들어올 수도 없지만, 나갈 수도 없다.
맨 아래층에, 문이 없다면, 우리는 더이상 도망칠 수 없게 된다.
25. 새로 내려간 층에 칼끝으로 숫자를 새긴다...

그렇게 한 층 한 층 내려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
더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그 층에는, 유리벽이 있었다.
유리벽의 바깥에는 흙과 나무와 꽃과 새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다.

23호는 유리와 바닥의 모래를 할퀴다가 손톱이 모두 빠져 버렸다.
그의 피가 물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듯 하다가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우리는 유리벽에 뺨을 대고 웅크린 채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
멀리에서 둔탁한 움직임이 몸안으로 다가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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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01 15:10 2001/10/01 15:10

기억해두자.

from 책에 대해 2001/08/14 14:46
나는 고등학교 때 책을 가장 많이 읽었다.
그 책들 가운데, 몇 권은 내가 갖고 있지만, 대부분은 어딘가 다른 곳에 있다.
대학을 들어간 뒤로는, 일정한 거처 없이 지내는 일이 많아서, 이리저리 옮겨다니다 보면,
아끼는 책이었는데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곤 했다.
때때로 그 책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찌릿찌릿하다.
다시 읽고 싶은 마음에 너무 괴로울 때도 있다.
책이 절판되어서, 더 이상 출판되고 있지 않은 경우라던가,
출판이 되고 있어도, 왠지 미심쩍은 출판사에서 나오고 있을 경우에는
다시 사서 볼 수도 없으니, 더더욱 괴롭다.

어쨌든, 그런 와중에, 늘 생각나는 책들이 몇 권 있다.
무언가 잊을 수 없는 것을 가진 책들.
고등학교 이후에, 다시 보지 못했지만, 꼭 다시 보려고 마음먹고 있는 책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글 쓰기에 진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들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 - 진정한 유미주의란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 준 놀라운 작품이었다. 살로메가 이오카난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부분에서, 나는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짧은 희곡이어서, 수 백 번도 더 반복해서 읽었고, 문장으로는 기억할 수 없지만, 완성된 연극처럼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다. 거대한 흑진주나, 다이아몬드처럼, 그 자체로 완결된, 나무나 꽃과 같은 자연물들처럼, 다른 그 무엇을 상상해 볼 수 없는, 그런 작품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 가운데, [살로메]와 [장미와 나이팅게일]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알랭 로브그리예의 소설, [질투] - 이 책은 어린 나에게, 꽤나 충격이었다. 새로운 글 쓰기 방식이라는 것이 이런 식으로 존재하는 것이구나...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세밀한 묘사를 통해 화자의 심리가 나에게 전이되는 것을 느끼면서, '질투'라는 감정을 처음 느껴보기도 했다. 두 손가락 사이의 10cm 거리에 대해서, 혹은, 내 삶의 어떤 상황에 대해서 로브그리예 식으로 바라보는 버릇을 갖게 되기도 하였다. 상황을 마치, 사진을 찍어놓은 것처럼, 머리 속에서 멈추어 둔 채로 관찰하여 그 안에 든 미묘한 분위기를 읽어보려고 하는 것이다.

프랑소와즈 사강의 단편들 - 사실, 내가 무엇을 읽었었는지, 제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고,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이것이야말로 교과서이다...하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아아~ 갑자기,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너무나 다시 읽고 싶어진다. 하지만, 손바닥만한 세로쓰기 방식의 누런 책이 아닌, 깨끗하게 제본되어 큰 글씨로 쓰여진 사강의 책이란, 매력이 반감, 반감 되어버리는 것이다.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 성장 소설은, 성장기에 읽어야 가장 맛이 난다. [호밀밭의 파수꾼] 같은 책은, 그래서, 요새 다시 읽어보면 예전 같은 저릿함을 느낄 수가 없다. 나만 그런가? 어쨌든, [자기 앞의 생]은 성장 소설이 아니다. [살로메]와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다른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 주제라는 것이, 흔하디 흔한 사랑과 죽음인데, 아름답게 사랑하고 아름답게 죽는 것에 대해 거리낌 없이 써나간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내 삶을 지켜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예 출판사에서 다시 장정하여 출판하고 있던데, 나는 내가 가진 2500원짜리 책이 더 맘에 들어.

비평을 하려고 했던 것은 절대 아니고, 나는 소설의 비평을 절대로 읽지 않는 만큼, 쓰는 것도 정말 싫어한다. 그저, 기억해두고 싶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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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4 14:46 2001/08/14 1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