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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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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광주민중항쟁 30주년이 되었다. 강산이 세 번은 변한 셈인데, 우리 삶은 과연 얼마나 바뀌었을까.

아직도 내 머리 속에는 땅끝 해남까지 내려와 투쟁을 호소했던 시민군의 목소리가 선하고, 트럭에 탄 그들을 향해 빵과 음식을 건네주며 환호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한데, 당시의 모습을 기억하도록 하는 것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계엄군이 도청에서 물러나면서 퍼부었던 총탄이 박혀있던 광주의 옛 집도 지금은 헐려서 아파트촌으로 바뀌었고, 저항과 코뮨의 정신은 점점 박제화되고 형식화되고 있다.

 

오늘 있었던 5.18 30주년 기념식에 대통령이 직접 오지도 않고, 기념식장에서 민중의 영원한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연주하지 않는 대신 엉뚱하게 경기도민요인 '방아타령'을 연주하기로 한 것도 이렇게 흐물흐물해져 가는 오월광주의 정신을 일깨우려는 이명박 정권의 노림수는 아닌가 하여 오히려 반갑게 느껴진다. 망월동 구묘역에서 독자적인 기념식을 가져본 적이 얼마만인가. 나에게는 5월광주의 영령들뿐만 아니라 5.18 이후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가 산화한 열사들이 계속 묻혀 있는 구묘역이 훨씬 친숙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연주를 가지고 논란이 되고 있지만, 사실 5.18 하면 떠오르는 노래이자, 광주민중항쟁의 양상을 가장 잘 형상화한 노래가 오월의 노래이다. 광주하면 떠오르는 노래는 여러가지가 있고(이은진님이 레디앙에 쓴 아직 끝나지 않은 5월의 노래: [노래이야기⑧]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정태춘 <5.18>는 이들 노래에 대해 잘 설명해놓고 있다), 오월의 노래라고 언급된 곡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아래 노래인 것이다. 80년대 중반에서 불리워지기 시작하여 내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 후반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가장 자주 불리던 노래였다.

 

오월의 노래
 
1.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가슴에 붉은 피 솟네
 
2.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디갔지
망월동에 부릎뜬 눈 수천의 핏발 서려있네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가슴에 붉은 피 솟네
 
3. 산 자들아 동지들아 모여서 함께 나가자
욕된 역사 투쟁없이 어떻게 헤쳐 나가리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가슴에 붉은 피 솟네
 
4. 대머리야 쪽바리야 양키놈 솟은 콧대야
물러가라 우리역사 우리가 보듬고 나간다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가슴에 붉은 피 솟네 붉은 피피피

 

나는 이 노래의 작사작곡자가 상당히 궁금했다. 90년대 중반까지도 그냥 당국의 탄압 때문에 작사작곡가가 알려지지 않은 구전가요인가보다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노래는 샹송을 번안한 것으로, 루시엥 모리스(Lucien Morrisse)를 추모하여 미셀 뽈나레프(Michel Polareff)가 1971년 작사·작곡한 <누가 할머니를 죽였는가?>(Qui A Tue GrandMaman)였다. 가사는 아래와 같다.
  

누가 할머니를 죽였는가?
 
할머니가 살던 시절 정원엔 꽃이 만발했어요
이제 그 시절은 지나갔고 상념만 남아있어요
그리고 두 손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요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요? 시간인가요?
아니면 더 이상 여유로운 시간조차 보낼 수 없는 사람들인가요? 라라라라라
 
할머니가 살던 시절에는 고요함이 있었어요
나무가지들과, 가지에 매달린 잎새들과
새들의 노래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요함이 있었어요
불도저가 할머니를 죽였어요 굴착기는 꽃밭을 갈아엎었어요
이제 새들이 노래할 곳은 공사장뿐이네요
그 때문에 사람들이 할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는 건가요? 라라라라라
 
Qui A Tue Grand Maman
 
Il y avait, du temps de grand-maman,
Des fleurs qui poussaient dans son jardin.
Le temps a passé. Seules restent les pensées
Et dans tes mains ne reste plus rien.
 
Qui a tué grand maman ?
Est-ce le temps ou les hommes
Qui n'ont plus le temps de passer le temps ?
La la la...

Il y avait, du temps de grand-maman,
Du silence à écouter,
Des branches sur des arbres, des feuilles sur des arbres,
Des oiseaux sur les feuilles et qui chantaient.

Qui a tué grand maman ?
Est-ce le temps ou les hommes
Qui n'ont plus le temps de passer le temps ?
La la la...

Le bulldozer a tué grand-maman
Et changé ses fleurs en marteaux-piqueurs.
Les oiseaux, pour chanter, ne trouvent que des chantiers.
Est-ce pour cela que l'on vous pleure ?

Qui a tué grand maman ?
Est-ce le temps ou les hommes
Qui n'ont plus le temps de passer le temps ?
La la la...


그 옛날 할머니가 그처럼 소중하게 가꾸었던 아름다운 정원이 개발되면서, 나무와 꽃과 새들이 사라졌고, 그 정원 속에서 찾을 수 있었던 여유와 상념의 시간 또한 사라졌기 때문에 상심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내용이다. 이 노래는 발표된 해에 미국에서 [When the love fall](사랑이 떠나갈 때)이라는 제목으로 번안되어 불려졌고,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해에 포크가수였던 박인희가 [사랑의 추억]이란 제목으로 발표했으나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유요비의 [인권과 평화를 노래하라 -10]광주민중항쟁의 노래 [오월가]와 미셀 폴나레프의 [Qui A Tue Grand'Maman] 중에서) 

몇 년 전 피아니스트 이루마의 두번째 앨범 [First]에 [When the love falls]이란 제목으로 이 노래가 수록되었다. 예전에 내가 인터넷방송을 할 때 한 동안 이 노래를 자주 틀곤 했다. 이 노래는 KBS드라마 ‘겨울연가’에 삽입되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미셀 폴나레프의 [Qui A Tue Grand'Maman]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겨울연가’에 삽입된 이루마의 [When the love falls]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루마의 노래조차도 모르는 이들이 많겠지만,  2004년도만 하더라도 티브이 드라마의 절대적인 영향력 때문에 화제가 되었던 것이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Raining 버전을 듣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Yiruma - When the love falls

 

사실 그보다 더 감명깊은 노래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 제2집 음반에 실린 <오월의 노래>이다. 이 노래는 2004년 5.18을 기념하여 방영된 KBS의 인물현대사 '영원한 오월광대 박효선'에서 맨처음 배경음악으로 깔리기도 했는데, 추념의 의미에서 본다면 이 노래도 추천할 만하다.
 


1. 봄볕 내리는 날 뜨거운 바람 부는 날
붉은 꽃잎 져 흩어지고 꽃 향기 머무는 날
묘비없는 죽음에 커다란 이름 드리오
여기 죽지 않은 목숨에 이 노래 드리오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2. 이렇듯 봄이 가고 꽃 피고 지도록
멀리 오월의 하늘 끝에 꽃바람 다하도록
해 기우는 분숫가에 스몄던 넋이 살아
앙천의 눈매 되뜨는 이 짙은 오월이여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2004년 네이버블로그에 이 글을 쓰면서(2004/05/19 21:48)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

 

광주 오월은 단지 광주를 광주로만 한정시키고 자신이 필요할 때에만 이를 이용하는 보수정치꾼의 손에 있어서는 안된다. 자신이 죽을 줄 알면서도 바로 역사를 위해서 5월 27일 도청을 지켰던 그 오월 열사들의 뜻, 시민들의 자치와 힘으로 유지되었던 오월 공동체의 저력은 바로 지금 세상을 바꿀 우리의 힘으로 살아나야 한다.
 
박효선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오월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부담이나 짐이 아니라, 우리들이 살아가는 에너지이고 우리들이 후세 사람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소중한 우리들의 자산입니다." 오월은 지금 내 가슴 속에 있다. 

  

6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말이 여전히 의미있게 다가오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예전에 민중의 소리에 실렸던 이영미님의 '오월의 노래' 소개글을 추가한다.

 

이영미 선생님의 '오월의 노래' 소개  
80년 봄 이후 대학노래패, 취향과 의무사이에서 고뇌하다
([노래여 나오너라 26] 이영미 선생님의 민중가요 이야기, 2006년08월29일, 민중의 소리)
   

'오월의 노래'는 “문승현이 변했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노래입니다. 문승현씨의 초기곡이 거의 대부분 장조의 곡입니다. 그런데 '오월의 노래'는 단족의 곡이죠. 5월을 겪고 나서 이 힘든 분위기를 장조로는 도저히 지을 수 없었던 거죠. 그 시대의 분위기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꼭 단조의 유장한 서정가요를 지어야지 라는 생각을 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기도 모르게 단조가 나오는 거죠. 광주 5월을 생각하면 말입니다. 가사 역시 딱 광주 5월을 말해주죠. '해 저무는 분수가에' 라는 것은 곧 금남로에 있는 분수가를 말하고 있구요. 
   
이렇게 드디어 문승현이라는 창작자가 민중가요다운, 사회의식을 굉장히 강하게 가진 노래들을 짓기 시작한다는 걸 말해주는 곡입니다. 어떻게 보면 ‘메아리’ 의 창작적 역량을 집결하고 있는 수장의 역할을 했던 사람이 말입니다. 이런 변화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노래모임 ‘새벽’ 같은 팀을 졸업 후에 만들 수 있었던 겁니다. 문승현과 ‘메아리’가 변화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주 대표적인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른바 문승현 식의 색깔은 남아있죠. 노래가 너무나 예뻐요. 문승현씨가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많이 배웠는데요. 특히 쇼팽을 좋아했다고 해요. 쇼팽의 곡들은 아주 서정적인 선율들이 많잖아요. 베토벤의 곡은 묵직한 느낌의 고민스럼움들이 들어있는데 쇼팽의 곡처럼 아주 낭만적이고 예쁜 선율들을 좋아하는 흔적이 있죠. 특히 ‘오월의 노래’ 마지막 구절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이 부분은 특히 아주 화려하고 클라이맥스로 넘어가는 듯 한 구절이죠. 화려한 문승현적 특성이 남아있긴 하지만 드디어 문승현이 변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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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8 14:01 2010/05/18 14:01

4 Comments (+add yours?)

  1. laron 2010/05/18 14:29

    곡의 초반이 적기가 - 소나무 - 탄넨바움Der Tannenbaum과 유사하네요.

     Reply  Address

  2. 비밀방문자 2010/05/19 22:49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Reply  Address

    • 새벽길 2010/05/20 00:58

      오월의 노래1은 사실 운동권들 중 일부만이 아는 곡이죠. 오월의 노래는 광주출전가와 함께 광주에서 심심하면 불렸던 노래고요. 그래도 저도 고등학교를 광주에서 나왔지만, 체육대회 때 응원가로까지 부르지는 않았는데요. ㅡ.ㅡ;; 또 상무대에서 방위 받을 때 고참이 노래 한번 불러보라고 해서 '내 나라 내 겨레'를 불렀더니 운동가요 부른다고 욕먹고 얼차려 받았던 기억이... 그 노래가사 중에 '피맺힌 투쟁의 흐름 속에~' 나온다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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