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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말하다 | 가라타니 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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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그대, 왜 침묵하는가? “데모크라시의 길은 직접민주주의 뿐” (경향, 김재중 기자, 2010-03-19-17:13:37)
ㆍ‘중간세력’이 무너진 모래시계형 전제화사회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비평가이자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69)이 국내에 본격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였다. 근대문학이 정치·사회·윤리적 역할을 떠맡았지만 이제 근대문학의 그런 역할은 끝났다는 주장을 담은 그의 저서 <근대문학의 종언>은 2000년대 한국 문학계에 큰 논쟁거리를 제공했다.
 
여기저기 그를 인용한 글들이 자주 보이기에 그가 쓴 책을 처음 집어들었던 게 10년 전쯤이었다.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이산)이었는데 한마디로 잘못된 선택이었다. 일본에서 신좌익운동이 붕괴한 70년대에 쓰여진 이 책은 식상할 대로 식상해진 마르크스 해석을 대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극찬을 받았다고 하는데 에세이 형식이라고는 하지만 당시 나의 지적수준으로선 요령부득이었던 것이다.
 
며칠 동안 이 책을 잡고 끙끙대다가 던져버린 뒤로 나에게 가라타니는 요령부득인 상태로 계속 남아 있었다. 지난해 일본에서 출간된 대담집을 번역한 <정치를 말하다>는 나처럼 ‘가라타니 읽기’에 도전했다가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거나 처음 입문하려는 독자에게 꼭 알맞은 책이다. 학생운동에 투신했던 대학 시절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가 걸어온 사상적 궤적을 대화체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그가 60년대 일본을 격렬하게 달궜던 ‘안보투쟁’을 어떻게 바라봤고, 왜 경제학을 공부하다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꾸었으며, 어떻게 문학평론가가 됐다가 결국 문학을 포기했는지, 단체를 만들고 사회참여를 하다가 왜 단체를 해산해 버렸는지 등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자연스럽게 그가 썼던 책들에 대한 요약과 부연이 담겨 있어 해당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논지를 파악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가 주목했던 생산과정이 아니라 유통과정이라는 분석, 국가를 경제적 하부구조에 의해 규정되는 상부구조로 다루는 기존 마르크스주의와 달리 ‘국가는 다른 국가에 대하여 존재한다’는 등 그의 독특한 시각들 말이다.
 
제목에도 나와 있듯 가라타니가 이번 책에서 던진 주요 메시지는 정치와 민주주의, 평화다. 가라타니는 90년대에 만개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외적으로는 제국주의, 내적으로는 전제주의로 귀결됐다고 보았다. 그는 특히 일본사회에서 노조가 파괴되고 대학이 민영화되면서 중간세력이 없어졌고 전제사회가 됐다고 말한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개개인이 투표를 통해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한다고 하지만 이는 곧 개인에게 가능한 것은 대표자를 뽑는 것뿐이다.
 
가라타니는 전제주의에서 벗어나는 길은 대의제 이외의 정치적 행위를 찾는 것이라면서 ‘데모’, 다른 말로 하자면 직접민주주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대의제란 대표자를 뽑는 과정입니다. 그것은 민중이 참여하는 데모크라시가 아닙니다. 데모크라시는 의회가 아니라 의회 바깥의 정치활동, 예를 들어 데모 같은 형태로만 실현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비평지 ‘비평공간’을 창간했다가 닫아버리고 새로운 ‘혁명운동’으로 생각하며 ‘생산·소비협동조합운동(NAM)’을 조직했다가 일거에 해산해 버린 이유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어차피 끝날 거라면 아직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보다 그만두는 쪽이 좋다고 생각”해 그랬다는 것이다. 가라타니에 천착해 한국 기성문학계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있는 역자 조영일은 이에 대해 “실패가 아니라 엘리트의 자기우상화에 대한 강력한 거부였던 셈”이라며 “가라타니는 민주주의에 대한 입장을 그 자신에게도 철저하게 적용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신간 탐색]가라타니 고진의 사상은 어떻게 형성됐나 (2010 03/30ㅣ위클리경향 868호, 정원식 기자)
ㆍ정치를 말하다 | 가라타니 고진 | 고아라시 구하치로 지음 | 조영일 옮김 | 도서출판 b | 1만5000원
 
근대문학에 사망선고를 내린 <근대문학의 종언>이 지난 2004년 한국에 소개된 이후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은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가장 뜨겁게 읽히는 일본 지식인이 됐다. 그의 새 책 <정치를 말하다>는 일본 작가 고아라시 구하치로가 2008년 3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그와 한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지식인 인터뷰를 활자화한 책이 지니는 장점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일차적으로 ‘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옮겨 적으면 그대로 문장이 될 정도로 정교한 말솜씨를 자랑하는 이가 드물게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말을 글처럼 밀도 높게 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인터뷰를 정리한 책은 종종 난해한 사상을 독자들에게 가독성 높은 방식으로 풀어 설명하는 구실을 한다. <정치를 말하다>에서 가라타니는 자신의 사상이 1960년대 이후 동시대 일본과 세계의 정치적 상황에 어떤 방식으로 반응해 온 결과물인지를 비교적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가라타니는 1969년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평론으로 문학비평을 시작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문학을 하기로 결정하게 된 배경에는 1960년대 일본 학생운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대학 시절 ‘사회주의학생동맹’(사학동) 재건에 깊이 관여했는데, 사학동에서 손을 뗀 뒤 “계속 운동을 이어 나가기 위한 가능한 선택지”의 하나로 문학비평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라타니의 ‘비평’ 활동은 곧 기존 문학비평의 협소한 영역을 넘어 판이하게 다른 지점으로 나아간다. 그의 자술에 따르면, 그는 1970년 들어 “소설을 논하는 것만이 비평은 아니다.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비평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마르크스를 읽는 것, 그것도 <자본론>을 읽는 것이었다. 그것이 문학비평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중심적인 연구 주제 가운데 하나는 네이션(국민)-국가-자본의 관계를 규명하는 일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국가와 네이션을 단순히 경제적 하부구조에 의해 지탱되는 일종의 환상적 표상으로서만 생각했던 데 반해 가라타니는 국가가 그 자체로 능동적인 주체라는 점을 역설한다. 카를 마르크스의 생각과 달리 계급 대립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국가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벼리는 과정에서 그는 1960년 일·미 안보조약 개정, 1968년의 전 세계적 학생운동, 1990년대의 걸프전, 2000년대 미국의 이라크 침공 등이 사유의 씨앗을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가라타니가 보기에 신자유주의는 자국 노동자를 내버리고 해외로 나아가는 자본을 국가가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체제다. 그는 이러한 국가와 자본의 동맹은 필연적으로 전쟁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데, 이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그가 제시하는 것은 소비자협동조합, 노동자협동조합, 지역통화 등을 포함하는 어소시에이션(협동조합)이다. 그는 또한 선거로 대표자를 선출하는 대의제는 귀족정에 불과하다면서 “데모크라시(민주주의)는 의회가 아니라 의회 바깥의 정치활동, 예를 들어 데모(시위) 같은 형태로만 실현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논쟁의 여지가 많은 주장이지만, 그 주장 아래에는 그러지 않고는 개인의 원자화로 활력을 잃은 일본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구현되기 힘들다는 절박한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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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1 15:21 2010/10/1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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