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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그대의 이름은 아름답다 |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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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는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이라는 기획연재글이 일주일에 한차례 토요일에 실린다. 어느새 35회째다. 역시 어느 인간의 삶을 다룬 얘기들은 감동을 준다. 재미와는 무관하게...
 
도종환 시인에 대한 양가감정이 있긴 하지만, 내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 만큼의 삶이라도 살면 다행일텐데.
 
그 연재글 중에 도종환 시인의 다른 시들과는 약간 다르게 다가오는 시가 하나 있었다. <노동자 그대의 이름은 아름답다>. 제목도 그렇지만, 내용도 다소 직설적이다. 역시 시도 시대를 따라가는 모양이다. 
 
1996년 12월 그해 겨울을 뒤흔들 노동자 총파업, 그 노동자 투쟁이 승리한 후인 2월 하순, 도종환 시인은 충북민예총과 함께 그동안의 싸움을 집체극을 통해 마무리하는 <악법철폐 위해 싸우는 노동자가 자랑스러워요>라는 제목의 문화공연을 열었단다. 그 공연에서 도종환 시인이 낭독한 시 <노동자 그대의 이름은 아름답다>.
다시 한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하련만...

  
그해 겨울 뒤흔든 이름 위대한 노동자였습니다 (한겨레, 도종환 시인, 2011-02-25 오후 07:4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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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그대의 이름은 아름답다
                                                                          도종환
 

세기말의 우울한 나팔소리 저녁하늘에 번져갈 때도

그들은 나른한 선율에 빠져들지 않았다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는데도 서둘러 보따리를 챙기며

이 시대를 파장 분위기로 몰아갈 때도

그들은 노동판을 떠나지 않았다.

변혁의 꺼지지 않는 열망을

노동의 화로에 불씨처럼 묻었다 건네주며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싸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 나직하게 말해왔다.

새 세상은 미리 준비하는 자의 것이라고

희망은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단결만이 우리를 지키는 유일한 무기라고

싸워서 얻는 것만이 가장 값진 성과물이라고

파업을 준비하며 동료들 손잡으며 그렇게 말했다.

척박한 천민자본주의 담 밑에

분배의 정의와 민주주의가 다시 살아나길 바라는

뜨거운 소망을, 소망의 씨앗을 뿌리고 심었다

그토록 힘겨운 파업투쟁의 대오가 거리거리 넘치고

물결을 이룬 저항의 행렬이 온 나라를 덮었을 때

많은 이들은 이 시대에 노동자가 누구인가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성당 한 모퉁이 쫓기던 이들이 모여 앉은 천막 위로

어떤 날은 살을 얼리는 바람이 밤새 비닐을 흔들고

어떤 날은 눈보라가 진종일 몰아쳐도

눈보라보다 더 큰 함성으로 따뜻할 수 있었다.

천막 날바닥에 웅크리고 새우잠을 자고 나선

얼어붙은 이마에 다시 머리띠를 묶으며

투쟁으로 해가 뜨고 투쟁으로 별이 빛나는 거리로 몰려나가

마침내 오만한 권력을 무릎 꿇릴 수 있었다

썩을 대로 썩은 재벌과 그 찌꺼기를 나눠 가지며 공생하는

더러운 권력을 향해 가장 앞장서서 싸우며

아직 다 잠들지 않은 양심들을 하나의 깃발 아래

불러 모으는 이들이 누구인지 당신들은 확인할 수 있으리라

노동자는 위대하다

멈추지 않고 깨어 흘러 저 자신을 살리고

온 천지를 살려내는 강줄기처럼 노동자의 물결은 위대하다

이 시대 희망의 날들은 저물었다고 돌아서던 사람들을

보란듯이 질타하는 노동자의 몸짓은 눈물겹다.

이 나라 이 역사에 당당하게 싸워 얻어낸

승리의 기억을 남기기 위해

살아 움직이며 밀고 가는 노동의 수레바퀴는 힘차다

투쟁으로 밤이 가고 투쟁으로 새벽이 오는 거리에서

노동자 그대의 이름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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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6 03:53 2011/03/06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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