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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호 열사를 추모하는 노래, 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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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배달호 열사의 9주기입니다. 예전엔 1월이 되면 기일을 떠올리곤 했는데, 트윗에 관련글이 올라온 걸 보고 알았습니다. 많이 무뎌진 모양입니다. 여전히 노동자에 대한 손배가압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기에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http://www.youtube.com/watch?v=ubS-TnScvIs
꽃다지 - 호각
 
언젠가 EBS 스페이스 - 공감이라는 프로에 꽃다지가 나와서 부른 노래 중에 '호각'이란 노래가 있었습니다. 2003년 한 노동자의 죽음을 소재한 노래라고 소개하였습니다. 꽃다지가 두산중공업에 가서 배달호 열사의 영전을 뵙고 착잡한 마음에 돌아오는 길에 조성일 님이 곡을 썼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곡 소개는 꽃다지의 민정연 대표가 쓴 '[문화] 노래로 보는 세상 - 꽃다지의 ‘호각’'이라는 글을 참조하시면 될 겁니다.
 
2011년 꽃다지 콘서트 '노래의꿈' 실황을 담은 위의 동영상에서는 곡을 차분하게 부르는데, 원래는 상당히 템포가 빨랐습니다. 그래도 그게 바로 열사의 마음이 아닐까 싶더군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동영상으로 보았던 배달호 열사의 호각 부는 모습이 생각나서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그리곤 다시는 열사가 생겨나지 않았으면 하고, 그의 죽음을 소재로 한 노래도 나오는 일이 없었으면 했는데, 그 죽음이 노무현 정권은 물론 이명박 정권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제는 현대자동차에서 한 '정규직 귀족 노동자'가 분신을 했다 합니다. 생명이 위독하다 했는데...
 
아래에는 예전 네이버블로그에 올려놓았던 글을 다시 담아옵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배달호 열사 추모사도 있습니다.
 
제가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다고 하는 이들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배달호 열사와 같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서도 아무런 반성을 하지 않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 돌아가셨던 수많은 열사들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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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호 열사를 떠올리며... 2005/01/07 10:37

 

내일 모레는 두산중공업의 손배가압류 문제 등을 제기하며 분신자결한 배달호 열사의 2주기입니다. 이에 민주노총 금속노조 두산중공업지회와 배달호열사정신계승사업회 주최로 오늘 오후 12시30분에 창원 두산중공업 내 노동자광장에서 추모제가 열리고, 9일에는 양산 솥발산에 있는 열사 묘소를 참배한다고 합니다. 배달호 열사 하면 떠오르는 것이 손배가압류 문제와 호루라기입니다. 열사는 생전에 동지들의 노조활동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호루라기를 자주 불었습니다. 그래서 꽃다지도 배달호 열사 추모곡을 호각이라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꽃다지 - 호각 (조성일 글/가락)

새벽 흐린 광장에 그대 홀로 서있네
오십 평생 일해온 지난 시절의 기억
한번도 놓치 않은 호각을 입에 물고
다시 한 번 부르네 새벽 어둠을 너머
 
숨막히는 작업장 아무 대답도 없네
싸움은 지쳐가고 분노마저 사라져
무너진 현장 위로 조여 오는 칼날뿐
닫힌 나의 가슴은 숨을 쉴 수가 없네
 
길게 우는 호각 소리 깊은 잠을 깨우네
침묵하는 공장 어디에도 깊은 잠을 깨우네
 
검게 물든 깃발은 내가슴을 흔드네
천둥같던 그대의 호각 소리 들리네
세상은 그대론데 주저할게 무언가
그대 호각을 이제 내가 입에 물고서
  
길게 우는 호각 소리 깊은 잠을 깨우네
침묵하는 공장 어디에도 깊은 잠을 깨우네(반복)

   

15-6년 전에도 무슨 열사들이 그리 많은지 한숨을 내쉬었는데, 여전히 거의 매달 열사들의 추모일이 있고, 그 때마다 열사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배달호 열사의 추모일이 지나면 또 얼마 안있어 박종철 열사의 추모일이 다가오네요. 앞으로는 달력에 표시된 이런 날들이 그냥 과거의 것으로, 저런 때도 있었어 하면서 옛날을 회상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합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우리 앞의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추모기간 행사중의 하나로 1월 12일에는 ‘노동운동의 과제와 전망’을 주제로 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강연회가 있다고 합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을 알게 된 것도 그의 배달호 열사 추모사 때문이었습니다. 아래 김진숙 지도위원의 2003년 1월 25일 창원에서 있었던 배달호 동지 추모집회의 추모사(고 배달호 열사 분신대책위에서 퍼왔던 글입니다)와 돌아가신 지 두달만에 치러진 열사의 장례식에서 낭독되었던 <배달호 열사 추도사>을 올립니다. 둘다 읽을수록 눈물이 나는 글들입니다. 이런 추도사가 여전히 가슴 뜨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2년전이나 지금이나 상황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이제는 이런 추도사를 다시는 떠올리지 않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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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월 25일 배달호 동지 추모집회(창원) 추모사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김 진숙

나이 50이 넘으면 새로 밭을 갈고 씨를 뿌리기보단 뿌려놓은 것들을 거둬들여야 하는게 훨씬 자연스러울 나이입니다.
그 나이쯤 되면 주머니 속 불룩한 지갑엔 황금빛 카드가 너댓장 꽂혀있고 이름만 대면 누구나 주눅들만한 장짜리 명함도 서너장쯤 구색갖춰 꽂아놓고 술자리에선 그들과의 인연을 힘주어 역설하며 '글마 내가 키웠다 아이가' 호기를 부려야 술맛도 나는 그런 나이입니다.
명절이면 하다못해 무슨무슨 과장이나 무슨무슨 이사장 명함 꽂힌 굴비두름에 갈비짝이 가슴께 까지는 쌓여야 명절기분도 날법한 그런 나이입니다.
몸이 재산이라며 가시오가피에 홍삼에 옥돌침대에 철따라 체질따라 끔찍히 지몸 챙기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그런 나이입니다.

별로 특별하지 않아도 입이 딱벌어지게 잘나가지 않더라도 대부분 그렇게 산다는데 남들은 그러고 산다는데 그걸 못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평생을 바둥거려도 그게 안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주머니 속에선 카드 대신 유인물이 나오던 사람.
나이 50이 넘어 허구헌날 호루라기를 불고 다니던 사람.
 
아빠를 잃고 남편을 잃고 아들을 잃고 그렇게 이 모진 세상 남겨질 가족들에게 마지막이라는 이름으로도 애비라는 이름으로도 수도꼭지 고쳐놓는 거 밖엔 남겨줄 게 아무것도 없었던 사람.
이 세상에서 가장 힘겨웠을 마지막 휴가를 보내며 마누라와 함께 저녁을 먹는 걸로 그동안의 고마움과 평생의 죄스러움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

수도꼭지 틀 때 마다 물보다 눈물이 먼저 쏟아질 가족들 생각을 그라고 왜 안했겠습니까?
막내딸 끌어안고 "못난 아빠 용서해라" 그게 마지막인줄 알았다면 '아빠, 괜찮아 난 그래도 우리 아빠가 최고야' 천만번이라도 더했을 그 한마디를 평생안고 살아야 할 막내딸의 한을 그라고 왜 헤아리지 못했겠습니까?
구속된 동지들 면회 가서는 어떤 신신당부보다 더 절박한 통곡을 목 메이게 쏟아놓고 돌아섰던 그 눈물의 의미를 이제사 헤아리며 가슴을 치는 동지들이 평생 안고 가야 할 짐을 그라고 왜 짐작치 못했겠습니까?
 
살기 위해서 호루라기를 불었던 사람.
제대로 한번 살아보고 싶어서 10년이나 기꺼이 대의원을 맡았던 사람.
정말 사는 것처럼 한번 살아보고 싶어서 어떤 타협도 할 수 없었던 사람.
그날 새벽 걸었다가는 끊고 걸었다가는 끊고 끝내 마지막 숨소리만 흘러나오던 전화.
당신과 함께 새카맣게 타버린 그 전화기를 통해 무슨 말이 하고 싶으셨습니까?
  
이 땅에 50년을 살았던 당신에게, 50년을 뼈빠지게 상머슴으로 살았던 늙은 노동자에게 전과자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당신이 떠난 1주일 후에도 법정에선 배 달호 피고인을 불렀다던 이 기가 막힌 나라에 무슨말을 더 남기고 싶더이까?
청년이었던 시절부터 그 날까지 큰 딸이 장성한 세월 20년을 고스란히 바쳤던, 소금꽃 흐드러지게 피고지는 소금꽃나무 당신을, 징계자 가압류자로 내몰던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가 천국에 어떤 말을 더하고 싶더이까?
50년을 살고도 영정에 쓸 사진 한 장 변변히 남길 수 없었던 이 빌어먹을 세상에 무슨 할말이 더 있더이까?

유서에 남긴 마지막 한마디  "미안합니다"
미안하다고 하셨습니까?
평생 노동으로 내려앉은 삭신에 신나를 붓고 다리가 오그라붙고 손가락이 타들어가고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가 숨통을 막아 마지막까지도 그렇게 고통뿐이었으면서도 뭐가 그리 미안합디까?
당신을 그렇게 죽인 자들은 문상 한번 안오는데 뭐가 그리도 미안합디까?
가압류가 생존권을 포기하라는 사형선고임을 뻔히 알면서도 변변한 투쟁 한번 못했던 자들에게 도대체 뭐가 그토록 미안합디까?
 
얼마나 더 죽어야 합니까?
다음엔 또 누구 차례입니까?
도대체 우린 언제까지 만장을 앞세워야 합니까?
한진중공업에서 30년을 일했던 노동자가 명퇴로 짤리고 모가지가 짤렸는데도 30년 오래된 습관은 새벽 5시면 어김없이 몸과 마음을 깨우는데 그 시간에 일어나 갈 데가 없는 게 새삼 또 서럽더라는 강씨 아저씬 보일러공장 하청 노동자가 됐다는데 언놈이 아직도 개혁을 말합니까?
파업 한번에 전과자에 징계에 가압류에 그야말로 합법적인 패가망신이 보장되는 5%의 왕국에서 누가 여전히 복지사회를 떠듭니까?

두산중공업 악랄하다지만 부산에 가면 한진중공업이 그렇고, 서울에 가면 재능교사노조, 건설운송노조, 한국 시그네틱스 노조가 그렇고, 목포에 가면 목포카톨릭병원 노조가 그렇고, 광주에 가면 동광주병원 노조가 그렇고, 울산에 가면 효성 노조가 그렇고, 태광 노조가 그렇고, 제주에 가면 한라병원 노조가 그렇고, 발전노조, 철도노조, 장은증권 노조 대우자판 노조가 그렇는데, 누가 또다시 변화를 얘기합니까?

배 달호 동지, 배 달호 열사여!
혼자 가기엔 너무 먼 길... 새카맣게 오그라붙은 몸뚱아리론 너무 힘겨울 구비구비 구천길이 아득하거들랑 언제나처럼 호루라기 불며 앞장서시구려.
동지의 넋이 함성이 될 산자들의 투쟁속에 자본의 사슬을 끊어내고 노동해방 깃발 휘날리며 당당히 앞장서십시오.
   
------------------------------
 
민주노동당 홈페이지 좋은글모임
글번호 : 23    
올린이 : 노동위    
등록일 : 2003년 03월 19일 09:54:50    
기  타 : 조회수(263),  

<배달호 열사 추도사>
                                         -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 진숙 지도위원-

죽은 듯 서있던 나뭇가지 끝이 색깔이 변했다 싶었는데, 좁쌀만한 새순들이 종주먹을 쥐고 막 일어서는 참이었습니다.
그 작은 것들마저 살겠다고 일어서는게 봄일텐데, 그 봄에게마저 화가나던 날이 있었습니다.
어느새 피었던건지 동백이 지는데, 붉은 꽃송이 모가지가 툭툭 끊어져 떨어지는데, 그 무심한 낙화마저 속상하던 날이 있었습니다.
늦은 밤 막차안에서 작업복을 입은 사내하나 고개를 떨군채 졸고있고, 종점이 다가오는데 그게 또 서러운 날이 있었습니다.

효순이 미선이 그 아이들이 나란히 새겨진 추모버튼 옆에, '배달호를 살려내라' 검은 깃을 달다말고, 그런거나 주렁주렁 달다말고 나도 모르게 하늘을 보게 됐는데, 어쩌자고 하늘은 저리도 맑은건지 그 푸르름마저 절망이던 날이 있었습니다.

무심하던 일상의 한 가운데서 밥을 먹다가도, 테레비를 보며 낄낄거리다가도, 버스에 흔들리다가도, 문득 한숨처럼 걸려 넘어지던 이름 하나, 그를 아십니까?
호루라기 하나로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던, 그를 아십니까?
다들 세상이 변했다는데, 너나없이 변화된 세상을 말하는데, 60년대를 살다가 전태일처럼 죽어간, 그를 아십니까?
 
18년을, 자기집 문지방을 넘나들던 시간보다 더 오랜시간 허덕거리며 드나들었을 공장 길목에, 감사비도 아니고 기념비도 아닌, 그을린 자국하나 흔적으로 남겨진, 그를 아십니까?
50평생 단 한번도 푸른색으로 바뀌지 않던,이 멋드러진 21세기에도 붉은 빛만 껌뻑거리던 신호등 앞에서, 붉게 검붉게 타오르던, 그를 아십니까?
 
병도 아니고 사고도 아니고, 견딜수 없이 부자연스러운 죽음앞에, "왜"가 아니라 "오죽 했으면"이 먼저 가슴을 치던, 그를 아십니까?
더는 밟힐 수가 없어, 도대체가 더는 당할 것도 없어, 마지막 일어서는 일이, 몸부림치며 일어서는 일이, 일어서 외마디 소리 친다는 일이, 제 몸뚱아리, 말라 비틀어진 몸뚱아리 장작개비 삼는 일밖엔 없었던, 그를 아십니까?

50년 그 긴긴 세월 그 몸뚱아리 하나로 살았으면서도, 기름기 흐르게 먹여본 적도, 늘어지게 쉬게 한 적도, 한번도 잘해 준 적도 없으면서 그 몸뚱아리를 그예 횃불로 밝혔던, 그를 아십니까?
이 세상에서 입어보는 가장 비싼 옷이 수의가 된 지지리도 못난 사내, 그를 아십니까?
그 마지막 호사마저 분에 넘쳐, 새까맣게 오그라붙어, 타다만 비닐처럼 오그라붙어, 그 마저도 64일을 꽁꽁얼어, 변변히 갖춰입지도 못한 채 먼 길을 떠나는, 그를 아십니까?
50평생을 밟히고 채이고 내몰리기만 하다가 죽어서야 꽃상여를 타는, 그를 아십니까?

다 태우고 마지막 한점까지 다 내주고 이제 그가 갑니다.
수십년 살 부비고 살았던 마누라에게 조차 차마 마지막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던 그가 갑니다. 살아서는 지구를 수 천 바퀴를 돈다해도 이 세상 어디서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가 갑니다.
징계, 가압류, 전과자의 굴레를 이렇게 밖에는 벗어날 수 없었던 이 모진땅을 그가 떠나 갑니다.
권미경의 곁으로 조수원의 곁으로 신용길의 곁으로 양봉수의 곁으로 서영호의 곁으로 최대림의 곁으로 박창수의 곁으로 또 한사람이 갑니다.
 
그러나 남겨진 사람.
새끼들만 아니라면 수백번도 더 따라나서고 싶었을 그 길목 어디쯤을 날마다 서성이며 남겨질 사람.
가장이 버텨준 세상도 그렇게 버거웠는데, 수많은 날들을 홀로 휘청거리며 버텨야 할 사람.
오늘이 지나고 나면 이제 목놓아 울 수도 없을 황 길영 동지.
7평이라던가, 9평이라던가 그 좁아터진 집구석이 당장 오늘부턴 휑뎅그레 넓어져, 앉았던 자리도 누웠던 자리도 빈 자리만 눈에 가득하고, 코 고는 소리도 술주정 소리도, 술냄새 발꼬랑내 마저 아득한 그리움이 되고 회한이 될 황 길영 동지가 남겨졌습니다.
투사도 아니었고 간부도 아니었고, 그냥 남편의 뜻이 뭔지를 알기에 이 지난한 투쟁의 한 가운데서, 견딜수 없는 슬픔의 바다에서 외롭고 처절한 사투를 벌여온 황 길영 동지가 이제 아빠의 몫까지, 아들의 몫까지 홀로 짊어져야 하는 가장으로 남겨집니다.

대구지하철 청소 용역 아줌마들이, 그게 무슨 보물이라고 마지막 가는 길까지 손에 쥐고 죽었다던, 껌떼는 칼을 들고 있는 황 길영 동지의 모습을, 아마 모르긴 몰라도 어느 백화점 계단 쯤에서 조만간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20년을 일한 회사에서 용역으로 내몰렸던 어느 식당 아줌마들처럼, 노동조합앞에 천막을 치고 막막한 눈길로 앉아있는 그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저임금법이 뭔지도 모른 채 38만원 주면 38만원 받고 40만원 주면 40만원 받다가, "철의 노동자" 를 "사랑은 아무나 하나" 처럼 부르는 아지매들 틈에 섞여있는 그를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파업이니까 9시 까지 출근해도 된다는 집행부의 지침을 한달 째 어기며 7시면 어김없이 출근하는, 수십년 습관을 못 버리는 어느 병원 청소 용역 아줌마들처럼, 새벽 댓바람 버스를 기다리는 그를 만나거들랑 잠깐 차세워 잘 지내시냐고 안부라도 물어주시구려. 태워 주시면 더할나위 없구요.

그리고 두 딸내미 선혜, 인혜.
그 아이들만한 보석을 준다 해도 안 바꾸었을 새끼들.
가시는 걸음 걸음마다 눈에 밟히고, 가슴에 밟혀 가다가도 골백번을 되돌아보고 또 돌아볼 그 아이들.
백번의 열사보다 단 하나의 아빠가 아직은 더 절실할 아이들.
  
이 땅 여성노동자 70% 이상의 삶이 그렇듯 머잖아 비정규직의 대열에 합류하게 될 그 아이들을, 백화점에서든 마트에서든 보게 되거든, 화끈거려 제대로 내딛지도 못하는 발바닥 먼저 헤아려 주시구려.
엄마땜에 앓는 소리 한번, 힘들다는 투정 한번 부리지 못할 아이들의 어깨라도 한번 따뜻하게 두드려 주시구려.

마지막 결단의 순간까지 끝내 놓지 못했을, 어쩌면 맨 앞에 놓고 싶었을 마지막 한마디
"내가 없더라도 우리 가족 보살펴 주기 바란다"

그 유언은 비정규직이 없어지는 그 날까지 아마도 그렇게 남아 떠돌게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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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9 12:30 2012/01/09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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