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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헬 라이몬, 크리스티안 펠버. 2010. 『미친 사유화를 멈춰라: 민영화, 그 재앙의 기록』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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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헬 라이몬, 크리스티안 펠버. 김호균 옮김. 2010. 『미친 사유화를 멈춰라: 민영화, 그 재앙의 기록』. 시대의창.

김호균 교수가 이런 책을 번역할 줄은 몰랐다. 이 책은 민영화(사유화)의 폐해를 잘 보여주는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SI에서 나온 공공부문 사유화에 관한 보고서 외에 이렇게 사유화에 대해 잘 정리해놓은 책은 없는 듯하다. 특히 사례가 풍부하다.

물론 민영화(사유화) 자체에 대한 이론적인 비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례 소개만으로도 충분하다. 굳이 필요하다면 정리하는 장인 ‘제10장 자유 시장의 한계: 보이지 않는 손이 실패하는 이유’를 읽으면 된다. 사유화의 폐해에 대해 이렇게 평이하게 서술하기도 힘들다.
아래 정리한 제10장 발췌(거의 그대로 옮겨왔다) 부분과 함께 이정환, 정승일의 서평을 읽으면 될 것이다.

 
『미친 사유화를 멈춰라: 민영화, 그 재앙의 기록』.
Schwarzbuch Privatisierung by Michel Reimon and Christian Felber. 2003. Verlag Carl Ueberreuter, Vienna.
미헬 라이몬, 크리스티안 펠버 지음 | 김호균 옮김 | 2010 | 시대의창.
 
제10장 자유 시장의 한계: 보이지 않는 손이 실패하는 이유
필수 공공서비스 분야에서 민영화 재앙들은 언제나 서로 흡사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시장 실패는 나름의 체계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가장 중요한 이유 몇 가지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283쪽)
 
1. 소비자는 이익을 보지 못한다.
시장을 신봉하는 정치인들은 민영화와 자유화가 소비자에게 이익이 된다고 즐겨 주장한다. 자유 시장에서의 경쟁이 공급자들 사이에 가격 인하와 품질 향상을 둘러싼 경합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20년에 걸친 신자유주의 정치는 필수 공공서비스 분야에서 그와 정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장이 작동할 수 없는 분야가 있다. 고객의 복지를 위해 작동할 수 없는, 하물며 전 국민의 복지를 위해서는 전혀 작동할 수 없는 분야가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민감한 분야에서는 시장경제의 근본적 토대가 작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수 공공서비스 분야에서는 수요와 공급의 자유로운 상호작용이 재앙과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한 가지 중요한 이유로 물과 에너지 공급, 보건·의료 체계, 교육제도, 연금보험, 교통망, 전화망, 인터넷 망은 자연독점이다. 이들은 하나의 공급자가 공급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며, 그것이 경영학적 목표를 최우선으로 하는 조직이어서도 안 된다.
공공 독점기업들이 분해된 채 민영화되면 시장은 몇 년 동안 불안정해지다가 “건전화” 국면에 이르게 된다. 즉 공공 독점기업이 소수의 공급자가 있는 민간 과점 체제로 전환되는 것이다. 시장이 일단 분할되고 나면 동업자들끼리는 서로 돕게 된다. 결국 가격은 다시 상승하는데 이런 과정은 “자유화 성공 사례”라던 전기와 통신에서조차 마찬가지였다.
자유화가 사회 기반 시설에 미치는 전형적인 영향은 기반 시설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비용 때문에. 그 결과 품질은 떨어지고 소비자를 위한 안정적 공급도 위협받는다. (284-85쪽)
 
2. 납세자도 이익을 보지 못한다
민영화 찬성자들의 또 다른 주요 논거는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서유럽 국영기업들이 대부분 비효율적으로 운영되었고 손실을 초래했으며 정부 예산에서 보조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영화가 되면 납세자가 이익을 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영기업이 경영에서 비효율적인 것은 사실 정치적 결정의 결과였다. 정치인들은 국영기업이 실업을 피하도록 강제한다. 또한 그들은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복지적 성격의 요금 체계와 외딴 지역―수익이 결코 발생할 수 없는―에 대한 무난한 공급을 강제한다. 공기업의 재정적 손실은 그들의 위임받은 사회적 과업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민영화되고 나면 이 과업은 달성될 수 없게 되고 그 과업에 필요한 비용은 결국 실업 수당 증가, 복지 지출 증가, 낙후 지역 지원 및 환경보호를 위한 지출 등의 형태로 납세자가 부담하게 된다. 기업 수지는 좋아 보이지만 국가 예산은 그렇지 않다.
공기업은 민영화되기 전에 대부분 경영학적으로 정비된다. 다시 말하면 이들 기업에 부과되었던 부담이 경감된다. 그러면 그들이 아직 국가 소유인 동안에도 이윤을 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가령 오스트리아에서는 쉬셀(Schüssel) 총리 시절 정부가 모든 국영기업을 매각하고자 했다. 그 이유는 순전히 이데올로기적인 것이었지 상황에 의해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다. 국가는 기업을 경영할 수 없다는 상투어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동안에도 국영 기업인 오스트리아 산업 지주회사(Österreichische Industrieholding AG, Austrian industry-holding stock corporation, ÖIAG)의 지분 참여는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우편 사업은 철강 회사 푀스트(Voest)만큼 이윤을 내고 있었다. 반대로 민영화된 많은 기업은 보조금이나 세제 지원을 계속 받거나(예컨대 브리티시 에너지) 또는 수십억 규모의 채무가 면제되었기(레일트랙) 때문에 겨우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요컨대 기업가로서 민주국가가 그다지 나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 기업이 매각되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이윤을 실현해서 조세 부담을 장기적으로 완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에 민영화를 통해 국가가 거두어들이는 수입은 일회적일 뿐 아니라 그것이 기업 가치 미만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정치인들은 혹시 이들 기업을 “비효율적으로” 만들었을 과업을 언젠가는 다시 이들 기업에 부여하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납세자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단지 예산 항목의 이동일 뿐이기 쉽다. 그리고 노련한 정치인이라면 그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이익을 거둘 수도 있을 것이다. 대신 그렇게 되면 국민이 비용을 부담하는 동안에 이윤은 결국 소수의 소유자에게 돌아가게 된다. (285-87쪽)
 
3. 강자는 이익을 본다
공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진다. 영리가 목적인 다국적 기업은 그렇지 않다. 필수 공공서비스 분야를 담당하는 순간부터 이들은 양극화 사회를 만들어내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다양한 생활필수품으로부터 단절될 위험을 국민 전체가 공평하게 나누어 지지는 않을 것이다. 의료보험 없이 사는 사람들은 물, 전기, 전화가 차단되거나 비참한 학교에 자녀들을 보내야 하는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대중교통에 의존하므로 그것을 어쩌다 한 번씩 이용하는 부유한 승객보다 승차 요금 인상을 피부로 훨씬 많이 느낀다. 게다가 대부분 중심가 대신 수익성 좋은 간선의 반대편, 즉 민영 버스가 길을 잃을지도 모르는 채산성 없는 지역에 거주한다. 극빈 계층은 신자유주의 민영화 환상 때문에 단계적으로 공공서비스의 모든 영역에서 배제되고 있다.
이는 민간 공급 업자들의 통상적인 비용 구조 때문에 더욱 심각해진다. 높은 접근 수수료와 기본요금, 낮은 경상 비용, 사용량이 많은 고객을 위한 할인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비용 구조는 “자유화 성공 사례”로 주장되는 전력과 전화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뿐 아니라 민간 연금에서도 국가의 보조 프리미엄은 민간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자에게만 혜택을 준다. 이 프리미엄은 결국 납세자가 부담하는 것이다. 의료보험에서도 또한 건강한 자들이 이익을 보는데 통계적으로 볼 때 이들이 부유한 계층이다. 임신 위험이 없다는 이유로 남성들도 보험료 할증이 적어서 이익을 본다―낮은 기대 수명 때문에 연금보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결과 일반 소비자, 여성, 환자들이 대형 소비자, 부자, 남성들에게 유리한 교차 재원 조달에 기여하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민영화의 첫 번째 희생자는 농촌 주민이다. 상업 집중으로 인근 공급자들이 사라진 것으로도 모자라 우체국, 철도 지선, 공중전화, 버스 노선도 없어지고 있다. 망으로 연결된 모든 시설에 대한 접근은 민영화 이후 거의 인구 밀집 지역에서만 확장되고 있다. 지금까지 공적인 망의 확장이 크게 부족했는데도 유럽연합(EU)보다 더 일찍 민영화된 가난한 나라들에서 특히 그러하다.
사회적 약자가 차별받는 가장 전형적인 사례는 대중교통이 없어지면서 자가용을 이용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자가용은 아무나 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차 없는 사람이 이동 서비스 공급의 민영화에 따른 삶의 질 저하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한다. 그러므로 개인에 의한 이동 서비스를 대신하는 대중교통 체계는 생태적으로 필요할 뿐 아니라 결정적인 사회정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위한 전국적인 대중교통 체계를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은 개인이 승용차를 구입하는 것으로 비이동성에 대응한 보험을 드는 것보다 비교도 안 되게 낮을 것이다. (288-90쪽)
 
4. 국가는 주식회사가 아니다
국가는 사회복지적, 생태학적, 지역 경제적, 개발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만큼 경영학적으로는 효율성을 잃는다. 그러나 국가는 주식회사와는 다른 이유로 존재하며 경영학도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민영화된 기업은 그 소유주와 많은 주주 가치에 책임을 지고 공기업은 여론에 바로 책임을 진다. 그러므로 이들은 아주 다른 목표를 추구하며 종종 정반대되는 길을 가게 된다.
민간 의료보험 회사들은 중환자를 돕는 데 전혀 관심이 없다. 이러한 영리 기업은 오히려 그들을 떨쳐버리려는 성향을 가진다. 민간 전력 공급자는 관리 비용만 많이 들고 매출은 적은 소규모 고객에게 관심이 없다. 이윤을 줄이는 에너지 절감 조치는 이들의 가장 큰 적이다. 열 발전소와 핵 발전소가 초래하는 환경오염의 장기 비용은 사회가 부담해야 하며 대차대조표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민간 상수도 공급자는 수질이 가능한 한 좋아야 한다는 데 관심이 없다. 고객들이 대안적 공급 방식의 하나로 상수도관을 스스로 설치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다음부터는 수질이 이론적으로도 시장을 통해 조정되지 않는다. 물 공급보다 더 자연독점이어야 할 것은 없다.
민간 하수처리 공급자는 청결도를 법정 최저치 이상으로 올리는 데 관심이 없다. RWE/템스 워터 사례가 극명하게 보여주는 바와 같이 종종 그들은 이마저도 준수하지 않는다.
민간 폐기물 처리 사업자들은 가능한 한 안전한 폐기물 저장이 아니라 저렴한 저장에 관심을 가진다.
민간 연금보험업자들은 안정적인 연금을 제공하는 데 관심이 없고 이윤 폭을 가능한 한 확장하는 데 관심을 가진다.
이 모든 문제가 잘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한 민영화 찬성자들의 반론은 언제나 똑같다. 아무 것도 잘못되지 않도록 잘 규제해서 예방해야 한다고. 그러나 자유화된 시장은 합리적으로 규제될 수 없다. 누구에게 자유를 부여했으나 다시 안전을 위해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이고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 그러한 해결책은 잘해야 미숙한 결과를 낳을 뿐이며 최악의 경우에는 위험하다. 식수 공급이나 아동 교육과 같은 부문은 매우 민감하므로 정치인들이 자유 시장에 맡겨놓을 용기를 갖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290-92쪽)
 
5. 결국 책임은 국가가 진다
민영화가 초래하고 있고 공기업이 회피해온 저 모든 “부작용”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결국 사회 전체이다. 실업자 증가, 복지 수혜자 증가, 환경 사고 증가는 명백한 비용 요소이며, 여기에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 은폐된 비용 요소도 있다. 민영 교도소가 재소자 훈련 비용을 적게 투자하고 그리하여 수감 생활 이후의 전망이 없다면 그 비용은 얼마나 될 것인가? 금전적으로뿐 아니라 사회가 지불하는 대가는 얼마나 될 것인가?
공중은 또한 민간 사업자의 “곶감 빼먹기”에 대한 비용도 부담한다. 즉 민간 기업들이 공기업 중에서 가장 수익성이 좋은 부문만을 사들이고 손실을 초래하는 부문은 매입하지 않는 것이다. 민영화된 회사들은 다시 ‘합리화’되어 가령 지선 철도처럼 수익성이 없는 개별 서비스는 폐기된다. 그렇게 되면 정부로서는 이들 과업을 조세로 해결하거나 아니면 전적으로 포기하는 길밖에 없다.
민영화가 잘못되고 공익과의 충돌이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면 국민이 다시 한번 부담을 지게 된다. 레일트랙의 값비싼 재매입이든, 포츠담, 애틀랜타, 코차밤바의 물 공급 계약 해지든, 조세를 동원한 파산한 연금보험업자의 구제든, 정부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놓치는 모든 것을 잡아 끌어올려야 한다.
보수 작업은 때로 국가가 민영화를 통해 얻었던 단기적 이익보다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한다. 가령 완전히 황폐화된 영국 철도망을 정비하는 작업을 수년 동안 지속적으로 유지·보수했더라면 소요되었을 비용보다 더 많은 비용을 향후 수년 동안 집어삼킬 것이다.
 
6. 민영화와 부패는 함께 간다
공적 자금이 있는 곳에는 부패, 연고주의, 횡령도 있다. 민주사회는 이들 폐해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눈에 띄게 제한할 수는 있다.
FBI 발표에 따르면 “전염병 수준”에 이른 메디케어의 사기 행각, 프랑스 그르노블에서 필리핀 마닐라에 이르기까지 물 공급 업자들의 부패의 늪, 영국 민간 연금에서 벌어진 ‘불완전 판매’ 사기……. 민영화 찬성자들은 이러한 사태를 단지 산발적인 사례인 것처럼 다룬다. 그들의 주장은 국가가 공적 임무에서 멀리 떠날수록 부패로 오염될 영역은 좁아진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주장은 첫눈에만 논리적인 것처럼 들린다. 바로 필수 공공서비스 분야에서는 국가가 완전히 물러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반대로 값비싼 표준을 준수하는지를 감독하는 규제 당국이 부패의 빛나는 표적이 되고 있다. 민영화의 공표와 실행 업무를 담당했던 정치인과 공무원들도 계속해서 유혹을 받고 있다. 이는 개별적인 사례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이다. 민영화와 부패는 함께 간다. 프랑스에서는 물 시장에서 이를 한 차례 경험한 후 독자적인 반부패법을 제정했다. 이에 책임이 있는 기업들이 서비스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S)의 배후에서 움직이는 추진 세력에 속한다는 사실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문제는 이미 “수출”되기도 했다. 1980년대와 90년대 내내 정치적 축하 무대에서는 자유로운 세계무역이 민주주의를 확산한다고 주장되었지만 서방의 다국적 기업들은 피노체트, 수하르토, 밀로셰비치(Milosevic)와 같은 독재자들을 후원했다. 세르비아 독재자 밀로셰비치의 경우에는 1997년에 세르비아 통신사의 절반을 이탈리아와 그리스 기업에 매각했다. 텔레콤 이탈리아는 5억 유로를 주고 그중 29% 지분을 매입했다. 이 사업 덕분에 밀로셰비치는 야당의 격렬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1997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294-96쪽)
 
7. 대안은 있다
민주주의에는 언제나 대안이 있다―그리고 전면적 시장에 대해서도 당연히 대안이 있다. 서유럽은 이들 대안 중에서 가장 극명한 대안에서 살고 있다. 사회국가가 그것이다.
필수 공공서비스 분야를 보다 민주적으로 조직하는 것도 불가피한 과제일 것이다. 공기업에서도 폐단이 계속 나타났고 이는 특히 사용자와 노동자에 의한 공동 결정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화 연결을 몇 주씩이나 기다리도록 하는 것은 지자체들이 공공 버스와 철도의 운행 계획표를 작성하는 데 참여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부당한 일이다. 공공 병원에서 환자를 냉정하고 비인간적으로 대우하는 것도, 유감스럽지만 주민을―확실한 전문가일 경우에조차―배제하고 있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민주화와 주민의 욕구에 맞춘 필수 공공서비스의 구성은 신자유주의 이후 국가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의 하나이다.
경제적 세계화가 사회국가에 가하는 압력은 결코 자연법칙이 아니며 정치적 결정의 결과이다. WTO의 GATS 협상은 그것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협상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공공서비스 공급자에게 가해지는 압력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민영화에 대한 저항은 전 세계적으로 남·북반구 모두에서 증가하고 있다. 민영화 저지나 상황 개선을 위한 협상에 성공하거나 영리 다국적 기업들을 도로 쫓아내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대안들이 성장하고 있다. (296-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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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사유화를 멈춰라. (이정환닷컴, February 5, 2011 4:44 AM)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수도 민영화 계획을 마련한 건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 시절이었다. 만델라는 "민영화는 우리 정부 정책의 기초다, 원한다면 나를 대처주의자라고 불러도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제통화기금(IMF)가 요구한 신자유주의 개혁을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명분으로 순진하게 받아들였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 결과는 어땠나. 수도요금이 한 달 생활비에 맞먹을 정도 뛰어올랐고 사람들은 다시 호수에서 물을 길어다 먹기 시작했다. 그 결과 콜레라가 창궐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물 도둑을 막으려고 일부러 물을 한 방울씩 떨어지도록 해서 물 한 잔을 받으려면 15분을 기다려야 하는 곳도 있었고 아예 선불제 시스템을 도입한 곳도 있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IMF가 1억달러를 대출해주는 조건으로 수도 민영화를 요구했다. 프랑스의 쉬에즈와 베올리아 컨소시엄이 수도 사업을 넘겨받았는데 수도 요금을 두 배 이상 올리고도 엄청난 적자를 냈고 결국 정부에 손을 벌렸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수도가 공급됐지만 엄청난 비용 부담은 국민들이 떠안아야 했다.
수도회사가 돈을 벌려면 수도요금을 올리거나 정화시설에 들어가는 비용을 낮춰야 한다. 실제로 아르헨티나 베라자테구이에서는 수도회사가 당초 약속했던 하수처리 시설을 건립하지 않아 라플라타강이 심각하게 오염됐다. 이 회사는 덕분에 하루 10만달러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과연 이걸 민영화 성공 사례라고 부를 수 있을까.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세계은행이 6억달러의 부채 탕감을 조건으로 수도 민영화를 요구했다. 아과스델투나리라는 회사가 수도 사업을 독점하면서 우물을 파거나 심지어 빗물을 받는 것까지 법으로 금지시켰다. 이 회사는 심지어 물 값을 달러화와 연동시켰고 환율에 따라 수도 요금이 2배, 3배로 뛰어올랐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랬지만 IMF는 자금 지원을 대가로 금융과 수도, 교통, 은행, 교육, 보건·의료, 우편, 통신 등등의 시장 개방을 요구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당초 약속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금 지원이 끊기기도 했다. 이렇게 팔려나간 공공부문은 대부분 선진국의 다국적 기업들에게 넘어가게 된다.
오스트리아의 반 세계화 활동가인 미헬 라이몬과 크리스티안 펠버가 쓴 '미친 사유화를 멈춰라'는 지난 20여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던 민영화 프로젝트의 실상을 파헤친 교과서 같은 책이다. 이들은 '대안은 없다(TINA, There is no alternative)'고 말하는 신자유주의자들에게 '대안은 있다'고 말한다.
흔히 민영화 초기에는 인력과 설비 감축의 효과에 경쟁이 가열되면서 가격이 낮아지고 서비스도 개선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경쟁 업체들이 도태되고 과점 구조가 자리 잡으면서 담합을 하고 가격이 뛰기 시작된다. 이때는 경쟁의 효율이 사라지면서 공급도 불안정해지지만 정부의 통제가 먹히지 않는 상황이 된다.
영국이 민영화한 철도를 다시 공영화했던 건 철도회사들이 인력을 감축하고 유지·보수 비용을 절감하면서 열차 사고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국영 기업이던 시절보다 효율이 떨어졌고 서비스도 엉망이 됐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적자가 불어났고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신세가 됐는데도 주주들은 염치없이 배당을 챙겨갔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정전 사태도 비슷한 사례다. 전력 민영화 이후 도매가격을 끌어올리면서 소매 업체들이 잇따라 도산했고 정부가 여기에 엄청난 보조금을 쏟아 부어야 했다. 물론 소매가격도 크게 뛰어올랐다. 전기회사들은 심지어 전략적으로 가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비슷한 일이 미국과 유럽연합 여러 나라들에서 벌어졌다.
미국에서는 의사가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환자에게 치료를 거부하는 사례가 흔하다. 병원마다 협약된 보험이 달라서 응급 환자를 도시 반대편까지 실어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의료 민영화 이후 병원은 영리기업으로 변질됐고 의사들은 보험회사가 지급을 확인해 주지 않는 이상 꼭 필요한 응급 조치조차할 수 없게 됐다.
공적 연금이 채우지 못한 부분을 개인연금이나 기업연금으로 채울 수 있을까. 2001년 미국의 7대 기업인 엔론이 파산했을 때 엔론 노동자들은 12억달러의 기업 연금을 고스란히 날렸다. 4200만명의 미국인들이 401K라고 부르는 기업연금에 2조달러를 투자하고 있는데 이들의 미래는 금융시장의 등락에 따라 대박과 쪽박으로 갈리게 된다.
영국의 연금과 기금은 자산의 80%를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는데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큰 손실을 입었다. 일본 생명보험회사들도 1980년대 말 3만포인트까지 올랐던 닛케이 지수가 1만포인트까지 추락하면서 당초 15%의 수익률을 약속했으나 3% 밖에 지급하지 못하게 됐다. 금융시장에 미래를 의존하는 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수익률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고 조언한다. 독일의 경제학자 크리스티안 크리스텐은 "금융시장에서는 경제 성장률 수준의 수익률만 기대할 수 있다"면서 "높은 휘발성과 극심한 위기 취약성, 부패, 스캔들, 파산을 특징으로 하는 금융시장을 국가가 조직한 노후 보장과 대조적으로 파고에 견딜 수 있는 반석으로 주장하는 건 참으로 역설적"이라고 지적한다.
미국에서는 민영 교도소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 가운데 한 곳서 폭동이 일어나 교도관이 칼에 찔려 죽는 사건이 벌어졌다. 수감자들을 하루 43달러의 비용으로 가두고 먹여 살리겠다고 사업 계획을 제출했던 이 교도소는 교도관을 절반으로 줄여 수익을 내왔다. 교도관들의 임금은 맥도널드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당보다 적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난민 수용소를 민영화했다. 악명 높은 우메리 수용소는 비자 없이 입국하려는 사람들을 체포해 수용하고 고문과 성폭행, 온갖 학대를 자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 정도로 열악하지는 않지만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에서는 유러피언홈케어라는 회사가 망명 신청들을 위한 수용소를 운영하면서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군대도 민영화됐다. 전직 군인들이 설립한 딘코프라는 회사는 이라크에서 특수 임무를 수행했다. 폴 롬바르디 사장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우리 없이도 싸울 수는 있다. 하지만 힘이 들 것이다." 이 회사 소속 군인들은 콜롬비아에 파병돼 마약 밀매상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사망자들은 사고 당한 관광객으로 위장돼 미국으로 돌아왔다.
일련의 사례들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공공부문의 자연독점을 해체해서 영리적 목적의 민간기업에 나눠주는 건 당장 효율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국 소수 공급자 중심의 민간 과점 체제로 전환되기 마련이고 가격이 뛰고 공급이 불안정하게 되고 서비스도 열악해 지게 된다. 공공성 역시 크게 후퇴될 수밖에 없다.
민영화를 통해 얻는 게 뭔지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여러 사례들이 일관되게 증명하지만 정부가 벌어들이는 수입은 일회적일 뿐만 아니라 막연한 미래 가치인 경우도 있고 국민들이 비용을 부담하는 동안 이윤은 모두 소수의 소유자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국가 소유로 남겨둬서는 안될 이유가 어디에 있나. 인천국제공항의 사례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정부가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효율로 모든 걸 따질 수는 없다. 민간 수도회사는 수질을 적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는데 관심이 없다. 민간 전기회사는 여름철 폭증하는 전력수요를 대비해 굳이 설비투자를 여유있게 가져갈 이유가 없다. 민간 보험회사들의 최대 관심은 가입자들의 편안한 노후가 아니라 오로지 이윤이다.
무엇보다도 민영화가 사회적 약자들에게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민영화는 가난한 사람들의 몫을 빼앗아 부자들에게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한다. 민영화가 되면 농촌 지역부터 전기와 수도가 끊기게 된다. 이건희 같은 사람은 의료 민영화가 되거나 말거나 상관없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병원 문턱조차 밟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미친 사유화를 멈춰라(민영화 그 재앙의 기록) / 미헬 라이몬·크리스티안 펠버 지음 / 김호균 옮김 / 시대의창 펴냄 / 1만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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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사유화의 덫'에 걸린 대한민국! (프레시안,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2011-01-07 오후 8:05:21)
[프레시안 books] 라이몬·펠버의 <미친 사유화를 멈춰라>
민영화인가 사유화인가?

조선 왕조에서 식민지 통치 그리고 다시 박정희식 개발 독재에 이르는 국가 폭정에 치를 떠는 민주주의자라면 당연히 국가(國家)보다는 민간(民間), 관(官)보다는 민(民)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다면, 국가 관료 지배 하의 국영 기업보다는 민간이 주인인 민영 기업이 더욱 민주주의에 가깝지 않을까?
한국에서 국영 기업 민영화가 본격화된 것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이후인데, 당시 민영화를 추진한 사람들은 실제로 "관치 경제 타파"를 통해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병행 발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민영화에 임했다. 그리고 10년 전만 해도 한국의 많은 진보 지식인과 진보 언론 역시 국영 기업 민영화를 당연시했다.
그렇지만 민영화란 정확히 말해서 '사유화(privatization)'이다. 즉, 국민 모두가 공동으로 이용해온 공유 재산을 소수 개인의 사적 재산으로 전환시키겠다는 것이 본래 의미이다. '사적(private)'이란 영어 등에서도 좋은 뜻을 가진 말이다. 그렇지만 만일 모든 사람의 생존에 공통적으로 필수적인 공유 재산을 갑자기 몇몇 친한 사람끼리 사적으로 소유하여 독점하면 어떻게 될까? 예컨대, 국민 개개인 모두의 건강과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수돗물과 전기, 가스, 의료, 노후 보장 등을 위한 공공 재산이 소수 사람들의 사유 재산으로 되어 그들만의 사익을 위해 봉사하는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면?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황당한 일들이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에서 일어났다. 더구나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이 취약한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등의 가난한 나라에서만이 아니라 한국보다 훨씬 더 민주주의와 문명이 앞선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이런 터무니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이번에 소개하는 책, 미헬 라이몬과 크리스티안 펠버의 <미친 사유화를 멈춰라>(김호균 옮김, 시대의창 펴냄)는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 진행된 사유화(privatization)가 얼마나 가식과 거짓에 가득 찬 '미친 짓'이었는지에 관해 잘 정리된 기록이다.
사유화의 덫
이 책의 독일어 제목은 "사유화 흑서(Schwarzbuch Privatisierung)"이다. 얼핏 '흑서'란 '백서'(white book, 정부의 공식 활동 보고서)의 반대말인 같은데, <위키피디아(Wikipedia)>에 따르면 '흑서(black book=Schwarzbuch)'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비밀경찰 게슈타포가 행한 동유럽에서의 유대인 학살에 관한 다큐멘터리 보고서를 말한다. 이 독일어 제목을 통해 저자들은 오늘날 '민주주의' 정부들이 행한 '사유화'를 나치의 인류 대학살에 비유하는데, 실제로 책을 읽는 독자들은 '사유화'가 어떻게 수천만 명의 생명과 생존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 훌륭한 책의 저자인 미헬 라이몬과 크리스티안 펠버는 30대 후반으로 모두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가 활동 무대이다. 라이몬은 <행동의 시대 :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그 반대자들>(2002년)의 저자이고, 펠버는 <세계 무역의 숨겨진 게임 규칙(Die geheimen Spielregeln des Welthandes)>(2008년) 등의 저자이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비유되는 '흑서'라는 독일어 제목, '미친 사유화'라는 이 책의 한글판 제목만 보게 되면, 이 책은 신자유주의 비판서가 흔히 그러하듯이 불쾌하고 참담한 현실에 대한 무거운 보고서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서평의 필자 역시 그런 첫 인상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되기까지 마음이 거북했던 것이 사실이다. 독자들은 염려 푹 놓으시라. 이 책을 집어 드는 순간 독자들은 저자들의 화려하고 경쾌한 글 솜씨에 놀라게 된다.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다 읽어 버리게 될 정도로 저자들은 밝고 명랑한 분위기로 독자들을 이끈다.
이 책의 서술 방식은 1997년에 출판되어 한국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세계화의 덫>과 매우 유사하다. <세계화의 덫(Die Globalisierungsfalle)>은 독일 베를린 대학에서 공부하고 중도 좌파 잡지 <슈피겔>의 기자 겸 편집자 한스 피터 마르틴과 하랄드 슈만이 공저했고 강수돌이 번역했었다.
이 서평을 쓰는 나 역시 1999년경에 <세계화의 덫>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주창하고, 뿐만 아니라 1990년대 후반에 전 세계를 휩쓸던 세계화(globalization) 현상에 대한 비판적이고 포괄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그만큼 <세계화의 덫>은 독자들에게 읽기 쉬우면서도 풍성한 읽을거리를 제공한 훌륭한 책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나는 <미친 사유화를 멈춰라>의 서평을 쓰면서야 비로소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 사유화에 대한 포괄적이고 비판적인 안목을 가지게 되었다. 그만큼 이 책 역시 독자들이 읽기 쉬우면서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풍성하게 제공하는 좋은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라면 이 책의 제목을 <세계화의 덫>의 후속편, 즉 <사유화의 덫>이라고 짓고 싶다.
철도, 전기, 건강 보험, 연금을 사유화하면…
한국에서도 1993년 이래 '공기업 민영화'라는 이름 하에 사유화가 진행되어 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진행되어 온 사유화 논의와 정책은 통신과 철도, 전기, 가스, 상하수도 등 이른바 네트워크 기간산업에 국한되어 온 측면이 크다. 물론 이 책 역시 철도(영국), 전기(미국, 노르웨이), 상하수도(프랑스와 독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사유화와 그것이 초래한 비효율과 비극적 결과를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이 갖는 장점은 사유화 논의의 영역을 더욱 확장하여 사유화된 건강 보험, 사유화된 교육 주식회사, 사유화된 적립식 연금 제도 등도 다룬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건강 보험, 교육, 연금 제도를 사유화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공정'하다고 주장하는 주류 학자와 논객의 논리를 복지 제도, 금융 시장, 국가 재정 등 복잡한 제도에 관한 풍부한 지식과 설득력 있는 관점을 가지고 반박한다. 따라서 이 책의 많은 분석과 서술은 일반 독자만이 아니라 건강 보험과 연금 제도 등을 다루는 전문가도 참고할 것이 많다.
사유화의 덫, 선진화의 덫
더구나 이 책이 우리나라 독자에게 더욱 매력적인 것은 이 책의 저자들이 들고 있는 사례들이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 선진국인 영국, 미국, 독일,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등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는 서울대학교 박세일이 주창한 '선진화'를 말하며, 이명박 정부는 아예 선진화를 국정 모토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 선진화는 사실상 한국 사회의 총체적인 신자유주의화이며, 그 선진화의 일환으로 공기업 민영화와 함께 의료 산업화와 교육 산업화 즉 건강 보험, 교육, 연금 제도 등의 시장화가 추진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게 되면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보수 세력이 추진하는 '선진화'의 최종적인 결과가 무엇인지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이미 영국, 미국,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서 20여 년 전부터 일어난 '선진적인' 현상들이기 때문이다.
공기업은 특권과 부패? 사유화가 더 효율적?
이 책이 가지는 또 하나의 중요한 강점은 사유화가 결코 '효율적'이지 않다는 점을 구체적 증거를 들이대며 지적한다는 점이다. 흔히 주류 학자들은 국영 기업이 비효율적이고 부패한, 게다가 특권적인 관료와 공무원들, 게다가 노동조합 및 정치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까닭에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한다.
우리의 진보 세력 내부에도 "공무원 및 공기업 노동자의 철밥통을 깨는 것"이 민주주의이며, 그것이 '특권'과 '반칙'을 분쇄하고 '공정 사회'를 이룩하는 길이라는 시각이 큰 호응을 얻어 왔다. 특히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김대호 같은 이들은 '개발 독재' 시절에 구축된 거대한 마피아(관료, 공기업 임직원, 변호사, 의사, 노동조합 등)가 만든 '부패와 특권의 온상'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주요 모순이라고 보면서, 그들의 반칙과 특권을 분쇄하는 것이 진보의 가장 큰 과제라고 본다. 그리고 이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서는-'개발 독재'의 유산을 분쇄하는-신자유주의적 시장주의마저도 훌륭한 '진보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과연 철도와 전기, 가스의 사영화(민영화), 그리고 더 나아가 건강 보험 및 교육의 사유화, 노인 연금 등의 사유화가 과연 더 효율적이고 더 투명하며, 더 '공평'하고 더 '공정'한 사회를 이룩하는 길인가? 이 책이 잘 보여주듯이, 공기업 및 공공 부문의 사유화, 민영화야말로 오히려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비효율의 극치이며, 더구나 공공 재산을 몇몇 소수의 사유 재산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사익(私益)을 둘러싼 부패와 특권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마피아가 생성된다.
미국의 전력 산업 사유화 과정에서 부상한 엔론(Enron)의 경영진이 어떻게 월스트리트의 펀드매니저, 신용평가회사와 유착하여 소액 투자자와 직원을 등쳐먹었는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또 이 책은 영국의 철도 사영화 과정에서 등장한 새로운 철도주식회사의 주주들이 영국 정부와 국민을 어떻게 등쳐먹었는지, 얼마나 많은 특권과 특혜가 그들 투자자에게 제공되었는지도 잘 보여준다. 또 이 책은 상하수도 민영화/사유화 과정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좌파적인 만델라 정부와 볼리비아 문민 정부의 정치인들이 얼마나-세계은행 및 IMF의 후원 하에-특권화되었는지도 잘 보여준다.
사유화 과정, 더 나아가 시장주의화 과정 일반에서 탄생하는 새로운 마피아의 존재와 이해관계는 왜 세계 최고의 경영 효율성을 가진 우리나라의 인천공항을 왜 굳이 한국의 일부 관료와 정치인이 사영화/민영화하려 애쓰는지 그 숨겨진 이해관계를 짐작하게 해준다.
미국식 선진화와 유럽식 선진화가 다른가?
더구나 유럽인에 의해 쓰인 이 책은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 역시 신자유주의와 사유화 물결에 깊게 침식되어 왔음을 잘 보여준다. 특히 중요한 것은 전기와 가스, 상하수도 등을 공급하는 유럽의 사영화된 (과거의 공기업이었던) 서비스 업체들이다. 그리고 수익 극대화를 지상 목표로 하는 이들 서비스 대기업의 이해관계가 유럽연합(EU)의 대외 통상 정책에 매우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주는데, 이것은 한국과 EU 간의 자유무역협정(FTA) 역시 한미 FTA보다 더 한국에 불리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예컨대 비벤디(Vivendi) 등 프랑스의 상하수도 기업들이 세계 각국 정부에게 상하수도 사영화를 집요하게 요구하는 사례는 한국-EU FTA 비준 이후 유럽의 수도 회사들이 한국 정부에 대해 상수도 사영화를 집요하게 요구할 것임을 예고한다. 또 이것은 우리나라의 삼성엔지니어링, 두산중공업 등 상하수도 플랜트 업체들이 서울 등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에너지 및 상하수도 사업의 사영화를 위한 제도적 틀(규제 완화 및 사영화)을 성사하고자 EU 및 미국과의 FAT 협정을 밀어붙이는 사정도 짐작케 한다.
FTA와 사유화 : 왜 윤증현은 '서비스업 규제 완화'를 말하는가?
마지막으로 이 책은 사유화와 관련하여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하의 '서비스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S)의 문제점을 상세하게 분석한다. FTA를 했을 경우 논쟁의 핵심은 제조업이 아니라 서비스업이다.
한국의 제조업 국제 경쟁력은 이미 상당 수준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 따라서 한국-EU FTA가 되었건, 한미 FTA가 되었건, 자동차와 전자 등 제조업을 중심으로 수출 증대와 수입 증대 효과, 그 상쇄 효과 등의 득실을 계산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더구나 그 상쇄 효과를 각종 계량경제학 모델을 이용하여 추산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한국이 유럽 및 미국과 FTA를 했을 경우 정말로 중요한 피해는 서비스업 영역에서 발생한다. 특히 이것이 역진 방지 조항 및 투자자 국가 소송제와 결합되어 있을 경우에는 치명적이다. 그런데 서비스업이란 바로 상하수도, 철도, 우편, 가스, 전기, 의료, 노인 연금, 금융 등 국민들 개개인의 일상적 삶과 생존을 좌우하는 필수재이며 국민들 개개인에게 봉사/서비스하는 공공 인프라이다. 그런데도 재정경제부 장관 윤증현은 "내수를 살리기 위해서도 서비스업의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바로 이 점이다. 상층의 특권적 관료 세력은 건강 보험의 사영화와 공교육의 사유화 강화 등을 위해 FTA를 이용한다. 이것은 대형 할인점 규제를 완화하기 위하여 한국 정부가 유럽과의 FTA 협상을 핑계 대는 것과 같다.
만약 유럽 및 미국과의 FTA가 국회에서 비준될 경우에도 한국의 제조 기업은 여전히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FTA는 모든 국민 개개인의 생존에 필수적인 서비스 공공재의 사유화를 돌이킬 수 없이 확고하게 만들 것이고, 그리하여 일부 특권적 엘리트를 제외한 이 나라 국민들의 삶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국민들 상당수에게 상하수도와 전기 공급이 중단되고, 의무 교육과 건강 보험 혜택이 중단되는 일이 다반사가 될 것이다. FTA의 문제는 우리 경제의 국제 경쟁력 약화라기보다는 국민들 개개인의 '삶'이다. 그 삶이 위협받는다. 이것이 바로 '사영화의 덧'이고, 따라서 '미친 사유화를 멈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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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민영화, 그 재앙의 기록 (레디앙, 2010년 12월 04일 (토) 10:49:30 손기영 기자)
[새책] 『미친 사유화를 멈춰라』…피해현장 기록, 고발
『미친 사유화를 멈춰라』(미헬 라이몬·크리스티안 펠버 지음, 김호균 옮김, 김대중 그림, 시대의창 펴냄, 16,500원)는 그동안 세계 곳곳에서 실행돼온 무분별한 민영화(사유화)의 실체, 그 만행과 피해의 현장을 낱낱이 기록하고 고발한 책이다. 또 민영화 뒤에 감춰진 자본과 국제 정치의 이해관계를 파헤치고 저항의 대안 등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 한국어판에서는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한국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주와 편집자 주, 만화가 김대중 씨의 일러스트 등이 추가된 점이 눈길을 끌며, 특히 일러스트는 독자에게 내용을 충실히 전달하면서도 날카롭고 유머러스한 풍자를 선사할 것이다.
“의료보험 없이 사는 사람들은 물, 전기, 전화가 차단되거나 비참한 학교에 자녀들을 보내야 하는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대중교통에 의존하므로 그것을 어쩌다 한 번씩 이용하는 부유한 승객보다 승차요금 인상을 피부로 훨씬 많이 느낀다.” (본문 중)
오스트리아에서 각각 녹색당과 시민단체 활동을 해온 지은이들은 현장의 실천경험과 내공으로, 전 세계 각 분야의 사례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민영화가 초래하고 공기업이 회피해온 부작용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결국 사회 전체라고 꼬집는다. 실업자, 복지 수혜자, 환경 사고 증가가 비용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글로벌 경쟁을 위해 필요하다는 ‘선진화’(민영화)라는 공허한 구호 속에서 민영화의 실제 진행방식과 필연적인 부작용 등을 낱낱이 지적하고 알려주는, 내실 있는 책들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미친 사유화를 멈춰라』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더욱 필요한 책이기도 하다. 『낯선 식민지, 한미 FTA』의 저자인 이해영 한신대학교 교수는 “이 책은 이제 ‘민영화’에 대한 레퍼런스(참고 문헌)가 될 것이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신자유주의를 가르치고 공부하면서 허전했던 한 부분이 이로써 해결되었다”며 이 책을 적극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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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1 10:58 2012/08/1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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