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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교수 2013년 신년 인터뷰 “안철수씨 제3정당 만들어 양당구조 깨는 게 한국 정치에 더 바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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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에서 신년 기획으로 지그문트 바우만 교수에 이어 최장집 교수와 인터뷰를 했다. 최장집 교수가 어느 지면에서든지 한 마디할 줄 알았는데, 그게 경향이었다.
 
인터뷰 내용에는 최장집 교수가 평소에 주장하던 바들이 그대로 녹아 있다. 정당정치, 좋은 정부에 대한 강조가 그 핵심이다. 다양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 이렇게 일관되게 자신의 틀을 적용하는 학자가 많지는 않은 듯하다. 그것만으로도 이 인터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얘기를 풀어보면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들이 드러난다. 꼭 그의 분석틀에 기대지 않더라도 말이다. 우선 세대별 표심의 차이에 대해서 사회경제적 조건과 상황이 청년세대와 중년세대를 갈랐다고 보진 않는다는 대목에 동의한다. 다만, 민주정부에 대한 경험과 실망이 가져온 결과도 있었겠지만, 박권일이 언급한 것처럼 정치적 변동폭이 커지고 이데올로기나 문화적 코드가 상대적으로 힘을 발휘하기 쉬운 한국사회의 특성도 작용하였다. 표가 갈라진 것을 ‘경제적 합리성’의 영역에서 설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민주당 및 문재인 후보의 선거운동, 새누리당 및 박근혜 후보의 선거운동, 안철수 씨의 활동 등에 대한 평가에도 동의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민주화 세력의 쇠퇴에 대해서는 ‘민주 대 반민주’를 고수하고 이것을 담론화하려는 언론, 지식인엘리트들의 영향력의 쇠퇴로 명확하게 규정한 게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를 야권이 정치적으로 신뢰할 만한 세력으로 거듭날 경우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연결하는 건 지나친 것이 아닐까. 그렇게 승리하는 게 어떤 의미일지에 대해서도 검토해야 하고...
 
"민주진보 진영이 ‘운동’의 방식과 논리, 언어로 민주주의를 이해했기 때문에 정당을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대목은 최장집 교수가 항상 하던 주장이다. 민주당에게는 이 주장이 나름 타당성이 있다고 보지만, 좌파 진영에게도 이게 들어맞는 걸까. 좌파 진영에 어울리는, 운동의 방식과 논리, 언어가 민주주의에 녹아들어가서 좌파 정당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도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최장집 교수는 박근혜 당선인의 과제에 대해서만 언급했는데, 박근혜 정부의 전반적인 기조에 대한 얘기가 빠진 것이 아쉽다. 개인적으로는 박근혜 당선인과 이명박 대통령을 비교했을 때 박정희 정부의 유산(박근혜 당선인이 긍정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을 계승하겠다는 의욕은 강한 반면, MB의 '성공한 CEO'와 같은 자신의 프라이드도 약하고, 역량 또한 그리 뛰어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MB처럼 밀어부치는 정치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또한 자신이 의지해왔던 3대천왕을 통해 필터링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게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측면 또한 존재한다. 그리고 지배계급 내의 역관계에 대한 분석도 필요한데, 이 부분도 명확하지 않다는 게 향후 전망을 불투명하게 한다. 
 
인터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노동자의 이익과 요구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으며, "지금은 어떻게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언급과 안철수씨가 제3의 정당을 만든다면 그것 자체가 한국 정치사와 정당체제의 중대한 변화이고, 이를 통해 안철수씨가 한국 정치사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대목을 연결하는 것이다. 즉, 이러한 전망과 희망(?)이 나름대로 개연성이 있다면 한국의 좌파세력은 이에 대응하는 무엇인가를 지금 당장 해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도 기회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향후 노동 세력이 표로 결집하여 정당과 함께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좌파정당의 틀일 가능성은 가면 갈수록 희박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2013년 체제 어쩌고 하는 걸 떠나 좌파정당의 재정립에 대해 바로 지금 진지한 모색이 필요하다. 몇 년 뒤로 이 과제를 미룰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 점에서 지금의 진보신당 당직선거에 주목한다. 단지 여러 진보정당 중에서 왜소한 한 정당의 움직임이 아니라 우리가 의제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들을 부각시키면서 안철수가 아닌 다른 의미의 새로운 정치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출발점으로서 말이다. 그렇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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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기획 - 2013년을 말한다](2) 최장집 교수 (경향, 장은교 기자, 2013-01-01 22:02:57)
ㆍ“국민의 절실한, 엄중한 요구에 비해 대선 후보들이 너무 약했다”
ㆍ“안철수씨 제3정당 만들어 양당구조 깨는 게 한국 정치에 더 바람직”
 
▲ 박 당선인 통합 내용 빈약 사회적 약자 인정해야 진정한 통합 이뤄져
▲ 또 경제민주화 통해 아버지 단순계승이 아닌 그 유산에서 벗어나야
사회경제적 양극화로 변화 요구가 절박했고, 노동, 복지, 고용확대, 빈곤문제 등 사회경제적 이슈가 전면에 부상한 최초의 대선이었다. ‘전환적 리더십’이 요구됐다. 그러나 시대적 엄중함에 비해 후보들은 너무 약했다. 국민의 요구는 절실했으나 정치적 대응은 기대할 게 없었던 선거였다.
 
‘2013년 체제’라는 말은 현실에 기초하지 않았던, 단지 관념적이고 추상화된 어떤 이상이랄까, 희망을 담은 슬로건적 담론이상이 아니었다. 중대선거가 되려면 정당체제가 재편되고 전환적인 리더십을 갖추는 게 필요한데, 이번에 유권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후보들은 강력한 후보들이 아니었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의 전략은 진보 진영은 정당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주의적 민주관’이 지배했다. 민주당이 한 파벌의 범위를 넘어 통합적인 정당으로서 기능하지 못한 상황에서 치러진 선거였다.
 
유권자들이 민주당의 바람과는 달리 이번 선거를 ‘권위주의 대 민주주의’의 대결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우리 유권자들의 중요한 평가 기준은 후보가 속한 정당이 과연 좋은 정부가 될 수 있는가이다. 좋은 정책을 실현할 능력을 가진 정부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평가 기준이다. 정당은 평상시 유권자들에게 신뢰할 만한 집단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회고적 투표의 수혜자가 될 수 있으려면 전망적 견지에서도 통치할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이 점에서 민주당과 후보가 취약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높은 불만과 반감에도 새누리당이 재집권한 것은 민주당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결과다.
 
50대는 민주화를 겪으며 민주정부에 기대도 컸고 그 기대만큼 실망도 함께 가진 경험을 한 세대다. 그래서 50대는 정치적 판단에 있어 이상과 이념적 요인에서 벗어나서 점점 더 현실주의적 선택을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50대가 그렇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그러나 사회경제적 조건과 상황이 청년세대와 중년세대를 갈랐다고 보진 않는다. 두 세대가 지금 다 어렵다. 두 세대가 사회경제적 이해관계에 있어 상호 대립한다든가 차이가 있어서 다른 투표 행태를 보여준 건 아니다. 이들의 표 차이를 만든 것은 민주정부에 대한 경험과 실망이 가져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연결시켜서 회고적 심판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야권은, 진영논리의 틀에 사로잡힌 결과이기도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집권 내내 ‘반MB’에 주력해왔다. 그러다가 대선 국면이 돼서 갑자기 ‘반박근혜’로 전환하다보니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 보이는 것이다. 박근혜 진영은 재빨리 당명을 바꾸고 당의 주도세력도 바꾸면서 새누리당과 이명박 정부의 분리에 주력했고 결국 성공했다.
 
정당을 중심으로 많은 유권자들이 선거에 참여했나를 살펴보면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선거법이 과도하게 선거과정에서의 열기를 가라앉게 하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민주화 이후 선거제도 개혁의 결과는 유권자를 탈정치, 탈정당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민주주의 중심 요소 중 하나가 참여라고 본다면 매우 부정적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민주파엘리트들의 문제가 지적될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들은 선거과정을 운동 중심적으로 접근했고, 어떻게 능력있고 신뢰받을수 있는 대안적 정부를 만들수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제보다, 정서적 급진주의에 사로잡힌것처럼 보였다. 아마 ‘민주 대 반민주’를 고수하고 이것을 담론화하려는 언론, 지식인엘리트들의 영향력은 쇠퇴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을 민주진보 진영의 쇠퇴라고 보지는 않는다. 민주화 세력의 쇠퇴라는 말은, 부지불식간에 민주 대 반민주라는 진영 간 대립을 상정한다.
 
정치적으로 신뢰할 만한 세력으로 거듭나면 야권이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한국 사회는 그동안 거의 변혁적인 변화를 해왔다. 문제는 이것을 제도적으로 더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걸 못한 사람들이 책임지고 비판을 받아야지, 전체적으로 진보 진영이 쇠퇴했다고 보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것 아닌가. 한 사회에서 진보적인 세력을 대표하는 표가 48%에 이른다는것은, 서구 어떤 나라에서도 보기어렵다.
 
▲ 당으로서 조직과 역할 제대로 갖추지 못한 민주당의 전략적 실패는 비판할 수 있어도
민주화세력 쇠퇴했다 말하는 것은 매우 잘못
신자유주의가 정치·사회·경제적 기반과 민주주의를 위협할 정도로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지만 정치는 정치로서 자율의 영역이 있다. 정치가 잘하면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사회경제적 결과에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대선 결과를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결과로 돌리는 것은 정치가 할 수 있는 역할과 공간을 회피하게 하고, 보이지 않게 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국민이 어려운 경제환경에서 어느 후보가 이 문제를 더 잘 해결하거나, 현실의 경제문제를 더 잘 해결할 능력이 있는가를 평가한 것이다. 새누리당도 신자유주의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경제민주화와 양극화문제, 복지확대라는 경제 이슈를 갖고 민주당과 경쟁했다.
 
‘통합’이라는 것이 그럴싸해 보이지만 내용이 빈약하다.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전체 사회의 공익을 강조하다가 사회의 ‘부분 이익’들이 무시되고 억압되는 과정을 거쳐왔다. 경제성장 과정에서도 노동자들의 부분 이익은 무시되고 제대로 의사를 대변할 수 있는 기회나 인권이 허용되지 않아 결과적으로 우리는 심각한 노동문제를 안게 됐다. 진정한 통합을 위해서는 소외된 사회집단과 사회적 약자들을 인정해야 한다. 집단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가치를 상호 인정하는 태도와 정책이 요구된다. 거기에 수반해서 부분 이익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정희식 발전모델’은 권위주의와 정치적 억압을 동반하지 않고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불완전한 모델이다. 박 당선인은 경제민주화를 통해서 아버지를 단순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서야 한다. 책임정치의 구현이라는 것은 평상시 통치할 때부터 순환적 관계로 굴러가야 한다. 국정운영에서 정당을 소외시켜서는 안된다. 행정부와 청와대 중심의 정치가 강해질수록 권위주의적 요소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에 역할을 많이 부여해야 한다.
 
이번 대선이 경제민주화 이슈를 중심으로 갔다면 그 문제는 더 많이 진전됐을것이고, 더 구체적이 됐을 것이다. 정치쇄신이 갑자기 들어와서 논점이 흐려졌다. 한국의 정치는 정당이 발전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나는 제도를 통해 정치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에 반대한다. 정당공천 개방, 국민경선제 법제화, 국회의원 정수 축소 등의 안은 전부 정당의 기능을 약화시키거나 범위를 좁히는 개혁이다.
 
통치를 위임받은 지도자가 자신의 가치, 목표, 취향을 잘 이해하고 따르는 측근을 임명하는것을 부정적으로 볼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에선 다른 나라에 비해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공직이 굉장히 많다. 제도적으로 대통령의 임명 범위를 정하고 줄이는 방향으로 개혁이 있으면 좋겠다.
 
민주진보 진영은 ‘운동’의 방식과 논리, 언어로 민주주의를 이해했기 때문에 정당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실현가능한 이념과 정책 프로그램을 가지고 통치하는 능력을 배양하지 못했다. 민주 대 반민주라는 진영 간 대립으로만 일관했을 뿐 국가를 운영하는 대안세력으로서의 능력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민주 대 반민주라는 이분법적 진영논리를 만들어내고, 이런 것이 민주진보 진영 내에서 다양한 이념이나 정책 대안의 정치세력화를 억압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안철수 현상’에서도 나타난다. 안철수 현상의 핵심은 무당파가 민주당의 규모만큼 커졌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실패이기도 하지만, 이 영역 안에 다양한 정치이념과 이해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런 세력이 하나의 정당으로 대표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이익과 요구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이번 대선에서 느껴지는 것은, 한국 진보정당의 초라한 모습과 해체였다. 노동 세력이 꼭 정당으로 발전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들이 표로 결집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정당과 함께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게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안철수가 나타난 것은 현대정치에서 발견되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적 현상이다. 정당에서 대표되지 않았고 제기되지 않았던 이슈가 카리스마적인 인물을 통해 표출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일정한 시간이 지난뒤 소멸되거나 정당으로 통합되거나 둘중 하나이다. 그 자체로서는 오래갈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제3의 정당을 만든다면 그것 자체가 한국 정치사와 정당체제의 중대한 변화다. 한국 정치는 양당 구조가 기본 틀인데 제3의 정당이 나타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바람직하다. 양당제가 잘못 돌아가면 일종의 담합구조가 된다. 안철수씨가 한국 정치사에 기여하려면 제3의 정당을 만들어서 성공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다. 민주당의 개혁을 위해서도 외생적 정당의 충격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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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2 22:11 2013/01/02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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