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경제연구소, 국가정책 형성에 주도적으로 개입
시사In에서 지령 300호를 맞아 한국의 파워 집단을 4회 연재하면서 첫 번째로 삼성경제연구소를 다루었다. 이미 어느 정도 아는 내용이지만, 이를 집중적으로 분석하다 보니 세리의 존재가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세리뿐만 아니라 기업 부설 연구소에서 나오는 보고서들이 대부분 부실하고 별 내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정부관료로부터 선호되는 현상, 이건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홍일표 보좌관도 글에서 지적하지만, 이와 비교하여 진보진영, 특히 노동조합운동 진영의 싱크탱크 상황은 너무 열악하다. 게다가 있는 것도 약화되고 있고, 서로 네트워크되지 않으며 파편적인 게 현실이다. 물론 노력을 하는데도 주목도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포장을 잘 해서 될 게 아니다. 어쩌면 현재의 진보진영에게 닥친 위기를 돌파하는 데 이러한 진보적인 싱크탱크의 역할이 클 텐데, 많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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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성공 뒤에 세리의 ‘문화 정치’ 있다 (변진경 기자, 시사IN [300호] 2013.06.17 23:00:49)
지령 300호를 맞아 ‘한국의 파워 집단’을 4회 연재한다. 첫 번째 집단은 삼성경제 연구소(SERI). SERI의 활약에 힘입어 삼성의 지식·문화 정치가 성공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작성한 보고서는 정부 관료들의 회의 탁자 위에 오른다. 이곳에서 뽑은 ‘읽어야 할 책’과 ‘히트상품’과 ‘추천 앱(애플리케이션)’은 신문지면을 도배한다. 기업 임원과 공무원들은 이곳이 여는 포럼과 강연을 찾아가 수첩을 펼친다. 직장인과 대학생들은 이곳 인터넷 홈페이지 회원으로 가입하거나 스마트폰으로 ‘카톡’ 친구를 맺어 인생과 처세의 지침이 될 만한 지식과 정보를 배달받는다. 이곳은 한 기업 산하의 경제연구소일 따름이다. 다만, 그 기업의 이름이 ‘삼성’이다.
삼성경제연구소(SERI)의 전신은 1986년 7월 설립된 삼성생명(당시 동방생명) 부설 경제·경영 연구소다. 자본금 7억원, 연구원 수 25명으로 출발한 이 연구소는 27년이 지난 지금 국내 최대 규모의 경제 연구소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말 기준 종업원 수 289명, 매출액 1545억원을 기록했다. 연구원 수는 145명(2013년 5월31일 기준)으로 국내 최대 국책 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43명(산하 센터·대학원 포함)보다 훨씬 적지만, SERI의 지난 한 해 지출액 1568억원은 KDI의 2012년도 예산 1661억원과 거의 맞먹는다.
규모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삼성경제연구소는 단순한 기업 산하 싱크탱크를 넘어섰다. 정부 기관에서 발주하는 연구 용역 보고서 등을 통해 ‘SERI의 제언’은 국가 정책에 반영된다. 경제정책실, 글로벌연구실, 금융산업실 등 9개 연구실로 구성된 삼성경제연구소는 정통 연구 인력뿐 아니라 공무원·정치인·학자·언론인 등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들어오거나 나가는 정거장 구실을 한다.
탁월한 언론 교감과 어젠다 세팅
텍스트·동영상·오디오·인포그래픽스 파일로 작성돼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되는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 보고서 내용은 한 해 평균 1700회 이상(2008~2012년 기준, 언론진흥재단 검색 서비스를 통해 9개 종합일간지, 3개 경제신문, 3개 방송사 기사 검색 집계) 언론 보도에 인용된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내건 미션(임무) 가운데 하나인 ‘국가와 사회를 선도하는 권위 있는 오피니언 창조자’가 그대로 실현된 셈이다.
무엇이 오늘날의 삼성경제연구소를 만들었을까? SERI의 경쟁력 가운데 하나는 ‘다양하고 실용적인 주제의 보고서’이다.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부상하는 안티에이징’ ‘경력 입사자의 전략적 관리방안’ ‘헬스케어 3.0 건강수명 시대의 도래’ ‘중국의 두만강 이니셔티브와 정책적 시사점’ 등 최근 1년 사이 발표된 보고서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SERI의 연구는 다양한 분야와 수요층을 아우른다.
싱크탱크 전문가인 홍일표 박사(민주당 김기식 의원 보좌관)는 “연구의 전문성과 수준을 떠나, 삼성경제연구소처럼 시의성 높은 어떤 사안을 읽고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주며 탁월한 언론 교감 능력과 어젠다 세팅 능력을 갖춘 연구소는 이제까지 없었다”라고 말했다. 한 증권회사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행,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다른 연구기관에서 나오는 고급 경제 정보를 접하고 해석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에게 SERI 보고서는 지나치게 단발성 이슈를 다루고 깊이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일반 대중의 선호를 이끌어내는 요인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을 빼놓고 삼성경제연구소의 성장을 설명할 수는 없다. 1990년대 삼성경제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재직했던 박승록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수한 인력과 전문성을 키우기 좋은 연구 환경 등 여러 요인이 많지만 삼성경제연구소가 이만큼 성장하게 된 가장 큰 배경에는 삼성이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있었다. 자사의 경영 전략을 세우는 데에 그치지 않고 통 크게 공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삼성그룹이 오늘날의 삼성경제연구소를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삼성의 대변자’ 그 이상
‘통 큰’ 연구 활동은 삼성경제연구소의 영향력 범위를 기업에서 나라로, 나라에서 세계로 넓혔다.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에 이어 현재 경제 서적 저술가이자 라디오 방송 진행자로 활동하는 곽수종 박사는 “최우석 2대 소장 시절에는 매스컴에서 조명하기 전에 연구소가 먼저 이슈를 발굴해 기삿거리를 만들 정도로 사회적 담론 형성에 탁월했고, 정구현 3대 소장 시절에는 국내에 제한된 연구 활동을 중국·미국 등으로 넓혀 글로벌화를 이끌었다”라고 말했다. 실제 SERI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한 ‘연구소 연혁’을 통해 1998~2002년을 ‘삼성의 SERI에서 한국의 SERI로’, 2003~2005년을 ‘동아시아 싱크탱크로’를 이룩한 기간이었다고 기록했다.
국가와 세계로 뻗어나간 삼성경제연구소는 그러나 여전히 삼성의 그늘 아래 있다. 1991년 4월 주식회사 삼성경제연구소로 독립 법인을 꾸렸지만, 2013년 5월31일 기준 삼성경제연구소의 지분은 삼성전자(29.8%), 삼성SDI (28.6%), 삼성전기(23.8%)를 비롯한 삼성 계열사가 100% 소유하고 있다. 연구소 사무실은 서울시 서초동 삼성생명 서초타워에 자리 잡았으며, 지난해 1532억6700만원에 이르는 수익을 올리는 데 기여한 주요 고객 역시 삼성전자(600억6900만원), 삼성SDS(87억9300만원), 삼성물산(75억4600만원)과 같은 삼성 계열사들(전체 998억1700만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삼성경제연구소가 ‘삼성의 대변자’ 이상을 뛰어넘기 힘들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선대인경제연구소의 선대인 소장은 2010년 4월 SERI가 발표한 보고서 ‘저출산 극복을 위한 긴급 제언’을 예로 들었다. “저출산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고 출산 유인책을 제안하는 와중에 뜬금없이 하나 끼어 있는 대안이 바로 ‘상속세 인하’였다. 상속세 부담이 줄어들면 아이를 많이 낳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아무리 뛰어난 연구 인재라도 자신에게 보수를 지급하는 사람의 이해관계를 벗어나서 일할 수는 없으니 이런 황당한 연구 결과가 나오는 것 아닌가.”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 4~5년간 다시 ‘삼성의 경제연구소’로 역할을 축소해나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전직 SERI 연구원은 “연구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던 분위기가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즈음을 기점으로 계열사의 경영을 지원하는 쪽으로 많이 바뀌었다. 사회적 책임 연구와 그룹 지원 연구의 비율이 전에는 50대50이었다면 지금은 거의 10대90 수준으로 기울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삼성경제연구소는 삼성이나 재계 대변자 이미지를 지우고 객관적 지식 연구자로서 권위를 획득하는 데 꽤 성공했다. 예를 들면,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을 보도하는 언론 기사(지난 5월9일자 <KBS 뉴스광장> ‘내년 최저임금 어떻게? …노동계·재계 입장 팽팽’)에서 노동계 의견을 말하는 한국노총 부위원장, 재계 주장을 전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에 이어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이 중립적 시각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인터뷰 대상자로 등장하는 식이다.
또한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의 ‘지식 친구’가 됐다. ‘세리(SERI)’라는 친근한 별칭으로 불리는 삼성경제연구소의 지식과 정보는 홈페이지 회원 211만7010명, 카카오톡 친구 36만3092명, 트위터 팔로어 22만1682명에게 매일 부지런히 배달된다. 기업 임원들은 연회비 150만원을 내고 세리CEO 교육을 받고, 대학생과 직장인들은 연회비 40만원을 내고 세리프로(SERI Pro)에서 유료 정보를 얻어간다.
지난 4월27일 한국 비판사회학회 봄철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 ‘스마트 통치의 등장: 삼성경제연구소의 등장과 영향력 강화’를 통해 이광근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와 이경환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은 “자신을 특정 자본 혹은 자본 일반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이 아닌 매년 대한민국의 경제 전망을 예측하는 전문가 집단으로서 자리매김하면서 SERI의 시민사회 장악력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SERI는 우리 사회 지식 생태계의 상징
홍성태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삼성경제연구소의 이런 활약을 통해 삼성의 지식·문화 정치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사람들의 의식을 진리의 차원에서 포섭하는 지식 정치의 핵심을 아주 정교하게 구사했을 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친근감을 높여 대중 스스로 삼성이 생산해낸 콘텐츠를 찾아오게끔 유도하는 문화 정치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경제연구소 측은 연구소가 가진 이런 힘을 오히려 부인했다. SERI 측은 “우리는 소박하게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연구원들일 뿐인데 자꾸 어떤 영향력을 가진 집단으로 알려지는 게 참 곤혹스럽다”라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센’ SERI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선대인 소장은 “언론 지형도가 그렇듯, 한국 사회에서 정보의 왜곡과 불균형으로 여러 모순을 만들어내는 것이 비단 삼성경제연구소만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일표 박사는 “싱크탱크 일반의 발전 없이 한쪽의 입장만 대변하는 기업 산하 연구소의 주장이 검증과 평판 형성 과정을 비켜나 계속 확산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힘의 균형추가 기울어진 한국 사회의 지식 생태계를 보여주는 상징이 바로 SERI라는 것이다.
손님들 북적이는 ‘권력 정거장’ (변진경 기자, 시사IN [300호] 2013.06.17 23:36:49)
SERI는 관료·정치인·교수·언론인 등 각계의 유력 인사를 영입하거나 배출하는 우리 사회의 권력 정거장이다. 정부 공무원이 SERI를 거쳐 삼성 고위 임원이 되는가 하면, SERI 연구원이 정부 관료가 되기도 한다.
2004년 8월, 삼성경제연구소(SERI)의 김병기 연구위원(사장급·현 서울보증보험 사장)은 출근하는 데 ‘실패’했다. 참여연대·경제개혁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그의 삼성행이 불법이라고 따지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의 전 직책은 재정경제부 기획관리실장. 29년 동안의 공직 생활 후 삼성경제연구소로 향하는 그를 두고 시민단체는 공직자가 퇴직 후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기업체에 2년간 취업을 못하도록 규정한 공직자윤리법(17조)을 어겼다며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취업을 제한할 것을 요청했다. 말이 경제연구소이지 사실상 삼성그룹의 구조조정본부에 취업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이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5개월 뒤 김 사장은 삼성경제연구소로 출근했다.
김 사장뿐 아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관료·정치인·교수·언론인 등 각계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영입하거나 배출하는 우리 사회의 권력 정거장이다. 청와대나 정부 기관에서 일하던 공무원들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몇 년 머무른 뒤 다른 삼성 계열사 고위 임원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하고 다른 기업이나 공공 기관의 고위 간부로 초빙돼 나가기도 한다. 거꾸로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이들이 정책 결정자로 낙점되어 청와대나 정부 기관으로 향하기도 한다. 학계·언론계와의 인적 교류도 활발하다.
이제까지 가장 많이 알려진 건 김병기 사장처럼 관료가 삼성경제연구소로 향한 ‘전관예우’ 사례이다. 경제기획원 경제교육기획국 국장과 서울 도봉구청장을 지낸 김익수 전 삼성엔지니어링 상임감사는 1995년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영입됐고, 이규황 전 건설부 국토계획국장은 1999년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종화 전 공정거래위원회 독점국 국장도 1998년 삼성경제연구소로 향했다. 이 전 국장은 이후 삼성전자 상임감사를 거쳐 현재 삼성전자 보좌역 고문이다.
참여정부 시절 이 같은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김은호 전 대통령비서실 사회정책수석실 보좌관(현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조정실 수석연구원), 이석준 전 금융감독원 회계감독국 기업회계3과 과장(현 삼성전자 북미 경영지원팀 팀장), 정병기 전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국 조사1과 과장(현 삼성전자 전무) 등이 삼성경제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이원덕 삼성경제연구소 고문도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 사회정책수석비서관을 지낸 인물이다.
언론인들도 연구소로 많이 갔다. 구종서 전 삼성경제연구소 전문위원(현 한국문명사연구소 소장), 신성순 전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현 고려대 언론학부 석좌교수), 최우석 전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 모두 <중앙일보> 편집국 출신이다. 심상민 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현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은 <한국경제신문> 등에서, 황인선 전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조정실 상무(현 삼성카드 상무)는 <서울경제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2010년 MBC 내부 정보를 빼내 물의를 일으킨 삼성경제연구소의 한 직원도 MBC 기자 출신이었다.
한편으로 삼성경제연구소는 연구소 출신들을 사회 각계로 배출하기도 한다. 대학 교수 가운데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 출신이 많은데 이들은 여전히 연구 활동이나 강연 등을 통해 삼성과의 끈을 유지한다. 지난 4월 ‘복합산업단지의 고용 및 지역경제 파급효과’라는 연구에서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등 4개사가 충남 아산 복합산업단지에 입주하면서 고용·세수 증가 등 지역사회가 발전했다”라고 평가한 김갑성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전 삼성경제연구소 정책연구센터 수석연구원), ‘런 삼성 포럼(Learn SAMSUNG Forum)’ 강연자로 나서 삼성의 성공 비결을 전파한 김종만 명지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와 성상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가장 눈에 띄는 이들은 삼성경제연구소 출신의 정부 관료이다. 2005년 국가정보원 국가정보관(차관보급)으로 발탁된 이언오 전 삼성경제연구소 전무(현 부산발전연구원 원장), 2004년 통일부 정책보좌관으로 임명된 김연철 전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 수석연구원 등 참여정부 때 사례도 있지만, SERI 출신의 활약은 이명박 정부 때 특히 두드러졌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은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 외교통일안보분과위원회 자문위원으로, 고 김휴종 전 삼성경제연구소 문화산업담당 수석연구원은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실 문화예술비서관으로 참여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SERI 출신 활약
민승규 전 삼성경제연구소 정책연구센터 수석연구원(현 삼성경제연구소 전무)과 남양호 전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 수석연구원(현 한국농수산대학 총장)은 2008~2011년 연이어 청와대 농수산식품비서관을 지낸 뒤 각각 농촌진흥청장,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세청장·공정거래위원장·청와대 정책실장 등을 지낸 백용호 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 교수도 2000년대 초반 객원 연구위원 신분으로 삼성경제연구소에 몸담은 바 있다.
이번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삼성경제연구소 출신 인사들의 활약이 이어졌다. 김희락 국무총리 비서실 정무실장, 신동철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 신세돈 전 박근혜 캠프 경제자문단 좌장(현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 고정민 전 한국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현 홍익대 경영대 교수) 등이 모두 삼성경제연구소 출신이다.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전문위원을 지낸 홍순직 전주비전대 총장도 산업자원부 부이사관에서 삼성경제연구소로 자리를 옮긴 뒤 삼성자동차·삼성미래전략위원회·삼성SDI 등에서 근무한 ‘SERI 출신 삼성맨’이다.
참여정부와 세리 달콤쌉싸름한 관계 (이종태 기자, 시사IN [300호] 2013.06.17 23:36:36)
참여정부는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 내용을 반영해 정책 방향을 결정하곤 했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 FTA, 민간 의료보험 확대 등이 그 결과였다. 하지만 재벌 총수의 지배권 문제와 관련해서는 서로 의견을 달리
요즘 유명 기업과 인사들의 이력 캐기에 여념 없는 ‘종북 사냥꾼’이라면 귀가 번쩍 뜨일 이야기. 한 대기업 계열 경제연구소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를 대내외에 선포’ 따위 종북(?)적 주장을 내놓은 적이 있다. 경제뿐 아니라 정치·사회·교육·한반도 분야를 망라한 ‘국가전략’ 차원의 연구 보고서에서 ‘(정부) 부처별 추진 로드맵’까지 제시하면서, 평화협정을 당시 통일부의 중장기(2005~2010년) 과제로 설정했던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003년 말 발표한 <국민소득 2만 불로 가는 길>이 바로 그것이다. 2003년은 참여정부가 출범한 해다.
보고서는 미국·영국 등 대국(大國)과 유럽의 소국(小國)들이 이른바 ‘마(魔)의 1만 달러’로 불리던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벗어나 ‘2만 달러 이상 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던 비결을 분석한다. 이를 바탕으로 각 정부 부처가 2010년까지 추진해야 할 과제(로드맵)를 그렸다. 일개 민간 기업 연구소가 ‘국가전략 보고서’를 만든 것.
이는 대한민국의 전통적 국가-자본 관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개발독재 시기 ‘대한민국’은 경제기획원 같은 부처를 통해 발전시켜야 할 산업(과 기업)을 선별하고 이 부문으로 사실상 국유 금융기관이었던 시중은행을 통해 자금을 집중시킬 수 있었던 ‘강성 국가’였다. 이런 강성 국가 시대는 1990년대 중반부터 저물기 시작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5년 베이징에서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일갈해 김영삼 당시 정부를 격노케 한 것이 그 시대적 징후다.
<국민소득 2만 불로 가는 길>의 핵심적 ‘시사점’은 시장주의와 개방이다. 자본(기업과 돈)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는 ‘지구화 시대’인 만큼, 이런 자본을 많이 끌어들이는 것(외자 유치)이 한국 같은 나라의 성장 비결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세율을 내리며, 산업평화를 이루고, 투자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국내 제도를 바꿔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식 기반 경제’ 시대인 만큼,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국내에 우수한 인적 자본이 많아야 한다. 그러므로 ‘수월성 위주의 교육’을 통해 국내 인적 자본의 질을 높이고 이를 위해 자립형 사립고와 전문대학원을 육성한다. 이 보고서는 ‘한·중·일 3국 간 FTA’를 주장하는데 이 또한 외국 자본 유치를 위해서다. 중국과 일본 시장을 노리는 외국 기업들이 이 나라들이 아니라 한국에 전진기지를 만들고 싶을 정도로 국내 비즈니스 환경을 친기업적으로 바꿔야 한다. 평화협정을 주장한 이유 역시 “한반도의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북한의 시장체제 진입을 지원함으로써 근본적인 위험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국민소득 2만 달러 전략’의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친노 의원들과 지속적으로 세미나 열어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고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4개월여 만에 삼성경제연구소의 ‘2만불론’은 국정목표가 된다. 그해 6월30일 노 전 대통령은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론’을 제시하고 이의 구체화를 정책기획위원회에 맡겼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직전인 2003년 2월 ‘국정운영 백서’를 받았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 2개월 동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활동한 결과다. 그런데 ‘국정운영 백서’가 하나 더 있었다고 한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인수위에 제출한 <국정과제와 국가운영에 관한 어젠다>라는 400쪽 분량의 보고서다. 완료 시기와 그 주제로 볼 때 <국민소득 2만 불로 가는 길>과 대동소이한 내용으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인맥으로도 연결된다. 노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던 이광재 전 의원이 자주 거론된다.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정책팀장을 맡았던 윤석규씨에 따르면, 대선 몇 달 전부터 이광재씨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출간한 <국가 전략의 대전환>이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대선 공약에 반영하자고 했다. 이 전 의원은 친노 그룹의 다른 의원들과 ‘의정연구모임’을 결성해 삼성경제연구소와 지속적으로 공동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이 세미나에서 ‘주요 지역별 거점형 FTA 우선 체결, 의료·교육·법률 시장 조기 개방’ 의제가 나온 것이 2004년이다. 한국을 외국 자본에 매력적인 나라로 만들자는 ‘매력 한국론’ 역시 이 모임에 2005년 6월 제출된 자료에 나온 내용이다.
‘매력 한국’에서 ‘매력’이라는 용어의 출처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삼성경제연구소의 2002년 4월 보고서인 <국가경쟁력의 현실과 정책방안>이 등장한다. 이에 따르면, ‘매력 중시 전략’은 ‘자국을 기업하기 좋은 매력적인 시장으로 만듦으로써 국내 기업은 물론 외국 기업들이 쉽게 들어오도록 하는 개방적 유인 전략’이다. 아일랜드의 공격적인 외자 유치 정책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든다.
아일랜드는 2000년대 중반까지 조세피난처 구실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외국 자본을 유치해 급성장했다. 이 보고서가 나온 지 6년여 뒤에는 국가 부도로 수십만 아일랜드 국민이 ‘2만 달러로 가는 길’이 아닌 이민길에 오르기는 했다. 매력적인 나라 중 하나는 중동의 두바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005년 5월 내놓은 <두바이, 세계로 열린 중동의 허브>에 따르면 “(두바이의 자유무역지대는) 세금 및 노동쟁의가 없으며, 발생 수익 전부를 본국에 보낼 수 있는 등 최적의 비즈니스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두바이 역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초토화되었다.
이런 삼성경제연구소의 이데올로기는 의료 부문에서 매우 구체화되었다. 2005년 8월 <전략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이라는 보고서는, 이른바 ‘지식 기반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를 ‘시장경쟁의 제한’으로 돌린다. 예컨대 전기 부문은 공기업(한국전력)이 독점하고 있으며, 의료 부문 역시 ‘영리병원(병원 주식회사) 금지’ 등 진입장벽 때문에 산업으로서의 발전이 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병원을 이용한 영리행위를 금지하는 규제 때문에 이 부문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와 의료 관광도 제안했다.
삼성보다 과격했던 참여정부의 ‘금융 허브론’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초 취임 2주년 국정연설과 2006년 신년연설에서 의료 서비스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도록 당부한다. 이윽고 민간 의료보험이 확대되었고, 영리병원과 심지어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까지 정부 차원에서 논의되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07년 2월에는 <의료서비스 산업 고도화와 과제>에서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를 주장한다. “의료 서비스 산업에 경쟁적 요소를 도입해 산업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소비자의 후생을 증대시키는 산업 고도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를 순수한 국가발전 전략으로 간주하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삼성그룹의 계열사로 삼성생명과 삼성병원이 있어서일 것이다. 특히 삼성생명은 그룹의 돈줄인 동시에 이후 상속 과정에서 중요한 구실이 기대되는 계열사이기도 했다.
이렇듯 참여정부의 정책 방향과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 내용이 맞아떨어지곤 했다. 그러나 “삼성경제연구소가 한국의 이른바 신자유주의 혹은 금융자본주의를 선도했고, 참여정부가 그 꼭두각시 노릇을 했다”라는 진보 진영 일각의 시각을 온전히 사실로 보기는 어렵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한·미 FTA를 ‘장기적 과제’로 간주했다. 세계 최강의 경제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사실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단기간에 밀어붙였다. 참여정부의 ‘동북아 금융 허브’는 ‘외국자본 유치론’이라는 점에서 삼성경제연구소의 ‘매력론’과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금융 허브는 삼성의 개방론보다 더 과격한 개방과 시장화를 지향했다. 한국이 금융 허브를 목표로 한다면, 국내 기업에 대해서도 인수합병을 활성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기업의 경영권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재벌 구조, 즉 기업 집단의 결속력을 최소한 느슨하게 하거나 혹은 재벌 총수의 지배권을 무력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흐름에 대해 삼성경제연구소는 지속적으로 반감을 표시해왔다. <국민소득 2만 불로 가는 길>에서는 ‘기업 지배구조를 둘러싼 불필요한 논쟁을 지양’하자고 주장했고, 2005년의 한 보고서를 통해 “소유권과 지배권의 차이인 괴리도가 기업의 시장가치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도 발견할 수 없었다”라고 뒷받침한다. 이건희 가문이 1~2%의 ‘소유’ 지분으로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한다고 해서 계열사들의 주가가 떨어진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2007년의 다른 보고서에서는 국내 기업이 초국적 헤지펀드들의 인수합병 타깃이 되면 “기업의 투자와 고용안정, 나아가 국민경제의 안정과 성장에까지 해를 입히게 된다”라며 경영권 방어 제도의 보강을 주장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재벌의 지배권에 대해서만은 시장주의와 개방을 거부했던 것이다.
지원과 연대로 독립 싱크탱크 키워야 (홍일표 (사회학 박사·국회 보좌관), 시사IN [300호] 2013.06.17 23:36:16)
한국 정책 지식 생태계는 극단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시민사회 싱크탱크의 인력과 예산을 다 합쳐도 삼성경제연구소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정부와 언론의 지원, 대중의 관심이 필요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싱크탱크와 시민사회 프로그램’은 2006년부터 매년 세계 싱크탱크의 순위를 발표해왔다. 지난 1월28일 발표된 2012년도 순위에서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가 182개국 6603개 싱크탱크 가운데 최고 싱크탱크로 선정되었다. 한국 싱크탱크 중에서는 대외경제연구원(56위), 한국개발연구원(58위), 동아시아연구원(65위), 외교안보연구원(79위), 자유기업원(106위) 등이 150위 안에 속했다.
그런데 삼성경제연구소는 전체 순위는 물론 지역별·분야별 순위 안에도 없다. 예상 밖의 결과다. 다만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고의 영리 싱크탱크’ 명단에서 발견되었다. 조사에 참여한 1950명 이상의 싱크탱크 전문가들에게 삼성경제연구소는 삼성이라는 ‘기업’이 만든 연구소이자,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세계 싱크탱크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처럼 저평가되는 것에 비해, 국내에서의 평가는 과도하다고 할 정도이다. 2012년 조사에서 2위로 한 계단 내려가기는 했으나, 4년 연속으로 삼성경제연구소는 한 경제 주간지 조사에서 국내 경제·산업 분야 최고 싱크탱크로 선정되었다.
정부 부처들의 삼성경제연구소 선호도 유별나다. 2010년 보건복지부는 삼성경제연구소에 ‘미래 복지사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산업 선진화 방안’이라는 연구 용역을 무려 5억원짜리 수의계약으로 발주했다. ‘최고의 연구팀’을 구성한다면 특정 연구기관을 지정할 수 있다는 규정을 근거로 했다고 설명하지만, 결국 ‘삼성경제연구소’라는 이름값 때문이었으리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지난해 행정안전부는 공무원들이 정책 수립 시 참고하는 정부통합 지식행정시스템에 삼성경제연구소를 연결하기 위한 기술적 검토를 진행하다가 특정 기업 편향을 우려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다른 연구소들로 대상을 확대하기도 했다.
언론의 삼성경제연구소 의존은 ‘편향’을 넘어 ‘중독’ 수준이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동아일보>의 경우 2001년부터 10년간 삼성경제연구소라는 이름이 3000번 이상 등장했다. 거의 매일 등장한 셈이다. 정책 결정자뿐만 아니라 언론과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이토록 넓고 높은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최근 발표된 한 학술 논문에서는 삼성경제연구소가 “자신의 이익을 공적 담론과 정책으로 전환시키면서 이른바 ‘삼성 공화국’ 현상, 혹은 자본의 국가 지배 현상을 강화시켰다”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삼성경제연구소를 그저 단순한 ‘기업’ 연구소, 그리고 일개 싱크탱크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독 현상’에 대해 삼성경제연구소는 억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싱크탱크는 ‘학계와 정책 결정자,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며, 응용과 기초학문의 성과를 정책 결정자와 대중이 이해하기 쉽고, 신뢰할 만하며, 접근하기 용이한 언어와 형태로 번역하여 독립적인 목소리를 냄으로써 공익에 이바지하는 기구’라고 정의된다. 필요한 자원의 동원은 소액 후원, 고액 기부, 연구 용역, 컨설팅 비용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며, 기업의 계열사 형태나 기업 재단의 지원을 받는 싱크탱크 또한 가능하다. 컨설팅 회사나 관련 기업들과 직접 시장경쟁을 벌이는 싱크탱크 역시 적지 않다. 독일의 베텔스만 재단이나 일본의 노무라 연구소 등이 대표적이다. 헤리티지 재단이나 미국기업연구소, 케이토 연구소 등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들이 친기업·친시장 성향이라는 사실 또한 익히 알려져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그들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좀 더 잘 운영되고 있을 뿐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너무 큰 덩치, 경쟁도 검증도 불가능
삼성경제연구소가 우리 사회에 어떤 ‘문제적 존재’인가에 대한 고민은 삼성경제연구소와 삼성의 관계가 아니라 한국의 정책 지식 생태계, 좁게는 싱크탱크 생태계 차원에서 이뤄질 필요가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석·박사급 연구원 수가 100명을 넘는 데 비해, 시민사회 싱크탱크들의 상근 연구원 수는 평균 4명에 불과하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한 해 영업이익이 1500억원이 넘고 자산이 1000억원이 넘는 데 비해, 1년 예산이 1억원 미만인 시민사회 싱크탱크가 전체의 30% 이상이다. <동아일보>에 10년간 33개 시민사회 싱크탱크가 보도된 건수는 고작 441건인데, 삼성경제연구소 한 곳이 2700건이 넘었다. 사실상 비교가 불가능하고 무의미한, 절대적인 불균형 상태다.
이 정도로 불균형한 생태계는 생존 자체가 어렵다. 한국의 정책 지식 생태계야말로 가장 극단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인 셈이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등 노동계 싱크탱크들 전체의 연구 인력을 다 더해도 삼성경제연구소 연구 인력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예산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독일의 베텔스만 재단이 크다고 하지만, 독일 노총의 한스뵈클러 재단이 운영하는 경제사회연구소도 규모와 영향력, 전문성 모든 면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다. 이렇듯 한국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진보와 보수, 노동과 자본, 국가와 시민사회 싱크탱크 사이의 치열한 아이디어 전쟁은 그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다.
그렇다면 경쟁이 아닌 최소한의 검증은 가능한가?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가 ‘대학에 가지 않아도 성공하는 세상’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과잉 학력론을 주장하자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에 보고서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한 장문의 비판 글이 게재되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재반박을 하지 않았고, 다른 언론들은 비판 글에 무관심했다. <한겨레>가 2010년부터 1년간 진행했던 ‘싱크탱크 맞대면’이라는 논쟁 지면에도 삼성경제연구소는 끝내 등장하지 않았다. 괜한 논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경쟁은커녕 논쟁과 검증도 이뤄지지 않는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 보고서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호의적이지 않다. 사실 학계의 기준을 싱크탱크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여러모로 무리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싱크탱크 연구물의 질에 대한 논란이 빚어지곤 한다. 그때마다 싱크탱크 연구자들은 “우리들이야말로 가장 혹독한 ‘동료 평가(peer review)’를 매일매일 받는다. 이곳은 전쟁터이자 시장터다”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한국의 싱크탱크 사이에 동료(의식)도, 철저한 검증도, 치열한 경쟁도 발견하기 어렵다. 이러한 왜곡의 정점에 삼성경제연구소가 서 있는 셈이다.
결국 ‘균형’이 필요하다. 헤리티지 재단을 필두로 한 보수 싱크탱크의 위력이 너무나 커졌을 때, 미국 진보 진영은 미국진보센터를 만들었고 진보 싱크탱크 네트워크를 강화함으로써 균형을 맞추려 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시도가 계속되었지만, 절대적인 자원 부족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싱크탱크 간 연대와 협력은 시도되지만 정부의 지원이나 언론의 관심, 대중의 지지는 태부족이다. 정부나 정당이 가진 정책 자원의 배분, 경쟁과 검증 강화를 위한 언론의 노력 없이 싱크탱크 생태계의 균형 발전은 불가능하다. 삼성경제연구소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연구소가 클 수 있도록 하는 전략적 자원 배분이 필요하다. 하지만 궁금하다. 정말 삼성경제연구소가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제대로 된 독립 민간 싱크탱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삼성’경제연구소에 대한 관심을 넘어 ‘연구’를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대안적 지식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얼마나 절실히 느끼는지. <한겨레> 창간이나 <뉴스타파> <국민TV> 출범과 같은 대중적 열망이 대안 싱크탱크 설립으로 모아질 때야 비로소 ‘삼성경제연구소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삼성, 삼성경제연구소를 넘어서야 한다.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34629.html
그후 20년, 삼성은 국가가 되었다 (한겨레21 2013.06.03 제963호, 정은주 기자)
[특집] 미국식 경영 시스템 접목한 1993년 신경영 선언 뒤 ‘국내 1위’ 넘어 ‘세계 기업’으로… 경제·정치·사회 전 분야 영향력 급증했으나 총수가 과실 독점하는 ‘이익·비용 불일치’ 구조 확대
1993년 6월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 호텔. 삼성그룹 핵심 경영진 2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51살 이건희 회장은 ‘질 위주의 경영’을 선포하며 이렇게 말했다.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다.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
1987년 11월 이병철 회장이 타계한 뒤 아버지를 이어 2대 회장으로 취임한 이건희 회장이 6년간 그룹의 문제점과 한계를 연구한 뒤 밝힌 경영철학이다. 이 회장은 1997년에 발간한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회장에 취임하고 나니 막막하기만 했다. 내가 모든 걸 짊어져야 하는데 세계경제는 저성장의 기미가 보이고 있었고 국내 경제는 3저 호황 뒤의 그늘이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이런 상황인데도 삼성 내부는 긴장감이 없고 ‘내가 제일이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자산 13배, 그룹 시가총액 44배 증가
다 바꿀 대상은 ‘나’였다. 1993년 9월에 펴낸 <삼성新경영>에서 이 회장은 “나부터 변해야 한다”고 밝혔다. “뭐든지 좋다. 자기 자신이 양심적으로 생각해서 ‘이것은 남한테 해롭다’ 하는 것을 다 없애보자. 그런 뜻에서 우선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이 인간미와 도덕성 회복이다. 이제 개인의 이기주의, 집단이기주의를 없애보자.”
20만 명에 달하는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을 강제로 바꾼 ‘7·4제’(아침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가 신호탄이었다. 사회 통념을 깬 새로운 규범으로 신선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서다. 또 생산라인을 중단시키더라도 불량률을 선진국 수준으로 낮추고, 한 품목만이라도 세계 제일의 제품을 만들도록 요구했다. 1995년엔 이른바 ‘불량제품 화형식’도 열었다. 그해 3월9일 경북 구미사업장에서 삼성전자 임직원 2천 명이 모인 가운데 휴대전화·팩시밀리 등 시가 500억원 상당의 제품을 망치로 부수고 태워버렸다. 질 경영을 내세운 신경영은 이후 10년간 강도 높게 추진됐고 그 결과 삼성은 반도체를 비롯해 TV와 휴대전화 분야에서 눈부신 외적 성장을 기록한다.
1993년 30조원에 못 미치던 매출은 2012년 380조원으로 13배, 그룹 시가총액은 같은 기간 8조원에서 338조원으로 44배나 불어났다. 그룹 총자산도 435조원으로, 세전이익도 39조1천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이건희 회장 취임 이후 1991년부터 1997년까지 한솔그룹과 새한그룹, CJ(옛 제일제당), 신세계그룹, 보광그룹이 잇따라 계열 분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적표다. 취임 때 현대그룹(당시) 등에 밀리던 재계 순위도 독보적인 1위로 굳혔고, 무엇보다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가 세계 9위에 올라섰다. 브랜드컨설팅그룹 ‘인터브랜드’의 집계를 보면, 2012년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329억달러(약 36조원)로 전년(234억달러)에 견줘 8단계 상승했다. 오랜 경쟁 상대인 소니·파나소닉 등 일본 기업을 크게 앞지른 결과다. 새로운 경쟁자도 눌렀다. 애플이 스마트폰을 선보이면서 휴대전화의 절대강자였던 노키아는 재기 불능의 늪에 빠졌지만 삼성전자는 반대로 애플을 제쳤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가 발표한 2013년 1분기 글로벌 휴대전화 판매량 집계를 보면,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30.8%의 점유율을 기록해 1위를 차지했다. 피처폰을 포함한 전체 휴대전화 시장에서도 23.6%를 기록했다. 2위는 18.2%에 그친 애플이었다. 삼성전자의 1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52조8700억원, 8조7800억원이다. 2분기에는 갤럭시S4와 갤럭시노트8.0 덕분에 영업이익이 11조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송재용·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2011년 7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삼성 성공의 패러독스’라는 논문을 내어 삼성의 성공 요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삼성은 전통적인 일본식 경영 시스템을 받아들였으나 이건희 회장이 1993년 신경영을 도입한 이후 미국식 경영을 적극 접목하면서 두 가지 경영의 장점을 결합한 특유의 삼성식 경영을 만들어냈다.” 한창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도 “반도체나 스마트폰 같은 천문학적 투자가 필요한 사업 분야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오너’가 신속하고 과감하게 의사결정을 내렸다”며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을 빼고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계열사로 떠넘긴 삼성자동차 실패 비용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절대적 영향력과 리더십은 동시에 치명적인 그림자를 드리운다. “사업 실패의 부담이 계열사에 돌아가는 대신 성공과 과실은 총수가 갖는 ‘비용·이익 불이치’가 존재”(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하기 때문이다. 삼성자동차의 경영 실패가 그랬다. 이 회장은 자동차 수집광이다. 미국 유학 시절에는 자동차에 심취해 1년6개월 동안 자동차를 뜯고 조립해서 되팔아 자동차를 여섯 번이나 바꾸었다고 한다. 1987년 취임 초에 이 회장은 비서실에 승용차 사업 진출 방안을 수립하도록 지시했다. 삼성생명을 통해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려다 실패하고 1995년 일본 닛산자동차와 기술을 제휴해 자동차 회사를 설립했다. 공장 설비와 자동차 부품을 일본에서 수입해 조립하고 1998년부터 중형차 SM5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법정관리에 들어간다. 손실은 2조4500억원에 달했다.
1999년 이건희 회장은 삼성생명 주식 400만 주를 내놓으면서 손실보전을 약속했고 2000년 말까지 현금화가 되지 않을 경우 31개 계열사가 공동 책임지기로 합의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기한이 넘어갔고 채권단이 이 회장과 삼성 계열사를 상대로 소송(소송액 4조7830억원)을 냈다. 2008년 1월과 2011년 1월 1·2심 재판부는 합의서의 효력을 포괄적으로 인정하며 채권단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이 회장에게는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이 회장이 내놓은 삼성생명 주식을 팔아도 채권단의 손실이 보전되지 않을 경우, 나머지 손실의 원금과 지연이자는 모두 계열사가 떠맡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박근용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당시 합의서는 그룹 구조조정본부 차원에서 이건희 회장의 책임을 면하고자 계열사의 팔을 비틀어 지급보증을 하게 한 것”이라며 “원금 부족분과 지연이자는 당연히 이 회장이 추가로 개인 재산을 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법 앞의 평등’ 원칙도 이건희 회장은 가볍게 비껴간다. ‘삼성 X파일’과 삼성 비자금 사건이 대표적이다. 2005년 6월 삼성공화국의 실체를 보여주는 ‘삼성 X파일’이 공개됐다. 1997년 9월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삼성전자 이학수 부회장과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나눈 사적 대화를 불법으로 녹음한 파일인데,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삼성이 정·관계 인사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엿볼 수 있는 자료였다. 하지만 삼성 일가는 검찰에서 끝내 무혐의 처분을 받은 반면, 삼성의 ‘떡값 검사’를 공개한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만 되레 명예훼손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노 전 의원은 2013년 2월 결국 의원직을 잃었다.
눈감아준 비자금, 재벌 편법 증여 선례로
2007년 10월29일 김용철 전 삼성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변호사)의 양심고백을 계기로 떠오른 삼성 비자금 사건에서도 레퍼토리는 똑같았다. 김 변호사는 삼성이 자기도 모르게 차명계좌를 개설해 50억원가량의 현금을 입출금했다고 밝혔다. 이후 이건희 회장은 여론에 밀려 비자금 사건의 책임을 지고 2008년 4월 경영 퇴진을 선언했다. 삼성특검은 이 회장이 임직원 명의의 1199개 차명계좌로 4조5천억원에 이르는 비자금을 운영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고 이병철 회장이 물려준 미신고 재산이라는 삼성의 변명을 그대로 수용했다. 결국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서만 이 회장을 기소하고 정작 중요한 비자금의 조성과 사용처에 대한 수사는 깨끗하게 덮었다.
재벌그룹의 한 임원은 비자금 사건이 삼성에 오히려 득이 됐다고 평가했다. “4조원 넘는 차명재산이 약간의 세금과 벌금만 내고 양성화되는데, 3세로의 경영권 세습도 사실상 면죄부가 주어지지 않았느냐.” ‘나쁜 선례’는 꼬리를 이었다. 이후 CJ와 신세계, 한화그룹에서도 총수가 차명계좌를 이용해 상속·증여세를 탈루하거나 개인 자금을 운영한 사실이 드러났으나, 삼성과 똑같이 선대 회장의 상속재산이라는 논리로 법망을 교묘히 피해갔다.
2009년 12월 이건희 회장은 유례없는 단독 사면을 받고 2년 만에 경영 일선에 복귀한다. 명분은 ‘위기론’이었다. “삼성의 대표 제품들도 10년 내 모두 사라질 수 있다.” ‘오너경영 예찬론’을 펼치며 대부분의 언론도 적극 지원 사격에 나섰다. 2012년 <중앙일보> 경제매거진 <이코노미스트>가 쓴 기사의 일부를 보자. “2년간 독립 경영에 나선 삼성은 지지부진했다. 무엇보다 그룹 전체적으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게 문제였다. 삼성 내부에선 ‘우리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란 불안이 커졌지만 책임질 만한 사람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독립 경영 2년간 삼성은 ‘망망대해를 나침반 없이 떠다니는 배’로 전락했다는 내부 평가가 팽배했다.”
하지만 돌아온 이건희 회장은 예전보다 더 강해진 절대 권한을 거머쥐었고 2012년 4월에는 거침없는 발언으로 외신의 주목을 받는다. 이 회장의 맏형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등이 유산 관련 소송을 제기하자 형 맹희씨 등을 ‘수준 이하’라고 표현하며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말한 것. 이에 맹희씨가 “건희가 어린애 같은 발언을 하는 것을 듣고 몹시 당황했다. 건희는 형제간 불화만 가중시켜왔고 자기 욕심만 챙겨왔다”고 비난하자, 이 회장은 다시 ‘퇴출된 양반’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격정적으로 감정을 드러냈다. “이맹희씨는 감히 나를 보고 ‘건희’ ‘건희’ 할 상대가 아니다. 나를 포함해 누구도 (이맹희씨를) 장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평소 말을 아끼기로 유명한 이건희 회장이 요즘 완전히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다”며 삼성가의 재산 분쟁이 TV 통속극처럼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파이낸셜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도 “막장 연속극 수준”이라거나 “추악한 다툼”이라고 보도했다.
“진보 정권 들어서도 삼성과 타협할 것”
1인자의 거침없는 발언을 자제시키거나 거를 수 있는 시스템이 삼성 내부에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게 사실은 더 큰 문제란 지적이 많다. 삼성 신경영에서 ‘헌법’이라 규정한 △인간미 △도덕성 △에티켓이란 윤리강령은 이건희 회장에겐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김병권 부원장은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다 바꾸라’라고 신경영을 선언했지만 지난 20년간 경영권 세습이나 황제 경영 등은 더욱 강화됐다”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데 삼성은 글로벌 추세에 따라가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삼성의 절대 독주는 국민경제 시스템에도 위험신호로 읽힌다. 1987년 범삼성그룹의 자산은 국내총생산(GDP)의 5.7%였으나, 2010년에는 무려 20%로 증가했다. 그중 CJ·신세계를 제외한 삼성 단독으로도 GDP 대비 17.4%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총설비투자에서의 점유 비중도 마찬가지다. 2010년의 경우 범삼성그룹은 우리나라 총설비투자의 16.9%, 삼성그룹 단독으로도 15.3%를 담당하고 있다. 이 수치들은 삼성생명 등 10개 금융계열사는 감안하지 않은 것이다.
김상조 교수는 <종횡무진 한국경제>에서 “재벌공화국을 넘어 삼성공화국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렵지 않은가?”라고 반문한다. “어느 정권이 이들의 요구, 특히 삼성의 요구를 무시할 수 있겠는가? 진보정권조차도 재벌과 타협하기 십상일 것이다.” 특히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중소기업의 존립을 위협하고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길을 막고 있다면, 국민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선순환 구조를 깨뜨릴 수 있다고 했다. 안철수 의원(무소속)도 2011년 3월 카이스트 석좌교수 시절 관훈클럽 초청 포럼에서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관행이 국가경제에 악순환을 불러온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신생 업체는 삼성이나 LG, SK 등 대기업에 납품하기 위해 불공정 독점 계약을 울며 겨자 먹기로 맺게 되는데 그 순간 삼성동물원, LG동물원, SK동물원에 갇히게 된다. 결국 연구·개발(R&D) 투자 등을 하지 못한 채 동물원에서 죽어야만 빠져나갈 수 있다.”
경제 영역을 넘어 정치·사회 전반에까지 삼성의 신경영이 영향을 미친다고 홍성태 상지대 교수(문화콘텐츠학)는 설명한다. “삼성의 힘은 (삼성그룹 산하) 삼성경제연구소가 객관적 연구 결과로 전환해 발표·확산시키는 ‘삼성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다. 핵심 내용은 ‘삼성이 최고이며, 삼성이 최고의 지위를 차지한 것은 순전히 능력과 노력 덕분이라는 생각’이다. 반대로 부당 내부거래, 불법 상속, 노조 탄압, 정경유착 등은 철저히 감춘다. 엄청난 잘못을 저질러도 많은 사람이 ‘역시 삼성’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삼성공화국의 지식정치 사령부이며, 지식정치의 출발점이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삼성공화국의 ‘지식정치 사령부’ SERI
1986년 세워진 삼성경제연구소는 1990년대 초부터 서울시의 ‘시정개혁 프로젝트’ 등 공공부문에 참여하면서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키웠다. 규모 면에서도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을 웃돌고 연구인력, 투자액, 홈페이지 방문자 수, 유료 회원 수, 언론 보도 횟수 등에서도 압도적 우위를 차지한다. 이광근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와 이경환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4월27일 열린 2013년 비판사회학회 봄철학술대회에서 비슷한 주장을 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출범 당시 기업환경 분석부터 시작해 90년대 초반 한국 자본의 위기감 고조 속에서 등장한 신경영 전략의 고안과 다른 기업 컨설팅을 넘어서 국가의 정책 형성 과정에 참여하게 되는 수준으로 지속적으로 확대됐다. 특정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이 아닌 매년 한국 경제 전망을 예측하는 전문가 집단으로서 자리매김해 삼성경제연구소의 시민사회 장악력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논문 ‘스마트 통치의 등장: 삼성경제연구소의 등장과 영향력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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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584218.html
“삼성경제연구소, 국가정책 형성에 주도적으로 개입” (한겨레, 안선희 기자, 2013.04.23 21:09)
27일 비판사회학회서 논문 발표
‘범국가적 의제 설정’을 목표 삼아
정부 발주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
자본 넘어 이데올로기 권력 강화
참여정부 때 연구소 영향력 정점
FTA 등 기업친화적 정책 이끌어
“삼성과 관료, 집권세력 이해 일치“
삼성그룹 산하 경제연구소인 삼성경제연구소(SERI=세리, 이하 삼성연구소)가 어떻게 ‘성장 지상주의’, ‘국가경쟁력 강화’ 담론 등을 사회에 유포시키며, 한국 사회에서 삼성의 이익과 영향력을 키우는 데 일조했는지 분석한 논문이 나왔다.
이광근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와 이경환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은 오는 27일 열리는 2013년 비판사회학회 봄철학술대회에서 ‘스마트 통치의 등장: 삼성경제연구소의 등장과 영향력 강화’ 논문을 발표한다. 두학자는 논문에서 “삼성연구소의 경제 예측과 각종 보고서, 연구원들의 인터뷰는 언론과 인터넷 등을 통해 사회에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다”며 “외환위기 이후 성장 지상주의가 국가경쟁력 이데올로기를 통해 정당화되는데, 삼성은 이 과정에 삼성연구소를 참여시켜 국가의 정책 형성에 주도적으로 개입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논문을 보면 삼성연구소는 다른 연구집단(싱크탱크)과 구별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싱크탱크는 지지자들이나 후원자들을 위한 연구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삼성연구소는 자신들의 임무를 “풍요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범국가적 의제 설정(아젠다 세팅)”이라고 규정하며 훨씬 ‘공격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1986년 만들어진 삼성연구소는 1990년대 초부터 서울시의 ‘시정개혁 프로젝트’ 등 공공부문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키우기 시작한다. 96년에는 정책연구센터까지 만들어 정부 부처별 조직 진단, 신규사업 타당성 조사 등 다양한 정부 발주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한다. 규모 면에서도 대표적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나 다른 기업연구소 등에 비해 연구인력, 투자액, 홈페이지 방문자 수, 유료 회원수, 언론 보도 횟수 등에서 압도적 우위를 자랑하게 된다.
논문은 삼성연구소의 대정부 영향력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가 참여정부 때였다고 분석하고 여러 사례를 제시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2003년 6월5일 ‘2기 신경영지침’에서 ‘마의 1만달러 장벽’, ‘2만달러론’ 등을 언급한 뒤, 2003년 6월30일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론’을 제시했고, 이는 이후 참여정부의 국정목표로 자리잡게 된다. 당시 정부가 추진한 ‘서비스산업 중심론’도 삼성연구소가 2005년 열린우리당 의원들과의 토론회에서 제기한 ‘매력한국론’(교육·의료 부문을 개방하고 시장주의를 강화해 적극적으로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과 거의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추진에서도 삼성의 영향이 나타난다고 논문은 지적한다. 2004년 9월 이광재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 주도한 ‘의정연구모임’은 삼성연구소와 공동으로 세미나를 주최하고,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을 위해 한미 에프티에이를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논문은 참여정부 당시 삼성의 이런 ‘역할’에 대해 “국내 재벌 일반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그래서 특정 자본에 더 의존하게 된) 집권세력, 재벌 주도 성장 지상주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는 관료, 대자본 삼성의 이해관계가 합치한 결과였다”며 “이런 상황은 소위 ‘진보 개혁세력’이 언젠가 다시 집권할 때 또다시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논문은 “이명박 정부가 등장하면서 삼성연구소는 오히려 정책형성 과정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게 된다”며 “이는 이명박 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대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펴면서 불확실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논문은 “하지만 삼성연구소가 자신을 특정자본(삼성)이나 자본 일반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이 아닌 ‘국가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고 경제 전반을 예측하는 전문가집단’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우리 사회의 의식구조 전반에 대한 장악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자신의 이익을 공적 담론과 정책으로 전환시키면서 소위 ‘삼성공화국’ 현상, 혹은 자본의 국가 지배현상을 강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30427175939
"진보정권 들어서도 삼성연구소 힘 커진다"… 왜?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 2013-04-28 오후 12:51:37)
삼성경제연구소 정치적 영향력 다룬 논문 발표
국내 최대 사설 연구기관인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오늘날 가진 영향력은 재벌 자본이 국가 운영의 주체로 올라선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을 분석한 논문이 발표됐다. 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정부의 힘이 약해진 대신, 삼성경제연구소가 정부 정책 결정에 개입해 그룹의 이익을 국가의 이익으로 대치시켰다는 내용이다.
이광근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와 이경환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은 27일 전북대에서 열린 비판사회학회 봄철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스마트 통치의 등장: 삼성경제연구소의 등장과 영향력 강화'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와 같이 주장했다. 특히 논문은 삼성경제연구소의 힘이 노무현 정부 시절 크게 강화된 상황에도 주목했다. 다음 진보 정권에서도 이와 같은 현실이 반복될 수 있다고 논문은 전망했다.
"'국민소득 2만불' 목표, SERI 작품"
이들은 논문에서 삼성경제연구소의 공공 연구 개입이 이미 90년대부터 이뤄졌다고 밝혔다. 논문을 보면, 90년대 초 독립법인이 된 삼성경제연구소는 1994년 서울시 시정개혁 프로젝트 진행을 시작으로 공공 정책 연구 능력을 크게 강화시켰다. 이미 외환위기 이전인 1996년 정책연구센터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논문은 삼성경제연구소의 이와 같은 노력이 "1997~1998년 외환위기(IMF 체제) 이후 보다 강화되었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삼성경제연구소의 지향점은 스스로 밝힌 임무에서도 드러난다고 논문은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삼성경제연구소는 주요 임무로 "풍요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범국가적 의제 설정(Agenda Setting)"이라고 규정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우리 사회에 미친 가장 큰 영향력으로 논문은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 담론이었던 '국민소득 2만불' 담론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을 꼽았다. 이전 삼성그룹에서 근무했던 김용철 변호사 역시 노무현 정부의 국정 과제 설립에 삼성경제연구소가 깊숙이 관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논문은 '국민소득 2만불'의 등장 시기를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 6월 5일로 꼽았다. 이날은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 선언 10주년을 맞이해 '제2기 신경영지침'을 발표한 날이다. 이날 이 회장은 "'마의 1만 달러 장벽', '2만 달러론'을 언급"했다고 논문은 밝혔다. 그리고 어느새 노무현 정부의 주요 국정 아젠다에 '국민소득 2만불' 담론이 급작스럽게 올랐다고 논문은 지적했다.
실제 2003년 6월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 경제비전 국제회의 개막연설'에서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론을 제시했다. 그리고 정책기획위원회에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구체화할 것을 지시했다. 같은 해 7월 14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운용방향과 8.15 경축사를 거치면서 '국민소득 2만불' 담론은 노무현 정부의 확고한 국정 목표로 자리 잡았다.
한미 FTA 추진해 '서비스업' 성장… 과실은 누가?
이후에도 삼성경제연구소의 영향력은 지속됐다고 논문은 전했다. 논문은 "삼성경제연구소는 여러 정부 출연 연구소들과 함께 노무현 정부의 경제운용계획 입안에 참여"했으며, 그 실례로 "'2003년 하반기 경제운용 계획'은 국민소득 2만불 달성을 위한 다섯 가지 실행계획을 담았다"고 전했다.
그 다섯 가지 항목은 △하이테크 신제품 선정 △공기업 민영화 △정리해고 체제의 안착 △정규직 노동자 과잉보호 축소 △자유무역지대 설치다. 아울러 논문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서비스산업 중심론' 등은 삼성경제연구소가 2005년 열린우리당 의원들과의 토론회에서 제기한 '매력한국론'과 동일한 지향과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했다. 서비스산업 중심론은 교육과 의료부문을 개방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정책과제의 상당 부분은 자본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좋지 않은 정책으로 국민에게 인식되고 있다. 아울러,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지금도 우리 사회의 큰 문제를 양산한 정책으로 비판받고 있다.
특히 한미 FTA 체결 과정에서도 삼성경제연구소의 영향력이 두드러졌다고 논문은 전했다. 논문은 주요 사례로 지난 2004년 이광재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 주도한 '의정연구모임'을 꼽는다. 이 모임은 삼성경제연구소와 공동으로 세미나를 주최했고, 당시 도출한 결과가 '국민소득 2만 달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을 포함한 경제 강국과의 FTA였다는 게 논문의 내용이다.
재벌 이해가 국가 이해와 동일시
한미 FTA를 비롯해 삼성경제연구소가 제안한 정책의 상당 부분은 대형 재벌 자본에 이익이 집중되는 결과를 낳았다. 서비스 시장 개방과 의료산업 개방 등으로 대표되는 한미 FTA의 경우, 이미 국내 최대 보험사와 고급 의료시설을 가진 삼성그룹의 이해와 일치했다. 이처럼 광범위한 연구 주제를 잡음으로써 삼성경제연구소는 다른 재벌 산하 연구소는 물론, 국책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비해서도 압도적인 덩치를 가진 대형 연구소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논문은 분석했다.
문제는 삼성경제연구소가 "연구 아젠다에 대한 자율적 결정권"을 누리고 "이익집단의 사적인 이익이 아니라 공공 목적에 부응"해야 하는 '싱크탱크(Think Tank)'가 가져야 할 덕목을 갖지 못했다는 데 있다. 논문은 삼성경제연구소의 이와 같이 취약한 공공성이 국가 비전 수립 과정에 개입하면서, 특정 자본의 이해가 국가의 이해와 동일시되는 문제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이를 두고 논문은 "삼성경제연구소의 성장은 경쟁국가의 특성을 구성하는 몇 가지 계기가 중첩되어 나타난 것"으로 해석 가능한 동시에 "발전국가의 특성으로 지목된 '배태된 자율성' 혹은 '통제된 상호의존성'이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여기서 경쟁국가와 발전국가란 1987년 민주화 체제 이전과 이후 달라진 한국의 상황을 대입하면 이해가 쉽다. 이전 독재 국가 체제에서는 경제 성장이 '국가의 과제'였다. 이를 두고 논문은 발전국가라 칭했다. 경쟁국가는 민주화 이후 시장주의를 받아들여 상호 경쟁 체제를 인정한 상황을 통칭한다.
즉, 삼성경제연구소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처럼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원인은 "지식 기반 경제로의 이행, 국가 기능의 외주와 공사 협치(공공과 사익의 상호 협조)의 대두"라는 경쟁국가 체제의 특성과 "이전의 전면적인 정경유착이 변모하면서 지식생산과 정책실행이라는 분야까지 정경분업이 이뤄"진 발전국가의 진화 모형이 동시에 드러난다고 논문은 설명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과거 정경유착의 배경 아래에서 민주화 이후 강화된 힘까지 지님으로써, 특정 자본의 이익을 국가의 이익으로 등치시킬 수 있는 힘까지 갖게 됐다는 뜻이다. 논문은 특히 이른바 '진보 세력'으로 분류된 노무현 정부 시절 삼성경제연구소의 영향력이 겉으로 크게 드러난 상황에 주목했다.
그 이유로 논문은 "지배적 자본인 삼성-재벌 주도 성장지상주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관료-국내 재벌과 관계가 원만하진 못했던 집권 세력의 이해 합치"를 꼽았다. 지배력이 취약했던 노무현 정부가 관료를 통해 삼성과 손을 잡았다는 설명이다.
논문은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을 두고도 "그것이 구조적 강제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자본으로부터의 지지가 취약했던 노무현 정부의 선택"이기도 했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논문은 "이러한 상황은 소위 '진보개혁세력'이 언젠가 (다시) 집권했을 때 또 다시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4282156125&code=960201
‘SERI’는 어떻게 참여정부의 정책수립에 개입했나 (경향, 김종목 기자, 2013-04-28 21:56:12)
ㆍ이광근·이경환 연구원 ‘스마트 통치의 등장’ 발표
“참여정부가 출범한 해인 2003년 6월5일 ‘신경영’ 10주년을 맞이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제2기 신경영지침을 발표하면서 ‘마(魔)의 1만달러 장벽’ ‘2만달러론’을 언급한다. 출범 초기 참여정부는 전체를 아우르는 총체적 국정목표가 약하다는 판단을 내부적으로 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급작스럽게 ‘국민소득 2만달러’ 담론이 주요 국정 아젠다로 등장하게 된다.”
이광근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과 이경환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이 삼성경제연구소(SERI)의 성장 배경과 그것의 결과를 국가-자본 관계의 변화 측면에서 설명한 논문 ‘스마트 통치의 등장 : 삼성경제연구소의 등장과 영향력 강화’를 27일 한국 비판사회학회 봄철학술대회(전북대)에서 발표했다. 이들은 “이건희 회장의 입을 통해 등장한 ‘국민소득 2만달러’론은 노무현 대통령을 통해 참여정부의 중요한 국정과제로 설정된다”며 “국민소득 2만달러 담론과 그것을 둘러싼 국가 정책(방향)은 삼성, SERI 또는 자본과 국가의 관계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중요한 사례”라고 말했다.
논문을 보면,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이라는 정책목표를 책정한 이후 SERI는 여러 정부 출연 연구소들과 함께 참여정부의 경제운용 계획 입안에 참여했다. 참여정부의 ‘서비스산업 중심론’ 같은 정책도 SERI가 2005년 열린우리당 의원들과의 토론회에서 제기한 ‘매력한국론’과 동일한 방향과 내용이었다. 매력한국론의 골자는 교육과 의료부문을 기반으로 개방과 시장주의를 주요한 수단으로 삼고 보다 적극적으로 성장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의 역할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과정에서도 두드러졌다. 2004년 9월 당시 이광재 열린우리당 의원이 주도한 ‘의정연구모임’은 SERI와의 공동 세미나에서 미국을 포함한 대국과의 FTA 추진을 제안했다. 두 연구자는 “의료, 교육, 법률과 같은 서비스 시장의 개방은 보험사와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삼성의 이해와 일치했다”며 “한·미 FTA 추진 이후 본격화된 서비스 시장 개방은 삼성이 자본 일반의 관점을 취하면서 국가의 정책 수립에 개입하는 양상을 띠었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이 주목한 것은 국가와 자본의 관계 변동 속에서 특수하게 발전한 이데올로기적 장치로서 SERI의 변모 과정이다. 이들은 “SERI는 국내 자본의 계급 헤게모니로서 삼성이 이전에 축적한 경제적 자본을 바탕으로 새롭게 지식 자본을 축적하고, 이를 정치적 자본으로 전용하는 과정에서 공고히 뿌리 내리게 된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삼성의 프로모션 문구인 ‘Think smart, go big’ 같은 말은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고안된 광고 카피이면서, 지배 자본이 지능화함으로써 자신의 헤게모니적 위치를 재생산하고 공고화하는 스마트 통치(Rule smart)에 대한 기술적 묘사”로 읽을 수 있다.
논문은 이 같은 SERI의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화의 계기를 “‘사회적 경영’을 지향하면서 국가 정책 형성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삼성, 재벌주도 성장지상주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관료들, 국내 재벌 일반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집권 세력의 이해가 합치된 결과”로 본다. 자본으로부터의 지지가 취약했던 참여정부의 선택 측면과 상황을 두고는 “‘진보개혁세력’이 언젠가 집권했을 때 또다시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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