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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징역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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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신영복 선생의 '여름징역살이'라는 글이 생각났다. 정작 아주 무더울 때는 생각나지 않더니 말이다.
요즘엔 이 글은 다들 알고 있겠지?  
올해도 적어도 집에서는 에어컨이 없이 보냈다.
과거에는 어떻게 여름을 났을까?
네이버 블로그에 2004년도에 옮긴 글이 있더라. 다시 옮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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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02 15:35

여름이 가까와지면 생각나는 글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신영복 선생의 글입니다. 어제 새벽까지 채원형과 그리 개운하지 않은 술자리를 하고 나서 머리가 깨질 듯이 띵했지만, 아침에 일어나 학교로 왔는데, 정말 덥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아직은 계절상 봄인 만큼 학교에서는 연구실에 냉방을 해주지 않습니다. 선풍기를 틀기엔 아직 이르고, 창문을 통해 자연풍을 맞이하기엔 너무 미약합니다. 그래서 이제 본격적으로 여름이 오려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신영복 선생의 '여름징역살이'가 떠오른 것입니다. 이 글은 더울 때마다 생각나는 글입니다.
 
사실 '여름징역살이'는 날씨를 소재로 했을 뿐 다른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이 오면 권하고 싶은 글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글은 신영복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실렸고, 신영복 선생의 홈페이지(
http://www.shinyoungbok.pe.kr/)에도 있습니다.
 
참, 다시 읽어보니 '계수씨'라고 하지 않고 '계수님'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님'이라는 호칭은 선생님과 같은 경우에 쓰거나 인터넷 상의 채팅이나 글쓰기에서 상대방을 부를 때 사용하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계수님이라는 호칭도 괜찮은 듯 합니다. 아직까지 '형'보다는 '형님'이라는 표현이 별로 맘에 들지는 않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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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징역살이
 
계수님께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옳게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감각에 의하여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혐오에 있습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하여 키우는 '부당한 증오'는 비단 여름 잠자리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 없이 사는 사람들의 생활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이를 두고 성급한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의 도덕성의 문제로 받아들여 그 인성(人性)을 탓하려 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내일 온다 온다 하던 비 한줄금 내리고 나면 노염(老炎)도 더는 버티지 못할 줄 알고 있으며, 머지않아 조석의 추량(秋敭)은 우리들끼리 서로 키워왔던 불행한 증오를 서서히 거두어가고, 그 상처의 자리에서 이웃들의 '따뜻한 가슴'을 깨닫게 해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수(秋水)처럼 정갈하고 냉철한 인식을 일깨워줄 것임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다사했던 귀휴 1주일의 일들도 이 여름이 지나고 나면 아마 한 장의 명함판 사진으로 정리되리라 믿습니다. 변함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친정부모님과 동생들께도 안부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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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4 22:27 2013/08/24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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