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좌파 사상가들의 집단 초상화 <좌파로 살다>
이들처럼 살고 싶은데, 쉽지 않구나.
암튼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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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26460.html
20세기 좌파 사상가들의 집단 초상화 (한겨레, 허미경 기자, 2014.03.02 20:27)
<좌파로 살다> 뉴레프트리뷰·프랜시스 멀헌 엮음, 유강은 옮김/사계절·3만5000원
그는 단절을 이야기했다. 블라디미르 레닌의 손을 들면서, 이오시프 스탈린과의 “철저한 단절”을 말했다.
죄르지 루카치(1885~1971)가 이 말을 한 것은 그의 나이 여든셋, 소련이 프라하의 봄을 진압하고자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한 직후인 1968년 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마르크스주의 잡지 <뉴레프트리뷰>와 한 인터뷰에서다. 12년 전인 1956년 헝가리 인민봉기(헝가리혁명)가 났을 때 그는 봉기 편에 섰다가 소련의 침공으로 루마니아로 추방됐고, 겨우 처형을 모면하여 고향 부다페스트로 돌아와 저술에 전념하고 있었다.
“레닌은 변화와 새 출발을 결코 이전 경향의 지속과 개선으로 제시하지 않았어요. 신경제정책(1921~27)을 발표했을 때 이것이 전시공산주의의 ‘발전’이나 ‘완성’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레닌은 신경제정책은 전시공산주의의 오류를 바로잡는 시도이자 총체적인 방향 전환이라고 솔직히 말했습니다. 그런데 스탈린주의는 언제나 정책 변화를 과거 노선의 논리적인 결과이자 개선으로 제시하려 기를 썼어요. 불연속성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어요.” 루카치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했다. 이 인터뷰는 당시 그가 처한 상황 탓에 곧바로 게재되지 못하고 그가 숨진 1971년 발표됐다.
1956년 헝가리혁명에 대한 소련의 무력 진압은 서구 좌파 세력에 일대 충격파를 일으켰다. 현실 사회주의(소련식 사회주의)와 그 교의에 찬동하는 기존 공산당 세력에 비판적인 이른바 신좌파 그룹이 각국에서 생겨난다. 미국에 맞선 베트남혁명의 반향 속에 프랑스에선 1968년 5월봉기(68혁명)가 터져나온다. 영국에서 1960년 신좌파를 표방한 격월간 <뉴레프트리뷰>가 창간된 것도 이런 흐름 속에서였다.
<좌파로 살다>(Lives on the Left>는 <뉴레프트리뷰>가 창간 이후 실었던 100여명의 인터뷰 가운데 다섯 대륙 20여 나라 16명을 골라 묶어 2011년 펴낸 책이다. 부제목은 ‘집단 초상화’다. 1968년 루카치부터 2010년 아돌포 힐리까지 50년에 걸친 인터뷰 모음이지만, 그 인물들이 들려주는 삶의 궤적과 사상적, 실천적 고민이 포괄하는 것은 근 100년이다. 이 책은 지난 ‘20세기’와, 그 세기를 살았던 좌파 사상가·운동가들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초상화랄 수 있다.
‘뉴레프트리뷰’ 50년 걸친 인터뷰
루카치·아리기·힐리 등 16인 육성
위험의 순간 섬광처럼 번득인 삶
1부에 등장하는 루카치와 카를 코르쉬 부부가 “10월혁명의 이상으로 떨쳐 일어난 세대”로서 각기 헝가리와 독일에서 공산당을 창건했으나 이미 1920~30년대부터 이른바 코민테른 정통파와 충돌했다면, 2부에 묶인 그 다음 세대인 이르지 펠리칸, 도로시 톰슨 등은 1939~1950년에 각기 자국 공산당에 들어가 활동했다. 영국의 도로시 톰슨은 소련이 헝가리혁명을 진압하자 공산당을 탈당했고, 이탈리아의 루치아나 카스텔리나는 소련의 체코 침공을 비판하다 공산당에 쫓겨나 월간 <선언>을 창간하고 안토니오 그람시의 사상을 “공산당의 해석에서 해방시켜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 필요한 혁명전략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다.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에서 일하던 이르지 펠리칸은 1968년 당을 비판하며 프라하의 봄 주역으로 변신했고 소련 침략으로 망명한 뒤 그 봄에 대한 기억을 회고한다.
장폴 사르트르는 이 신좌파 대열에 1968년 5월봉기를 지지하면서 합류했다. 그는 5월봉기의 기원이 베트남혁명에 있다고 말한다. 베트남의 미국에 대한 승리가 프랑스 학생들의 시야를, 가능한 것의 영역을 확대했다고 본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혁명투사로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누볐으며 멕시코 감옥에서 멕시코혁명 분석서인 <중단된 혁명>을 쓴 아돌포 힐리는 중남미 트로츠키주의 자장 안에서 성장한 한 사상가가 현지 농민과 원주민의 처지에서 변혁의 목소리를 내는 쪽으로 나아가는 궤적을 보여준다. 그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휩쓴 2010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발터 베냐민은 과거를 표현한다는 것은 ‘위험의 순간에 섬광처럼 스치는 어떤 기억을 붙잡는 것을 뜻한다’고 했어요. … (전쟁과 혁명으로 점철된) 20세기는 그렇게 번쩍이는 섬광의 세기였고, 지금 눈앞에 닥친 위험의 순간을 비추려면 그 세기의 기억과 경험을 되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책 마지막은 이탈리아 신좌파에서 출발해 말년에 세계 자본주의 헤게모니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옮아가는 국면을 탐색한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 <장기 20세기>의 저자 조반니 아리기(1937~2009)다.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가 2008년 그를 만났다. 그는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의 ‘여러 문명이 동등한 조건에서 살아가면서 지구와 천연자원을 함께 존중하는 연방’에 관한 기대를 거론하며 이 전망을 사회주의란 말로 표현할 거냐고 묻는 하비에게 이렇게 답한다. “사회주의라 불러도 반대할 뜻은 없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용어는 국가의 경제 통제와 지나치게 동일시됐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그 용어의 대체물을 만들어서 역사적으로 국가와 동일시된 관계를 끊고 더 많은 평등과 상호 존중이라는 생각에 근접시키는 일은 이제 당신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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