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지방선거 관련 기획기사 모음
지방선거와 관련된 기사들을 발췌해서 모았는데, 정작 지방선거 시기에는 별로 활용을 못했다. 한달이 다된 즈음에야 이걸 올리다니... 내가 게을렀던 건가.
4년 후에는 써먹을 수 있으려나. 4년 전과 비교해봐서는 4년 후에도 지금의 이슈와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기에 그 사이에는 여전히 유의미할 터이다.
6월 2일 지방선거가 있다고 하여 아래와 같이 다양한 지방정치의 쟁점을 다룬 기사들이 많이 있었는데, 정작 지방선거에서는 이런 것들이 부각되지 않고 중앙정치에 파묻혔다. 지방선거가 집권정당에 대한 중간평가의 의미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토록 지방정치의 쟁점이 사라진 적도 없었던 듯 싶다. 그 대안은 무엇일까.
나 또한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회원이기는 하지만, 이음이나 하승수 선배나 내가 가진 문제의식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역정당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기초단위 정당공천제의 문제 등에서 말이지. 지방에서의 정치를 활성화시키는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물론 고민 뿐 아니라 실천도 요구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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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로 가는 첩경, '반MB 연대' (프레시안, 임경구 기자, 2010-02-01 오전 8:32:08)
[지방선거 쟁점과 전망 ①] 승리를 위한 선거연합의 조건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최선은 통합이고 차선은 연대, 최악은 분열"이라고 했고, 국민참여당 유시민 전 의원은 "연대하지 않으면 모두가 루저가 된다"고 했다. 진보진영에서도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가 "진보정치대통합과 반MB 연대는 지방선거를 명실상부한 MB정권의 심판대로 만들기 위한 대전제"라고 했다. 진보신당 당원인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은 최근 칼럼을 통해 "비판적 지지의 망령이 다시 찾아왔다고 말한다면 한나라당 독주 구도에서 비판적 지지가 올바른 지지의 형태라고 말해야 한다"고 밝혀 진보진영에 논란을 촉발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선거연합 논의가 '반MB 연대'라는 구호에 갇혀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경우를 우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정치권과 상층부의 인식과 달리 유권자들은 '반MB'라는 부정적 가치에 표를 던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헌태 인하대 겸임교수는 "국민들에게 대통령이 안 되기를 빌라는 것은 너무 서러운 일 아니냐"며 "반MB 정서라는 것은 지방선거에서 성립되기 어려운 말"이라고 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도 "민주화 전에는 민주주의를 위한 반독재 연합이 설득력을 얻었지만, 이제는 왜 연합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대선이라면 정권교체라는 대의를 위해 '반MB'가 말이 되지만 현시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통치를 인정할 수 없으니 저항을 하라는 요구는 민주적 경쟁 없이 사람들을 흥분시키려는 것"이라고 했다.
요컨대 이들의 지적은 단순한 반대를 넘어 선거연합의 이유를 대중들에게 납득시켜야만 성공에 근접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박상훈 대표는 "선거연합은 공동 통치의 영역을 만드는 것"이라며 "세력 규합과 더불어 경제, 교육, 복지 등 정책 패키지에 대한 논의 결과를 내야 한다"고 했다. 김헌태 교수는 "성장담론이나 개발담론, 권위주의적 담론 등 이명박 정부가 보여 준 가치가 국민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야당이 복지나 사회경제적 문제에서 반대담론을 형성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김헌태 교수는 "관건은 민주당이다.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은 왜 재집권에 실패했는지에 대한 평가와 함께 개혁과 진보를 위해 상징적인 양보를 하는 것"이라고 주문했다. 고원 교수는 "한미 FTA를 반성하라는 것은 연합하지 말자는 것이다. 민주당도 기득권을 양보해야 하지만 등가성의 원리에 의해 진보정당도 이념적으로 유연함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야5당 선거연합의 조정자를 자임하는 시민사회진영의 백승헌 운영위원장은 "연합은 공학적 연대가 아닌 가치로 나타나야 한다"면서 "정책 결정과정과 후보 결정과정에 유권자가 참여해야하고 공동정부도 민관 협치의 체제로 심화돼야 한다"고 했다. 살얼음판 같은 협상을 이어가고 있는 당사자들도 '반MB'를 뛰어넘은 곳에서만 '연합정치의 예술'이 살아날 수 있음을 직감하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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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추모 열기'의 위력은? (프레시안, 김하영 기자, 2010-02-02 오전 11:11:53)
[지방선거 쟁점과 전망 ②] 지방선거 '플러스 20'의 향배
서거 1주기가 '이미 예정된 정국'이기 때문에 큰 파괴력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민주당 지지율이 반짝 상승했던 적이 있지만, 이는 부동층 흡수가 아니라, 지지층 재결집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라며 "500만 추모 인파가 있었지만, 이들이 모두 현재의 야당에 표를 몰아준다고 장담할 수 없다. 1주기 추모 정국도 결국 지지층 재결집 수준에서 끝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나타나는 여론조사만 보면 야권은 여전히 전패다. 하지만 현직 프리미엄이라는 거품이 끼어 있고, 설문 문항만 바꿔도 결과는 판이하게 나타난다. 서울시만 봐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시장이 야권 후보를 모두 이기는 것으로 나오지만, 최근 <중앙SUNDAY>가 서울 유권자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을 새 인물로 교체해야 한다'는 견해가 57%였다.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최근 늘어나는 부동층이 한나라당 지지층의 이탈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이는 곧 오세훈 시장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오 시장과 야권 후보들을 한 줄로 세워 놓고 보면 야권 후보들에게도 별로 마음이 가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야권이 '정권 심판' 정서를 흡수할만한 동력을 찾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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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이명박-박근혜 대결의 향배는?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 2010-02-03 오전 8:25:05)
[지방선거 쟁점과 전망 ③] 여권의 분열과 권력지형 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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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실험', 어디까지 왔나? (프레시안, 윤태곤 기자, 2010-02-04 오전 8:37:41)
[지방선거 쟁점과 전망④] 시민사회진영, 적극적 선거참여 모색
낙천낙선 운동의 성과는 지역단위 풀뿌리 시민운동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총선시민연대 전국조직은 풀뿌리 시민운동의 자양분이 되었고 2000년대 이후 생활협동조합, 지역 환경단체 등의 활성화로 이어졌다. 시민사회가 2010년 지방선거에 낙천낙선 운동을 뛰어넘는 포지티브 방식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것은 이같은 기반에서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은 "지방선거에 대한 시민사회의 대응은 세 가지 흐름으로 정리된다"고 설명했다. △'5+4 중심의 상층단위 후보단일화 추진' △좋은 후보 내기 운동 등 포지티브 방식 △ 사실상 낙선운동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유권자 심판운동인 '됐고. 투표(가칭)' 캠페인 등이라는 것. 이 중에 두 번째가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가 제안한 국민공천운동과 연결된다.
걸림돌은 시민사회 안팎에 산재한다. 이른바 '5+4 테이블'에서 오히려 시민사회 쪽이 "차이는 일단 덮어두자"는 쪽이다. 이같은 기조에서 풀뿌리 출마운동이 힘을 받기란 쉽지 않다. 물론 시민사회 관계자들은 "서울조차 시의회를 한나라당이 90% 이상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들이 많지 않다. 이런 것만 각인시켜도 성과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네거티브 운동의 차원이다. 포지티브 운동으로 연결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게다가 지역사회의 포지티브 운동에 국민들이 과연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있는지도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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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몰표'는 재연될 것인가" (프레시안, 성현석 기자, 2010-02-05 오전 11:46:52)
[지방선거 쟁점과 전망 ⑤] 교육감 진화의 4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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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서울신문, ‘풀뿌리 진단’ 왜 다를까 (미디어오늘, 2010년 02월 22일 (월) 06:39:00 류정민 기자)
[아침신문 솎아보기] 지방선거 D-100일, 언론이 보는 변수
경향신문은 22일자 1면 <불붙는 '풀뿌리 자치' 선거운동>이라는 기사에서 “6.2 지방선거가 100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지역·시민사회 단체를 중심으로 한 '풀뿌리 자치' 선거운동이 불붙고 있다”면서 “벌써 다섯 번째인 지방선거를 정당·정파적 이해관계와 시선을 넘어 지역민의 목소리와 관심을 대변하는 계기로 삼기 위한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서울신문은 22일자 1면 <세종시에…무관심에…‘풀뿌리'가 말라간다>라는 기사에서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과거 어느 때보다 후보 난립과 검증 부재의 '묻지마 투표' 현상이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풀뿌리 자치’ 준비 작업이 활발하다고 현실을 진단했는데 서울신문은 ‘풀뿌리’가 말라간다는 상반된 진단을 내놓았다. 서울신문 1면 기사는 후보검증에 소홀한 정치 현실과 묻지마 투표의 위험성을 지적한 내용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서울신문의 종합면 기사와 사설을 살펴보면 의문이 남는다. 서울신문은 <지방선거 D-100 당리당략 늪에 빠진 정치권>이라는 사설에서 “이번 지방선거 역시 종전의 당리당략에 매몰된 파행과 일탈로 끝날 게 뻔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언론이 정치 혐오주의와 허무주의를 부추기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 텐데 서울신문이 사설에서 이러한 주장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신문은 “이번 지방선거를 정권 중간평가나 뒷 선거의 전초전으로 몰아선 곤란하다. 현 정부에 대한 여론몰이나 차기 대선 정국을 염두에 둔 당리당략 차원으로 비쳐지는 세종시 논란을 수습해야 하는 까닭”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신문은 지방선거를 정권 중간평가로 몰아선 곤란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는 경향신문 시각과 상반된 내용이다. 경향신문은 5면 이라는 기사에서 “2008년 18대 총선 이후 2년여 만에 전국적으로 치러지는 6월 지방선거는 자연스럽게 이명박 정권과 현 지방권력에 대한 평가의 마당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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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광역의회 “4인선거구 쪼개라” (내일, 김진명 기자 전국 종합, 2010-02-24 오전 11:34:20)
획정위안 뒤집고 선거구 분할 잇따라
소수정당·시민단체 “다수당 독점 횡포”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초의회 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쪼개는 행태가 줄을 잇고 있다. 특히 광역의회가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결정한 내용을 뒤집는 행태를 반복, 비난을 사고 있다. 시민단체와 소수정당은 다수당이 기득권을 지키려는 횡포이자 중선거구제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며 반발하고 있다.
기초의원 4명을 뽑는 4인 선거구를 둘로 쪼개 2명만 선출하는 2인 선거구로 바꾸는 선거구 분할은 경남도의회에서 앞장섰다. 경남도의회는 지난달 27일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결의안을 뒤집고 4인 선거구를 분할한 의회 안을 통과시켰다. 당초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창원 가선거구와 김해 나선거구를 4인 선거구로 하도록 했지만 의회는 이를 각각 2개로 분할했다. 이로써 경남도내 4인 선거구는 기존 6개에서 4개로 줄어들게 됐다. 대구시의회도 뒤를 이어 지난 4일 4인 선거구 12곳을 모두 2인 선거구로 바꾸는 수정안을 가결했다. 서울시의회 역시 10일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의결한 4인 선거구 3곳을 2인 선거구 6곳으로 쪼개는 쪽으로 의결했다. 전북도의회도 질세라 5곳 남아있던 4인 선거구를 모두 2인 선거구로 분할했다.
인천·광주시의회는 물리력까지 동원, 4인 선거구 쪼개기에 나섰다. 인천시의회는 지난 16일 시의회 건물을 본쇄한 채 4인 선거구 8개를 모두 2~3인 선거구로 바꿨다. 민주당 일색인 광주광역시의회는 18일 경찰력까지 동원해 선거구 쪼개기를 강행했다. 선거구획정위원회는 43인 선거구 6곳을 신설하도록 했지만 의회는 이를 2인 선거구 12곳으로 바꿨다. 경기도는 아예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앞장서 종전 3인 선거구 68곳을 58개로 줄이고 2인 선거구는 80곳에서 87곳으로 늘렸다.
4인 선거구는 당초 ‘소수 정당과 정치 신인의 진출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로 도입됐다. 실제 2006년 지방선거에서 ‘1당 독재’를 예방하는 기능을 충분히 해냈다. 2인 선거구 610곳 중 절반에 가까운 265곳이 한 정당에 독점된 반면 3인 선거구는 379곳 중 70곳(18.5%), 4인 선거구는 39곳 중 2곳(5.13%)으로 의석 독점 비율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때문에 소수정당과 시민단체에서는 기초의회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4인 선거구 쪼개기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지방의회 의석을 독점하고 있는 지역에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선거구 분할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기백 광주 희망과 대안 공동대표는 “민주당이 2인 선거구를 통해 지방정치를 독점하려는 음모”라며 “경찰력까지 동원한 것은 광주시민들에 대한 배신이자 민주주의의 파괴”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지난달 27일과 이달 10일 잇달아 성명을 내고 “기성정당의 나눠먹기식 선거구 획정”이라며 국회의 개입을 촉구했다. 입법취지가 왜곡되지 않고 중선거구제의 긍정적인 면이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 손질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4인 선거구 분할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선거구획정위원회 획정단계에서부터 2인 선거구가 남용되지 않도록 ‘최소한 3인으로 선거구를 획정하고 2인 선거구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것’을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지방선거에 대비, 야권·시민단체 등과 공조를 강화하는 시점에서 당 기반지역인 호남권의 선거구 쪼개기에 당혹해하는 모습이다.
“획정위 권한 높여야 해결” (내일, 윤여운 기자, 2010-02-24 오전 11:34:49)
원인은 거대 양당구조
광역의회가 기초의회 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쪼개는 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현재 각 광역시도 선거구획정위원회의 권한을 대폭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광역의회의 기초의회 선거구 수정 사태에 대해 전문가들은 “거대정당의 횡포”라며 “광역의회의 선거구 획정 결정권한을 광역의회에서 선거구획정위원회로 옮겨야 해결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황아란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광역의회가 선거구획정위의 결정을 부결할 수는 있어도 수정은 못하게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관영 함께하는 시민행동 사무처장 역시 “선거구 획정 권한을 선거구획정위에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법 절차는 각 광역시도 선거구획정위가 기초의회 선거구를 획정하고 나면 이를 각 시도 광역의회에서 최종 의결한다. 하지만 지난 2006년과 올해 모두 대부분 광역의회는 선거구획정위의 결정을 뒤엎고 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쪼갰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는 “당초 기초의회에 중선거구제를 도입할 때는 선거구 대부분을 3인 이상으로 하자는 게 학계의 공통된 입장이었다”며 “최근 시도의회의 결정은 당초 중선거구제 도입의 취지를 왜곡하는 다수 정당의 횡포”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도입 취지를 왜곡하면서 광역의회가 무리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거대정당의 이해득실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4명을 뽑는 선거구를 2명을 뽑는 선거구로 바꾸면 한나라 민주당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소수정당이나 새로운 세력의 목소리를 담자는 중선거구제 도입 취지는 사실상 설 자리를 잃게 된다. 황아란 부산대 교수는 “양당구조라는 한국 정치상황이 맞물리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며 “소수정당의 목소리를 반영한다는 취지에서 보면 4인 선거구도 크지 않으며 4~7인 정도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원호 카톨릭대 교수는 “기득권을 가진 정당들이 쉽게 법을 바꾸려하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사회적 압력을 높여야 하고 민주당도 작은 기득권에 안주하는 모습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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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노린 지역이기주의 ‘골치’ (서울, 김병철 기자, 2010-03-15 16면)
경기 김포 주민 경전철 사업 반대 등 님비현상 봇물
지방선거 바람을 타고 ‘님비(NIMBY)현상’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주민들이 지역 민원을 들고와 공약으로 채택해 주기를 은근히 압박하는 분위기라 입후보 예정자들도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14일 전국 지자체에 따르면 님비현상이 도를 넘어섰다. 장사시설, 쓰레기·하수처리시설 등과 같은 기피·혐오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던 주민들이 최근에는 해당 지역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시설이라면 무조건 반대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물류·산업기반시설은 물론 경전철, 차량등록사업소 등 교통시설과 사회복지시설마저 기피대상이 되어버렸다.
경기 김포 일부 주민들은 김포한강신도시~서울지하철 9호선 김포공항역을 잇는 경전철 사업을 반대하고 있다. 경전철 고가 교각이 도시·주거환경파괴, 사생활침해, 조망·일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다. 김포고가경전철반대범시민비상대책위원회는 경전철 사업 찬반 주민투표를 거부한 김포시를 상대로 감사원 감사청구를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고양 경전철 건설계획도 같은 이유로 차질을 빚고 있다. 열병합발전소도 기피시설로 전락했다. 청정연료인 LNG를 사용하기 때문에 대기오염 피해가 극히 적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인근 주민들은 “생활환경 악화로 집값이 떨어진다.”며 반기지 않는다. 수원 호매실 택지지구, 파주교하신도시, 화성 동탄2신도시, 용인 기흥구 고매동에 조성 중인 열병합발전소도 내홍을 겪고 있다.
경기도는 갈등이 잇따르자 합리적인 입지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했다. 이지형 신도시정책관은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주민들의 요구가 다양해지고 극단적으로 치닫다 보니 공공정책사업마저 발목을 잡히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며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단 민원성 님비현상이 더욱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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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 교통비 지원해줘야" (레디앙, 2010년 03월 17일 (수) 08:14:10 이은영 기자)
[철도·지하철 네트워크 토론회] "대중교통 공공성 강화 선거 쟁점으로"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에 대한 민자사업이 확대되고 있는 것에 대해 공영화 및 공공성 강화가 시급하며, 이를 위해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중교통 통합운영, 공공성 강화, 교통약자 이동권 확보를 주요한 선거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공공운수연맹, 전국궤도노동조합연대회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노동사회단체로 구성된 철도·지하철 공공성 네트워크(운영위원장 오선근)는 16일 오후 용산 철도서울지방본부 회의실에서 ‘대중교통 공공성 강화를 위한 2010지방선거대응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고영국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정책기획국장은 “서울시는 서울 유입구간 및 시내의 유입길목의 차량지체가 심각하다는 이유로 서부간선도로, 은평새길, 서울시내 6축도로 등 민자사업으로 계획하고 있다”며 “민자사업은 공공적인 도로사업에서 기업의 이익을 보장해주어야 하며, 전면적인 민자사업도 아니고 시예산과 시민의 세금이 동시에 들어가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중교통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 인프라 확충 및 교통요금에 대한 할인제도의 적극 시행을 강조했다. 고 국장은 “현재 대중교통의 교통분담율은 74%”라며 “이를 높이기 위해서는 서울시가 매년 도로건설에 사용하는 1조 원의 예산을 절반으로 줄여 대중교통 요금에 대한 인상 중지를 하고 지하철 등의 적자분을 보존해주는 데 사용하면 실제 대중교통의 활성화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서울, 인천, 경기를 정기적으로 오가면 거리비례제에 따라 요금의 부담이 가중된다”며 “특히 수도권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시민이 대부분 서민 계층이라는 점에 착안해 서울, 경기, 인천 등과 재정분담을 협의하여 지하철 정액권을 부활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교통약자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노인들의 버스요금을 무료화하는 것은 물론 장애인 콜택시에 대한 증차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2007년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에 의거해 서울시는 내년에 900대의 저장버스를 도입해야 하지만, 올해 300대 도입 계획만을 밝힌 상황”이라며 “4대강 사업으로 건설교통부의 예산이 삭감돼 서울시가 저상버스 도입에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김상철 진보신당 서울시당 정책기획국장 역시 “경제위기로 인한 신빈곤층 확대, 양극화 심화, 고령인구 증가, 교통사고 등으로 인한 장애인 등 교통약자 발생이 심각하다”며 “하지만 교통부문의 낮은 공공성과 민영화(민간위탁, 민자사업 포함)로 인해 경제적으로 비용 부담이 가중되고, 지역적으로 노선 공급이 위축되며, 신체적 교통약자들에 대한 서비스가 후퇴될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그는 “교통기본권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저소득층에 대한 교통비 지원이 필요하다”며 고 “장애인 콜택시에 대한 효율적인 요금 설정은 물론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에 따라 2013년까지 시내버스의 50%를 저상버스로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배융호 (사)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사무총장은 교통약자에 대한 요금 무료화에는 반대의 뜻을 밝혔다. 그는 “현재 무료승차권으로 인한 운영적자가 높은 반면 정부나 지자체의 책임은 뒤따르지 않는 상황”이라며 “무료화보다는 노인뿐 아니라 장애인에게도 요금의 50%를 할인하는 살버요금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 사무총장은 저상버스와 관련해 “저상버스가 많이 도입된다 해도 운전자들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아 이용에 어려움이 많다”며 “교양 정도의 교육 아니라 실질적으로 '장애인 승객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정확한 매뉴얼에 따른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일반택시 중 1%는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대형택시를 도입해야 한다”며 “장애인 콜택시나 지하철만으로는 커버가 되지 않는 교통의 영역에서는 장애인들의 이동권이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서울시 교통체계가 지하철, 버스, 택시 등으로 분리돼 있는 것과 관련해 이를 통합해 대중교통의 공공성을 높이는 등 건설 및 운영에 대한 일원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기우석 운수노조택시본부 정책국장은 “지하철, 버스와 함께 택시까지 포함되는 종합적인 교통체계 또는 교통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영국 국장은 이와 관련 서울시 교통공사 설립을 제시했다.
이영수 운수노조철도본부 정책연구위원도 “교통부문은 교통수단과 지역 간에 분절화되지 않고 연계가 잘 이루어질 때 교통운영과 관리의 효율성이 극대화될 수 있다”며 “특히 수도권광역 교통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수단별뿐 아니라 지역별로도 대중교통체계도 통합운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버스의 준공영제 운영에 대해 “지방정부가 노무관리를 제외하고는 버스운영에 필요한 대부분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공영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무료환승금액에 대한 재정지원 및 버스업체에 대한 적정 이윤과 운영비용 보장이 이뤄지며 재정지원금이 늘어나는 등 준공영제에 대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어, 준공영제의 해결방안으로 공영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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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욱 풀뿌리 정치] 지방선거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서울, 정세욱 명지대 명예교수, 2010-03-17 30면)
공천신청 자격부터 문제다. 한나라당은 2007년 4월 소속 자치단체장과 시의원의 비리로 여론의 질타를 받자 ‘개혁공천·도덕공천’을 다짐했다. 하지만 부정부패 혐의로 최종심에서 ‘벌금 이상의 형을 받은 자’에겐 신청자격을 안 주기로 한 당규를 고쳐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자’만 불허하기로 완화했다.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았더라도 ‘사면·복권된 자는 예외’로 허용하기로 했다. 사면 등으로 전과가 말소됐다면 공천신청을 박탈하는 게 위헌의 우려가 있다는 궁색한 변명을 했다. 민주당도 비리혐의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공천을 하지 않되, ‘예외적으로 공천심사위원 3분의2가 찬성하면 공천한다.’고 기준을 완화하더니 ‘2분의1 찬성’으로 더 낮추어 도덕성과 청렴성을 사실상 포기했다. 비리 전력자라도 헌금을 바치면 공천할 수 있다니 국민을 얼마나 무시하고 있는가?
여야는 공천의 당위성으로 책임정치를 내세운다. 정당이 후보를 공천해야 그들이 잘못했을 때 책임질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민선 4기에 비리로 기소된 기초단체장 94명(230명 중 41.9%) 대다수가 한나라당인데 당이 책임진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런 당이 위헌론을 내세워 비리 전력자를 또 공천하려고 한다. 더구나 한나라당·민주당 공천을 받으려는 예비후보들 간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해 벌써 ‘돈 공천’ 소문이 나돈다. 민주당 역시 비리공천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적발된 공천비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국회의원에게 거액을 주고 공천 받아 당선되면 인사, 인·허가 비리를 저지르기 쉽다. 정당과 국회의원이 단체장을 범죄자로 내모는 현상이 이번에도 재연될 것으로 우려된다.
한나라당의 공천심사위원회 구성을 둘러싼 갈등은 가관이다. 도덕성과 청렴성을 구비한 인재를 공천하려면 누가 공심위원장이 되어야 하는가를 놓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지방 선거직이란 먹잇감을 놓고 서로 먹겠다며 싸우는 꼴이다. 여야는 정당이 관여할 수 없는 시·도 교육감 선거에까지 ‘보이지 않는 손’을 뻗치고 있어 교육감 선거마저 혼탁의 수렁으로 빠져들 것 같다.
국회는 그동안 제 역할을 못했다. 지난 2일 본회의에서 68건의 의안 중 ‘장기공공임대주택 지원법’ 등 39건을 처리하지 못한 채 2월 임시국회는 폐회됐다. 민주당이 발의한 학교체육법안이 부결되자 민주당은 퇴장했고 이후 한나라당 소속의원 169명 중 90명만 출석하여 의사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이날 불출석한 한나라당 의원 79명 중에는 회기 중임에도 외유를 떠난 의원도 있다.
지방자치를 잘못된 길로 가게 한 데는 정당을 보고 찍는 ‘묻지 마 투표행태’가 주 원인이다.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유권자밖에 없다. 정당공천을 받은 후보가 도덕성이 있고 유능하다는 보장은 없다. 이제는 정당을 무시하고 후보의 자질을 보고 찍어야 한다. 일본 국민들은 정당공천을 받은 후보를 찍지 않아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의 90% 이상이 무소속이다. 주민의 생활자치에는 정당이 개입할 필요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민이 높은 정치의식을 발휘하여 선거혁명을 일으켜야 할 때다. 정당의 횡포를 막아야 한다.
[선택 2010 지방선거 D-79] 지방예산 40% ‘업적’ 남는 건설 집중… 복지엔 18%뿐 (서울, 이창구기자, 2010-03-15 3면)
15일로 제5회 지방선거가 79일 앞으로 다가왔다. 예비 후보자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외치며 바닥을 훑고 있지만, 정작 유권자는 시큰둥하다. 그동안 지방정부를 책임진 단체장과 의회의원이 지방자치의 본령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울신문은 별다른 통제 없이 우리 생활 전반에 파고든 지방권력을 5회에 걸쳐 파헤친다. 지방정부의 씀씀이, 구조적인 부패와 기형적인 권력구조, 척박한 지방자치 환경을 짚어보고, 우리 속의 ‘자치 유전자’를 끌어내기 위한 대안을 모색해 본다.
예산 집행은 일종의 선택이다. 지역 주민 및 전체 국민의 세금으로 편성되는 지방정부 예산을 어디에 쓰느냐는 단체장이 결정하고, 지방의회가 의결한다. 이들의 선택을 평가하고 견제하는 것은 주민의 몫이다.
전문가 사이에 회자되는 예산 관련 ‘3대 거짓말’이 있다. ‘예산이 없다.’, ‘우리지역이 소외됐다.’, ‘내가 특별히 (예산을) 따왔다.’는 것이다. 기초단체장 출신의 한 국회의원은 14일 “예산이 없는 게 아니라 자기가 쓰고 싶은 예산이 없는 것이고, 아무리 자체 수입이 취약한 지역이라도 망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가 펴낸 ‘2009년도 지방자치단체 예산개요’에 따르면 우리나라 지방정부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53.6%에 불과하다. 지방 기초단체는 대부분 10% 이하다. 재정자립도란 자치단체 예산(일반회계+특별회계) 중 지방정부 자체수입(지방세+세외수입)의 비중을 뜻한다. 자체수입에다 중앙 정부가 내려보내는 지방교부세를 더해서 산출하는 재정자주도를 따져보면 전국 평균이 78.9%로 뛴다. 지방교부세 덕택에 지방 기초단체도 살림의 절반 이상을 자주적으로 꾸릴 수 있다는 의미다. 지방교부세를 받고도 예산이 부족하면 각종 보조금이 내려간다. 지방세 수입으로 공무원 인건비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자치단체가 전국에 114개(46.3%)나 되지만 파산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자립도와 자주도가 떨어지는 지자체를 마냥 나무랄 수는 없다. 지역에 공장이 없고, 취업인구가 적으면 자체 수입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기초생활수급자나 노령층이 많아 경상적 복지비가 많이 들어간다면 적자 재정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예산을 어떻게 쓰느냐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지방정부 전체 예산은 137조 5349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60조 7751억원이 자본지출이다. 자본지출의 90% 이상이 건설 관련 예산이라는 게 정부와 전문가의 지적이다. 반면 사회복지 예산은 24조 1455억원에 그쳤다.
복지사업은 티가 나지 않지만 ‘호화청사’는 눈앞의 업적으로 남기 때문에 단체장들은 건설에 매달린다. 권경득 선문대 행정학과 교수는 “단체장이 국가에서 내려오는 교부세와 보조금을 ‘공돈’으로 여기기 때문에 무조건 건설만 하려고 하고, 지역 주민도 특정 계층에 혜택이 치우치는 복지보다는 당장 생활이 편리해질 토목 사업을 원하기 때문에 지방재정의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지적했다.
자치단체장의 ‘경영 마인드’도 지방재정의 질을 좌우한다. 지방세 수입은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지만 자산임대수입, 이자수입, 수수료수입 등으로 이뤄지는 세외수입은 지방정부의 노력에 따라 상당 부분 끌어올릴 수 있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뭉칫돈을 이자 한 푼 받지 않고 금융회사에 맡기거나, 공유재산을 방치한다. 전체 예산의 3%에 이르는 59억원을 이자수익으로 올리고 있는 전남 강진군 같은 사례가 전국으로 확산되면 국민 부담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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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2010 지방선거 D-79] 지자체, 내 세금 70% +α 쓴다 (서울, 이창구 유지혜기자, 2010-03-15 1면)
세금으로 본 지방정부 위력
모든 국민의 소비와 자산에는 세금이 붙는다. 세금과 각종 부담금은 국가 재정의 원천이 되고, 이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나눠 쓴다. 중앙정부의 씀씀이는 국회와 언론,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비교적 촘촘한 감시를 받지만 지방정부는 그렇지 못하다. 6·2 지방선거를 80일 앞둔 14일 함께하는시민행동 정창수 예산감시전문위원과 함께 한 주민이 낸 세금을 통해 지방정부의 중요성을 추적해 봤다.
경기 광명시에 사는 직장인 이모(38)씨의 지난해 총 급여는 3986만원이다. 급여에 따른 소득세 44만 6810원과 주민세(소득세의 10%) 4만 4680원을 냈다. 76㎡ 규모의 아파트 한 채에 따른 재산세는 14만 8720원이었다. 이씨는 지난해 10월 2000㏄ 승용차를 구입했다. 이에 따른 취득세가 13만 4330원, 등록세는 33만 5820원이었다. 자동차세도 15만 9550원을 냈다. 1년 동안 낸 직접세만 126만 9910원인 셈이다.
이 가운데 지방정부가 가져간 돈은 얼마일까. 취득세와 등록세, 주민세, 자동차세, 재산세가 지방세다. 지방교부세법에 따라 내국세인 소득세의 19.24%도 지방정부로 내려간다. 이씨가 낸 세금의 71.6%인 90만 9066원을 경기도와 광명시가 나눠 쓴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일생 생활에서 소비하는 상품과 서비스에 붙는 부가가치세(간접세)의 5%도 올해부터 지방정부의 몫이 됐다. 휘발유와 술, 담배도 지방재정에 도움을 준다. 휘발유 1ℓ당 교통세 529원, 주행세(교통세의 26%), 교육세(교통세의 15%), 부가가치세 등이 따라 붙는다. 이 가운데 주행세와 교육세가 지방재정에 귀속된다. 이씨가 3만 6000원을 주고 휘발유 20ℓ를 넣었다면 1만 8189원의 세금 가운데 지방정부(교육청 포함)가 4500원을 갖는다. 퇴근 후 술집에서 마시는 소주는 1병에 3000원이지만, 원가는 376원에 그친다. 원가의 72%에 해당하는 주세는 국세이지만, 종부세처럼 전액 지방에 지원된다.
광명시는 어떻게 살림을 꾸릴까. 2010년도 광명시 예산은 3784억원이다. 공무원 월급, 업무추진비, 직무수행경비, 의회비, 성과금, 공무원연금 부담금 등 인건비가 660억원(17.4%)을 차지한다. 시설비와 민간자본이전 등 사실상의 건설 관련 예산이 893억원(23.6%)이나 된다. 관변단체 등에 주는 민간단체 경상보조금도 482억원이다. 지역 시민단체 사업비 지원액은 13억원에 불과하다. 복지비는 997억원(26.3%)이지만 복지시설 건설비도 여기에 포함된다. 광명시 인구는 31만 7130명이다. 시민 1인당 직·간접으로 119만원을 부담하고, 119만원어치의 유·무형 서비스를 골고루 받아야 제대로 된 시정(市政)이라고 할 수 있다. 이씨는 “지방정부가 내가 낸 세금을 이렇게 많이 쓸 줄 몰랐다.”면서 “납세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라도 단체장과 의회의원을 똑바로 뽑아야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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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2010 지방선거 D-79] 어느 道의 해양레저전시회 예산낭비 사례 (서울, 유지혜기자, 2010-03-15 3면)
요트대회 급조… 재해예산 돌려 사용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낭비성 사업은 정치적 필요나 기관장의 업적쌓기에 치우쳐 사전 검토를 제대로 거치지 않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서울신문은 14일 행정안전부 종합감사에서 주의 조치를 받은 한 광역자치단체의 해양레저산업 전시회 개최 사례를 통해 지자체의 예산 낭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원인은 무엇인지 짚어봤다. 함께하는시민행동이 발간한 예산 감시 실무매뉴얼과 감사원이 제시한 예산낭비 체크포인트 목록을 참고했다.
A도는 2008년 전시회 개최를 위해 투·융자 심사를 받고 예산을 13억원으로 편성했다. 이후 요트대회도 함께 열기로 계획을 변경해 소요 예산이 53억원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A도는 예산을 추가편성하지 않았다. 대신 공동주최자인 관할 기초자치단체 B시에 도 예산 중 일부인 시책추진보전금을 지원했다. 이 돈은 재해 대비 등을 위해 쓰도록 용도가 정해진 예산이다. 행안부는 “행사는 공동주최가 아니라 사실상 A도가 주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사업타당성 검토 잘못’ 유형) A도 조례상 행정권한을 위탁받은 기관은 이를 다른 기관에 이양할 수 없도록 돼 있다. 하지만 행사 위탁기관인 C사는 사업을 다시 제3의 대행사에 맡겼고, 불필요한 대행수수료 1억 1100만원이 들어갔다. 운영 대행업체 선정 과정에서도 특정 업체와 수의계약을 맺었다.(→‘계약 및 공사관리 잘못’ 유형)
A도는 행사 홍보 과정에서 보조금을 지원받는 단체 3곳에 요청해 3억 4000여만원을 TV 중계방송과 축하 공개방송, 신문광고료로 썼다. 이 보조금은 수도권 규제완화를 통한 투자환경 조성에 쓰라고 지급된 것이다.(→‘국고보조금 관리 잘못’ 유형) 전시회 뒤에는 성과 평가 용역 보고서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담당 공무원과 관련 실·국 및 시·군에 성과시상금 1억여원을 줬다.(→‘공무원의 도덕적 해이’ 유형) 함께하는시민행동은 이 밖에도 예산이 낭비되기 쉬운 아킬레스건으로 업무추진비 및 홍보비, 지역축제, 관용차량 및 관사, 지방의회 해외연수, 사회단체보조금 등을 꼽았다.
[선택 2010 지방선거 D-79] 광주 북구 예산낭비 예방 사례 (서울, 유지혜기자, 2010-03-15 3면)
예산짤때 주민 참여… 생활밀착형 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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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2010 지방선거 D-78] 주민투표·소환제의 한계 (서울, 홍성규기자, 2010-03-16 3면)
청구·가결조건 까다롭고 잦은 실시땐 행정 압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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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2010 지방선거 D-78] 행정개혁으로 9년새 인구 1.7배·세수 3배↑ (서울, 이지운 홍성규기자, 2010-03-16 3면)
■부자 자치단체 탈바꿈 A市
2004년 6월 경기 A시의 자치단체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개발사업 승인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직후다. 시의 행정이 위축되기 시작했고, 각종 경제지수가 하강세를 그렸다. 사건 직전 이뤄졌던 대기업의 첨단산업단지 유치라는 성과도 빛이 바랬다. 하지만 6년 뒤, A시는 남 부럽지 않은 자치단체로 거듭났다. 대기업 유통단지를 추가로 유치했고 최초의 민간 주도 문화·콘텐츠 산업단지도 끌어들였다. “시장의 대대적인 행정개혁 결과”라는 중앙 정부의 평가를 받았다.
유명 대학 캠퍼스를 유치하기 위해 15개월이나 걸리던 사업 승인을 단 6시간으로 단축시킨 사례는 원스톱 서비스 행정의 본보기가 됐다. 2000년 19만 3719명이던 인구수는 지난해 33만 1504명으로 1.7배 늘었다. 지방세 수입도 증가했다. 지난해 세입규모는 3715억원으로 2000년 1168억원에 비해 3배 이상 뛰었다. 재정자립도가 크게 개선됐다. 지난해 재정자립도는 전국 시 평균 40.7%를 뛰어넘는 53.6%였다. 2004년 40.6%까지 곤두박질쳤던 것에 비해 13%포인트 올랐다.
■일자리 창출 올인 B市
대기업 첨단산업단지 유치를 수도권에 빼앗긴 경북 서남부의 B시. 2009년 재정자립도는 산업단지 유치의 승패를 갈랐던 2004년보다 19.9%포인트나 떨어진 44.2%를 기록했다. 이에 B시는 국책사업에 승부를 걸었다. 5년간 1조 8000억원이 투입되는 국가1공단 리모델링 사업, 국가5공단 조성사업, 모바일융합센터 등을 따냈다. 세입규모가 2004년 2811억원에서 2009년 5566억원으로 2배나 뛰었다.
산업단지 유치에 실패했던 B시는 국책사업 유치를 통해 지역 경쟁력을 끌어올린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B시는 끌어올린 재정력을 바탕으로 고용을 늘린 기업에 지원금을 주는 ‘1기업 1인 더 고용하기’ 행사를 벌였다. 지난해 396개사에서 1259명의 신규 고용을 창출했다.
■성장 멈춘 ‘복지부동’ C郡
B시와 인접한 C군의 지난해 지방세 수입은 77억 9000만원으로, B시의 70분의1 수준이다. 특이한 것은 재정자립도가 2004년보다 8.5%포인트 오른 19.0%라는 점이다. 인구는 꾸준히 줄고, 뚜렷한 투자 유치 성과도 없지만 살림살이 내용이 호전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산 내역은 부실덩어리다. 세입액과 세출액의 차이인 순세계잉여금이 2007년부터 100억원 이상씩 새해 예산으로 이월됐다. 순세계잉여금은 부채 청산 등으로 처리하거나 지역 발전에 재투자해야 하지만, 군 통장에 차곡차곡 쌓여 재정자립도의 왜곡을 불러온 것이다.
이처럼 지방 살림은 행정 행위에 따라 큰 편차를 보인다. 누가 살림을 맡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지난해 행정안전부는 자치단체 회계 평가에서, 경기 파주시의 도로 등 도시 기반시설 확충에 따른 부채 증가를 우려했다. 동계올림픽 유치 등을 위해 강원개발공사가 추진한 ‘알펜시아 리조트’는 미분양 사태로 사업비가 1조 2940억원에서 30% 뛰었다. 2014년 아시안게임을 유치한 인천도 경기장 건립비로 3000억원의 부채를 떠안고 있다. 그러다 보니 C군처럼 복지부동을 택하는 자치단체도 늘고 있다. 재정이 모자라도 정부가 메워주고, 회계장부는 순세계잉여금으로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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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2010 지방선거 D-78] 제역할 못하는 지방의회 (서울, 홍성규기자, 2010-03-16 3면)
정치권·토호세력 그늘에 유급화에도 성과 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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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2010 지방선거 D-77] 예산·발주·인사 한손에…단체장 41% 비리 얼룩 (서울, 허백윤기자, 2010-03-17 3면)
“구청장이 예산편성권과 공사 발주권, 인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유혹이 뒤따를 수밖에 없죠.” 민선 2, 3기 서울 관악구청장을 지낸 민주당 김희철 의원은 16일 끊이지 않는 기초단체장 비리의 원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저도 여러차례 유혹을 받았던 게 사실”이라고도 했다. 김 의원은 2004년 반부패청렴상을 받았다. “8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수의계약을 하지 않은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통합 청사를 지을 때에도 감독관 3000명을 확보해 매일 동별로 돌아가며 감시·조사를 하게 했다.”면서 “모든 권한을 실무자에게 돌리고 구청장은 관리감독의 방향만 제시하도록 해 비교적 수월한 행정이 가능했다.”고 돌아봤다.
김 의원의 뒤를 이은 민선 4기 김효겸 전 관악구청장은 공무원 승진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지난해 11월 직위를 잃었다. 김 의원은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인사위원회를 구성해 객관적인 인사가 될 수 있게 제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민단체나 언론의 역할도 지적했다. “언제든 큰 돈을 만질 수 있는 유혹이 도사리고 있는데 아무도 감시하지 않으면 당연히 유혹 앞에 약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기형적인 지방세 구조도 기초단체장 비리를 부추긴다. 단체장이 편성·집행권을 가진 지방세의 80% 정도가 취득세·등록세·재산세·주민세 등으로 이뤄진다. 취득세·등록세·재산세는 대부분 부동산에서 나오기 때문에 단체장은 개발 사업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 관내에 골프장을 건설하면 각종 지방세 수입이 따르고, 건설 과정에서 리베이트도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선거 빚’을 지고 있는 단체장은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민선 4기 기초단체장 가운데 비리·뇌물수수 등 혐의로 기소된 단체장은 94명으로 전체의 41%에 이른다. 이 가운데 29명이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기소된 단체장 수는 민선 1기 23명, 2기 59명, 3기 78명 등으로 갈수록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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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2010 지방선거 D-77] “찍혀야 산다” 공천향한 해바라기 (서울, 허백윤기자, 2010-03-17 3면)
하향식 공천에 휘둘리는 후보들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민주당 최규식 의원의 2층 사무실 바로 위층에 구청장에 출마하려는 민주당 예비후보가 사무실을 차렸다. 바로 옆 건물에는 다른 민주당 예비후보의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다른 정당이나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현역 국회의원과 가까이 있을수록 선거운동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예비후보는 지역구 국회의원의 행사를 일일이 쫓아다닌다. 유력 정치인 출판기념회의 참석자 절반이 지방선거 예비후보자라는 말도 있다. 현역 국회의원의 보좌진이 그 지역의 구청장, 시의원 등으로 출마하는 일도 많다.
지난해 말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여야 합의로 기초단체장 정당공천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기초단체장을 정당에서 공천하면 중앙 정치에서 추진하는 정책이 지역으로 빠르게 소통되는 장점이 있다. 국정을 책임진 여당으로서는 국가 사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도 많다. 지방선거의 공천을 좌우하는 현역 국회의원이 ‘공천 장사’를 한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6일 “중앙당에서 공천권을 쥐고 있으면 기초단체장과 현역 의원이 임기 내내 서로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지방선거를 앞두면 현역 기초단체장이 재선에 도전하려고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진다.”면서 “공천에 앞서 경선을 원칙으로 하고 시·도당의 공천심사위원회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초단체장은 공천권을 따내기 위해, 현역 국회의원은 기초단체장이 차기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을 막기 위해 ‘공생관계’가 임기 내내 유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야는 이처럼 ‘위에서 찍어 내리는 공천’의 폐해를 막기 위해 최근 나름대로 제도를 정비했다. 한나라당은 상향식 공천을 실현하기 위해 공직 후보 선출시 여론조사를 통한 경선을 의무화했다. 경선을 치르지 않는 전략공천 지역에서는 국민공천배심원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배심원단의 3분의 2 이상이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 판정을 내리면 당 최고위원회에 재심을 요구할 수 있다. 민주당 역시 전략공천 30% 내에서 시민공천배심원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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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대해부] 돈선거 실상 (서울, 허백윤기자, 2010-03-17 3면)
법정비용의 최소 3배…돈먹는 지방선거 빚 갚으려 뇌물 유혹에
“중앙당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돈 안 드는 선거’를 하겠다고 하지만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비후보자들에게 지방선거는 돈 먹는 하마나 다름없습니다.” 서울 A구청장에 도전하는 예비후보 김모씨의 하소연이다. 선관위가 규정한 A구의 선거비용 제한액은 2억 4200여만원이다. 법정 선거비용제한액은 기초단체장의 경우 9000만원+(인구수×200원)+(읍·면·동 수×100만원), 특별·광역시장의 경우 4억원(인구수 200만명 미만은 2억원)+(인구수×300원), 도지사 선거는 8억원(인구수 100만명 미만이면 3억원)+(인구수×250원)으로 책정된다.
그러나 김씨는 16일 “대부분의 후보들이 예비후보등록 몇 개월 전부터 이미 한 달에 2000만원씩은 썼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정 선거비용제한액만으로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씨는 지난달 19일 선관위에 예비후보 등록을 하기 전 소속 정당에 예비후보 심사요청을 했고, 이후 1·2차 심사절차를 밟았다. 최종 후보자를 확정하기 전에 3·4차 심사도 남아 있다. 심사요청을 할 당시 기탁금 명목으로 200만원을 냈다. 경선을 치르기 위한 추가 비용도 예상된다.
* 서울 A구청장 예비후보 선거비용
- 선거사무실 임대료 2000만원(월 500만원×4개월)
- 선거용 차량 임대료 3000만원
- 홍보용 명함, 공약자료집, 현수막 2000만원
- 문자메시지 500만원
- 후보등록 정당기탁금 200만원
- 선거기획사 의뢰(여론조사비용 포함)5000만원
- 수행원 급여·식대, 지역행사 참가 등 비공개
※ 예비후보자 등록일(2월 10일)부터 선거일(6월 2일)까지 기준
후보자들은 기본적으로 선거사무실, 명함·현수막 등 홍보용품, 정책자료집 등을 준비한다. 공식적인 선거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들이다. 김씨는 그동안 사업을 해왔기 때문에 새로 사무실을 구할 필요 없이 예전처럼 임대료만 내면 되지만, 대부분의 예비후보들은 사무실부터 차리고 운전사와 비서를 고용해야 한다. 명함은 하루에 보통 3000명에게 뿌린다. 예비후보로 등록하기 전부터 자기소개용으로 정당과 기호를 뺀 채 돌린 명함값만 매월 120만원이었다. 여기에 수행원들의 식사 및 급료, 여론조사 비용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A구에는 김씨와 같은 정당 소속 예비후보자만 13명이다. 아직 등록을 하지 않고 지역에서 터를 닦는 인사들도 상당수다. 이 가운데 단 한 명만 공천을 받아 본선에 나설 수 있다. 선관위로부터 기탁금을 돌려받는 것도 공천이 최종 확정된 후보가 선거에서 15% 이상의 지지율을 올렸을 때만 가능하다. 결국 나머지 12명은 허공에 돈을 날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김씨는 “정당에서 예비후보자들의 등록을 모두 받아들이다보니 후보자들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정작 유권자들은 똑같은 기호와 정당이라며 귀찮아 한다.”고 토로했다.
최종 후보자로 낙점되면 돈 쓸 일이 더 많아진다. 본격적으로 상대 정당 후보자에 맞서야 하고, 그동안의 당내 경쟁자였던 예비후보자들을 ‘아군’으로 만드는 노력도 필요하다. 한 선거 관계자는 “같은 당 소속 예비후보가 6명이라고 할 때, 최종 후보자로 낙점된 이는 본선에서 나머지 5명의 도움이 절실하다.”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데 맨입으로 되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비용이 들어간다는 얘기다. 특히 기초단체장의 경우 ‘비공식적’ 비용이 훨씬 더 필요하다는 게 출마 준비자들의 전언이다.
경기 B시장 출마 준비자 이모씨는 “얼굴을 알리려면 지역 행사에 꾸준히 참석해야 하고, 선거운동을 돕는 수행원, 자원봉사자들을 챙겨주다보면 거액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는 “한마디로 움직이는 것 자체가 돈”이라고 표현했다. 한 출마 준비자는 “법정 선거제한비용의 최소한 3배 이상은 쓴다고 보면 된다.”면서 “선거비용의 80% 정도가 ‘지역 책임자’들을 관리하는 데 쓰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지난해 11월 오근섭 전 경남 양산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선거 빚’ 때문이었다. 오 전 시장은 2004년 6월 보궐선거에 이어 2006년 지방선거 등 두 차례의 양산시장 선거를 치르면서 선거자금으로 빌린 돈에 대한 상환독촉에 시달렸다. 그 과정에서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24억원을 뇌물로 받아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선거 빚만 무려 60억원이었다. 한국지방행정학회 라희문 교수는 “기초단체는 지역이 좁고 지역 주민끼리 서로 잘 아는 사람들이어서 국회의원 선거보다 오히려 투명하지 못하다.”면서 “지역 규모가 작을수록 씨족들이 모여 사는 곳이 많고, 돈을 주고 받아도 소문이 나지 않아 서로 돕는다는 차원에서 ‘돈 선거’가 공공연히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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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2010 지방선거 D-75] 호화 청사 - 축제… 염치없는 자치 (서울, 이지운 홍성규기자, 2010-03-19 3면)
지난해 말 이명박 대통령이 지식경제부 업무보고에서 지방자치단체의 호화청사를 강하게 질타했다. 여론의 비난도 이어졌다. 감사원은 2007년 이후 청사를 신축했거나 신축을 진행 중인 지자체 24곳을 대상으로 특별 감사를 벌였다. 학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씁쓸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중앙’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지방’ 스스로가 불러온 데 대한 아쉬움에서다. 전문가들은 18일 “상황이 그렇게 되도록 견제 장치가 작동되지 않은 점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단체장들이 호화청사 신축, 각종 지역축제에 혈세를 쏟아부을 동안 지방 의회와 주민은 이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다. 한 지방행정학 교수는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주민의 힘으로 얻은 게 아니라 중앙 정부가 쥐어 준 것”이라면서 “아직도 ‘자치 DNA’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경기 성남시의 신청사는 호화청사 논란에 불을 지폈다. 여수동 국민임대주택 단지 주변 7만 3957㎡ 대지에 지하 2층, 지상 9층 규모로 들어선 신청사에는 건축비 1610억원을 포함, 모두 3222억원이 투입됐다. 스텔스 전투기 모양을 본뜬 신청사는 컬러 복층 유리와 알루미늄 패널, 무반사 지붕 패널을 외부 마감재로 사용했다. 1층 로비는 대리석과 화강암으로 장식했다. 또 다른 호화청사 논란을 일으킨 경기 용인시청도 연면적이 7만 9572㎡나 된다.
전국 246개 지자체 청사 가운데 16곳이 2005년 이후에 신축된 것들이다. 새로 만든 청사는 옛 청사보다 평균 3배 이상 덩치가 불어났다. 2005년에 새로 지은 용인시 청사의 연면적은 7.1배나 늘었다. 천안시청은 6.2배, 원주시청은 5.8배, 포항시청은 5.4배로 면적이 커졌다. 사업비도 1000억원대가 기본이다. 용인시청은 1974억원, 전북도청은 1758억원, 전남도청은 1360억원이 들었다. 전북과 전남의 지난해 재정자립도는 각각 17.5%, 10.4%로 16개 광역단체 가운데 최하위권에 속했다.
무엇보다 행정안전부가 제시한, 공무원 1인당 사용면적 등 지방청사 면적 표준안이 무시됐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꼽힌다. 조례로 건축에 필요한 구체적인 사안을 명시해야 하지만 이를 건너뛴 지자체도 많다. 호화청사 논란을 빚은 성남시가 대표적인 사례다. 시정(市政)을 감시해야 할 시의회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지자체에 유행처럼 번진 지역 축제도 속을 들여다보면 ‘세금 잡아먹는 하마’나 다름없다. 경기 하남시가 1996년부터 매년 3억 5000만원을 들여 치른 ‘하남 이성 문화축제’는 지난해 재정적 문제로 중단됐고, 부산 강서구가 2002년부터 매년 1억원을 들인 ‘가덕도 숭어들이 축제’는 어촌 주민의 불편 등을 이유로 지난해 폐지됐다. 2005년부터 4년간 열린 ‘평창 산꽃약풀축제’는 행사 효과가 적다는 자체 평가에 따라 지난해 없어졌다. 사전검토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몇차례 행사로 수억원을 날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해 전국에서 치른 지역축제는 모두 937건에 이른다. 광역단체와 기초단체가 주관한 것이 각각 58건, 562건이었고, 민간이 주관한 행사는 317건이었다. 지역 축제가 경쟁적으로 늘어난 것은 민선 지방자치 시대가 열리면서다. 민선 1기 2년차인 1996년부터 728개가 새로 생겨났다. 2000년 이후 시작된 축제가 전체의 52.5%인 428개나 된다. 하지만 성공적인 사례는 극소수에 그친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김병국 연구위원은 “가시적인 청사 신축이나 행사 개최 등으로 표를 이끌어내려는 단체장들이 정치성이 가미된 행사를 주민 동의 없이 벌이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주민들의 관심이 채 미치지 못하고, 지방의회가 견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주민 복지에 쓰일 혈세가 생색내기 사업에 낭비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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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2010 지방선거 D-75] 생성~결과 ‘행정이력시스템’ 필요 (서울, 홍성규기자, 2010-03-19 3면)
자치 DNA 만들려면
지방행정 전문가들은 자치단체장의 예산과 권력에 대한 전횡을 막고, 지방의회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주민 감시시스템의 정상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이창균 선임연구위원은 ‘주민 참여를 통한 감시시스템’ 구축을 강조했다. 예산 편성 때부터 지방의원 말고도 주민이 직접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수 요건으로 ‘행정 이력 시스템’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이 연구위원은 18일 “만약 자치단체 투자 사업의 이력이 나타나는 시스템을 갖춘다면 사업의 생성에서부터 진행, 결과까지 투명하게 지켜볼 수 있게 돼 중복 및 과잉 투자를 방지하는 것은 물론 주민 감시가 한결 쉬워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지자체의 자율성이 더 강화되면 호화 청사 같은 문제가 더 많이 생겨날 소지가 많으므로 서둘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연구원 소속 김병국 연구위원은 지자체별로 행정시스템을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행정시스템 다양화’라는 다소 파격적일 수 있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는 “모든 지자체가 똑같이 단체장을 뽑고 똑같이 의회를 구성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면서 “재정이 취약하고 인구가 줄어드는 곳은 그에 맞는 다른 형태의 행정기구를 갖추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인구가 적은 농촌에서는 지역 특성에 맞게 자치 시스템을 개발하면 된다. 굳이 인구가 많은 도시와 똑같은 형태의 단체장과 의회를 구성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다. 김 연구위원은 또 “도의 역할을 시·군·구에 이양할 때 지역 특성에 맞춰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며 ‘맞춤형 행정’을 주문했다.
권경득 선문대 교수는 ‘주민 계몽’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권 교수는 “호화청사 논란이 지자체장의 무분별한 성과욕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더 큰 문제는 호화청사 건립비 때문에 복지예산이 깎이고 건립비를 세금으로 부담해야 하는 주민이 직접 피해 대상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주민 참여를 고양시키는 민주시민 교육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시민사회단체(NGO)의 역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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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2010 지방선거 D-75] 지자체 아이디어+주민참여 합작 (서울, 주현진기자, 2010-03-19 3면)
해외 지방정부에서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주민의 참여’. 성공한 해외 지방자치단체의 공통점은 두 가지 키워드로 요약된다. 지방 정부의 참신한 발상과 주민의 참여가 더해진 민·관 협력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높이고 지역을 발전시킨 사례가 많다.
일본 혼슈 서쪽에 위치한 효고현은 지역에서 생산된 먹거리를 그 지역에서 먼저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으로 유명하다. 각종 식품 파동으로 안전한 먹거리를 찾으려는 주민 욕구를 바탕으로 ‘직판소’라는 시스템을 운영해 주민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끈 게 성공의 요인이었다. 나아가 효고현은 지역 먹거리를 지역 주민이 안심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2004년부터 ‘효고현 식품 인증제’를 도입했다.
1960년대 일본의 대표 공업도시로 통하던 기타큐슈가 자타가 공인하는 환경도시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도 민·관 협력으로 가능했다. 1970년대 들어 주부를 중심으로 시민운동이 시작됐고, 여기에 지방 정부와 기업이 동참하면서 효과를 낸 것이다. 지금도 기타큐슈내 40여곳의 동네 슈퍼마켓에는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폐식용유 수거통이 있다. 폐식용유를 자동차연료로 재활용하기 위해 시가 2008년 9월부터 수거하고 있는 것이다. 도입 당시 월 600ℓ였던 수거량이 지금은 4300ℓ에 이를 만큼 주민 참여도가 높다.
독일의 에슬링겐은 인구 9만명의 소도시이지만 ‘디자인 도시’를 표방하며 외화벌이로 유명해졌다. ‘자동차 도시’ 슈투트가르트로부터 10㎞ 거리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자동차 부품과 각종 철물 제품을 생산하는 공업도시로 성장했지만 철물공장을 개조한 문화·레저 복합단지인 ‘다스 딕’의 활약으로 연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권경득 선문대 교수는 18일 “지방자치의 주요 목적은 지역 주민의 생활 수준 향상과 지역의 경제발전이므로, 민·관의 협조는 지방자치 성공의 필수 요건”이라면서 “민·관의 협조 체제를 구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 주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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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2010 지방선거 D-72] “좋은 동네정치 우리 손으로”… 주민후보 나선다 (서울, 유지혜기자, 2010-03-22 5면)
1995년 민선1기 지방자치 시대가 열린 지 올해로 15년이 됐다. 지역의 장(長)을 선출하는 것이 올해로 다섯번째이지만, 아직 지방자치를 멀기만 한 남의 이야기로 여기는 주민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전국적으로 심상치 않은 ‘풀뿌리 운동’의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주민이 직접 ‘좋은 동네정치 하기’, ‘살기좋은 마을 만들기’에 나서고 있어서다.
주민연대, 좋은정치노원씨앗모임 등 서울을 비롯해 전국의 지역정치운동 단체들은 지난달 ‘풀뿌리좋은정치네트워크(풀넷)’를 결성했다. 지역 현안 중심의 생활정치 구현을 목표로 하고 있는 풀넷은 직접 주민후보도 낼 계획이다. 세종시 문제, 개헌 논의 등 중앙무대의 대형 이슈가 풀뿌리 자치의 씨앗을 날려 버리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21일 “현재의 정치는 좋은 정치를 보여주는 데 명백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시민적 욕구를 담아낼 수 있는 정치적 그릇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한국의 새로운 정치적 힘은 아래에서부터 분출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참교육학부모회 등 서울지역 20여개 시민사회단체도 ‘서울시 친환경 무상급식 추진 운동본부’를 발족, 정책 구현으로까지 연결시키겠다고 밝혔다. 청년 실업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나선 ‘한국청년연대’ 역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구체적인 요구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이 같은 풀뿌리 자치운동의 시발점은 2000년부터 3년에 걸쳐 진행된 경기 고양시의 ‘러브호텔 반대운동’으로 볼 수 있다. 이전까지 지역정치 참여 시도는 각 시민사회단체가 산발적으로 진행했다. 하지만 고양시가 러브호텔을 무분별하게 허가하자, 주민이 그야말로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 반대운동을 벌였다. 이는 선거참여조직 ‘2002 고양시민행동’의 결성으로 이어졌고, 지방선거에서 시민행동 후보 8명이 시의원에 당선됐다. 서울 도봉구에서도 환경운동연합과 여성민우회가 공동후보를 내 구의원 2명을 당선시켰다.
하지만 2004년 17대 총선에서의 낙선·낙천운동으로 시민사회단체의 정치 참여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생겨났다. 또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도입과 참여정부에 대한 심판 성격으로 치러진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이 호남 등 일부지역을 뺀 대다수 지역을 석권, 많은 시민후보가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오히려 지역정치의 기세가 중앙정치에까지 여파를 미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실시하고 있는 무상급식이 이번 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연일 여야의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량급으로 일컬어지던 야권 영입 후보들도 기초단체장으로 ‘하방(下放) 출마’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야5당이 선거연대 합의문을 발표하면서 “연합에 찬성하는 풀뿌리 후보도 단일화 후보가 될 수 있다.”고 명시한 것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중앙무대에서 좌절을 맛본 386세대 등 경험있는 정치인이 고향마을로 돌아가는 추세가 뚜렷한 것을 보면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제대로 된 ‘마을자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하지만 백의종군의 마음인지, 이를 발판으로 도중에 다시 2012년 총선을 노리기 위한 것인지는 경계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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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2010 지방선거 D-72] 급조·선심·과장 공약은 ‘부도수표’ (서울, 유지혜기자, 2010-03-22 5면)
나쁜 공약 선별법
정치권에서 통하는 서울시장 선거에 대한 속설이 있다. 출마 선언을 늦게 할수록 당선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상대 진영이 미리 대응전략을 마련하기가 힘든 데다, 유권자도 식상한 기존 후보보다 선거에 임박해 나타나는 ‘뉴 페이스’를 더 주목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매니페스토 운동 측면에서 보자면 이렇게 늦게 등장하는 후보는 ‘참 나쁜 후보’다. 유권자가 후보자와 공약을 이해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유권자 한 명이 자그마치 8명의 대표자를 뽑아야 하는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수십만개의 공약이 쏟아져 나올 전망이라, 어느 때보다 좋은 공약과 나쁜 공약을 가려내는 ‘혜안’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이 꼽는 가장 나쁜 공약은 선거에 임박해서 급조된 공약이다. 유권자에게 충분한 시간과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은 ‘찍기 선거’를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21일 최소한 선거일 60일 전에 후보자와 공약이 결정돼야 이를 검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에 진행되고 있는 정책을 자신의 것처럼 포장하는 공약도 나쁜 공약이다. ‘베끼는 공약’에 대해선 책임성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표를 얻기 위한 거짓말도 퇴치대상이다. 지역의 특수성과 재정적 뒷받침 등을 고려하지 않고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 선심성 공약, 과장 공약은 ‘부도수표’가 되어 버리기 십상이다.
헛공약에 속지 않으려면 공약 자체의 실현 가능성도 살펴봐야 하지만, 후보 개인의 철학과 삶의 궤적을 유념해서 볼 필요가 있다. 소속 정당과 전혀 다른 공약을 내세운다든지, 그동안 고수해온 가치와 다른 입장을 보인다면 아무래도 이행 가능성을 담보하기 힘들다. 충분히 절충을 통해 문제 해결이 가능한데도 극한 대립구도를 형성하는 정치 공세성 공약,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불지르기식 공약’에도 속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많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재도전 의사를 밝힌 것이 유권자에게는 일종의 ‘팁’이 될 수도 있다. 각 지자체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과거 공약을 실제로 얼마나 잘 지켰는지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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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2010 지방선거 D-72]김제 노인그룹홈 ‘매니페스토 나비효과’ (서울, 유지혜기자, 2010-03-22 5면)
공약실천운동 어디까지 왔나
지난해 9월 광주 서구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최초로 ‘공약 실천을 위한 기본조례’를 공포했다. 스스로 선거 때 한 약속을 잘 지켰는지 검증받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매니페스토(manifesto) 조례’ 탄생은 참공약 실천에 대한 정치인의 책임의식은 물론 주민의 주인의식 또한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매니페스토 운동이 시작된 시기를 구체적으로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2006년 지방선거 때 처음 화두로 등장해 17대 대선과 18대 총선 등을 거치며 바람직한 선거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참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급속히 확산됐다. 2006년 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된 광역자치단체장 16명 전원이 지방자치 역사상 처음으로 인수위원회를 꾸리고, 후보로서 내세웠던 공약을 지방정부의 정책으로 구현할 수 있을지 검증한 것도 매니페스토 운동의 성과다.
한발 더 나아가 2008년에 개정된 공직선거법은 ‘선거공약서에는 공약과 각 사업의 목표·우선순위·이행절차·기한·재원조달방안 등 추진계획을 기재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매니페스토 실천을 아예 법으로 의무화한 것이다.
지방자치 일꾼의 공약 이행은 삶의 질 향상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2008년 최우수사례로 선정한 전북 김제시가 좋은 예다. 출범 당시 ‘더불어 사는 복지공동체’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던 김제시는 ‘노인 그룹홈(공동생활가정)’이라는 형태로 이를 구현했다. 김제시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도입한 노인 그룹홈은 경로당과 공동 숙박시설의 기능을 모두 갖춘 공간이다. 처음에는 사생활 침해를 우려해 꺼리던 노인들도 소일거리가 생기고 말동무가 늘자 그룹홈을 더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했다. 2006년 두 곳으로 시작한 김제시의 그룹홈은 지난해 76곳으로 늘었다. 시는 올해 안에 그룹홈을 95곳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다른 지자체도 김제시의 그룹홈을 ‘벤치마킹’해 비슷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단체장의 충실한 공약 이행이 엄청난 ‘나비효과’를 가져온 셈이다.
최근의 매니페스토 운동은 참공약 검증에 그치지 않고 유권자가 바라는 바람직한 공약의 방향을 먼저 제시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매니페스토본부는 지난해부터 국민 2만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등을 실시해 16개 광역단체별 10대 어젠다와 1957개의 정책공약을 주요 정당에 전달했다. 각 정당도 ‘예선전’에서부터 유권자의 참공약 실천 요구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경선 참여단계에서부터 일자리 공약을 제출받아 심사 기준으로 삼기로 했고, 민주당은 ‘뉴민주당 플랜’을 발표해 소속 후보가 내세울 공약의 큰 틀을 제시했다. 매니페스토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처장은 “이번 공약 수요 조사 결과 성장보다 분배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유권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면서 “이는 성장을 통한 경제성장이 힘들다는 것을 경험으로 느끼고 다른 방향으로의 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도권 지방선거 ‘정책’ 실종 (내일, 곽태영 김선일 기자, 2010-03-30 오후 12:29:00)
광역단체장 후보들, 공천경쟁·국정현안 치중
정책 없는 후보도 … “정책선거 마인드 부족”
6·2지방선거가 불과 65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서울·경기지역 유권자들은 여전히 선거에 관심이 없다. 유권자들은 정당이나 후보들이 주민들을 만나 뭐가 문제인지, 뭐가 달라져야 하는지 듣고 정책공약을 생산하기보다 공천주고 받기에 더 열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예비후보들 가운데 현재 온전한 정책공약을 제시한 후보는 드물다. 대부분 예선인 정당 공천 이후로 정책발표 시기를 미루거나 이미지 제고에 활용하기 위해 이슈별로 나눠 발표하고 있다.
◆이슈별·분야별로 ‘찔끔찔끔’ 나눠 발표 = 특히 한나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들 사이에는 눈치보기가 심하다. 정책이나 공약을 적극 내세워 자신을 알리기보다 정치일정에 맞춰 ‘찔끔찔끔’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 서울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원희룡 의원측은 “전체 공약을 한꺼번에 내놓으면 효과가 떨어지는데다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며 “주요 이슈별로 공약을 제시하고 상대방의 반응을 보면서 추가 대응한다”고 설명했다.
현역에게 도전장을 낸 나경원 의원 관계자도 “백화점식 발표보다 관심도가 높은 것부터 시민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하는 게 더 좋다”며 “당내 경선일정이 확정되지 않은 것도 공약을 발표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라고 해명했다. 김충환 의원측도 “이미 시정전반에 관한 106개 정책을 발표했으며,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구체적 내용이 준비된 공약부터 분야별로 발표하고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서해상의 해군 초계함이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지방선거 시계’도 멈춰 섰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당초 지난 28일 한나라당 여의도당사에서 출마선언을 할 예정이었으나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사고’로 다음 주로 잠정 연기했다. 이에 따라 오는 4월 중순쯤 시작해 같은 달 말 마무리할 예정이던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일정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경기지사 선거도 정책공약이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의 경우 김문수 현 경기지사의 후보 추대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돼 있다. 이에 따라 주요정책도 지난 4년간의 도정 성과를 중심으로 제시될 가능성이 높다. 오는 4일 도지사 후보경선을 치를 예정인 민주당 김진표 이종걸 의원도 도지사 정책공약보다 정부현안에 대한 비판과 당내 경선 룰에 대한 공방에 치중해왔다. 김 최고위원은 29일 ‘김진표 예비후보가 드리는 11가지 변화와 희망’을 통해, 이 의원은 ‘서민과 중산층 모두가 오, 예스(Yes)를 외치는 경기도 5S’란 주제로 정책의 주요골격만 제시한 상태다. 이 의원측 관계자는 “예선(당내 경선)과 야권단일화, 본선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예산 땐 비난받지 않을 정도로 정책을 선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그나마 ‘무상급식’ 등 정책이슈가 있어 관심을 끌고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기초단체장 예비후보는 ‘심각’ = 서울·경지지역 일부 기초단체장 예비후보 가운데 제대로 된 정책공약도 없이 정당 공천을 신청한 뒤 소속 정당의 광역단체장 후보 선거본부 등을 찾아다니며 공약을 구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당과 예비후보들의 이러한 행태는 ‘정책선거’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올해는 특히 짧은 선거기간에 6명의 후보를 뽑아야하는데 야권연대 등의 이유로 후보들의 공약발표가 늦어지면서 ‘정책선거’가 실종될 것이란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참여연대 이지현 의정감시팀장은 “올해는 8개 선거가 동시에 치러지기 때문에 후보들이 사전에 정책을 발표해야 정책평가가 가능한데 오히려 미뤄지고 있어 정책선거 자체가 어렵다”며 “후보들의 정책선거 마인드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일본에서 한 주부가 아주 세밀한 생활밀착형 공약을 제시해 의원에 당선된 것처럼 한국정치도 밑바닥에서부터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며 “정책선거를 유도하기 위한 언론의 노력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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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D-50 이런 지자체 꿈꿔요] (1) ‘안심도시’ 가꾸는 풀뿌리 (서울, 이창구기자, 2010-04-13 1면)
뉴욕지하철 낙서지우니 범죄 75%나 뚝
1982년 미국의 범죄심리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은 ‘깨진 유리창 이론’을 발표했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된다는 범죄심리학 이론이다. 당시 뉴욕 교통국장 데이비드 칸은 연간 60만건에 이르는 뉴욕의 범죄사건을 줄이기 위해 이 이론을 적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음산한 뉴욕 지하철의 낙서를 지우기로 한 것이다. 낙서 지우기 프로젝트는 5년 동안 계속됐고, 1990년대 들어 뉴욕 지하철 범죄는 75%나 줄었다.
지난해 1월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붙잡혔을 때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너나없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폐쇄회로(CC)TV를 확충했다. 하지만 1년 만에 김길태 사건이 터졌다. 이번에는 국회가 나서 전자발찌 부착을 소급 적용하는 등 성범죄자 처벌을 강화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그럼에도 여성들은 여전히 “혼자 다니기가 두렵다.”고 한다.
동료 국회의원들과 함께 지방선거 출마자들을 위한 책 ‘복지도시를 만드는 여섯가지 방법’을 출간한 민주당 최영희 의원은 12일 “CCTV를 설치하기 보다는 가로등을 더 밝게 하는 게 범죄예방에 효과적이고, 깨끗한 도시환경을 만드는 게 사후약방문식으로 법을 만드는 것보다 낫다.”면서 “‘범죄와의 전쟁’에서 ‘낙서와의 전쟁’으로 발상을 전환한 뉴욕처럼 지자체들의 정책 전환이 안전한 도시를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대다수 지자체가 호화청사를 짓고 보도블록을 철마다 바꿀 때, 주민 안전에 세심한 배려를 한 지자체들이 빛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8년 서울 송파구를 안전도시로 공인했고, 유엔환경계획은 송파구에 ‘리브컴 어워드(LivCom Awards·살기좋은 도시상)’를 시상했다. 송파구는 안전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안전도시위원회를 상설화했고, 어린이 보호차량 인증제, 안전보안관제, 노인보호구역지정, 어린이 자전거면허제 등 기발한 정책을 도입했다. 우측통행은 국가정책으로 수용됐다.
전북 군산시는 유명무실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을 개선하기 위해 스쿨존에 어린이 형상의 조형물을 세웠고, 차선도 운전자의 눈에 띄게 새로 그렸다. 부산 영도구는 폐가(廢家) 소유주들을 설득해 마을 공동주차장을 만들어 교통 안전과 수익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전남 목포시는 퇴직공무원 등을 2인1조로 편성해 학생들의 등·하교 및 취약 시간에 순찰을 맡기는 ‘배움터 지킴이’ 제도를 실시해 학교폭력을 크게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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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D-49 이런 지자체 꿈꿔요] (2) 맹모삼천 필요없는 풀뿌리 도서관 (서울, 허백윤기자, 2010-04-14 6면)
지역이 낳은 인재를 지역에서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무엇보다 교육복지에 힘을 쏟고 있다. 마을을 ‘평생학습사회’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도서관을 짓고, 공부방을 운영한다. 대표적인 우수 사례로 꼽히는 곳이 2007년 10월 ‘책 읽는 도시’를 선포한 경남 김해시다. 김해시는 시립도서관 4곳을 비롯해 아파트 관리사무소나 마을회관 등에 설치하는 ‘작은 도서관’ 26곳, 청소년 문화도서관 1곳, 다문화 도서관 1곳 등 32곳의 도서관을 통합 운영하고 있다. 하나의 대출증으로 모든 도서관을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다.
김해시에서 태어나는 아기에게는 책꾸러미가 선물되고 독서회원증이 발급된다. 사회적 육아지원운동인 ‘북스타트 운동’의 일환이다. 도서관 건립 비용은 김해시에서 부담하고 주민들이 각종 프로그램 참가비 등으로 부족한 비용을 보탠다. 김해시청 도서관정책과 관계자는 13일 “주민이 더 편리하게 도서관을 이용함으로써 교육효과가 높아지고 지역에 대한 애착도 강해졌다.”면서 “유네스코 ‘세계 책의 수도’에 지정되는 것을 장기 목표로 도서관 인프라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색 도서관도 눈에 띈다. 부산 수영구에는 녹색장난감 도서관이 있다. 150종, 295개의 장난감이 있는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각종 놀이교육에 참여한다. 가족이 모여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부모는 자녀교육의 어려움과 궁금점을 이곳에서 상담한다. 육아는 물론 부모의 자아개발에도 효과가 있다. 경기 의왕시 중앙도서관 주변의 오봉산 자락에는 숲속도서관인 ‘숲마루’가 있다. 산책로에 책장을 설치해 자연과 함께 책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중·고생을 위한 방과후 학교도 지자체의 주요 과제다. 특히 산학협력 형식으로 현장형 인재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과후학교가 관심을 끈다. 울산공업고등학교는 실업계의 특성을 살려 전공 자격증반을 학년별로 운영한다. 우수 산업체와 연계해 교육활동에 유용한 사업종목을 함께 선정하고, 제품의 생산·판매를 통해 직접 수익을 창출하기도 한다. 학생은 동아리활동으로 창업능력을 기를 수 있고, 교사는 참여교원 인센티브제를 통해 기술향상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충남 보령 월전초등학교는 학교 규모와 여건이 비슷한 근처 관당초등학교, 남포초등학교와 각종 체험학습 및 합동학습을 꾸리고 있다. 이른바 ‘이웃학교 간 벨트형 방과후학교’다. 인천 신현북초등학교의 ‘학부모가 운영하는 방과후학교’는 방과후학교 운영과 관련해 기획부터 평가까지 모든 과정을 학부모회와 담당 교사가 협력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호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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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D-44 이런 지자체 꿈꿔요] (3) 보건소서 고혈압·당뇨 관리 지역구민 헬스케어 서비스 (서울, 유지혜기자, 2010-04-19 8면)
병·의원의 숫자는 늘어나는데, 의료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는 좀처럼 높아지지 않는다. 질병은 개인의 문제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당뇨병 등에 따른 사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높은 편인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질병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또 중한 질병은 곧 가정의 경제적 위기로 이어지고, 가장이 쓰러지기라도 하면 가족 구성원 전체가 빈곤층으로 추락할 위험도 있다. 지역사회 차원에서는 인재를 잃는 손실을 봐야 하고, 사회복지비용 부담도 늘어난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가 주치의 역할을 해 준다면 이런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모범답안은 보건소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병원도 아프다고 찾아가는 환자를 치료해 줄 뿐이지 보건소처럼 금연상담이나 식습관 개선, 운동법 등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서울 강동구 보건소는 주민센터에 ‘건강100세 상담센터’를 만들었다. 전담간호사와 의사, 영양사, 운동사, 치위생사 등으로 구성된 순회 건강관리팀이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국내 최초로 홈헬스케어 서비스인 ‘터치닥터’도 도입했다. 이를 통해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지역구민의 건강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인천 서구는 지역연계형 도시보건지소를 만들어 취약계층을 보살피고 있다. 방문건강 관리·만성질환자 관리·재활보건 관리팀으로 나눠 대상자들의 건강을 관리한다. 보건소는 지자체에 한 개밖에 없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적극적인 질병관리에 나서고 있는 선 것이다.
지자체가 의지만 있다면 생활환경을 건강하게 개선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서울 송파구는 ‘아토피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건축 자재 자체를 100% 천연재료와 친환경소재로 썼고, 아이들의 피부가 가렵지 않도록 전열교환기로 실내 온도와 습도를 쾌적하게 유지한다. 서울의료원과 협약을 맺어 의료진이 직접 방문해 어린이들의 피부상태를 진찰한다. 신발끈만 고쳐 매면 집 근처 어디에서도 운동할 수 있도록 마을 곳곳에 생활체육시설을 확충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주민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업적주의의 결과물인 대형 스타디움이 아니라 편하게 뛸 수 있는 운동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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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D-43 이런 지자체 꿈꿔요] (4) 노인 고용 실버북카페 운영, 소외계층 맞춤형 복지 제공 (서울, 허백윤기자, 2010-04-20 6면)
노인이 많은 지역에 유아용 분유만 잔뜩 보낸다거나, 기초생활수급자가 다른 지역보다 특별히 많은 곳에 저소득층 가정지원 서비스가 전혀 없다면 ‘복지’를 말하기 민망해진다.
복지수요는 지역별로 차이가 있다. 붕어빵 찍어내듯 동일한 서비스를 지역에 보내면 수요자는 꼭 필요한 혜택을 보기 어렵다. 노인, 장애인, 다문화가정, 저소득층 등 복지 수요는 일률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 지역에서 실시하고 있는 ‘맞춤형 서비스’는 이 같은 문제인식에서 출발했다. ‘더불어 사는 지방자치단체’를 표방하며 저마다의 처지에 맞는 복지 제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충남 서천군은 주거에서부터 의료, 요양, 문화 및 경제활동 등 노후생활의 모든 것을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복지타운을 건설했다. 장애인 복지관, 노인복지관, 노인병원 및 요양시설이 모두 근처에 몰려 있어 이용이 편하다. 서천군은 이 외에도 장애인보호작업장, 노인건강체육시설, 고령자용 보금자리주택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경기 시흥시는 ‘드림네트워크 사례관리 프로그램’을 통해 빈곤·위기 가정 가운데 집중지원이 필요한 가구를 직접 찾아가 맞춤형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역복지관 6곳과 동 주민센터 14곳을 생활권역별으로 나누어 6개 지역에 전문 사례관리센터를 설치, 지역내 복지기관과 협력해 통합 관리하고 있다. 지난 한 해 4565가구에 급식·가사·자립지원 등 모두 7만 9376건의 복지 서비스를 제공했다. 전북 김제시는 독거노인들을 위한 ‘한울타리 행복의 집’을 운영한다. 경로당에 목욕시설과 건강기구 등 시설을 보강해 낮에는 경로당으로 활용하고 밤에는 공동숙박시설로 이용한다. 노인 도우미, 노인 일자리 창출 등 지역사회에 일자리 증진 효과도 생긴다.
서울시는 실버문화벨트사업으로 ‘9988 어르신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낙원상가 4층에 위치한 허리우드 극장에 노인 전용 실버영화관을 개관해 일주일에 한 편씩 하루 세 차례 상영한다. 종로구 경운동에 있는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운영하는 실버 북카페도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다. 노인들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동시에 노동부의 지원으로 카페에서 일하는 노인에게 시간당 5200원씩을 지급하고 있다.
다문화가정 지원사업도 늘어나고 있다. 부산시 서구 충무동 주민자치센터에서는 ‘국제결혼 이주여성이 만든 영어체험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토성초등학교와 교실을 영어체험 마을 학습장으로 사용한다는 협약을 체결하고, 방학 동안 이주여성들이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전직 교사 및 공무원 출신의 이주여성들은 자원봉사를 통해 자기계발과 사회 참여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서울 구로구는 사회복지단체의 후원으로 ‘다문화가정 영유아보육센터’를 열었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우리말 수업을 비롯해 다양한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접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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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D-42]<5·끝> 이런 지자체 꿈꿔요 (서울, 이창구기자, 2010-04-21 5면)
문화 일구고 로컬푸드 운동 色다른 지역경제 젖줄 육성
‘세계에서 가장 현명한 도시’로 불리는 브라질의 쿠리치바시에는 지하철이 없다. 여느 도시처럼 교통난 해소를 위해 지하철 건설을 계획했지만 막대한 재정 부담 때문에 포기했다. 대신 지하철 건설비의 1%만 들여 버스전용도로 시스템을 구축했다. 오염물질 배출을 대폭 줄인 원통형 버스 정류장과 굴절버스는 생태도시 쿠리치바의 ‘명품’이 됐고, 시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싼 가격으로 버스를 이용한다.
부산진구의 재정자립도는 28%로 중앙정부나 광역시의 도움 없이는 공무원 월급도 버거운 상황이었다. 돌파구 마련을 위해 구는 먼저 돈 쓰는 방식을 바꿨다. 전시성 행사를 전면 중단했다. 여기에 투입된 연간 2억여원을 사회복지 쪽으로 돌렸다. 부서별로 매년 변동이 없던 일반운영비와 업무추진비도 10억원 이상 아꼈다. 구에서 사용하는 모든 법인카드를 지역은행 카드로 전환해 적립되는 포인트를 캐시백으로 사용, 2800여만원의 세외수입을 올렸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부산진구를 우수 예산 집행 사례로 꼽았다.
한국 지방자치단체는 대부분 가난하다. 국세와 지방세 비중이 8대2이고,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일이 전체 지방정부 업무의 15%에 불과할 정도로 중앙정부에 얽매여 있다. 전액 지방정부로 환원됐던 종합부동산세가 크게 줄어 지방재정은 더 열악해졌다. 그렇다고 지방정부가 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호화청사를 짓기도 한다. 중앙정부가 적자를 메워 주기 때문이다. 재정자립도는 53%에 불과하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이 재량권을 갖고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의 비중을 뜻하는 재정자주도는 80% 수준이다. 결국 예산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지역 경제의 ‘색깔’이 달라진다.
부천시는 서울을 제외하고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도시다. 삶의 질을 고려하지 못한 개발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도시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표적인 문화산업 도시로 거듭났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같은 굵직한 문화사업을 성공시켰고, 자투리땅을 찾아 나무를 심었다. 관공서와 학교 벽에 제비콩을 심는 세심한 행정이 빛을 발했다. 평택시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먹을거리를 지역 소비자가 소비하는 ‘로컬푸드’ 운동의 성공 모델로 자리잡고 있다. 평택푸드지원조례를 제정하고 평택푸드추진단을 구성해 직거래 장터를 운영하고 있다. 농업기술센터, 대학, 연구소와 함께 계약재배를 실시하는 등 로컬푸드 운동으로 농가 수입 증대, 물류비 감소는 물론 도시생태농업 형성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권경득 선문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역 특성에 맞는 예산 운용, 자치단체·기업·대학·연구소가 연계되는 산업단지 혁신 클러스터 구축, 지역문화의 산업화 등을 제대로 추진하면 지방재정의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고, 주민들의 최대 요구로 떠오른 복지 정책도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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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공동화 막자” 지자체 안간힘 (서울, 광주 최치봉기자, 2010-04-19 16면)
“옛 도심을 살리자.” 지방 대도시 중심지역이 텅텅 비어 가고 있다. 사람도 돈도, 사무실도 모두 외곽으로 빠져 나갔다. 신도시 개발과 도심 구조의 다핵화에 따른 영향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발전의 중심이 되었던 옛 도심을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으나 아직 효과는 미미하다.
18일 전국 대도시 중심 자치구에 따르면 해마다 인구가 줄고 있다. 쇠락이 거듭될수록 각종 인구 유인책도 먹혀 들지 않고 있다. 광주 동구는 2005년 전남도청과 경찰청 등의 남악신도시 이전으로 공동화가 가속화됐다. 풍암·상무·금호지구 등의 신도시 개발이 이어진 탓도 크다. 인구는 2008년 10만 8000여명에서 2009년 10만 7000여명, 2010년 현재 10만 3000여명으로 쪼그라들고 있다. 머지 않아 10만명 선도 깨질 전망이다. 금남로와 충장로 등 광주 도심의 공동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국토해양부가 지난해 말 조사한 이 지역 오피스빌딩 공실률은 25.7%에 이른다. 충장로 상가의 공실률은 무려 30%를 기록했다. 오피스 빌딩은 4곳 가운데 1곳, 상가 3곳 중 1곳이 비어 있는 셈이다.
대전 중구의 인구도 2008년 26만 4600여명에서 올 3월에는 26만 4000여명으로 감소했다. 대전 도심의 명물이자 전국적인 규모의 동양백화점, 중앙시장 등은 도심 쇠퇴에 따라 운명을 같이했다. 지자체들은 도심 공동화로 죽어가는 도심을 살리기 위한 갖가지 대안을 마련해 놓고 있다. 광주 동구와 대전 중구 등은 ‘옛 영화 부활’을 외치며 재개발 사업 등 활성화 대책을 추진 중이다.
광주 동구는 주거환경 개선과 재개발 사업에 매달리고 있다. 권역별로 24개 재개발 지구를 지정했다. 이중 계림5-1지구는 재개발을 마쳤다. 계림 7구역, 계림5-2구역, 학3·4구역 재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충장로 축제, 충장로 아케이드 설치 등 축제와 도심 리모델링 사업도 한창이다. 대전·인천 등도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구도심의 기능개편에 착수했다.
대전 옛 도심은 요즘 부쩍 활기를 띠고 있다. 옛 중구청 앞 거리는 오가는 인파도 눈에 띄게 늘었다. 건물들도 우중충한 모습에서 벗어나 산뜻하게 단장됐다. 인구는 해마다 조금씩 줄고 있지만 리모델링의 효과는 점차 눈에 나타나고 있다. 건물 공실률은 아직 크지만 악화 속도는 예전보다 더디다. 양철모 대전시 도심활성화계장은 “구 도심에 볼거리, 먹을거리 등 다양한 사업이 추진되면서 유동인구가 늘었다.”고 말했다.
광주 동구는 옛 전남 도청자리에 들어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희망’으로 떠오른다. 이 사업이 마무리되는 2014년에는 유동 인구 증가와 주변 개발을 불러올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광주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의 하나로 이곳에 문화전당을 짓고, 권역별 리모델링 사업도 진행한다. 2023년까지 모두 5조 3000억원이 투입된다.
그러나 구도심 활성화의 핵심은 도시기반시설 정비 이외에도 산업과 고용 증대를 위한 기반시설 확충, 좋은 학교 설립 등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부산·인천·대구·대전·울산의 중구와 광주 동구의 자치단체장으로 구성된 ‘전국 대도시 중심구 구청장 협의회’는 “구도심 활성화를 위해서는 각 지자체가 시행하는 정책과 정보를 공유하고, 필요하다면 이를 획기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관련법 제정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활인이 정치인 (한겨레21 2010.01.01 제792호, 지바(일본)=글 조혜정 기자)
‘바꿔! 지방자치’ 기획 첫 회…
평범한 주부의 눈으로 시정을 바로잡는 일본 지바시, ‘시민 추천’ 지방선거 당선자가 거의 없는 한국
2010년 6월2일엔 전국에서 민선 4기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는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은 “기초 자치정부의 운영은 자유를 시민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가져다줄 뿐 아니라, 그 자유를 어떻게 누리고 활용할 수 있는지 가르쳐준다”고 했지만, 한국에선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18년이 지나도록 이 명제가 증명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풀뿌리 정치’는 어떻게 흘러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한겨레21>은 지방선거의 해를 맞아 연속 기획 ‘바꿔! 지방자치’를 통해 이런 질문의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격주로 10차례 독자들을 찾아간다. 편집자
2009년 12월14일 오후 1시30분. 일본 도쿄에서 전철로 1시간가량 떨어진 지바현 지바시의회 방청석엔 회의를 보러 온 지바 시민 40여 명이 앉아 있었다. 이날 시의회 안건은 △지바시 신기본계획 △상가 진흥 대책과 주차장 확보 방안 △와카바구 보건센터 이용 대책 등이었다. 20대부터 백발 노인까지, 방청객들은 저마다 진지한 표정으로 준비해온 메모지에 회의 내용을 꼼꼼히 적거나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서 회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지바시 와카바구 주민 이노우에 노부코(72)는 이날 동네 주민 10여 명과 함께 회의를 방청했다. 이노우에의 설명에 연방 고개를 끄덕이던 이모토 미쓰코(63)도 거들고 나섰다. “모노레일 와카바역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불편했는데, 주민들이 서명운동을 벌이고 시의원에게 계속 요구도 했어요. 결국 엘리베이터가 생겼죠. 이렇게 지방자치는 자기 생활에 밀접한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참여하지 않으면 안 돼요.” 이들의 말처럼 지바시는 주민의 참여로 최근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2009년 6월 치러진 지바시장 보궐선거에서 정치 경력이라곤 시의원 2년이 고작인 31살의 구마가이 도시히토를 선택한 것이다.
인구 95만 명의 지바시는 지난 50여 년 동안 자민당·공명당의 지지를 받은 시장을 뽑았고, 전임 시장이 그만두면 부시장이 그 자리를 이어받는 게 ‘상식’으로 여겨지던 곳이다. 47개 광역단체와 1771개 기초단체로 이뤄진 일본에서 단체장은 대부분 무소속이되 특정 정당 1~3곳의 지지를 받는 이들이다. 지바시는 그중에서도 보수 정당의 지지를 등에 업은 단체장이 ‘장기 집권’을 해온 대표적인 도시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인 민주당·사민당의 공동 지지를 받은 구마가이 시장이 53%에 이르는 득표율을 기록해 하야시 고지로 전 부시장(득표율 36%)을 가볍게 누르고 ‘일본 최연소 시장’이자 ‘지바시 최초의 민간 출신 시장’이 된 것이다.
구마가이 시장의 이력을 보면 이 ‘사건’은 더욱 이채를 띤다. 우연히 시의회에 들어 시의원들이 회의 도중 조는 모습을 보고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결심한 그는 2007년 직장을 그만두고 시의원 선거에 나서 당선됐다. 1조엔(약 13조원)이 넘는 부채로 최악의 재정상태에 맞닥뜨리고도 불필요한 대규모 개발사업에 매달리는 지바시와 시의회를 상대로 개혁운동을 펼치던 2009년 4월 쓰루오카 게이치 시장이 뇌물 수수 혐의로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그에게 기회가 왔다.
그의 당선에는 풀뿌리 현안에 대한 집요한 천착과 광범위한 시민 참여가 결정적 구실을 했다. 구마가이 시장은 처음으로 지바시 부채 규모를 시민에게 공개해 전임 시장과 자민당의 실정을 폭로했다. 경쟁자인 하야시 전 부시장은 63살에 어마어마한 시 부채를 방치한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려웠다. 또 구마가이는 불요불급한 대형 개발사업비 200억엔 삭감 등 재정 건전화를 가장 중요한 공약으로 내세웠다. 구마가이 시장에겐 100명이 넘는 선거 자원봉사자가 몰려들었고, 이들은 점심값 한 푼도 받지 않고 모금운동으로 선거를 치렀다. 이런 사정이 알려지면서 구마가이는 유권자들에게 더욱 신뢰를 심어줬다.
당선되자마자 구마가이 시장은 모노레일 연장 사업과 지하도로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고, 스포츠 공원 신설 사업 규모를 축소하는 등 전임 시장이 추진했던 대규모 개발사업을 철회해 402억엔(약 5226억원)의 재정을 아꼈다. 시민이 왜 자신을 선택했는지 잊지 않은 결과다. 그는 “‘정치 프로’에게 시를 맡긴 결과가 최악의 재정 상태라는 걸 시민이 알게 됐습니다. 제가 최고여서가 아니라 시민이 자신과 같은 경험, 같은 감성을 지닌 사람이 시장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선된 겁니다”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정치 프로’나 ‘토호’가 아닌 시민이 지방자치에 참여하는 건 구마가이 시장만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지바시의회엔 1991년부터 ‘시민 네트워크 지바’(이하 시민네트워크) 소속의 주부 출신 시의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1970년대 주부들을 중심으로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생협 운동이 그 뿌리다. 생협이 1980년대 말을 지나면서 각 지역의 환경·교육·복지 등 생활 전반의 문제로까지 영역을 확장하게 되면서 태동한 ‘지역 정당’(공식 정당으로 등록됐지만 활동은 특정 지방에서만 하는 일본의 정당 형태)이 바로 시민네트워크다. ‘자치하는 시민이 생활과 정치를 바꾼다’는 문제의식이 평범한 주부를 지방자치의 공간으로 이끌어낸 것이다. 현재 지바시의회 54석 가운데 시민네트워크 소속 의원은 모두 6명이다. 전체 정당 분포는 △자민당 21석 △민주당 9석 △공명당 8석 △공산당 6석 △새정치 지바(지역 정당) 3명 △무소속 2명으로, 의석수로는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꾸준히 의회에 진출해 거둔 성과는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환경호르몬인 다이옥신 배출량 감소를 염두에 둔 ‘청소처리기본계획’의 수정이다. 2006년까지만 해도 지바시는 가정에서 배출하는 소각용 쓰레기를 일주일에 세 번씩 수집해 시내 소각장 3곳에서 처리해왔다. 그런데 소각장 1곳이 너무 낡아 보수가 필요했고, 이에 드는 비용만 200억엔에 이르렀다. 시민네트워크가 나섰다. “쓰레기를 줄이면 다이옥신 발생량도 줄고, 예산도 절감할 수 있다”고 쓰루오카 당시 시장을 압박하고, 다른 당 소속 의원들을 설득했다. 5년 만에 ‘청소처리기본계획’을 수정해 소각장 1곳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 대신 쓰레기 수집 횟수를 주 2회로 줄여 가정에서도 쓰레기를 줄이도록 유도했다.
이들은 부적절한 의회 관행에도 제동을 걸었다. 비공개로 진행되던 시의회 상임위 회의를 공개로 바꿨다. 쌈짓돈이나 마찬가지였던 정무조사비(월급 77만엔과는 별도로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돈) 월 30만엔을 어디에 썼는지 모두 영수증을 제출하도록 했다. 의회가 열리는 날마다 지급하던 교통비 8천엔은 아예 없애버렸다. 모두 ‘시민의 눈’으로 접근했기에 고칠 수 있던 관행이었다. 시민네트워크의 하세가와 히로미 의원은 “소수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고 단체장 견제는 잘 되지도 않지만, 이런 활동이 쌓이다 보니 시민에게 인정도 받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결국 지바시의 변화를 이끌어낸 힘은 자치에 관심을 기울이고 참여한 지바 시민이었다는 얘기다.
한국에서도 주민의 힘으로 지역을 바꿔보려는 노력이 없지 않다. 경기 과천시의원 7명 가운데 5명은 한나라당이고 1명은 진보신당, 그리고 1명은 무소속이다. 여인국 과천시장도 한나라당 소속으로, 시의회 다수당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도 무소속 서형원 의원은 적지 않은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활동은 주민과 함께하는 예산심의다. 서 의원과 황순식 진보신당 의원은 당선되던 2006년 말부터 시청이 넘긴 예산안을 ‘주민참여 예산 워크숍’에서 공개하고, 이 가운데 삭감하거나 증액할 항목을 주민과 함께 논의하고 있다. 2010년도 예산안을 검토하는 워크숍은 2009년 12월2일 저녁 8시 과천 시민회관에서 열렸다. 50여 명이 모였다. 시청이 수십만원짜리 상품을 내걸고 주민을 동원하는 행사에도 100명이 채 모이지 않는 현실을 감안하면 적은 수가 아니다. 주민들은 △경주마 구입·관리 예산 3억6천만원 △‘한국방송 일본’과 ‘아리랑TV’에 내보낼 과천시 광고비 1억원 △시정자문 원고료 5천만원 등 시민 복지 향상과 무관한 예산 항목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전액 삭감’을 요구했다. 이렇게 주민 의견을 모아 삭감한 예산은 무려 35억원. 과천시의 2010년 예산 2077억원에 비하면 2%가 채 안 되는 액수지만, 과천시 전체 초등학교에 유기농 쌀을 6년 동안 공급할 수 있는 돈이다. 과천시는 서 의원의 요구에 따라 최종 결정된 예산서는 물론, 2009년부턴 심의 전 예산안까지 시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서 의원이 낸 성과는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 2008년엔 ‘친환경 상품 구매 촉진 조례’를 만들어 시청이나 공기업이 물품을 사들일 때 친환경 상품을 우선 구매하도록 했다. 과천시 내 초등학교는 모두 시 예산을 받아 무상 급식을 해왔는데, 서 의원은 식자재 중 친환경 농산물 구입 비율, 위생상태 등을 학교가 시에 보고하도록 했다. 같은 예산을 받고도 학교마다 급식의 질이 다르다는 사실을 학부모들이 확인하게 되자, ‘나쁜 급식’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이런 힘 역시 시민한테서 나온다. 서 의원은 정확히는 무소속이 아니라 ‘시민 후보’였다.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 의원이 활동하던 ‘과천 지방자치개혁연대’ 회원 400여 명은 “함께 살아온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을 후보로 내자”고 뜻을 모았고 서 의원이 ‘당첨’됐다. 과천 지방자치개혁연대는 학교 운영위원회, 생협, 공부방, 주민신문 등 지역 활동을 통해 말 그대로 ‘풀뿌리 자치’를 실천하던 주민들의 자발적인 모임이다. 시민단체라면 으레 떠올리는 ‘상근 활동가’도 없다. 과천엔 이런 풀뿌리 네트워크가 발달해 있다. 지난해 촛불 정국 최고의 ‘히트 상품’인 ‘우리 집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합니다’ 펼침막도 과천 주민들이 운영하는 공부방 ‘맑은네 방과후 학교’ 운영위원 6명이 맥주를 한잔씩 하며 “매일 광화문에 나갈 수도 없고, 뭐 방법 없을까?”를 고민하다 나온 아이디어다.
서 의원은 “지방의원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우리는 권한이 없다’는 건데, 권한이 없는 이유는 주민을 참여시키지 않아서다. 시정 질문을 하더라도 무조건 주장만 할 게 아니라 주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대거나 주민 모임에서 수렴된 요구를 내놓으면 다수당도, 지방정부도 무조건 거부하지는 못한다”며 “지방의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자치에 주민 참여를 이끌어내 자치 역량을 함께 길러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과천시는 보기 드문 ‘모범 사례’다. 전국을 다 뒤져도 서 의원처럼 ‘시민 추천’을 받아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까지 된 이는 찾기 어렵다. 광역자치단체 16곳, 기초자치단체 230곳의 단체장 가운데 ‘시민 추천’은커녕 진보정당 소속조차 단 한 명도 없다. 2006년 지방선거일을 기준으로, 광역의원 733명 가운데 진보정당 소속은 15명, 기초의원 2888명 가운데 진보정당 소속은 66명이다. 비율로는 2%에 불과하다. 거대 정당이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구조인 셈이다.
직업이나 출신 성분을 살펴보면,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는 ‘주민’이 아닌 ‘토호’나 ‘특정 정당과 관련성이 깊은 인사’들이 장악하는 현상이 뚜렷하다. 거대 정당이 지방정치까지 독식함으로써 주민의 요구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특히 정치인·공무원 출신이 광역단체장의 75%, 기초단체장의 73.5%에 이른다. 거대 정당이 자기 당 소속 정치인이나 당과 가까운 관료 등에게 단체장 자리를 나눠줬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의회를 살펴봐도 정치인·공무원은 광역의원의 28.2%, 기초의원의 14.4%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그 다음으로 많은 직업이 농·축산업(광역 6.4%, 기초 10.5%)과 상업(광역 6.1%, 기초 10.5%), 건설업(광역 3.7%, 기초 5.2%) 종사자다. 흔히 ‘토호’나 ‘지역 유지’로 불리는 이들이다. 반면 회사원 출신은 광역의원 2.7%, 기초의원 3.6%에 그쳤다.
서울 관악구의회는 구의원 22명 가운데 한나라당이 13명, 민주당이 8명, 민주노동당이 1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지역은 1991년 김혜경 진보신당 고문을 구의원으로 당선시킨 이후 계속해서 지역운동가 출신의 구의원을 배출했다. 관악주민연대를 비롯한 풀뿌리 지역운동의 역사도 깊다. 하지만 시의회에서 이동영 민주노동당 의원은 22분의 1만큼도 영향력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관악구청은 2007년 10월 새 청사 개청식에 1억원의 예산을 들였다. 그러잖아도 혈세를 880억원이나 투입해 호화 청사를 짓는다는 비판이 거센 터였다. 행사 진행과 축하 공연 등을 맡을 연예인 초청비용, 무대 설치비, 이벤트 업체에 지급할 행사 대행비 등이 주요한 지출 항목이었다. 이 의원은 시의회에서 “호화 청사 지었다고 주민들 시선도 따가운데, 왜 쓸데없는 데 1억원씩이나 들이냐”고 반대했지만, 다른 의원들은 “구를 상징하는 청사가 새로 문을 여는 날인데 왜 발목을 잡느냐”고 되레 이 의원을 몰아세웠다. 결국 예산은 구청이 요구한대로 집행됐고, 이 의원은 행사 당일 개청식이 열리는 구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여 자신의 주장을 알리는 데 만족해야 했다.
구청이 일괄 구독해 동·통·반장에게 돌리는 일간지를 뜻하는 ‘계도지’ 예산도 매년 5~6억원씩 편성되지만 한푼도 깎지 못했다. 계도지로 들어오는 신문은 가끔씩 구청장·구의원의 ‘홍보성 기사’를 실어주기 때문에, 다른 구의원들이 예산 유지를 강력히 원했던 탓이다. 이 의원은 “다른 당 의원들은 나를 으레 ‘반대하는 사람’으로만 여긴다. 의회 내 다수의 힘을 누를 만한 주민의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탓”이라고 했다. 1997년 진보정당이 등장한 뒤 지역운동에 관심을 기울이던 주민들 대신 정당이 지방선거를 주도하게 되면서 주민 요구를 수렴하는 일에 소홀해졌고 점점 주민과 거리가 멀어졌다는 게 그의 자평이다.
풀뿌리 자치 연구소 ‘이음’ 운영위원인 하승수 변호사는 “1991년 부활한 지방자치제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중앙의 지역주의 정당과 지역의 기득권·토호 세력이 공천과 표를 주고받으며 공생 관계를 형성하면서 주민이 지역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하자는 애초 취지가 훼손됐다”며 “현재의 지방자치 현실은 낙제점”이라고 지적했다. 하 변호사는 또 “2010년 지방선거에선 영호남에서 한나라당·민주당 1당 지배 체제가 깨지고, 수도권도 중앙정치의 논리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 그러려면 생활 정치를 강조하고 주민 참여를 활성화할 세력이 누구인지 (유권자들이) 잘 판단해야 한다”며 “그래야 지역정치가 발전하고 주민 생활도 나아질 뿐만 아니라 중앙정치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그동안 서울 관악·마포·도봉·노원, 경기 군포, 강원 속초, 제주 등 전국에서 주민운동을 펼쳐온 이들은 2010년 지방선거에 직접 출마할 계획을 세웠다. 주민을 ‘지방정치의 주인’ 자리로 되돌려놓고, 지방자치에서 진보적 가치를 실현할 길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기초의원 선거를 중심으로 후보 100여 명을 내겠다는 게 일차적인 목표다. 이들은 싱크탱크 역할을 할 ‘풀뿌리 좋은정치 네트워크’를 2010년 1월 출범시켜 환경·복지·재개발 등 생활정치 의제로 공통 공약을 만들고, 주민 자치 역량을 강화할 방안을 수립할 예정이다. ‘풀뿌리 좋은정치 네트워크’를 기획한 하승창 시민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줘야 한다”며 “지역에서 주민운동을 했거나 지역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던 사람들이 지방의회에 진출해 토호와 정당이 왜곡한 지역정치를 진짜 풀뿌리 자치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지방정치의 주체가 변하지 않으면, 지방정치의 내용도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진보개혁 성향 인사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2010년 6월2일 지방선거에서 ‘시민이 참여하는 연합정치’를 실현하겠다며 결성한 ‘희망과 대안’도 지방정치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희망과 대안’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진보·개혁 세력의 정치 연합이 필요하다고 보고 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창조한국당 등이 중앙당 차원에서 ‘연합의 결단’을 내리길 제안한 바 있다. ‘풀뿌리 좋은정치 네트워크’ 쪽에도 연합 논의를 제안할 계획이다. 지방자치의 주체를 지역 주민으로 바꾸겠다는 실험은 성공할까?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주민이 움직이지 않으면 동네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시간은 이제 6개월뿐이다.
일본 지방자치총합연구소 스가와라 연구원
“지방자치가 정권 교체 이뤘다”
일본의 지방자치가 주민 중심, 생활 중심으로 처음 탈바꿈한 것은 1960년대 중반이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적 의미의 지방자치제를 운영해온 지 한 세기 만의 변화였다. 지방 토호 중심으로 이뤄지던 일본 지방자치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민주주의가 도입된 뒤에도 크게 변하지 않은 상태였다. 1955년 이후 중앙은 물론 지방 정부와 의회를 모두 장악한 자민당은 고도 경제 성장을 추진했고, 지방자치단체장들은 경쟁적으로 기업과 공장을 유치했다. 결과는 미나마타병·이타이이타이병 같은 공해병과 심각한 환경오염이었다. 그러자 사회당과 공산당은 자민당이 친기업 정책으로 심각한 공해 문제를 낳았다며 환경과 생활, 복지를 지방정치의 핵심 의제로 내걸며 변화를 시도했다. 결과는 60년대 중반 도쿄·오사카·요코하마 등 대도시 자치단체장 선거에서의 잇딴 승리였다. 이런 자치단체를 일본에선 ‘혁신 자치체’라고 부른다.
이 과정에서 선거에 후보를 내거나, 당선된 자치단체장과 호흡을 맞춰 주민 복지 향상과 지방자치 확대 방안을 고민한 게 ‘전일본자치단체노동조합’(이하 자치노조)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공무원 노조에 해당된다. 자치노조는 1974년 지방 정책과 재정 문제 등을 연구하기 위해 ‘지방자치총합연구소’를 출범시켰다. 1994년 재단법인으로 독립한 연구소는 현재 56곳에 지역 연구소를 두고 있다. 지방행정·재정 정책, 마을 만들기 사업 등 자치 분야에서 일본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싱크탱크다.
스가와라 도시오 연구원은 “혁신 자치체들은 자민당이 주도하는 중앙정부를 지방정부가 포위하는 구상을 했다”며 “이를 ‘인민전쟁’이라고 부른다”고 소개했다. 스가와라 연구원은 “그렇게 광범위한 지지를 얻은 배경은 생활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정치의 희망을 찾고 싶었던 주민의 마음을 잘 읽었기 때문”이라며 “이 과정에서 공산·사회당과 함께 자치노조가 중심이 돼 적극적으로 주민의 요구를 수용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혁신 자치체들은 1970년대 중반 갑작스레 몰락한다. 예기치 못한 석유 위기로 세입이 크게 줄어, 복지·환경 분야에서 늘어난 지출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조도 후원금을 모아 주거나, 조합원에게 전화를 걸어 특정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것 말고는 적극적인 정치 활동을 하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생활 의제’와 ‘주민 참여’에 대한 고민은 사라지지 않았다. 생활협동조합 활동을 통해 환경·복지 분야에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 주부들이 ‘도쿄 생활자 네트워크’ ‘가나가와 네트워크’ 등 ‘지역 정당’을 만들거나 무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해 지방의회에 진출하기 시작했고, 1999년엔 도쿄도 구니다치시에서 도쿄도 최초의 여성시장이 탄생하기도 했다. 스가와라 연구원은 “민주당이 반세기 만에 중앙에서 정권 교체를 이룰 수 있었던 건 지역정당을 거울 삼아 그동안 지방에서 환경·복지·교육 등 생활 의제를 꾸준히 고민해 주민들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라며 “주민 생활과 가장 밀접한 지방자치는 중앙 권력의 변화를 이끌어낼 동력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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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참여제, 무엇에 쓰는 물건이던고 (한겨레21 2010.01.15 제794호, 조혜정 기자)
[연속기획- 바꿔! 지방자치 ②] 잘 활용하면 ‘지방자치의 꽃’이지만 현실화 사례는 드물어…
주민 스스로 힘을 길러야 공백을 메울 수 있어
가와사키시 아동권리조례는 일본 최초로 어린이와 청소년의 권리를 지방자치단체가 명문화한 사례다. 1998년 9월, ‘인간도시 가와사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인권 향상에 관심을 쏟았던 다카하시 기요시 당시 시장은 아동권리조례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집단 따돌림과 등교 거부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다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을지 고민하던 때였다. ‘교육을 이야기하는 모임’ ‘어린이회의’ ‘시민살롱’ 등 가와사키시의 인권·시민단체, 학자, 교육 전문가, 시 공무원 등이 조례 내용을 논의할 ‘아동권리조례 검토연락회의’와 ‘아동권리조례 조사연구위원회’에 함께 참여했다. 조례의 직접적 대상인 어린이들도 ‘어린이위원회’를 만들어 의견을 냈다. 이들은 2년 가까이 200차례 넘게 공개회의를 열었고, 수시로 홍보자료를 배포하거나 행사를 열어 시민에게 조례 내용을 알리고 의견을 구했다. 논의 기간에 가와사키시에 접수된 시민 의견은 1200여 건이나 됐다.
그 결과 조례엔 아동과 청소년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권리 △있는 그대로의 자신일 권리 △자신을 지키고 보호받을 권리 △자신을 풍요롭게 하고 도움받을 권리 △스스로 결정할 권리 △참여할 권리 △놀 권리 등이 담겼다. 이 가운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일 권리’는 논의에 참여한 어린이가 낸 의견이다.
또한 시는 시민 10여 명이 참여하는 아동권리위원회를 설치해 시 정부가 아동 정책을 세울 때 위원회의 의견을 듣도록 했다. 시 행정과 학교 운영에 어린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가와사키시 어린이 회의’와 ‘학교교육 추진회의’도 설치했다. 권리를 침해당한 어린이의 상담을 받고 개선책을 내놓을 방안으로 별도의 ‘인권 옴부즈퍼슨 조례’도 제정키로 했다. 이런 내용의 아동인권조례는 마침내 2000년 12월21일 가와사키 시의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됐고, 2001년 4월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조례 제정에 참여했던 가와사키 시민단체들은 “조례만 만들어놓으면 안 된다. 조례가 제대로 구현되는 구체적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시와 시민단체의 조율 끝에 2003년 7월 “가와사키시 아동권리조례를 실현하는 장소”이자 “어린이의 자유로운 발상으로 놀고, 배우고, 만들기를 지속할 수 있는 시설”로 구현된 곳이 ‘꿈의 공원’이다. 시는 지역 교육·인권 단체인 ‘가와사키 생애학습재단’과 ‘프리스페이스 집합소’에 관리·운영을 맡겼다. 시민단체들이 아동권리조례라는 제도를 갖추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지방정부를 압박해 실질적으로 그 제도가 이행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낸 것이다. 개장 초기 3만 명이던 이용객은 점점 늘어나 지난해엔 6만5천여 명에 이르렀다. 가와사키시 아동권리조례와 꿈의 공원은 시민과 지방정부가 함께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고, 그 과정에서 시민 참여를 통해 제도를 현실화한 모범적인 사례다.
일본에서는 행정의 손길이 닿지 않는 영역에서 주민들이 먼저 해결책을 찾은 뒤 행정부가 따라오도록 길을 열어주는 경우도 있다. 워커스 컬렉티브가 운영하는 복지형 대안주거가 바로 그것이다. 워커스 컬렉티브(Workers’ Collective)란 공동 출자·공동 운영·공동 책임의 원칙으로 운영되는 노동자 협동조합으로 생협 운동에서 출발했다. 도시락 배달, 장애인 이동 서비스, 가사 도우미 등 워커스 컬렉티브의 사업 형태는 무궁무진한데, 이 가운데 노인, 장애인, 저소득층, 노숙인 등에게 제공하는 복지형 대안주거 모델은 행정과 협력이 꼭 필요한 동시에 행정이 참조할 만한 사례로 꼽힌다. 일본엔 이들을 위한 요양원 같은 공공시설이 충분하지 않아 요코하마시만 해도 입소를 기다리는 대기자가 수만 명이다. 이에 워커스 컬렉티브는 주민의 자치 역량 강화 방안을 모색하는 싱크탱크 ‘참가형 시스템 연구소’, 지역 정당인 ‘요코하마 네트워크’ 등과 함께 빈집을 사들여 복지형 대안주거를 마련했다. 일본은 심각한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가 줄면서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 전국 760만 채에 이른다. 대부분 요코하마 같은 도쿄 주변 지역에 몰려 있다. 워커스 컬렉티브는 행정부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 빈집을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치료를 받거나 요양을 받을 수 있는 복지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시민단체가 대안적인 복지 주거공간을 운영하고, 자치단체가 운영비를 지원하는 모델은 이미 1990년대 중반 일본 동부 도야마현에서 시작됐다. 시민단체나 중앙정부 모두에게 익숙한 모델이긴 하지만, 일단 주택 매입 비용이 만만치 않고 시설 개조나 운영을 둘러싼 규제의 벽도 높다. 이 때문에 워커스 컬렉티브는 3년 가까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자신들이 운영해온 대안주거 모델을 소개하고, 비용 지원과 규제 완화를 요구해왔다. 이런 끈질긴 노력에 최근엔 행정부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지난해 12월13일 워커스 컬렉티브 등이 요코하마시에서 연 복지형 대안주거 관련 포럼엔 후생노동성·요코하마시·도시개발공사 관계자가 참석했다. 후생노동성과 요코하마시는 PC방을 전전하던 노숙자들이 개조된 빈집에서 공동 생활을 하면서 안정감을 찾았다는 사례 발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도시개발공사는 빈집을 사들여 리모델링을 한 뒤 저소득층을 위한 영구임대주택이나 영세민주택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놨다. 일본 희망제작소의 강내영 연구원은 “일본 시민사회는 ‘정부에 정책이나 제도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느니 차라리 스스로 내용과 모델을 만들겠다, 보고 좋으면 행정부가 따라오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시민단체들이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대안 주거모델을 운영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부도 신뢰를 가졌을 것”이라며 “제도적으로 우리와 큰 차이 없는 일본의 지방자치가 잘되는 이유는 스스로 대안을 찾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주민들이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문제를 스스로 풀어나가는 사례가 없지는 않다. 서울 도봉구엔 도서관이 시립 도봉도서관과 구립 도봉문화정보센터밖에 없었다. 인구 38만 명인 도봉구 주민의 수요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2004년 늦여름, 지역운동단체인 도봉시민회에서 독서모임과 아이들을 위한 품앗이 수업을 하던 주부 15명이 뜻을 모았다. 방범초소 명목으로 도봉 1동 한가운데를 차지한 컨테이너 박스를 모임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취지였다. 그곳은 한 달에 한 번 동네 주민들이 방범 문제와 관련한 회의를 할 때 말고는 버려진 공간이나 다름없었다. 일은 술술 풀렸다. 어렵잖게 주민들의 동의를 얻었고, 때마침 도봉초등학교가 도서관 리모델링 공사를 하려고 버린 책 1500권도 기증받았다. 컨테이너 박스가 ‘마을 도서관’이 된 것이다. 그렇게 ‘초록마을 도서관’이 탄생했다.
입소문을 타면서 15명이던 회원이 점점 늘었다. 드나드는 아이들도 많아졌다. 도서관을 운영하는 이들도 “더 잘해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2006년 3월, 이들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5만원으로 나온 무용학원 자리를 얻었다.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 보증금을 해결했다. 초록마을 도서관은 96㎡(29평)으로 덩치를 키웠고, 장서도 8천여권으로 늘어났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책만 읽는 게 아니다. 장애인 단체를 찾아가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저소득층·한부모 가정 어린이들에게 책을 배달해주기도 한다. 주부들끼리는 요리, 비폭력 대화, 애니어그램 등 각자 가진 재능과 특기를 살려 지식 나눔을 한다. 도봉 1동의 사랑방이 된 것이다.
초록마을 도서관의 성공에 힘입어 도봉구엔 작은 마을도서관이 3곳이나 더 생겨났다. 이런 주민들의 열성을 구청이 외면하긴 어려웠다. 도봉구청은 2008년 4월 창4동에 어린이도서관(도봉 어린이 문화센터)을 개관했고, 쌍문동 ‘둘리 테마존’에도 도서관을 짓고 있다. 또한 최선길 구청장은 “작은 도서관과 어린이 도서관 건립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정보연 도봉시민회 공동대표는 “초록마을 도서관은 너무도 부족한 도봉구 문화시설을 주민들 스스로 만들어낸 상징적인 사례”라며 “이런 흐름이 갈수록 커지니 지역문화 활성화에 큰 관심이 없던 구청도 주민의 요구에 귀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다수 지방자치단체의 현실은 앞서 든 사례들처럼 훌륭하지가 않다. 특히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것으로 꼽히는 제도가 마련돼 있어도, 조례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핵심적 내용이 빠져버려 허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애초 취지과 달리 조례가 부실해지는 이유는, 단체장은 주민 참여를 보장한다는 ‘생색내기’에만 몰두하고, 시민단체도 일단 제도부터 만드는 데 급급한 탓이다.
‘주민 참여의 꽃’이라 불리는 주민참여예산제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제도는 2003년 광주 북구가 도입한 뒤 현재 40여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시하고 있다. 주민참여예산제란 말 그대로 지방정부가 예산안을 짤 때 예산참여시민위원회 같은 주민 참여 기구를 꾸려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다. 지자체들은 모두 조례로 이 제도를 명문화했지만 현재까지 성과는 미미하다. 대부분의 지역이 행정자치부가 2006년 지침으로 제시한 ‘표준조례안’을 따라 주민 참여 기구를 ‘두어야 한다’는 강제 조항이 아니라 ‘둘 수 있다’는 선택 사항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즉, 주민참여예산제를 시행할지 말지를 어디까지나 자치단체장의 재량에 맡겨뒀기 때문에 조례가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자치단체가 어떤 정책이나 개발계획 등을 세우고 집행할 때 주민위원회 등을 구성해 의견을 수렴하도록 하는 ‘주민참여기본조례’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2004년 충북 청주시에서 제정된 뒤 경기 안산, 대전, 제주 등 일부 지자체가 도입했지만 제대로 시행되는 곳은 드물다. 가령 주민이 요구하면 지자체가 추진하는 정책을 토론에 부칠 수 있게 한 정책토론청구제는 대부분 조례에서 “시민 200명 이상이 청원하면 주요한 정책을 토론할 수 있다”는 식으로 간략하게 규정돼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이 토론 대상에 해당하며, 청원이 이뤄졌을 때 어떤 절차를 밟아 어떻게 토론회를 열지 등 실제로 정책 토론을 열 수 있는 장치가 조례엔 없는 것이다.
물론 조례라는 제도적 장치가 없어도 지역에서 자율적으로 예산 편성이나 정책 결정에 주민 참여를 보장하는 경우도 있다. 경기 부천시는 2003년까지만 해도 예산안을 편성하기 전에 그해 예산 운용 방향과 관련한 정보를 미리 공개하고, 공청회를 열어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의 의견을 수렴했다. 대규모 개발사업 같은 주요 정책을 실행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2002년 초 부천시는 원미산에 놀이공원, 눈썰매장, 야외 수영장 등 3만㎡(약 9천 평) 부지에 위락시설을 건설할 계획을 발표했다. 지역 시민단체들은 자연림이 시 전체 면적의 2%에 불과하고, 1인당 녹지 면적이 경기도에서 가장 낮은 부천에서 그나마 허파 구실을 하는 원미산을 훼손해선 안 된다고 반대했다. 3개월간의 줄다리기 끝에 부천시는 시민단체의 의견을 수용해 개발계획을 백지화했다.
이런 지방정부와 지역 주민의 소통은 원혜영 당시 시장(민주당)이 2004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사직하고, 후임으로 홍건표 시장(한나라당)이 당선되면서 단절되고 말았다. 김기현 부천 YMCA 사무총장은 “민관 거버넌스(협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시장과 그렇지 않은 시장의 차이는 컸다”고 말했다. 물론 단체장이 누가 되든 그의 결정에 큰 영향력을 미칠 만큼 시민사회가 촘촘하게 조직되지 않았던 탓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부천시는 주민 참여 기구에 들어갈 시민대표를 단체장이 원하는 대로 위촉하도록 한 내용의 주민참여예산조례안을 시의회에 제출했다. 시민단체들은 “‘시민 지향’이라는 형식만 가져왔을 뿐, 이대로는 단체장과 이해관계가 맞는 사람들만 예산안 편성에 관여하게 돼 주민참여 기구가 아니라 관변단체가 될 수밖에 없다”며 일제히 반대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시의회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아 조례안은 부결됐다.
부천YMCA와 부천시민연합, 부천여성회 등 지역의 8개 시민단체는 이번 지방선거가 제대로 된 주민참여예산 조례를 만들 기회라고 본다. 이들은 ‘부천시민연대회의’를 꾸려 부천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에게 제대로 된 주민참여예산 조례 제정 서약을 받을 계획이다. 조례가 상징적인 제도로만 남지 않도록 안전장치도 구상 중이다. 구나 동별로 주민들이 상시적으로 예산 문제를 연구하는 기구를 만들고, 공무원·시민단체·전문가를 반드시 포함시킨다는 내용을 조례에 담겠다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다. 연대회의에 참여하는 각 시민단체 회원 한사람 한사람이 이 조례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홍보·교육 활동을 강화하고, 조례가 시행됐을 때 회원들이 참여기구에 주체적으로 참가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복안도 마련했다. 이들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주민 참여의 취지를 살린 제도가 마련되는 것은 물론, 주민들은 시 예산안에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할 권리와 책임을 얻게 된다. 주민자치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풀뿌리 자치연구소 ‘이음’의 김현 연구위원은 “조례 자체가 주민의 권리를 보장해주진 않는다. 시민사회가 제도를 만들도록 요구했으면 그 제도가 잘 운영되도록 개입하고 모니터링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제주도와 3월 일본 지바현 조시시에서 벌어진 도지사와 시장 주민소환 시도는 제도에 대한 주민의 인식 차이가 얼마나 다른 결과를 낳는지 비교해볼 만한 사례다. 김태환 도지사는 강정리에 해군기지를 유치해 주민소환청구를 당했고, 오카노 도시아키 시장은 적자에 시달리는 시립종합병원을 휴원했다가 같은 처지에 놓였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김 도지사 소환투표는 투표율이 11%에 그쳐 개표조차 하지 않은 채 무효로 처리됐다.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은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이 투표해야 개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환이 확정되려면 투표자의 과반이 소환에 찬성해야 한다. 반면 오카노 시장 소환투표의 투표율은 56%를 넘었다. 소환 찬성표는 62%나 됐다. 두 사람의 소환 운동을 주도한 ‘김태환 주민소환운동본부’와 ‘조시시정을 바꾸려는 시민모임’은 모두 집회를 열고 전단지를 나눠주면서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단체장들도 똑같이 투표 불참 운동을 벌였다. 그런데 왜 두 사람의 운명은 정반대로 결론이 났을까?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은 “우리나라 주민소환제는 2007년에야 도입됐기 때문에 아직 주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여전히 ‘우리가 뽑은 사람을 어떻게 끌어내리나. 잘못했으면 다음 선거에서 심판하면 된다’는 온정주의도 깊다. 소환이 무산된 건 김 지사 쪽의 투표 방해가 거셌기 때문이지만, 일차적으론 아직 ‘소환제도=유권자의 권리’라는 인식이 충분하지 못했던 탓이 크다”고 말했다. 우리보다 정확히 60년 앞서 주민소환제를 도입한 일본은 이미 주민들의 머릿속에 ‘주민 뜻을 거스르면 단체장 옷도 벗길 수 있다’는 생각이 깊이 각인된 반면, 우리에겐 이런 인식이 확산될 만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결국 지방자치 발전의 핵심은 주민들의 자치 역량 강화다. 주민이 각 지역 상황에 맞게 대안을 만들고, 지방정부가 한눈 팔지 못하도록 매섭게 감시할 힘을 길러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단체장의 소속 정당에 따라 지방의회의 여야가 갈리고 다수 여당이 지배하는 지방의회는 단체장이 주민의 뜻과 정반대의 길을 가더라도 이를 제어할 수 없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일본 ‘참가형 시스템 연구소’ 하야시다 아키코 사무장의 충고는 기억할 만하다.
“자치는 시민 스스로 힘을 기르고, 돈·능력·지혜를 모아 지역사회를 발전시키는 일이다. 행정과 연계해야 하는 부분도 많지만, 기본적으로는 시민이 어떻게 하면 지역을 발전시킬지 생각하는 힘을 기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려면 주민들이 생활에서 부딪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다양한 방법을 찾아보고 실험해야 한다. 생협이나 싱크탱크, 시민단체들은 이들이 모일 거점을 만들고, 참여모델이 될 만한 사업을 끊임없이 내놔야 한다. 그래야 행정부도 자극을 받고, 지방자치가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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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파헤쳐진 보도블록을 보도합니다 (한겨레21 2010.01.29 제796호, 도쿄(일본)=조혜정 기자)
[연속기획- 바꿔! 지방자치 ③] 사람 냄새 나는 기사 쓰고 기초의회 예산 감시하는 ‘풀뿌리 언론’…
지방선거는 지역 언론이 빛을 발할 기회
내 집 앞 보도블록이 무슨 돈으로 해마다 파헤쳐지는지, 내가 뽑은 구청장의 금품 수수 의혹은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가 알려지지 않는 ‘틈새’를 파고든 게 바로 마을신문과 지역 언론이다. 구나 동 단위 신문과 라디오 방송을 통해 동네 소식을 전하고, 언론 본연의 기능을 살려 지방권력 감시활동도 편다. 운영에 드는 비용부터 기사 작성·배포까지 모두 지역 주민이 도맡아하는 것은 물론이다. ‘풀뿌리 정치’를 키우고 감시하는 역할을 ‘풀뿌리 언론’이 맡고 있는 셈이다. 덩치는 작지만 지역사회에 적지 않은 변화를 이끌고 있는 풀뿌리 언론의 활동을 살폈다. 편집자
지난 1월19일 저녁 6시30분. 서울 은평구 응암동의 한 허름한 상가건물 2층에 두꺼운 외투와 목도리로 단단히 몸을 감싼 이들이 모여들었다.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서둘러 달려온 이들은 모두 6명. 떡볶이와 김밥, 음료수로 간단히 요기를 하더니 다시 어둠이 들어찬 겨울 거리로 나섰다. 들어올 때와 달리 이들의 팔엔 저마다 타블로이드판 신문 수백 부씩이 들려 있었다. 그날 발행된 <은평시민신문>이었다. <은평시민신문>은 은평구 주민이 만드는 마을신문이다. 다루는 내용도 은평구 얘기, 읽는 사람도 은평구 사람들이다. 평범한 직장인과 주부였던 이들의 아이디어에 ‘열린사회은평시민회’ ‘생태보전시민모임’ 같은 지역 시민단체들도 호응을 보냈다. 순식간에 후원회원과 신문사를 차릴 자본금 1600만원이 모였다. 2004년 10월 인터넷 신문으로 <은평시민신문>이 시작됐다. 지난해 말부턴 격주간으로 오프라인 신문도 내고 있다. 한 번에 5천 부씩 찍지만, 신문값은 무료다. 200만원에 이르는 발행 비용은 대부분 후원회원 150여 명이 매달 내는 회비로 감당한다. 이날 거리에서 신문 배포에 나선 이들도 후원회원이다. 물론 ‘수고비’를 바라지 않는 기꺼운 자원활동이다.
<은평시민신문>의 상근기자는 부미경 편집장을 포함해 2명이고, 시민기자는 300여 명에 이른다. 은평구 곳곳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살기에 이들의 시선은 촘촘하고도 매섭다. 시민기자 채훈병씨가 지난해 말에 쓴 ‘은평 인터넷 방송국’ 관련 기사는 구 예산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구청이 주민을 위해 뭘 하는지 평소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었다. 은평 인터넷 방송국은 구청이 구정 홍보와 평생교육 제공 등을 목적으로 관리하는 역점사업이다. 은평구청은 지난해 이 방송국에 최첨단 고화질(HD)급 장비를 갖추고 스튜디오까지 재단장하는 데 10억원이 넘는 예산을 들였다. 채씨는 지난 1년 동안 이 방송국 운영 실태를 모니터링한 결과 동영상은 볼 수 없고 주민이 읽고 싶은 책을 신청하는 코너는 폐쇄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초·중·고생을 위한 학습자료는 가장 최근 것이 2008년 게시물이었다.
인천 부평구에서 볼 수 있는 <부평신문>은 시민주주만 1천 명에 이른다. 매주 화요일 타블로이드 배판(가로 39.1cm, 세로 54.5cm) 12면으로 발행한다. 지역운동을 벌이다 2002년 6월 지방선거에 나섰거나 이들을 지원했던 시민단체들이 주축이 됐다. 주민들의 자치 역량을 강화하려면 이들의 삶에 밀착한 지역 신문이 필요하다는 인식이었다. 당시 선거 때 만난 시민 후보 지지자들이 십시일반 돈을 보태 주주로 나섰고, 2003년 10월 정기간행물로 등록된 어엿한 지역신문이 탄생했다. 상근기자 4명과 시민기자 40여 명이 기사를 쓰고, 독자들은 월 4천원(후원독자는 월 5천원 이상)에 우편으로 신문을 받아본다.
“주민들이 <부평신문>이라는 문턱 없는 마당에서 지역 정치·행정·경제의 주인으로 서는 꿈”을 창간 정신으로 한 신문이 생겨난 뒤 부평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대표적인 게 부평 지역 주요 도로에 설치된 무단횡단 금지 펜스다. 부개사거리에서 송내역으로 가는 경인로에서 2007년 한 해에만 사망사고가 4건 발생하는 등 무단횡단의 피해가 커지자, 주민과 경찰은 사고다발 지역에 무단횡단 금지 펜스를 설치해달라고 구청에 요구했다. 하지만 구청은 이미 인천시에서 받은 예산을 집행하는 일인데도 “디자인을 더 검토해야 한다”고 차일피일 미뤘다. 이런 사실이 <부평신문>의 지속적인 보도로 알려지자 여론의 압박이 거세졌다. 결국 구청은 2008년 말부터 곳곳에 펜스를 설치했다.
그간 주목하지 않던 구의회의 잘못된 관행도 드러났다. 구의원들이 단체로 의정운영 경비를 써서 고가의 체육복을 산 사실을 고발했고, 업무추진비 대부분이 밥값 등 접대비로 쓰인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이승희 <부평신문> 편집국장은 “체육복 구입비 보도 이후 시민단체가 구의회에서 농성을 벌였고, 결국 (구의원들의) 사과와 환불을 받아냈다. 지역 언론과 시민단체가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라며 “(그 밖에도) 잘못된 행정으로 주민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기사가 보도된 뒤 적지 않은 부분이 고쳐졌다”고 말했다.
청취자의 피드백이 중요한 라디오는 주민 참여를 생명으로 하는 지역 언론에 더없이 맞춤한 매체다. 서울 마포 지역에서만 들을 수 있는 초단파 라디오 ‘마포FM’을 보자. 지역 문제를 다루는 ‘송덕호의 쌈박시사’, 홍익대 앞 인디음악을 들려주는 ‘뮤직 홍’, 마포 주민의 일상을 들려주는 ‘톡톡 마포’ 등 프로그램 하나하나가 마포의 지역적 특색을 살렸고, 프로그램 기획·제작·진행도 모두 주민들이 맡고 있다. 2004년 방송위원회가 참여형 미디어 발전 방안으로 추진한 ‘지역 공동체 라디오’의 시범사업자로 선정돼 이듬해 9월 처음 전파를 쏘아올렸다. 보통 라디오 방송국의 출력은 1kW지만, ‘지역 공동체 라디오’의 출력은 1W로 보통 반경 5km 이내에서만 청취할 수 있다. 마을신문처럼 ‘마을 라디오’가 가능한 것이다. 현재 이런 지역 공동체 라디오는 ‘마포FM’를 비롯해 ‘관악FM’(서울 관악구), ‘영주FM’(경북 영주시), ‘광주시민방송’(광주) 등 전국에 8곳이 운영되고 있다.
‘마포FM’에서 상근직은 송덕호 운영위원장 등 3명뿐이다. 방송에 필요한 다른 인력은 모두 자원활동가다. 후원회원 200여 명 가운데 절반이 작가, PD, 진행, 기술 등을 나눠맡아 자원활동을 한다. 신규 프로그램 도입은 ‘참여편성제’를 통해 결정된다. 회원 누구나 회의에 참석해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데, 지난해 말 회의에선 국내 최초로 레게음악만을 틀어주는 ‘와다다 레게 라디오’ 편성이 결정돼 1월4일부터 방송을 하고 있다.
이달 초엔 재개발 예정지인 아현 3구역에 고립된 이들을 구했다. 건물 대부분이 철거된 이곳엔 김완숙씨 가족과 한상순씨 가족 등 두 집이 남아 있다. 철거용역들의 위협, 원인 모를 화재 등 이곳을 떠나고 싶은 이유는 100가지도 넘지만, 쥔 돈 한 푼 없는 기초생활수급자 처지로 여기를 떠나면 갈 곳이 없다는 이유 한 가지가 이들을 붙들고 있다. 시공 하청업체가 도시가스를 끊었고, 화장실마저 없앤 다음엔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났다. 하지만 구청도 경찰도 “사유지에서 민간인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도와줄 수 없다”고 했다. 공사장 주변에 쳐놓은 펜스의 작은 출입문을 통해야만 집에 갈 수 있는데, 하청업체는 마침내 이 출입문마저 폐쇄해버렸다. 이 소식이 ‘송덕호의 쌈박시사’에 전해졌고, 1월5일부터 매일 방송 끝나기 전 5분씩 이들의 안부를 묻는 전화를 연결했다. 전날 철거용역이나 하청업체가 가한 협박, 펜스를 넘어가려다 다리를 다친 소식 등이 전파를 탔다. 이들을 응원하고 업체의 비정함을 비판하는 청취자들의 문자메시지도 수십 통 전달됐다. 그렇게 나흘이 지나자 굳게 닫혔던 펜스 출입문이 열렸다. 김완숙씨는 방송에서 “마포FM이 최고”라며 눈물을 흘렸다. 작은 라디오의 작지 않은 영향력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마을신문엔 ‘사람 냄새’도 흐른다. 창간한 지 12년 된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의 <반송 사람들>은 말 그대로 마을 소식을 전한다. 아침 출근길마다 마주치는 교통지킴이 아줌마가 누군지, 이번에 들어설 지하철역 이름은 뭐가 될지, 마을 청소를 가장 열심히 한 마을 조직은 어디인지가 주요 내용이다. 상근기자도 없다. 의사, 보험설계사, 자영업자 등 13명이 머리를 맞대 기삿감을 정하고 제목을 뽑는다.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하다가도 자신이 실린 신문을 “앨범에 꽂아 잘 보관해뒀다”는 이도 있다. 그렇게 반송 주민 5만6천 명은 서로 거리를 좁힌다.
오는 6월 지방선거는 이들 풀뿌리 언론이 빛을 발할 기회다. 광역·기초자치단체장 후보 소개에도 힘이 부칠 중앙 언론과 명확히 비교될 수 있다. 대부분 지역 언론은 기초의원 후보자까지 초청해 정책토론회를 열고, 공약 검증을 철저히 해 후보자 관련 정보를 최대한 자세히 주민들에게 알리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마포FM’은 오는 3월부터 선거방송 체제로 바뀐다. 4년 전에도 후보자 토론회 등을 준비했지만, 그땐 주요 후보자들이 모두 “마포FM이 뭐냐?”며 참여하지 않았다. 인지도와 참여도가 높아진 지금은 이들의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마포구 선거관리위원회 개표장에 가서 새벽 2시까지 어느 매체보다 빠르게 개표 결과를 방송한 경험을 살려, 이번에도 개표 방송을 재밌게 진행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부평신문>은 후보자와 함께 술을 마시며 인터뷰를 한 뒤 각자의 장단점, 정치 철학, 비전 등을 가감 없이 소개할 계획이다. 또한 학교운영위원, 주민자치위원, 역대 구의원·교육위원 등 자치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경험담을 실어, 지방자치에서 주민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할 예정이다.
물론 이들에게도 한계는 있다. 가장 큰 벽이 완성도다. 대부분 글쓰기 교육을 전문적으로 받은 사람들이 아니어서 기사의 질이 낮거나 취재를 잘 못할 때가 있다. 아무리 참신한 소재를 발굴했다 하더라도 전달력이 떨어져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전문가를 초청해 강의를 듣거나 두어 달짜리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지만 한순간에 뛰어넘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송덕호 ‘마포FM’ 운영위원장은 “아현 3구역처럼 재개발 문제에 부딪혔을 때 전문적인 기자들이라면 사안을 심층 취재하겠지만, 여기선 (자원활동가들도) 파악할 수 있는 내용도 없고 그런 마인드도 없다. 눈에 보이는 문제의 이면에 뭐가 있는지를 찾아낼 수 있어야 진짜 언론이 될 수 있고, 그런 활동가나 청취자가 늘어야 주민들의 자치 역량도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론 풀뿌리 언론이 지역의 역학관계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기대도 받는다. 부미경 <은평시민신문> 편집장은 “지역에 오래 산 사람들, 특히 지역 여론을 좌우하는 유지들은 대부분 보수 정당에 포섭돼 있다. 그런데 이들은 30년 된 이발사, 40년 된 구둣방 주인처럼 지역의 역사와 함께했기 때문에 재밌는 이야기도 많이 알고 있어서, 마을신문에 소개가 되면 매우 좋아한다. 이렇게 유지들이 풀뿌리 언론과 소통을 계속하면 보수 정당과 그들의 관계에도 균열이 일어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정치인 DB 구축한 일본 풀뿌리 언론 <잔잔>
잔잔하면서 큰 정치 파문
우리나라 풀뿌리 언론이 참고할 만한 사례는 <잔잔>(www.janjan.jp)이라는 일본 인터넷 언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잔잔은 <아사히신문> 정치부장 출신으로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장을 지낸 다케우치 겐이 2003년 2월 창간했다. ‘모든 시민이 기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어 성공을 거둔 우리나라의 <오마이뉴스>를 벤치마킹했다. 상근기자 15명에 시민기자가 7천 명이다. 사실 일본에선 <오마이뉴스> 일본 지사를 비롯해 인터넷 신문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그 틈에서도 <잔잔>이 독보적으로 생존할 수 있었던 건 선거 정보 페이지(사진)를 개설하고, 정치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데 있다.
일본은 선거운동 규제가 심해 2003년까지만 해도 공약집 배포마저 불법이었다. 공약집 안에 돈을 집어넣을지 모른다는 우려에서였다. 선거법이 개정되긴 했지만, 이런 분위기 때문에 후보자가 자신을 유권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릴 방법은 많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본에선 지역 조직, 유명세, 돈 등 세 가지 간판 중 하나는 있어야 정계에 진출할 수 있다는 뜻으로 ‘3방’(さん-ばん·세 가지 간판)이란 유행어까지 만들어졌다.
<잔잔>은 바로 이 지점을 공략했다. 후보자가 직접 자신의 공약집이나 이력, 홍보 동영상 등을 <잔잔> 홈페이지에 올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그 페이지에서 해당 정치인이나 선거와 관련한 기사를 찾아볼 수 있는 서비스를 구축했다. 역대 각종 선거결과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었다. 처음 접한 정치 정보에 유권자들의 반응은 컸다. 한 달 평균 페이지뷰는 1천만 회에 이르렀고, 중의원 선거(2009년 8월)를 앞두고는 그 2배가 넘는 페이지뷰를 기록했다. 다케우치 겐 사장은 “그동안 선거 출마자의 정보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서 정치인의 질이 점점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이 55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룬 배경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우리 사이트에서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려 애썼던 데도 공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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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보다 주민을 어렵게 생각하는 그들 (한겨레21 2010.02.19 제798호, 어바인(미국)=임인택 기자)
[연속기획- 바꿔! 지방자치 ④] 주민투표 거쳐 미 최대 공원 ‘그레이트파크’ 일구는 어바인시…
주민의회 통한 자발적 정책 제안·토론·조정 진행
미국의 지방자치 현실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없을까?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시는 10년간의 논쟁 끝에 주민투표를 벌여 해군기지를 미국 최대의 공원으로 바꿨다. 긴 시일이 걸렸지만, 주민이 자신의 생활 공간을 어떻게 가꿀 것이냐를 두고 끈질기게 합의를 이끌어낸 결과였다. 어바인시는 어떻게 이런 ‘비효율’을 감수하고 지방자치를 실천하고 있는지 둘러봤다. 이어 컬럼비아대에서 미국의 주민운동과 지방자치를 연구한 정보연 도봉시민회 대표가 뉴욕주 북부 로체스터시의 ‘시민 이니셔티브’ 사례를 소개한다. 편집자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바인은 ‘명품 도시’다. 21만 명 남짓이 산다. 서울 용산구 규모다. 반년에 한 차례씩 안전 도시를 꼽는 미 연방수사국(FBI)은 어바인을 5년6개월째 맨 앞에 뒀다. 교육환경이 우수하다. ‘미국의 8학군’이라고들 한다. 경제잡지 <포천>이 선정한 100대 기업 가운데 30% 이상이 둥지를 틀고 있다. 브로드컴, TEVA 헬스시스템스, 기아자동차 미주 본사, 현대자동차 디자인센터….
시의회 의원 5명이 입법과 행정을 도맡는다. 그중 둘이 한인이다. 직선제 당선 시장이자 시의회 의장인 강석희 시장(민주당)과 최석호 시의원(공화당)이다. 시의회 정치에 입문한 지 다들 6년째다. 권력이 막강하면서도 그렇지 않다. ‘세계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버락 오바마로부턴 자유로울지언정, 낱낱의 지역 주민에게 고삐가 잡혀 있다. 저마다 대학과 병역까지 마친 1960~70년대에 고국을 떠나 새 삶을 개척한 두 정치인은 “그것이 미국을 슈퍼파워로 만든 힘”이라고 말한다. “풀뿌리 시민들이 제 고장에 대한 주인 의식을 갖고, 직접 지역사회를 바꿔가는 것”을 이른다.
그레이트파크는 어바인시에서 조성 중인 미국 최대의 녹지 공원이다. 공항이 될 뻔했다. 주민들이 틀어막은 것이다.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10년을 훌쩍 넘는다. 클린턴 정부 시절 군 공항기지 축소 정책이 추진된다. 4700에이커(약 500만 평)에 이르는 어바인의 ‘엘토로’ 해병공항기지도 문을 닫기로 한다. 1993년이다. 활용 방안을 두고 조용하던 시가 분열하기 시작한다.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민간 공항을 건설하자는 쪽과 녹지 공원을 만들자는 쪽이 첨예하게 맞섰다. 1999년 기지는 폐쇄되고, 송사도 오간다. 결국 2002년 주민투표에 부쳐진다. 무엇보다 투표를 앞둔 캠페인 등에 시민이 앞장섰다. 시정부는 투표 과정에 개입할 수 없었다. 시 관계자는 “주민발의 과정이 그레이트파크가 조성되는 과정에서 결정적 대목”이라고 말한다. 당초 주민투표에 부치자는 주민발의안에 17만5천 명이 서명했다. 등록 유권자의 15%를 채워야 주민발의가 가능하다. 이조차 전례가 많지 않다. ‘공항파’든 ‘공원파’든 주민의 80% 이상이 지역 일이므로 지역 주민의 직접 투표만이 해법이라고 동의한 셈이다.
국방부로부터 땅을 매입한 개발업체 르나는 전체 부지의 3분의 1(1347에이커)을 공원 조성용으로 시에 기증한다. 인프라 건설 비용으로 4억달러를 찬조한다. 대신 르나는 남은 부지를 쇼핑센터, 주택 등 상업 용도로 개발한다. 2006년 1월 마침내 첫 삽을 떴다. 지난해 말 1단계 공사가 완료돼 본새를 갖춰간다. 10~20년에 걸쳐 추가 공사를 이어갈 참이다. 완공 시기는 공항이 문을 닫은 때부터만 따져도 물경 30년이다. 논의·발의·결정·집행을 거쳐 하나의 ‘주민자치’가 결실을 맺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주민의 정치 참여 방식은 다양하고 무엇보다 간편하다. 어바인 주민의회는 매월 둘째·냇째 화요일에 열린다. ‘작은 정치’의 경연장이다. 누구든 참석해 3분 동안 민원은 물론 행정 제안도 제약 없이 쏟아낸다. 의회 안건에 대한 논쟁은 물론이다. 2007년께 어바인은 중국 상하이와 자매도시 결연을 맺는다. 이때 중국이 대만 도시와의 자매결연 중단을 요구한 사실이 알려졌다. 대만계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300여 명이 시의회로 몰려와 100명가량이 3분 발언을 이어갔다. 결국 중국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모든 생활기반이 하나의 정당 구실을 한다. ‘지방자치=주민자치=생활정치’란 등식을 이룬다. 한 명이 지역 내 노스파크를 ‘전몰 희생자 추모공원’으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했다. 2003년부터 줄기찼다. 지척에 기왕의 추모 공원이 있었다. 그래도 해를 거듭하자 동조자는 늘었다. 의회는 지난해 ‘위령비 설치 지원’을 뼈대로 한 중재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쟁점이 첨예할수록 만장일치를 추구한다. 35년 된 낡은 도서관을 리모델링해달라는 요청이 1년간 계속됐다. 결국 지난 1월4일 새로 개장했다. 강 시장은 “시정을 하다 보면 주민들의 참여가 정말 대단하다”고 말한다.
자발적이고 적극적이다. 제 귀한 시간을 스스로 쪼개낸다. 그야말로 전통이며, 학습의 덕이다. 강 시장과 최 의원의 전자우편함에는 주민이 보낸 편지가 적지 않다. 초등학생들의 것도 있다. 학교 수업의 일환으로 무더기로 날아오기도 한다. 쇼핑센터를 금연 구역으로 지정해달라는 전자우편도 그 가운데 하나다. 시는 일단 쇼핑센터가 자체적으로 규제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6개월을 지켜본 뒤 조례 제정 등의 고민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특이한 건, 이런 전자우편과 회신 내용을 시장은 물론 시의원 모두가 관례적으로 공유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제도가 선이라 해서 모든 결과가 선일 수는 없다. 단점이 적지 않다. 보다시피 더디다. 재정을 낭비할 공산이 크다. 그래서 주민자치는 때로 우아한 백조 같다. 더럽혀지기 쉽고 수면 아래 내야 할 ‘비용’도 만만찮다. 최 의원은 “우린 속이 터질 정도로 늦고 예산 낭비도 있다는 단점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한다. AT&T 등 통신사들이 셀타워(휴대전화용 안테나)를 세우겠다고 시에 인허가를 요청한다. 시내 터틀록 지역 일부 주민들이 반대해왔다. 미관상 좋지 않고 건강에 해롭다는 이유다. 주민의회에 수백 명이 몰려와 마이크를 잡았다. 가로등 상단부에 붙이는 손바닥만 한 안테나는 터틀록에만 설치되지 않고 있다. 8년째다.
최 의원은 “여러 사안에서 정치에 관심 갖는 소수가 이끌고, 다수는 침묵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사일런트 메이저리티(Silent majoriy·조용한 다수), 노이지 마이너리티(Noisy minority·목소리 높이는 소수)”라고 일렀다. 점점 정치 무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터틀록의 안테나는 전체 주민투표를 했다면 이미 통과됐을 것이다. 딜레마다. 강 시장은 “한국으로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맞다. 한국에선 여럿 복장이 터지고 말 일이다. 그런데도 이 도시에선 자치에 대한 기본 합의가 견고했다.
터틀록은 변호사, 의사, 과학자 등 전문직업인이 몰려 있는 부자 동네다. 지역 이기주의 혐의가 짙다. 그래도 해법은 이렇게 모색된다. 기존의 안테나보다 더 좋은 기술이 없는지 살피는 중이다. 그보다 근본적으로 새 마을을 조성하는 단계부터 통신을 비롯한 각종 인프라 계획을 치밀하게 요구하도록 입법화할 예정이다. 강 시장은 “주민들이 시와 직접 상대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게 지방자치의 진정한 기본 골격”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런 요구도 추가된다. 어떤 안건이든 시의원은 기권할 수 없다. 공개적으로 찬성 또는 반대를 해야 한다. 갈등이 심할수록 만장일치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조정의 정치’를, 그러면서도 원칙에 따른 ‘책임 정치’를 함께 주문받는 셈이다. 6년째 어바인에서 거주하는 한인 김아무개씨는 “한국은 이렇게 더디면 시스템 자체를 바꾸려고 하지만, 여긴 근본 틀에 대한 회의는 없다. 다만 결점을 조금씩 보완하려고 하는 스타일이다”라고 말한다.
재정 없이 정책 집행은 불가능하다. 주민 요구를 수용할 수도 없다. 미국의 여러 도시가 경제위기 이후 더욱 재정 위기로 휘청인다. 기업도시로도 유명한 어바인도 예외는 아니다. 세수의 으뜸을 차지하던 판매세가 지난해 5억7천만달러에서 4억6천만달러로 줄었다. 18% 감소다.
강 시장은 ‘CEO 어라운드 테이블’을 이번 2월부터 3개월에 한 차례씩 열기로 했다. 어바인 역사상 처음으로 마련한 관·경 정례모임이다. 최 의원은 “그렇다고 기업들에 땅값을 깎아주거나 하진 않는다”며 “규모와 상관없이 사업 허가세는 일괄적으로 50달러만 받는 게 (다른 도시에 비해) 인센티브라면 인센티브”라고 말한다. 어바인의 생존력은 그보다 보수적인 예산 정책에 있다. 5년 단위로 시정을 예측하고 재정 전략을 짠다. “최악의 상황으로 전망해 착오를 줄이고, 경기가 좋을 때 적립금을 늘리는 데 주력한다”고 강 시장은 말한다.
그레이트파크는 뉴욕 센트럴파크의 갑절 규모다. 캘리포니아의 새 이정표를 이미 낙점한 분위기다. 어바인시는 “이미 수만 명의 방문객이 문화예술 행사에 참여해 지역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홍보한다. 주민자치는 시작과 합의는 어려울지언정, 실현된 이상 어느 정책보다 강력하고 안정되게 추진되며, 지역 주민의 진정한 자산으로 인식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이 유권자를 대단히 두려워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또한 이들에겐 자산이 될 것이다. 강 시장은 올 11월 시장 재선에, 최 의원은 주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다. 실제 이날 시청사 의사당에서 행사를 준비 중이던 여성 자원봉사자 돈은 “강 시장은 대단히 친화적이고 좋은 커뮤니케이터”라고 평가했다.
의사당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 최 시의원의 말이 거듭 귓가를 맴돌았다. “한국은 요즘 얼마나 주민 의견을 수용하는지 모르겠지만, 행정부가 계획을 세우고 불도저처럼 나가버리니까 빨리 되는 거 아닌가요.” 1995년 지방선거 전면 실시는, 지자체가 중앙정부로부터 얻은 자유를 지역 주민의 구속으로 환치해야 함을 의미한다. 한국의 지방정부는 그 모두를 불필요한 ‘고삐’로 여기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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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터위원회 통해 ‘시민 이니셔티브’ 확보 (한겨레21 2010.02.19 제798호, 정보연 서울 도봉시민회 대표)
[연속기획- 바꿔! 지방자치 ④] 미 뉴욕주 로체스터시 사례…
직접 도시재생계획 수립하고 자원봉사·기부로 완성한 ‘민관 협치’ 모델
지방자치의 미래는 시민이 모든 것을 주도하고 정부는 이를 돕는 형태가 아닐까.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시는 바로 시민이 정부와 함께, 혹은 정부보다 더 주도적으로 행정과 사회적 연대의 주도자가 되는 ‘시민 이니셔티브’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로체스터시의 핵심 산업이던 해운업과 철강업이 1970년대 이후 무너지면서 80년대까지 로체스터시 인구는 20%가 넘게 줄었고, 세수도 줄었다. 빈곤층으로 전락한 시민도 적지 않았다. 흑인 풀뿌리 운동가 출신으로 1994년 시장에 선출된 윌리엄 존슨은 로체스터시가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정치인과 관료만이 아니라 시민의 참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먼저 시민이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인구 20만 명인 도시를 10개 섹터로 나누고, 각 섹터에 시민이 주도하는 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들 섹터위원회는 로체스터시를 새로 만드는 기초를 다지는 곳으로, 로체스터시의 ‘우리 동네를 키우는 이웃들’(NBN·Neighbors Building Neighborhood)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섹터위원회는 6개월 동안 주민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와 이해관계가 걸린 기관들의 의견 수렴, 마을총회 등을 통해 섹터별 도시재생계획을 수립한다. 시 정부와 의회는 10개 섹터의 계획을 바탕으로 시의 종합재생계획을 확정한다. 이후 1년6개월 동안 섹터위원회가 해당 지역의 사업을 주도하고 시정부는 예산 등을 지원한다. 그 결과물이 빈민촌 아이들의 학력 신장을 위한 차터스쿨(자율형 공립학교), 주민의 쉼터가 되는 수십 개의 작은 공원, 주민이 참여하는 동네 축제 등이다.
섹터위원회가 일군 또 다른 성과는 일종의 비영리 사회적 기업인 ‘지역개발조합’(Community Development Corporation) 5개를 만들어 스스로 고용과 수익을 창출한 것이다. 버려진 집을 리모델링해 되팔았고, 외부 투자를 유치해 커피숍·상가·호텔·극장 등도 건립했다. 가장 가난한 동네인 ‘섹터 10’에서는 주민들이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소박한 도시농업이 확대돼 농업센터, 피크닉 시설, 유기농산물 판매대까지 갖춘 도시농장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사업성을 인정받아 켈로그 재단으로부터 100만달러를 지원받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시민이 주인이 되어 해냈다. 지난 10년만 보더라도 3회의 NBN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이 직접 만든 1665개 도시재생계획 중 77%가 달성됐다. 그 가운데 80%는 시정부가 아닌 섹터위원회가 주도했다. 주민 700명이 섹터위원회에 참여했고, 실행 과정에는 자원봉사자 7천 명을 비롯해 시민단체·기업·대학·병원이 동참했다. 예산 가운데 30%는 시정부가 지원했지만, 나머지는 주민 스스로 기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외부 투자를 유치해 충당했다. 섹터위원회가 가히 ‘시민이 주도하는 자치정부’ 역할을 한 셈이다. 섹터위원회와 NBN은 미국의 가장 성공적인 민주적 거버넌스(민관 협치) 사례로 인정받아 2003년 미국 시장협의회에서 로체스터시에 ‘살기 좋은 도시상’을 주기도 했다. 또한 지난 10년 동안 인구 감소도 5~6%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미국은 10년 단위로 인구통계를 내는데, 2000년대 통계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시민이 자신의 권한을 정치인들이 대의해주는 데서 만족하지 않고, 정치와 행정에 직접 참여하는 진짜 민주주의는 가능하다. 굵직한 사회복지는 정부가 책임지되 시민과 시민의 관계망은 커뮤니티 안에서 자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진짜 사회적 연대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그렇게 디자인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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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동네 한 바퀴’ (한겨레21 2010.03.05 제800호, 조혜정 기자)
[연속기획- 바꿔! 지방자치 ⑤] 6·2 지방선거에서 ‘동네 정치’ 일구는 전국의 풀뿌리 후보들
정당도 ‘동네 정치’에 나서는 방법
좋은 후보 기준 맞춰 줄을 서시오
지역운동이 활발한 곳이라고 해서 모두 6월 지방선거에 ‘주민후보’를 내는 건 아니다. 시민사회와 정당의 관계, 출마에 적합한 인물 유무 등 각 지역이 처한 상황에 맞는 방식으로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곳도 있다.
경기 고양시의 시민단체들은 후보와 정책을 분리해 대응하는 ‘투 트랙’ 전략을 선택했다. 후보 선출 문제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5개 야당에 맡겼다. 지역 단체들이 모인 ‘고양 무지개연대’는 5개 정당의 논의 창구인 ‘정당협의체’가 단일 후보를 논의하면, 검증·지지 활동만 하기로 했다. 그 대신 선출된 후보가 내놓을 공약은 시민사회의 몫이다. 교육·복지·경제 등 10개 분야에서 공약 100개를 엄선한 뒤 오는 3월2일 발표한다.
공약 작성 작업은 고양 무지개연대가 공식 출범하기 전인 지난해 11월 시작했다. 지역 단체들은 정책팀을 만들어 분야별 정책 대안을 정리했다. 2월8~24일엔 시민을 대상으로 ‘시민공약 공모대회’를 열었다. 32명의 시민공약 38건이 접수됐다. 집 근처에서 이용할 수 있는 공연장을 만들어달라거나, 자전거도로를 확충해달라는 등 주로 생활 주변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없애달라는 내용이 많았다. 2월25일엔 이들 공약을 놓고 지역 활동가와 정책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회를 벌였다. 자료집만 72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토론은 5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이런 활동이 가능한 건 지방자치가 부활한 1991년부터 ‘시민단체 출신 시의원, 시민단체가 만든 정책’이 지역의 전통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2002년엔 시민후보 8명이 당선되기도 했다. 2006년엔 무소속 후보가 모두 낙선했지만, 시민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민주당 등의 시의원 3명이 당선되면서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시민사회의 역할은 축소되지 않았다. 이춘열 고양 무지개연대 집행위원장은 “좋은 후보를 세우는 것도 좋지만, 그 후보가 뭘 할 것인지를 논의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정책적 접근이 기본”이라고 말했다.
전북 부안군, 서울 동작구 등에선 각 정당이 좋은 후보를 뽑도록 시민단체가 독려하는 방식을 택했다. 주민자치모임인 ‘부안 아카데미’ 등은 민주당에 시민공천배심원제 도입을 촉구하는 시민 1만 명의 서명을 받아 3월3일 기자회견을 연다. 또한 부안을 지역구로 하는 김춘진 민주당 의원과 중앙당에 서명 명단을 전달할 계획이다. 민주당이 낙점한 후보가 무조건 당선되는 지역 현실을 감안해, 아예 후보를 정할 때부터 시민의 의사를 물으라는 압박인 셈이다.
‘희망나눔동작네트워크’(희망동네)의 좋은 후보 기준은 지난해 ‘의정감시단’의 평가 결과다. 희망동네는 2007년부터 구의회가 예산을 결정하는 12월이면 구의원들의 출석률, 발언 내용, 회의 참석 태도 등을 모니터링하고 점수를 매겨왔다. 2월25일엔 이 자료를 구의회 의석을 나눠가진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동작구위원회에 전달했다. 유호근 희망동네 사무국장은 “지역 주민이 직접 평가한 점수를 반영해 구의원 후보 공천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일할 만한 사람을 찾아내 더 잘할 수 있도록 끌어내는 것도 시민사회의 효과적인 정치 참여 방식”이라고 말했다.
경기 부천시 시민단체들은 정책 제안과 좋은 후보 선정 기준 제시 두 가지 활동을 병행키로 했다. 학교급식 조례, 자전거도로 확충 등 주민 생활에 밀접한 공약을 제시한 뒤 후보들에게 이를 시행하겠다는 서약을 받는 매니페스토 운동을 펼친다. 아울러 부정부패 전력자, 선거법 위반자 등을 공천에서 배제하는 등 다양하고 합리적인 공천 기준을 만들어 3월 중순 각 정당에 전달할 계획이다.
올해는 바람보다 먼저 웃으려나 (한겨레21, 2010.03.05 제800호, 조혜정 기자)
[연속기획- 바꿔! 지방자치 ⑤] ‘풀뿌리 후보’ 역사 벌써 20년, 이제는 지역 운동가도 유권자도 성숙한 분위기
1991년 지방선거는 YMCA, 경실련, YWCA,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중앙의 유력한 시민단체들이 직접 뛰어든 선거였다. 지방자치가 40년 만에 부활한 그해 시민사회엔 민주주의가 확대되려면 정치의 기초 단위인 지역 정치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들은 ‘참여와 자치를 위한 시민연대회의’(연대회의)를 만들어 선거에 뛰어들었다. 환경 분야 전문가인 김정욱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이정자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총무(창조한국당 공동대표), 이덕승 서울 YMCA시민중계실장(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 등 13명이 서울시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이영희 전 장관도 당시 연대회의 상임운영위원장으로, 출마자 13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시민사회의 의욕은 대단했지만, 조직도 없고 유권자들의 지방자치 인식도 낮은 탓에 당선자는 내지 못했다. 연대회의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강대인 대화문화아카데미 원장은 “그래도 ‘가지마다 새 잎을’이라는 슬로건으로 분권·자치·참여가 무엇인지 알린 의미 있는 선거였다”고 회고했다. 이와 별도로 경기 고양·안양·부천시, 서울 관악구, 대전 등 일부 지역에서는 시민·노동 운동 출신 인사들이 기초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김혜경 진보신당 고문, 최순영 전 민주노동당 의원 등이다. 이들의 당선은 이후 해당 지역에서 지역 운동이 뿌리내리는 밑거름이 된다.
풀뿌리 후보가 다시 주목을 받은 건 2002년 지방선거였다. 환경운동연합, 한국여성단체연합, 전국농민회총연맹 등의 시민사회단체들이 후보를 내면서 ‘녹색 후보’ ‘여성 후보’ ‘농민 후보’ ‘노동자 후보’ 등의 이름으로 불리던 이들 중 30여 명이 당선됐다.
2006년 지방선거는 시련기였다. 2004년 총선연대의 낙선·낙천 운동이 불법 논란을 겪으면서 시민사회의 정치 개입을 곱지 않게 보는 이들이 늘어났다. 또한 그전까진 모두가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기초의원 선거에 정당공천제가 도입되면서 시민단체나 주민후보가 움직일 공간이 더욱 줄었다. 그 결과 ‘한국의 녹색당’을 내건 시민사회의 초록정치연대는 20명을 내보낸 기초의원 선거에서 2명의 당선자를 내는 데 그쳤다. 이후 초록정치연대도 해산했다. 당시 초록정치연대 간사로 경기 과천시에서 당선된 서형원 시의원은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시민사회에서 새로운 정치의 에너지를 이끌어내겠다는 노력이 정당공천제, 시민운동의 정치적 중립성 논란 등에 부딪히면서 좌절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이번 지방선거에 나서는 풀뿌리 후보들의 가장 큰 특징은 ‘하방’이다. 학생·노동·환경 운동을 경험한 386세대가 고향으로 돌아가 10~20년 동안 지역 운동을 펼친 끝에 지역 정치를 바꾸자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얘기다. 이들의 연대모임인 ‘풀뿌리 좋은정치 네트워크’(풀넷·2010net.tistory.com)도 중앙 단위 시민단체가 아닌, 개별 지역과 후보의 연대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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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살겠다 갈아엎자 ‘사회적 경제’로 (한겨레21 2010.03.26 제803호, 조혜정 기자)
[연속기획- 바꿔! 지방자치 ⑥] ‘고용-생산-소비-재투자’ 선순환 꾀하는 지역경제 자치 모델 꿈틀… 지방자치의 ‘필수조건’
생산·소비·재투자 과정이 오롯이 ‘지역 친화적’일 순 없을까? 거대자본이나 중앙정부의 개입 없이, 지역 스스로 주민의 요구를 원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길은 없을까? 지역을 중심으로 연대에 기반한 협동조합의 역사가 오랜 서구에선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에서 그 답을 찾아냈다. 사회적 경제의 정의는 다양하지만 △이윤보다 조합원과 지역사회의 이익을 중시하고 △의사결정 과정이 민주적이며 △지역 주민의 참여를 중요시한다는 본질은 같다. 쉽게 말해 협동조합·노동조합·시민단체 같은 ‘제3섹터’가 국가와 시장이 내팽개친 주민의 복지를 껴안아 지역 발전을 주도하는 것이다.
캐나다는 여기에 지방정부·연방정부의 지원을 결합시켰다. 시작은 실업률이 10%를 넘는 등 극심한 경기침체에 빠졌던 1980년대 초 퀘벡주였다. 퀘벡 주정부는 고용을 안정시키기 위해 퀘벡노동자연맹과 합의해 노동연대기금을 설립했다. 노동자들이 저축의 일부를 출연해 만든 연대기금을 중소기업이 일자리를 늘리는 데 쓰도록 했다. 주정부는 기금에 매칭펀드 형태로 참여하는 한편, 돈을 출연한 노동자의 소득세를 깎아줬고, 연방정부는 이에 따른 세수 감소를 보전해줬다. 또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공동체 발전 전략을 고민하던 민간기구인 지역사회경제개발기업(Community Economic Development Corporation)이 여러 비영리 기업을 만들어 복지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간병, 환경, 재활용, 관광, 주거, 직업훈련,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사회적 기업이 등장해 퀘벡 주민을 고용했다. 퀘벡주에서 연대기금의 투자를 받은 기업은 1880여 곳, 그 결과 만들어진 일자리는 12만6천여 개에 이른다(2008년 말 기준).
이렇게 탄생한 사회적 기업들과 그 바탕이 된 각종 사회단체들이 주정부와 원활한 소통을 하기 위해 연대조직인 ‘샹티에’(Chantier)를 만들어 1996년 퀘벡 주정부가 재정위기와 실업문제 해결책을 찾으려고 제안한 ‘퀘벡의 경제·사회 미래에 관한 대표회담’(Summit on the Ecomonic and Social Future of Quebec)에 참여했다. 또한 사회적 경제를 실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노동조합, 기업, 정부의 파트너십을 지원하는 역할도 맡았다. 2001년 주정부 공식 기구로 출범한 ‘사회적 경제 위원회’는 실무대표기관인 샹티에를 동등한 협상 파트너로 인정했다. 이런 퀘벡의 움직임에 다른 주정부는 물론 연방정부도 주목했다. 2004년 폴 마틴 당시 총리는 ”사회적 기업가는 강한 공동체에 필수적”이라며 사회적 경제를 캐나다의 핵심적 사회정책 수단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그 결과 2008년 말 현재 캐나다 전역에서 사회적 경제에서 일자리를 찾은 이는 200만 명(전체 인구 3천만 명)에 이른다.
유럽 전체 도시 중에 잘살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이탈리아 볼로냐시는 다양한 형태의 수많은 협동조합이 사회적 경제를 주도적으로 발전시키고, 시정부는 법적·제도적으로 이를 지원해준 사례다. 협동조합은 농산물 생산이나 구매, 공장 운영, 의료, 직업교육 등에 뜻을 함께하는 조합원이 공동으로 출자해 만들어지고, 소유·운영·이익 분배 등 조합 운영의 모든 과정도 민주적으로 이뤄진다. 협동조합 자체가 일종의 사회적 기업으로, 볼로냐시는 지방정부의 경제 영역을 사실상 협동조합에 내줘 민관 협치를 하는 셈이다.
볼로냐시 협동조합의 규모는 놀랍다. 시민 둘 중 하나는 어떤 협동조합에든 가입해 있다. 협동조합 수가 400개에 이른다. 제조업·서비스업·농업 등 각종 부문에서 활약하는 협동조합은 연간 130만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며, 지역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차지한다. 물론 모든 조합은 수익금의 일부를 지역 발전을 위해 쓴다. 그 배경엔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헌법에 협동조합 지원 내용을 반영할 만큼 뿌리 깊은 좌파적 전통이 있다. 이에 더해 좋은 기술과 혁신 능력을 가진 대규모 기업은 볼로냐시 기업의 90%가 넘는 소기업(50명 미만)과 기술을 공유하면서 이들의 수준을 함께 끌어올렸다. 연대 정신에 기반한 주민의 노력이 ‘부’와 ‘살고 싶은 공동체’를 만든 셈이다.
여리지만, 우리나라에도 사회적 경제의 ‘싹’은 자라고 있다. 협동조합에 기반한 사회적 경제 모델은 강원 원주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원주에선 1971년 조합원들이 모여 출자한 신용협동조합 ‘밝음신협’이 탄생했다. 이후 공동구매를 목적으로 하는 소비자협동조합, ‘한살림’을 비롯한 생활협동조합, 의료생협 등 모두 12개의 협동조합이 생겨나면서 3만여 명에 가까운 조합원들은 조합들 간에 네트워크를 형성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이들은 원주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을 관철시켰을 뿐만 아니라 무농약 쌀과자 공장, 노인 일자리 창출 기업 등 여러 사회적 기업도 만들었다.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는 이들 사회적 기업의 성과가 매출과 지역 사회에 미친 영향을 포함해 400억원에 이른다고 분석한다. 원주시는 농업·교육 정책 등을 수립할 때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을 받는 데 행적적인 도움을 준다.
우리나라 여행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제주 올레길은 조금 다른 형태의 사회적 경제 모델이다. 언론인 출신인 서명숙씨는 스페인 산티아고 도보여행에서 돌아온 2006년 말, 길에서 느낀 행복을 나누고 싶어 고향인 제주도에서 ‘실험’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제주도청과 서귀포시청 공무원들을 만나 새로운 여행 코스 개발을 제안했고, 걷기 좋은 길을 찾으려고 노숙까지 하며 몇 달간 서귀포 일대를 헤맸다. 일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소떼를 방목하는 사유지 주인들은 “소를 놀래키거나 쓰레기를 버리지만 않는다면 좋다”고 기꺼이 문을 열었고, 이웃한 두 마을 해녀들 사이의 ‘구역 다툼’ 때문에 오래전 끊어졌던 길도 다시 잇게 됐다. 서귀포시청은 혼자 사는 ‘할망’들이 민박집을 할 수 있도록 도배 비용 등을 지원했고, 해병대는 인적 끊긴 옛길에 산처럼 쌓인 돌들을 골라내 길을 복원하는 데 힘을 보탰다.
2007년 9월 사단법인 ‘제주 올레’의 출범과 함께 올레길이 개장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해 석 달 동안 3천 명에 그쳤던 ‘올레꾼’은 이듬해 3만 명, 2009년 9월 말 25만1천 명으로 급증했다. 이들이 걷기만 했을까? 아니었다. ‘2박3일짜리 렌터카·리조트 패키지’라는 제주 여행의 공식을 ‘열흘짜리 도보여행’으로 바꿨다. 서귀포시청은 이런 변화가 지역 상권을 되살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재래시장 이용객 17%(하루 6천 명→7천 명) 증가 △현지 농수산물 구입 증가 △올레 음식점 250곳 등 지역 식당 활성화 △올레길 전용 민박 등 동네 숙박시설 증가 및 이용객 10배 증가 △동네버스 이용객 400% 증가 △폐점 업체 20곳 재개업 등 동네 상점 활성화 등이 근거다.
유명 호텔이나 리조트, 렌터카 업체의 수익은 본사가 있는 ‘육지’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올레꾼이 주로 이용하는 민박집이나 게스트하우스, 버스에 지불하는 비용은 고스란히 제주에 남는다. 올레꾼은 하룻밤 묵어가는 비용으로 1만5천~2만원을 지불할 뿐이지만, 민박집 할머니는 월평균 116만원가량의 수입을 얻게 된다. 걷다가 마주친 동네 구멍가게에서 사먹은 물, 음료수, 초콜릿 따위는 문을 닫았던 가게 주인을 다시 세상으로 불러냈다. 올레가 인기를 끌면서 서귀포시청도 ‘슬로관광도시육성팀’을 꾸려 이를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관광자원’으로 가꾸려는 노력을 더했다. 하염없이 이어진 길에 부족했던 간이 화장실을 설치했고, 육지의 기업과 올레길 마을을 연결해 농수산물 직거래, 관광상품 개발 등을 돕는 ‘1사 1올레 마을 결연사업’도 추진했다.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인 하승수 변호사는 “지역에서 외부 자본을 끌어들여 대규모 개발사업을 벌이면 이익은 주민이 아닌 외부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제주 올레는 아직 사회적 경제의 맹아 단계지만, 지역의 특성을 잘 살려 민관이 함께 노력하면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6월 지방선거에 나서는 이들 가운데서도 사회적 경제에 주목하는 이들이 있다. 특히 사회적 기업 육성은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서울시장 선거), 노옥희 진보신당 울산시당위원장(울산시장 선거), 남기호 민주당 전남도의원(전남 광양시장 선거) 등 여야나 광역·기초 단체를 가리지 않고 공약으로 내세운다. 무상급식 논쟁으로 복지 문제에 관심이 커진데다, 좀체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경제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는 까닭이다.
경기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한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는 ‘경기도 순환경제’라는 이름의 사회적 경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놨다. 시·군 단위 주민들이 스스로 보육원 설립이나 의료생협 구성, 친환경 먹을거리 공급 등 가장 절실한 복지 프로그램을 만들어 기금을 조성하면, 경기도가 매칭펀드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6천억원 규모의 도민은행을 만들어 서민·소상공인이 활용하도록 해 사회적 경제에 ‘피’가 원활히 돌게 하고, 사회적 기업도 대대적으로 육성하겠다고 했다. 지방자치의 주체인 주민이 경제 영역에도 자발적이고 자유롭게 참여함으로써 자치 영역을 확대해 민주주의를 강화하자는 아이디어다.
하지만 ‘토대’가 너무 빈약하다. 전창환 한신대 교수(국제경제학)는 “사회적 경제를 도입해보자는 취지에는 동감한다”면서도 “외국과 달리 한국은 노조 조직률·협동조합 가입률이 낮은데다 주민들을 조직할 역량을 가진 시민단체가 있는지도 의문스럽다”고 회의적인 전망을 내놨다. 이런 가운데서도 생활협동조합이 사회적 경제의 출발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조합원이 꾸준히 증가하는데다 영리가 아니라 친환경 무상급식 같은 사회적 공공성을 추구하는 활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정규호 ‘모심과살림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조합원이 생활하는 지역을 기반으로 먹을거리는 물론 교육·복지·환경 등 다양한 생활 속 과제를 의제화하고 실천하는 생활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은 지역사회를 지속 가능하게 재구성하는 사회적 경제 전략으로 함께 다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캐나다의 사회적 기업 ‘라 토후’
서커스를 가르쳐드립니다
서커스를 가르치는 사회적 기업이 있다?! 사회적 기업이라고 하면 ‘복지’만 떠올리게 마련인 우리에겐 황당한 얘기로 들리지만,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시엔 서커스를 가르치는 사회적 기업이 1980년대 중반부터 활약하고 있다. 바로 “서커스를 통해 지구와 인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의 길을 모색한다”는 목표로 설립된 ‘라 토후’(La Tohu)다. 몬트리올 제리 스트리트 이스트에 있는 이 회사 건물엔 세계 최대 서커스 회사인 ‘태양의 서커스’ 본부도 입주해 있다.
몬트리올 북부 서민·빈민층 밀집 지역인 이곳은 원래 석회석 채석장이었다. 캐나다에선 평지를 파내 석회석을 채굴하는데, 이곳의 채굴량은 어마어마해 몬트리올시 현대 건축물의 대부분을 여기서 나온 시멘트로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석회석은 화수분이 아니었고, 수십 년의 채굴이 끝난 뒤 남은 건 깊이 80m, 넓이 192ha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구멍’이었다. 몬트리올시는 이 구멍을 쓰레기로 메웠다. 시의 쓰레기 매립장으로 사용한 것이다. 일반 쓰레기로 악취가 진동해 주민들이 고통을 겪은 것은 물론, 4천t 이상의 독성 화학 쓰레기를 그냥 묻어버려 지하수가 오염될 위기에 놓였다. 스며든 빗물에 독성 화학물질이 섞여들어 지하수로 흘러간 것이다. 메탄가스까지 계속 발생해 주민들의 반발이 극에 달해서야 몬트리올시는 매립을 중단했다.
재생이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던 매립지가 서커스 공연장으로 탈바꿈한 건 이 지역 출신 여성 무용가의 아이디어였다. 버려진 땅을 주민들의 예술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을 몬트리올시는 거절하지 않았다. 노동연대기금을 지원받아 설립된 라 토후는 지하에 파이프를 설치해 오염된 침출수를 오수처리장으로 내보냈다. 메탄가스는 주변 지역 1만여 가구가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는 화력발전의 연료로 활용했다. 그리고 이곳에 서커스 공연장을 지어 1987년 국립 서커스학교도 입주시켰다. 지역의 서민층 청소년을 대상으로 직업교육을 실시해 서커스단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도왔다. 서커스에 재능이 없는 이는 청소나 설비 분야의 사회적 기업으로 연결시켰다. 지역 주민의 아이디어가 시민사회와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아 환경을 살리고 일자리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이 된 것이다.
캐나다가 보여주는 사회적 기업의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폐허가 된 공장 부지를 사들여 사회적 기업·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부동산 개발업체, ‘호혜와 평등’이라는 사회적 경제의 이론적 배경이 된 칼 폴라니 연구소, 서민·빈민층이 조합원이 돼 공동주택을 건설하는 주거협동조합, 지역주민 교육기관…. 원칙은 단 한 가지, ‘지역 사회의 공익을 위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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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선택이 교육을 좌우한다 (한겨레21 2010.04.16 제806호, 조혜정 기자)
[연속기획- 바꿔! 지방자치 ⑦] ‘다양성이냐 경쟁이냐’ 교육감 성향에 따라 춤추는 지방교육…
6·2 선거에서 ‘공정택’과 ‘김상곤’을 모델로 한 전선 형성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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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겐 바꿔야 할 이유가 있다 (한겨레21 2010.04.30 제808호, 조혜정 기자)
[연속기획- 바꿔! 지방자치 ⑧] 육아·교육·복지 문제를 피부로 느껴 지역정치에 뛰어든 여성들… ‘경쟁력’ 빌미로 참여 막는 정치권
1.“딸이 행복한 학교를 위해”
류정이(46)씨는 6월2일 경기 안산시 가선거구(사1·2·3동, 본오3동) 시의원 선거에 출마한다. 17년 전 결혼해 안산에서 처음 신접살림을 차릴 때만 해도 류씨는 “살림이나 잘하고 애나 잘 키워야지” 생각한 평범한 주부였다. 그런데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안산은 못 살 동네”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고교 비평준화의 여파가 초등학교에까지 몰아쳐 3학년부터 입시공부를 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서울 사는 친구들을 봐도 초등학교 3학년은 영어 말고는 별나게 공부시키는 사람이 없었다. 딸이 다니는 학교에 항의를 해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즈음 “안산은 못 살 동네”인 이유도 눈에 들어왔다. 교통도 불편하고, 치안도 불안하고, 유흥업소 종사자도 너무 많고…. 이사를 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런데 큰딸이 막무가내로 울어젖혔다. 친한 친구가 있고 정이 많이 든 동네를 떠날 수 없다고 완강히 버텼다. 져 줘야만 했다. 류씨가 마음을 바꿔먹었다. “그럼 안산을 살고 싶은 동네로 바꿔보자.”
학교 운영위원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이웃들과 ‘안산지역 고교 평준화를 위한 학부모 모임’을 만들었다. ‘고교 평준화를 위한 안산시민연대’에도 참여했다. 안산시교육청·경기도교육청을 쫓아다니며 평준화 제도를 도입하라고 요구했다. 교육청은 서로 책임을 떠밀거나 “안산에서 그런 평준화하자는 사람은 아줌마뿐”이라고 타박했다. “시의원 데리고 와서 얘기하라”는 소리도 들었다. 정작 안산시의회는 별 관심이 없었다. ‘아줌마’가 넘기엔 벽이 너무 높았고, 화가 났다.
교육에 관심이 깊어질수록 화를 돋우는 일은 곳곳에서 ‘발견’됐다. 각 학교에 지급하는 학습준비물 예산은 큰딸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중3인 지금까지 10년 동안 1인당 1만원으로 제자리였다. 연말만 되면 멀쩡한 보도블록을 갈아엎는 데 예산을 들이부으면서, 아이들한테는 왜 그렇게 인색하기만 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턱없이 비싼 교복을 공동구매하겠다고 나섰을 땐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며 교장이 가로막았다.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3년 동안 끈질기게 교장을 설득해 올해 드디어 보통 가격보다 40% 낮은 가격에 교복을 공동구매할 수 있게 됐지만, 학생·학부모가 아무리 요구해도 교장 한 사람을 이기기 어려운 구조가 답답했다. 그를 지켜본 주변에서 “‘아줌마’로 혼자 고생하는 것보다 ‘시의원’이 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 “내가 안 나서면 누가 하겠어?” 고민은 길지 않았다.
2. “안전한 어린이집을 위해”
민주노동당 광주 광산구 라선거구(월곡1동·운남동) 구의원 후보인 김선미(36)씨의 출마 계기도 아이를 키우다 부딪힌 벽이었다. 2004년 태어난 큰딸은 아토피가 심했다. 어린이집을 물색할 때 급식과 생활환경에 특별한 관심을 둘 수밖에 없었는데, 김씨의 눈에 들어오는 시설이 없었다. 초등학교도 아닌 어린이집에서 영어·과학 같은 수업을 하는 것도 싫었다. “현실에 없으면 대안을 만들자!”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웃들과 공동육아 협동조합을 꾸렸다. 협동조합은 규모가 커져 지금은 두 곳에서 4살 미만 영아와 4~7살 어린이를 나눠 받고 있다. 하지만 이미 있는 어린이집을 공동육아 조합처럼 아이들이 안전한 먹을거리를 먹으며 마음껏 놀 수 있게 운영하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 때 광산구에서 민주노동당 구의원 4명이 당선된 뒤, 이들의 의정활동을 돕는 ‘광산구위원회 의정지원국장’을 맡았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이상한 데’ 쓰이는 예산이 많았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는 안전성이 가장 중요한데, 모래가 위험하다며 더 위험한 고무매트로 바닥을 덮어버렸다. 어린이도서관은 규모보다 접근성, 즉 학교나 학원을 오가는 길에 언제든 들를 수 있도록 가까운 곳에 있는 게 중요한데, 구청은 ‘크게 짓기’에만 관심을 뒀다. 시각을 조금만 바꾸면 실용적으로 쓰일 예산이 허투루 쓰이는 게 안타까웠다. 그런 시각으로 동네를 볼 수 있는 건 여성밖에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여성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바뀔 수 있는 거잖아요. 이런 생각을 하는 나부터 결심하지 않으면 다른 여성들도 정치에 진출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3. “불러도 대답 없는 구의회를 향해”
서울 노원구 마선거구(상계2·3·4·5동)엔 어느 정당 소속도 아닌 풀뿌리 구의원 후보가 있다. 이 동네에서 10년 가까이 지역운동을 해온 서진아(46) 전 마들주민회 대표다. 처음 마들주민회와 인연을 맺은 2002년엔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할 마음뿐이었다. 마들주민회를 드나들며 이런저런 얘기를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원구의회 감시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만큼 동네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그러면서 주민의 요구가 구청·구의회에서 제대로 수용되지 않는 이유 하나를 발견했다. “동네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여성이지만 최종적인 결정은 남성이 주도해요. 가령 노원구의회 22명 가운데 여성은 비례대표 2명밖에 없어요. 각기 다른 당이라도 여성이 의회에 많이 들어가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을 텐데 말이죠.”
‘떨치고 일어선’ 또 다른 이유는 주민 뜻을 제대로 전달할 통로가 필요하다는 깨달음이었다. 2008년 구의회가 급작스럽게 의정비를 인상하자, 서씨는 주민들과 함께 서울시에 의정비 인상 관련 주민감사를 청구했다. 그러자 그동안 예산 감시 등 주민 활동에 비교적 호의적이던 구의원들도 “뭐 이런 이상한 사람들이 다 있느냐”며 등을 돌렸다. 안타까웠다. 사전에 구의원이 주민과 소통하는 과정이 있었더라면 그 속에서 반대도 하고 대안도 낼 수 있었을 텐데, ‘사후약방문’식 대응은 한계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류정이·김선미·서진아씨가 들려준 얘기처럼 여성은 지방자치의 핵심이다.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뿐 아니라, 육아·교육·복지 같은 생활 의제를 다루는 지역정치의 직접적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지방자치가 발달한 것도 생협을 중심으로 한 주부들의 참여 덕분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지방자치에서 활약하는 여성 정치인은 드물다. 여성 광역단체장은 단 한 명도 없고, 기초단체장도 4명(김영순 서울 송파구청장, 박승숙 인천 중구청장, 윤순영 대구 중구청장, 이청 전남 장성군수)에 불과하다. 여성 광역의원은 89명(12.1%), 여성 기초의원은 2778명(15.7%)인데, 그나마도 공직선거법에 따라 절반을 여성 후보로 공천해야 하는 비례대표를 제외하면 지역구에서 선출된 여성 지방의원 비율은 5% 미만으로 뚝 떨어진다.
왜 그럴까? 조직동원력·자금력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열세다. 동네에서 목소리깨나 높인다는 사람이 누군지 떠올려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자영업자나 공무원 출신, 관변단체 임원 등 지역에서 ‘유지’로 행세하는 이는 대체로 경제력이 있는 남성들인데, 이들은 서로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면서 끈끈한 유대를 유지한다. 누군가 선거에 나설 경우 인적·물적 지원이 얼마든지 가능한 관계다. 반면 여성은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이런 차이는 여성에게 공천을 당선보다 더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정당의 공천제도와 경선은 민주적으로 보이지만, 여성에겐 엄청난 장벽이다. 당원들의 의사로 결정되는 경선은 조직동원력에 좌우되는데, 여성은 남성보다 힘이 달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남성 중심적으로 운영되다 보니 선거 때마다 정당이 내놓는 얘기가 “공천할 만한 여성이 없다” “여성 후보는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다. 평소 여성 정치인을 키우려는 노력조차 안 하고, 때 되면 구색만 갖추면 된다고 생각하는 한 이런 일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의 지적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국회는 정당이 광역·기초 의원을 공천할 때 국회의원 선거구마다 여성을 반드시 1명 이상 포함시키고 이를 위반하면 해당 지역 후보 등록을 무효화하도록 지난 2월 공직선거법을 개정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개정 선거법에 따라 여성 지방의원 비율이 20~25% 안팎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정당들도 저마다 여성 공천을 확대하겠다며 갖은 약속을 꺼내놨다. 한나라당은 서울 3곳(동작구·송파구·강남구), 부산·경기 각 2곳, 다른 광역시·도 각 1곳 등의 기초단체장 후보에 여성을 전략공천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공천 심사 때 여성에게 가산점 20%를 주고, 수도권 기초단체 3곳에 여성을 전략공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전체 후보자의 30%를 여성으로 공천한다.
하지만 말과 행동은 다르다. 한나라당 인재영입위원회는 4월14일 이은경 변호사와 박인숙 울산의대 교수, 이재순 전 국군간호사관학교 교장을 각각 강남·송파·동작구청장 후보로 영입했다. 하지만 이들의 공천을 확정하는 서울시당 공천심사위원회는 4월22일 현재 심사 절차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공심위원장과 부위원장인 이종구(강남갑)·유일호(송파을) 의원이 이들의 ‘경쟁력’을 문제 삼아 중앙당의 결정에 강력하게 반발하는 탓이다. 다른 지역은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구에 여성을 전략공천할지도 결정하지 못했다. 민주당 상황은 더 갑갑하다. 234개 기초단체 가운데 민주당이 공천한 여성 후보는 인천 부평구청장 선거에 출마하는 홍미영 전 의원이 유일하다. 여성 전략공천을 어디에 할지도 확정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 공천을 신청한 여성 예비후보들은 지난 3월28일 당사에서 농성까지 벌였다. 하지만 민주당 역시 “이번엔 한나라당을 이길 후보를 내야 한다”는 이유로 여성 공천을 주저하고 있다.
보다 못한 여성단체들은 4월2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각 당에 기초단체장 20%, 선출직(비례대표를 제외한 지역구 지방의원과 단체장) 30%를 여성 몫으로 공천하라고 촉구했다. 여성의 정치 진출 활성화를 위한 여성계 모임인 ‘2010 지방선거 남녀동수 범여성연대’는 이날 “실질적으로 공천 권한을 행사하는 당협위원장들로 인해 중앙당 차원의 여성 공천 확대 약속이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수용되지 못하고 있다”며 “각 지역 당협위원장이 여성할당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지 모니터링해 그 결과를 공표하겠다”고 밝혔다. 총선 출마 가능성이 높은 당협위원장이 실행한 여성 공천 결과를 유권자에게 알려 다음 총선의 ‘선택 기준’으로 삼도록 하겠다는 압박인 셈이다. 정당문화와 정치제도, 여성에 대한 인식이 한꺼번에 바뀌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상상’으로 여겨지던 비례대표 50% 여성할당제는 어느새 ‘상식’ 이 됐다. 지역정치를 실질적인 생활정치의 장으로 만드는 것도 상식이 될 수 있다. 그건 유권자의 힘이다.
여성 정치인 부족이 낳는 문제점
무늬만 여성정책 난무
여성 지역정치인이 15%선에 그친다는 건 단지 숫자만의 문제일까? 아니다. 여성 정치인의 부족은 여성정책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물론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건 아니겠지만, 여성 유권자의 요구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여성 정치인이 더 뛰어나다. 서울시의 대표적 여성정책은 ‘여성이 행복한 도시 프로젝트’(여행 프로젝트)다. 구두 굽이 끼지 않는 보도블록을 만드는 일(‘서울거리 르네상스 조성사업’)뿐만 아니라 여성 일자리 창출을 위한 ‘엄마가 신났다 프로젝트’, 민간 보육시설을 국공립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서울형 어린이집 사업’ 등 90개 사업이 포함돼 있다. 이 정책을 총괄하는 서울시 여성가족정책관실의 올해 예산은 1조2748억5천여만원으로, 시 전체 예산(21조2853억원)의 6%에 이른다.
하지만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이하 여세연)가 분석한 결과를 보면, 여성의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예산인지 의문이 든다. ‘엄마가 신났다 프로젝트’ 예산은 지난해보다 7억1천여만원이 증가한 30억여원이다. 하지만 증가분은 여성취·창업·보육센터 증축 비용(6억1천여만원)과 취·창업박람회 예산(1억원)이다. 오히려 일자리 창출에 필수적인 여성발전센터 운영 예산은 7억6천여만원이 줄었고, 원스톱 취업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지난해 시작한 ‘여성 새로일하기센터’ 지정운영 예산도 4억5천여만원 감소했다. 쉽게 말해 ‘콘크리트 사업’이 여성정책의 탈을 둘러쓰고 고개를 들이민 탓에 여성 일자리 만들기에 직결되는 사업 예산이 줄었다는 얘기다.
서울형 어린이집 사업 예산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예산 대부분인 872억5천여만원(보육시설 지원사업의 67%)이 민간 보육시설 2060곳을 서울형으로 인증해주고 운영비를 지원하는 데 쓰인다. 정작 어린이집 환경 개선을 위한 보육시설 기능보강 사업 예산은 지난해보다 100억원 가까이 줄어 24억원이 잡혔다. 보육시설 수준이 어떻든, 일단 ‘서울형 어린이집’이란 이름을 단 시설만 늘리고 보자는 계산이 아니라면 산출하기 힘든 예산이다. 게다가 공공보육시설 확충 예산, 방과후 보육시설과 장애아통합 보육시설 운영지원 예산도 크게 줄었다.
이게 남성 서울시장에 남성 시의원이 85%(현재 87명 가운데 74명)인 서울에서 추진하는 여성정책의 현실이다. 김은희 여세연 부대표는 “아직도 여성 정치인의 수를 강조하는 건 의사결정 구조가 다수결이기 때문”이라며 “아무리 좋은 정책이나 비판이라도 제안에만 그쳐선 안 된다. 이런 걸 바꾸려면 여성 정치인이 획기적으로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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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정치와 프리허그 하세요 (한겨레21, 2010.05.28 제812호, 조혜정 기자)
[연속기획- 바꿔! 지방자치 ⑨]
조혜정 기자가 뛰어든 풀뿌리 시민단체 활동기 (상) …
첫걸음은 ‘투표합시다’ 프리허그와 장애인 투표소 접근권 보장 운동으로
<한겨레21>은 지난 792호부터 ‘바꿔! 지방자치’ 시리즈를 통해 주민의 참여로 지방자치를 바꾸는 길을 모색해했다.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지방정치를 감시하는 풀뿌리 시민단체 활동 체험기를 두 차례에 걸쳐 싣는다. ‘동네정치 참여’에 목마른 독자에게 참고가 되기 바란다. 편집자
좋은 관심만 있었던 건 아니다. “지방의원이고 구청장이고 다 도둑놈들이야”라는 중년의 주민도 있었다. 어쩌면 오늘 보라매공원에서 우리를 지나친 주민들 다수는 이렇게 정치를 혐오하는지 모른다. “6월2일이 지방선거였어요?”라거나 “주소지는 인천이고, 6월2일 중국에 출장을 가는데 투표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묻는 주민도 있었다. 선거 일정이나 부재자 투표 방법을 모르는 유권자의 ‘무지함’보다, 4대강 반대 목소리를 막는 데는 혼신의 힘을 기울이면서 정작 필요한 홍보는 부족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무심함’이 더 문제라는 생각이 스쳤다.
동작구의 투표소는 모두 85개다. 동작구 풀뿌리 유권자연대는 장애인이 실제로 여기서 투표를 할 수 있는지 조사해 그 결과를 동작구 선거관리위원회에 전달하기로 했다. 아예 투표소 접근이 불가능하다면 다른 곳으로 바꾸든지, 문턱이나 계단이 문제라면 경사로를 설치해달라고 요구하기로 한 것이다. 동작구에서 전동휠체어가 필요한 중증 지체장애인은 620명으로, 전체 유권자(32만5630명)의 0.2%다. 하지만 아무리 적은 수라도 이들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면 안 되지 않나.
유권자연대는 내가 참여한 4월29일을 포함해 4월19~30일 동작구 투표소들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이 두 학교처럼 경사로 등의 보완책이 필요한 투표소 19곳, 아예 진입 자체가 불가능한 투표소 13곳 등 전체 투표소의 40%가 장애인이 ‘투표하기엔 너무 먼 곳’이었다. 유권자연대는 이 결과를 5월17일 동작구 선관위에 전달했다. 선관위는 “경사로가 필요한 곳은 설치하고, 그것이 어려운 곳은 임시로 투표장에 수동휠체어를 비치하고 도우미 등이 출입문에서 투표장까지 장애인을 업고 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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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는 끝이 아니라 시작 (한겨레21 2010.06.04 제813호, 조혜정 기자)
[연속기획- 바꿔! 지방자치 ⑩ 마지막회] 조혜정 기자가 뛰어든 풀뿌리 시민단체 활동기 (하) …
동네정치는 투표로 뽑은 일꾼이 제대로 일하게 하는 ‘출발점’
전업주부나 중소 자영업자, 퇴직한 노인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직장인은 나처럼 동네에 관심을 가지려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게야 퇴근하니, 동네에 머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방자치에, 동네정치에 참여할 순 없을까? 그런 고민을 시작한 지난겨울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이 분명 있으리라 생각했다. 혹시 풀뿌리 정치를 감시하는 풀뿌리 시민단체가 있다면 거기 가입해 활동하는 게 가장 쉬운 길이란 생각도 들었다. ‘사당동 풀뿌리 단체’ ‘동작구 시민단체’ ‘동작구 주민참여’ ‘사당동 지방자치’ 등 연상되는 단어는 모두 집어넣어 검색해봤다. 그렇게 찾아낸 곳이 ‘희망나눔동작네트워크’(이하 희망동네)다. 홈페이지를 보니 동작구에서 의정감시, 친환경무상급식조례 추진, 동작구 주민 페스티벌, 어린이 도서관 만들기, 홀몸노인 도배봉사 등의 활동을 한다고 돼 있었다. ‘도봉시민회’나 ‘관악주민연대’, ‘성미산마을’처럼 언론에 자주 오르내려 유명해진 단체가 아니기에 내 나름대로 ‘검증’을 해야 했다. 또한 쉽게 회원을 만날 수 있는 우리 ‘동네’의 단체가 있으면 그곳을 추천받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1월26일 상도동 희망동네 사무실(지난 4월 이사해 지금은 신대방동)을 찾아가 유호근 사무국장을 만났다. ‘동네’ 단위의 단체는 자신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가입하는 거라면 동네보다는 기초자치단체 단위의 시민단체에 가입하는 게 더 효과적일 거란 조언도 해줬다. 지방자치의 기초 단위가 시·군·구라서 풀뿌리 단체의 참여나 감시 활동도 시·군·구 단위로 이뤄진다는 얘기였다.
서울에 25개 구가 있는 건 알았지만, 동작구에 15개 동이 있다는 건 이날 처음 알았다. 구민이 40만 명이라는 것도, 한 해 구 예산이 3천억원이나 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희망동네가 하는 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들었고, 매년 의정감시 평가서를 각 정당에 전달해 지방선거 공천에 참조하도록 하겠다는 계획도 들었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유호근’이란 이름이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을 한 그 ‘유호근’이란 사실도 알게 됐고, 세상을 바꾸려면 지역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법처리 뒤 희망동네를 만들어 지역 단체를 네트워킹하기 시작했다는 얘기에 감동도 받았다. 그 자리에서 가입신청서를 썼다.
적잖은 기대를 품었지만, 지역운동 단체에 가입만 하면 저절로 내 생활이 달라질 거라는 건 착각이었다. 회원이 모이는 자리에 불참하거나, 홈페이지에 잘 들어가지 않거나, 유일한 상근자인 유 사무국장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활동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희망동네는 내가 가입한 다른 ‘중앙 단위’의 몇몇 시민단체와 마찬가지로 매달 통장에서 1만원씩 빼가는 곳에 불과했다.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두어 달을 고민하다 매월 첫 번째 금요일 저녁 회원들이 모여 삼겹살을 굽고 소주잔을 기울이는 ‘동네파티’에서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희망동네 회원들이 지방선거에 참여해볼 방법이 없을까요?”라고.
그 자리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프리허그’와 ‘투표소 장애인 접근권 조사’였다. 유권자 투표 독려운동을 회원이 직접 벌이기로 한 것이다. 난 ‘수영장 생리할인 조례 제정운동’을 제안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조례까지 제정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구립시설에선 적용되고 있는 제도여서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희망동네는 ‘지방선거 이후’에도 중요하다. 새로 뽑힌 구청장과 구의원이 얼마나 제대로 일하는지 일상적으로 감시하고, 주민에게 필요한 걸 해달라고 효과적으로 요구해야 건강한 동작구를 만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2007년부터 매년 구 예산이 결정되는 12월 한 달 동안 벌이는 ‘의정감시단’ 활동은 희망동네 활동의 백미다. 주부, 상인, 학생, 지역 활동가 등 희망동네 회원 20여 명이 돌아가며 구의회를 방청하면서 구의원들의 △출석·이석·결석 상황 △회의 참여 적극성 △지역 이해도 및 주민 의견 반영도 △질의 건수와 수준 △구정 감사 사안에 대한 지식 등 평가지표가 적힌 평가지에 점수를 적는다. 구의회가 열리기 전 동작구의 주요 장소에 의정감시단을 모집한다는 펼침막도 내걸기 때문에, 희망동네 회원이 아니더라도 의정감시에 관심이 있는 주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풀뿌리 단체는 대부분 상근 활동가도 적고 쓸 수 있는 돈도 많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지속적으로 의정감시 활동을 벌이는 곳은 흔치 않은데, 희망동네의 ‘집념’은 이번 지방선거 공천에서 ‘성과’를 내고 말았다. 계획대로 의정감시 평가서를 각 정당에 전달했는데, 이 평가에서 꼴찌를 한 현역 구의원이 공천을 받지 못한 것이다. 이 구의원은 공천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당협위원장 사무실에 찾아가 거칠게 항의했지만, “희망동네 의정감시 평가서에서 꼴찌를 했는데 어떻게 공천을 주겠느냐”는 당협위원회 관계자의 반박에 아무 말도 못하고 자리를 떴다고 한다. 이런 결과를 알고도 새로 뽑힌 구의원이 멋대로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유호근 사무국장은 “희망동네처럼 풀뿌리 단체가 구정 내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면 지역 정치인도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주민이 지역 정치의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에 서게 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풀뿌리 단체로서도 예산 이해도가 높아지고, 관과 소통도 원활해져 활동 자체가 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건 덤이다.
이렇게 주민이 모이면 지역을 바꾸는 큰 힘이 된다. 동네파티 때마다 모여앉아 하는 얘기가 동네 문제인데, 동네 정치에 관심이 안 생기고 배길까. 이젠 출근길에 지방선거 출마자가 나눠주는 명함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동작구가 ‘우리 동네’라는 생각도 조금씩 생긴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는 얼굴의 여드름을 보고 직접 아로마 비누를 만들어 보내주신 분까지 계실 만큼, 서로 안부를 묻고 궁금해하고 관심을 가지는 이웃이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지역엔 풀뿌리 단체가 없거나, 있더라도 마음에 안 들 수 있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망망대해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이 의미가 없진 않지만, 바다 색을 바꿀 순 없다”는 유 사무국장의 말마따나 일단은 모이는 게 힘이니, 마음 맞는 이웃과 스스로 모임을 조직하면 된다. 어렵지 않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서로 아이의 책을 돌려보면서 부모도 친분을 쌓을 수 있고, 학교 운영위원회나 생협, 주민자치센터, 도서관, 복지관 등 지역의 다양한 기구·기관을 활용해 네트워크를 만들 수도 있다. 이렇게 만나면 자연히 동네 문제가 화제가 되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논의하게 된다.
모임이 애초 의도와 다르게 ‘친목계’로 흘러간다면, 지방선거 참여를 독려하려고 시민단체 연대체인 ‘2010 유권자희망연대’가 진행하는 ‘커피파티’(용어설명 참조)처럼 대화 주제를 정해 만날 수도 있다. 기초의회 누리집엔 회의록과 내년도 예산서가 모두 공개되니, 이런 구체적인 자료와 차 한 잔을 놓고 구의원이 얼마나 잘하는지, 구청장은 얼마나 공약을 잘 지키고 있는지 토론하면 된다.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하승우·유해정 지음, 북하우스 펴냄), <나라를 사랑하는 50가지 방법>(무브온 지음, 리북 펴냄) 같은 ‘정치 참여 가이드북’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의원·단체장에게 전자우편, 홈페이지 게시판, 전화 등으로 요구 사항 전달하기 △의회 방청하기 △언론 보도, 정치인 홈페이지, 풀뿌리 단체, 예산감시단체 등에서 정보 수집하기 △수집한 정보를 대화, 전자우편, 블로그 등으로 이웃과 공유하기 △언론사에 제보하기 등은 두 책이 공통적으로 추천하는 참여 방법이다. 특히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는 지역 정치인의 활동과 관련해 “기본적인 정보를 구해 계속 의견을 내면 언젠가 한 번쯤 반응이 온다. 품을 들이지 않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니 상품평 올리듯이 한 번씩 글을 남기자. ‘I’ll be back’(다시 오겠습니다)이라는 마무리 멘트를 꼭 달아주고… 정치인들은 시민의 눈을 의식해야 막 나가지 않으니 정기적으로 한 번씩 쿡쿡 옆구리를 찔러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온 동네 주민이 ‘콘크리트·삽질 경제’에 시달려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면 <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마을혁명>(강수돌 지음, 산지니 펴냄)을 참조해볼 만하다. 충남 연기군 조치원읍 신안1리 이장인 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영학)와 주민들이 2005년부터 5년 동안 이 마을에 흉물스러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걸 막고,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는 과정이 상세히 담겨 있다. △개발사업의 실상과 정확한 정보 입수 △땅을 팔겠다는 ‘지주동의서’ 작성 전 지주들 사이의 소통과 연대 △행정 공문으로 단체장 답변 받기 △주민들끼리 모든 정보 공유하고 연대하기 △서명운동, 토론회, 기자회견, 제보 등 언론을 활용해 여론 형성하기 등이 강 교수가 알려주는 ‘잘못된 개발사업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풀뿌리 운동 매뉴얼’이다.
동네 정치? 풀뿌리 자치? 어렵지 않다. 중요한 건 마음을 먹는 거고, 더 중요한 건 그 마음을 행동에 옮기는 거다. 선거 때 하는 투표는 ‘끝’이 아니라 동네 일꾼이 제대로 일하게 만드는 ‘처음’이라는 인식, 그리고 나와 같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모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것이 바로 지방자치의 출발이다.
*용어설명 - 커피파티: 미국의 한인 2세 애너벨 박이 지난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보험 개혁이 궁지에 몰리는 걸 보면서 이 문제를 자유롭게 토론해보자고 자신의 네트워크 사이트 ‘페이스북’에 제안해 만들어진 온라인 풀뿌리 단체. 민주주의와 정치 의제를 자유롭게 토론하는 단체로, 지역별로 오프라인 모임을 열어 현재 미국 45개 주에 지역별 커피파티가 조직돼 있다.
‘풀뿌리 정치 전도사’ 하승수 변호사
“정치인·정당·시민단체로는 안 된다”
하승수 변호사는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이다. 10년 전만 해도 그는 참여연대 같은 중앙 단위의 큰 시민단체 활동에 적극적이었지만, 아이를 기르고 동네 풀뿌리 활동에 참여하면서 “내 삶에 미치는 영향으로 보면, 기초자치단체가 중앙정부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말하는 ‘풀뿌리 전도사’가 됐다. 그는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의원 등을 뽑아만 놓는다고 다가 아니다. 지역을 바꾸려면 지속적으로 이들을 감시해야 하고, 유권자도 조직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투표뿐만 아니라 선거로 뽑힌 대표를 평소 감시·견제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시민들 사이에 생기는 것 같다.
=이유가 있다. 우선 선출된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교육감, 교육의원 등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예산 낭비나 난개발 같은 주민 피해로 돌아온다. 주민이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대표자를 잘 감시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선거 한 번 한다고 정치가 바뀌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유권자도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러려면 평소 유권자들이 조직돼 있어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여러 곳에서 유권자 운동이 벌어지지만, 진짜 유권자 운동은 6월3일부터다. 그래야 다음 지방선거 때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구상 중인 ‘6월2일 이후’는 무엇인가.
=시민사회 쪽에선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정치인·정당에 맡겨둬선 안 되겠다. 상층 명망가 중심의 시민단체로도 안 된다’는 공감대가 커졌다. 야권 연대만 해도 정당은 안 바뀌고, (연대를 압박할) 시민단체는 힘이 없다는 걸 보여주지 않았나. 새로운 주체, 즉 유권자 조직이 확대·지속돼야만 지역을 바꿀 수 있다. 한편에선 이번처럼 풀뿌리 후보가 직접 출마하는 지역 정치운동을 확대해야 한다는 고민도 하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지역 운동가들이 선거 뒤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논의할 계획이다.
-유권자 조직의 확대·지속이란 말이 좀 추상적인데.
=이번 선거에선 큰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투표 참여 권유나 ‘커피파티’ 같은 유권자 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급히 조직하다 보니 한계도 있었다. 지역·인터넷·세대 등 다양한 기반을 통해 사람들이 모여 지방정치를 감시하고, 사회와 정치를 바꾸기 위해 학습하는 조직이 활성화돼야 한다. 풀뿌리 후보를 뽑고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주민이 직접 관여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이건 기존 시민단체로는 안 된다. 유권자 참여를 중심에 둔 정치조직이 필요하다. 이런 조직이 있어야 그에 동감하는 주민이 가입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감시·참여 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감시·견제에서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점은 무엇인가.
=단체장이나 의원 등이 주민 처지에서 일하는 건지, 자기 좋자고 하는 건지, 누구 쪽에서 일하는지를 봐야 한다. 예산이든 정치자금이든 돈을 어떻게 쓰는지, (정치자금이라면) 그 돈은 어디서 나오는지도 살펴야 한다. 이권이나 이해관계가 관련되기 때문이다. 현안이 있을 때 주민 의견을 얼마나 들으려 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이런 활동은 정보공개 청구라는 좋은 방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시도해볼 수 있다. 감시하다 정 마음에 안 들 땐 대표자를 바꿀 수 있는 대안을 준비하고, 새로운 후보나 정책을 유권자 스스로 만들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의 건강한 ‘지역주의’ (한겨레21 2010.06.04 제813호, 강내영 일본희망제작소 선임연구원)
[연속기획- 바꿔! 지방자치 ⑩ 마지막회] 중앙정당과 ‘따로 또 같이’ 가면서 지역 문제를 이슈화하는 ‘지역정당’들…
한국 정당법은 지역정당 출현 자체를 막아
최근 일본 정치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지역정당’이다. 하시모토 도오루 오사카부 지사가 ‘오사카 유신회’라는 지역정당을 만들어 지난 5월23일 시의원 보궐 선거에서 압승하는 등 성공적으로 세몰이를 하고 있으며, 정권 교체에 성공한 민주당 중의원 출신의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 역시 ‘감세일본’이라는 신당을 만들어 기존 지방의원들을 규합하고 있다.
일본에서 지역정당은 사전적 의미로 ‘지역적인 주장을 근간으로 하며 생활협동조합과 노동조합 등 지역 생활단체의 활동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것이 많으나, 엄밀하게 규정하자면 정당이 아닌 정치단체’다. 일본에는 우리와 같은 ‘정당법’이 없다. 그 대신 ‘정당 조성법’ ‘정치자금 규정법’ ‘공직선거법’ 등에 관련 규정이 있는데, 현역 의원이 5명 이상이거나 선거에서 유효득표율 2% 이상을 획득한 정치단체를 정당이라고 한다. 어쨌거나 기존 정당 체제에 편입하지 못한 이런 지역정당이 일본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고 대중에게 어필하는 것은 기존 제도나 정치가 각 ‘지역’의 이해와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과제 해결에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하시모토 지사가 이끄는 오사카 유신회만 보더라도 ‘원(One) 오사카’(하나의 오사카)라는 모토를 내세워 오사카·사카이 시 등 11개 시를 특별구로 통·폐합해 이 지역을 성장시키고, 행정도 효율화하겠다는 목표를 강조한다. 가와무라 나고야 시장의 감세일본은 세금을 많이 낸다고 여기는 주민을 겨냥해 항구적으로 시민세를 10% 깎는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역정당이다. 주장의 옳고그름에 대한 판단은 각자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기존 전국정당이 수용하지 못한 지역주민의 요구를 이들이 정확히 반영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지역정당의 본격적인 확산을 알리는 신호탄은 1984년 7월 결성된 ‘가나가와 네트워크’였다. 가나가와 네트워크의 활동은 이미 한국에도 많이 알려졌다. 생협운동을 배경으로 한 이들의 활동은 ‘대리인 운동’(지역 주민이 이웃을 대리해 정치를 한다는 뜻)이라 불리며 시민사회와 정치를 묶는 하나의 모델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지역정치의 관심을 주민의 생활과 지역사회로 돌리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운동은 계속적으로 확대돼 현재는 전국에 12개 지역에서 지역별 네트워크가 활동하고 있다.
특히 자유민주당과 사회당의 양대 정당으로 고착화된 ‘55년 체제’가 1994년 붕괴한 뒤 지역정당 운동은 더욱 확대됐다. 중앙정치나 중앙정당이 구심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각 지역의 정치 세력이 기성 정당에서 독립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다양한 이해와 욕구를 가진 시민들이 네트워크 운동을 참고로 다양한 그룹과 정치단체를 만드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이 가운데서도 1993년 5월 시즈오카시 의회 일부 의원들의 시도가 눈에 띈다. 이들은 지방자치단체 개혁에 뜻을 둔 지방의원 모임인 ‘전국혁신의원회의’와 대리인 운동, ‘환경문제 지방의원 연맹’ 등을 설득해 ‘지방의원 정책연구회’(LOPAS·Local Party Study)를 결성했다. 지방의원들이 모임을 만들어 지역정당의 가능성과 지방주권, 지역정책 등을 연구한 것이다.
농민들이 농산물 수입 자유화에 반대해 전국을 12개 블록으로 나눠 농민연합을 출범시키고, 1995년 참의원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아쉽게도 의석 확보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가나가와 네트워크처럼 소비자운동이나 시민운동을 모체로 한 네트워크운동이 이 시기 매우 활성화돼 지방의회 등에 대거 진입했다. ‘녹색의 미래’라는 당명의 일본 녹색당은 기존 정당과 달리 본부와 지부의 관계가 독립적이고 대등해 네트워크형 정당으로 분류된다. 현재 17개의 지역정당이 ‘녹색의 미래’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하시모토 오사카부 지사가 만든 오사카 유신회나 가와무라 나고야 시장이 만든 감세일본과 같이 국회의원이나 단체장이 만든 지역정당이 특이한 점은 이들이 중앙정당과 ‘따로 또 같이’ 간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자신이 속한 중앙정당을 탈당해 새 정당을 만든 게 아니다. 중앙정치는 자신이 속한 중앙정당에 지향점을 두되, 지역정치에선 그 지역의 담론이나 그에 맞는 자신의 정책은 지역정당을 통해 펼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소 복잡하지만, 지역정치에서는 기존 중앙정당에 대한 소속감과 관계없이 자신의 담론에 동의하는 사람은 다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사카 유신회에는 하시모토 지사의 자민당 의원뿐만 아니라 민주당 소속 의원들도 참여하고 있다.
물론 이런 시도엔 단체장이 자신의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의회 권력마저 장악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지방의회가 중앙정치에 발목이 잡혀 지역 담론보다 중앙 담론에 집중하는 현실에서, 중앙정치와 지역정치를 구분하고 지역 이슈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처방은 순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방자치 발전과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선 지역정당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일본의 학자나 정치인도 공감하는 편이다. 한국도 비슷하다. 하지만 한국에선 정당법이 지역정당 출현을 원천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정당법상 정당은 △서울에 중앙당 사무소를 두고 △5개 이상의 시·도당을 가져야 하며 △각 시·도당은 당해 시·도당의 관할구역 안에 주소를 둔 1천 명 이상의 당원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의 지역정치는 중앙정치에 묶여 있는데다 지방분권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지방자치의 성숙도가 낮아, 지역정당이 출현한다 해도 곧바로 제 역할을 해내리라는 기대감이 떨어지는 편이다. 이번 6·2 지방선거 양상을 보더라도 지역 이슈는 북풍, 노풍 등 온갖 ‘바람’에 날려 온데간데없고, 중앙 이슈의 편가르기에 줄서기만 하는 형국이다.
하지만 갈수록 다양해지는 지역 과제를 해결하고, 나날이 성장하는 시민의 정치의식을 받아 안으려면 ‘거버넌스(민관 협치) 실현의 장’으로서 지역정당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다. 즉 지방의회가 지방정부를 제대로 견제·견인하지 못하고 중앙정치의 시녀 역할로 전락해버린 상황을 타파하려면, 지역주민이 지역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넓혀 지방의회 기능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은 주민이 지역사회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시도해야 할 시점이다.
[선택 6·2](1)시민은 돈 내고, 지자체는 막쓰고 (경향, 안홍욱·여수 | 나영석·대구 | 박태우 기자, 2010-05-02 18:21:58)
ㆍ지자체·의회 한통속… 소수의견 묵살, 혈세낭비 못막아
ㆍ감시 대신 예산 나눠먹기… ‘일단 일 벌이고 보자’ 후유증 심각
‘일당 지배 구조’의 지방자치에서 효율적인 살림살이는 기대하기 어렵다. 지방정부가 선심·과시·낭비성 사업으로 혈세를 써대도 ‘한통속’인 지방의회가 제대로 견제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지방재정은 거덜나고 있다.
독점된 지방의회에서 견제는 형식적일 수밖에 없다. 지방의회의 ‘지방정부 거수기’ 역할은 예·결산 처리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경실련이 2006년 7월1일부터 지난 1월 말까지 전국 16개 광역의회의 예·결산 처리 현황을 분석한 결과, 안건의 평균 48.61%가 원안대로 가결됐다. 지방정부가 제출한 예·결산안 2건 중 1건은 가져오는 대로 통과시켜 줬다는 얘기다. 의회의 자율성, 견제·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방증한다.
다른 입장, 소수 의견은 철저히 배격된다. 행정부의 예산안을 심도있게 검토하기는커녕 소수 정당의 문제제기는 묵살하고 일방적으로 가결시킨다. 경기도의 무상급식 예산 처리 과정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 일색’인 경기도의회는 지난 3월 말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자신의 공약이자 도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무상급식 예산안을 제출했지만 전액 삭감했다.
행정부 감시에 눈감는 대신 공공연한 예산 나눠먹기로 실리를 챙긴다. 그러니 지자체장의 예산권 휘두르기에 대한 제동 장치가 사실상 풀렸다. 당선만 되면 다시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구조여서 내실있는 예산 운용보다 일단 벌여놓고 보자는 식이다. 인천은 청라·송도 경제자유구역 개발 등 대규모 투자로 2008년 말 기준으로 가용재원이 6579억원 부족했다. 일반재원으로는 경상비용도 충당할 수 없는 상태다. 대구 북구는 25억4000만원을 들여 아파트형 임대공장 부지 3083㎡를 매입했지만 사업비 마련이 여의치 않자, 장기간 놀리다가 2008년 11월 사업을 중단했다. 사업비 확보 가능성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사업을 추진했다가 예산을 낭비한 사례다. 잘못된 법을 적용하거나 설치 시설물에 대한 사후관리 부실로 예산을 낭비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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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6·2]‘20조 흑자’ 1년새 ‘7조 적자’로 (경향, 강병한 기자, 2010-05-02 18:18:52)
ㆍ2009 지자체 재정수지…지방채 25조 ‘33% 급증’
지방자치단체가 재정난에 허덕이면서 빚더미에 올라앉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최근 민주당 이성남 의원에게 제출한 ‘지방자치단체 단체별 재정난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자체의 2009년 통합재정수지는 7조1000억원 적자로 2008년 20조2000억원 흑자에 비해 27조3000억원이나 감소했다. 이는 수입이 2008년 결산 대비 11조4000억원 증가했지만, 지출 및 순융자가 38조8000억원이나 늘어났기 때문이다. 통합재정수지는 모든 회계의 수입과 지출을 통틀어 파악하는 방식으로, ‘세입-지출 및 융자+순세계잉여금’으로 계산돼 지자체의 살림살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지수다.
지자체의 재정적 열악함은 특히 지방채 현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말 지자체의 지방채 총 채무잔액은 25조6000억원에 달했다. 2008년 말 19조2000억원에 비해 6조4000원(32.9%) 늘어난 것으로 최근 5년 동안 가장 큰 폭의 증가율이다. 2010년 지자체 평균 재정자립도는 52.2%로 2009년에 비해 1.4%포인트 낮아졌다. 지자체 평균 재정자립도는 2006~2009년 54.4%, 53.6%, 53.9%, 53.6%로 하락 추세다. 이에 따라 2010년 당초 예산 기준으로 전국 246개 지자체(16개 광역단체와 230개 기초단체) 중 지방세 수입으로 인건비를 조달하지 못하는 곳이 총 137개로 전체 지자체의 55.7%에 이르는 등 인건비도 해결하지 못하는 지자체가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 신미지 간사는 “중앙정부의 감세정책과 4대강 사업 등 무리한 재정운용으로 지방교부세 등이 축소되면서 지방재정이 악화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특정정당이 독점하는 지방의회가 지자체의 과도한 예산 편성이나 선심성 개발사업에 대한 견제 역할을 상실해 재정 문제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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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6·2]‘독점 권력’ 깨야 자치 산다 (경향, 안홍욱·강병한·광주 | 배명재 기자, 2010-05-02 18:30:57)
ㆍ특정 정당 지배로 예산 ‘멋대로’·부패 얼룩
6월2일 실시되는 제5회 지방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명박 정부 임기 한복판에서 치러지는 전국 단위의 선거여서 정권 ‘심판론’과 ‘안정론’이 표심의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특정 정당의 독점적 권력이 지배한 지난 4기 지방자치에 대한 평가의 장이다. 견제와 균형의 기능이 무너진 독점적 지방권력 구조의 변화 및 교체 여부가 풀뿌리 자치 일꾼을 뽑는 6·2 지방선거 본연의 초점이 될 전망이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지방의 ‘소통령’으로 불린다. 인사권, 인·허가권, 예산 편성·집행권 등 권한이 막강하다. 이를 견제해야 할 지방의회는 권한 미약이라는 한계뿐 아니라, 대다수 지역이 특정 정당에 독점돼 있으면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주민의 의사가 지방자치에 투영되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지난 3월 말 현재 전국 16개 시·도의회 중 12개 의회에서 특정 정당이 의회 구성의 80% 이상을 점유하는 ‘권력 독점’ 상태다. 서울시의회는 전체 99명 중 93명(93.9%), 인천시의회는 33명 중 32명(96.9%), 경기도의회는 116명 중 97명(83.5%)이 한나라당 소속이어서 수도권의 광역의회는 사실상 ‘한나라당 독재’ 구조다. ‘영남 한나라당’과 ‘호남 민주당’의 독점 구조는 1995년 지방자치가 시작된 이래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지방권력 독점은 다각적인 문제를 낳고 있다. 우선 예산의 편성→심사→집행→결산이라는 절차는 요식행위로 전락하고 있다. 혈세를 낭비해도 서로 눈감아주기에 급급하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다.
견제가 사라진 지방자치는 부패·비리로 얼룩졌다. 2006년 제4회 지방선거 당선자 중 자치단체장 98명(지난해 9월 기준)이 검찰에 기소됐고, 광역의원 92명과 기초의원 175명 등 지방의원 267명(지난해 말 기준)이 사법처리됐다. 자치단체장은 230명 중 42.6%, 광역의원 733명 중 12.6%, 기초의원 2888명 중 6.1%에 달하는 수치다.
특히 독점적 지방의회는 주민들의 의사 반영 통로 구실을 못하고 있다. ‘그들만의 결정’으로 가능해 주민들의 의견이 의회에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소수 정당은 법안을 발의하기도 쉽지 않지만, 상정되어도 뭉개지는 것이 다반사다. ‘지방선거 D-30’. 풀뿌리 자치를 썩게 만들지, 복원시킬지는 유권자의 투표에 의해 좌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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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6·2](2) 지역발전이란 허울에 걸림돌은 없다 (경향, 강병한·부산 | 권기정·대전 | 윤희일 기자, 2010-05-03 18:14:14)
ㆍ단체장들 “공약사업 밀어붙여라” 억지·편법 난무
ㆍ타당성 안중에도 없어 산업단지 등 우후죽순
ㆍ의회가 난개발 앞장도 재정부담 결국 주민몫
# 사례 1 = 부산시는 2008년 해운대 해수욕장의 동쪽 끝자락에 118층의 ‘해운대 관광리조트’ 건설 계획을 밝혔다. 이곳은 미군부대 이전 후 관광시설을 유치하기 위해 주민까지 이주시킨 부산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이다. 부산시는 이어 지난해 말 주민공청회를 생략하고 도시계획심의위를 열어 아파트 건축이 금지된 이곳에 주거시설을 45%까지 지을수 있도록 하는 용도변경안을 30분 만에 기습처리했다. 60~100평의 호화아파트 995가구의 신축이 허용되면서 특혜의혹뿐만 아니라 교통문제, 백사장 훼손 등 난개발이 우려되고 있다. 특혜성 개발사업을 견제해야 할 시의회는 아무런 기능도 하지 않고 있다.
# 사례 2 = 대구시 의원들은 지난 2월 신천과 금호강, 도심공원 주변 2종 일반주거지역의 7층 고도제한 규정을 해제하는 개정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건축물 높이가 7층으로 제한됐던 강변과 공원 주변 등에 내년부터 최고 18층의 건물이 들어설 수 있게 됐다. 원래 이 지역은 시가지 경관보전과 공기흐름 확보 등을 위해 층수가 제한된 지역이었다. 대구시의회는 “2종 주거지역 주민들이 재산권행사 제한 등을 들어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사항”이라며 환경파괴를 우려하는 시민단체와 학계의 여론수렴을 거치지 않고 일방처리했다.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의 일체화, 지방의회의 일당 독점체제로 인해 지역발전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난개발에는 걸림돌이 전혀 없다. 지자체는 단체장 공약이라는 점을 내세워 타당성이 검증되지 않은 지역개발 사업을 밀어붙인다. 당연히 사업진행 과정은 억지와 편법으로 점철되는 경우가 많다. 부산시의 경우 지난해 말 111층의 센텀시티 솔로몬타워 건축계획을 시 간부들만 참석시킨 가운데 크리스마스를 틈타 처리했다. 이 사업을 심의해온 산업입지심의위의 민간위원들이 반대하자, 부산시의 실국장만으로 구성된 시정조정위라는 편법을 통해 기습처리한 것이다.
지역개발 사업이 처음부터 무리하게 진행되다보니 투자심사 등 사업타당성 검토가 부실해지기 마련이다. 이로 인해 사업이 중도에 중단되면서 그 피해가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전가되는 사례가 많다. 충남 아산시는 2007년 당초 190억원 규모의 문예회관 건립을 투자심사도 받지 않고 사업비 규모를 1000억원으로 확대하는 등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했다. 결국 부지매입 지연 및 막대한 재정부담으로 사업착수 여부가 불투명졌고 예산이 낭비됐다. 인천시 인천도시개발공사가 2006년 착공한 송도국제도시의 임대단지인 ‘웰카운티 3차’는 전체 515가구 중 외국인 전용인 120가구에 단 1가구만 청약이 들어왔다.
특히 현 정부 들어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산업단지를 우후죽순처럼 조성하면서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시·도지사가 주관하는 전국 산업단지 수는 2006년 232곳에서 2009년 368곳으로 집계돼 3년 만에 158%나 급증했다. 개발면적 역시 같은 기간 2억6580만㎡에서 4억2246만1000㎡로 늘어났다. 지자체장들이 기업의 투자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비효율적인 개발을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지자체의 마구잡이 개발을 견제해야 할 지방의회조차 한통속이라는 점이다. 특정 정당이 독점하는 지방정부와 의회의 결탁은 개발사업에 대한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하게 만든다. 이에 따라 지역개발 사업에 대한 비판적 감시기능이 상실되면서 부산시 해운대리조트의 경우 민주노동당 의원 혼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사례 1). 심지어 시의회가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난개발에 앞장서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사례 2).
지자체의 무분별한 개발사업 추진과 지방의회의 무견제가 결합되면서 지역개발을 주로 담당하는 도시개발공사의 채무는 급증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16개 도시개발공사의 총부채는 2006년 15조204억원에서 2007년 20조2044억원, 2008년 24조7827억원으로 증가 추세다. 지방 공기업이 불필요한 개발사업을 계속 벌일 경우 재무건전성 악화는 물론 지자체의 재정상 부담을 초래하면서 결국 주민세금으로 전가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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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6·2]빚내서 호화 청사 짓고 복지예산 줄였다 (경향, 안홍욱 기자, 2010-05-03 18:12:27)
ㆍ민선 4기 지자체장 ‘유행병’
ㆍ재임기간 치적 쌓기 경쟁
민선 4기 지방자치단체에서 청사 건립은 유행처럼 번졌다. 너도나도 필요 이상의 ‘과대 청사’, 겉치레에 치중한 ‘호화 청사’ 신축 경쟁에 뛰어들었다. 빚을 내 청사를 지은 부담은 지역주민에게 전가되고 지방재정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2006년 이후부터 최근까지 지자체 10여곳이 청사를 신축했다. 서울 용산구청은 2007년 7월 신청사 건립을 착공해 지난 3월31일 완공했다. 지하 5층·지상 10층, 연면적 5만9177㎡ 규모로 1522억원이 투입됐다. 그러나 용산구청은 준공식도 개청식도 생략했다. 호화 청사에 대한 따가운 시선 때문이다. 서울 25개 구청 중 재정자립도가 바닥권인 금천구청도 2008년 1152억원을 들여 청사를 신축했다.
호화 청사의 대표적 사례는 2007년 11월 신청사 개청식을 개최한 성남시청이다. 역대 지자체 신청사 중 가장 많은 총 3222억원을 쏟아부었다. 청사를 신축하는 데는 지자체의 재정 상황과는 관계없었다. 인천 옹진군청은 인구가 1만5000명, 재정자립도 20.3%에 불과하지만 2006년 연간 예산의 3분의 1가량인 338억원을 청사를 짓는 데 썼다.
지자체가 신청사를 ‘빠르고 크게’ 올리는 데는 지자체장이 재임 기간 치적을 쌓겠다는 의도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임기 내 대형공사’는 예산 집행의 명분이 되는 데다 주민들에게 눈에 보이는 ‘성과’를 보여주면 다음 선거에서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지방의회도 단체장과 같은 정당 소속이어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일뿐 별 다른 견제도 없다.
호화 청사 건립 대가는 주민에게 돌아간다. 청사 신축 비용은 대부분 국비와 지방비로 구성되는데, 지방비는 지방채 발행으로 충당하는 게 일반적이어서 지역주민이 부채 상환을 떠안게 되는 것이다. 특히 서민들의 삶은 더 힘들어진다. 공사비 충당을 위해 대부분 복지 예산 지출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용산구는 서울 구청 중 재정자립도가 상위 5위 내지만 올해 사회복지 예산을 지난해보다 14억원가량 줄여 하위 5위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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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6·2](3) 지방권력 독점은 부패의 화수분 (경향, 안홍욱·안성 | 최인진·대구 | 박태우 기자, 2010-05-04 18:18:00)
ㆍ무소불위 단체장, 인허가로 챙기고 인사땐 ‘자리 장사’
ㆍ감사원도 “시장·군수는 제왕”… 지방의원은 잇속 챙기기 급급
ㆍ토착권력 형성해 ‘검은 공생’
지자체장은 ‘제왕’이라는 말마따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다. 강력한 행정력의 기반이지만, 그만큼 부패 유발 환경에 적나라하게 노출돼 있다. 그러나 특정 정당이 독점하고 있는 지방의회는 ‘한 식구’인 단체장에 대한 견제 기능을 잃고 있다. 오히려 단체장과 공생하면서 기득권을 공유한다. ‘일당 지배’ 구조 하에 독선·부패·비리는 확대되는 양상이다.
가장 흔한 비리 유형은 인·허가 관련 뇌물 수수다. 김종규 전 창녕군수는 2004년 5월 건설업체로부터 1500만원을 받은 게 탄로나 2006년 7월 군수직을 상실했다. 보궐선거로 바통을 이어받은 하종근 군수 역시 골재채취업자로부터 4억5000만원을 받았다가 1년여 만인 2007년 10월 도중 하차했다. 김진억 전 임실군수(재선)는 2006년 상수도 확장공사와 관련해 업자로부터 1억4000만원을 챙겼다가 낙마했다. 김효겸 전 서울 관악구청장은 친인척과 고교 동창을 공직에 앉히고, 직원에게서 돈을 받고 자리를 파는 등 인사 전횡을 일삼다가 도중하차했다.
상당한 선거비용을 ‘투자’해 지자체장이 된 만큼 이를 회수하려다 보니 업자들의 ‘검은 손’을 뿌리치기 힘들다. 선거자금을 ‘지원’받았다가 이권 청탁으로 되갚아야 하는 ‘부패의 사슬’에 얽히기도 한다. 아예 ‘출마=당선’인 지역에선 공천을 따내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당선되면 이권을 행사할 방법이 많아 공천 매수에 나서는 것이다. 김희문 전 봉화군수(한나라당)는 공천사례금을 건넨 게 적발돼 당선 20일 만에 수감됐고, 이듬해 1월 군수직을 잃었다. 지난달 16일 한나라당 소속 이기수 여주군수가 한나라당 지역구 국회의원인 이범관 의원에게 공천헌금 2억원을 건네려다 현행범으로 붙잡힌 ‘코미디’도 마찬가지다.
지방의회도 기초단체장의 부패·비리를 감시하기보다는 잇속 챙기기에 적극 동참한다. 이경호 대구시의원은 2008년 2월 관급공사 청탁을 미끼로 건설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아오다가 지난 3월 구속됐다. 여주군의회 이명환 의장도 골프장업체로부터 인·허가와 관련해 1억5000만원을 수뢰했다가 지난달 6일 구속됐다.
조례 제·개정을 통해 지방의원들이 이권에 개입하기도 한다.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가 2006년 11월 당시 전국 11개 시·도 광역의원 534명의 겸직 현황을 조사한 결과 56.4%인 301명이 해당됐다. 의정활동과 직업상 영리행위의 이해가 충돌할 가능성이 높아 비리가 싹틀 수도 있는 것이다.
지방정부·지방의회는 혈연·지연·학연을 중시하는 지역사회의 특성상, 서로 얽히고설켜 ‘토착 권력’을 형성한다. 김영호 국장은 “지자체장은 관내를 손쉽게 장악하고 있어 비리혐의 조사 및 적발에 어려움이 많다”고 전했다. 4일 현재 2006년 당선된 기초단체장 230명 중 47.8%인 110명이 기소됐지만, ‘숨어있는 비리자’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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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6·2]‘내부 감시’ 권한도 의지도 없다 (경향, 강병한 기자, 2010-05-04 18:17:05)
ㆍ감사기관이 단체장 직속
ㆍ의회 감사도 요식행위
지방권력의 부패와 비리를 견제하는 내부 통제 장치는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일단 지방자치단체는 자체 감사기관을 통해 감사를 벌이지만 요식 행위에 그치는 경우가 태반이다. 감사기관이 단체장 직속이고 인사권은 단체장이 행사한다. 감사관이 자신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단체장의 비리를 들추어야 하는 상황이다. 감사관의 인사 및 직무상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고 있어 감사의 실효성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더구나 감사관은 대부분 중복 업무를 하고 있어 비리 적발에 소홀한 경우가 많다. 2006년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당시 전국 234개 기초자치단체 중 감사업무를 기획·공보 등 다른 업무와 함께 수행하고 있는 곳이 184곳이나 됐다.
지방의회의 감시 역시 수박 겉핥기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지방의회는 국회 국정감사처럼 1년에 한차례 지자체에 대한 행정사무감사를 실시한다. 기간은 법적으로 10일 이내지만, 주말을 포함해 산정하기 때문에 실제 5~6일에 불과하다. 특히 지방의회는 일당 독점화된 경우가 많아 의원들이 스스로 기간을 줄이자고 나서는 실정이다. 그렇다보니 하루에 3~4개 기관을 감사하면서 부실감사로 이어진다.
물론 지방의회는 지자체의 예·결산 승인권, 주요 행정집행 의결권 등도 갖고 있다. 그러나 지방의회의 재정·인력이 열악한 데다 의원의 전문성도 떨어져 지자체를 통제할 능력이 떨어진다. 더구나 지방의원은 공천 때문에 단체장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고 지역구 예산배정이나 이권개입에서 단체장과 협력해야 하는 처지라서 견제 기능은 근본적 한계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지방권력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독립적인 감사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단체장이 독점하는 공무원 인사권에 대해 지방의회가 임명동의권을 갖도록 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충북참여연대 송재봉 사무처장은 “우리 지방자치는 ‘강(强)시장-약(弱)의회’ 제도로 제도적 한계가 있는 데다 지방의회 역시 재정·인사권 종속성, 일당 독점화로 견제기능이 상실됐다”며 “지방의회 사무처 인사권 독립, 지자체 주요 인사에 대한 청문회 등도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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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6·2](4) 거수기 지방의회, 입법은 없다 (경향, 안홍욱·문주영·전주 | 박용근 기자, 2010-05-05 18:27:52)
ㆍ같은 당 법안 ‘무조건 찬성’… 소수당은 상정도 어려워
ㆍ다수당이 법안 좌지우지… 견제·감시기능 상실
ㆍ소수당 발의안 부결 일쑤, 통과돼도 지자체 ‘거부’
# 사례 1 = 오은미 전북도의회 의원(45·여·민주노동당)은 지난해 9월 전북도청 로비에서 21일간 단식농성을 했다. 오 의원의 발의로 2008년 10월 도의회 본회의를 통과한 ‘농업소득보전 지원조례’에 대해 전북도청이 집행을 거부한 데 대한 항의였다. 이 조례는 쌀에만 적용되는 직불금 지급 대상을 밭작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전국 광역의회 중 최초였다. 밭작물은 가격 변동이 심해 농가소득의 불안정 요인이었고, 그래서 농민들의 근심이 컸다. 오 의원이 1년 동안 농민 5400여명의 서명을 받고 민주당 의원들을 설득해 만든 결실이었다. 하지만 전북도청은 예산 미확보 등을 이유로 이 조례를 시행하지 않았다. 조례에 찬성했던 민주당 의원들은 김완주 도지사(민주당)가 반대하자, 침묵했다.
# 사례 2 = 한나라당이 독점한 경기도의회는 지난 3월16일 ‘교섭단체 및 위원회 구성·운영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6·2 지방선거로 출범하는 제8대 경기도의회 교섭단체 의원 정수가 현재 10명 이상에서 15명 이상으로 강화된다. 8대 의회의 의원정수가 119명에서 132명으로 13명이 늘어나기 때문이라는 게 배경이라지만, 진입 장벽을 높여 ‘소수 정치세력’을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시도라는 비판을 샀다.
지난 4년간 지방의회는 ‘풀뿌리 민주주의’ 구현과 거리가 멀었다. 특정 정당의 독식으로 사당화된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단체장의 ‘거수기’ 역할로 전락했다. 소수를 용납하지 않는 불관용·비민주적 의회 운영도 극심했다.
지난 4년간 16개 시·도 광역의원들의 입법 활동은 초라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2006년 7월부터 지난 1월까지 3년6개월간 광역의회의 조례 발의 및 처리 현황을 분석한 결과 광역의원들은 총 1618건의 조례안을 발의했다. 광역의원 1인당 평균 2.07건이다. 경북도의회(0.83건)와 부산시의회(0.91건)는 1인당 발의 건수가 1건도 안됐다. 그러면서 광역의원들은 지난해에만 의정비로 평균 5302만원을 받았다. ‘고비용 저효율’이다.
특히 광역단체장이 제출한 조례안의 원안가결률이 평균 70.0%에 달했다. 단체장이 발의한 조례 10개 중 7개는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통과시켜줬다는 얘기다. 의원 발의 조례안의 평균 원안가결률 62.9%보다 7.1%포인트 높다. 지방정부에 대한 지방의회의 견제·감시 기능이 약화되고, 거수기 역할에 머물렀음을 보여준다. 특정 정당이 지방의회를 독점하고, 단체장과도 소속 정당이 일치할 경우 이 같은 양상이 도드라졌다. 원안가결률 ‘상위 3곳’인 울산시의회(90.4%), 부산시의회(86.1%), 광주시의회(85.6%)가 대표적이다. 광역의회 중 독점도가 58.3%(한나라당)로 가장 낮고 단체장과도 소속이 다른 제주도의회의 단체장 조례 원안가결률이 36.7% 수준인 것과 대조된다.
독점된 지방의회에서 소수 정당은 조례 하나 제대로 하기 어렵다. 조례안이 상정되기도 어렵지만, 지난해 마산시의회가 민주노동당 의원이 제출한 ‘작은도서관 설립 조례’를 부결시키는 등 봉쇄되는 것도 예사다.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조례도 단체장이 반대하면 뒤집기 일쑤다.(사례 1)
서울시 관악구의회는 2008년 7월18일 민주노동당 이동영 의원이 발의한 ‘관악구 공공급식 식재료 사용 시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사용금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하지만 관악구청이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히자, 구의회 다수 정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은 8월4일 일정에도 없던 임시회를 기습적으로 열어 표결로 결의안을 철회했다.
지방의회 운영은 독점 정당이 하고 싶은 대로 이뤄진다. 한나라당이 다수를 점한 경남 합천군의회는 2007년 2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 명칭 사용을 민주노동당 박현주 군의원이 비판하자, 의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의원 제명을 추진하기도 했다. 교섭단체 구성의 문턱을 높여 소수 정당을 배제하는 시도도 있다.(사례 2)
지방의회를 이끌 의장은 지도력이나 자질이 중요한 덕목이 아니다. 지방의회의 의장단 선출은 입후보나 정견 발표 과정 없이 이른바 ‘교황선출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렇다 보니, ‘뒷거래’가 오가는 등 혼탁 양상이다. 한나라당 김귀환 서울시의원은 2008년 6월 동료 의원 28명에게 100만~200만원씩 3000만원을 뿌려 의장에 당선됐다. 그러나 그는 의사봉 한 번 잡아보지도 못하고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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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6·2]제도 미비·참여 저조로 겉도는 ‘주민참여’ (경향, 강병한 기자, 2010-05-05 18:26:49)
ㆍ감사청구·소환·투표 등 제한은 많고 가결률 낮아
지방자치 실현을 위해 도입된 각종 주민참여제도가 일부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주민참여제도는 2000년 주민발의와 주민감사청구 시행을 시작으로 주민투표(2004년), 주민소송(2006년), 주민소환(2007년)에 이르까지 꾸준히 제도적 틀을 갖춰왔다. 이 과정에서 지방권력을 견제하는 성과를 일부 내면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핵심 제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8년에는 서울 강북구의회가 기습인상한 의정비 조례안에 대해 주민 7000여명이 주민발의를 통해 의정비 인하 조례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또한 서울 성동구와 양천구 등 5개 구의회의 의정비 인상에 대해 주민들이 주민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서울 서대문구청이 규정을 무시한 채 추진한 재개발사업이 주민 208명의 주민감사청구로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주민참여제도가 제도적 미비점과 주민 참여 부족으로 겉돌면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주민발의의 경우 2005년 41건을 기점으로 2006년 8건, 2007년 6건, 2008년 6건으로 청구건수가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주민발의안에 대한 지방의회의 원안가결률이 저조하자 주민들의 관심이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주민투표제는 도입된 지 6년이 됐지만 사문화된 상태다. 실시된 3건 모두 정부 수요로 진행됐고, 주민청구로 이루어진 사례는 전무하다. 주민투표 발의 과정에서 필요한 투표권자 5% 서명요건이 발목을 잡고 있다.
주민소환제 역시 투표까지 간 사례는 2건에 불과하다. 더구나 유권자 33%가 투표해야 한다는 제한조항에 걸려 개표를 하지 못하면서 ‘주민투표 무용론’등 정치적 논란만 일었다. 이 외에도 주민이 예산편성·지출에 직접 참여하는 참여예산제는 지방정부와 의회가 도입을 꺼리고 일부 도입된 경우도 형식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회경제국장은 “지방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핵심적 과제가 주민참여 활성화”라며 “주민투표 및 주민소환제 투표율 상한제 폐지, 정부기관의 정보비공개 결정을 심의하는 독립적인 행정심판기구 설치 등 시민들의 실질적인 참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주민참여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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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6·2](5) “주민참여 활성화·정당공천 없애야 독점구조 깨져” (경향, 최우규·김진우 기자, 2010-05-06 18:20:37)
ㆍ어떻게 할 것인가… 전문가 좌담
6·2 지방선거가 이제 30일이 채 남지 않았다. 경향신문은 ‘지방권력 독점’의 문제로 점철된 민선 4기 지방자치를 평가하는 기획 시리즈를 마감하며, 지방자치의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지난 4일 경향신문 인터뷰실에서 진행된 좌담회에는 소순창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경실련 지방자치위원회), 하승수 정보공개센터 소장(변호사),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이호 소장 등 3명이 참여했다.
-지방선거는 왜 중요한가.
하승수 소장(이하 하승수) = “실제 주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정책이나 행정과 관련해 지방자치가 큰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친환경 무상급식이든 청소년 시설이든 결국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에 큰 결정 권한이 있다. 자기가 사는 지역의 변화에 관해선 국회의원보다 영향이 더 크다.”
소순창 교수(이하 소순창) = “중앙에서 결정된 것이 지방에선 단체장 중심으로 재원이 집행된다. 지방선거는 지역 주민과 매우 밀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집행하는 대표들을 뽑는 선거여서 중요하다.”
이호 소장(이하 이호) = “지방선거는 생활과 직결되는 의제 결정권자를 뽑는다는 점에서 다른 선거와 차이가 있다.”
-1995년부터 본격 시작된 지방자치의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가.
소순창 = “중앙과 지방 관계에서 지역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이 중앙정치에 수용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은 성과다. 과거 관치 행정에서는 그것이 부족했다. 그러나 지역문제를 자율적으로 처리할 권한이나 재정이 부족하다.”
이호 = “주민들이 자신의 문제가 정치적 이슈로 의제화될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물론 뒷받침하는 제도가 미흡하지만 많이 확대됐다.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돼 있다는 점이 아직은 한계다. 특히 공천권 행사를 보면 중앙당과 힘을 가지고 있는 국회의원의 논리나 당리당략에 의해 판단할 여지여서 주민자치에 정면 위배된다.”
-민선 4기 지방권력은 대부분 특정 정당이 단체장과 지방의회를 독차지하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 것인가.
하승수 = “호남에서 시민운동 활동가들은 ‘민주당이 서울에서 생활·민생을 강조하는데 호남에 오면 한나라당과 똑같다. 개발사업하고 지역 토호세력과 유착한다’고 말한다. 이런 일당의 독식 구조에서는 견제와 균형이 상실되고 부패가 일어나기 쉽다. 고여있는 물처럼 정치·정책적 경쟁이 없다보니 기득권을 가진 세력에게 이로운 정책들이 중심이 되고, 결국 그 피해는 주민들에게 다 돌아가는 구조다. 영남도 마찬가지다. 대구에 한나라당이 아닌 야당 지방의원이 기초·광역을 합해서 5명만 있는 상황에서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소순창 = “지자체는 단체장 중심 집행기관과 의회 중심 의결기관이 견제하고 균형하는 시스템인데 1당 독재 때문에 심각하게 견제·균형의 원리가 깨지고 있다. 내가 만난 지방의원은 지역을 위해 정책을 만들고 조례 제·개정이 꼭 필요한데 특정 정당이 독식한 상태에서 그걸 얘기하면 다른 의원들이 왕따시키고 공천을 못받는 게 당연하니까 못한다더라.”
-지방권력 독점을 막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 있을 수 있는가.
소순창 = “일시적이나마 기초단체에 대해선 정당공천을 없애야 한다. 현실적인 문제다. 선거 과정을 보면 지방의원 공천하는 데는 후보자들의 의지·소신, 정책방향이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돈이다. 기초의회는 최소한 대선거구제를 하면 소수의 지지를 받는 후보들도 지방의회에 진출할 수 있어서 지방의회의 다양성이 매우 높아질 것이다. 지금처럼 소선거구제나 중선거구제에서는 특정 정당, 거대 양당이 대부분 독식할 수밖에 없다. 깰 수 없는 블록이다.”
이호 = “근본적으로 전근대적인 정당 구조, 의사결정 구조가 문제다. 지역의 대표자들이 주민들의 대표라는 성격보다는 정당 논리에 예속돼 있는 것이다. 선거제도도 기성 정당에 유리하게 돼 있다. 하물며 후보자 기호 선정도 중앙 중심적이다.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공약을 보고 실제로 실천할 수 있는지를 따져야 하는데, 국회 의석수로 기호가 정해지니까 볼 필요가 없다. 사소한 문제일 수 있지만 후보자 기호 부여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하승수 = “외국의 경우, 정당이 지방자치까지 독점하는 구조는 찾기 힘들다. 예를 들어, 독일은 지방선거에만 후보를 내서 공천하고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유권자 단체, 즉 로컬 파티(지역 정당)가 인정된다. 일본은 지자체 선거에서 정당의 영향력이 약해 어느 한 정당이 그 지역을 완전히 지배하기는 힘들다. 로컬 파티를 인정하면 충분히 지역 내에서 정책으로 경쟁할 수 있고 지역주의로 싸우는 중앙정치구도를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이 반대하고 있다.”
-지방자치가 풀뿌리 자치를 확고하기 위해서 보완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하승수 = “큰 틀의 제도가 바뀌지 않더라도 운영 방식만 조금 바꿔도 해볼 수 있는 게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참여다. 주민들이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을 때 다양한 모범사례가 나올 수 있다. 단체장과 지방의회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특히 무관심한 청소년들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청소년 의회를 만들어 지역에서 자신들과 관련된 문제들을 제안하고 시장이 직접 청취해서 반영하게 하는데 우리도 충분히 해볼 수 있는 것이다.”
소순창 = “국가 균형발전을 이야기하는데, 이를 위해선 지방분권을 해야 한다. 지방분권으로 해야만 균형발전이 이뤄지지, 의도적인 균형발전을 통해 하려면 안된다. 지방분권하려면 거시적 측면에서 시·도를 통합해 중앙정부의 재정, 기능, 인력, 업무를 대폭 이양해야 단체장이 지역의 플랜을 가지고 해나갈 수 있다. 궁극적으로 지방자치를 활성화하려면 우리 지역은 우리가 먹여 살릴 수밖에 없다. 복지, 교육, 경제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이호 = “정책결정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여와 권한은 수레바퀴처럼 밀접하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공식적 의제로 설정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보 공개가 더욱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정보가 공개되고 공론의 장이 만들어져야 시민들은 자기 의견이 묵살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주민의 지방자치 참여를 보장하는 장치로 주민투표, 주민감사청구, 주민소송, 주민소송제 등이 있다.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가.
이호 = “현장의 시민운동가들이 시민 참여를 조직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참여해봤자 권한을 안 주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주민 발의를 해도 지방의회를 통과해야 한다. 지방의회에서 폐기한다면 권한이 주어진 거라고 보기 힘들다. 주민소환도 힘들게 요건을 채웠지만 투표율이 30% 미만이면 개표 자체를 안 한다.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소순창 = “지방자치에서 직접민주주의 특성을 강화하기 위해 주민투표, 주민발의, 소환제도 등이 도입됐는데 요건이 너무 엄격하다. 서울시가 주민투표를 하려면 (유권자의 5% 이상인) 38만명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대의민주주의 대안체로 나온 것들이 지방의회, 단체장이나 중앙정부의 의지에 의해 재단될 수 있는 부분들을 과감히 개혁해야 지역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6월 지방선거로 탄생할 ‘5기 민선 지방자치’에서 구현되어야 할 가치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호 = “중앙정치 논리가 아니라 시민 참여 활성화가 중요하게 추구할 가치다. 나는 당선해서 뭐 해주겠다는 후보를 찍지 말자고 한다. 시민들과 함께 하겠다는 자세가 지방자치를 발전시킨다. 단체장은 대표자가 아니라 대리인으로 되어야 한다. 대리인은 자기를 뽑아 준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고 일을 할 수 없다.”
하승수 = “지방자치 측면에서 상당한 위기다. 혁신이 중요한 화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체장이 카리스마로 혁신하는 게 아니라 지자체장이나 의회가 권한을 주민에게 주는 혁신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 부패, 예산낭비, 지방재정 문제 등을 해결할 실마리가 나올 것이다.”
‘개발보다 복지’ 보편적 권리찾기 초점 (경향, 최우규 기자, 2010-05-12 18:19:06)
ㆍ7대 정책과제 무엇인가
ㆍ일자리 ‘숫자’보다 ‘질’… 서민 안정적 주거 보장
ㆍ행정 투명성·참여 확대… 풀뿌리 자치 제고 요구
2010유권자희망연대와 경향신문이 공동 선정한 정책 과제는 일자리, 복지, 안전, 교육, 주거 등 7개 부문이다. 지방선거 4기까지 각 정당과 후보의 공약에서 빠지지 않은 부문이지만, 도로·청사 같은 건물과 구조물 등 개발 공약들에 비해 순위가 밀렸다. 이 때문에 생색내기식으로 임기 초반에 반짝 시행됐다가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들 과제야말로 주민 삶의 질을 제고하는 실질적 정책들이다. 이들 과제가 실현되려면 ‘개발보다 복지’라는 유권자와 후보 공통의 인식이 필요하다.
◇ 주민으로서 삶 보장 = 일자리는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각 정당과 후보들이 이번 지방선거를 맞아 일자리 10만~100만개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하는 이유다. 일자리 정책은 고용 숫자로만 점수를 매길 수는 없다. 표를 얻기 위해 취로사업, 희망근로사업, 단기 기능직 등 한시적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에 그칠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질 좋은 일자리’ 마련이 주요 정책 과제로 제시됐다.
지자체에서는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단계적 축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지원을 할 수 있다. 복지·보건·보육·교육 등 공공성이 높은 사회 서비스를 통해 공공 서비스형 일자리로 확충하는 것이 일자리 관련 정책 과제의 앞줄에 놓였다. 점차 심각해지는 청년실업을 완화하기 위해 지방 공기업 및 지방 공공부문에서 청년 의무 고용 할당제도 도입도 포함됐다. 구조조정의 1순위, 임신·출산·육아로 인한 해고 등 여성 일자리는 늘 위협받기 때문에 여성의 일자리 안정 공약도 과제다.
복지는 ‘없는 이’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주민의 보편적 권리다. 공공보육 시설을 늘리고 민간 보육시설에서도 공공성을 확대해야 한다. 아동수당제 도입, 신생아 및 아동에 대한 예방접종 무료화 같은 필수 보건 의료의 제공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재정에서 건설, 토목 예산을 축소하고 복지예산을 늘리는 것이 정책 과제로 제안됐다.
지난해 8살 소녀를 성폭행한 조두순 사건, 여성을 연쇄살해한 강호순 사건은 아동과 여성에 현존하는 위협을 보여준다. 지자체가 이들 삶의 안전판이 돼야 한다. 여성폭력과 인권 향상을 위한 조례를 제정해 행정력의 개입을 강제해야 한다. 초등학생 등·하교 도우미는 봉사가 아니라 일자리로 마련돼야 한다는 점도 세부 정책 과제로 선정됐다.
공교육 황폐화와 사교육 폐해는 학생뿐 아니라 가정을 위협한다. 초·중생에게 학습준비물을, 중·고생에게는 교복 지원이 요구됐다. 등록금 1000만원 시대 대학생들에게는 시중보다 싼 이자로 학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조례를 제정하고, 자립형 사립고 형태의 공공성을 대폭 키운 공립형 혁신학교 확대, 반값 기숙사 신축 등도 적극 추진할 과제다.
◇ 삶의 질 제고 = 지금까지 주거 공약은 재산 증식 등 ‘투기’ 측면에 호소해왔다. 하지만 비용을 댈 수 없는 원주민은 쫓겨나고, 세입자도 밀려나야 했다. 이에 유권자희망연대는 주민이 안정되게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주거 공약을 요구한다. 뉴타운 재개발에서 조합원에게 추가 분담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분담금 인상 계획 등에도 주민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승인토록 촉구하고 있다. 서민을 위한 안정적 주거를 위해 공공임대 주택과, 전·월세 세입자 지원 확대도 제시했다.
환경 파괴와 그로 인한 고통의 해결은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환경을 산업이 아니라 삶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공약이 필요한 이유다. 우선 에너지 효율성 제고와 서민주거 지원을 위한 에너지 절약형 주택사업 확대가 정책 과제로 제시됐다. 공기·물 오염 등과 도시형 거주로 인해 발생하는 아토피, 천식 등 환경성 질환 예방기반을 강화하고, 보건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정책 과제에 포함됐다. 이를 위해 화학물질의 생산·유통·소비 등 정보 투명화도 과제로 내놓았다.
◇ 바른 자치 기반 마련 = 지방자치의 연륜은 쌓여가고 있으나, 주민의 인식은 악화하고 있다.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비리·비위가 끊이지 않아서다. 이권 청탁과 뇌물 수수, 인사 비리, 나눠먹기, 외유성 해외 연수, 호화청사 건립 등 예산 낭비 같은 부정적 그늘이 드리워 있다. 이에 유권자희망연대는 행정 혁신을 통한 ‘바른 자치’ 구현을 주요 과제로 선정했다.
핵심은 투명성과 참여다. 도시계획위원회 회의 및 결정, 공무원과 산하단체·기관 인사, 지자체 주요 개발계획의 결정과 승인 등 주요 정보를 스스로 문서와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자발적 정보공개 조례를 제정할 것을 제안했다. 청탁·뇌물수수, 이권개입과 직결되는 인사비리의 악순환도 끊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인사청문회 도입과 다면평가 등을 통해 인사 비리 근절과 공정한 승진제도의 확립 등이 세부 과제로 채택됐다.
주민의 행정 참여 욕구는 높지만, 현실적으로 참여 방안이 없거나 문턱이 높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지자체에 주민감사 및 주민참여예산, 주민투표, 주민소송을 도입하거나 요건을 간소화하는 것이 정책 과제로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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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없는 서울시’를 위해 빈민운동이 나서다 (참세상, 윤지연 수습기자 2010.05.13 12:41)
주거, 일자리 등 5대 요구안 발표
빈곤과 차별 없는 서울시를 만들기 위해 시민단체들이 빈민운동 5대 요구안을 발표했다. ‘빈곤사회연대’와 ‘빈곤과차별없는살맛나는동네만들기 행동(살맛 행동)’에서는 13일 오전 10시, 서울시청 별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에 5대 요구안 수용을 촉구했다.
이들이 내세운 핵심 요구사항은 △용산참사 재발하는 뉴타운, 재개발 전면 수정과 주거권 보장 △사회복지, 사회서비스 확충과 빈곤층 복지지원 확대 △안정적 일자리와 생활임금 보장 △실질적, 체계적 홈리스 지원 대책 마련 △단속 위주의 노점상대책 철회와 노점생존권 보장으로 총 5가지다.
기자회견에서는 각 요구사항과 관련해 노조와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세부정책을 설명했다. 성낙경 전국철거민연합 사무국장은 서울시 개발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뉴타운 개발은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고, 그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순환식 개발로 관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 복지확충 요구에 나선 최예륜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서울형 복지 희망드림 프로젝트는 복지 예산 중 0.28%에 불과하다”면서 “실질적 공공복지 기반은 확충하지 않고 전시형 선심 쓰기 복지를 내놓고 선전해왔던 서울시의 행태가 기가 막히다”라고 서울시를 비판했다. 이어서 △지역 복지,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와 확충 △빈곤층의 실질적 지원을 위한 생활안정자금 지원 조례 제정과 개정 △보육 공공성 강화, 무상급식 전면실시, 사회서비스 공공성 확보 등을 복지확충 요구안으로 내놓았다.
장애인 복지확충 요구와 관련해서는 박홍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나섰다. 그는 “얼마 전 광진구에서 장애아동 두 명과 함께 아버지가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고, 어머니가 2개월 된 장애아동을 죽인 일이 있었다”며 장애 가족의 현실을 설명하면서 △장애인 가족 지원을 위한 지원체계 구축 △장애인 고용확대와 노동권 보장 △장애인 교육권 보장 등을 요구했다.
또한 서울시 일자리 정책과 관련해서는 진기영 공공노조 서울본부 본부장이 △지역의 사회서비스 분야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직접고용 전환 △지자체가 나서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고용안정대책 수립 등을 요구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집행위원장은 홈리스 일자리 대책강화와 여성 홈리스 지원 대책 강화 등을 내세우며 서울시의 홈리스 정책 마련을 촉구했다. 마지막으로 정영수 전국노점상총연합 수석부의장은 “서울시는 디자인 서울, 디자인 거리라는 명분아래 노점 상인들을 쫒아 내고 있다”면서 서울시 노점대책 철회를 촉구하며 노점상의 생존권 보장을 요구했다.
한편 빈곤사회연대와 살맛 연대는 발표한 5대 요구안을 서울시에 제출할 예정이다. 또한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후보자들에게 5대 요구에 대한 답변을 묻는 질의서를 제출하고 이를 평가하는 활동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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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 주인"? '청사진' 들여다 보니… (프레시안, 오수길 고려사이버대학교 교양과정 교수(행정학), 2010-05-25 오전 7:25:07)
[6.2 지방선거 알고 찍자 ⑤] 지방행정ㆍ주민참여 부문 BEST 공약
지방자치단체장의 공약이 지방행정과 관련되지 않은 것은 거의 없겠지만, 지방행정이 결국 지방자치단체장의 비전, 철학, 공약을 실현하는 틀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강조할 필요가 있다. 지방차원에서도 다양하고 복잡하고 역동적인 사회문제들이 산재해 있고, 지방의 어느 한 부문이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점차 그다지 많지 않게 될 것이라 주민참여에 바탕을 둔 문제해결 노력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생활정치와 생활정책이 강조되면서 많은 후보들이 복지, 교육, 환경 등을 더 많이 구체적으로 내놓고 있지만, 지방행정시스템이나 주민참여와 관련된 공약은 눈에 띄게 줄었다. 하지만 지방행정, 특히 적극적인 주민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지방행정이 생활정책을 이행하기 위한 인프라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공약을 잘 준비한 후보들이 생활정책의 중요성과 그 실현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판단해도 좋을 것이다.
종로구 김영종 후보(민주당)는 '주민이 주인 되는 거버넌스 종로'를 주창하며, 재개발 및 재건축, 육아 및 보육시설, 예산, 공무원인사위원회 등의 운영을 모두 주민참여방식에 의해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승진심사 때 주민의견을 반영한 안산시의 '시승제'가 공무원 사회의 각성과 민관협력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음을 고려해 볼 때 김영종 후보의 '주민참여 공무원인사위원회'는 주목할 만한 공약이라 할 수 있다.
성북구 김영배 후보(민주당)는 주민과 가까운 지방자치단체가 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호화청사라고 비판받았던 구청 청사의 3분의 1 이상을 주민들의 편의시설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지하1층에서 지상3층까지의 공간을 생활체육, 문화교육, 컨벤션, 여성 및 유아복지 공간으로 활용하고, 성북구내 공공기관의 회의실을 주민에게 개방하여 주민들의 회의나 독서모임 공간으로 활용할 것이며, 주민자치위원회의 활동내용을 주민센터와 주요 지점에 지속적으로 알리겠다는 공약이다. 구청 자체가 주민들의 생활공간이 될 수 있다면 생활정치의 실현은 분명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강동구 이해식 후보(민주당) 역시 주민센터의 새마을문고를 테마형 작은 도서관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존의 새마을문고가 다소간의 전시성으로 인해 문고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평가와 함께 동 단위에서 주민들이 더욱 밀접한 생활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바짝 다가서겠다는 것을 공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구청 청사를 주민들의 평생교육 요람으로 활용하겠다고 한 금천구 차성수 후보(민주당)의 공약도 주민들과 가까워지려는 의지와 방도를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차성수 후보는 또한 민원실을 24시간 개방하기로 했는데, 실제 시행과정에서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긴 하지만 생활정책의 실현에 일선행정이 가장 중요함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앱(App)과 모바일 홈페이지를 제작, 보급하여 젊은 세대의 주민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모바일 창구를 개설하겠다는 관악구 이봉화 후보(진보신당)의 공약은 젊은층이 많다는 지역 특성을 반영한 참신한 공약으로 주목할 만하다. 나아가 주민자치위원을 위촉할 때 성, 연령, 출신국, 신체능력 등에 따른 대표성을 반영하겠다는 공약 역시 마찬가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브라질 뽀르뚜 알레그리 시에서 비롯된 '주민참여예산제'가 광주광역시 북구청에서부터 도입되어 일부 지자체에서 실험된 이후 우리 실정과 안 맞는 부분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주민참여에 바탕을 둔 지방행정의 대표적인 제도는 역시 주민참여예산제라 할 수 있다. 도봉구 이백만 후보(국민참여당), 서대문구 문석진 후보(민주당), 성북구 김영배 후보(민주당) 등이 주민참여예산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백만 후보는 특히 단기 중점과제를 선정하여 이 과제를 위한 예산편성과정에 주민참여를 보장하기로 했다.
구청의 재정자립도를 고려해보면 실제로 구청 단위에서 주민들이 참여하여 예산 항목을 정하는 일이 지방행정을 전면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생활정책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자신의 생활과 직결된 정책에 투입되는 예산항목을 주민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은 예산 규모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지방자치의 본질적인 의의를 충분히 살릴 수 있는 것이다. 선행 실험을 바탕으로 더욱 정교한 설계와 적용이 뒷받침 한다면 많은 주민들의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맥락에서 서대문구 문석진 후보(민주당)의 '1% 주민 할당제'는 주민참여 예산제의 실현가능성을 고려하고 실천 의지를 구체적으로 천명한 공약이라 할 것이다. 주민참여 예산제가 자치단체의 살림살이에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지자체의 예산을 제대로 쓰자는 공약과 제도라고 한다면, 예산낭비를 감시하겠다는 공약들은 살림살이의 허점을 막아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강남구 이판국 후보(민주당)는 예산편성과정에 주민참여를 보장하겠다고 밝히면서 예산낭비신고센터를 운영하기로 했다. 강서구 노현송 후보(민주당)는 예산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물론 예산청문회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서대문구 문석진 후보(민주당)도 예산의 집행과 사용내역, 절차, 주민의견 등을 홈페이지에 상세하게 공개하기로 했다. 양천구 권택상 후보(한나라당)는 감사원이나 검찰출신, 공인회계사, 시민단체 등 전문가 중심의 시민감사위원회를 구성하여 독립적인 감사 활동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밖에 색다른 아이디어를 제시함으로써 생활정치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보여준 공약들을 들 수 있다. '공동주택분쟁조정위원회 운영을 통한 주민갈등 최소화'를 내세운 노원구 김성환 후보(민주당)의 공약은 위원회를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여 갈등을 줄일 것인지에 대한 추가 설명을 들어볼 필요가 있지만, 공동주택과 관련된 생활세계를 면밀히 들여다본 정성을 드러내고 있고 주민참여에 의한 사회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구로구 이성 후보(민주당)가 내건 '부패영향평가제' 공약은 구체적인 방법론이 개발된다면 정책과정 일반과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확산되어 활용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점에서 신선하다. 역대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정책과정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고 정책과정 자체를 모니터링 하고자 했지만, 일상적인 과정으로 표준화되어 있는 지방행정의 틀을 유지하는 한 부패구조를 깨뜨리지 못한다는 데 착안한 것으로 판단된다.
강북구 박겸수 후보(민주당)의 공약에서도 정책과정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정책집행 결과에 대한 주민만족도 조사를 실시하고, 주민참여에 의한 정책평가를 조례제정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정책의제설정과 정책결정 단계에서의 주민참여를 강조한 것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정책집행과 평가 등 정책과정의 종결 시점에까지 시각을 확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제출된 구청장 후보들의 공약을 보니 열린행정, 투명행정, 행정의 효율성 확보, 행정조직 개편, 행정의 투명성 확대, 공직청렴도 강화 등 어쩌면 당연하면서도 당위적인 구호 차원으로만 머물 뿐이었던 과거 지자체 선거 때와는 달리 원론이나마 지방행정의 관리 방침과 제도를 전혀 제시하고 있지 않은 후보가 많았다. 이것이 생활정치에 대한 강조에 따라 많은 생활정책 공약들에게 그 우선순위를 양보했기 때문인 것인지 직접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규범적인 차원에서라도 제시하지 않은 것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오히려 관급 토목 및 건축공사를 10월 말 안에 마무리함으로써 연말에 보도블록을 파헤치는 관행을 없애겠다고 약속한 종로구 정창희 후보(한나라당)의 공약은 다른 여러 변수를 고려하지 못한 것으로 비판받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주민들의 생활세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지방행정에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지방행정과 주민참여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이상의 공약들이 당장의 가시적인 결과물과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교한 설계와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의지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이러한 공약을 유권자들에게 내세운 그 약속 자체가 소중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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