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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역사 뒤엔 항상 책이 있었다 / 책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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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24402.html
혁명의 역사 뒤엔 항상 책이 있었다 (한겨레, 허미경 기자, 2014.02.16 20:25)
한 주를 여는 생각
책의 탄생
뤼시앵 페브르·앙리장 마르탱 지음
강주헌·배영란 옮김, 돌베개 펴냄

오늘날엔 지은이가 책을 팔아 수익을 얻는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서양에서 ‘인쇄된 책’이 처음 세상에 등장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책을 쓰고 돈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천박한 소행”이었다.
구텐베르크가 15세기 중반 인쇄술을 발명하고 책이 유럽 각지로 퍼져나가던 16세기에도 저자들은 원고를 주고 돈을 받는 행위를 스스로 용납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책이 나오면 몇권 요청해 부유한 귀족들에게 신속히 보냈고 이들이 책에 대한 찬사와 함께 소정의 금액을 보내줬다. 원고를 파는 관행은 17세기에야 차츰 시작됐는데, 그러고 나면 작가는 책과 아무 상관 없는 존재로 전락했다. 18세기 유럽에서 출판사 혹은 서적상은 한번 산 원고에 독점 출판권을 누렸다.
프랑스 아날학파의 창시자 뤼시앵 페브르가 제자 앙리장 마르탱과 함께 작업한 기념비적 저작이자 문헌사학의 고전인 <책의 탄생>(1958)이 한국어로 처음 번역됐다. 페브르는 어떻게 책이 15~16세기 르네상스·종교개혁기에 지식 혁명을 이끌고 어떻게 사상을 전파하여 결과적으로 사회 변혁에 일조했는지 다각도로 드러낸다. “책은 위대한 영혼들이 남긴 사상을 되살리는 동시에 그 사상들에 미증유의 힘을 주었다.”
 
인쇄술은 대중을 구원한, 새로운 명약이었다
프랑스 사학자 페브르는 반세기 전 ‘책의 탄생’에서 이렇게 질문한다. “책은 15세기에 탄생했지만, 20세기 중반인 지금 완전히 다른 원리에서 나온 새 발명품들에 위협받고 있다. 지금껏 책은 어떤 구실을 해왔을까? 누구에게 도움을 주고 누구에게 눈엣가시였을까?”
<책의 탄생>의 주인공이 되는 책은 금속 활자본, 곧 인쇄본이다. 물론 필사본과 목판본도, 1450년대 유럽에서 최신 기술의 합작품으로 탄생한 이 신예의 엄청난 활약상을 드러내는 조역으로 등장하긴 한다.
이 책을 구상할 적에 프랑스 역사학계의 거목 뤼시앵 페브르(1878~1956)는 제목을 ‘역사의 주체이자 요인으로서의 책’으로 할 작정이었다. 그는 책의 구실을 변화의 원동력 혹은 변화의 효모라고 보았다. 1958년 이 책이 발간되기 이태 전에 숨진 페브르는 그 3년 전인 1953년에 공동 저자인 제자 앙리장 마르탱(1924~2007)에게 넘긴 책 서문에 이렇게 썼다.
“책을 만드는 방식의 변화는 인쇄술이 처음 발명된 땅을 넘어서 곧 다른 세상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의 목적은 이런 변화의 원인과 결과를 살펴보고 인쇄된 책이 필사본은 꿈도 꿀 수 없었던 위치까지 어떻게 신속하게 올라갔는지 되짚어보는 것이다.”
<책의 탄생>(강주헌·배영란 옮김, 돌베개 펴냄)은 15~16세기 인쇄본 책과 관련한 총체적인 역사 기술을 지향하는 책이다. 이런 목표 아래 책에 대한, 책을 만든 사람 혹은 책이 빚어낸 거의 모든 사회, 문화, 경제 변화를 다룬다. 종이와 금속활자 인쇄술 발명, 활자제작·조판을 거쳐 표지·본문·판형·장정, 출판길드, 책의 지리적 확산, 책 매매의 모든 것, 곧 윤허권(출판·인쇄 독점권)과 무단복제, 검열의 양상을 써내려가면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직업군, 곧 장인, 직인(인쇄공) 간의 계급투쟁까지를 760여쪽 방대한 분량에 담았다. 넓게는 13세기부터 18세기 산업혁명기까지를 아우르지만, 주무대는 15~16세기다. 그 세기는 바로 르네상스(인문주의)와 종교개혁의 시기였다. 책의 역사상 중대한 전환기는 서양 역사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사적 전환기였던 것이다.
초창기에 그것은 업자들 사이에서 “인공 필기법”으로 불렸다. 활자와 인쇄기를 이용해서 종이에 책을 찍는 신기술, 곧 인쇄기술은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 같은 종교개혁 세력에게 “대중에게 구원의 명약을 나눠줄 수 있는” 새로운 힘이었다. 유럽에서 한 금속전문가(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15세기 중반, 그러니까 1450년대에 인쇄술을 발명했던 것은 필연이었다고 이 책은 본다. 필사본의 한계 속에서 책을 빠르게 대량복제할 필요성은 도처에서 생겨나고 있었고, 값비싼데다 표면이 오톨도톨한 양피지와 독피지(송아지가죽)로는 이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인쇄술은 꼭 필요한 1차 원료, 곧 종이의 절대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 종이가 12세기 중국에서 아랍을 거쳐 이탈리아로 전파된 뒤 14세기 말엔 유럽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4세기 후반 제지산업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15세기 초엔 종이라는 새 매체에 “선입관을 가진 사람들이 (극소수 필경사들을 빼면) 완전히 사라졌”다. 이렇게 “종이는 세상을 장악했다.”
필사·목판본에서 인쇄본으로 책 만드는 방식의 변화는 
르네상스, 종교개혁 확산시킨 15세기 또다른 주인공이었다
유럽 휩쓴 루터 저서들과 함께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중문학 장르가 처음 구축됐다

<책의 탄생>의 기본 관심사 중 하나는, 근본적으로 엘리트(귀족, 부자, 권력자, 지적인 명망가) 중심이던 유럽 사회에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새 수단이 등장하여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것이다. 유럽 사회에서 일부 사회집단만이 누리던 문화와 학습이 ‘인쇄된 책’을 통하여 다수의 사람들(대중)에게로 퍼져나갔다. 인문주의라는 새 사상을 확산시킨 매체도 책이었다. 책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기에 지식 전파와 사회 변혁의 또다른 주인공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마르틴 루터의 책들이다. 그 이전에도 구교 사회, 가톨릭교회는 여러 다른 종교(이교)와 싸워왔고 그 싸움에서 언제나 승리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루터가 구교 가톨릭에 맞서 종교개혁의 포문을 연 것도 신기술인 인쇄 매체를 통해서였다. 1517년 그는 독일 비텐베르크 아우구스티누스 성당 정문에다 가톨릭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반박문을 벽보로 붙였고, 그 내용은 독일어로 요약돼 벽보 형태로 인쇄된 뒤 불과 2주 만에 그 내용이 방방곡곡에 알려졌다. “이렇게 쏘아올려진 신호탄을 전국으로 확산시켜주는 역할을 맡은 게 바로 인쇄술로 제작된 책이었다.” 루터는 자신을 공격하는 신학자들에게 라틴어로 응하면서도 <독일의 기독교 귀족에게 고함>(1520) 같은 글은 독일어로 기술해 더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그의 설교집·교화집·논쟁집 또한 독일어로 대거 제작돼 곳곳에 인쇄되어 뿌려졌고, 그렇게 독일 전역에서 종교개혁의 불길이 타올랐다.
1518~35년에 판매된 독일어 책 가운데 3분의 1 이상은 루터의 책이었다. 설교집 <면죄부와 신의 은총>은 1518~20년에 20여차례 재인쇄됐고, <신학서>와 <주기도문 해설>은 “책을 사갔다는 표현보다 너나 할 것 없이 집어갔다고 말하는 게 더 나을 정도”였다. 유명한 공개서한인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고함>은 1520년 8월18일 발표되어 그달 25일에 이미 재인쇄에 들어갔다. 불과 3주 만에 4000부가 뿌려지고 2년 동안 13차례 재출간되었다. 반면 루터 반대파가 쓴 <미치광이 루터교도> 같은 책은 반응이 신통찮았다.
루터의 책은 프랑크푸르트박람회의 ‘은밀한 거래’를 통해서 프랑스,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지로도 퍼져나갔다. 1520년 파리의 대학에서도 루터 책을 읽는 일이 생겨나자 교황은 1520년 6월 칙서를 통해 대학을 처벌했고, 이듬해 파리 고등법원은 인쇄업자와 서적상들에게 신학대학 신학자들이 검토하지 않은 성서 관련 저서는 인쇄도 판매도 금한다는 법령을 발표했다. 사전 검열의 시작이었다. 소르본 대학과 신학 대학, 고등법원이 이런 출판 탄압, 신교 탄압 정책을 주도했다. 그러나 금서목록에 맞서 프랑스 서적상들은 ‘간단한 꼼수’로 불온서적을 확산시켰다. 대표적 구교 인사의 이름을 써서 신교의 반론 글을 출간하거나, 정통 교리서를 표방하면서 은근슬쩍 과감한 신교 사상을 집어넣은 책을 내는 식이었다.
루터의 성서 번역본은 16세기 초반에만 10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번역본 성서 외에 설교집이나 간편히 들고 다닐 수 있는 교리문답서들은 더 인기가 높았다. <책의 탄생>은 “루터의 저서들과 함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중문학 장르가 처음으로 구축되었다”고 적는다. 그리하여 책은 라틴어를 소멸시키고, 15~16세기 유럽에서 여러 민족 언어의 발달을 촉진하기에 이른다.
이 책과 함께, 2003년 번역됐다 2008년 절판된 미국 역사가 로버트 단턴의 <책과 혁명-프랑스혁명 이전의 금서와 베스트셀러>(주명철 옮김, 알마 펴냄)도 재출간되어 새로운 독자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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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6 04:52 2014/03/16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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