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라이언 '감시사회로의 유혹' 서평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7/15/0200000000AKR20140715154800005.HTML
우리는 자신에 대한 감시에 스스로 가담한다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2014/07/15 16:17)
데이비드 라이언 '감시사회로의 유혹' 번역 출간
전통적으로 국가 또는 그와 맞먹는 집단에서 이뤄지는 '감시'는 억압이나 통제와 연결되는 개념이었다.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중심'이 존재하는 가운데 개인은 그저 관찰의 대상일 뿐인 암울한 구도였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로 흔히 묘사되는 형태다.
'1984'로부터 30년이 지났다. 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교통카드를 찍을 때마다 기록되는 개인의 행적, 심지어 발병이나 사고 가능성까지 기록된 보험사 고객정보 등 '감시'의 혐의를 둘 만한 장치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그러나 2014년을 사는 사람들이 과연 이를 '암울한 감시사회'로 여기는지는 의문이다.
감시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데이비드 라이언의 책 '감시사회로의 유혹'에는 이같은 사회 변화와 기술 발전에 따라 감시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이 반영돼 있다. 영국에서 2001년 처음 출간돼 시차가 다소 있긴 하지만,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2014년에 적용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친숙하고 구체적이다.
저자는 '1984'에서 묘사된 전체주의 사회처럼 무자비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판옵티콘'(panopticon·원형감옥)식 감시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지금의 감시는 오히려 이동성, 속도, 안전, 소비자의 자유를 선호하는 사회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조율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사례를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우리는 공항에서 아무렇지 않게 여권을 꺼내 스캐너에 통과시킨다. 개인 식별정보가 담긴 현금 인출카드로 현금을 빼 쓰고, 인터넷 홈쇼핑을 하면서도 개인정보를 입력하며, 개인정보가 담긴 출입증을 찍고 회사에 출근한다. 그러면서 이런 시스템이 제공하는 편익을 즐겁게 누린다.
저자는 이같은 '감시 능력의 확장'을 근대성의 한 측면으로 읽어낸다. 서구 자본주의와 국민국가는 각자 구별되는 존재인 '독립적 개인'을 등장시켰다. 이런 개인이 새로운 민주적 질서에 동참할 여지도 넓어졌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개개인에 대한 정보 축적이 쉬워지면서 통제도 편리해졌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정보 수집 중심으로 변화한 감시체제는 개인뿐 아니라 추상적 집단을 범주화하고 차별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수많은 정보를 토대로 위험 가능성을 진단하고 대책을 세우는 현대 사회에서 사실상 모든 시민이 '위험요인'으로 간주되고, 특히 소수자가 더 큰 위험 가능성을 지닌 양 취급되는 상황이 그렇다.
이 때문에 저자는 단순히 개인적으로 프라이버시를 주장하는 문제의식으로는 감시사회의 부정적 측면에 저항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오늘날의 감시는 단순히 사적 공간을 침범하는 데서 그치지 않으며, 사람의 등급을 나누고 필요에 따라 배제하기도 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판옵티콘'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전보다 좀 더 부드러워지고 유연해졌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많은 이들이 감시사회의 어두운 면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보다 속도·안전·보안을 누리는 대가 정도로 인식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해석된다. 저자는 감시에 '두 얼굴'이 있음을 인정하면서, 감시 자체를 반대하기보다 사회 정의와 개인의 존엄성에 잠재적 위협이 되는지를 놓고 감시를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현직 PD인 이광조 CBS 시사교양제작부장이 한국어판 번역을 맡았다. 후마니타스. 336쪽. 1만7천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7181936125&code=960205
[책과 삶]우리는 정녕 감시를 두려워하고 불편해할까 (경향, 정원식 기자, 2014-07-18 19:36:12)
▲감시사회로의 유혹 | 데이비드 라이언 지음·이광조 옮김 |후마니타스 | 336쪽 | 1만7000원
감시라는 말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 말은 나의 행동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통제되고 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감시는 주체성에 대한 침해로 여겨진다. 제러미 벤담이 고안한 원형 감옥 ‘팬옵티콘’은 이런 의미에서 감시에 대해 우리가 품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상징이다. 이 원형 감옥에서 감시받고 있는 사람들은 누가 자신을 감시하는지 알 수 없지만 감옥의 중앙 탑에 있는 감시자는 모든 사람을 다 감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감시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다시 한 번 의심해 볼 것을 요구한다. 캐나다 퀸스 대학 사회학과 교수이자 감시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데이비드 라이언은 ‘우리가 정말 감시를 두려워하고 감시에 반발하는가’를 묻는다. 그는 감시가 억압적인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유혹적이고 매력적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감시가 만연한 사회를 긍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감시사회의 부정적 측면들에 반대하고 있는 것은 명확하다. 다만 감시사회에 대해 손쉬운 결론이나 해법을 제시하는 대신 감시사회의 복합적인 측면을 인식해야 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감시에는 두 얼굴이 있다고 강조한다. 도로교통을 생각해보자. 원활한 도로교통을 위해서는 신호등을 비롯한 각종 교통 통제 시스템이 필요하다. 교통상황 정보는 도로 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CC) TV의 영상분석을 통해 제공된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감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같은 폐쇄회로 TV 영상이 우리의 행적을 추적하는 데 사용될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안전을 목적으로 설치되는 방범카메라의 경우에는 이런 양면성이 더욱 증대한다. 신용카드, 컴퓨터, 휴대전화, 인터넷 통신망 등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감시는 통제와 편리함이라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이렇게 보면 현대 사회에서 감시는 삶의 한 부분이며 효율성과 편리함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것이다.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묘사한 감시사회는 전체주의 국가였지만, 이제 감시는 전체주의 국가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일상생활에서 감시의 밀도가 점점 커지는 것은 일부 자본가들의 음모나 금권주의적 충동의 해악이 아니라 이동성 속도, 안전과 소비자의 자유를 선호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 스스로 조성한 복잡한 정치경제적 관계의 산물이다.”
저자는 감시사회의 등장은 육체의 소멸이 낳은 결과라고 말한다. 육체의 소멸이란 정보 통신 기술의 성장과 함께 이전에는 대면접촉을 통해서만 가능했던 일들이 유선이나 온라인상으로도 가능해진 현상을 가리킨다.
대면접촉의 부재는 신뢰의 문제를 낳는다. 네트워크 건너편 상대방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를 신뢰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정보 기술 사회에서 개인정보가 축적되는 것은 이런 신뢰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개인의 자격과 평판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신분증명 번호와 바코드가 기입된 카드 등 신뢰의 징표가 필요해졌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사회의 감시란 전체주의적 권력의 통제라기보다는 개인정보의 저장과 가공이다.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과거에는 국가가 장악하고 있던 정보들이 1980년대 이후 탈규제화의 흐름을 타고 민간 부문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선진국의 경우 과거 경찰이 담당했던 보안업무는 민간보안 회사로 넘어가고 있고, 의료산업화 정책은 개인 질병기록 같은 민감한 정보를 민간 보험회사에 넘겨주려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감시의 양면성이 감시사회에 대한 저항을 힘들게 만든다는 점이다. “감시는 언제나 두 얼굴을 하고 있는데, 감시의 부정적이고 반사회적인 측면을 사람들에게 납득시키기 힘든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은 이런 측면을 단순히 감시의 또 다른 ‘얼굴’, 다시 말해 속도·안전·보안을 누리는 대신에 치러야 할 대가쯤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당연히 감시로 혜택을 입는 정부 기관이나 기업은 자신들의 주장을 펴기에 좋은 위치에 있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이 책에 감시사회의 문제에 대한 구체적 해법은 없다. 다만 해법을 찾기 위한 인식의 출발점만이 암시돼 있을 뿐이다. 저자는 “인간이 육체를 지닌 개인들로 인식되는 곳, 추상적인 커뮤니케이션보다 대면 접촉을 우선하며, 자동화된 분류보다 정의를, 기술적인 필요보다 공동의 참여를 우선하는 곳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책은 감시사회의 폐해를 고발하는 실천적 저작이라기보다는 감시사회의 이론적 함의들을 검토하는 학술적 저작에 가깝다. 이 때문에 이 책에서 감시사회에 저항하는 구체적 행동방침을 찾으려 한다면 실망하기 쉽다. 그러나 단순한 개인정보 보호의 차원을 넘어 감시사회를 다양한 각도에서 긴 호흡으로 살피려는 이들에게는 일독할 만하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40719019010
정보사회는 감시사회의 또 다른 이름 (서울, 최여경 기자, 2014-07-19 19면)
감시사회로의 유혹/데이비드 라이언 지음/이광조 옮김/후마니타스/336쪽/1만 7000원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은 대부분 불편하고, 때론 섬뜩하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개인은 감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도처에 널린 폐쇄회로(CC)TV, 교통카드, 인터넷 쇼핑 등 생활의 거의 모든 것은 ‘감시’와 직결돼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억압이나 통제만으로 해석하지는 않는다. 안전과 사회질서, 편리 등 긍정적인 개념으로도 풀이한다.
감시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사회학자 데이비드 라이언은 “관리와 통제를 위해 커뮤니케이션과 정보기술에 의존하는 모든 사회는 감시사회”라고 정의하면서 사회 변화와 기술 발전에 따라 감시를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정보사회는 감시사회의 다른 이름일 수밖에 없다. 인터넷 쇼핑을 위해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직원임을 확인하는 출입증을 찍고 사무실을 오간다. 교통법규를 위반한 차량을 CCTV로 교차확인해 벌금을 물리는 행태는 정보사회의 일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경찰국가라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범죄를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여긴다.
감시에 대한 ‘원칙 있는 자각’이 필요하다는 역설을 담은 책이 2001년에 출간한 ‘감시사회:일상 들여다보기’(Surveillance Society: Monitoring Everyday Life)이다. ‘감시사회로의 유혹’은 그 책의 번역본이다. ‘감시’에 관한 그의 저서 가운데 비교적 초기 단계에 놓인 것이지만, 현대에 적용해도 무리가 없다.
저자가 바라본 감시사회는 조지 오웰이 전체주의가 극대화한 사회를 가정하고 쓴 소설 ‘1984’의 팬옵티콘(panopticon·원형감옥)이 아니다. 이동성, 속도, 안전, 소비자 자유를 선호하는 사회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조율하는 중요한 수단으로서 감시가 존재한다. ‘감시 능력의 확장’은 근대성의 한 측면이다. 자본주의와 국민국가는 ‘독립적 개인’을 탄생시켰고, 민주적 질서에 동참시켰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개개인에 대한 정보 축적이 쉬워지면서 통제도 편리해졌다.
감시사회의 부정적 측면은 단순히 사적 공간을 침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런 정보들이 유출되거나, 사람을 분류하고 필요에 따라 배제하기도 하는 수단이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회에 속해 있는 한 감시 자체를 반대하기보다 사회정의와 개인의 존엄성에 잠재적 위협이 되는지를 놓고 감시를 바라볼 것을 주문하면서 ‘감시 윤리’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47708.html
우리 모두는 자기 감시에 가담하고 있다 (한겨레, 최유빈 기자, 2014.07.20 19:56)
<감시사회로의 유혹> 데이비드 라이언 지음, 이광조 옮김, 후마니타스·1만7000원
도로의 폐회로텔레비전, 불 꺼진 자동차 안의 블랙박스, 출퇴근길 사용하는 교통카드…. 현대인들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한 감시 속에 살고 있다. 이런 사실은 시스템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만 드러날 뿐 평소엔 체감하기 어렵다. 지난 1월 카드사들이 개인정보 1억여건을 유출한 뒤 6개월이 흘렀다. 사건 이후 160만개의 카드가 해지됐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일상생활에서 카드를 사용하고 있다. 내 개인정보가 저장·가공·유통까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사실상 ‘감시’를 벗어나 생활하는 건 불가능하다.
감시 연구의 권위자인 지은이는 20년 전 <전자눈>(The Electronic Eye, 1994, 국내 미출간)에서 감시사회가 어떻게 등장했는지 역사적 과정을 보여줬다. <감시사회로의 유혹>은 감시사회의 도래 이후 오늘날 우리가 일상에서 받는 감시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다룬다.
현대사회에서 감시는 억압과 통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은이는 “우리 모두는 자신에 대한 감시에 가담하고 있다”는 말로 감시가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정치경제적 산물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노동이 개별화하면서 카메라와 전자우편을 통한 작업장 감시가 시작됐고 소비자에 대한 맞춤 마케팅의 한 방법으로 개인의 취향이 수집된다. 급기야 감시는 사람들을 분류하고 등급을 나누는 기제로까지 확장했다. 보험회사는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각기 다른 보험료를 책정해 위험 관리를 하면서 큰 성공을 거둬왔다.
지은이는 감시의 부작용을 개인적 문제의식만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공적인 이슈로 만들어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막스 베버에서 마크 포스터에 이르기까지 감시사회에 대한 학자들의 담론을 훑고 유효한 부분을 짚어내려고 노력하는 것도 감시에 얽힌 사회·정치적 기제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감시가 ‘육체성의 소멸’에서 왔다고 보는 지은이는 ‘살아 있는 개인’의 가치를 긍정함으로써 감시의 문제들을 깨닫자고 말한다. 인간 사이 접촉에 스마트폰, 인터넷 같은 회로가 개입하면서 신뢰의 징표로 승인과 감시는 더 일상화했다. 지은이는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고 서로 신뢰를 쌓는 과정에서 감시의 방향을 함께 조정해 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자동화된 분류보단 정의를, 기술적인 필요보단 공동의 참여를 우선시하는 게 지은이가 추구하는 감시의 미래다.
영국에서 2001년 출간된 이 책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예시와 담론들을 보여준다. 우리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감시에 연루돼 있으며 참가자가 되든 목격자가 되든 선택해야 한다는 지은이의 말을 그냥 넘기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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