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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과 정의, 검찰개혁... (박권일, 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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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 님의 글을 페북에서 담아온다. 사실 미류 님의 글이 함께 있기에 담아온 것이다. 김명인 선생의 글은 불필요할 듯하여 제외했다.
 


 
"조정환 선생 글도 읽었지만 김명인 선생의 이 글 역시 똑같이 1도 동의안됐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투쟁에 뭘 바라냐, 결국 이런 일은 진정한 봉기의 그날을 위한 준비 아닌가, 일단 부르주아 헤게모니 투쟁에 참가하고 진정한 계급투쟁은 ‘나중에’ 해야 한다 블라블라. 낡다못해 쉰내 나는 이런 혁명대망론류의 투항적 담론을 2019년에, 그것도 이렇게 연배 높은 ‘쓰앵님’들을 통해 재회하는 것은 화나고 불쾌하다기보다, 애잔하다. 역시 먹물들은 ‘광장 뽕’’군중 스펙터클’에 너무나 취약하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많은 지식인들이 인민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의 규모와 역능을 과도하게 숭배함으로써 실은 그들을 내려다 보고, 끝내 혐오하고 있다는 것. 눈치챘겠지만 그것은 여성을 ‘여신’이라 부르며 숭배하는 남성들의 여성혐오와 완벽히 동일한 메커니즘이다. 인민과 ‘함께’한다는 것은 지식인 역시 스스로가 인민대중임을 자각하고 길바닥을 같이 뒹굴고 같이 싸우고, 때로 침튀겨가며 갈등하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지금 정말로 연대가 필요한 인민들이 서초동 대로에만 있는가? 바로 옆 철탑에서 죽어가는 김용희는 인민이 아닌가? 죽어가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연대해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은 인민이 아닌가? 조국의 합법적 불공정에 분노하는 인민은 인민이 아닌가? 검찰개혁보다 절박한 고통이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은 인민이 아닌가? 바로 이 질문들이 김명인 선생이 “추상적 도덕주의”라 폄훼하는 ‘공정성’’정의’의 구체적 내용이다. 변호인 한명도 구하지 못해 벌벌 떨다 구속되는 서민, 노동자와 달리 십수명 화려한 변호인단을 거느리고 압색중인 검사에게 전화까지해서 “빨리 끝내달라”고 하는 누군가의 엄청난 ‘특권’에 대한 자각과 분노, 그게 바로 ‘공정성’과 ‘정의’의 구체적 내용이다. 그러므로 다시 묻는다. 대체 누가 “무늬만 급진좌파”일까? 외람되지만, 거울을 보기 바란다. 말글로만 인민과 다중을 논하지 말고 인민과 다중이 ‘되기’. 21세기의 지식인, 오늘의 지식인에게 가장 필요한 조건이 바로 그것이다. 내 지론이다."

하여, 현장의 영민한 활동가의 글을 다시 투척해둔다.
 
—————————————
(미류님의 글)
 
인륜의 문제. 집을 압수수색하는 데 놀란 부인을 걱정하며 '차분하게 해달라'고 '건강상태 배려'를 부탁한 것. 야당이 주장하는 '수사 개입'보다 조국이 말하는 인륜의 차원이었다는 게 사실에는 가까워보인다. 그런데 그 인륜, 아무나 못 챙긴다.
검찰이 압수수색영장을 들이밀며 누군가의 집으로 쳐들어올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렵고 불안하다. 그런데 그때 검찰과 통화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검찰은커녕 자문을 구할 변호사 연락처 하나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들은? 놀라서 울다가 기절하거나 당황해서 검찰이 시키는 대로 하다가 자신의 권리는 지키지도 못한다. 만약 조국의 말대로라면 인륜도 특권인 셈이다. 그러니 그는 다르게 말했어야 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더라도 누구나 두려움 없이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더욱 힘쓰겠습니다."
 
만약 인권의 문제로부터 검찰개혁을 고민했다면 그는 알았을 것이다. 부인이 놀라는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기 위한 대응요령을 알려주며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임을 말이다. 검찰개혁을 위해 힘을 모으는 사람들도 초점을 돌려야 한다. 조국을 무너뜨리려고 압수수색까지 했다는 점에 분노하기보다, 압수수색 절차 자체가 피의자를 제압하는 절차가 되어버렸다는 점에 분노해야 한다. 그게 검찰개혁이다.
조국을 겨냥한 무리한 수사와 피의사실 공표 등의 문제가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더욱 알려준다고들 한다. 검찰개혁의 목표는 '점잖은' 수사인가? 칼을 휘두르는 건 공수처에 맡기고 검찰은 칼을 겨누기만 하라? 조국은 휘두르는 칼날 앞에서도 그를 지지하는 세력의 호위를 받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칼을 겨누기만 해도 벌벌 떨다 쓰러진다.
만약 우리 모두를 위한 검찰개혁을 이루고자 한다면 검찰개혁을 위한 노력은 조국과 빨리 헤어질수록 좋다. 첫째는 그래야 정말 필요한 검찰개혁이 무엇인지 분명해질 것이라는 점에서, 둘째는 '조국' 말고는 기댈 게 없는 것이 검찰개혁이 부딪친 한계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검찰개혁을 말할 때 떠올리는 것은 '정치검찰'의 문제다. 권력의 눈치만 보면서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했던 검찰. 세월호참사 책임자들을, 성폭력 가해자들을, 노동자 탄압한 자본가들을 수사하고 기소하기는커녕 면죄부나 쥐어줬던 검찰.
그러나 '정치(하는)검찰'의 문제는 검찰개혁만으로 풀 수 없다. 검찰수사가 끝나버리면 노동자의 권리도 끝나버리고, 성폭력 사건은 종결되어버리고,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더 따져묻지 못하는 사회가 문제다. 우리가 더 많은 정치의 장을 만들 때 정치검찰의 문제도 해소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적으로 검찰을 이용하는 세력과 정치적으로 검찰을 규탄하는 세력 간의 정쟁만 무한반복될 것이다.
지금의 정부여당이 멈춰선 자리가 이곳으로 보인다. '조국사태'로 한국사회의 불평등 구조 면면이 드러나고 있지만 쟁점을 오히려 '조국에 대한 검찰 수사'로 다시 축소시키고 있다. 현재의 국면은 '조국 대 검찰'이 아니라 '검찰 대 사회', '검찰 대 정치'로 전환되어야 한다. 조국과의 결별이 주말 서초동에 모인 사람들의 과제라면, 새로운 정치 새로운 사회를 만들 힘을 모으는 것은 인권운동의 과제일 듯하다. 모두, 쉽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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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1 02:10 2019/10/01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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