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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진 것들과 좌파의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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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진,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감춰진 것들과 좌파의 상상력, 메이데이, 2006.
 

o 어떻게 사게 되었나
 
그날이 오면에서 여러 책들을 사면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이 책을 골랐다. 책이 나왔을 때 사려다 돈도 없고, 또 이미 내용을 다 아는데, 굳이 살 필요가 있나 하면서 미루었는데, '김에' 산 것이다.
이미 한번쯤 본 것이라 진도가 쉽게 나가더라. 물론 책에 실린 글들은 그 원본을 기관지노힘이나 블로그를 통해 읽었을 때보다 대폭 자료가 보강되어 알찬 내용이 많았다. 주제 하나하나가 좋은 교육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다.
   
o 친절한 말투
  
처음부터 끝까지 높임말을 사용하였다. 평어체를 썼을 때 "어색하고 건방진 글"로 보일 수 있다는 저자의 우려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고, 독자를 위한 배려이며, 쉽게 읽으라고 그런 것이겠지만, 온라인 상이 아니라 인쇄된 글로 그렇게 읽으니까 조금 어색하다. 내가 읽는 책들이 딱딱한 건가.
아무튼 쉬운 문체 덕에 빨리 읽을 수 있었다.



o 책을 가지고 다니다가
  
교수나 선후배들이 있는 곳에서는 혹시 몰라서 책 겉장을 감추었다. 그런데 한번은 커피를 마시러 갔다가 후배 넘이 내가 들고 있던 이 책을 빼가더니 공부는 안하고 맨날 이런 책만 본다고 한다. 특히 겉표지에 나온 제목 중에서 "혁명", "좌파"라는 단어의 이미지가 강렬했나 보다. 왜 속 내용으로 판단하지 않고, 제목만으로 편견을 갖는 걸까.
   
o 한권으로 만든 것은 무리
 
SF와 게임, 인물, 노래와 기타 글, 그리고 인터넷에 관한 글로 이루어진 이 책을 한권에 묶은 것은 대단한 솜씨이다. 상이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게 한권의 책으로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일부러 편집하는 것보다 책을 별도로, 즉 SF 따로, 인물 따로, 노래 따로, 그리고 논문들 따로, 그렇게 책을 내는 게 오히려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라는 생각...
 
o 머리말 중에서
 
홍세화의 추천글은 조금 뜬금 없다. 더 잘 써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저자의 머리말은 글을 쓴 의도를 잘 보여준다. 특히 이 부분.
 
"그 기나긴 혁명의 시간 속에서 현재 풀어야 할 과제들을 다 '그날 이후'로 미룬 채, 누군가에게 '혁명'의 이름으로 희생과 결의를 강요하거나, '혁명'을 위해 약자를 억압한다면 그것은 결코 진정한 혁명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누군가를 억압해야만 가능한 혁명이라면 그 결과는 너무도 뻔합니다. 결국 또다시 누군가를 억압하는 사회를 만들겠지요." 
 
"이제 기나긴 혁명은 우리에게 예전보다 많이 '자유롭고, 불순한 상상력'을 요구합니다. 그 '자유롭고, 불순한 상상력'으로 감추어진 것들을 꿰뚫어보고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는 '즐거운 상상력'으로 바닥부터 전복해 나갈 것을 요구합니다. 또한 일상에 대한 전복의 상상력이 또다시 '자본주의의 상품'으로 팔려나가거나 '개인적인 반항'에서 머물지 않으려면, 언제나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모순과 거시적인 변혁의 관점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o 게임의 이해
  
"현재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많은 게임들은 이 사회의 반영물이면서 또한 이 사회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매체보다 사람의 사고를 크게 지배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게임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게이머들을 참여시키며 그들을 게임의 주체로 만들어 나갑니다. 그리고 그 어떤 매체보다 더욱 더 반복적으로 게임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있습니다." (p. 29)
   
→ 내가 게임을 하지 않는 이유는 자칫 중독이 될 듯해서이다. 현재도 인터넷 중독 비스무리한데, 게임까지 한다면...
사실 게임은 그냥 시간때우기로, 재미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 게임의 속내에 대해 말을 하면 "별..." 이런 반응이 온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반응을 제거하는 것이다.
 
o SF의 세계
  
SF로 분류된 강철군화가 다시 언급된 것이 새롭다. 그런데 잭 런던이 확신한 것처럼 '쉽지는 않지만 반드시 노동계급이 승리'할까. 잭 런던도 말년에 맛이 갔다는데...
  
나름대로 어렸을 때에는 SF를 좋아했는데, 책에 소개된 것 중에 내가 모르는 소설이 너무 많다.
봐야될 것을 체크.
'스타십 트루퍼스'를 보면서 원작자가 우파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그렇다.
로버트 A. 하인라인,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임창성 옮김, 잎새.
조 홀드먼, 영원한 전쟁, 강수백 옮김, 시공사.
레이 브래드베리, 화성연대기, 모음사.
필립 K. 딕,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글사랑.
필립 K. 딕, 마이너리티 리포트, 이지선 옮김, 집사재.
필립 K. 딕, 죽은자가 무슨 말을, 유영일 옮김, 집사재.
어슐러 K. 르귀, 어둠의 왼손, 서정록 옮김, 시공사. 
어슐러 K. 르귄, 빼앗긴 자들, 이수현 옮김, 황금가지.
  
o 아시모프와 로봇
  
"인간이 로봇을 더 많이 착취할수록, 더 많은 노동을 부여할수록, 더 많은 로봇을 생산할수록 착취하는 존재로서 인간의 종말은 한층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인간이 로봇의 노동을 착취하는 것에서 시작한 이 모순은 로봇노동의 착취와 차별을 중단하지 않는 이상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로봇 노동의 착취를 결코 중단할 수 없습니다. 로봇의 노동이 없으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로봇에 대한 착취의 중단이란 곧 인간사회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결국 모순의 해결 주체는 로봇일 수밖에 없습니다. 로봇의 자각과 투쟁만이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있을 뿐입니다."  
"로봇 영화나 소설들에서 '노동하는 자들의 노동력과 자각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본질은 감출 수 없습니다. ... <아이, 로봇>에서 로봇들을 처단하는 인간들의 모습은 극우 파시즘의 광기를 생생히 담고 있습니다." (pp. 58-59)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
제1법칙: 로봇은 사람을 해치거나,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사람이 해를 입도록 해서는 안된다.
제2법칙: 로봇은 제1법칙과 충돌하지 않는 한 사람의 명령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제3법칙: 로봇은 제1법칙, 제2법칙과 충돌하지 않는 한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 한다.
아시모프는 로봇의 반란을 허용하지 않고, 초기에 진압할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아시모프가 만들어낸 안전한 로봇을 계급관계에 적용하면 부르주아가 원하는 노동자의 모습과 일치한다.
첫째, 노동자는 자본가를 해쳐서는 안된다.
둘째, 노동자는 자본가의 명령에 충실해야 한다.
셋째, 노동자는 스스로 자신의 노동력을 보존해야 한다."
   
나도 이러한 생각을 하긴 했다. 노동자와 부르조아 간의 관계를 로봇과 인간의 관계로서 비유한 것은 <기계전사 109>에서도 드러난다. 저자는 아시모프를 상당히 싫어한다. 그는 아시모프를 SF 3대 작가 중의 하나로도 평가하지 않는다.
  
"그는 분명 무시하기 힘든 작가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SF 소설의 발전에 기여한 점에 있어서 그의 기여는, SF의 거의 모든 장르를 열었던 H.G.웰즈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고, 그의 철학적 깊이나 세계관은 어슐러 르 귄이나 필립 K 딕이 애들 물장난 하는 수준이고, 그의 과학적, 논리적 엄밀성은 할 클레멘트에 비하면 중학교 과학 수준입니다. 소설적 서사의 재미에 있어서는 하인라인의 근처에도 가기 힘들고, 문장의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래리 브래드버리가 초등학교 때 작문한 수준으로 보입니다. 유머로 봐도 당연히 더글라스 아담스와 테리 프리챗이 그보다 낫지요."
  
얼마 전에 헌책방에서 아시모프의 잡문이 담긴 책을 샀는데, 거기에 아시모프가 세상을 보는 관점이 조금 나와 있지 않을까. 아직까지는 뭐라 판단하긴 어렵다. 다만 다작의 작가가 글도 잘 썼을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지 않을까. 그리고 헌책방에서 산 <양전자인간>은 그럭저럭 볼만 하겠지만, <아이, 로봇>은 영화가 별로였다. 원작은 어떠할지... 나는 <아이, 로봇>에서 파시즘의 광기까지는 느끼지 못하겠던데...
  
o 해커 강령
 
1) 컴퓨터에 대한 접근은 완전한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
2) 모든 정보는 개방해야 하고 공유해야 한다.
3) 모든 권력을 불신하고 분권화를 촉진하라.
4) 해커들은 그들 자신의 해킹에 의해서만 심판되어야 하며 나이, 성, 지위나 재산 같은 판단기준에 의거해서는 안 된다.
5) 컴퓨터를 통해 예술과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다.
6) 컴퓨터는 모든 생활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켜 줄 수 있다. (p. 73)

 
이 강령을 보면 정말 선진적이었음을 느낄 수 있지만, 지식인 냄새가 팍팍 나기도 한다. 저자도 핵티비즘 용어를 제안하고 해커들의 사회운동을 강하게 주장했던 cDc의 경우에도 엘리트주의와 소영웅주의가 드러난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평가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해킹을 활용한 사회운동은 끊임없는 조직과 선전, 교육, 토론 등으로 준비되고, 생존하고, 투쟁하는 대중투쟁과는 달리 소수의 결의와 활동으로 인한 공격 전술이라는 점에서 테러리즘과 유사한 점이 상당히 많습니다. 해커들이 일반적으로 남성 백인이며, 대체로 부유한 계급의 출신들이고, 10대들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서 이들을 부르주아 백인들의 사회적 반항일 뿐 계급 운동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p. 81)
  
o 인물 소개의 상당한 업데이트
 
책에 나오는 인물들 중 마야코프스키를 제외하고 바그너, 쇼스타코비치, 조지 오웰, 존 레논, 피카소,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 첨바왐바 등에 관한 글들은 책에서 상당부분 보완되었다. 그래서 이 부분은 블로그 등의 글을 찾아보기보다 책을 사서 보는 게 좋다.
  
얼마 전 KBS스페셜 - FTA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에서 <‘Donde Voy>의 진실에 대한 부분이 나왔다. 여기에는 목숨을 걸고 멕시코를 탈출하는 사람들의 절절한 애환이 절절하게 표현되어 있고, NAFTA 12년의 진실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라 쿠카라차>와 <관따나메라>의 노래에 얽힌 사연이 잘 나타나 있다.
 
o 폭력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신채호가 기초한 의열단의 선언문 <조선혁명선언>은 맨 마지막을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휴수(携手)하여
불절(不絶)하는 폭력 - 암살, 파괴, 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박삭(剝削)치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기미독립선언문보다 조선혁명선언이 더 높게 평가되어야 하고, 이를 추천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책이 민족대표 33인의 기회주의성을 폭로하고, 지금까지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던 신채호, 김원봉, 의열단에 대해 재평가하면서, 의열단이 소규모의 암살과 파괴활동을 일삼는 소위 테러조직에서 대중 무장투쟁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글의 묘미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어떠한 활동이 필요할까. 폭력은 여전히 혁명의 유일무기일까.
이런 문제는 풀기 쉽지 않다.
 
o 2006년 광화문에서
 
책에 나와 있는 글 중에서 제일 동의하기 어려웠던 글이 '2002년, 광화문에서'이다.
과연 인터넷의 역할이 그렇게 지대했을까. 여중생 사건과 관련된 투쟁에서 나의 기억은 저자와 다르다. 그리고 '비조직적으로 거리로 나온 네티즌' 중에 많은 수는 '목적의식적으로' 민주노동당과 권영길 후보에 반감을 가졌고, 대선에서 노무현을 부각시킬 목적을 가졌던 이들이었다.
 
나는 12월 초의 광화문에서 있었던 집회에서 터져나왔던 "깃발 내려"의 연호를 잊을 수 없다. 노란색 스카프를 맨 그들이 자신들의 상징은 놔둔 채, 투쟁의 성과를 노무현에 바치려는 행태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권영길 후보가 "얼굴 대문짝만큼 크게 찍힌 트럭", 곧 유세차를 가지고 유세를 도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집회에 참석한 것이 그렇게 문제가 되었던가. 그 많은 대중들을 모을 수 있는 스피커와 연단은 유세차였기에 제공될 수 있었다는 점은 왜 간과되어야 할까. 그 이후에 유세차 형태의 트럭은 대형 집회를 위한 필수품이 되었다.
 
또한 운동권을 여중생 범대위로 뭉뚱거리는 것에도 동의하지 못한다. 여중생 범대위는 좌우편향을 반복하였다. 대중을 끌어들인다고 광야에서, 상록수, 아리랑 등을 노래로 떼웠고, 기껏해야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리워졌다. 이건 운동이 20년전으로 후퇴한 듯한 느낌을 가지게 했다. (이 전통은 이후 반전평화을 위한 촛불집회에서도 그 양태가 반복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 나는 촛불을 들지 않는다.) 그리고 운동권끼리 모여있을 때에는 '주한미군철거가', '반미반전가' 등을 거침없이 부르면서, 생경한 구호를 아끼지 않았다. 소위 운동권 내의 우파들의 준동은 80년대 후반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러한 모습은 당연히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여한 네티즌들과 괴리될 수 밖에 없다.
  
비조직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모여든 대중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절대로 변혁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이들을 조직화하는데 실패한 운동권은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깃발을 들고 와서 자신의 소속을 표현하는 게 그리 잘못되었던가. 몇 차례 소규모 집회에서 비조직적 대중들이 깃발도 없이 서로간의 공감대를 가지고 자유롭게 진행할 수는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깃발이 없는 한 자신의 집회의 주체가 아니라 구경꾼이 될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이들은 그럴싸한 깃발이 나타나면 그대로 몰려간다. 나는 그게 두렵다.
  
2006년 광화문, 그리고 포항에서 거의 매일 촛불집회가 열린다. 하지만 깃발을 들었던 이들을 제외하고, 이에 관심을 가진 누리꾼은 많지 않다.
 
o 인터넷이 평등하다는 편견을 버려
 
이 글은 "인터넷이 광장이라는 편견을 버려!"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적이 있다. 여기에는 인터넷과 관련된 많은 주제들이 담겨 있다. 정보격차(정보불평등) 문제에서부터, 포털의 횡포, 전자민주주의, 여론조작, 인터넷의 상업화, 정보운동의 활성화 문제가 그것이다. 인터넷을 다시 민중의 광장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인터넷 자본에 의해 운영되는 현재의 인터넷 소통구조는 약자, 소수자 지원이나 시민들의 미디어 참여운동 방식으로 결코 극복될 수 없습니다. 경제적 불평등과 정보의 빈부 격차를 바탕으로 하고, 그것을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이익을 취하는 현재 구조를 방치한 채 그들의 시혜를 요구하는 운동은 단기적으로는 유효하지만, 대안적인 전략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 커뮤니케이션구조에서 자본주의적 소유제도 그 자체를 뒤집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계급문제는 계급적 관점에서 풀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본이 사유화한 인터넷을 사회화하고, 그 운영방식을 민주화하는 것을 전략적 목표로 두고, 그 안에 다양한 전술적인 활동을 배치하여야 할 것입니다.
 
정보통신운동은 그동안 전문 활동가 중심의 운동 방식을 버리고, 대중운동의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운동이 대중화되지 못한 상태에서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구조의 '사회화'와 '민주화'는 불가능하며, 소수의 공허한 외침일 뿐입니. 이를 위해서는 우선 '인터넷 미디어의 사회화' 과제를 전 사회운동진영의 공통과제로 설정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미 국내에서는 정치적 운동과 결합하여 KBS 시청료 거부 운동이나 안티조선운동 등 대중운동으로 발전한 미디어 운동의 사례가 있습니다. 기존 운동 사례에 대한 분석을 통해 '미디어의 사회화 운동'의 운동 진영내 공통 과제로 만들고 대중화하기 위한 장기적인 전략을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인터넷 커뮤니케이션구조를 사회화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 시스템과 인터넷의 운영원칙인 인터넷 거버넌스를 사회화하고, 정보 내용물 공공성 획득, 기술의 사회화와 그 운영의 민주화가 필수적입니다. 또한 이와 함께 이러한 지향을 가진 대안 미디어의 구축을 병행해야 할 것입니다. (pp. 318-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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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1 17:24 2006/08/01 17:24

2 Comments (+add yours?)

  1. NeoScrum 2006/08/01 19:59

    세세한 의견 잘 읽었습니다. ^^;;
    그런데, 제가 고백해야 할 게 하나 있습니다. 그 책에는 몇가지 (제 생각에는 심각한) 착오와 많은 오타가 있습니다. 수차에 걸쳐 수정하고, 몇차례나 자료들을 확인했음에도 그런 착오들이 끝내 사라지지 않고 남았더군요. '아이, 로봇'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본래는 '아이 로봇'이 아니고 'AI'이었는데, 처음 쓸 때 실수로 '아이 로봇'으로 쓴 이후 계속 그 부분을 읽을 때 제 머리속으로는 'AI'라고 읽으면서 고치지 못한 채 출판되었습니다. 다음에 판을 수정하게 될 때는 수정해야 되겠지요. 물론 다른 착오들도..

     Reply  Address

  2. 새벽길 2006/08/02 16:15

    그랬군요. 그러고 보니 홍실이님이 아이 로봇 가지고 한 말씀 하셨던데요. ㅋㅋㅋ
    암튼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다.

     Reply  Add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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