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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민주화 시대, 진보의 대안을 묻는다 (조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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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볼만한 조희연 교수의 글.
아래는 그 중 몇 부분을 발췌.

 

포스트-민주화 시대, 진보의 대안을 묻는다
[한국 사회, 희망의 모색②-전문]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소장)
2006-09-18 15:21 ⓒ 2006 OhmyNews 

 



사실 박정희체제도 자신의 독재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개발을 성취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성취함으로써 개발이 동반하는 새로운 '성공의 위기'에 의해 직면하였고 그것을 적절히 응전하지 못함으로써 붕괴하였다. 마찬가지로 이제 민주세력은 자신들이 주창했던 민주주의가 '성공적으로' 성취되면서 나타나는 새로운 도전과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그동안 사회적 세력으로 국가권력에 대결하면서 투쟁하던 세력에서 자신들이 통치세력이 되어 직접적으로 위로부터(자신들의 요구하는 의제를) 집행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통치엘리트가 된, 그러면서 과거의 반독재민주세력을 계승하는 제도권 중도자유주의정치세력의 문제점이 현재의 위기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보수세력에게는, 혹은 대중에게는 열린우리당을 포함하여 제도권 중도자유주의정치세력이 과거의 반독재 진보세력의 일정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위기는 일정 측면에서 '우리 모두'의 위기로 된다. 중도자유주의정치세력의 붕괴가 급진진보의 대중적 기반의 확대로 나타나면 문제가 없을 텐데, 대중의 눈에서 중도자유주의정치세력과 급진진보 세력 역시 동일한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주도세력이고 동일한 진보적 세력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위기의 '전염성'이 존재한다.
  
국가권력 담당세력으로서 중도자유주의정치세력이 이른바 개혁의제들을 설정하고 추진해야 한다는 당위성만을 인식하였지 그것을 '헤게모니적'으로 추진하는 데 대한 고민이 부재했다는 것이다. 즉 특정한 개혁의제에 대해서 얼마나 철저하게 그것을 견지하느냐 하는 점만이 사고되었지 복합적 현실 속에서 어떻게 그것을 지혜롭게 추진하느냐 하는 데 대해서는 고민이 부재하였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이나 보수적 정치세력이 하나의 개혁의제에 대해 정략적 '쟁점화'를 시도한다고 할 때 이에 대항하여 역(逆)쟁점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치엘리트로서 보다 원숙한 위치에서 '탈(脫)쟁점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역쟁점화에 매몰됨으로써, 예컨대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의 비판에 동수준에서 대응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일개 신문과 동차원에 놓이게 되는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반독재 민주세력의 일부가 국가권력 담당자가 되어 있는 이상, 독재 하에서 구축된 보수의 사회적 기반 혹은 조직적 기반을 어떻게 해체시켜 가면서, 현재의 중앙정치의 민주화 수준만큼 보수의 사회적 기반의 민주화를 성취할 것인가하는 것을 고민했었어야 한다.
 
정작 민주화가 되면서는 다양한 진보집단들이 스스로의 경계를 허물면서 보수의 분화를 촉진하고 보수집단의 일부를 포용하는 헤게모니적 실천의 노력을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시대정신이 된 국면에서도 독재 시대의 경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행위하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독재에 저항하기 위한 자기희생의 과정에서 '민중'이라던가 운동권이라고 하는 범주가 형성되었다.
 
중도자유주의 통치엘리트나 장외의 급진진보집단 모두가 '경계허물기'를 통해서 외연을 확대하고 헤게모니를 확장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동일한 인식태도(mentality)에서 연유한다.
  
장외의 급진진보세력의 행위양식과 사고양식과 중도자유주의정치세력의 행위양식과 사고양식이 분화・분열되어야 한다. 서로의 '일체감'을 확인하기 보다는, 서로를 '대상화'하고 서로가 상이한 위치에 있음을 인식하고 그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달라져야 한다.
  
문제는 개혁적 의제(비록 굴절되더라도)가 어떻게 사회적인 보수세력의 저항 속에서 그리고 관료적 굴절의 조건속에서 헤게모니적으로 실현할 것인가하는 점이다.
  
시민단체도 김대중 정부와 동일화될 필요가 없이 의제제기집단으로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 좋았고 김대중 정부도 의약분업이라는 의제를 수용하면서도 통치엘리트로서 가능한 문제점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시민단체와는 다른 고려 위에서 의약분업을 추진하는 방식이 좋았을 것이다.
 
의약분업이라는 목표를 시민운동이 제시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최소의 문제를 수반하면서 추진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현실적 고민을 해야 한다. 이는 장외의 시민운동가가 아니라 통치엘리트가 고민해야 하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장외의 사회운동은 '의제의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고, 주어진 현실 속에서 이를 지혜롭게 수행하는 것은 통치엘리트의 또다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거리의 진보투쟁세력은 '단일변수'적 접근을 하면서 의제지형을 확장해간다. 그러나 통치엘리트는 '다변수적' 접근 속에서 의제의 현실적 추진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진보진영 내부에는 바로 이러한 측면에 대한 고민이 없다. 의제를 진전시켜가기만을 바라는 식으로, 통치엘리트들도 사고한다. 그리고 현실이 복잡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원래의 의제를 버리고 보수적 입장으로 급선회한다.
   
통치세력으로서의 의제실현의 복합적인 문제점들을 고민하면서 중도자유주의 통치엘리트와 의제지평을 확장하면서 한국사회의 진보화를 위해서 거리에서 투쟁하는 진보세력으로 분리정립되어야 한다. 그런데 형식적으로는 분화되어 있는 것 같지만, 동일한 인식태도가 존재하는 것을 본다.
  
반독재민주세력의 일부이었던 통치엘리트들의 문제가 부메랑이 되어 진보개혁세력 모두의 문제로 되는 현실을 보면, 오히려 분화되고 분열되고 상이한 태도와 행위양식이 나타나야만이 '부정적인 부메랑' 효과가 최소화될 수 있다. 아니 부정적인 부메랑 효과를 넘어, 보수의 새로운 활성화를 촉진하는 계기를 막아야 한다. 이러한 분리정립의 사고가 장내와 장외의 민주진보세력 모두(각기 다른 형태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일체화된 사고가(특히 시민운동의 경우) 장외의 민주진보세력 내부의 급진성을 역으로 질곡하는 식으로 작동한다. 명확한 분리가 모두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
  
현재의 위기의 핵심적인 구성요소는 포스트-민주화시대의 대안담론이 민주진보진영 내부에 부재하다고 하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맥락 속에서 전개되는 민주화가 역설적으로 투명성이나 민주성을 높였지만, 더욱 악화된 불평등과 경제적 고통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민주적이고 투명한 계급사회'가 출현했다.
  
문제는 이러한 포스트-민주화 시대에 중도자유주의정치세력이나 급진진보세력들이 대중들의 지향을 선도하는 미래지향적 대안과 비젼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치엘리트로서 당장 실현할 수 있는 중도자유주의적의 프로젝트와 중장기적인 미래비젼을 담는 급진진보적 프로젝트는 분립정립되는 식으로 다양하게 모색되어야 한다.
  
중도자유주의적 프로젝트는 보수세력과 구별되는 중도자유주의세력의 입장에서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결과를 상쇄하는 프로젝트일 것이며, 급진진보세력은 우리 사회의 의식적 진보화를 촉진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자체를 쟁점화하고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속에서 확대재생산되는 전지구적 자본질서를 구조적으로 재편하는 대안적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다원적인 진보가 대중에게 제시될 수 있어야 한다.
  
장외의 급진진보세력의 과제의 하나는, 바로 강북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당한 계급의식을 갖도록, 나아가 노동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계급계층들이 정당한 계급의식을 갖도록 계몽하고 의식화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중도자유주의 통치세력들은 현존하는 계급의식의 지형 속에서 어떻게 개혁의제들을 관철할 것인가하는 고민을 해야 한다.
  
민주세력이 성공한 것은 민주세력이 민주주의라는 의제, 민주개혁이라는 의제를 제기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자신들의 희생들과 헌신 속에서 대중들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장외의 급진진보세력은 87년 6월 민주항쟁 속에 내재된 의제를 넘는 개혁의제를 대중적 의제로 만들기 위해 전진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정치적 개혁주의는 더 이상 중도자유주의 세력을 보수와 구별시켜주는 진보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중도자유주의정치세력의 '정치적 개혁주의'는 신자유주의에 응전하는 '사회경제적 개혁주의'로 전환해가야 한다.
 
참여정부 이후, 정당개혁·대연정·과거청산·사학법 등 정치적 이슈들에서 개혁성이 표출되었다. 그러나 사실 사회경제적 의제에서 개혁성이 표출된 것이 거의 없다. 비정규직 문제·교육·부동산·보건의료·재정조세 등이 사회경제적 핵심정책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8·31 부동산 정책처럼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태에서 더 이상을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정책만이 추진되었을 뿐이다. 악화방지 정책을 넘어서서, 적극적인 사회경제적 정책이 필요하다. 국민정부의 생산적 복지와 다른 참여적 복지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바로 이러한 사회경제적 개혁주의를 담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참여적 복지는 수사이거나 절차의 문제로 왜소화되어 있다.
  
반세계화투쟁과 반신자유주의투쟁의 새로운 고양 속에서 신자유주의시대의 신개발국가모델이나 새로운 경쟁력 지향적 국가 모델을 뛰어넘어 새로운 공적 기능이 강화된 사회적 국가모델이 모색되어야 한다.
 
급진진보세력은 중도자유주의세력이 신자유주의로 경도되어가는 것을 비판하면서 이를 견인하고 중도자유주의세력의 사회적 성격을 강화하기 위해서 투쟁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의 대중적 기반을 강화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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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1 22:03 2006/11/01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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