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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ㆍ정승일. 2005. 『쾌도난마 한국경제: 장하준ㆍ정승일의 격정대화』. 서울: 부키. 발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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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후에 짧게나마 그 때 그 때 정리를 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그 책을 읽었는지조차 애매하게 된다.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는 2년 여 전에 읽었는데, 간략하게나마 정리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된다. 물론 이 책의 주요한 내용은 『개혁의 덫』이나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의 일련의 저술 속에서 요약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풍부한 예들을 정리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쾌도난마 한국경제: 장하준ㆍ정승일의 격정대화』는 『개혁의 덫』과 함께 읽어보면 좋은 책이다. 이것도 산 것은 꽤 되었는데, 한달 전 쯤에 읽었다. 사실 읽는데 그리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제는 장하준 교수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대충 파악할 수 있을 듯하고, 그의 논리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동의할 수 없는 지점들이 많다. 그는 여전히 조선일보에 글을 쓰고 있고, 경제 분야 외의 다른 영역들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부족한 면이 보인다.
 
『쾌도난마 한국경제: 장하준ㆍ정승일의 격정대화』에서는 각 장의 끝에 이종태 기자가 장하준, 정승일의 대화 내용을 정리한 것이 나온다. 이를 읽다보면 그의 정리능력이 탁월한 것에 새삼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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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ㆍ정승일. 2005. 『쾌도난마 한국경제: 장하준ㆍ정승일의 격정대화』. 서울: 부키.
  
아래 글은 이정환 기자가 발췌 정리한 것에 덧붙였다.
 
○ 오늘날 이른바 경제 개혁을 추진한 결과 한국의 경제 종속은 더 심화되고 말았다. 그 원인은 신자유주의적 구조를 맹목적으로 도입한 데에 있다. 노무현 정부의 얼치기 개혁이 신자유주의를 가속화하고 경제의 역동성과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
 
우리는 성장을 위해 신자유주의를 도입했지만,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는 금융 자본을 위한 시스템으로 저성장을 지향하기 때문에, 선진국으로 도약하고자 열망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맞지 않는 제도이다. 신자유주의는 기업의 설비 투자를 막고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 성장은 정체되는데 금융자본의 이익은 늘어난다. 그게 바로 신자유주의의 본질이다.
 
과거의 잘못된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불가피하다 내지는 필수적이라는 주장은 별로 근거가 없다. 재벌의 과잉 투자가 문제라고들 한다. 그러나 사실 지난 50년 동안 우리는 과잉 투자 때문에 성장해왔다. 포항제철도 그렇고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도 그렇다. 과잉인가 아닌가는 지나봐야 알 수 있다. 오히려 그런 과잉 투자 때문에 금리도 높았고 저축도 계속 늘어났다. 그래서 저축과 투자, 성장의 선순환이 가능했다. 신자유주의는 그런 선순환 구조를 무너뜨렸다. 이제는 기업의 이익이 설비 투자에 들어가지 않고 주주들에게 빠져나가고 있다. 일자리는 계속 줄어든다. 
 
IMF 직전에는 분명히 과잉 투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과잉 투자는 금융시장 개방을 타고 흘러들어온 외국 자본이 조장한 것이었다. IMF 사태 직전 몇 년 동안의 과잉 투자는 우리나라 경제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 자유화의 결과였다. IMF의 진짜 원인은 재벌의 과잉 투자가 아니라 금융 자유화에 있었다. 게다가 외국 자본이 우리나라 기업들의 질적 수준을 높여 준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남미의 경우 외국 자본을 도입하였지만, 실질적으로 산업 공동화만 초래하였을 뿐이다(장하준ㆍ정승일, 2005: 42-43).
 
○ 두 사람이 말하는 종속은 1980년대의 종속이론과는 조금 다르다. 그때 우리는 엄청난 빚에 시달렸지만 결국 모두 갚아버렸다. 그게 다른 주변부 나라들,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멕시코와 달랐다. 우리에게는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등 수출 산업이 있었다. 기술 종속은 불가피했지만 결국 자립에 성공했고 종속을 벗어났다. 정작 문제는 지금부터다. 자본 시장이 개방되면서 외국 자본이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지배권을 내주는 상황이 됐다. 주주 자본주의가 확산되면서 본격적인 종속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보면 박정희에 대한 평가도 달라진다. 1961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82달러였다. 아프리카의 가나는 179달러, 아르헨티나는 400달러였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가난한 나라였다. 1960년대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은 평균 6%에 이르렀다. 6%면 12년만에 두배가 된다는 이야기다. 
 
○ 경제 발전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희생당하고 착취당한다고 해서 반드시 경제가 발전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박정희 시대에 국가와 자본은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착취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노동자를 착취해야 성립할 수 있는 체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박정희의 자립적 자본주의 시스템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박정희는 자본주의적 경제성장, 세계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비교적 자립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노동자를 착취했지만 자본주의적 경제 발전엔 성공했다.
경제 발전에 성공한 나라의 지배층과 실패한 나라의 지배층 간에는 착취로 빨아들인 부를 어디에 사용했느냐에서 차이가 있다. 박정희 시대의 국가는 이승만 체제나 남미의 경우와 같이 민중들로부터 수탈한 부를 흥청망청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적인 방향으로 투자하도록 강요하는 역할을 했다. 즉 한국의 경제 발전은 착취 때문에 성공했다기보다는 착취한 부를 효율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성공했다(장하준ㆍ정승일, 2005: 52-54).
 
○ 토지 개혁이라는 특수한 조건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경제 개발을 지휘했던 간에 현재의 수준 혹은 그 이상으로 한국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런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동일한 조건이 존재한다고 해도 누가 어떤 정책을 운용하고 어떤 행동을 취했는가에 따라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박정희 식의 경제 정책을 포함하여 대만ㆍ싱가포르ㆍ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정책에는 맑스주의의 영향력도 상당하다. 박정희는 한때나마 공산주의자였으며, 그의 정책은 신고전파 경제학적인 시장 경제 노선과는 너무 다르다. 성장을 추구했지만 전통적인 시장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시장주의는커녕 오히려 과도하게 시장에 개입하고 침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1972년 사채를 동결한 8ㆍ3 조치와 같은 경우 시장주의는커녕 사유재산 제도까지 폭력적으로 침해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박정희의 노선은 자본주의라면 몰라도 시장주의는 아니었다(장하준ㆍ정승일, 2005: 56-59).
 
○ 박정희는 자본가들의 ‘투자ㆍ소비ㆍ자본의 유출’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자본을 통제하는 것이다(장하준ㆍ정승일, 2005: 62-63).
 
○ 박정희 체제는 민주주의가 아니었고 자유주의도 아니었다. 박정희가 성공한 이유는 민주주의가 아니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유주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경제 개발에 성공한 것은 노동자와 농민에 대한 가혹한 억압과 수탈의 결과이겠지만, 고도성장이 이루어진 30년 동안 실질임금은 꾸준히 상승했다. 한국의 실질임금 상승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으며, 노동자ㆍ농민을 억압하지 않고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성공한 나라는 없다.
 
박정희의 경제개발과 같은 적극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방식의 경제 개발이 필요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 과정에서 착취와 저임금 구조를 피하는 것이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착취와 저임금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산업화가 가능한지 검토할 필요도 있다(장하준ㆍ정승일, 2005: 68-71).
 
→ 두 사람의 박정희 옹호는 재벌 옹호로 이어진다.
○ 자원도, 자본도 없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재벌 시스템은 산업의 고도화와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중소 기업 위주의 개발 방식은, 대만의 예에서 볼 수 있듯 한계를 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벌 개혁은 경제 민주화와는 무관하다. 재벌이 박정희의 개발 독재 하에서 성장하여 발전해 온 것이기는 하지만, 재벌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무모할 정도로 과감한 투자를 해나갈 수 있었다. 재벌은 경제 성장을 위한 시스템이었고, 그런 경제 성장 자체는 경제 민주화와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재벌들을 어떻게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견인하느냐는 점인데, 현재의 무조건 백안시하는 태도나 소액주주 운동으로 상징되는 영미식 주주 자본주의의 도입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서로 간에 대립과 갈등만 커질 뿐 국민 경제에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자본을 통제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미 자본 시장 개방이 이뤄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재벌을 깨면 노동자들이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들과 금융 자본만 이익을 보게 된다. 스웨덴은 발렌베리 같은 재벌을 인정해 주는 대신 세금도 많이 걷고 사회적 책임도 부담시켜 결과적으로 엄청난 재벌이 없는 영국 같은 나라들보다 훨씬 더 평등하고 부유한 사회를 만들었다.
 
유럽의 경우 재벌 가문이 그룹을 지배할 때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여할 수 있었으며, 사회적 타협은 재벌이 지배할 때만 가능하다. 하지만 초국적 금융자본은 이익을 챙겨서 떠나면 그만이며, 기업의 미래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들이 노동자들과 타협할 이유가 없다.
 
현재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유럽식으로 재벌 시스템을 일정 부분 인정해 주는 대신, 재벌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역할을 끌어내는 대타협을 이루는 것이다.
 
외환 위기 이래 발생한 일련의 경제적 문제들이 박정희의 경제 개발 노선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 시민 사회는 박정희 식 경제 정책의 모든 것을 부정한 결과, 독재자인 박정희가 시장주의와 거리를 뒀기 때문에 시장주의를 민주주의로 착각하고 고집하고 있는 것 같다(장하준ㆍ정승일, 2005: 84-89).
 
○ 신자유주의 혹은 주주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저투자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시장이 너무 잘 작동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요소 투입형 성장을 거듭했기 때문에 내실 있는 성장의 원천인 기술 발전 혹은 기술 혁신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결과 1997년 외환 위기를 맞게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렇게 외형적 성장을 비판하면서 내실 있는 성장을 주장하는 것은 시설 투자와 고용을 예전보다 줄여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내실 있는 성장론의 관점에서 보면, 투자와 고용이 줄어드는 현재의 경제 상황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저투자 저고용에 따른 저성장 시스템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아프리카형의 저투자 저성장 체제로 바뀌고 있는데도, 노무현 대통령은 ‘성공적인 시장 개혁의 결과 이제는 요소 투입형에서 총요소 생산성 증대형으로 경제 구조가 바뀌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1997년 이전에도 외국에서 설비와 기술을 수입해 학습하면서 기술 혁신과 내실 있는 성장을 해 왔다. 내실 있는 성장을 해 왔기 때문에 삼성도 있고 현대도 있다. 최근 한국 경제에서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이 끊어진 이유는 시설 투자를 안 하기 때문이다. 결국 소위 ‘내실 있는 성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고용 창출이 안되는 것이다(장하준ㆍ정승일, 2005: 102-105).
 
○ 한국 정부가 시장을 왜곡시켰기 때문에 국민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다. 한국은 식민지 경험을 가진 나라이며, 지금도 세계 최강의 열강들에게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분배와 환경만으로 강조하다가 경제 성장에서 뒤처지고 만다면, 20년쯤 뒤엔 중국이 국권을 위협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충분히 성장한 게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분배를 잘하면 그 결과로 경제 성장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추상적인 믿음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그래서 구체적 성장 정책이 없다.
 
한국의 소득 분배가 1997년 이후 급격히 악화된 이유는 한국의 금융, 노동, 무역 시장과 기업(재벌) 시스템들이 서로 맞물리면서 신자유주의에 포섭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세, 복지 등 국가의 재분배 정책만 개선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진보 좌파도 성장과 소득 분배가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는 것을 정치적으로 철저히 인식해야 한다.
 
현재 자본 시장 개방과 주주 자본주의 때문에 투자가 줄면서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으며, 노동 시장 유연화의 압력은 계속 거세지고 있다. 아무리 재벌이 밉더라도 시장 근본주의를 용인해서는 안된다. 진보 좌파라면 시장주의를 비판해야 한다(장하준ㆍ정승일, 2005: 114-119). 
 
→ 이 일련의 논의에서 시장주의와 성장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장하준과 정승일은 시장주의가 성장을 막고 있다는 논리를 펴면서, 분배를 하려면 성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성장을 하려면 시장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 투자가 불균등하게 이루어지는 바람에 소득 격차가 커지고 있다.
현재는 설비 투자 자금 중 20-30% 정도만 외부 자금이고, 70-80%는 내부 자금이다. 이것은 금융 부문에서 떠돌고 있는 돈이 기업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기업 간의 설비 투자에서, 그리고 R&D 투자에서 심각한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다.
 
경제 발전 초기엔 기업들이 내부에 쌓아둔 자금이 없기 때문에 외부에서 돈을 많이 빌리게 된다. 그래서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것인데, 이러한 현상은 경제가 성공적으로 발전하여 기업들이 수익을 내고 내부 자금이 쌓이면 개선된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외환 위기 직후 400%에 이르던 부채비율을 하루아침에 200%로 낮추라고 강요당했다. 이에 따라 은행들도 기업에 돈을 빌려 주지 않게 되고, 기업들도 부채비율을 높이느니 차라리 투자를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결국 IMF 이후에 우리 기업과 은행들이 앞다투어 부채비율 줄이기에 나선 결과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서지 않게 되었고, 그만큼 기업의 성장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놀라운 현상은 정부의 예측과는 정반대로 한국 기업들이 현재 자본시장(주식 시장과 회사채 시장)에서 공급 받는 자금의 규모가 외환위기 이전보다 적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 등의 목적 때문에 자사주 매입 같은 것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결국 주식 시장이 기업에 돈을 공급하기는커녕 기업의 자금을 삼키고 있다.
 
부채비율이 줄여서 보는 이익은 결국 주주들의 몫이다. 주주들은 부채를 늘려서 새로운 사업에 나서기 보다는 그냥 현금을 쌓아두기를 바란다. 주식시장은 기업의 이익을 수탈하는 합법적 창구가 됐다. 주주들은 돈을 벌겠지만 그 이익은 결국 기업과 나라의 미래를 희생한 대가다.
 
주식 시장을 중심으로 금융 시스템의 틀을 짜겠다는 것이 김대중 정부의 금융 개혁이었는데, 문제는 한국의 경우 은행 시스템 전체가 주주 자본주의에 포획되어 버렸기 때문에 이미 은행에서도 기업에 효율적인 자금 공급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이다. 은행들도 (외국인) 주주들의 눈치를 보면서 리스크가 큰 기업대출을 피하고 가계 대출, 주택 담보 대출에 전력하게 되고, 그 결과 부동산 시장에서 거대한 투기적 거품이 창출되었다. 지금 한국 경제의 문제점들은 경제 개혁이 잘못 실행되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잘 실현된 결과라고 봐야 한다.
 
노동 시장 유연화를 가장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은 최고경영자가 아니라 주주들이다. 노동자들을 해고하면 주식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주주 자본주의 하에서는 적대적 M&A가 이루어지면 최고경영자가 교체되는 게 보통인데, 이 경우 단체협상도 무효화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주주 자본주의 시스템에서처럼 최고경영자가 3년마다 갈린다든가, 심지어 3개월마다 분기별 보고의 결과에 따라 해임될 수 있는 국가와 일본같이 장기간의 임기가 보장되는 나라의 고용 관계는 다를 수밖에 없다(장하준ㆍ정승일, 2005:  126-134).
 
○ 은행들은 (외국인) 주주들의 눈치를 보면서 단기 수익을 창출하는 데만 급급하고 있다. 해외 투기자본인 뉴브리지는 제일은행을 인수해서 사람 자르고, 지점 줄이고, 서비스 질을 낮추었다. 이런 식으로 경영하기 때문에 회임 기간이 길고, 리스크가 큰 기업 대출은 기피하고 안전한 가계 대출에만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리딩 뱅크가 된 국민은행은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수익성이 높게 나오는 주택담보 대출이나 소호(SOHO) 대출에 주력하면서 전체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한 정부 개입에 대해서는 ‘관치 금융’이라며 거부하고, 학자금 융자처럼 단기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대출은 포기하고 있다. 그 결과 돈이 몰리면서 부동산은 폭등하고 중소기업에는 돈이 마른다. 은행과 대기업이 돈을 벌지만 그 돈은 주주들에게 빠져 나간다. 미래는 암담하지만 주주들은 먼 미래를 신경쓰지 않는다. 언제든지 떠나면 그만이니까. 그것이 신자유주의이고 주주 자본주의이다(장하준ㆍ정승일, 2005: 139-141).
 
○ 노동시장에서 ‘수량적 유연성’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기능적 유연성’이다. 일본 기업들은 내부 교육 시스템을 통해 노동자들이 여러 가지 기능(다기능)을 갖출 수 있도록 해준다. 때문에 시장의 수요가 변화하여 현재와 다르거나 더욱 개량된 제품을 생산해야 할 때 기존의 노동자들을 생산 라인만 바꿔서 그대로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고, 노동자들을 자를 필요도 없었다.
노동시장의 기능적 유연성이 일본에서 작동할 수 있었던 것은 수량적 유연성이 없었기 때문에, 즉 일자리가 불안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노동자에게 투자할 인센티브가 생기고, 노동자도 그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기술을 배우려는 인센티브를 가지게 된 것이다(장하준ㆍ정승일, 2005: 146-147).
 
○ 신자유주의의 천국, 영국의 경우를 살펴볼 필요도 있다. 영국병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금융자본의 경제 지배에 있다. 영국 산업 자본(제조업) 입장에서는 파운드화가 약세인 것이 유리하지만, 금융자본이 경제를 쥐고 흔들면서 파운드화가 강세를 유지하게 되고, 영국 제조업들은 국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기업들은 주주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다 보니 계속 단기적 이익만을 추구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장기적 투자나 기업 운영은 포기하였다.
 
영국의 노동조합 구조에도 문제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나, 강성노조가 생길 수밖에 없는 요인을 살펴야 한다. 영국은 복지 시스템이 부실하기 때문에 노동시장에서 한번 떨어져 나가면 인생이 끝장난다는 인식이 노동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고, 노동자들은 물러설 데가 없었기 때문에 신기술 도입에도 목숨 걸고 파업에 나섰다.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노동자들은 필사적으로 저항에 나설 수밖에 없다.
 
기업에 들어가 월급을 받으면서 평생 먹고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진 상황에서는, 회사 경영 상태가 안좋아지면 잘릴 수 있으니 근무하는 동안에 파업 많이 해서 노후 보장 대책을 마련해 놓자는 선택을 하게 된다. 노조는 회사가 어려워지거나 노동시장이 더 불안해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조합원들의 이익을 쟁취하려 하고, 이를 위해 열심히 파업해서 임금 올리고 신기술 도입을 저지하게 된다.
 
금융 중심의 경제 시스템으로 인해 기업들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지속적인 투자에 실패하면서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는 저임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것은 ‘노조가 강성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떻게 노사관계를 조절하면 노사 평화를 정착시키고, 사회적인 화합을 이루어내며, 그것을 통해 우리 경제의 생산성을 장기적으로 향상시키면서 업그레이드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공기업 민영화를 했더니 단기적으로 큰 수익을 얻으려 할 뿐 설비 투자는 기피하는 경향이 매우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공기업 활동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공공성인데, 공기업들이 민영화되어 주주 이익 극대화라는 주주 자본주의 원리에 매몰되면서 공공성이 무너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탈규제의 양지가 복제양 돌리라면, 음지는 광우병이다. 광우병의 원인은 축산업 규제가 약화되면서 동물의 뼈를 초식 동물인 소에게 먹이는 것이 허용되었기 때문이었다. 철도 산업을 민영화한 다음에 투자를 안하고 수익률 높인 결과 열차 사고가 빈발하였다. 영국에 고속철도가 없는 이유는 철도 산업이 민영화되어 버린 탓에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기수익을 올리려고 노조를 탄압하고 해외에서 저임금 노동자를 수입해 왔지만, 장기적으로 기업은 경쟁력을 잃고 줄줄이 망했다. 대처가 망국병을 치유했다고 떠들었지만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장하준ㆍ정승일, 2005: 149-171).
 
○ 한국 노동운동의 가장 큰 착각 중의 하나는 반재벌 투쟁과 반신자유주의 투쟁이 함께 갈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민영화된 포스코는 재벌의 지배 하에 있는 기업이 아닌데도 제대로 된 노조가 없다. 포스코는 ‘주주 가치에 따른 경영’, 즉 주주 자본주의적인 경영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
 
재벌은 일정 정도 사회적 통제의 범위에 들어가 있지만 금융자본, 특히 외국 투기자본은 그렇지 못하다. 론스타 같은 투기 자본은 한국 사회에 대해 아무런 사회적 윤리적 책임도 없는, 익명의 인간들이다.
 
재벌을 적으로 삼지 말라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상황은 노동운동의 주적이 재벌은 아니다. 이른바 전문 경영인이 더욱 주주의 이익에 복무한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전문 경영인이 등장했다는 것은 기업에 대한 주주의 압력이 훨씬 더 강해진다는 의미이고, 이 주주들은 재벌 기업이든 독립 기업이든 상관없이 정리 해고를 하고, 비정규직 채용을 기뻐할 수밖에 없는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다.
 
노동운동이 국민 경제 전체를 보는 시각에서 아직 약하다. 노조 조직률이 상당히 낮고 그나마 재벌계 대기업 노조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개혁의 가장 큰 피해자인 미조직 노동자들의 이해까지 반영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노조 쪽은 주적을 잘못 설정한 듯하다. 노동운동이 재벌과 맞서 싸운다면 자칫 발등을 찍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재벌은 손쉬운 상대이지만, 그보다 심각한 적은 신자유주의의 물결을 타고 들어오는 외국 자본이다. 노조 쪽은 국민 경제 전체의 시각에서 문제를 볼 필요가 있다. 노동운동의 주적은 결국 초국적 금융자본과 시장 근본주의다(장하준ㆍ정승일, 2005: 174-183).
 
○ ‘국가에 대한 냉소’의 대안이 시장일 수는 없다.
‘관치 금융’이라는 용어가 ‘욕’ 비슷하게 통용되고 있다. 우리은행 그룹은 78.5%의 지분이 정부 소유이기 때문에 주주 자본주의 논리로 따져 봐도 우리은행은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절대 다수 주주인 국가(정부)가, 국민 경제적 필요에 따라 은행에 개입하는 것을 ‘관치 금융’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국가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왜곡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관치와 관치 금융은 장군 출신의 제왕적 대통령들의 무소불위적 권력을 배경으로 자의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던 경제 관료들의 권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관료주의와 관치 금융을 비판한다는 명분하에 행정부의 경제적 역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시장과 기업의 자유, 즉 자율적 권력화를 주장하는 것이 자유주의인데, 제대로 된 민주주의자라면 차라리 행정 및 관료 조직을 올바르게 통제하는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 낫다.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정부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이 ‘正道’이고 ‘개혁의 길’로 인식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미국식 시스템은 ‘돈 많고 배운 것 많은 사람들에게 유리한 원리’나 다름 없는데, 그게 ‘정정당당하게 같은 조건에서 한번 경쟁해 보자’는 식의 애매한 경제적 비전과 민주주의, 자유, 투명성 등의 애매한 철학적 개념들로 장식되어 있다.
 
보수 인사가 반시장주의로 몰면 오히려 ‘시장이라는 것은 도구에 불과하다. 시장이 필요하면 이용해야겠지만, 필요하지 않으면 부술 수도 있는 거다’ 하는 식으로 치고 나가야 한다(장하준ㆍ정승일, 2005: 186-199).
 
○ '연기금을 민간 기업에 투자할 때 그 의결권의 행사를 인정하느냐‘의 문제.
의결권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공익을 위해 의결권을 사용할 수 있는 길이 막혀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연기금 운용 기관의 정관에 민간 기업에 대한 투자의 목적을 적절히 규정해 놓으면 될 것이다. 예컨대 ‘국민 경제에 대한 공헌, 단기 수익이 아니라 장기 수익이 목적일 때만 투자 가능하다’는 식으로 규정한다.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해서 그 손발을 묶어 놓으면 정부의 공공기능이 무력화된다. 그렇다고 너무 권한을 주면 관리들의 전횡이나 부패로 귀결될 수 있다.
원칙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부에 힘을 주는 것이 옳다.
 
힘 있는 정부를 불온하게 여기는 것 자체가 박정희에 대한 반사적 거부이다. 박정희가 시장을 억압했기 때문에 우리는 시장을 풀어줘야 한단 말인가. 그게 과연 민주주의인가. 정부의 힘을 뺏는 것이 민주주의는 아니다.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민중들은 오히려 자유주의자들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쟁취해냈다. 민주주의가 자유주의를 눌렀는데, 이제 다시 신자유주의가 민주주의를 누르고 있는 상황이다.
 
신자유주의 세력들은 ‘정치로부터 주요 정책 기구의 독립성’을 가장 강조한다. 국가(정부)로부터 ‘중앙은행의 독립성’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심지어 각종 규제 기관도 정부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 점에서 신자유주의는 과거에 민주주의로 인해 빼앗긴 시장의 권력을 되찾자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중앙은행이 국가로부터 독립하면 금융 자본의 이익을 수호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수도 있다. 국가는 그나마 원리적으로라도 전체 국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그래서 노골적으로 특정 세력의 편을 들 수는 없는 조직이다. 그래서 유럽의 경우 좌파들이 오히려 중앙은행의 독립을 반대하고 있다.
 
국가의 역할에 관련된 논의들은 ‘시장이냐 반시장이냐’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질문을 ‘민주적인 국가(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로 바꿔야 한다.
 
관치 그 자체를 비판하고, 관료주의 그 자체에 욕을 퍼붓는 것은 별로 효용이 없다. 차라리 관료들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방법,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조직이 국민 앞에 투명해져야 한다.
 
현재 많이 사용되고 있는 투명성이란 ‘기업의 주주에 대한 투명성’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젠 ‘국민에 대한 국가 조직의 투명성’이 필요하다. 국가가 공공성 수호 차원에서 벌이는 일에 무턱대고 ‘관치’를 부르짖으며 기를 죽이기보다, 국가 조직을 국민 앞에 투명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관료들에 대한 민주적인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관료주의는 타당하다. ‘관치는 불가피하지만 불완전하기도 하니까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 관료들을 견제해야 한다’는 시각이 훨씬 현실적이다. 국가의 역할과 관료주의를 부인하면 그 대안이 시장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장하준ㆍ정승일, 2005: 201-206).
 
○ 문제는 양심이 아니라 인식이다. 역사와 사회, 경제와 정치에 대한 냉혹한 인식과 지각이 오히려 중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문제는 변절이 아니라 아이러니, 그것도 지독한 논리적ㆍ역사적 아이러니이다. 개혁세력과 진보 세력 전체, 그리고 보수세력 전체가 아이러니에 빠져 있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라는 개념에 대한 오해와 환상, 양자의 상호 관계에 대한 잘못된 관념이 모든 아이러니의 근원으로 보인다.
 
신자유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자유주의(liberal) 그 자체가, 자유주의가 사회적 보호를 기반으로 한 유럽의 민주주의를 해체하고 있다는 점이 비판의 초점이다.
 
자유주의가 민주주의를 동반하며 양자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믿는 자유민주주의자들의 신조와는 달리, 양자는 서로 분리되며 서로 다른 차원에 있다. 자유주의에 대한 반대가 반드시 민주주의의 옹호는 아니다.
 
박정희 체제가 경제 발전에 성공한 이유는 독재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비자유주의적 정책을 썼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긍정하는 점은 그 비자유주의적 측면이지, 반민주주의적 측면이 아니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비판 역시 경제, 사회, 노동, 복지 등의 개혁 정책에서 나타나는 그 자유주의적 측면을 겨냥한 것일 뿐, 정치, 외교, 국방, 사법 분야에서의 개혁 정책에 나타나는 그 민주주의적 측면이 아니다.
 
우리 사회와 경제가 추구해야 할 국가 전략은 ‘민주주의를 위하여 자유주의를 내던지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장하준ㆍ정승일, 2005: 235-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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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9 12:46 2008/07/19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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