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가 진정한 진보?
민주주의|국가론|정치학|철학 등 View Comments
2009년 07월 27일 22:49
아래 기사에 딱히 주목할 만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문정인 교수가 뉴라이트 전문가도 아니지만, 옮겨오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뉴라이트가 진보를 표방하는 게 남는 장사인지 여부는 확실하진 않지만, 적어도 뉴라이트들에게도 보수보다는 진보가 더 우월한 가치로 다가가는 것 같다. 그건 그렇고, 뉴라이트가 언제부터 자유주의를 전세낸 것인지... 그들이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도 올곧게 투쟁하는 모습만 보여주었어도 고개를 끄덕여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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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 광고낸 뉴라이트 “우리가 진보” (미디어오늘, 2009년 07월 16일 (목) 11:11:28 류정민 기자)
‘자유주의 진보연합’ 창립식…진보정당 “뉴라이트로 장사 안되니까 속임수”
‘자유주의진보연합은’은 16일 오후 한국언론회관에서 창립식을 열기로 했다. 자유주의진보연합에는 임헌조 전 뉴라이트전국연합 사무처장, 최진학 뉴라이트 전국연합 정책실장, 변철환 뉴라이트전국연합 대변인, 김종규 전 한국청년회의소 인천지부 수석 부회장, 이용원 동서디지털방송 대표이사 등이 공동 대표로 참여한다.
자유주의진보연합은 조중동에 낸 신문광고에서 “민주당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전교조 진보연대가 진보입니까”라고 물으며 “자유주의가 진정한 진보”라고 주장했다. 자유주의진보연합은 창립선언문에서 “진보를 가장한 허황된 급진세력들로부터 이제 ‘진보’를 되찾아 와야 한다”면서 “좌파들이 만들어 놓은 낡은 프레임을 깨고 선진한국의 문턱에서 표류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개혁시키는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뉴라이트전국연합 정책실장을 지낸 최진학 공동 대표는 “‘진보’란 보수자유주의자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단어”라며 “진정한 ‘진보’와 대립각을 세우는 행동을 일삼으면서 스스로를 ‘진보’라고 참칭하는 세력들에게서 ‘진보’라는 단어를 되돌려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철 진보신당 대변인은 “진보주의의 가장 큰 덕목이 자신과 반대되는 사람이나 세력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다. 경쟁 상대를 제거해야 할 세력으로 간주하는 게 바로 수구적인 모습이다. 진정으로 진보를 표방하고 싶다면 다른 이들의 생각에 열린 자세를 가지라”면서 “뉴라이트로 장사가 안 되니까 이름만 살짝 바꿔서 국민에게 속임수로 다가가려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뉴라이트, 보수 자유주의만 강조 양극화 눈감아” (한겨레, 이세영 기자, 2009-04-01 오후 05:58:43)
‘한국 정치의 이념과 사상’ 펴낸 강정인 교수
“한국, 서구사회와 같은 진보적 자유주의 전통 취약”
민족·급진주의 등 4대 이념으로 민주화 과정 설명
“자유주의가 독재의 명분으로 활용되는 가운데 사회주의는 과잉억압되고, 민족주의는 신성화됐습니다. 이걸 ‘일탈’이나 ‘파행’으로 보긴 어렵습니다. 한국 정치사회가 갖는 고유성과 특수성의 결과라고 봐야지요.”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자유주의·보수주의·민족주의·급진주의의 경쟁과 타협이란 관점에서 정리한 <한국 정치의 이념과 사상>(후마니타스)이 출간됐다. 집필에는 강정인 서강대 교수를 비롯해 김수자 이화여대 교수, 문지영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원, 정승현 서강대 교수, 하상복 목포대 교수가 참여했다. 대표 필자인 강정인 교수는 1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한국의 현대사를 “서구 근대가 300여년에 걸쳐 발전시킨 여러 이념들이 압축적이고 필사적으로 투쟁해온 역사”로 규정했다.
서구와는 다른 한국적 특수성을 강 교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1930년대 독일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가 개념화한 이 용어는 사회변화의 속도가 빠른 후발 근대화 국가에 나타나는 과거 질서와 미래 질서의 동시적 병존 상태를 가리키는데, 강 교수는 이것을 한국 정치질서의 모호성과 불안정성을 해명하기 위해 사용한다. “서구에서는 자유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보수주의가 출현하고, 이후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사회주의가 등장합니다. 반면 한국 같은 후발국가에서는 구질서의 이념이 잔존하는 가운데 온갖 근대 이념들이 동시적으로, 급작스럽게 출현합니다. 이 때문에 보수주의 안에 과거 질서인 권위주의와 미래 질서인 자유민주주의가 병존하는가 하면, 같은 시기에 등장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정치적 헤게모니를 두고 격렬하게 충돌하게 되는 거지요.”
강 교수가 볼 때 보수주의 정권인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부가 붕괴한 것은 그들이 ‘세계시간의 압력’에 의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자유민주주의라는 지배이념이 권위주의적 통치행태와 충돌하면서 지속적인 정당성 위기를 불렀기 때문이다. 서구에서와 같은 ‘진보적 자유주의’의 전통이 취약한 것도 마찬가지다. 해방 직후 한국의 정치현실을 자유주의적으로 개조할 수 있는 이념적 활력과 계급 역량이 취약했던 상황에서 자유주의보다 더 광범위한 호소력을 지닌 사회주의의 도전에 직면하게 되자,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일거에 보수·반동화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최근 강 교수가 주목하는 것은 뉴라이트 등이 주도하는 ‘보수의 쇄신’이다. 한국 보수주의는 저항적 자유주의의 전통을 이어받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본격적인 자기변신에 나서는데, 이들은 민주화된 정치현실과 게임법칙을 수용하고 보수주의를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에 대한 지지와 탄탄히 연계시킴으로써 정치적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강 교수는 이것을 ‘보수세력의 자유주의화’로 정의한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명실상부한 지배이념의 지위를 확보합니다. 아울러 권력을 상실한 과거 보수세력이 새 정부의 개혁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법치주의와 헌정주의에 호소하게 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입지가 한층 강화된 것이죠.”
하지만 보수의 쇄신에 대한 강 교수의 평가는 후하지 않다. “자유와 시장경제를 강조하면서 복지와 분배에 반대하고, 시민의 정치참여 확대를 포퓰리즘이라 비판하는” 그들의 논리는 서구와 다른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은 서구와 달리 복지와 분배정책이 취약한 신생 민주국가입니다. 이 상황에서 자유와 시장경제만 강조하면 사회적 양극화는 한층 심화될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성취한 정치적 민주주의의 존립마저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진보세력을 향한 고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민주주의에서 전진과 후퇴는 ‘3한4온’ 식으로 교대되는 법”이라며 “반동의 시기에는 스스로를 반성하면서 전열을 재정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의 ‘법치’ 논리를 무작정 비판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는 아니라는 지적도 덧붙였다. “법을 밥 먹듯이 어기던 사람들이 법치를 들고 나오는 게 고깝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달리 보면, 위법을 일삼던 사람들이 법을 강조함으로써 법치 자체가 탄탄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법치가 상호보완적이란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들이 ‘법 법’하는 것을 용인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를 법적 안정성만 중시하는 실정법 지상주의자로 오해해선 곤란하다. 그는 1994년 <소크라테스, 악법도 법인가>를 통해 형식적 법치주의의 맹목성을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런 그를 사람들은 “관용과 비판정신을 두루 갖춘, 자유주의의 이념형에 충실한 몇 안 되는 지식인 가운데 한 명”으로 꼽기도 한다. 송두율 교수의 ‘내재적 접근법’을 누구보다 신랄하게 비판한 그였지만, 재판정에 나가서는 “학문적 저술은 정치적 잣대가 아닌 학문 논쟁을 통해 비판해야 한다”며 검찰의 사법권 남용을 비판했던 일은 유명하다. “개인적으론 ‘착한 자유주의자’란 호칭이 맘에 듭니다. 새가 날려면 왼쪽 날개 오른쪽 날개 다 있어야 하는데, 저는 좌든 우든, 어려울 때 ‘구원투수’ 로 나서는 게 체질에 맞는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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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칼럼] 뉴라이트의 해괴한 ‘진보’ 탈환전 (한겨레,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09-07-26 오후 09:09:08)
지난 7월16일치 주요 일간지 여러 곳에 아주 해괴한 5단 전단 광고가 대대적으로 실렸다. ‘자유주의 진보연합’이라는 단체의 창립을 알리는 이 광고는 “자유주의가 진정한 진보다”라고 선언하면서 민주당,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전교조, 진보연대 모두를 기득권에 안주하는 수구세력으로 싸잡아 비판한 바 있다. 또한 이 광고는 “종북주의자, 가짜 민주주의자들이 사취해 갔던 ‘진보’의 의미를 탈환하기 위한 싸움의 시작”을 의미심장하게 알리고 있다.
보수의 ‘진보 탈환전’은 지난 4월 박효종 교수를 중심으로 이미 선포되었다. 박 교수는 정명론(正名論) 운운하며 “헌법적 가치에 대한 존경심도 없고 세계사적 흐름이나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그리고 진보의 이름값도 제대로 못하는 친북좌파 세력을 “‘진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검은 백조’처럼 모순적 표현의 극치”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 비판을 살펴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도대체 무엇이 진보인가? 진보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보통명사로서 진보이다. 이는 주어진 사회현상에 만족하지 않고 이를 부단히 개선하여 앞으로 나가는 것을 뜻한다. 보수진영에서는 의미론적 혼선을 피하기 위해 ‘진보’ 대신 ‘선진’이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해 왔다. 이 경우 ‘진보’라는 용어가 ‘사취’당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고유명사로서의 진보 개념이다. 이는 19세기 말부터 미국과 유럽에서 발흥한 진보주의에서 파생한 개념으로, 자본주의 심화와 민주주의의 기득권화에 따른 각종 모순과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한 이념적·정책적 대응으로 정의 내릴 수 있다.
따라서 진보주의는 국가 개입을 통한 시장 실패의 교정, 빈민 구제, 교육, 의료서비스의 보편화 등을 통한 적극적 사회정책 전개, 복지를 통한 성장의 모색, 대기업의 독과점 방지, 그리고 환경 보호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정책 대안을 요체로 삼고 있다. 이와 더불어 기득권 세력의 정치적 독점 현상을 막기 위해 일반시민의 참정권 확대를 옹호했고 노사정 3자의 새로운 정치적 협의체 구성에 역점을 둔 바 있다. 이는 오늘날 미국의 민주당, 유럽의 사민당 또는 노동당의 정강 정책의 기조를 이루고 있고 이러한 이념적 사조를 자유주의(liberalism)라 칭하기도 한다.
이렇게 볼 때, 시장 우선주의, 작은 정부, 감세와 규제 혁파를 통한 성장 등 하이에크가 주장해온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에 이념적 근거를 두고 있는 뉴라이트로서는 위에 논의한 진보주의를 결코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진보’에 연연하는 것인가. 보수라는 용어가 진부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이유는 한국적 보수와 보편적 보수 간의 내재적 상치 현상에 있다. 이들이 추앙하는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은 중소상인과 노동자, 농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진보적 이념 노선을 표방했고, 이들의 또다른 영웅인 박정희 대통령 역시 자유지상주의 또는 영미식 보수주의를 정면에서 부정하는 ‘개발국가’ 모델로 경제성장을 이루어 냈다. 뉴라이트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하자. ‘하얀 백조’만 강조하고, 비판적인 인사들을 ‘종북주의자, 가짜 민주주의자’로 매도하는 동시에 정권 잡았다고 ‘진보’의 이름까지 일방적으로 바꾸려는 세력, 이들이야말로 ‘열린 사회의 적’인 것이다. 이제 제발 정명과 색깔의 소모적 논쟁에서 벗어나 겸허한 자세로 소통, 화해, 통합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2009.8.3 추가
손호철 교수가 뉴라이트의 진보 표방과 관련하여 이와 마찬가지로 liberal을 진보로 오독하고 있는 한국의 자유주의 세력에게도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사실 후자가 더 필요한 작업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의 번역본 또한 원저자가 liberal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부분을 자의적으로 (한국적 현실에 맞춰) 진보로 번역하였다. 이런 식의 오용이 진보에 대한 엉뚱한 인식을 부채질한다. 저들 자유주의자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진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좌파, 사회주의에 대한 오용의 논란도 언급될 수 있겠다. 진보신당, 민주노동당은 좌파정당일까. 최근에 진보신당 내의 의견그룹으로 출범한 사민주의 정파는 사회주의자들일까. 여기서도 한국적 현실이 의미가 있기는 한데...
'진보'가 그렇게 부러운가? (프레시안,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 2009-08-03 오전 8:18:12)
[손호철 칼럼] 극우도, 자유주의도 진보를 자칭하는 기이한 대한민국
20세기 들어 자유주의는 진화를 해 자유민주주의로 발전했고 이제 사상, 표현, 언론, 집회의 자유와 같은 '자유권'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상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자유주의를 단순히 반공주의로 호도해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이름아래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사상의 자유 등을 억압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를 압살해왔다. 또 자유주의연대처럼 자유주의를 극우반공주의로 착각하는 무식이 만연해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가 먼 곳에 와서 고생이 많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더욱 기이한 광고가 언론에 나타났다. '자유주의진보연합'이라는 단체가 출범했다는 광고였다. 내용을 읽어보니 "자유주의가 진정한 진보다"라는 구호가 나타났다. 내용적으로는 자유주의연대와 마찬가지로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한참 먼 극우반공주의연대였다.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고 이들이 민주노총, 전교조 등 흔히 진보세력이라고 불러온 세력은 '수구세력'이며 자신들이 진짜 진보라고 진보를 자청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이들의 주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이 문제를 살펴보기에 앞서 주목할 것은 냉전적 보수세력만이 아니라 자유주의세력도 진보를 자처하긴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진보를 자임했고 이를 계승한 민주당도 스스로를 진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권이라고 떼를 쓴 극우세력이 아니더라도 여러 언론과 학자들까지도 이같은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이 같은 난맥상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진보와 보수를 이해하는 다양한 방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방식은 변화에 대한 태도로 변화에 찬성하면 진보, 변화에 저항하면 보수로 보는 것이다. 서구언론 등에서 소련 동구몰락 당시 공산당을 보수파로 부른 것이 이 같은 이해에 기초한 것이다. 한국의 냉전적 보수세력이 자신들이 진보라고 주장하는 것도 어느 면에서는 이같은 용법에 기초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같은 용법은 변화의 방향, 변화의 이념적 내용과 상관없이 변화에 대한 태도만으로 보수, 진보를 논한다는 점에서 잘못된 용법이다.
두 번째 용법은 가장 널리 유포된 용법으로 진보, 보수를 상대적인 정도의 차이로 이해하는 것이다. 2002년 대선 당시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대선후보들의 입장을 점수로 환산해 노무현 후보가 가장 진보적이었다고 평가한 것이 그 한 예다. 이 같은 용법에 따르면 미국의 민주당, 김대중, 노무현 정부, 민주당은 진보이고 미국의 공화당은 보수이다. 그러나 이 같은 용법역시 문제가 많다. 미국의 민주당과 한국의 민주당이 진보라는 주장은 미국과 한국이 사회당, 사회민주당 등 노동자계급 정당 내지 진보정당이 존재하는 유럽과 달리 보수양당제를 기본틀로 한다는 점을 보지 못하게 한다.
세 번째 용법은 이념의 내용을 기준으로 한 절대주의적인 용법이다. 즉 시장과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이에 우호적이면 보수, 이에 비판적이면 진보로 보는 것이다. 즉 최소한 사회민주주의 이상의 입장(사회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이 진보라는 용법이다.
마지막으로 해체주의적인 방식으로 진보 대 보수가 하나가 아니라 젠더,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르게 해체된다는 입장이다. 몇 년 전 한 페미니즘 잡지 편집장이 여성운동의 입장에서는 박근혜가 여성운동이 지지해야 할 가장 진보적인 후보라는 주장을 해 파장을 일으킨 바 있는데 그 주장이 바로 이같은 시각에 의한 것이다.
위의 네 가지 용법 중 세 번째 용법과 네 번째 용법을 결합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용법이다. 즉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가 중심에 있지만 이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고 젠더, 환경 등 다양한 의제들에 대한 태도도 결합시켜 진보 대 보수를 이해해야 한다. 이 같은 기준에 따르면 한나라당과 같은 골수 보수세력 만이 아니라 미국과 한국의 민주당도 진보가 아니라 '보수정당'이다. 구체적으로, 보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진보도 아닌 자유주의세력, 개혁세력이다. 다시 말해, 한국의 정치세력은 보수 대 진보의 이분법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고 1) 한나라당과 같은 냉전적 보수(예전의 수구), 2) 민주당과 같은 자유주의 개혁세력, 3)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같은 진보세력이라는 삼분법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아니, 한국정치를 넘어서 세계적으로도 보수(the conservative), 자유주의(the liberal), 진보(the progressive)의 세 세력이 현대정치의 기본구도이다. 이중 미국은 진보는 없고 보수 대 자유주의가 대립하고 있는 반면 유럽은 이에 달리 진보가 존재하는 양상이다. 노무현 정부시절, 노무현 정부 핵심인물이었던 유시민 장관이 노무현 정부가 좌파라는 비판에 대해 유럽적 기준에 따르면 중도우파정부라고 지적한 것도 바로 이같은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위에서 지적했듯이 두 번째 용법에 기초해 자신들도 진보라고 주장해 왔다. 다시 말해,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은 실현불가능한 관념적 진보이고 자신들은 실현가능한 현실적 진보, "유연한 진보"라고 주장했다.
노무현 정부와 홍보수석이었던 조기숙 교수, 그리고 민주당 관계자들이 말하는 진보는 진보의 원어인 '(the) progressive'가 아니라 '(the) liberal'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나는 노무현 정부가 진보(progressive)가 아니라 자유주의(liberal)라고 주장해 왔는데 자신들이 liberal이라고 하니 나의 주장에 동의한 것이다. 다만 문제는 liberal을 자유주의가 아니고 진보라고 번역한 뒤 자신들이 진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progressive가 진보지, 어떻게 liberal이 진보인가? 영어단어 공부부터 다시 할 필요가 있다. 자신들이 진보세력이라고 주장하는 민주당 지지자들, 노무현 정부 참여 지식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progressive인가? 이에 대해서는 progressive는 아니고 liberal이라고 꼬리를 내릴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정치적 진보주의가 오랫동안 금기시되어 왔고 아직도 완전한 시민권조차 획득하지 못한 정치적 진보주의의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자유주의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 진보주의와 정반대에 서 있는 냉전적 보수세력까지 모두들 진보를 자임하고 나서고 있는 이유이다. 다른 나라라면 극우세력이나 자유주의세력에게 당신들이 진보(the progressive)냐고 물으면 무슨 소리라며 난리를 쳤을 것이다.
이는 아마도 진보라는 단어가 한국어에서 갖는 좋은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영어에서도 진보라는 뜻의 progress는 좋은 의미이다. 결국 자신들이 진보라고 주장하는 한국의 냉전적 보수세력과 자유주의세력이 잊고 있는 것은 발전을 의미하는 진보(progress)와 정치적 성향을 지칭하는 진보(the progressive)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케네디정부는 '진보를 위한 동맹'(Alliance for Progress)을 주장하는 등 미국의 민주당 정부는 첫 번째 의미를 진보를 자주 자신들의 목표로 제시해 왔다. 그러나 자신들이 두 번째 의미에서 진보세력(the progressive)이라고 주장한 적은 없다. 사실 정치적 노선으로서의 진보주의란 미국정치에서 나쁜 의미이다. 이처럼 자유주의세력, 극우적 보수 세력이 자신들이 정치적 노선으로서의 진보주의라고 주창하고 나서는 경우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진보세력을 부를 때 지칭하는 '진보'라는 명칭을 두 번째 의미(정치노선으로서의 진보주의, the progressive)가 아니라 첫 번째 의미의 진보(progress)로 오해하고 이 같은 용어에 질투하고 이를 빼앗기 위한 촌극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발전'을 의미하며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같은 전통적으로 진보세력이라고 부르는 세력은 '발전'이 아니라 '퇴행'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사실 그러한지는 따져 보아야 할 문제이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같은 주장은 일상적의 의미의 진보(progress)와 정치적 노선으로서의 진보(the progressive)를 구별하지 못한 무지의 발로에 불과하다.
이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 진보연대와 같은 냉전적 보수세력의 문제제기 중 의미 있는 것도 있다. 물론 정치노선으로서의 진보를 첫 번째 의미의 진보(progress)로 이해하고 진보신당,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자신들이 진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촌극이다. 그러나 "진보신당, 민주노동당이 진보입니까"라는 그들의 질문을 두 번째 의미로 자문해 볼 필요는 있다. 즉 정치노선으로서의 진보주의(the progressive)의 입장에서 진보신당,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소위 '진보세력'이 정말 진보인가 하는 자기반성이다. 예를 들어 이들의 비판처럼 "3대 권력세습을 꾀하고 있는 김정일 집단에 대한 비판을 금기시"하는 것, 북한의 핵실험 등에 대해 자위권이라고 옹호하는 것이 정치적 진보노선일 수 있는 것인가 자성해 보아야 한다. 과연 우리는 진정한 진보(the progressive)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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