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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제정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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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교육청이 작년 12월에 초안을 발표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줄 알았다. 이것은 경기도 교육청의 다른 사업과는 달리 좌파적인 색채가 있다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 걸? 보수언론에서 연일 이에 대해서도 비난의 화살을 쏴댄다.
 
그래서 정말 문제가 있는 건가 싶어 조례안을 읽어봤다. 도대체 이게 왜 문제가 되는 걸까. 하지만 현장에서는 교사들의 우려가 상당한 듯 하다. 이는 도 교육청이 주최한 마지막 공청회에서 일부 교사들의 토론을 통해 나타나기도 했다.
 
저번 2학기 때 교육대학원에서 행정학교육론을 강의하면서 그 과목을 수강하는 교사들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주위에 안면이 있는 교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소위 '생매스' - 운동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일반대중을 말한다. 이런 말 오랜만에 써본다. 예전엔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이런 말 쓰면 거부감이 들었는데...- 가 아니라서 현장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한다고 보기 어려웠다. 수강 교사들은 학생인권이 강조되는 분위기를 탐탁치 않아 하고, 체벌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학생들에게 애정이 없다면 매를 들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해줄 수 없었다. 그게 수업의 주된 내용도 아니었고... '꽃으로도 사람을 때리지 마라'고 하지만, 인간적인 교화만으로는 교육이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세상은 계속 좋아지고 있는 걸까. 촌지도 없어지고, 가르치는 것 또한 신성한 노동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가는데, 과거보다는 더 자율적으로 되었고, 개방적이며,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권한과 권리도 더 많이 주고 있는 듯한데, 교육현장은 더 어려워지고 있는 걸까.
 
이계삼 님이 쓴 글 마지막 부분에 언급된 '새로운 학교의 전망' 10가지 열쇳말 중 다섯가지가 인상적이다. 항상 현실과 이상을 어떻게 조화할 것인가가 과제인데, 아래 제시된 것이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현실화되고 있는 것을 좀더 구체화한다고나 할까.
 
1. 학생은 존엄한 권리의 주체이다.
2. 학교는 참여와 결정을 훈련할 수 있는 배움터여야 한다.
3. 다양성은 교육의 초석이다. 학교는 차이를 존중하고 차별에 맞서야 한다.
4. 배움은 학생이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감당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
5. 책임은 자유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가장 잘 배울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 여기에 직접 관여되는 사람은 물론,  관심있는 학생, 학부모, 그리고 시민들이 많이 배우고 토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오히려 가치있는 게 아닐까.

  
2010. 1. 28
찾아 보니 공현님이 인권오름에 쓴 글이 학생인권조례의 의의에 대해 잘 얘기하고 있더라. 그래서 이 글을 추가로 퍼왔다. 내가 학생인권조례 제정의 의미에 대해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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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학생인권조례, 어떤 의미로든지 중요한 한 걸음 (공현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 인권오름 제 185 호 [입력] 2010년 01월 06일 15:24:31)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학생인권이 제도화된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 우선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은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 판례, 국제기구의 권고, 인권단체의 주장 등을 통해서 개별적으로 제시되었던 학생인권에 대한 기준을 통합된 법제의 형태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학생인권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부실한 한국 사회 실정에서,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은 학생인권의 구체적 내용과 최소한의 기준을 공식적으로 확인시키는 효과를 지닐 것이다. 이처럼 공식 확인된 학생인권의 기준은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인권침해 문제를 제기하고 싸울 때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다. 또한 공식적인 규범의 제정은 그 자체로 사회 전체에 대한 인권교육적 효과가 있다.
 
물론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경기도 지역 학생들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는 점이 그 가장 큰 의의이다. 학생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계획 수립과 집행, 학생인권 상황에 대한 조사와 평가, 학생인권침해 구제기구 설치 등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장치들이다. 경기도 지역은 평준화 지역, 비평준화 지역, 부유층 거주 지역, 빈곤층 거주 지역 등이 뒤섞여 있으며, 두발규제, 강제적 자율학습, 체벌 등의 대표적 학생인권 문제에서도 상대적으로 심한 지역 중 하나로 꼽혀 왔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 학생들이 보여준 열렬한 환영의 분위기는 이러한 현실을 보여준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는 것은 변화의 완성이라기보다는 변화의 한 계기에 가깝다. 학생인권조례가 실현시키고자 하는 두발자유를 비롯하여 용의복장의 자유, 체벌금지, 강제적 자율학습, 보충수업의 금지, 학생들의 쉴 권리 보장 등은 학생들에 대한 통제와 학교 간이나 학생 간 경쟁을 강화시켜나가고 있는 교육 현실에서 유의미한 견제장치가 될 수 있다.
 
더군다나 현재 발표된 학생인권조례 초안을 살펴보면 학생들의 학교 운영 참여, 교육 정책 수립에 참여 등을 보장하고 있다. 이러한 통로를 통해 학생들이 일상적인 학교 운영을 비롯하여 교육 현안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교육에 변화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학생들의 참여를 내세우는 짝퉁스런 교원평가제보다는 훨씬 더!) 또한 학생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질 조직과 기구 등은 학생들의 조직화, 세력화를 촉진시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막연하게 전국적인 법률과는 달리 학생인권조례는 경기도 지역 학생들, 경기도 지역 단체들을 인권조례의 당사자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만들고 있다. 아직 학생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외칠 만큼 전국적으로 조직화되어 있지 못한 현실에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법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체가 명확한 동시에 피부에 와 닿는 사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상곤 교육감의 임기 중에 학생인권조례를 발의하고 논의하여 제정하려고 하다 보니 생기는 문제도 있다. ‘학생참여기획단’을 통해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들으려고 하고 있지만, 학생인권과 조례 제정 과정에 대해 같이 공부하고 토론하는 시간도 가지지 못하고 온라인을 통해서 학생들의 의견을 모으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연구팀도 고작 2개월밖에 안 되는 연구기간 동안에 설문조사, 면접조사, 외국사례조사를 시행하고 조례 예시안까지 만들어 내려다보니 조사 내용을 충분히 분석하고 논의하지 못했다. 자문위원회 또한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에 대한 논의는 1달도 못하고 조례안을 내놔야 하는 형편이었다. 마찬가지 이유로,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 경기도교육청이 지역 사회, 청소년단체, 교육단체 등을 충분히 잘 활용했는지도 의문이다.
 
제대로 된 내용으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될 수 있을 것인지 또한 우려스럽다. 경기도 교육위원들 다수와 경기도의회 의원 다수는 무상급식 예산 삭감, 학생인권조례 예산 삭감 등으로 김상곤 교육감의 정책을 막아설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경기도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학생인권법안, (학생회 법제화와 학생의 학교운영참여를 포함한) 학교자치법안 등도 제대로 통과시키지 않은 전력이 있다.
 
학교 관리자, 교사, 보호자(학부모 등), 학생들 내부에 존재하는 학생인권에 친화적이지 못한 분위기도 문제다. 연구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학교 관리자, 교사, 보호자 등은 학생들의 학교 운영 참여에는 큰 거부감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체벌 금지나 두발자유 등에는 상당히 큰 거부감을 보이거나 반반으로 의견이 갈라졌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도 체벌금지 등에 대한 거부감이 어느 정도 있다.
 
입시경쟁, 학교서열화, 학벌, 교육예산 부족, 장애차별, 크게는 자본주의․국가주의 등은 ‘도 차원의 조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학생인권 개선을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학생인권조례는 이러한 것들을 해결해나가는 과정 없이는 그 한계가 뚜렷하다.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고 통과시키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것인가? 한 지역에서 두발자유, 체벌금지를 명문화하고 제도화하는 것도 성사시킬 수 없는 사회적 조건과 운동 조건이라면 교육과 학교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학생인권조례는 이후 학생인권을 중심에 두고 학교가 변화해갈 가능성을 여러 가지 면에서 열어두고 있는 조례이며, 그렇기에 학생인권을 위해 충분히 유의미한 한 걸음이 될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만약 통과된다면, 학생인권조례를 근거로 하여 이를 지키지 않고 학생인권침해를 일삼는 학교들에 맞선 학생들의 학교 현장에서의 저항과 행동의 불씨들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학생인권조례가 만약 통과되지 못하더라도, 학생인권조례 추진 과정과 무산은 학생들이 학생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적, 정치적 참여(학생인권조례를 무산시킨 원흉들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서라도)에 나설 충분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설령 도교육위나 도의회를 거치면서 무산되더라도 학생인권조례가 완전히 좌초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공신력 있는 연구결과가 존재하고, 제대로 된 학생인권조례안이 교육청에 의해 발표되는 것만으로도, 이후의 학생인권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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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무슨 '좌파', '포퓰리즘'이 있는가" (프레시안, 이계삼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2010-01-12 오전 9:49:03)
[학생도 인간이다] "언제까지 '상처와 무기력'만 가르칠 텐가"
 
요즘 학교에는 '그린 마일리지'라는 기막힌 제도가 있다. 기존의 '상·벌점제'에 때 빼고 광 낸 뒤에 영어로 옷을 입힌 것이다. 학생 지도 담당 교사들에게는 대체로 반응이 괜찮은 것 같은데, 아이들에게는 '캐안습'이다. 이 제도를 요약하면 이렇다. 아이들의 선행에는 블루 포인트, 악행에는 레드 포인트를 부여한다. 이를 적립하여 블루 포인트가 많은 아이들은 포상하고, 레드 포인트가 많은 아이들은 블루 포인트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게 함으로써 이를 상쇄시켜 '정상으로' 만들어 주고, 그래도 안 되면 징계를 하는 제도다.
 
선행을 포인트로 적립한다는 것도, 악행을 상쇄하기 위한 선행을 하고 그것을 '인증받아야'한다는 발상도, 얼마나 가공할 만한 것인가. 인간의 행동이란 상점과 벌점으로 손쉽게 범주화할 만큼 단순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선을 드러내어 행하게 하면 반드시 위선이 된다. 악을 드러난 선행으로 상쇄하게 한다고 해서 그 악이 교정되지도 않는다. 체벌 대체라는 신사적인 명분을 갖추고 있지만, 그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통제하겠다는 의도 말고는 달리 설명이 안 되는 제도인데, '그린 마일리지'는 별다른 저항 없이 학교 현장으로 진입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학생 인권' 문제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준거 기준을 제시한 반가운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경기도 교육청이 지난해 12월 초안을 발표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작업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에 대한 보수 언론들의 공격도 연일 이어지고 있다. 법이 보장하고 국제적인 기준이 제시하는 만큼이라도 아이들 숨통을 좀 틔워주겠다는 게 이렇게 욕을 먹어야 하는 일인지, 한숨이 나온다.
 
가장 많은 논란이 벌어지는 것은 역시 두발 부분이다. 하긴, 이 세상에는 짧고 단정한 머리 스타일로 정돈된 아이들을 보면서 안정감을 느끼고, 이를 '모범적'이라 믿는 분들이 참 많다. 그러나, 그게 '모범성'의 척도라면, 한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모범생 집단은 이른바 '깍두기'들이 아닌가?
 
아이들은 늘, 언제나, 떠든다. 아이들은 머리 모양을 가꾸고 싶어하고, 연애를 꿈꾸며 실제로 이를 실행에 옮긴다. 그리고 아이들은 무엇보다 놀고 싶어한다. 이것은 마치 새가 지저귀고,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아이들이 과하게 비싸거나,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는 머리 모양을 할 때, 수업에 방해를 끼칠 때, 바람직하지 않은 연애 관계에 빠져들 때, 그것은 박멸해야 할 '교육적 악'이 아니라 이해와 공감에 바탕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어야 할 '교육적 상황'인 것이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이러한 숱한 '교육적 상황들'에 두루 적용될 대단히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원칙들을 모아놓은 것일 뿐이다.
 
권리보다 의무가 우선이라 떠드는 이들이 있다. 서로 배운 바가 다른 것 같으니 따로 할 말은 없지만, 그렇게 말하시는 분들께는 자신의 의무는 잘 이행하고 있는지 살펴보시라고 이야기 드리고 싶다. '맞아봐야 정신차린다'고,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뇌까리는 댓글도 보았다. 그렇게 맞는 것이 좋으면, 계속 맞고 살 일이다. 남들까지 그래야 한다고 떠들 필요 없이 말이다.
 
교권 수호를 외치시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께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지난 시절로부터 오늘날까지 학생 인권이 없었듯 교권도 없었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교권이 군대 지휘관처럼 아이들 앞에서 군림할 수 있는 '권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교권이란 교사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존중하고 교원의 교육적 전문성을 발휘했을 때 '부여받게 되는', 지적 도덕적 '권위'이다. 그러나 지난 시절, 그리고 오늘날 교원들에게 요구된 것은 오직 순종과 경쟁에서의 승리 밖에 없지 않았던가.
 
보수 언론과 일부 인사들은 학생 인권 문제는 학교 자율성에 맡기라고 한다. 그동안 자율적으로 학생 인권을 충분히 유린해오지 않았는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헌법과 교육기본법이 보장하고 우리나라가 가입한 'UN 아동에 관한 권리 협약'을 따르자는 것일 뿐이다. 이건 그렇게들 좋아라 하시는 바로 '글로벌 스탠다드' 아닌가.
 
학생 인권은 우리들 자신을 위한 것이다. 이 사회에 만연한 폭력, 그리고 그 대물림을 누군가는, 어느 시점에서부터는, 끊어야 하기 때문이다.
 
20년 전,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선생님을 꿈꿀 때, 나는 내가 교단에 설 때면 두발 단속이나 체벌, 강제 야자나 보충 정도는 당연히 사라져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당시의 민주화 흐름에 대한 분명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도 부모들은 학교가 아이들 머리를 단속해 주길 학교에 요청하고, 오래오래 붙잡아 두면서 공부를 많이 시켜주기를 바란다. 아이들은 20년 전보다 더 오랜 시간동안 공부해야 한다. 밤12시까지 학교에 붙잡혀 공부를 '당하고', 몇 시간 못자고 또 새벽밥 말아먹고 학교에 나와야 한다.
 
아이들은 여전히 두발 단속, 복장 단속을 당하며 학교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자신들의 입장은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부모들도 학창 시절에 이런 일들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 폭력을 내면화시킨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적 무기력, 순응적 태도, 남성적이고 군사주의적 사고방식들은 대개 학교와 군대를 통과하면서 내면화된 태도들이며, 지금도 학교 현장에서 이 폭력은 대물림되고 있다. 
 
아이들은 기본권이 유린당하는 공간에서는 절대로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과장한다. 학교 축제에서 몸빼바지를 입고선 코믹댄스로 사람들을 넘어가게 하는 모범생을 볼 때가 있다. 온갖 말썽을 도맡아 일으키는 사고뭉치가 체육대회 때 질풍 같은 드리블로 멋진 골을 성공시키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나는 어쩌면 그것이 그 아이의 '본연의 모습'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그 모습이 아름답고, 감동을 받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동안 모범생은 자신의 '모범성'으로부터 벗어나지 않기 위해, 사고뭉치는 '반항과 일탈'로써 부풀려진 자기 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과장하게 된다. 그것은 끝내 상처로 남을 것이다.
 
아이들 본연의 모습은 유희의 공간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충분히 놀아야 한다. 그리고, 충분히 인격적으로 대우받아야 하며, 자신에게 찍힌 '낙인'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충분히 '섞여 있는' 환경 속에서 자라나야 한다. 그때서야 아이들은 온전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아이들을 변호해 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들어보아야 한다. 되바라진 아이들의 철없는 소리라고 미리 낙인찍지 말고 그 발언들 속에 담긴 중요한 인간적 진실들에 귀 기울이고, 거기에 도사린 상처의 고통을 느껴야 한다. 아니, 그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논란으로써 이 중요한 문제가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이끌려 나왔으니, 조례의 초안(http://human.kerinet.re.kr)이라도 한 번 정독해 보자. 거기에 무슨 좌파가 있고 포퓰리즘이 있는지, 앞뒤 없이 내지르는 이야기 말고 사실에 입각해서 토론해 보자.
 
마지막으로, 나는 '학생인권조례제정자문위원회'가 제시한 '새로운 학교의 전망' 10가지 열쇳말 중 다섯을 소개하고자 한다.
1. 학생은 존엄한 권리의 주체이다.
2. 학교는 참여와 결정을 훈련할 수 있는 배움터여야 한다.
3. 다양성은 교육의 초석이다. 학교는 차이를 존중하고 차별에 맞서야 한다.
4. 배움은 학생이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감당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
5. 책임은 자유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가장 잘 배울 수 있다.
 
이 다섯은 오늘날 학교 교육이 사실상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내면 깊은 곳에 안고 있는 어떤 상처, 무기력과 깊이 관련된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이 땅 민주주의의 훼절은 학교가 이 덕목들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다섯 줄 문장을 읽으면서 정말 가슴이 뭉클했고, 그리고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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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교육청 "두발 제한 금지·체벌 금지·야자 선택" (프레시안, 강이현 기자, 2009-12-17 오후 5:52:18)
학생 인권 조례 초안 발표…2010년 2월 최종안 제출
  
"생머리는 '모범 엄마', 파마머리는 '불량 엄마'입니까?"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 2010-01-25 오전 10:17:31)
[현장] '경기도학생인권조례' 공청회…청소년이 말하는 인권 실상
 
"사명감에 아이들을 때렸고, 그런 악역을 즐겼다"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 2010-01-26 오전 8:58:26)
[현장] '경기도학생인권조례' 공청회…어느 학생부 교사의 고백
 
현직 교사이자 '좋은교사운동본부' 정책위원인 김성천 교사는 "학생의 인권을 무시하는 체벌이 빈번히 발생하는 이유는 시스템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김 교사는 "교사들이 체벌을 포기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데, 체벌까지 가하지 않는다면 학교가 아예 무너지게 될 거라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는 학교에서 체벌 말고 다른 방식의 징계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성천 교사는 "학교 폭력 사안이 발생했을 때 나름 매뉴얼이 제시돼 있듯이, 학교에서도 그런 절차와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시스템의 부재는 교사로 하여금 체벌에 집착하게 만들며, 학생들에게는 몇 대 맞고 몸으로 때우면 된다는 식의 도덕적 해이를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성천 교사는 이번에 경기도교육청에서 준비하는 인권조례가 이러한 시스템을 논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효자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심우근 교사도 동의했다. 심 교사는 " 매일 교문을 지나가는 아이들과 마주보며 늘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왜 교육적이지도 않은 잡다한 규정을 가지고 교사와 학생이 서로 눈을 부라리며 이른 아침부터 맞서야 하는가'이다"라고 밝혔다. 심우근 교사는 이러한 규칙으로 인해 "교사와 학생 사이에는 쓸데없는 소모전과 맞서기가 빚어지고 있다"며 "학생들 마음속으로 전혀 수긍하지 못하는 규정을 대폭 정리하기 위해 조례가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진 교사는 "학생의 일탈 행동에 법적인 측면에서 강력한 처벌이 뒷받침 되어야 학교에서 학생의 인권을 정당하게 보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청소년 범법 행위에 대한 처벌이 미흡하다"고 밝혔다. 자유를 주장하기 전에 책임부터 먼저 이행하라는 주장이다. 김동진 교사는 "인권조례가 생길 경우 교사들은 앞으로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과 위기감을 가지고 있다"며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영란 교사는 "인권조례가 제정되면 아이들은 이걸 무기로 삼아 교사들을 공격할 것"이라며 "자정적 사고를 가지고 있지 않은 학생에게 인권조례를 적용하기는 무리"라고 언급했다. 김영란 교사는 "정 조례를 추진하고자 한다면 전체 교사의 의견을 수집해야 한다"며 "거기서 과반수의 동의가 이뤄질 때 조례가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란 교사는 "제도는 법만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다"며 "환경이 제대로 마련된 뒤 제정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심우근 교사는 "현실적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억압받는 학생 다수를 방치하고 이대로 가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며 "현재 학생들은 강력한 통제로 인해 분노를 느끼고 있다. 이런 것을 바꿔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20살이 됐다고 갑자기 실현되는 게 아니라 학교에서 미리 준비시켜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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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학생인권조례 교육위 통과 '불투명' (수원=연합뉴스, 김경태 기자, 2010/01/26 10:39)
교육위원 다수 부정적 의견..초안 손질여부 주목
 
연합뉴스가 26일 의장을 제외한 도교육위원 12명 전원을 상대로 조례안 초안에 대한 의견을 전화로 물은 결과 조례 초안에 대해 대다수가 반대하거나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조례안 초안에 대한 종합의견을 묻는 질문에 최운용 교육위원 등 10명은 시기상조, 시범운영 필요, 제도화 불필요 등을 들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나머지 최창의 교육위원은 "취지와 목적에 동감하지만 제정시기의 완급조절이 필요해 지방선거 이후 추진해야 한다"고 했고, 이재삼 교육위원은 조례제정 자문위원으로 적극적인 찬성의견을 냈다.
 
논란이 된 조항에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이 중 수업시간 외 교내집회 보장 조항의 경우 10명이 반대 입장을 보였고 1명만 도입에 찬성했다. 이 조항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보인 최창의 교육위원은 "매우 민감한 문제"라고 언급했다. 체벌금지 조항의 경우 사랑의 매나 현행 수준에서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7명이었고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5명으로 나와 체벌금지 원칙에 동의하면서도 허용수위를 놓고는 의견이 조금씩 달랐다. 최대 관심사안 중 하나인 두발.복장 자율화 조항에 대해서는 찬성 의견이 2명이었고 10명은 자율화에 반대하거나 조례 조항이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조례안이 도교육위를 통과해도 도의회 '심의장벽'을 또 한번 넘어야 한다. 도교육청과 도의회가 무상급식 예산, 교육감 조사특위, 교육국 설치 등을 놓고 사사건건 갈등을 겪고 있어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산 넘어 산' 형국이다.
 
교육청은 자문위 제출안을 검토한 다음 별도 공청회와 입법예고를 거쳐 이르면 3월 도교육위원회에 조례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도교육청은 교내 집회 허용 등 논란이 된 일부 조항을 손질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어 그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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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10대들보다 더 무서운 것은… (프레시안, 홍성태 상지대 교수·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2010-02-17 오후 12:10:47)
[홍성태의 '세상 읽기'] 학생 인권 조례를 위하여
 
2010년 2월 10일 경기도 교육청이 의뢰한 '경기도 학생 인권 조례 결과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경기도 학생 인권 조례 자문위원회는 많은 회의와 여러 논란 끝에 모두 5개 절의 49개 조로 이루어진 '경기도 학생 인권 조례 최종안'을 마련해서 경기도 교육청에 제출했다.
 
마침 경기도 학생 인권 조례안이 발표될 즈음에 이 나라의 학생들이 얼마나 무서운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경기도에서 또 발생했다. 이른바 '막장 졸업식 뒤풀이'가 그것이다. 10여 명의 남녀 학생들이 옷을 홀랑 벗은 채로 피라미드를 쌓고 담장 앞에 모여 서서 사진을 찍는 등의 모습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예전에는 '막장 졸업식 뒤풀이'는 없었지만 그 원천으로 지목되고 있는 학교 폭력은 예전에도 역시 심각했다. 나는 국민학교 때 이미 슬리퍼로 따귀 때리기와 몽둥이로 발바닥 때리기를 경험했고, 중학교에서는 펜치로 꼬집기, 원산 폭격, 원산 철교 등의 폭력을 겪었으며, 고등학교에서도 따귀 때리기, 손바닥과 허벅지 때리기 등의 다양한 폭력을 겪었다.
 
폭력의 문화를 육성하고 유포하는 데 학교가 큰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다. 한국의 학교에서 학생들은 '이중의 폭력' 속에서 살아간다. 하나는 교사의 폭력이고, 다른 하나는 학생의 폭력이다. 교사들은 보통 손바닥 때리기로부터 시작해서 실로 다종다양한 구타의 방식을 가르쳐주고, 무릎 꿇고 손들기부터 시작해서 더욱 더 다종다양한 기합의 방식을 가르쳐준다.
 
사실 우리가 폭력으로 인지하는 것들은 공식적으로는 대체로 거부되는 것이며 우연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와 달리 공식적으로 거부되지 않으며 필연적인 것으로 제시되는 폭력도 있다. 두발과 복장에 대한 규제, 소지품 검사,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가 그것이다. 학생들은 특히 두발에 민감하다.
 
두발과 복장, 소지품 검사,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는 그 자체로 반교육적일 뿐이다. 내가 알기에 그 뿌리는 사소한 규율들을 끝없이 강제해서 병사들을 '순응하는 주체'로 만들고자 했던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규율 방식에 있다. 우리의 학교에서 학생들은 '이중의 폭력'이 아니라 '삼중의 폭력' 또는 '사중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그야말로 '새벽별 보기 운동'의 수준에 이르러 있는 학벌 경쟁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제도적 폭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태에 대해 학생들이 자유롭게 저항하는 것은 고사하고 발언하는 것조차 강력히 규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10대는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가장 발랄한 때이다. 10대들이 이 시기를 '보호'의 명목으로 각종 규제 속에서 보내게 하는 것은 10대의 발전을 억압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폭력에 순응하며 폭력을 활용하는 주체로 만드는 것이다. 10대들이 정말 이 나라의 미래로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 무엇보다 지독한 학벌경쟁 폭력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다양한 폭력에서 벗어나서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서 자유롭게 살도록 해야 한다.
 
경기도 학생 인권 조례안은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한 중요한 새로운 출발이다. 아무쪼록 폭넓은 토론이 이루어져서 훌륭한 조례로 제정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성과가 경기도에 머물지 않고 전국으로 퍼져나가 '정글고'의 상태에 있는 이 나라의 학교와 교육이 크게 개선되기를 바란다. 학생을 당연한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아니라 단순한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보호 이데올로기'의 문제도 이참에 전면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란다. '보호 이데올로기'는 학생을 위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학교와 국가를 위하는 논리의 문제를 안고 있다. 학생들은 꿰뚫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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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6 20:06 2010/01/2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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