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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면제 vs 현역' 구도는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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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암함 침몰과 관련한 현 정부의 대처를 보고 있노라면 분통이 터진다. 과연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나.
 
많은 사람들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지하벙커에서 네 차례나 열렸는데도 거기에서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진상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어 울분을 삼킨다. 그로 인해 스스로 관련 자료와 기사를 챙기고 다양한 경우의 수를 살펴보는 이들이 많다.
 
평소 이명박 정부 하에서 경직된 국가와 맞서면서 위축되었던 상상력도 고양되고, 그 동안 몰랐던 서해 및 백령도의 날씨와 파고는 물론, 군함과 탑재무기 등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시나브로 쌓이고 있다. 아무래도 노무현정부에 이어 MB정부도 대중들을 전문가로 만들어서 전반적인 국가지식수준을 높이려고 하는 모양이다. 황우석, 한미FTA, 광우병에 이어 천안함까지, 국가가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대중들은 속시원히 풀리지 않은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발로 뛰어다니며 파헤치다가 스스로 전문가가 된다. 지식강국은 이렇게 달성되나 보다.
 
그건 그렇고, 이번 사건에서 '군 면제자'와 '군 복무자'를 대립시키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좌빨이라고 비난할 때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손쉬운 탈출구가 병역을 마쳤다는 주장이다 보니, 그리고 이런 상투적인 억지를 부리는 이들이 '병역면제자'이다 보니 그런 일이 발생한다는 걸 이해는 한다. 그리고 면제란 분명 부당한 방법으로 병역을 기피한 소수의 기득권층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그리고 병역의 의무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자들이 설치는 것은 모순적인 것이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하지만 ‘면제'들 때문에 애꿎은 ‘현역’이 당한다는 식의, 군대도 갔다 오지 않았으면서 천안함 침몰에 대해 말을 자격이나 능력이 있겠냐는 식의 분노와 냉소 앞에서는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내가 18방이라서가 아니다. 이러한 편리한 도식화가 우리 앞에 놓인 미시적인 문제들을 은폐하고 해결을 어렵게 할 것 같아서이다.
   
우리 간의 병영국가, 군사문화는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우리 삶에 녹아든다. 이 추상적인 문제들을 몇 글자의 구호로 정리해서 설득력 있게 말하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 않기 때문에 그냥 이렇게 투덜거리기만 한다. 사실 이 시점에서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어색하고 그 진정성을 꼬이게 만들 것이기에...
 
그래도 세상을 제대로 바꾸고자 한다면 군대, 병역, 전쟁 등에 대해 말하거나 들을 때는 좀더 신중해졌으면 좋겠다. 아래 발췌한 고은태 님의 글을 읽고 여기에 몇 자 더 붙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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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병역면제자들의 나라, 그리고 불편함 (앰네스티 일기, 2010/03/29 04:16, 고은태)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대통령이 주재한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가 열렸다는 소식에 트위터의 타임라인은 군대도 안간 병역면제자들이 무슨 일을 제대로 하겠냐는 비난으로 가득 찼다. 이후 사고수습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설명과 지지부진한 모습이 보이자 이런 비난은 더욱 고조되었다. "군대도 안 갔다 왔으면서 무슨 해결책이 있겠나", "병역 미필자들이니 무서워서 벙커에 박혀있는 거겠지", "병역 면제자들에게 나라를 맡기면 안 된다", "병역 면제자 들은 공직에 못 오르게 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등등. 우연찮게도 월남참전용사인 명진 스님 대 병역면제자인 안상수의 구도도 부각되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부당한 방법으로 병역을 기피했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자들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이해한다. 이와 더불어 현재의 정부에 실망한 국민들이 많고, 정부가 하는 일들의 어설픔과 잘못됨이 결국 권력자들에 대한 반발로 이어진 것 역시 이해 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맥락에서 이런 비판들도 바라보아야 할 것도 동의한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에서 병역을 필한 사람은 반도 안 된다. 여성이 있고, 장애인들이 있으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정당한 사유로 군대에 갈 수 없었거나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도 부지기수다. 비록 소수의 권력자들을 향한 비판이라고는 하나 대단히 많은 - 수가 꼭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 사람들이 이런 비판의 유탄을 맞고 아파할 수 있다. 더군다나 병역에 대해 아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입게 되는 직간접적인 피해는 매우 치명적일 수 있다. 병역거부자, 절대적 평화주의자 혹은 다른 형태의 병역체제를 지지하는 사람들.
 
일단 병역에 대해 서로 다른 처지와 생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병역의무의 이행이 한 인간의 성장에 필수적이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열등한 존재이고, 병역을 마친 자들만이 가지는 특권이 존재해야 한다는 듯한 전제 위에서 이야기해 버리면, 의도와는 무관한 폭력이 되어 소수자의 심장에 피를 흘리게 하고, 기존체제를 공고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병역을 신성시하고 군복무를 절대화하기에 이르면 결과적으로 병역국가, 군사국가를 예찬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군대라고는 구경도 못한 여성이 대통령이 되어 국군 통수권자가 되고, 역시 병역과는 거리가 먼 장애인이 국방장관을 할 수도 있다. 그게 민주공화국이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 한다.
 
권력자들의 병역기피 의혹은 그것대로 문제제기를 하되, 그것이 마치 무능의 원인인양 이야기하는 것을 옳지도 바르지도 않다. 그래도 정 화가 나면 최소한 용어라도 정확히 쓰자. 면제자가 아닌 기피자. 기피자라는 법적 판단이 아직 없으므로 기피의혹자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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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30 11:24 2010/03/3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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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은태 2010/03/30 11:30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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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이번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내 생각... Tracked from 2010/03/30 19:50

    신진련 대표 이장군입니다. 오늘도 제 피씨방에서 죽치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 하루도 인터넷상이나 뉴스에서는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 관련 소식들이 쏟아지고 있더군요.(물론 최진실 동생 최진영의 자살소식도 보이지만)오늘 기사를 보니 UDT대원 중 하나가 구조작업을 하다가 순직했다는 소식을 보니 천안함 실종자 가족들이 난리를 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식으로 개소리를 까대는 버러지만도 못한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고 말입니다. 아무튼 이번 해군 초계함 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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