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잡기장
이사갈 집을 보고 왔다. 월세가 싸게 나와서 얼릉 어머니랑 보러 갔는데, 사람이 없어 다시 오기로 하고는 주변만 살짝 둘러보고 설명 좀 듣고는 돌아왔다. 이번에도 반지하인데 지금 사는 곳보다는 햇빛이 잘 들것 같다. 창문 바로 앞에 작은 나무들이 있어 적절히 햇빛은 들어오면서 안은 잘 안보이게 되어 있다. 시장도 가깝고, 전보다는 지하철 역이 더 가깝다. 또 나오면 바로 불광천으로 연결되서 아침 운동, 밤 산책하기에도 좋다. 나는 자전거로 바로 한강까지 갈 수 있고.
저녁에는 내가 시간이 안 되서 엄니와 형이 왔는데 내게 전화로 복비 계산하는 법을 묻는다. 인터넷을 뒤져 알아냈다. 바로 계약할 분위기. 지금 막 집에 돌아왔는데 물어보니 계약했다고 한다. 이삿날은 7월 5일.

안에 들어가서 본 건 아니지만 주변 환경은 일단 맘에 든다. 어머니도 맘에 드시는 듯. 햇볕이 좀 더 들어온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만큼 지금 사는 집을 답답해 하셨다. 게다가 값까지 싸니. 그래도 월세는 오래 있을 건 못됀다. 얼릉 돈 벌어 월세를 벗어나야지. 그래도 일단 마음은 편해진다. 일단 지금 상황에서는 좋은 방향으로 결정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엄니 기분이 좋은 것 같아 내 기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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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한강으로 나왔다. 영등포에 갈때는 이렇게 가고 종로에 갈때는 녹번-홍제-무악재-독립문으로 해서 오는데 오늘은 불광천이 바로 옆에 있으니 한강으로 달리고 싶어져 종로로 가지만 한강쪽으로 들어왔다. 조금 달리다가 벤치에 앉아 잠시 쉰다. 가방에서 SF를 꺼내 읽는다. "0으로 나누면".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수록된 테드 창의 단편. 한강에서 자전거타다 술은 많이 마셨지만 한강에서 자전거타다 책을 보는 건 드문 경운데, 한강에서 자전거타다 책을 보는 것도 의외로 좋다.

왠지 내가 폼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출출해진다. 어제 광화문에서 퍼포먼스하고 자전거로 대학로까지 갔는데, 한딱거리하고 났더니 너무 힘들고 배고팠다. 니콜라가 싸온 도시락을 조금 먹었다. 오늘, 벤치에 앉아 책을 보다 그 생각이 났다. 나도 간단한 도시락을 싸들고 나오면 좋겠군 하고 생각한다.

몇가지 생각할 지점이 떠올라 메모한다. 자전거 안장이 앞으로 쏠려 그것도 바로 잡는다. 언제나 휙휙 지나던 지점이지만 오늘은 제법 오래 이 자리에 머무른다. 이런 것도 생각보다 좋구나.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자전거를 세워 두고 그냥 갖다 오긴 뭐해서 읽던 페이지만 마저 읽고 정리해서 아예 가려고 했는데, 아 이게 너무 재미있다. 결국 꾹 참고 다 보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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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따라 달리다가 마포로 들어간다. 출출해져 가끔 들르는 떡볶이 집을 찾아가려 했으나 역시 너무 이른 때라 열지 않았다. 배고픔을 참고 공덕을 지나 종로까지 달린다. 종로에 도착하니 1시. 지금 한창 대청소 중이다. 미디어문화행동이 방을 빌려쓴지 꽤 됐는데 이런걸 같이 한적이 별로 없어 살짝 미안하다. 빌려쓴 도구들 꺼내놓고 방을 치운다. 어제 G8 대항 퍼포먼스때 쓴 물품들이 남아 있다. 어제 일을 생각하면 참 신기하다. 그런 걸 할 수 있다니.

밥을 해먹는데 옆에 껴서 같이 먹었다. 사람들은 화요일 일을 얘기한다. 재밌고, 놀라고 화나는 이야기들.. 밥을 다 먹고 가위바위보로 설겆이할 사람을 뽑았는데 계속 지다가 마지막 3명 중 운 좋은 한 사람이 되서 빠져 나왔다. 하지만 저녁때는 한 사람 뽑을 때 걸리고 말았다. -_-

밥 다 먹고 일을 시작한다. G8 관련 영상을 주로 올릴 사이트에 뭔가 해야 한다. 거의 했다 싶었는데 잘 작동이 안된다. 무한 반복 삽질에 들어간다. 그래도 안된다. 빨리 끝내고 책 마저 읽고 싶은데. 다운 받은 영화도 보고 싶고, 구해놓은 음악도 듣고 싶다. 몇시간 동안 붙잡고 있었지만 해결이 안되니 슬슬 짜증이 난다. 결국 책 조금 보다가, 영화 조금 보다가, 음악 조금 듣다가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저녁 먹고 설겆이 하고 나니 IT노조 회의시간이다. 약속 시간에 늦으면 맛있는거 사가기로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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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한 두 방울 내린다. 자전거 타고 갈까 말까.. 에라 모르겠다. 그냥 달린다. 내 자전거 도로 주행은 점점 대담해진다. 자신 있긴 하지만 조심은 하는게 좋을텐데. 땅이 살짝 젖었으니 더 조심해야 한다. 다행히 오늘은 차가 별로 귀찮게 하지 않는다. 운전하는 사람도 조금 더 조심하고 무리 안하려는 듯. 공덕을 지나 다시 마포로 들어가 다리를 건넌다. 서울교를 건너니 그 근처에 볼일이 있다는게 기억났다. 깜박했군. 내일 가야지. 영등포에 오니 차 한대가 빵빵거린다. 지금까진 조용히 잘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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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을 했으니 뭐던 사오라는 소리를 듣는다. 다들 저녁 먹었을테니 일부러 안사온거라고 했지만 당연히 마음을 움직이진 못한다. 음료수와 과자 한봉지를 사온다.

원래 연말까지는 이런 저런 걸로 버텨보려했지만 얼릉 다른 일자리를 구하는게 낫겠다. 활동은 계속 하겠지만 그걸 본업으로 하진 않을 참이다. 한동안은. 불연듯 이력서 쓰고, 일자리 알아보고, 살짝 죽이고 들어가고 할 생각을 하니 갑갑하다. 제대 이후 이런 저런 간단한 알바만 하다가 2년 반동안 상근 활동을 했으니 이러는게 거의 5년 전쯤 되는 것 같다. 건성으로 한건 아니지만 아주 절실히 와닿지는 않는 상태로 그동안 노조에 함께 한건데, 이제 그게 다 내 이야기가 된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하다. IT노동자의 현실. 허울만 좋지 뒤틀린 산업 구조 속에서 엄청나게 착취당하는 IT노동자. 그동안 사람들은 단체 상근활동하면서 돈을 조금밖에 안 받으니 이런 저런 때마다 날 배려해주곤 했는데, 사실은 고용 안정에, 보람에, 사람들끼리 서로 존중하고, 어느 정도 자유롭게 일한다는 생각에 오히려 괜찮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회의에 조금 더 열심히 참여한 것 같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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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그냥 그런 하루가 지난 것 같다. 최근, 지난 주말, 그리고 어제 너무 재밌고 격하게(?) 보낸 뒤라 살짝 맥빠져 보이긴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오늘도 이것저것 많이 해 놓은 하루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며, 온 종일, 그 사람은 오늘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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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8 02:56 2007/06/08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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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깽 2007/06/08 03:06 URL EDIT REPLY
8시가 조금 안 됐었나, 아현 고가차로 아래에서 자전거를 타는 지각생을 봤죠. 혼자 반가워했더랍니다. ㅎ
리우스 2007/06/08 06:01 URL EDIT REPLY
잔차를 참 맛있게도 타시요...ㅎㅎ 나도 오늘 잔차로 출근해보까...? 하는 생각이...^^
디디 2007/06/08 08:41 URL EDIT REPLY
그 사람은 또 누구야. 사랑에 빠져버렸어? -0- 이야!
지각생 2007/06/08 12:09 URL EDIT REPLY
부깽// 오 그랬어요? 불렀으면 같이 반가워했을건데 :)

리우스// 참 이게 끊을 수 없는 맛인지라 ㅋ 잔차로 출근했삼?

디디// 흠흠, 관심 자제효..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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