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쓰려다 못 쓴게 너무 많아지고 있어 한번에 "근황"이란 이름으로 퉁친다.
* 빈집(http://binzib.net) 입주
발을 완전히 끊지 않고 이런 저런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어서 내가 나갔던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 꽤 있었는데, 올 봄부터 빈집에서 몇달간 나와 있었다. 그 동안 증산동 부모님 집에 살았는데, 이유는 꽤 많다. 그 중 어떤 것이 "진짜 이유"라 할만한 것이 있을까? 부모님 건강이 안 좋아진 것도 있고, 빈집이 올 초에 겪은 일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내가 홱 돌아버린 것도 있고, IT 활동관련해서 이런 저런 일이 너무나 잘, 빠르게 풀리고 뻗어나가면서 에너지를 집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빈집은 "그냥 사는"곳은 아니다. 불편하다거나 부자연스럽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으면 뭔가 계속 그 세계에 일어나는 일들에 에너지를 스스로 쏟게 된다), 재정적 어려움도 있고, 그 밖에도 꽤 많다.
몇 달동안의 유배를 마치고, 아쉬워하는 친족들을 뒤로 하고, 집으로 복귀했다. 빅3 - 아랫집, 옆집, 앞집 -에는 공간이 넉넉치 않고, 마침 "가파른집"의 상황도 절박하고 해서 그곳으로 들어갔다. 가파른집은 주로 "외국인들이 사는 곳"으로 인식되어져 온 면이 있는데, 다른 집보다 규모도 작고, 이색적이고 신기한 것이 많은 반면 일상적으로 사는데는 여러가지 어려워보이는 면들이 있다. 빅3에는 없는 특색중 하나는 애초에 작고 기형적인 공간이 다시 쪼개져 작은 방 4개가 되어 있어서 한 사람이 한 방을 오로지 홀로 사용해왔다는 점이다. 이 곳이 그동안 잘 관리가 안되서 공과금이 엄청나게 몰려 있는 등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었고, 집안일이 잘 분배/협력이 안되어 있어 다들 손 놓다시피 지난지 꽤 됐다.
오랫만에 빈집에 돌아오며, 마음에 약간 남아 있는 부채감도 털고, 충전된 에너지를 공동체에 어서 돌리고 싶은 마음에 가파른집에 들어가는 걸 선택했다. 대청소도 하고, 사람들간의 소통 (가파른집 사람과 빈마을 전체) 역할을 하면서 분위기를 새롭게 바꾸려고 애쓰고 있다. 다행히 나의 행동들이 자극이 된 것처럼 집 분위기가 요즘 많이 밝고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다 좋긴 한데 입주한지 얼마 동안 계속 청소하고 짐 옮기고 하느라 몸이 힘들다. 묵은 때를 빡빡 밀어 벗겨 낼때의 쾌감이란. 팔에 힘만 계속 들어가면 사흘밤낮 청소를 해서 한번에 깨끗~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있지만 그러기엔 다른 일들이 나를 놔두지 않는다.
빈집으로 복귀하고, 빈마을금고 등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빈마을 사람들과 다시 관계를 만들어가면서 벌써 실수도 하고 그러지만 들어가는 에너지 못지 않은 어떤 자신감과 안정감을 내 스스로 찾아가는 것 같아 일단은 기쁘다.
* 남해안 자전거 여행
곧 몇편에 걸쳐 사진과 스토리를 담은 후기를 옮기게 되겠지만 하루 하루 밀린 일에 정신 없다보니 사진 정리도 아직 못하고 있다. 추석 연휴 기간 동안 나 포함 6명의 "사연 있는 사람들"이 다녀온 남해안 자전거 여행. 완전 행복했다. 지금껏 다녀온 어떤 여행 못지 않은 많은 것을 얻은 여행이다.
비록 그 덕에 일이 더 밀려 지금 고생이긴 하지만, 다소 무리해서 다녀온 이번 여행은 정말 조금도 후회를 남기지 않았는 소중한 기억.
가난한, 초보, 약체 라이더들도 서로 협력만 잘하면 힘든 코스도 얼마든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 단체 반상근 활동 시작
한 주의 절반이지만, 오랫만에 단체에 매인 몸이 됐다. 자유를 포기하고 생활의 안정을 찾기 위해 단체를 알아보다가,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의 요청을 받고 인정에 못 이겨 "시민환경정보센터"라는 곳에 들어갔다. 내가 2003년인가 4년인가 현실 NGO 활동에 참여하려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처음 발을 들인 곳인데, 원래는 "환경운동연합"의 독립적 전문기관으로 시작했으나 사실상 그 안에서 온갖 잡다한 IT관련 일을 다 맡아서 하는 곳으로 되어 버렸다. 이번에 다시 처음 뜻대로 환경운동연합에서 독립해 나오게 됐는데 새로운 사업들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내게 최대한의 자율권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상근 활동을 제의해 왔다. 당시 극도로 궁핍한 상황이기도 했고, 움직이는 IT교육장등 내가 주도적으로 몇몇 사업들을 시작하면서 생활의 안정과 초기사업비 지출에 대한 필요성이 절실해졌기 때문에 오랜 자유활동을 약간 접었다.
막상 단체 활동을 시작하니, 역시 반상근이라 해도 다른 일과 함께 하는 건 쉽지 않다. 단체의 질서와 흐름이란건 아무리 유연하다고 해도 지금까지 내가 해온 완전 랜덤자유우연동시다발분산적 IT-네트워크 활동과는 역시 차이가 있다. 출근만 절반이지 사실 영향은 한 주 내내 미친다. 출근해서는 네트워크 활동을 생각하고, 출근 안하는 날은 단체 활동을 고민하고 이런다.
몸과 마음의 부담은 늘어났지만 대신 생활은 눈에 띄게 안정되고 있어서, 빈마을금고(http://binzib.net/?mid=bingo)에 출자도 하고 주변 상황을 개선하는데 망설임없이 내 여력을 보태면서 거침없이 실천하며 산다.
근황이라고 세세한 거 쓰려고 했는데 굵직한 몇개를 써 놓고 나니 다른게 스르르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
무엇보다, 졸리다.
이 담에 쓰고 싶은 글은 이번 남해안 자전거 여행 후기와,
IT 사회운동의 철학적 근거가 될만한 것들에 대한 요즘 생각들.